오행은 뭘까?

   
어윤형•전창선
ǻ
와이겔리
   
12000
2009�� 11��



책 소개
동양이 낳은 위대한 자연과학,음양오행! 21세기에 들어서자 동양학이 서양 철학과 과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답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있다. 이 책은 동양의 세계에서 대해 탐구한 저자들이 써내려간 일반 독자를 위한 동양학 입문서이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 동양학을 처음 공부하거나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 대학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음양오행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1장과 2장에서는 오행의 기본적인 개념을 살펴보고, 3장 ‘오행의 춤’에서는木火土金水를 각각 설명하면서 그 개념을 더욱 자세히 알아본다. 4장 ‘싸우면서 자란다’에서는 각각의 걸음걸이가 서로 어떤 연관을 가지며 실존하고있는지, 5장 ‘오행이 펼치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현실에 응용되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마지막 6장 ‘체질은 뭘까’에서는 오행과 체질을 비교하고체질에 대해 알아본다. 


■ 저자 어윤형• 전창선 
경희대한의학과를 함께 다녔고, 1986년 졸업 후 서울에서 행림(杏林)의 뜻을 펼치고 있다. 한의학 연구 모임 ‘추상한의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있으며, 동양정신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일주일의 3일은 진료를, 나머지 3일은 전국의 산야를 답사하며 이 땅에서자생하는 약초들을 연구•정리하는 작업에 몰두 중이다. 


■ 차례
1장 오행의 향기
 
오행을시작하며 | 뫼비우스의 띠 | 불사조 | 시지프스의 바위 | 진리는 단순하다 | Never Ending & Story | 오행의 신화 |강이 끝나고 산마저 다해 


2장 가면 속의 우주 
가면의 계절 |우주는 숨겨져 있다 | 누우면 자고 싶다 | 인생의 걸음걸이 | 길을 가는 다섯 걸음 | 우주는 어떻게 걸을까 | 목(木)은 나무가 아니다 |점, 직선, 평면, 입체, 그리고 시간 | 철쭉꽃 먹고 비틀비틀 


3장 오행의 춤 
하나: 목(木) -생명의 탄생 | 골뱅이와 덩굴식물 | 생명력을 기르려면 | 태극 속에 사는 새 | 둘: 화(火) - 열정의 젊은 시절 | 화려해도 실속 없는젊은 여름날 | 칡을 여름에 캐면 | 불꽃처럼 살아가는 | 사람과 새의 불꽃 | 눈 - 불의 통로 | 불의 숨겨진 모습 | 셋: 금(金) -풍선과 가을 | 별도 지구도 풍선도 | 사람의 머리와 풍선 | 봄에는 살리고 가을이면 죽이는 | 고육지책(苦肉之策) | 가을의 뜻 | 넷:수(水) & - & 빅 뱅 | 삼천 년 만의 탄생 | 생명의 고향 | 겨울과 잠, 그리고 돌아감 | 은하계의 자궁 - 블랙홀 |다섯: 토(土) - 중앙의 임금, 혼돈 | 나비의 꿈 | 흙 속의 임금 - 혼돈 | 생장수장의 춤 


4장 싸우면서 자란다 
상생과 상극 |외줄타기 | 욕망과 절제 | 사계 속의 상생 상극 | 절제 없는 욕망 | 너무 편하면 죽는다 | 철완(鐵椀) | 내리사랑 | 태초에서 미래까지| 상극의 고리 | 열매를 맺으면 줄기는 시든다 | 잎이 무성하면 열매가 부실하다 | 겨울이면 잎은 시들고 | 우후죽순(雨後竹筍) | 대나무는꽃이 피기 어렵다 | 부부 싸움과 상생 상극 |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 | 상생 상극을 마치고 


5장 오행이 펼치는 세상 
우주 속의무수한 우주들 | 인체 속의 소우주 | 간은 간이고 나무는 나무다 | 현실 속의 오행 | 동양의 방위 | 남쪽을 바라보는 성인 | 지구는 왜둥글까 | 사계절 | 다섯 가지 맛 | 다섯 가지 색깔 | 오장(五臟; 肝心脾肺腎) 


