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행 슬로보트

   
고솜이
ǻ
돌풍
   
12000
2007�� 01��



>■ 책 소개
2년간 싱가포르에 체류하면서 "여자"의관점으로 관찰한&nbsp& 싱가포르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담은 책이다.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여자의 눈으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뒤섞여 있지만특별한 문제는 없는 나라, 싱가포르만이 지닌 독특한 경쟁력을 살펴본다. 그리고 여자 혼자 여행해도 괜찮은 싱가포르의 매력과 힘께 쇼핑 문화도보여준다. 아울러 누구나 다 가는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카페에 편히 앉아 싱가포르 사람들을 관찰하라는 등의 특이한 여행 방법을 소개한다.싱가포르 여행을 "맛있는 일상을 사는 방법"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을 당부하고, 싱가포르가 종교적, 문화적 충돌 없이 융화될 수있는 비결을 알려주는 점이 특징이다. 


■ 저자 고솜이
호텔리어 출신의 블로거로, 다년간의외국생활과 호텔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글을 쓰고 있다. 신세대적인 발랄한 필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간단한 사물 하나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꾸며내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졌다. 외식업체의 식음료부 마케팅 담당으로 2년간 싱가포르에서 체재했던 시절, 나름대로 관찰한 싱가포르의 사람들과생활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간 『싱가포르행 슬로보트』로 싱가포르의 진정한 매력을 소개하고자 했다.


■ 차례
여행가방 
톰 행크스처럼 공항에서산다면? 
공항의 샌드위치, 그리고 카트 
문명의 즐거움, 그 최고점, 비행기 
겨울에서 여름으로 
호텔을 좋아한다면배낭여행은 할 수 없다. 
여러 종족의 아침식사 풍경 
에그 스테이션 
싱가포리언의 매너 
한밤중에 거리를 거닐고 싶다면
싱가포르의 여성들 
페라나칸의 비밀 
환상적인 몸매의 비결은? 
중국계 싱가포르 남성의 부드러움 
래플즈와 서머셋모옴 
길을 걷다가 라임에이드를 
스탬포드 호텔 
MRT, 그린카드 
하우스 오브 콘돔 
쇼핑 중독에서 살아남기
노벨문학상과 초콜릿 케이크 
버버리에 대한 나만의 철학 
액세서리 고르기 
프라다에 대한 나만의 철학 
드레스와청바지 
키노쿠니야 서점에서 길을 잃다 
세상의 모든 국수 
클램과 크랩사이에서 
정겨운 코피띠암 
아쿤의 커피 스톨
달콤한 야쿤 카야 토스트, A세트로 주세요. 
싱가포르의 스타벅스에서 커피 주문하기 
길거리 음식에서 문화를 읽다
야망의 오리 
딘다이펑의 주방장표 만두 
게으른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는 남자들 
매드 어바웃 초콜릿
취할까봐 걱정해주신다고요? 
샌들과 크리스마스 
멀라이언,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에비 돈부리의 고난 
반짝반짝빛나는 별은 몇 개? 
유니클리 싱가포르? 
비닐봉지의 경제학 
메킨토시 사과먹기와 마인드 콘트롤 
손들어! 두리안을먹으면 체포한다! 
아무데서나 적당히 길을 건너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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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행 슬로보트


호텔을 좋아한다면 배낭여행은 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호텔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특히 젊은 친구들한테서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는데, 만약 나처럼 호텔 생활이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배낭여행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배낭여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편안하고 깨끗한 침대에서 눈을 뜨지 못한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좋은 것을 제대로 취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여행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꽤 많이 들기 때문에 생각만큼 자주 여행을 다니지 못하게 된다. 지저분한 숙소에서 대충 씻고 미친 듯이 길거리를 헤매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기 때문에 차라리 두 번 여행을 한 번으로 줄이는 쪽을 택한다. 투 룸 아파트의 초라한 방 하나를 빌어 2년간 싱가포르에 머물렀던 시절도 있었으면서 왜 유독 호텔 문제에는 예민하게 구는 건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여행은 꿈이고 호텔은 허상이다. 생활에 어울리는 아파트가 있는 것처럼 여행에 어울리는 호텔이 있는 거라고.


