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오소희
ǻ
에이지21
   
12000
20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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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End of Pacific 시리즈 제1탄 터키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에 이은 제2탄 라오스편이다. 1편에이어 또다시 시작한 대책 없는 1.5인의 배낭여행기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저자가 라오스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데는 ‘론니플래닛’의 이 구절이 한몫을 했다. “남방불교를 믿는 라오스인들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일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보다 카르마가 생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까닭이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말했다. 베트남인들은 쌀을 심는다. 캄보디아인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인들은 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라오스인들은 ‘일을너무 많이 하는 것은 당신의 머리에 좋지 않다’고 믿는다. 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을 흔히 가엾게 여기곤한다.”


저자가 여행을 떠난 건, 화려한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관광명소에서 기념촬영을 찍기위해서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그곳 라오스에서 그녀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땅에서 돈을 벌기 위해허둥지둥 살았던 시간들의 종지부를 찍듯, 그녀는 라오스를 욕망이 멈추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어린 아들과 함께 라오스 곳곳을 여행했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벅찬 그 여정 속에서1.5인의 여행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라오스의 자연과 라오스 사람들을 바라본다. 때로는 아이의 시선으로, 때로는 그녀의 시선으로풀어내는 라오스 이야기는 순수한 그들의 삶에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 &>저자오소희
71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와 광고회사를 두루 거쳤으나, 한 번도 삶에 안착하지 못하다. 20대 후반,계룡산 자락에 3년간 정주하며 자연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 유년을 두 번 살면서 비로소 삶에 닻을 내리다. 더 잘 떠나는 자만이 더 잘 머물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아이가 세 돌 되던 해부터 세상의 변방을 사이 좋게 거닐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캄보디아나 라오스의 오지마을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 차례
프롤로그 욕망이 멈추는 곳,라오스


팍세 pakse 
도플갱어 | 첫 축구동무들 | 생각한 것보다 더 깊숙이 - 통, 아농, 아람과, 조이 | 단 두 마디 | Morning Market | 마음의 넒은 자리 - 썽떼우| 사과 | 사랑한다,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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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싹 Champasak 
느린 시계바늘 | 그와 그녀,그들의 자식들 | 축구의 권력구조 | 자애로운 누이&nbsp& - 이타트 | 메콩 강가에서 저녁 먹기 - 초파리들 | 더 높은 소명이 인간에게| 칼 | 친구가 된 거야! | 덩실거리는 부엌 | 앞선 염려 없이 - 어린 엄마들 | 별똥별의 착륙 | 행복이란 그런 것 - 뱃사공부자(父子) | 단 한 갑의 성냥


&>시판돈 Si Phan Don 
보석상자를 열 때 | 마음을스케치하기 - 에마 | 인형 |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하기 | A Flower Fairy | 그 작은 섬의 커다란 식당 | 자발적 물러남 | IDon"t Want to Die! | 삶의 피로 - 버스에서 자라는 아기


&>사반나켓 Savannakhet 
진짜 봉이 되는 법 - 뚝뚝 기사| 바쁜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 공룡박물관 | 엄마가 된다는 것은 | 스며들기 - 사반나켓의 친구들 | 생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 여행의힘 | A Little Nomad | 솎아내지 않고, 어리광 부리지 않고 | 축구적 세계관


&>비엔티엔 Vientiane 
새벽길, 떠나는 자 | 집으로 돌아갈때 | 무소유에서 무능으로 | 잠들지 않는 | 너무 거칠어! | 미용실 노스텔지어 | 눈처럼 희게, 너를 | 제자리이기 때문이죠 - 미하일 |그러나 도시에서는 |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백화점


&>방비엥 Vang Vieng
사랑하지 않으면 싫어하게 되는 곳 |그럼에도 방비엥은 | 당신의 낯선 신념 | 여행자는 언제나 옳은 선택을 위해 | KTX가 너희를 행복하게 하느냐 - 소피와 남자친구 | 첫사랑을만나기보다 어려운 일 | 그의 눈빛 | 우리는 너희가 궁금하지 않아 | 착하고 순한 그녀 | 방비엥의 천사