6장 체질은 뭘까 
체질이란? |벗겨지지 않는 가면, 체질 | 사지(四肢)가 추는 다섯 가지 춤 | 체질과 인생의 사계절 | 어린 시절과 태양인 | 소년 시절과 소양인 |중년기와 태음인 | 노년기와 소음인 | 동물도 체질이 있을까 | 얼굴을 보면 체질을 안다 | 음인(陰人)과 양인(陽人) | 나의 체질을 찾아 |내 체질은 뭘까? 1 | 내 체질은 뭘까? 2 | 오행이 부리는 마술(질량 변화) - 순대 접시 위의 간 | 불과 흙의 이야기 | 나무와 쇠와물의 이야기 | 체질은 왜 생길까 | 음양오행을 마치면서





오행은 뭘까?

1장 오행의 향기
진리는 단순하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인 진리는 한 알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씨앗이 발아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나무가 되듯이…….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인 진리는 수많은 도사들의 입을 통해 싹을 틔우고 가지를 내면서 거대한 나무로 자랍니다. 거대한 진리의 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상징과 비유를 양식으로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신화와 전설은 수많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 찬 진리의 나무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의 태동기에 형성된 이들 이야기들은 우주와 삼라만상,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빛으로 번뜩입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태동기에 뿌려졌던 하나의 씨앗이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큰 나무로 변했습니다. 오늘날의 현자들은 무성한 나뭇잎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나뭇잎에도 씨앗의 뜻이 깃들어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나뭇잎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진리는 쉽고 단순합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나무의 뿌리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나무의 잎사귀에 가깝습니다. 현대는 잎사귀를 닮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하고 복잡합니다. 그리고 고대는 뿌리와 같아 겉은 초라하지만 속에는 생명의 본질을 숨기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고대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왜곡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원형이 숨어 있습니다. 자연의 참모습을 보려는 사람은 단순함으로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2장 가면 속의 우주
가면의 계절

벚나무 가지를

꺾어도
벚꽃은 보이지 않네.

그러나 봄이 되면
아아!
가지에 가득한 하얀 벚꽃송이들.

                       -일휴


봄이 왔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며 황량하게 비어 있던 나무는 가지 끝에 꽃망울을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던 벚나무가 일제히 환호하며 수천수만의 꽃송이를 활짝 피웁니다. 겨우내 보이지 않던 이 꽃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활짝 핀 꽃들은 또다시 바람에 떨어지고 뒤이어 가지마다 연초록의 잎들이 돋아납니다. 매미 울음소리로 시끄러운 여름 내내 푸른 녹음을 드리우던 벚나무는 찬바람이 돌면서 색이 바래고 가을이 끝날 즈음 옷을 벗듯 잎들을 떨굽니다. 다시 겨울이 오면 벚나무는 침묵 속으로 빠져 듭니다. 벚나무는 일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뜻을 알고 있는 이를 지도지사(知道之師)라고 합니다. 농부는 천지가 이루고 있는 원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도의 스승입니다. 농심(農心)이 되어 마늘 한 쪽을 땅에 심어 봅시다. 며칠이 지나면 마늘은 뿌리를 내리고 반대쪽으로는 싹을 올립니다. 변화는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모습을 바꾸어 마침내 마늘 여섯 쪽이 뭉쳐진 둥근 뿌리를 이룹니다. 뿌리를 쪼개어 한 쪽씩 다시 심어 봅시다. 역시 동일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땅에 심어 싹이 트고 무성해지고 성숙해지고…….


다른 씨들을 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쌀, 콩, 보리, 고구마, 감자 등등. 일 년을 주기로 질서 있게 모습을 바꾸어 갑니다. 마치 정해진 가면을 순서대로 바꾸어 쓰는 것과 같습니다.


