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한비야
ǻ
푸른숲
   
9800
2007�� 10��



>■ 책 소개
NGO 월드비전 긴급 구호 팀장인 한비야가10년 전에 쓴 여행기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 재출간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출간된 전 4권의 책을 새롭고산뜻한 모습으로 새로 내놓은 이 시리즈는 여행자가 드문 오지로 찾아가 온몸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아울러 온 마음으로 체험한오지 사람들의 고난과 행복이 감동적으로 묻어난다.


제1권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홍보 회사에서 근무하다 어린 시절에 꿈꾼 "걸어서세계일주"를 실천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탄자니아, 에티오피아,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러시아 등에서 체험한 일들과 사람들에 대한 일화를 들려준다. 


특히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진 촬영 때문에 목숨이 위험했던 일, 탄자니아 맘바마을에서 저자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었던 로즈 엄마네 집에서 한 민박, 난민촌 아이들의 잘려나간 팔다리를 보며 가슴 아파한 일 등에 관한 이야기를들려준다. 그 속에는 1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저자의 지구와 지구 사람들을 향한 신념이 들어 있다.


■ 저자 한비야
1958년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University of Utah) 언론홍보대학(Department of Communications)에서 국제홍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홍보 회사 버슨-마스텔라에서 근무하다 어린 시절 계획한 ‘걸어서 세계 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2004년 YWCA 젊은 지도자상을 수상했다.2007년, 세계시민학교 프로그램인 ‘지도 밖 행군단’ 캠프를 시작하였고, 2001년부터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고있다. 저서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한비야의 중국견문록』『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있다. 


■ 차례
개정판 서문 - 나의 가장 좋은 것만 주고싶은 여러분께 
책 머리에 - 나의 세계 여행이 있기까지 


이란·아프가니스탄 
반정부 지도자와 나눈 열흘간의 사랑
신드바드의 나라 페르시아
탈레반 병사 사진 찍다 총살 직전까지
커피 한 잔이면 어린이 셋을 살릴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터키 
칼바람 속에 울며넘은 국경 
사마르칸트의 귀한 사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내 품에 안긴 터키 꼬마 친구
산 산 산, 단풍 단풍단풍
세계에서 가장 이름값 하는 도시 이스탄불


케냐ㆍ탄자니아ㆍ말라위 
잠보! 아프리카 첫날부터 강도를만나다
맘바 마을 ‘프로’ 엄마의 사랑
킬리만자로는 내게 천천히 가라 한다
슬픈 역사의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
여행은 떠나는자만의 것이다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자신에 대한 믿음
우유만 먹고도 용맹한 마사이 사나이들
보란족, 남녀평등?좋아하시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이집트 
커피의 원산지가 어딘지아시나요
말라리아보다 무서운 라면 결핍증
우울한 사람은 시멘 산으로 가라
에리트레아, 들어는 보셨나요
아프리카와 중동의교차점 이집트
푸른 나일 강 달빛 여행


요르단·시리아 
천년을 묻혀 있던 로즈 시티,페트라
베두인족은 목숨은 내놔도 손님은 내주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땅


러시아·시베리아 횡단 열차
마음까지 얼어붙는모스크바
9500킬로미터, 178시간, 시베리아 횡단 열차
내일이면 ‘우리 집’에 간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이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병사 사진 찍다 총살 직전까지

한창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게 된 것은 땅이 있는 한 육로로 다닌다는 내 여행 원칙 때문이다. 여행자들이나 가이드북은 한결같이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중이서 위험하니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거쳐 가려는 서부 지역은 이미 반군들이 오래 전부터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그의 말만 믿고 호기심만으로 죽을 곳에 뛰어든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남들이 도저히 하지 못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5인승 소련제 지프에 열 명이 짐짝처럼 실려 5시간 만에 헤라트에 닿았다. 처음에는 중앙아시아로 가기 위해 잠깐 들른 거지만 막상 헤라트에 와보니 이런 곳도 있구나 싶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도시 하나라도 잘 보고 떠나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광신에 가까운 초강경 모슬렘인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에서 여자는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직장에도 다닐 수 없으며, 심한 곳에서는 남자 가족의 동행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기에, 나는 이 도시의 유일한 관광객이 되어 시장으로, 이슬람 사원으로, 거리로 돌아다녔다. 모하메드 말대로 거리는 삼엄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평온한 편이다.


여기도 시장은 재미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구호품을 파는 옷 시장은 특히 볼 만하다. 고급 오리털 파카부터 구멍 난 양말까지 없는 게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물건에 따라 값을 매기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가격이 순전히 옷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또 재미있는 곳은 빵 가게. 어른 팔뚝만 한 길이의 납작하고 길쭉한, 난이라는 빵은 맛있기도 하지만 만드는 것이 구경거리다. 남자 다섯이 기계처럼 능숙한 솜씨로 박자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빵을 굽는다. 오랜 전쟁 중에도 이런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신기하게까지 보인다.


