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 - 전국편

   
김영록(사진: 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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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아트
   
17000
2007�� 09��



>■ 책 소개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 52곳을 소개하는안내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전국 편. 걷기가 좋아서 길 위로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본격적인 걷기 여행 안내서로, 걷기 여행전문가가 추천하는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은 길을 담았다. 저자가 오랫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답사하며 찾아낸 걷기 좋은 길 중에서 하루나 이틀일정으로 좋은 코스를 엄선하여 엮었다. 


이 책은 걷기 좋은 길의 위치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그곳에 가서 마음껏 걸을수 있도록 친절하고 상세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해당 지역에 있는 식당이나 매점, 숙박,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장소 등도 세심하게일러준다. 특히 저자가 답사를 다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여행일정은 걷기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을 세울 때 유용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코스, 사람의발길이 드문 옛길을 따라 걷는 코스 등 다양하고 풍성한 길을 소개한다. 계절에 따라 또는 걷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길을 골라 걸을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마을이나 고개, 호수, 계곡, 장승, 나무 등에 깃들어 있는 저마다의 사연도들려준다.


■ 저자 김영록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자랐다.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 이 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답사를 다니고 있고 2003년 여름에는 해남 땅끝마을부터 임진각까지 문화유산을답사하며 걸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걷기에 관심을 가지고 나라 안의 이곳저곳을 열심히 걷고 있다. 2006년에는 걷기 동호회원 몇 명과 함께걷기 여행 책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지음, 터치아트)』을 썼고 지금은 월요일마다 국악FM방송에서 걷기 좋은길을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도 걷기 좋은 길이나 숨어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소개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옛적 고구려사람들이 개척했던 위대한 ‘초원의 길’을 복원하여 걸을 생각이다. 


■ 사진 양원 
안양에서 태어나 강원도 삼척에서유년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다. 직업상 카메라를 자주 만지다 어깨너머로 배운 사진이 삶에 큰 즐거움이 되었다. 2001년 여름우연히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은 것을 시작으로, 국토 종·횡단 걷기를 몇 차례 더 했다. 2003년에는 저자(김영록)와 함께 23일간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걸었다. 지금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즐겁게 걷고 정성 들여 찍는다. 충무로에 있는디자인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우리 산 · 강 · 길을 찾아 앵글을 통해 바라 본 그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은아마추어 사진작가다. 


■ 차례
머리말 - 다음에는 더 좋은 길에서 뵙기를바랍니다 

비단결 물줄기가 함추름 휘적시는 곳 
01 한강 1천3백리, 그 유장한 흐름을준비하는 곳 - 강원 정선군 임계면~강원 정선군 북면 
02 물길 거슬러 만난 산마을에는 인적이 없고 - 강원 인제군 상남면 
03낙동강 따라 간 간이역은 하늘도 꽃밭도 세 평이라네 -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경북 봉화군 석포면 
04 두 물이 만나는 곳에 무궁화가피었네 - 강원 영월군 주천면~강원 영월군 남면 
05 송천(松川) 물길 따라 백 리를 가다 - 강원 평창군 도암면~강원 정선군 북면
06 아리수 거슬러서 삼족오의 보루까지 - 서울 성동구~서울 중랑구 
07 청송의 가을은 무슨 색으로 깊어질까 - 경북 청송군현동면~경북 안동시 길안면 
08 섬진강을 따라 가는 외줄기 남도길 - 전남 곡성군 곡성읍~전남 순천시 황전면 
09 지리산 시린물은 엄천강 되어 흐르고 - 경남 함양군 유림면~전북 남원시 산내면 
10 천 리 길 비단 강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곳 - 충남 서천군한산면~충남 서천군 마서면 
11 비단결 물줄기가 함추름 휘적시는 곳 - 충북 옥천군 동이면~충북 옥천군 안남면 
12 굽이쳐 흐르는강물 위로 선녀 내려앉았네 - 충남 금산군 제원면~충북 영동군 심천면 


