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

   
이민희 글 · 사진
ǻ
고즈윈
   
15000
2007�� 06��



>■ &>책소개
프랑스 뒷골목 치즈 가게부터 스위스 산골 치즈 농장까지의 여행기,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 6년 전,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하던 중, 저자는 스위스에서 나무상자에 든 까망베르 치즈를 하나 사게 되었다. 다음날,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에서 나무상자를열어 까망베르 치즈를 맛본 저자는, 치즈가 자신의 인생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다섯 달간, 치즈를 찾아서 자동차를 끌고 프랑스와 스위스 곳곳을 누빈 어느 치즈마니아의 유럽 문화 혹은 치즈 문화 여행기다. 유럽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 문화이자 전통인 치즈를 통해 유럽 문화의 참모습을 발견해내고있다. 사진을 통해 치즈를 만드는 방법 등을 보여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치즈를 사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친절한 주인 덕분에치즈에 대한 정보를 얻은 이야기, 독특한 색의 치즈를 사서 맛을 보았다가 독한 향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인심이 후한 치즈 농장에서 소젖을 짜본이야기, 치즈를 전통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보게 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없는 프랑스, 스위스산골마을의 풍경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저자이민희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저자는 30세가 되던 생일 사직서를 내고 2006년 1월 비행기에 오른다. 3개월 간파리에서, 60일 동안 자동차를 타고 프랑스와 스위스 곳곳으로 치즈를 찾아다녔다. 블로그(blog.naver.com/daropa7)를 통해여행담을 더 만나볼 수 있다.


■ 차례
시작하는 글


첫 번째 이야기_파리의 치즈 가게들
1. 집앞 시장 무프타 2. 라파예트 백화점 치즈 매장 3. 퐁슬레 시장의 프로마주리 알레오스 4. 동역 옆 시장의 할머니네 치즈 가게 5. 우연히마주친 프로마주리 쥘레 6. 에티엔느 막셀의 몽토르게이 시장 7. 세브르 길, 카트르옴므 프로마제 8. 파리 국제 농업 박람회 9. 7구 시장의프로마주리 앙드루에 10. 처음 만난 길 위의 시장 11. 파리 근교의 브리 시장 12. 플라스 몽주 시장 13. 카페 같은 캉탱


파리를 떠나며


두 번째 이야기_프랑스·스위스 치즈를 찾아서 자동차여행
1. 난데없는 시작 2. 노르망디 뇌프샤텔 3. 노르망디 까망베르 4. 알프스 프랑슈 콩테 5. 프랑슈 콩테, 테즈의집에서 6. 스위스에 들어서다 7. 테트 드 무안 공장에서 8. 에멘탈 9. 아펜젤에서 만난 화가 10. 산꼭대기의 레티바 농장 11. 그뤼에르12.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13. 프로방스 바농 14. 칸느에서 피레네까지 15. 피레네 산맥의 톰므 치즈 농장 16. 피레네를 넘어 브르비로17. 오베르뉴 살레 


여행을 마치며




명창들의 시대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


파리의 치즈 가게들

■파리 국제 농업 박람회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치즈를 제대로 찾고 있는 걸까…. 이렇게 시장만, 치즈 가게만 찾아다니는 게 치즈에 제대로 접근하는 방법일까…."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부터 그 긴긴 주말을 꼼짝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월요일을 맞으니 머릿속이 어수선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업 시작 전, 웅성웅성 떠나는 사람들 옆에서 정신을 가다듬으려 복도의 한 귀퉁이에 머리를 기대고 서 있을 때였다.

"민희! 민희! 찰리가 주말에 농장에 간대!"

"유난히 들뜬 유키의 목소리였다.

"뭐? 뭐라고? 농장?"

급작스레 정신이 번쩍 들어 유키를 쳐다보다 바로 찰리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얼굴을 드밀었다.

"농장요?"