싱가포리언의 매너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어떤 광고가 생각난다. 쇼핑몰의 유리문을 열고 뒷사람을 위해 기다려주는 일련의 사람들. Take Five라는 유명한 배경음악과 함께 영화배우 안성기가 "이것이 바로 000의 생각입니다."라며 생긋 웃었던. 그 광고를 보고 나서 과연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그 광고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예의범절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그런 당연한 장면을 광고로 만들겠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오류의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무조건 숭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싱가포르처럼 쬐그만 나라는 따분하고 재미도 없어."라거나, "싱가포르는 쇼핑이나 하는 곳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싱가포리언 대부분은 뒷사람을 위해 유리문을 잡아주는 것을 특별한 생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의식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작은 배려가 범죄를 없애는 근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딘다이펑의 주방장표 만두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딘다이펑에서 만두를 먹고 싶으면 저녁보다는 점심시간, 그것도 조금 이른 11시 정도에 가는 것이 좋다. 저녁식사시간에는 너무 붐벼서 만두 몇 개 먹으려다가 때를 놓치기 십상이라 성격이 비뚤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는 야채와 돼지고기 만두. 가늘게 채를 썬 생강 종지에 간장과 고추기름을 부어 찍어 먹는다. 함께 나오는 중국차는 충분히 마신다. 중국인들은 만두를 먹을 때 반드시 중국차를 곁들이는데,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만두와 차를 함께 마시면 금혼식 쯤 올린 부부처럼 잘 어울리는 합당한 느낌이다. 중국차와 생강, 물휴지는 1달러라고 값이 매겨져 있는데, 중국차는 계속 리필 해주므로 안 쓸 테니 가져가라고 하지는 말 것.


만두는 열 개짜리 한 통만 먹으면 든든하지만 오늘은 욕심껏 골고루 먹고 싶어서 여섯 개짜리로 세 종류의 만두를 시켜 보았다. 포크 덤플링, 쉬림프 앤 포크 덤플링, 베지터블 덤플링, 열여덟 개를 먹었을 뿐이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포크 덤플링 같은 경우에는 작은 접시에 놓고 젓가락으로 한 번 콕 찍어 국물을 뺀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한 입 베어 물고는 옷을 버릴 뻔 했다. 사실 만두에서 국물 같은 것이 흥건히 나오는 것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 만두를 다시 안 먹을 거냐고? 모든 부분이 다 맘에 들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잖은가?


딘다이펑은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에서 처음 이 만두를 먹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맛있는 음식점이 딱 그 자리에만 있지 않고 체인점이라는 형태로 여기저기에 있는 것에 대해 나는 간편하게 잘 찾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가 딱 한 군데에만 못 박힌 듯 있다면 불편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낭만은 고조될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딘다이펑을 찾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싱가포르에 오면 한국식당은 전혀 찾지 않는다. 여행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마뱀과 밤참 먹기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편의점이 멀었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는 편의점이 거의 모두 세븐 일레븐이므로 컨비니언스 스토어니, 트웬티포 아우어즈 스토어(?)니 복잡하게 물어볼 필요 없이 "웨어 이즈 세븐 일레븐?(where is 7eleven?)"이라고 물어보면 된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는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멀뚱멀뚱 보낼 때도 많았다. 그런 날에는 쓸쓸함이니 우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더운 밤공기를 마시면서 느릿느릿 편의점까지 걸었다. 이국의 밤은 어울리고 말고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끝없이 쓸쓸하고 우수로 가득 찰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보도를 밟곤 했다. 세븐 일레븐에서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는 행위는 그냥 먹을 것을 사오는 차원이 아니라 혼자 보낼 주말을 기습 공격할 무시무시한 고독에 대한 방위 물품을 확보하는 것이다.