옛 사람의 발길 따라 새재를 넘다 
13 백두대간을가르며 장보러 가던 고갯길 - 강원 영월군 하동면~경북 영주시 단산면 
14 하늘재를 넘어가니 미륵님이 반기네 - 경북 문경시 동로면~충북충주시 수안보면 
15 아름드리 금강송이 시집가던 길 - 경북 봉화군 석포면~강원 삼척시 가곡면 
16 솔바람 맞으며 걷는 길손 드문산길 - 경북 봉화군 춘양면~강원 영월군 상동읍 
17 쉬엄쉬엄 넘어가는 유순한 고갯길, 장성새재 - 전남 장성군 북이면~전북 정읍시입암면 
18 옛 고개를 넘으면 향기로운 절이 있다네 - 전남 순천시 송광면~전남 순천시 승주군 
19 옛 사람의 발길 따라 새재를넘다 - 경북 문경시 문경읍~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20 징개맹개 외배미들의 너른 품안에 들다 - 전북 김제시 만경읍~전북 김제시 성덕면


천 년 세월 멈추어버린 무너진 절터 
21 시련과 저항그리고 자존심의 해안방어선 - 인천 강화군 강화읍~인천 강화군 길상면 
22 역사의 땅 강화에서 바람 앞에 서다 - 인천 강화군강화읍~인천 강화군 내가면 
23 철원 들판을 나는 철새는 무엇을 볼까 - 경기 연천군 신서면~강원 철원군 동송읍 
24 천 년 세월멈추어버린 무너진 절터 - 경기 여주시 여주읍~경기 여주군 북내면 
25 토함산을 넘으며 천 년 신라를 만나다 - 경북 경주시 진현동~경북경주시 양북면 
26 팔공산에 꽃 피운 부처님 나라 - 대구 동구 진인동~대구 동구 중대동 
27 달 뜨는 산이 품은 달 아래 마을- 전남 강진군 강진읍~전남 강진군 성전면 
28 황톳길 붉은 언덕에 녹두꽃 다시 피려나 - 전북 정읍시 연지동~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29 완산주 옛 땅에서 만난 이야기가 가득한 길 - 전북 완주군 소양면~전북 완주군 고산면 
30 신령스런 산이 품은 신비로운 돌탑- 전북 진안군 진안읍 
31 고란사 종소리 따라 사비수는 흐르고 - 충남 부여군 부여읍 
32 백제의 미소를 만나러 가는 행복한발걸음 - 충남 서산시 해미면~충남 서산시 운산면 
33 지척이 천 리인 속리산의 소나무 부부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충북 보은군 보은읍


백두대간 아래에 숨은 감 익는 마을 
34 다섯 봉우리어느 골에서 문수보살을 만나려나 - 강원 평창군 진부면~강원 홍천군 내면 
35 아홉 굽이 폭포 뒤에 숨은 산마을 - 강원 춘천시 남산면
36 매화꽃 세 송이 호수에 잠기다 - 경남 합천군 가회면~경남 합천군 용주면 
37 청량산 육육봉에 비낀 꽃구름 - 경북 봉화군명호면~경북 봉화군 재산면 
38 춤추는 용의 등을 타고 오르다 - 전북 장수군 장계면~전북 장수군 번암면 
39 백두대간 아래에숨은 감 익는 마을 - 충북 영동군 상촌면~충북 영동군 용화면 
40 봉황이 울음 울면 반가운 비가 내린다네 - 대전 대덕구 장동


파도소리 벗 삼아 걷는 바닷길 칠십 리 
41 내륙의바다 소양호를 만나다 - 강원 춘천시 북산면 
42 천심절벽 물줄기 위로 무지개가 뜨는 곳 - 강원 평창군 진부면~강원 정선군 북평면
43 열두 마을 내린 물로 빚은 골짜기 - 강원 평창군 대화면~강원 평창군 용평면 
44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 언덕에서 - 경기도가평군 가평읍~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45 깊은 산 속엔 푸른 우물이 있다네 - 경기 포천시 이동면~경기 포천시 영북면 
46갈매기와 동무하며 그 섬에 가고 싶다 - 인천 강화군 삼산면 
47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의 늪 우포 - 경남 창녕군 창녕읍~경남창녕군 유어면 
48 파도소리 벗 삼아 걷는 바닷길 칠십 리 - 경북 영덕군 영해면~경북 영덕군 강구면 
49 옥 같이 맑은 물에복사꽃 흘러가네 - 경북 영덕군 강구면~경북 청송군 부동면 
50 복사꽃 내려오던 물은 호수가 되고 - 충남 보령시 미산면 
51물에 잠긴 청풍명월의 허리를 돌다 - 충북 제천시 금성면 
52 구곡은 어드메뇨 파천에 용 오른다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여행길에 참고하세요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비단결 물줄기가 함추름 휘적시는 곳