농장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소도 있고 양도 있고 뭐 온갖 것들이 다 있는 농장이라는데 거기에 치즈도 있고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 농장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파리란다. 글쎄…. 파리에 농장이 있을 만한 곳이 있나? 외곽선을 타고 베르사유쯤 가면 모를까. 아주 큰 농장이 파리 안에 있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수업이 시작되어 얘기는 거기서 대충 마무리를 해야 했다. 여전히 정신없이 못 알아듣는 수업에 산더미같이 내준 숙제 때문에 첸흥을 끌고 곧바로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중국인인 첸흥은 엔지니어로 파리에 온 지 1년쯤 되어서인지 같은 초급반임에도 이해력은 나보다 두 배 이상 빨라서 종종 나의 간이 과외 선생님이 되어 주는 친구였다.


"주말에 농장에 갈래? 소도 있고 양도 있다는데."

"농장?"

"새로 들어오신 찰리 할아버지 있잖아. 그분이 주말에 농장에 가신대. 너도 같이 가자."

"그래! 주말에 할 일도 없는데 잘 됐네."


이렇게 약속까지 해 놓고 보니 마음이 더욱 들떴다. 주말에 농장에 간다니… 치즈도 많다는데…. 지난 주말 내내 어찌하면 치즈에 관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핏기가 가셨던 얼굴에 화색이 도는 느낌이었다. 그 후 첸흥과 나 그리고 찰리 할아버지는 주말이 될 때까지 붙어다녔다. 찰리 할아버지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몇 마리의 소를 키우는 농장주라셨다. 매년 2월쯤 파리에 한 달간 머물다 가는데 2월 말에서 3월 초에 파리 국제 농업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에 그에 맞춰 4년째 부부가 함께 파리에 온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가게 될 곳은 찰리 할아버지가 표현한 대로 농장farm이 아니라, 박람회exhibition였던게다. 하지만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박람회장 입구에서였다.


신분증을 내밀고 바코드가 찍힌 입장권을 받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국인들은 15,000원쯤 하는 입장료를 내지만 외국인들은 무료라 했다.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엄청났다. 도대체 몇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는지 세기도 힘들 만큼 실로 엄청난 박람회장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정신이 쏙 빠져 버렸다. 네 시간이나 지도를 쥐고 따라 다녔지만 규모가 너무 거대해서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박람회 첫날 내가 한 일이라곤 점심으로 소시지 샌드위치를 먹은 것뿐이었다. 그 후로 나흘을 더 드나들었다. 사실 그즈음 나는 4월쯤엔 시작해야 하는 본격적인 치즈 여행에 대비해 파리 시내의 각 지방 관광 안내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길치인지라 한 곳이라도 찾아가려면 족히 몇 시간은 걸렸고 제대로 찾았다 해도 점심 시간, 휴일 등의 이유로 문을 닫아 놓는 통에 며칠을 투자했음에도 기껏 세 곳밖에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의 이야기지만 막상 치즈 원산지에 들러 그 지방의 관광 안내소에 갔을 때에도 치즈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박람회장 지도가 눈에 제대로 들어온 건 드나든지 3일째 되는 날부터였다. 박람회장은 각 부문별로 전시하는 기간이 달랐는데 계약등의 비즈니스를 하는 농기구 전시실과 치즈 전시실은 약 5일 정도의 짧은 기간을 운영하였고 프랑스 전 지역의 농축산물이나 다른 국의 농축산물이 전시되는 곳은 열흘 내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 지방별 안내 부스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짧게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치즈에 관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단지 그 고장의 치즈에 관한 설명일 뿐 직접 치즈를 만드는 농부를 만날 순 없었다. 사실 농부로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자릿세를 내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던지라 나의 신통치 않은 불어를 오랫동안 상대해 줄리 만무했다. 그래서 인지 하루 평균 5~7시간씩 박람회장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가방 안에 팸플릿만 가득 쌓여 갈 뿐, 실질적인 소득은 거의 없었다.


박람회장 마지막 날이었다. 꼭 가야 할 지방만을 다시 체크해 최종적인 자료를 수집하러 돌아다니고 있을 때 사람들로 둘러싸인 치즈 코너를 발견했다. 치즈를 만드는 농부라 하기엔 무척이나 젊어 보이는 테즈를 만난 건 그곳에서였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남대문시장의 엿장수 저리 가라였던지라 신명난 분위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겹겹이 테즈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서 있으려니 흔치 않은 동양인인 나에게 테즈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마드무아젤, 뭘 도와 드릴까요?"

