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오소희
ǻ
에이지21
   
12000
2007�� 06��



>■ 책 소개
우리는 터키를 어떻게 알고있는가? 세계문화유산, 멋진 자연풍경, 수많은 유적, 동서양의 만남, 월드컵의 나라. 이런 것들을 기대했다면 이 책을 덮어야 한다. 골목길에서만난 인자한 할아버지, 동굴집에서 살아가는 빈민 아이들, 눈을 감으면 별빛이 쏟아질 것 같은 자연 그대로의 해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터키여인들, 언제나 느긋했던 버스기사 아저씨,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할 줄 아는 거리의 상인들이 이 책을 수놓는다.


지은이가 세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터키로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 살배기 아이와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한 달간이나? 남편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질문들이었다.


과연 그럴까? 지은이는 아이가 22개월 되던 무렵부터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등지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달간이나 휴가를 낼 수 없는 남편이 곁에 없다는 것뿐.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어 많은 감동을 주었던 그녀의 첫 배낭여행기이다.이제 그 아이는 7살이 되었고, 그 이후 많은 지역을 함께 여행했다. 지은이는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해서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한잠자리를 고수하지 않았다. 터키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둘러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골 마을 구석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역 풍경을 아이의 시선과지은이 특유의 삶의 바로미터로 바라본다.


■ 저자 오소희
71년 서울 출생. 명문대와광고회사를 두루 거쳤으나, 한 번도 삶에 안착하지 못하다. 20대 후반, 계룡산 자락에 3년간 정주하며 자연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 유년을 두번 살면서 비로소 삶에 닻을 내리다. 더 잘 떠나는 자만이 더 잘 머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아이가 세 돌 되던 해부터 세상의 변방을 사이좋게 거닐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캄보디아나 라오스의 오지마을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어딘가에서….


■&>차례
프롤로그


1. Mommy, is it Christmas Eve?
2. 사람이 있는 곳,그랑바자르
3. 원하는 것 앞에서 돌아서는 법
4.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본다
5. 나를 무장 해제시킨 하렘
6.베이코즈의 골목에서 잃어버린 유년을 찾다
7. 터키 남자와는 연애만 하라
8. 영리한 그녀, 야스민이 빠진 덫
9. 한국인이여,인디림은 이제 그만
10. 레일라가 정말 열두 살일까요?
11. 미안하지만, 나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12. 동굴집의 빈민,파트마의 초대
13. 우리는 바람에 날아간다, 에이디이르
14. 투명함은 투명함끼리 통한다
15. 호수에서 자란 고귀한 영혼의아이
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
17. 가엾게도, 한국인들은 노예로군요
18. 고통이 없는 삶은 비어 있는삶
19. 올림포스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
20. 벌들이 나를 좋아하나봐
21. 영원히 계속되는 것, 우리를 스쳐가는것
22. 당신이 거기 있으면, 나는 행복해져요
23. 이제 너는 나를 떠나 안식을 구하지 못하리라
24. 한평생 번 돈,길에서 다 쓰고 죽을 거야
25. Mommy, I made it!
26. 그동안 잘해 줘서고마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원하는 것 앞에서 돌아서는 법

이스탄불은 여행자에게 참 친절한 도시다. 사람들이 친절할 뿐 아니라, 이스탄불에서 여행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세계적인 유적들이 모두 "술탄아흐멧"이라는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까닭이다. 그랑바자르에서 블루 모스크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블루 모스크에서 세인트 소피아까지는 5분 정도. 세인트 소피아에서 하렘으로 유명한 톱카프 궁전까지는 또 5분 정도.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하루에 이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다. 시간에 좇기지 않고 느긋하게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 옛 것에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시대를 재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몇날 며칠을 두고 천천히 둘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앞으로 전진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시로 지나가는 트램만 쳐다보다 졸려하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코앞에 톱카프 궁전이 있어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한다.