충북 옥천군 동이면 ~ 충북 옥천군 안남면

옥천은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다. 옥천 땅을 굽이치며 함추름 휘적셔 나가는 비단결 같은 강이 금강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백이 황소도 있다. 여전히 높푸른 하늘아래 메끝에는 산꽁도 알을 품고 뻐꾸기도 제철에 운다. 한 굽이 돌아가면 여울이고 또 한 구비 돌아가면 모래톱이다. 비포장길 탈탈대는 버스일망정 하루 서너 차례밖엔 볼 수 없다. 산벚, 산봉숭아며 돌배나무에 꽃이라도 달리면 강물은 그만 환한 새악시가 된다.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옥천 금강. 그곳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금강변 옻나무 마을 높은벌

금강휴게소에서 아래로 내려와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 소수력발전소 댐을 건너 물길을 발걸음을 옮긴다. 강물이 굽어지면 길도 따라 굽어지고 나그네 발길도 따라 굽는다. 크게 휘어지는 강물을 따라 물 흐르듯 걷다보면 높은벌 마을 입구다. 가던 길을 잠깐 뒤로하고 높은벌 마을로 오르자. 마을까지 왕복 1킬로미터 남짓. 마을로 오르는 고갯길에서 금강의 물줄기가 산봉우리들이 첩첩한 사이로 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는 그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이 지방에서는 소를 묶어놓는 쇠말뚝을 쇳대라고 부른다. 원래는 소대였지만 차차로 음이 변하여 쇳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그 쇳대마을이 있다. 위쇳대와 아래쇳대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강둑으로는 풀이 지천으로 자라고 강가에는 넓은 모래벌이 있어 예전부터 소를 키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나 보다. 그러기에 마을이름도 쇳대라고 했겠지. 마을 이름이야 어떻게 변했던 강둑에는 아직도 시인 정지용이 노래한 풍경처럼 몇 마리 소들이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고 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쇳대마을 건너편 말티재 아래에는 청마리 마티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500년쯤 전부터 마을을 수호해 온 탑신제당이 있다. 비가 와서 물이 불면 틀림없이 잠수교가 될 야트막한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지금은 폐교가 되어 휑하니 허전한 청마분교다. 운동장 한편의 돌계단을 오르면 한동안 초등학교에서 유행처럼 세웠던 이승복 어린이 동상과 늙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반긴다. 탑신제당은 그 뒤에 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탑과 길쭉한 솟대 그리고 남녀나무장승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제당을 둘러보고 나오다보면 돌들이 지천으로 널린 돌밭이다. 수석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하니 우리도 내려가 보자. 귀한 수석이야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만 보일 터이니 우리네야 납작한 돌을 주워 물수제비나 떠 보자. 퐁당퐁당. 누나 몰래.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청마리를 지난 물줄기는 또 한 번 크게 휘돌아 감기고 건너편 강마을의 한 뼘 논밭에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진 농부들이 보인다. 밥 짓는 연기라도 한 줄기 피어오른다면 더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겠다. 종미리 음지말로 지나면 하루 종일 같이하던 비단결 물줄기와는 이별을 한다. 이 여정의 마지막까지는 앞으로 십 리 길. 돌이켜 보면 오늘은 꿈결같은 하루였다. 그러니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산자락 아래 폭 안긴 청마리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비단결 물줄기와 헤어지면 풍경은 어느새 여느 심상한 시골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제법 넓은 논과 밭이 물줄기 대신 동행을 한다. 부지런한 농부의 논과 밭은 한눈에도 표시가 난다. 모두 실하고 건강하게 자랐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저 논과 밭에선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주울 테지……. 이 고장 길가의 가로수는 모과나무다. 이렇게 멋진 모과나무 가로수길은 흔한 것이 아니다. 봄에 곱디고운 분홍색 꽃이 피어나면 이곳은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이 아름답고 고마운 길이 끝나면 꿈속인 듯 취해 걷던 나그네 길도 끝이 난다.