&>루앙프라방 Luang Prabang 
가방을 연다는 것 | 그 순한눈들 사이 | 좋은 게스트하우스 고르는 법 | 문신맨 - 벤자이 | 다시 한 번, 미안하지 않게 | 몸의 비밀 |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 -수(Xu) | 세상 그 어떤 음악보다 | 블록 부수기 | 내게 사랑은 그릇된 것이에요 - 짱요 | 외로운 동자승 | 방치되거나 착취되거나 |당신은 보고 싶은 것만을 | 너를 보니 알겠다 - 로(Lo) | 그녀를 잊는 여행 -크리스(Chris) | 아름다운 건 오래오래 | 다음 기회에| 카르페 디엠! | 소년의 높은 소망 -노비스 파(Fa) | Same Same But Different | I Thank You | 이별,들꽃처럼 흔들리면서


&>에필로그





욕망이 멈추는 곳, LAOS


사과

(표지 그림 참조)

만원 썽떼우 안에서

중빈과 이 아기 사이의 거리는

불과 30cm.


아작아작 

사과를 씹을 때마다

그 달콤함이 혀끝에 닿을 지경이다.


내내 아기를 지켜보던 중빈이

참다못해 내 귀에 대고

간질간질 속삭인다.


애기 속눈썹이 사슴벌레 더듬이만큼 길어.

이빨 좀 봐.

개미만큼 작아.

사과를 한 입 먹으면 쥐꼬리만큼 없어져.


아… 맛있겠다!



마음을 스케치하기 - 에마

메콩강을 따라 북상하는 좁다란 보트에 앉아 스쳐가는 상념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앞자리를 바라보다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로한 보트 안에서 앞에 앉은 에마 또한 무언가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에마와는 어떠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었다. 이제 스물다섯인 이 아가씨의 차분하면서도 호기심어린 눈빛이 나는 좋았다.


에마는 중산층이 없다는 짐바브웨이 출신이었다. 그곳의 최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아시아지역을 여행하면서도 5달러 짜리 방이 자신에게 너무 사치스럽다며 꾸역꾸역 짐을 싸들고 3달러 짜리 방으로 옮기는 아가씨였다.


스물다섯이란, 잔인한 나이다. 세상을 다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정작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음지와 양지가 너무나 명확해서 양지만을 보고 매진하는 스물다섯이 있고, 침침한 음지 속에 절망하는 스물다섯이 있다. 에마는 그 중간쯤이었다. 학업을 마쳤고 여행을 떠가기 직전 애인과는 깨졌다. 미술을 전공하였으므로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고 싶지만 정말 그 일에 헌신하고 싶은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아있다. 부유한 가정이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모든 상황을 총정리하는 그녀의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그래요.

내겐 정리된 것도 정해진 것도 없어요.

그러니 난 뭐든 할 수 있겠죠.


그녀가 끄적이던 수첩을 보았다. 외로움에 휩싸인 한 여인의 얼굴이 섬세하게 스케치되어 있었다. 나는 마저 보여달라며 졸랐다. 에마는 한 페이지씩 넘겨가며 스케치를 찾아 보여주었다. 그림은 서너 개뿐이었다. 대신 수첩의 대부분은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이 수첩은 원래 스케치용으로 산 거였어요.

여행하다가 인상적인 장면들을 그려볼까 하고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점점 일기장이 되어 가요.

정작 스케치는 몇 개 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그녀를 위로하였다.


걱정 말아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이 당신 마음을 제대로 스케치해 낼 수 없다면

당신이 본 것도 제대로 스케치해 낼 수 없는 법이니까요.


내 말의 의미를 헤아리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아이와 뒤엉켜 잠이 든 라오스 촌부의 드로잉을, 그 뒤엉킨 팔과 다리에 담아낸 삶의 무게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중빈은 유난히 에마를 따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에마가 일어났는지 가볼까?"로 시작했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엠마가 자는지 가볼까?"로 맺었다.