3장 오행의 춤
하나: 목(木) - 생명의 탄생

자궁 속에서 열 달을 지내다 드디어 ‘출세(出世)’하려는 아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좁고 어두운 산도(産道)입니다. 고작 10㎝밖에 안 되는 길이지만 수 시간에 걸친 출세 과정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둘레가 약 33㎝정도나 되는 머리를 최대한 수축시키며 우선 몸을 굽힌 태아는 머리 부분을 시계 방향으로 틀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 나서 머리가 빠져 나오게 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목을 폅니다. 이렇게 해서 머리는 산도에서 빠져 나오고, 그 다음 동작으로 어깨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틀며 빠져 나옵니다. 비록 10㎝ 길이의 짧은 길이지만 몇 시간에 걸친 긴장감 넘치는 탄생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태아가 좁은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나오기 위해 선회(旋回)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태아의 출생 과정은 木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겨울의 응고력을 통해 일점으로 충양(充陽)된 씨앗(혹은 우주)이 봄을 맞아 木으로 솟아오를 때 그냥 일직선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선의 운동 방향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단순한 직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木의 운동은 알고 보면, 땅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기 위해 나선형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구멍을 뚫을 때는 드릴을 사용합니다. 벽을 뚫는 드릴에는 나선형의 홈이 패어져 있습니다. 나사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선 운동은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합니다. 총알을 어떻습니까? 총알이 공기 속을 뚫고 가장 멀고 빠르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회전을 해야 합니다. 木은 우리의 시각에는 직선(直)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곡선(曲)을 그리고 있습니다.


둘: 화(火) - 열정의 젊은 시절
여름철에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보십시오. 꼭지에서 출발한 물은 처음에 한 줄기로 솟아오르다가 점차 힘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집니다. 분수의 시원함과 화려함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데 있습니다. 물방울이 펼쳐진 상태는 꼭지에서 분출하던 힘을 거의 다 잃은 상태지만 분수가 보여주려는 화려함의 전부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힘차게 튀어나온 태아의 분출력(木)은 17세를 전후로 화려하게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출생 이후 약 16년간 죽순처럼 뾰족하게 상승하던 힘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신체의 표면까지 확산됩니다. 얼굴에 여드름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모든 관심이 외모에 집중됩니다. 자연히 속은 비고 겉은 화려한 젊은 날의 여름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주의 행보에서 木을 거쳐 火의 걸음걸이로 들어왔습니다.


셋: 금(金) - 풍선과 가을
흩어지고 있는 기체를 담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선은 기체를 담기에 좋습니다. 봄과 여름의 과정은 양기를 발산하면서 음형(陰形)을 흩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가을이 오면 여름 동안 火의 작용에 의해 한없이 흩어진 양기를 다시 모아야 합니다.


흩어진 양기는 기체와 같고 이를 싸고 있는 金의 힘은 풍선의 외부에서 누르는 압력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가을 金의 과정은 아직 내부에 火의 반발이 있으면서 그 외면만 굳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넷: 수(水) - 빅 뱅
일본 고분에서 3,000년 된 목련 씨앗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은 이 씨앗들을 싹틔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그 씨앗을 중 몇 개가 싹터 1993년 4월에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3,000년간 생명을 간직하고 있던 씨앗, 그 생명력이 놀랍습니다. 또한 그 씨앗의 생명력을 잠 깨운 인간의 능력 역시 놀랍습니다. 그런데 3,000년간 변화 없는 정적 속에 빠져 있던 목련 씨앗에 생명의 발동을 건 것은 무엇일까요?


그 원리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네 번째 행보에서 나타나는 水의 힘인 것입니다. 3,000년간 침묵하고 있던 씨앗은, 단지 金이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얻었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에 불과했습니다. 오행의 세 번째 걸음걸이가 빚어낸 생명이 속에 가득 찬 알맹이였던 것입니다.


씨앗은 홀로 자라지 못합니다. 비록 생명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지만 水의 힘에 의해 더욱더 억눌리지 않는 한 발아(發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은 땅에 떨어져 흙 속의 수기(水氣)에 의해 압박받고, 찬 겨울의 냉기에 의해 일점으로 움츠러들었을 때에만 비로소 봄에 새 생명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水의 힘은 일점으로 생명력을 통일시키는 것이고, 3,000년 된 목련 씨앗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발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겨울 동안 땅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 것을 동양에서는 장(藏)이라고 표현합니다. 물은 장(藏)의 성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해서 水라고도 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네 번째 행보인 水를 통해 어둠 속에 갇혀 보지 않으면 밝은 재생의 봄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다섯: 토(土) - 중앙의 임금, 혼돈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고 한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에게 매우 융숭하게 대접했다. 그래서 숙과 홀은 서로 의논하여 혼돈의 덕에 보답하려 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분만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뚫어 주자.” 이렇게 하여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7일째가 되니,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장자』 응제왕 중에서