"저…음…혹시 이 치즈를 직접 만드시나요? 농장을 가지고 계신가해서요."

"예, 직접 만들어요."

"그렇다면 혹시 그 농장을 방문할 수 있을까요? 저는 치즈가 보고 싶어 한국에서 왔거든요."


나는 용기를 내어 나의 계획을 얘기했고 테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치즈 박스를 쭉 찢어 또박또박 주소를 적어 주었다. 5월쯤 오면 치즈를 만드는 적기이니 좋을 거라며, 오히려 꼭 와줄 것을 당부했다. 날이 좋은 그때 오면 본인의 오토바이를 태워 줄 수도 있다는 자랑 섞인 말도 덧붙였다.


5일 동안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일이 잘 풀려 다른 몇 곳의 농장에서도 와도 된다며 주소를 상세하게 적어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그 먼곳들을 무슨 수로 갈 것인지 아무 확신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법, 5월이 시작된 어느 날, 나는 믿지못하겠다는 테즈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 / 스위스-치즈를 찾아서 자동차 여행

■스위스에 들어서다

"아! 여기 있다, 이거 가져가."

테즈는 서랍 속을 뒤적거리더니 차곡차곡 잘 접혀 있는 붉은색 스위스 지도를 내게 건넸다.

"이거 아주 잘 나와 있어. 여기 봐. 우리 마을 이름도 나와 있잖아. 이 정도면 스위스 어디를 가든 충분할 거야."


다짜고짜 식탁 위에 지도를 펴놓고 위치를 가리키는 테즈의 손끝에는 정말 눈곱만큼 작은 그 마을 이름이 나와 있었다. 결국 테즈가 챙겨 준 스위스 지도를 들고 서둘러 출발한 토요일 정오. 그의 말대로 두어 시간쯤 가자 정말 스위스 국경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국경선이라는 곳을 접한 그때의 기분은 신기하기도 하고 꼭 처음 외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처럼 긴장되기도 했다. 30유로쯤 하는 스위스 고속도로용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들어서자 드디어 독일어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네시쯤 알프스 쥐라 산맥 쪽 센뉴레지에Saingelegier라는 마을에 도착해 막 문을 닫으려 하는 여행 안내소에 먼저 들어갔다. 이 지역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곳인데, 스위스 북서쪽에 위치한 테드 드 무안(Tete de moine, 수도승의 민머리)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지역에서 그 이름을 딴 치즈를 만든다고 하여 급작스레 계획을 수정해 들른 곳이었다. 하필 토요일이라, 월요일쯤이나 연락이 가능하다는 농업 담당 직원 앞으로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겨 놓은 후 근처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려 기온이 5~6도 사이로 떨어져 입김까지 솔솔 나오던 그날 도착한 캠핑장은 하필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완전 자연산 캠핑장이었다. 처음엔 모닥불도 지필 수 있고 그 불에 감자도 구워 먹을 수 있어 잘 됐다고 좋아하며 운치를 즐겼는데, 새벽이 되자 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졌는지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려 와 결국 텐트에서 나와 자동차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아침 7시 해가 뜨자마자 짐을 챙겨 도망치듯 캠핑장을 빠져나와 마을 광장의 해가 잘 드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다시 잠이 깼을 때는 오전 11시였다. 햇볕에 달구어진 차 안이 어느새 20도를 넘어서면서 오리털 침낭을 덮고 잔 몸에 찐득찐득 땀이 배어 있었다. 지난 밤 캠핑장에서 차바퀴가 진흙 속에 빠지는 바람에 옷은 온통 진흙투성이였고 밤새 좋아라 때던 모닥불 덕에 손톱엔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었다. 추위에 온몸의 근육이 굳었는지 4시간이나 잠을 자고 난 뒤였지만 몸은 여전히 찌뿌듯했다.


"안되겠다, 몸만 처지고. 내일 아침 담당 공무원을 만난다 해도 치즈 공장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는데 차라리 공장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보자. 뭔가 수가 생길지도 몰라."