그랑바자르에서 빠져나오니 점심 무렵이다. 먹거리가 발달한 터키에서는 천 원짜리 바게트 샌드위치도 훌륭하지만, 이 또한 입이 짧은 세 살배기에는 무용지물, 술탄아흐멧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밥과 토마토 요리 한 가지를 주문하고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점심 식사 후 아이가 다시 트램을 타자고 한다. 이번엔 좀 오래 타보고 싶다는 것이다. 엄마는 저쪽에 가서 다른 걸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 너무나 간절히 트램을 원한다. 이번엔 좀 오래 타보고 싶다는 것이다. 억지로 다른 곳에 데리고 가봤자 맘 편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트램을 탄 지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엄마, 졸려."


아이가 축 늘어지며 내게 머리를 기댄다. 이, 이럴 수가! 대낮에 텅빈 호텔로 돌아와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눕자니 눈물이 찔끔 나려 한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한탄이 절로 나온다. 낮잠에서 깨어나면 네다섯 시. 그때쯤이면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그럼 저녁 시간. 나가서 또 먹기 싫다는 녀석을 붙들고 한 시간 내내 밥을 먹이고 나면 오늘 하루가 끝날 판이다.


나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서울의 제 침대에서 자는 모습과 꼭같다. 그렇다, 문제는 아이에게 있지 않다. 바로 내 안에 있다. 여행을 시작하면 나는 아이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빵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한국과는 다른 음식을 먹여주기만 하면 고마울 것 같았고, 장난감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가자고 조르지만 않는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행을 가능케 하는 근간이 될 수 있을 뿐, 한 달이나 지속될 이 여행에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 이상이란, 과연 어느 수위까지가 적절할 것인가?


때마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떠들어댔다. 마침내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흐르면 여행의 패턴이 정해질 거야. 너무 조급하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힘들 땐 한 가지만 생각해. 지금 놓인 상황이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바랐던 순간인지…."


남편의 말이 옳다. 여행의 패턴이 정해지고 그 용량을 알아내면, 그 용량만큼만 담으면 된다. 아이의 느긋한 베이비 스텝과 나의 조급한 스텝 가운데 어딘가 서로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모두가 만족할 만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조금 일찍 깨어났다. 그리고 충전된 에너자이저처럼 원기를 회복했다. 내가 나가서 트램을 타고 블루 모스크에 가자고 꼬드기자 선선히 "그래!"하면서 따라나선다. 신발을 벗고 일정액을 헌금한 뒤 블루 모스크에 들어선다. 아이는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듯, 컴컴하고 나직이 웅성대는 사람들로 가득찬 내부에 바로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내가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돔형 천장을 가리키자, 그 색다르고 웅장함에 잠시 압도당하는 듯 하다.


푸른 타일로 장식된 외부의 화려함과 위용에 비하면 블루 모스크의 내부는 단순하고 소박하다. 많은 신도들을 수용하기 위한 기능에 충실한 구조이다. 메카에서 가져와 메카를 향해 놓인 성스러운 검은 돌, 신도들이 제 시간에 도착했는가를 확인하는 데 유용한 그랜드 파더 시계, 금요일마다 지도자가 설교할 때 사용하는 정교한 의자. 관광객들은 깊숙이 들어갈 수 없게 철망이 처져 있고, 철망 너머 저 멀리 안쪽에서 남성 이슬람교도 두 명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아이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저들은 이슬람교도들인데, 이슬람교도는 알라신을 믿어. 지금 코란을 읽으면서 알라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거야."


"인제 나가자!"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이제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끈다. 그래, 내가 5분을 더 본들, 10분을 더 본들 눈 속에 블루 모스크를 구겨 넣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자. 느긋하게….


터키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차를 즐겨 마신다. 모든 시작과 끝이 "짜이(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좁은 부엌으로 들어가 중년의 식당 주인과 그 아내와 함께 수다를 떤다. 수다라고 해야 영어권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눈치와 숫자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내 나이가 몇이고 아이의 나이가 몇이며, 자녀는 몇이고, 몇 살인지 등등. 그들 또한 내 남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설명을 하니, "He working, You spending. Great!"하며 웃는다. 차를 반 정도 마셨을까? 다급한 얼굴로 아이가 뛰어 들어온다.