『장자』는 수많은 우화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우화들은 우리의 사고가 미치기 어려운 곳까지 은유로써 밝혀 주고 있습니다. 특히 혼돈은 오행 중 土의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의 임금 ‘혼돈’은 왜 죽었을까요? 일반적인 해석으로 접근하면 ‘분별이 자연스러움을 죽인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자세히 봅시다. 혼돈이 살고 있는 땅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닌 사방의 한가운데인 중앙(中央)에 살고 있습니다.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덕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중용의 덕을 지니고 가운데 위치한 자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쪽의 주장이든 북쪽의 주장이든 서로 잘 달래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눈, 코, 귀, 입이 없어서 자신의 분별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은 저마다의 개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유독 혼돈만이 가운데에서 고마움만 베풀고 있습니다. 혼돈은 자신을 표현하는 눈, 코, 귀, 입이 없어서 우리가 보기에 몹시 답답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방의 조 화가 혼돈의 덕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럼 ‘일곱 개의 구멍을 뚫자 혼돈이 죽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눈, 코, 귀, 입이 생겨 분별하는 마음이 생기자마자 중앙 土의 본분을 잃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혼돈의 힘을 우리는 土라고 합니다.


4장 싸우면서 자란다
너무 편하면 죽는다

관상용 열대어를 잡아서 전 세계에 공급하는 한 회사가 열대어 수송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열대어 수송용 수조에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도 수송 도중 절반 이상 죽어 버리고, 살아남은 놈들도 대부분 생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바다의 파도와 같은 물 흐름을 연출하고, 자연스러운 모래와 암석을 설치해 주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생태학자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수조에 사나운 문어 한 마리를 넣어 두세요.”


그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시간 수송 끝에 수조를 열어 보니, 사나운 문어는 대가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고, 대부분의 열대어가 살아서 쌩쌩하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생태학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너무 편하면 죽어요.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생명력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남산의 소나무는 시골 소나무들보다 솔방울이 많이 열린다고 합니다. 소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해마다 서울의 건물은 점점 늘어나고 자동차도 많아져 살기가 옛날 같지 않습니다. 바로 공해 때문입니다. 공해에 시달린 소나무들은 위협을 느낍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나무들은 더 많은 자식을 만듭니다. 자연히 솔방울이 많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해 농작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호박을 심어 약 2m 정도 자랐을 때 생명에 위협을 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극히 간단합니다. 넝쿨을 쥐고 호박의 잔뿌리가 떨어질 정도의 세기로 적당히 잡아당기면 됩니다. 호박은 틀림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 결과 호박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수의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생활의 조건이 열악하거나 삶의 위협이 크면 클수록 본능적으로 더 많은 2세를 낳습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산율이 높은 시대에는 극(克)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장 오행이 펼치는 세상
간은 간이고 나무는 나무다

동양학 공부를 하다 보면 근본적인 의문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간을 木이라 하고, 나무 역시 木이라 합니다. 간이 木이다?! 왜 간이 木일까요? 결론적으로 대답한다면 “간은 木이 아닙니다.”


백두산 씨는 성실한 샐러리맨으로 C그룹의 엘리트 사원입니다. 탁월한 실력으로 젊은 나이에 플랜트 수주를 담당하는 기획실 과장이 되었습니다. C그룹은 대기업으로서 회장을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와 각 계열사 산하에 수많은 직원들이 있는데, 인사조직의 체계가 피라미드와 같습니다. 백두산 씨는 이 피라미드 중간쯤의 한 부분에 속합니다.


자! 여기서 백두산 씨는 백두산으로 정의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기획실 과장으로 정의되어야 합니까? 간을 간이라고 보아야 하는 이유가 확연해집니다. 기획실 과장이라는 직책은 C그룹이라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의 역할을 나타낼 뿐 백두산이라는 한 인간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간은 간입니다. 인체를 C그룹으로 볼 때 간은 백두산이라는 독립된 한 사람의 인격체이고, 간을 木이라 함은 유기적인 인사 조직 체계에서 기획실 과장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인체 내에서 오장이 다섯 걸음의 순환을 할 때 간이라는 소우주의 역할이 木의 성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을 木에 배속하고 木이라고 할 뿐입니다.