아이와 에마의 사적인 공간 사이에 적정 간격을 유지하느라 나는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그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동하는 차편 속에서, 혹은 한적한 동네 어귀에서 우연히 마주쳐 교환하는 생각의 편린들은 자매의 그것처럼 닮은 데가 있어서 반드시 긴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라오스 북부로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북부에서 내려온 그녀는 베트남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지금 베트남의 나 트랑에 있어요.

아름다운 해변 도시랍니다.

어제는 자전거를 빌려 마구 쏘다니다가

조그만 어촌에서 길을 잃었어요.

진짜 재미있었죠.

여행이 길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많은 나라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느려진답니다.

마치 불멸의 생명이라도 지닌 듯,

나는 점점 더 느리게 흘러갑니다…



스며들기 - 사반나켓의 친구들

사반나켓의 광장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동네 아이들은 이미 저마다 무리지어 완결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연을 날리거나, 축구를 하거나,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대체로 중빈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이미 놀이에 푹 빠져, 우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라오스의 4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이곳 사반나켓에서는 남부의 시골에서처럼 공을 내려놓는 것만으로 중빈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행동보다 긴 관찰을 앞세우는 중빈, 광장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


내가 놀 수 있는 아이는 없어.


그렇지 않아. 놀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 새로운 아이가 들어올 수 있고 그 아이 때문에 새로운 놀이가 시작될 때도 있어. 엄마는 자전거 타고 이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올테니 그동안 놀만한 아이를 찾아봐.


나는 아이가 그 어떤 우위도 없이 혼자 힘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섞여보도록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거닐다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여전히 혼자였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는 거세고 동작은 커서 내가 보아도 단 한 명, 만만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부러 말했다.


엄마 한 바퀴 또 돌고 올게. 그동안 더 찾아볼래?


아이는 붙잡고 싶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붙잡지는 않았다. 나 또한 어른의 권위로 동네아이들 놀이를 깨고 중빈을 깨워 넣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페달을 돌렸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이가 축구공을 껴안은 채로 광장 끝에서 끝까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단 몇 마디만으로 상황을 간단히 해결하고픈 마음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애써 가라앉히며 다시 아이에게서 멀어지는 동안 점점 밀도 높은 어둠이 광장을 뒤덮는다.


마침내 중빈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 틈으로 걸어 들어가 모기만한 소리로 말을 건다. 아이들이 듣지 못한다. 더 크게 말을 건다. 그중 한 아이가 흘낏 중빈을 본다. 그대로 무시한다. 더, 더 크게 말을 한다. 드디어 아이들이 놀이를 멈추고 중빈을 쳐다본다. 생김새도, 언어도 낯선 꼬마가 거기에 있다. 아이들은 일제히 낄낄댄다. 귓속말을 하며 중빈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하던 놀이를 한다. 중빈의 어깨가 축 내려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빈이 그 중 한 사내아이에게 툭, 떨어뜨리듯 힘없이 공을 굴려보낸다. 그 아이가 공을 피해 다른 아이들에게로 간다. 아이들이 또 와르르 웃는다. 벌게진 중빈의 얼굴에 눈물이 괴는 듯하지만 용케도 방울져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때 개중 나이 많은 여자아이가 예의 사내아이에게 공을 차라고 종용한다. 사내아이가 슬금슬금 무리에서 걸어 나와 중빈에게 공을 되찬다. 중빈의 어깨가 0.1초만에 쓱 올라가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온 힘과 온 마음을 모아 다시 공을 사내아이에게 쏘아 보낸다. 사내아이가 빨라진 공을 받지 못하고 다른 아이가 받아친다. 아이들이 하나 둘 공을 향해 뛰어간다. 고무줄 놀이는 끝이 났다. 드디어 축구가 시작되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한 시간 반이 흘러 있었다.


참으로 지독한 엄마의 지독한 아들이다…


비로소 자전거를 몰고 아이들에게 가까이 갔다. 내게 굴러온 공을 주우러 중빈이 다가갔을 때, 아이는 어렵게 사귄 소중한 친구들과 노느라 평소보다 몇 배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혼자서도 멋지게 잘해 냈구나. 고맙다. 정말이지 네가 자랑스러워.