거리나 사람들 사진을 찍는 것을 일절 금하는 탈레반 때문에 헤라트에 있는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 금요모스크를 돌아보다 여기 저기 몰래 카메라로 도둑 사진을 찍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병사 하나가 병영 초소 쪽을 가리키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따라가면 죽는다. 그 생각만 머릿속에 또렷하다. 나는 무조건 앞서가는 병사의 팔을 두 손으로 잡고 매달리며 알고 있는 페르시아어를 총동원했다. "아저씨, 나 정말 안 찍었어요. 정말이에요. 이 카메라 필름 다 가져가도 좋아요." 필사적으로 팔을 잡고 매달리자 난처한 것은 오히려 그 병사 쪽이 되고 만다. 여자와는 말도 나눌 수 없는 초강경 모슬렘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외국 여자에게 팔뚝을 잡혔으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병사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고, 오히려 당당해지는 것은 내 쪽이다. "정말 안 찍었어요."


팔을 잡은 채 침착하게 대답하자 슬그머니 팔을 빼면서 그럼 빨리 사라지라고 쫓는 시늉을 한다. 안도의 숨을 쉴 새도 없이 정신없이 숙소로 달려와 1년 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노상강도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청심환을 먹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던 것 같다. 저녁에 국제기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며 내 시내 관광에 대해 묻는데, 이 말 저 말 딴청만 하다가 물었다.

"만약에 반정부군 사진을 찍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두나요?"

"감옥 좋아하시네. 저희들 먹을 밥도 없는데, 뭐가 아쉬워 감옥에 가두고 공밥을 먹이겠어요? 당장 그 자리에서 총살이지."

후유, 다행히 이 목숨과 바꿀 뻔한 사진은 두 장 다 잘 나왔다.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킬리만자로는 내게 천천히 가라 한다

해발 5895미터, 아프리카 최고봉을 자랑하는 이 산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때문에 우리에게는 로맨틱한 이미지지만, 사실은 3000미터부터는 대부분의 등반객들에게 두통과 구토, 식욕부진, 호흡곤란 등 고산병을 일으키는 무서운 산이다.


솜바지에 털옷, 털양말, 겨울 침낭, 아이젠 등 숙소에서 빌린 등반 장비를 최종 점검한 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서둘러 국립공원 입구로 가는 차를 탔다. 그리고 공원 입구에서 간단한 등반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4박 5일 등정을 시작했다. 나와 동행하는 사람은 가이드 하미시와 포터 두 사람. 첫날 목적지는 해발 2727미터 만다라 산장이다. 만다라 산장까지 절반쯤 가니 식물대가 바뀌어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전나무 비슷한데 잎이 아주 부드러운, 사람 키만 한 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등반로를 지키고 있다. 힘을 아끼려고 천천히 걷고 있자니 스스로 답답해져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진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발을 멈추고 물을 마신다. 첫날 만다라 산장까지 올라가는 길이 유쾌하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우후르 봉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두 번째 목적지는 해발 3780미터 호롬보 산장. 초원에 나서자 갖가지 야생화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즐거운 하이킹 코스다. 셋째 날의 목적지는 해발 4703미터 키보 산장. 많은 사람들이 고도 적응을 위해 호롬보 산장에서 이틀을 묵는다고 한다. 보통 고산증이 나타나는 지점이 호롬보에서 키보 사이이기 때문이다.


산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들것에 실린 고산증 환자들이 여러 명 지나간다. 입술이 파랗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게 여간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뜨끔해져서 걸음을 더욱 천천히 하면서도 혹시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참 걷다 보니 전망대가 나오고 멀리 오늘 오를 길과 내일 올라가야 할 급경사 지옥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3시쯤 키보 산장에 도착. 열두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방에 짐을 풀어놓고 옷을 있는 대로 껴입었다. 그리고 밤 12시, 산장에 묵고 있던 사람들 중 일착(一着)으로 걷기 시작했다. 밤하늘에는 보름에서 이틀 모자라는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달이 질 때까지는 손전등이 필요 없다. 8시간 안에 고도 4800미터에서 5895미터까지 1000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가도 가도 갈 길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가다가 엉덩이를 붙일 만한 바위가 보이기만 하면 쉬어가는 판이니 이내 뒤를 떠난 후진(後進)들에게 따라잡힌다.


보통 때 같으면 조급증이 발동해 따라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겠지만 오늘의 목표는 일등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꼴등으로라도 정상을 밟는 것이므로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내 페이스대로 걷는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드디어 길만스 포인트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최고봉인 우후르까지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거리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만년설 사이로 난 빙판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자 푸른색을 띤 얼음 기둥들이 초대형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고 하얀 설원이 꿈처럼 펼쳐진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지팡이로 삼고 있는 스키폴에 간신히 몸을 의지해 또 한 봉우리를 돌아서니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슴이 뛰면서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힘이 절로 솟았다. 언제 패잔병처럼 걸었더냐 싶게 두 팔을 씩씩하게 휘저으며 걸어갔다. 정상에는 바람이 몹시 분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치라는 동아프리카의 목초지 사바나는 이미 잔뜩 낀 구름에 가려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정상 주위에 있는 빙하군이 정상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준다. "킬리만자로 산신령님, 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합장 삼배가 저절로 나온다.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날 듯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경사가 심한 미끄러운 흙길에서는 그것이 제일 쉽고 빨리 내려가는 방법이다.