"엄마, 응가!"


터키에서는 거의 모든 공공화장실이 유료화되어 있어, 500원 가량의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데려가니 변기에 좀 앉았다말고 "엄마, 안 되겠어. 안 나와." 한다.


"중빈아, 여기는 응가 한 번 할 때마다 500원이야. 웬만하면 하고 나가자, 응?"


"그래도 안 나와."


노력해도 안 나오는 것을 억지로 어쩌랴. 화장실로 나온 지 5분쯤 지났을까? 중빈이 또 "엄마, 응가!"한다. 그렇게 곳곳의 화장실을 지나칠 때마다 코트에 내복에 겹겹이 입은 옷을 벗기고 입히기를 반복했지만, 아이는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모든 화장실 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화장실을 나서니 벌써 밤이었다.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것들을 눈앞에 두고, 그 앞의 화장실만 다 둘러본 소감이라니. 오, 중빈! 우리 여행의 첫날밤에 걸맞은 화려한 마무리였다. 그러나 아직도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엄마, 우리 트램 한 번만 더 타자. 오~래 오~래, 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

지중해 연안의 오래된 도시, 안탈랴로 향한다. 안탈랴는 이집트나 사이프러스 등지와 활발하게 교역을 벌이는 항구 도시이기도 하지만, 60년대 이후로는 관광업계의 붐을 타 지중해 연안의 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문화 경제적으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동시에 갈레이치라는 한적하고 매력적인 옛 문화지구가 있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 묵게 된다.


문제는 안탈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일어났다. 한 손엔 커다란 가방, 한 손에 커다란 생선, 거기다 졸려 한껏 늘어진 아이. 차에서 내내 버티던 아이에게 뒤늦게 졸음이 쏟아진 것이다. 마침내 아이가 칭얼대며 주저앉는다. 관광도시인 안탈랴는 에이르디르에 비하면 턱없이 물가가 비싸서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곳 가운데 가장 저렴한 펜션을 골랐다. 라제르 펜션. 문 앞에 당도하니, 우선 녹음이 눈에 띈다. 중빈은 이곳이 썩 마음에 든 눈치다. 나는 산뜻한 정원이 있는 라제르에 묵기로 결정한다.


아이와 산책을 나선다. 산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라알리올루 공원에 닿는다. 크고 매력적인, 꽃으로 가득한 공원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꽃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커다란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초 공원을 새로이 개보수했다고 한다. 중빈이 신이 나서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섞인다.


한 시간, 두 시간…. 중빈은 물 만난 고기 마냥 놀이터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 광활한 터키를 가로질러 마침내 안탈랴에 도착했고, 몇 발자국만 나가면 지중해를 볼 수 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조금 지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나의 피로함은 어린아이와 함께한다는 이 여행의 특이한 호흡법에서 오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꼬마 녀석과 이동하는 중에는, 이동의 피로는 두 배가 되는 반면에 새로 도착한 곳에서 낯선 매력을 느끼는 과정이 언제나 뒤로 미뤄져야 한다.


마음의 평화가 깨어진 나는 결국 중빈을 성공적으로 놀이터에서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아이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면서 막무가내로 앞장서는 내 뒤를 마지못해 따랐다. 잠시 후 울음이 좀 잦아 든 아이가 억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엄마, 나 너무 피곤해."


"그래, 그러니까 엄마가 이제 그만 놀고 펜션으로 가자는 것 아니야? 가서 저녁 먹고 푹 자자. 그럼 다시 기분이 좋아질 거야."


"응."


"엄마도 네가 힘든 거 다 알아. 힘들어서 떼쓴 것도, 우리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자."


취침 시간이 가까웠다. 거의 눈이 감긴 녀석을 간신히 씻겨 뉘고 손빨래를 하는데, 어느새 불어난 날파리가 스무 마리쯤 벽에 붙어 있다. 열 마리 정도 잡았다 생각이 되어 뒤돌아보면 어느새 열 마리가 더 늘어 다시 스무마리가 되어 있다. 한숨을 푹 쉬고, 지린내가 은은하게 널리 퍼지는 변기 옆에 쭈그려 앉아 손빨래를 하는데, 아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나를 부른다.