  

옛사람의 발길 따라 새재를 넘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옛 사람의 발자취에 뒷사람의 발자취가 더해져서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 길을 걷다보면 산을 만난다. 돌아서 갈 수는 없으니 막아서는 산의 낮은 곳을 택해서 넘는다. 그곳이 고개다. 결국 고개도 길의 연속이다. 우리 나라 고개 중 가장 이름난 고개는 아마도 문경새재일 것이다. 나라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가르며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고개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이화령이 근처로 뚫리자 새재는 그만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길에, 고개가 서린 이야기까지 잊혀진 것은 아니라서 오늘도 옛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는 길손은 새재를 넘는다.


■문경 그리고 새재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새재를 이야기할 때면 앞에 문경이라는 말을 넣어서 부른다. 문경새재. 어쩌면 지명까지 붙여서 부르는 유일한 고개일지도 모르겠다. 새재가 연결해 주는 괴산이나 수안보 혹은 충주의 새재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문경은 한자로는 들을 문(聞)과 경사 경(慶)을 쓴다.


■새재라는 이름은

새재는 고개가 하도 험해 나는 새도 쉬어간다고 새재 즉 조령(鳥嶺)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주흘산과 조령산의 사이로 난 고개라고 샛재라고 하다가 부르기 좋은 새재로 바뀌었다고도 하며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으로 새재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새재 넘어가기

새재를 넘으려면 세 개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 문경 쪽으로부터 1관문 주흘관,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새재 걷기의 시작은 새재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부터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 나와 1관문인 주흘관으로 들어서면 KBS 드라마 촬영장이다. 촬영장에서 조금 더 오르는 길가에는 선정비들이 줄지어 있다.


선정비에서 조금 더 오르면 돌담을 높이 두른 조령원터다. 예전 관리들이 묵어가던 숙박시설이 있던 곳인데 담장 안쪽에 몇 가지 건물을 복원해 두었다. 지나는 길손의 허기와 피곤을 달래주던 주막을 지나면 근사한 정자를 만난다. 교구정이라고 하는데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와 떠나가는 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 하는 장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교구정을 지나면 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비석을 지나면 조곡폭포고 거기서 더 오르면 문경새재 2관문인 조곡관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조령원 돌담.


조곡관을 지나면 사람의 자취는 더 없어진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주흘관과 드라마 촬영장 부근에서 돌아가기 일쑤고 조금 더 올라오는 사람들이 조곡관 근처까지는 오는데 조곡관을 지나 조령관까지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새재를 넘으려는 사람들이다. 호젓한 길이기는 하지만 좁은 길은 아니다. 새재를 정비하면서 길을 넓혀 대형버스라도 충분히 지나갈 만한 대로가 되었다. 사람의 자취가 없으니 동무를 해주는 것은 새들뿐이다. 조곡관을 지나면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라고 시작하는 문경새재 아리랑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이진터와 동화원을 차례로 지나 숨이 찰 때쯤이면 산새도 힘들어 쉬어 넘는다는 3관문 조령관이다. 새재를 다 올라왔다.


■수옥폭포를 지나며

조령관을 지나면 내리막이다. 숲길을 돌아 내려가면 주차장 삼거리인데 곧바로 내려가면 소조령을 거쳐 수안보까지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수옥폭포를 거쳐 소조령으로 가는 길이다. 20미터 높이에서 3단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와 주변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수옥폭포는 언제라도 그림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잦다. 폭포 옆에는 1960년에 복원한 수옥정이 있어 지나는 길손의 쉼터가 된다.