내 방 천정 근처에는 도마뱀 한 마리가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당시 내게는 이성보다는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동성친구가 더 필요했기 때문에)에게 아보카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처음 아보카도를 만났을 때 촐랑거리는 푸들만 봐도 부들부들 떠는 동물기피증이 있기 때문에 벽에 뜨억 붙어있는 초록색 물체를 보자 기절할 것처럼 놀란 것이다! 방을 뛰쳐나가 두려움으로 벌벌 떨며 방망이를 찾아 가지고 돌아온 나는 벽에 그대로 붙어있는 도마뱀을 노려보면서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데 도마뱀은 도망가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 보니, 내가 방망이를 쳐들고 있는 이 위험한 상황도 모른 채 순진한 눈을 꿈벅이고 있었다. 문득 이렇게 순박한 눈을 한 동물을 습격하는 것은 매너 없는 행동일 뿐 아니라 공평하지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망이를 내려놓고 반대편 벽에 멀찌감치 물러나 앉아 세븐 일레븐에서 사온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씹고 우유를 마시고 망고를 까먹는 동안 도마뱀은 말없이 벽에 붙은 채로 6초에 한 번씩 눈만 꿈벅였다. 참 조용한 아이로군. 침대에 누운 나는 내 두 발 위쪽에 껌처럼 붙어있는 초록색 물체를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텅 빈 벽을 보고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돌아와 보니 어젯밤과 같은 자리에 초록색 껌이 붙어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보카도! 저 아이는 아마도 야행성이 아닌 모양이야. 사실 나는 파충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보카도는 파충류의 차원을 넘어선 존재였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착 들러붙어서 함께 밤참도 먹고 심야 방송도 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으니까. 말수가 없고 기품이 넘치던 그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가끔씩 궁금하다. 좋은 녀석 만나서 시집이라도 갔을까? 승진은 했을까?



슬로 보트를 바라보며

강가를 따라 죽 늘어선 길은 싱가포르 최고의 관광코스. 산책로와 카페가 강을 바라보고 이어진다. 유명한 카페가 많고 저녁이면 공연도 많아 사람들이 북적인다. 보트를 타는 관광객도 많다. 나는 보트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배는 타는 것보다 카페 같은 데 앉아 뭔가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멍청하게 바라보는 편이 훨씬 좋다. 어딘가를 갈 목적도 아니면서 배를 타고 이리저리 이동한다는 것은 좀 우습게 보인다. 관광을 위한 관광은 매력이 없다. (싱가포르의 바람은, 관광객이 클라크 키에서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산책하다가 보트를 타고 보트 키로 가 저녁을 거하게 먹고 다시 보트를 타고 로버트슨 키로 와 클럽이나 바에서 실컷 즐기며 밤을 보내라는 것인데, 당연한 말씀이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피곤하게 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무 곳에 가지 않아도 배는 천천히 움직인다. 내 마음 속에서 울리는 모터 소리가 녹색의 강물 위로 쏟아지는 석양과 불빛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내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강물은 작은 조각배를 천천히 밀어준다. 다음에 내가 갈 곳이 아무리 근사해도 내 마음의 조각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무미건조한 모래사막에 불과할 뿐이다.


이국땅이란 나만의 조각배를 띄운 검푸른 강이다. 여행의 묘미는 미리 정해진 쓸쓸함을 불쾌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즐기고,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마음의 조각배를 진지하게 굴 필요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닌가. 그런데 보트를 바라볼 때는 박하향이 나는 칵테일을 마시는 게 여러모로 좋다.


택시운전사가 말하는 코리언, 재패니즈

이곳의 택시 운전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손님이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손님이 말을 걸면 끝없이 수다를 떤다. 어떨 때는 재미있고 어떨 때는 피곤한데, 대개는 도움이 많이 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발음을 쓰는 운전사인 경우에는 귀를 쫑끗 세우고 연신 쏘리?를 읊어야 하니 피차 피곤하다. 어떤 아저씨는 재미있는 관광코스를 물었더니 적어도 10군데를 말해주고는 대뜸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무척 의심스런 눈초리로(처음 보는 사람이 직업이나 고향, 성격, 심지어 식성 같은 것을 알아맞히면 굉장히 불쾌해지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그렇다).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논리정연하게 늘어놓는다.


- 일본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매번 "일본말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본다. 일본말 할 줄 알아? 일본말 할 줄 알아? 농담 삼아 이꾸라데스까, 라고 말하면 소스라치게 기뻐하면서 일본말 할 줄 아는구나!

- 그럼 한국인은?

- 한국인은 절대 "한국말 할 줄 아느냐?"고 묻지 않는다. 농담 삼아 안녕하세요, 라고 말해도 감탄은 하지만 내가 그 외의 한국말을 더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얼굴이다.


묘하다.


다른 얘기인데, 싱가포르는 택시비가 무척 저렴하다. 걷는 것도 꽤 좋지만, 발이 부르텄다면 택시를 이용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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