간은 관점을 바꾸어서 보면 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소우주로 木火土金水의 힘이 모두 내재되어 있는 태극체인 것입니다. 인체라는 대우주 속에 소우주인 오장(五臟: 간, 심, 비, 폐, 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원을 이룰 때 간은 봄[木]의 과정을 대표할 뿐입니다. 백두산은 백두산이지 기획실 과장이 아닙니다. 간은 간이지 木이 아닙니다.


오장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장기는 스스로 소우주를 이루며 태극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작은 태극은 큰 태극의 부속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간은 간으로 관찰해야 하고, 간을 木이라 함은 간의 특성이 木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하나의 태극으로 소우주를 이루며 木火土金水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를 木이라 함은 나무의 개성이 木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정리를 해 보면, 부분은 전체를 대변합니다. 부분 속에서 전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또한 모든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이 곧 전체는 아닙니다. 부분은 부분일 뿐이며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또한 각 부분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의 소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6장 체질은 뭘까
벗겨지지 않는 가면, 체질

한 마리의 왜가리가 대나무 숲 위를 날았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그 왜가리를 자신의 영혼 속으로 받아들이고 숲과 산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이제 한 마리의 왜가리가 되어 물고기를 잡아먹고, 왜가리의 배고픔을 느끼며, 왜가리의 울음소리를 내며, 왜가리의 죽음을 겪었다. 들개가 죽어서 모래밭에 쓰러져 있으면 싯다르타의 영혼은 그 시체에 푹 들어가 죽은 들개가 되어 (……) 싯다르타는 수없이 자아로부터 벗어나 무(無) 속에, 짐승 속에, 돌 속에 머물렀지만 자아로 돌아오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햇빛과 달빛 속에서, 그늘이나 빗속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순간은 피할 수가 없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중에서


삼라만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갑니다. 싯다르타는 수행의 과정에서 배운 술법을 써서 자신의 영혼을 왜가리, 들개, 돌 등에 집어넣어 보지만 결국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자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함없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싯다르타의 자아가 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합니다. 그 가면은 왜가리가 되기도 하고 들개, 돌 등으로 바뀝니다. 싯다르타의 자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왜가리, 들개, 돌 그리고 싯다르타의 육신은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방법이 동양의 전통적 패러다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시각의 반전을 일으켜 봅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해 보자는 것입니다.


왜가리는 왜가리입니다. 왜가리는 왜가리의 새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왜가리의 육체적 형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가리의 내면에 싯다르타의 자아가 들어 있든 왜가리의 영혼이 들어 있든 육체적 형태는 왜가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들개는 들개로, 돌은 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간이라 할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을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은 공간의 이면에서 질서로 작용합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질서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어 공간을 중심으로 시간을 관찰해 봅시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바뀌면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나무나 불이나 흙, 쇠, 물은 어떻습니까? 나무, 불, 흙, 쇠, 물은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무는 나무고, 불은 불이고, 흙은 흙, 쇠는 쇠, 물은 물입니다.


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까요? 나무는 봄에 목기(木氣)를 받아 싹이 돋고, 여름에 화기를 받아 잎을 펼치고, 가을에 금기를 받아 열매를 맺고, 겨울에 수기를 받아 뿌리로 물을 거둡니다. 나무의 내면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목화금수의 변화가 생겼지만 나무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무는 나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왜가리는 왜가리라는 육체적 가면을, 들개는 들개, 나무는 나무, 불은 불, 쇠는 쇠라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면은 존재 자체가 없어져 해체되기 전까지는 결코 벗겨지지 않습니다. 가면의 입장에서 본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가면이 됩니다.


이처럼 인체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가면을 ‘체질(體質)’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체질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네 가지로 결정된다고 하신 분이 동무 이제마 선생입니다. 전통 한의학은 인체 내면의 질서를 중요시 여기는 시간적 관찰로 발전해 오다가 동무 선생에 의해 공간적 관찰로 바뀌며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