천 년 세월 멈추어버린 무너진 절터

경기 여주시 여주읍 ~ 경기 여주군 북내면

여주 고을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을 이곳 사람들은 애정을 듬뿍담아 여강이라고 부른다.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하는 두물머리부터 강산면의 양평대교 아래까지를 여강백리라고 부르며 아끼고 자랑해 왔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온 마암 절벽 위에는 달을 맞는 정자 영월루가 우뚝하고 봉미산의 봉황꼬리가 강물에 닿은 곳에는 여강을 절 마당으로 삼은 신륵사가 있다. 여강을 벗어나 금당천을 거슬러 오른 혜목산 기슭에는 향화도 끊기고 참배객의 발길도 멈춰버린 무너진 절터가 있다. 넓은 절터에 남은 몇 점의 석조물은 천 년 세월을 버텨내며 호방한 모습으로 답사객을 반긴다. 


영월루에 오르면 여강과 건너편의 신륵사가 한눈에 잡힌다.


■여강가에 우뚝한 달 맞는 정자

여강을 가로 지르는 여주대교 남단 옆 우뚝 솟은 언덕 위에 둥실 떠오를 듯한 모습의 정자가 있다. 팔작지붕의 2층 누각 형태인데 영월루(迎月樓)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이름대로 달맞이하기에는 그만일 곳에 세워졌는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1925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영월루로 오르는 언덕 중간에는 근처의 절터에서 옮겨 온 두기의 아담한 삼층석탑이 있다. 옛 절터가 있던 동네의 이름대로 창리, 하리 삼층석탑이라고 부르는데 둘 다 고려시대의 탑이다. 제 있던 자리를 떠나 언덕 한 귀퉁이에 서 있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다.


■봉황새 꼬리에 자리 잡은 절집

봉황새 꼬리를 닮았다는 봉미산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산줄기가 여강으로 길게 꼬리를 내려뜨린 곳에 자리 잡은 신륵사는 여강 전체를 절 마당으로 삼았다. 강과 산줄기가 어우러진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경치는 말할 것도 없겠다. 신륵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하며 고려의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한 뒤에 유명해졌고 그런 연유로 경내에는 나옹선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여럿 있다.


■신륵사 톺아보기

근래에 세운 조금 억지스럽게 커다란 일주문으로 들어서 넓은 마당을 지나면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려고 지었다는 구룡루가 제일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금당으로 가려면 구룡루를 돌아가야 하지만 걸음은 자연스레 강가의 작은 정자 강월헌으로 향한다. 나옹선사의 호를 따서 강월헌이라고 부르는데 여강가 바위 절벽 위에 그림 같이 앉았다. 정자 옆의 작은 삼층석탑은 나옹선사의 다비장에 세운 것이다.


강월헌 위에는 벽돌을 구워 쌓은 다층전탑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탑은 다섯 기가 있는데 이곳의 다층전탑이 그 중의 하나다. 경북 칠곡 송림사의 오층전탑, 경북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 동부동오층전탑, 조탑동 오층전탑이 그것들이다. 전탑 위에 있는 대장각기비를 둘러보고 언덕을 내려서면 신륵사의 금당인 극락보전이다. 당호가 극락보전이니 안에는 당연히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해 있다. 법당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선시대의 다층석탑이 있다.


극락보전을 지나면 정면 1칸 측면 2칸의 조사당이 있다. 대들보가 없는 팔작지붕집인데 아담한 모습이 그림같이 예쁘다. 조사당 앞의 늙은 향나무는 무학대사가 스승인 나옹선사를 그리워하며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니 나이가 적어도 600살은 넘은 것이다. 조사당 뒤로 언덕을 올라가면 청신한 솔숲에 나옹선사의 부도와 부도비 그리고 석등이 나란히 있다. 세 점 모두 나라의 보물들인데 하나하나 음미해볼 만한 유물들이다.