"응?"

"이 방, 너무 예쁘다."


등쪽에서 가슴까지 훈훈한 기운이 전달되어 온다.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니, 파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이 방이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이다. 여행이라는 건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거겠지만, 이 꼬마 녀석과의 여행, 정말 할 만하다.



한평생 번 돈, 길에서 다 쓰고 죽을 거야

나는 아이가 일어나기 전, 간밤에 꺼내놓았던 것들을 빠짐없이 가방 속에 도로 집어 넣는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화장실에서 뛰어나가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오늘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아침 식사를 위해 펜션의 식당으로 내려왔을 때, 메멧이 내 가방을 눈여겨본다. 나는 메멧에게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터키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되돌아가는 것은 안 되는 것일까. 여행은 기록을 갱신하기 위함이 아닌데.


"당신은요?"

"나는 되돌아가요, 올림포스로. 그곳에서 남은 일정을 다 보낼 거예요."


밴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밴을 타고, 우리는 올림포스로 되돌아왔다. 맨 처음 오렌지 펜션에 도착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펜션의 일꾼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무슨 연유로 우리가 되돌아왔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유습을 찾으러 갔다. 허겁지겁 유습이 뛰어나왔다. 그의 뺨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그의 눈에는 옅은 반가움의 눈물이 맺혔다. 비로소 사람들이 일제히 질문을 터뜨렸고 유습이 내게 통역을 했다.


어땠나요?

훌륭한 곳이었어요. 올림포스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게 해주었으니까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나처럼 다시 되돌아온 외국인이 있었나요?"

"아니오. 단 한 번도."


그들은 올림포스를 다시 찾아준 이방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기쁨을 표했다. 하티제는 차를 내왔고 유습은 CD를 올렸다. 일꾼들은 공놀이를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뒤뜰로 갔다. 나는 정말 집으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이들을 위해 아무 선물도 사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닷새를 더 보냈다. 오솔길과 지중해와 모닥불과 새로운 사람들. 그 닷새 가운데 어느 날은 "드디어" 유적 탐방을 했다. 아이는 내 예상과 달리 험한 산세 구석구석 숨어 있는 유적들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다. 때로는 나를 앞장서 또 다른 유적으로 안내하기도 하면서.


"We are lost!" (우린 길을 잃었어!)


아이는 나름대로 혼자만의 상상에 심취해, 책에서 본 모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숲 한가운데에 숨겨진 목욕탕 잔해에 앉아, 천 년을 한결 같이 같은 돌무더기 위에 내려앉았을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유적이란 아이에게 그저 점프를 하기 적합한 돌덩어리일 뿐이어서, 타박타박 아이가 지침 없이 뛰어내리는 소리가 조용한 숲속에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오래된 혼령들이 유적들 가운데서 되살아나 움직이고 차가운 돌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그들만의 온화한 생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었다. 또 그 닷새 가운데 어느 날인가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너, 한국 사람이냐?"


중빈과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한국인의 얼굴 윤곽을 정확히 짐작하고 아이에게 말을 걸어온 이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다고 했다.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분이 내게 맨 처음 들려준 말씀이었다. 


"내가 한평생 번 돈, 길 위에서 다 쓰고 죽을 거야."


그 말씀은 마치 선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슨 투쟁처럼도 들렸다. 자신도 집이 있어야 하고 자식 집까지도 장만해 주어야 부모 노릇 했다 듣는 한국에서, 연금을 일시불로 타서 세계일주를 하는 데 다 쓰고 죽겠다는 것은 가족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Wheres your wife?"(부인은 어디 계신가요?)