1박 2일 하산 길 내내 이번 등반을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내게 단순히 아프리카 최고봉을 올랐다는 성취감뿐 아니라 너무나도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우선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빨리빨리 해야 할 것과 천천히 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거다.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 못지않게 빨리빨리를 외쳐온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하면서 평소처럼 남보다 빨리, 남보다 먼저를 외쳤다면 나는 아마 정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얼만큼 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라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목표가 뚜렷하다면 남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가면서 무엇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


또 한 가지, 힘든 등반을 잘 견뎌준 내 몸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내 외모에 대해 불평만 했지 건강한 내 몸의 고마움은 잊고 살았던 거다.나는 늘 정신이 몸에 우선한다고 생각해왔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라도 강철 같은 정신력만 있으면 몸은 저절로 따라준다고 믿고 내 욕심대로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몰아붙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킬리만자로와 같은 물리적인 극한 상황에서는 정신력만으로는 버텨지지 않는다. 몸과 정신력이 함께해야만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거다.


처음에 떠났던 숙소에 돌아와 닷새 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한 벌 남겨두었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앉았으려니 갑자기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나는 맥주잔을 들며 외쳤다. 고마운 킬리만자로, 그 아주 값진 등정을 기리며!



요르단/ 시리아

베두인족은 목숨은 내놔도 손님은 내주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기독교의 성지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4분의 3은 아랍인 지역이다. 그뿐인가. 예루살렘의 상징인 황금 지붕은 모슬렘들의 최고 성지인 이슬람 사원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예루살렘은 이 지역 모든 종교의 성지이자 모든 민족의 고향이다.


새벽에 이슬람 사원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잠을 깨면 이어서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유대인들의 안식일에는 집집마다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런 종교와 문화가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마치 오래된 수도원이나 고승이 거처하는 절과 같은 경건한 느낌이 배어있다. 수천 년 동안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기독교도들이 진심으로 하늘에 바친 기도 덕일 거다.


예루살렘은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점점 볼거리가 많아지는 이상한 도시다. 구시가지에 있는 교회와 사원과 시장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힘이 들면 찻집에 앉아 이웃 가게의 아랍 상인들과 잡담을 나누고, 어떤 날은 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올리브 산 꼭대기에 느긋하게 앉아 신비로운 도시의 해 지는 경치도 보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요르단으로 건너와 드디어 베두인인 마을을 방문했다. 베두인은 이집트에서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는 사막에서 양이나 염소, 낙타들을 키우며 사는 유목민의 총칭이다. 정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에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며 명예와 체면을 존중하는 종족이다. 자기의 뿌리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베두인인이라는 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손님 대접이 융숭하기로 유명하다. 자기 천막 안에 발을 들여놓은 손님은 온갖 정성을 다해 대접한다. 일단 자기 집에서 차를 마신 사람은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식사를 한 사람은 하룻밤 하루낮을, 하룻밤 묵은 사람은 사흘 밤 사흘 낮을 집주인이 책임지고 지켜줘야 한다. 그 손님이 쫓기는 사람이라면 그를 쫓는 사람과 목숨을 건 한판 싸움도 불사할 정도로 손님을 중하게 여긴다.


다음 날, 이 동네 결혼식에 참석하여 전통 베두인 옷을 입고 차를 마시며 앉아 있자니까 어디에서 모였는지 동네 꼬마 스무 명 정도가 나를 둘러싸고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둘러보니 모두 다 눈, 코, 입이 또렷하고 예쁜 얼굴에 천진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다. 이 아이들하고 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너희들 중에 모하메드 손 들어봐!" 아니나 다를까, 서너 명이 손을 든다.

"그러면 마하무드는?" 또 두 명.

"무스타파도 있지? 그러자 한 명.


이름을 불린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랍 남자들은 모하메드, 마하무드 열 개 미만의 이름이 적어도 전체의 30퍼센트는 차지한다는 걸 다니면서 알게 된 덕분이다.


며칠 동안 사막의 베두인족 텐트에서 수없이 차를 마시고 밤이면 별똥 떨어지는 걸 원 없이 보고 암만으로 돌아왔다. 시리아로 갈 준비를 하다가, 비자 때문에 한국 대사관에 갔다가 거기서 알게 된 대사관 직원 황정미 씨와 암만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손종희 씨에게 붙잡혀 열흘이나  퍼질러 놀았다.


"이렇게 얼굴을 엉망으로 해 가지고 어디 가서 창피하게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 말아요." 입심 좋은 손종희 씨는 이렇게 놀리면서 사해에서 가져온 진흙으로 열심히 팩을 해주고, 음식 솜씨 좋은 황정미 씨는 갖은 솜씨를 다해 내 입을 즐겁게 해준다. 느긋하게 긴장은 물론 전대까지 풀어놓고 실컷 놀았다. 고마워요, 정미 씨, 종희 씨. 슈크란 자딜란(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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