■향화 끊긴 절터를 지키는 천 년 석조 유물들

신륵사를 떠나 여강으로 들어가는 금당천을 거슬러 오르다 상교마을에 이르면 나지막한 산줄기가 길을 막아선다. 이곳 사람들이 우두산이라고 부르는 혜목산이다. 그 혜목산이 분지를 이뤄 너른 터를 만들어 놓은 곳에 고달사터가 있다. 절터는 몇 년 전부터 발굴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발굴이 다 끝나지 않아서 조금은 어수선한 모습이다. 절터 가운데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천 년을 꿋꿋한 석불대좌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생긴 것으로 꼽히는데 연꽃이나 안상을 조각한 솜씨도 시원시원하다. 그러니 그 위에 앉아있었을 부처님은 또 얼마나 호방했겠는가. 석불대좌 위쪽 향나무 옆에는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가 있다. 그러나 정작 부도비의 몸돌은 예전에 넘어져 깨져버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여기에는 받침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 포개져 있다.


절터를 떠나 산기슭으로 올라간다. 절터를 호위하고 있은 몇 그루 늙은 산수유나무가 황량한 분위기를 한결 눅여준다. 혜목산 산자락에는 당당하고 장중한 부도 두 기가 있다. 언덕 아래에는 원종대사의 부도가 있고 계단을 오른 언덕 위에는 우리나라 부도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고달사터 부도가 있다. 두 부도 모두 비슷한 모습이지만 언덕 위의 고달사터 부도가 훨씬 더 뛰어난 수작이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고달사터 부도를 이리저리 살피다 보면 어느새 떠날 시간이다.


 

백두대간 아래에 숨은 감 익는 마을

충북 영동군 상촌면 ~ 충북 영동군 용화면

몇 년 전에 영화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손수건깨나 적시게 만든 집으로라는 영화가 있었다. 말 못하는 산골 외할머니와 철없고 버릇없는 어린 서울 손자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담담한 화면으로 그려내 잔잔한 감동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그 영화를 촬영한 곳이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다. 상촌은 충청북도의 제일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백두대간이 경상북도 김천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넓은 벌판은 전혀 없고 주변이 온통 산뿐인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감이 발갛게 익어 가면 가을도 그만치 깊어진다.


■감익는 마을

영동은 고장을 대표하는 나무가 감나무일 정도로 감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읍내의 가로수나 감나무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안팎으로 몇 그루씩의 감나무는 기본이다. 예전부터 감나무는 오방색을 갖춘 나무라하여 나무 중에서 으뜸으로 쳤다. 잎은 푸르니 청(靑)이고, 꽃은 노란색이니 황(黃)이며, 열매는 붉어 적(赤)이고, 곶감은 희니 백(百) 그리고 나무는 검어 흑(黑)이니 전후좌우 가운데의 다섯 방위 색깔이 모두 들었다.


■길은 산 속으로 이어지고

산이 얼마나 많으면 마을 이름마저 임산(林山)일까, 산 속으로 드는 길 양쪽으로는 높은 산봉우리들의 연속이다. 삼봉산, 천만산, 천마령들은 900미터가 훨씬 넘는 산들이고 각호산이나 민주지산은 1,200미터급들의 산들이다. 길은 양쪽 산줄기 사이의 낮은 계곡을 따라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길가로는 산자락을 따라 비탈 밭이다. 감나무며 버섯재배 하우스며 포도밭과 곶감건조장 등 전형적인 산골마을 풍경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마을은 어린이가 없으니 분교마저 폐교가 되었다. 폐교부터 언덕이 시작되고 도마령 아래 마지막 동네 둔전마을부터는 급한 고갯길이다. 쉬엄쉬엄 오르다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면 힘이 든 만큼 시야는 넓어지고 멀어진다.