한 터키인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꿈은 이기적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 현실을 배반하기 때문에, 꿈꾸는 자를 얽어매고 있는 지독한 현실-생계나 가족 같은-에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후회가 남지 않는 것만이 더 나은 것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가 몽둥이처럼 둔탁한 영어 실력과 괴나리봇짐처럼 작은 배낭, 믿을 수 없이 형편없는 사진첩 하나만을 들고 세계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누비는 것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러면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흔히 늙음에 대해 가지게 되는 초라하고 우울한 기분, 그리고 지금 당장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생활자의 고민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간단히 짓뭉개 버리며 내게 이렇게 말해 주는 듯하다. 가능한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네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리고 또 그 남은 닷새 가운데 어느 날 밤, 유습이 내게 물었다.

"방갈로 문에 달린 손잡이들을 보았나요?"


뒤뜰의 오렌지 나무 사이를 산책하면서, 나는 그 손잡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손잡이마다 몇 가지 안 되는 페인트로 제 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열악한 재료만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을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색상과 균형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유습은 비밀을 털어놓듯이 수줍게 말했다.

"그거, 내가 그린 거예요."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습이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당신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일상적인 말 외에도 당신이 선곡하는 음악, 작은 사건을 대하는 당신의 표정,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말을 걸 듯이 타인에게 끊임없이 전달되어요. 그 그림들도 마찬가지예요.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지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렇군요. 올림포스는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러니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것도 멋질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신이 가진 꿈은 광산촌에서 자란 아이가 광부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선택된 꿈이 아니라 운명처럼 짐 지워진 꿈이죠. 아직 젊은 당신에게 런던이나 파리는 이곳에서 먼 곳이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런던의 아무 미술관이나 들어가 그곳에 걸린 그림들을 본다면, 확신하건대 당신은 몹시 충격을 받을 거예요. 고흐나 사걀이나 루벤스….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이곳에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일은 짧은 시간에 많은 토마토 껍질을 벗기는 일이죠.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당신이 1분에 몇 개의 토마토를 손질하는지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대신 그들은 당신이 손잡이 위에 찍은 점의 의미를 궁금해 할 거예요. 그들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거예요.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처럼요. 그들의 말은 난해하고 기교적으로 들릴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난해함과 기교에 있지 않아요. 그들은 당신을 깨우쳐주는 데에 있어요."


고맙게도 유습은 나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여 주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모두 흥미롭다면서-그동안 그가 받은 질문들은 "설거지 다했어?"같은 것들이었을 테니-계속해서 더 많은 것들을 질문해 달라고 했다. 밤이 깊어졌으므로, 나는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은 스스로 해답도 지니고 있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올림포스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싶다면, 그거야말로 당신의 "선택"이겠죠."


나는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와, 그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또 그 닷새 가운데 마지막 날, 아이와 나는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올림포스의 해변에는 얕은 여울이 있었다. 폭은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릎 정도까지만 올라오는 얕은 물이긴 한데, 해변 가운데를 똑 잘라먹는 역할을 해서 누구라도 이 해변을 산책하고 싶은 사람은 이 여울을 건너야만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은 등산화 끈을 모두 풀었다 발을 말리고 다시 신어야만 했고, 나 같은 경우는 늘 아이를 안아서 건넨 뒤 다시 나머지 짐을 들고 건너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다.


마지막 날 저녁, 나는 올림포스에 무언가 "해주고" 싶은 강렬한 에너지에 휩싸였다. 올림포스를 향해 어떤 식으로든 남은 힘을 몽땅 쏟아놓지 않으면 다음 날 떠나면서 또 미련이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해가 질 무렵 불현듯 솟아난 그 에너지는 아무런 계획도, 차분한 구상도 없이 무작정 돌을 들고 여울에 댐을 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엔 다리가 달달 떨려서 굴리다시피 아랫배까지만 간신히 들어 올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팔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댐이 높아질수록 댐 자체의 무게가 스스로 바닥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쌓아도 쌓아도 바위가 여울의 수면 위로는 오르지 못했다. 막연히 댐의 높이만 생각했을 뿐, 지반의 특성이나 물살의 세기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바위와 씨름하고 나자, 몸 안의 것을 다 쥐어짠 듯 텅 비고 가벼운 가죽만 남은 느낌이 상쾌했다. 이제 다른 것으로 나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로소 기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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