난데없는 결정에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근교의 생티미에르St-imiere라는 마을이었다. 역시 여느 치즈 마을이 그렇듯 개미 한 마리 찾기 힘들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치즈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찾았지만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고, 간밤에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계속 졸리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근처 캠핑장을 찾다가 지치고, 찾다가 지치고….


"차라리 공장 앞에 다시 가볼까?"


공장 앞엔 숙직자가 있는지 차가 몇 대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공장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마치 맞은편 어느 가정집에서 마당을 정리하고 계시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꽃무늬 앞치마에 간단한 슬리퍼만 신고 있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내 집에서나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차림이었다.


서울에 계신 엄마도 저렇게 편안한 차림으로 계시겠지?


사실 나는 이미 공장이 언제 여는지, 숙직자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는지쯤은 공장 문 앞에 붙어 있는 메모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저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하는 것처럼 말을 붙여 보았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시고는 전화기까지 챙겨 나오셔서 숙직자와 통화를 하시며 오늘은 일요일이니 공장을 열지 않는다는 상세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시…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하고 부탁을 드렸다.


따뜻한 집 냄새…. 손을 씻으니 새까만 때가 씻겨 나왔다. 생각해보니 딱 19시간만에 화장실에 온 것이었다. 이젠 별것에 다 눈물이 난다. 꼬질꼬질한 내 상태, 거의 하루 만에 써 보는 수돗물, 겨우 오후 4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날씨 때문에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내일 새벽 공장을 뚫고 들어가려면 어디 캠핑장까지 가긴 어렵겠는데…. 나는 화장실까지 얻어 쓰고도 염치불구하고 아주머니께 부탁 하나를 더 드렸다.


"제가 실은 내일 새벽 이 공장에 가야 하는데요…그러니까…저는 텐트가 있어요. 하룻밤만 마당에서 재워주시면 안 될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주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우리 아저씨가 마당은 너무 추워서 안된다네요. 그러니까 그냥 우리 집에서 자요."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때 나는 계속 울먹거리고 있었다. 좀 전에 치즈 공장 앞에서도 나는 울고 있었다. 달랑 하루를 밖에서 떨었지만 그동안 누적된 외로움이 서울의 엄마와 비슷한 아주머니를 뵙자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때 아주머니의 조카가 도착했다.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일부러 데려오신 모양이었다. 그제야 나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왜 치즈를 보러 다니는지, 왜 주책없이 울고 있었는지 등등. 그런데 막상 실토를 하고 나니 가족들 생각이 더 밀려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우선 샤워부터 할래요?"


커다란 타월에 드라이어 쓰는 법까지 자세히 알려 주신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시더니 문을 꼭 닫고 나가셨다. 나는 더운물을 틀어 놓은 채 어깨를 들썩거리며 샤워를 하는 건지 눈물을 닦는 건지 모르게 씻었다. 별걸 다 가지고 이런다. 나는 나를 다독였다. 그러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별로 큰일도 아닌데 여행에선 별게 다 서럽고 서글프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내가 묵기로 한 방 침대에는 어느새 영화에나 나올법한 푹신한 꽃무늬 이불이 깔려 있었다.


"7시에 깨울 테니 그때 저녁 먹자구요."


그러곤 아주머니는 테라스로 나가 커다란 외투를 창문에 걸어 두고서야 밖으로 나가셨다. 때마침 잠깐 갠 하늘에 붉은 해가 비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그것까지 가려 주고 나가신 거였다. 그렇게 꿈같은 저녁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날, 정확히 아침 7시가 되었을 때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어제의 약속대로 공장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전날 저녁 아주머니는 저녁식사를 마친 나를 데리고 동네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산책을 나섰는데 마침 공장장님과 마주치게 돼 급작스레 약속이 성사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일찍 나가야 하는 내가 늦잠 잘까 손수 깨워 주시더니 아침식사까지 챙겨 주시고는 연방 여행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시며 대문 밖까지 배웅해 주셨다. 그간 가지고 다니던 쓸 만한 기념품들은 모두 떨어져 어째 드릴 것도 없어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한 겨우 드리고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정말 너무 고마울 땐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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