■자꾸 걷고 싶은 호젓한 산골길

칼을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대서 도마령이라고 한다는 이 고개는 높이가 무려 840미터나 된다. 상촌면과 용화면의 경계가 되는 곳인데 그래서인지 언덕 위의 날아갈 듯 잘생긴 정자 이름도 상용정이다. 대금을 형상화한 화강암주추기둥 위에 정자를 앉혔는데 솜씨를 부려 제대로 지은 팔각정이다. 정자에 오르면 이쪽의 상촌면과 저쪽의 용화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는 자리도 제대로 잡았다. 도마령을 넘고 용화면에 들어서 처음 만나는 동네는 불당골이다. 마을 뒤 골짜기에 부처님을 모신 암자가 있었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동읍내에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딱 세 번 버스가 들어온다. 각호산의 뿔 달린 호랑이를 잡으려고 함정을 파서 덫을 놓았다던 함덫골에는 상촌마을 유래비가 홀로 마을회관을 지키고 있다.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난 발걸음은 조동 산촌마을에 이르면 끝이 난다. 이 호젓한 산골길을 걸으면 더 걷고 싶지만 아쉬워도 여기서 일정을 접어야 한다. 돌아가는 교통편이 넉넉지 않은 까닭이다.



파도소리 벗삼아 걷는 바닷가 칠십 리

경북 영덕군 영해면 ~ 경북 영덕군 강구면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여럿 있다. 제주도 해안도로, 남해도의 해안도로, 변산반도 일주도로 등이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곳들이다. 그렇지만 경북 영덕의 병곡에서 강구로 이어지는 길도 뒷줄에 세우기는 아까운 바닷길이다. 모래가 굵고 물이 깨끗하기로 이름난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시작하여 축산항과 작은 어촌들을 지나 강구항에 이르는 길은 동해바다와 바투 붙어있는 해안도로다. 그 바닷길에는 예쁜 등대도, 우람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용 바람개비도, 망망한 푸른 바다를 가슴에 한가득 담을 수 있는 공원도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동무삼아 걷는 길은 바다도 하늘도 마음까지도 모두 푸른빛이다.



■바다로 가는 길

걸음은 영해면소재지부터 시작한다. 한동안 바다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마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이 고려 말 삼은 중의 하나인 목은 이색 선생의 고향 괴시마을이다. 괴시마을은 전통가옥만도 삼십 여 채가 보존되어 있는데 모두 200년이 넘은 집들이라고 한다. 심상한 농촌풍경을 지나면 언덕이 시작된다. 언덕을 올라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입을 다물 수 없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바다가 사전예고 없이 갑자기 불쑥하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발만 더 가면 그대로 바다로 빠질 것만 같다. 이곳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걸음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여행 중 해맞이를 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곳이 적격이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이정선이 작곡하고 이광조라는 가수가 부른 나들이라는 노래가 있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말을 지날 때면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하고 싶고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곳에서 쉬어간다던 그 사람처럼 우리의 걸음은 꼭 그렇게 따라 간다. 눈부신 푸른 바다, 물거품 되어 부서지는 하얀 파도, 해안을 따라 도는 아름다운 바닷길 그리고 나지막한 산 아래의 자그마한 항구와 이어지는 어촌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모습들이다.


바닷가로 접어들어 제일 먼저 만나는 항구가 축산항이다. 어촌마을은 축산에서 경정으로 그리고 노물, 오보, 대탄, 창포, 대부, 하저, 금진마을 들을 거쳐 강구까지 이른다. 포구에는 어구를 손질하거나 출어 준비에 바쁜 어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갯바위나 방파제에는 동해의 푸른 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한가로운 기지개가 나그네의 발길을 잠시 묶는다.


■영덕대게 이야기

영덕의 먹을거리를 얘기할 때 첫손에 꼽는 것은 대게다. 몸통에 달려있는 여덟 개의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자로는 죽해(竹蟹)로 쓴다. 아직 양식은 안 돼서 모두 자연산이다. 어족보호를 위해 번식기를 피해서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만 잡을 수 있으며 등껍질이 9센티미터가 안 되는 어린 새끼와 암놈은 잡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6월 이후에 영덕으로 대게를 먹으러 가는 것은 넌센스다. 대게 중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3~4월경에 잡히는, 이곳 말로 박달기라고 부르는 박달대게를 꼽는다. 게살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꽉 차있다고 그렇게 부른다. 대게는 잡히는 양이 많지 않아 값이 비싸다. 그러다 보니 소위 짝퉁도 나온다. 보통 홍게라고 부르는 붉은 대게와 이곳에서 청게로 부르는 너도대게가 짝퉁이라는 사실, 알아두면 도움될 일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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