시작이 길었던 만큼, 끝도 길었다. 그 날의 놀이는 밤이 무르익도록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래잡기로, 치기장난으로, 이웃아이가 들고 온 갓 태어난 강아지로.


JB!

JB!


무슨 노래 가사처럼 아이들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연신 그 이름을 불러댔다. 간지럼을 태우고,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Same Same But Different

우리의 라오스 여행은 루앙프라방에서 멈춰야 했다. 북부의 험한 지세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북쪽에서의 이동은 남쪽에서의 그것보다 약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내가 감기를 앓느라 며칠을 허비했으므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려 든다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짐을 꾸려 돌아와야 할 상황이었다. 우리는 내처 루앙프라방에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그동안 이동하기엔 빡빡하고 머물기엔 느슨한 그 남은 며칠간 멈추고 싶지 않은 욕망과 부어오른 목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무기력해졌다.


검은 피부가 아름다운 중년의 네덜란드 여인. 미처 이름을 메모하지 못한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루앙프라방에서 채워야 할 시간이 아직 이틀 남아 있을 때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나잇 마켓 어딘가에 있을 친구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친구 찾는 법을 알아요


아이가 톡 나섰다. 니가? 터무니없어하며 나는 쿡 웃었으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굽혀 아이와 키를 맞췄다.


그래? 그럼 내게 그 방법을 좀 가르쳐줄래?

아이는 자신감에 차서 으스대며 말했다.


여기 시장 사람들에게 친구를 봤냐고 물어보면 되요.


그녀는 이번에도 웃는 대신 진지하게 대꾸했다.


참 좋은 생각이로구나.

하지만 이곳 시장 사람들은 내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단다. 어쨌든 도와주려 해서 고맙다.


그녀는 전날 밤 루앙프라방에서 장기체류하는 친구를 따라 한 사원에 갔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원에서 친구가 스님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곁에서 보조를 했다 한다. 원치 않게 늘어진 일정 때문에 힘이 빠져 있던 나는 귀가 솔깃했다. 왜 그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일까? 그 이틀 간, 내가 성의를 가지고 어딘가에 참여하여 나눌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터였다.


나도 같이 돕고 싶어요.

마침 시간적 여유도 있고요.


그러자 그녀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주었다.


라오스인 영어 교사가 수업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오, 그건…… 그 영어 선생의 영어란 것이……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학생들은 정말 열심이었어요. 선생의 틀린 발음, 틀린 설명을 하나라도 더 주워듣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거예요. 이들의 교육환경은 여타의 환경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열악해요. 우리가 도우려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지요. 당신의 영어라면 충분할 거예요. 아무 사원이나 들어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해 보세요.


여행자가 라오스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어 표현 가운데, 그들의 정신 세계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문구가 있다.


Same same but different.


옆 마을에는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Same same but different.


경쟁이 치열한 여행사들조차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해 같은 슬로건을 내건다.

Same same but different.


상업주의의 멈추지 않는 가장 큰 거짓말-과장(誇張). 그게 그거인 얼굴에 이 립스틱을 바르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는 둥, 이 차를 몰면 당신의 품격이 올라간다는 둥. 부풀림을 넘어서 쉽게 거짓에까지 이르는 상업주의가 라오스에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과장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느리고 잔잔하다. 하늘 아래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같지만(same) 두 번 들여다보면(same) 조금 다를 뿐이다(but different).


여기서 방점은 다르다는 것에 있지 않다. 두 번 들여다본다는 것에 있다. 사랑하는 내 연인의 따스한 손이나 너무나 소중한 내 아기의 얼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고향집 풍경은 사실 버스 손잡이를 잡은 낯선 이의 손이나 신생아실에 나란히 누워 있는 다른 아기들의 얼굴, 흔해빠진 여느 시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내가 그것을 한번 힐끗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자꾸자꾸 들여다본다는 데에 있다. 내일 모레 루앙프라방을 떠나기로 한 나의 일정은 같았다. 그러나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Same same but different.


마음이 두근거렸다. 내일 저녁이 기다려졌다. 아름다운 시구처럼 혹은 노래의 한 소절처럼, 파와 헤어져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내내 그 말을 흥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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