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견문록

   
김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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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9800
2005�� 08��



>■ 책 소개
저자가 연수원, 학생, 주재원 등 다양한 신분으로 8년 가까이 독일에서머무르는 동안 느끼고 이해한 독일의 모습을 정리한 책이다. 독일은 우리보다 먼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나라이다. 현재 통일의 후유증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패전 이후 경제 기적을 이루고,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보여준 독일의 문화와 역사가 잘정리되어 있다. 단순한 독일의 소개가 아니라 저자의 산 경험이 담겨 있어 독일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 저자 김영찬
1957년 서울 생. 서울대학교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마부르크대학 수학, 1980년 한국은행에 입행해서 주로 경제통계국, 조사국에 근무. 현재는 조사국국제무역팀장으로 근무. 그동안 연수원, 학생, 주재원 등 다양한 신분으로 8년여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독일에 관한 글을 많이 발표했다.“독일주재원의 독일이야기: 늙어도, 아파도, 일자리가 없어도 걱정 없는 나라”, “유로화 탄생은 세계의 금융혁명: 신뢰의 상징 도이체마르크포기하고 유로화 선택”, “독일의 힘”, “분권화의 전형국가 독일: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살기의 즐거움” 등과 통독에 관한 보고서『통화통합,통일과 독일경제』가 있고『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번역했다.


■ 차례
1부 아는 만큼가까워진다 
1. 독일인 베스트 100 / 2. 환상적인 여름, 전혜린이 그린 우울한 겨울 
3. 내 차 몰고 가는외국 여행 / 4.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5. 소리에 민감하다 / 6. 자두나무가 안쪽으로 옮겨진 까닭은? 
7. 남녀가 같이하는 목욕탕 / 8. FKK, 일상에서 접하는 누드 
9. 독일 섹스 산업의 역사, 베아테 우제 / 10. 비행기는 날고 있는 동안만 돈을번다 
11. 뒤부터 읽는 두 자리 숫자 / 12. 보드카 고르바초프 
13. 독일연방은행 메부스 박사의 한국 견문록


2부 시스템이 차이를 만든다 
1. 학력평가 쇼크,구겨진 자존심 / 2. 변화하는 독일 대학 
3. 운전 잘하는 독일 사람들 / 4. 독일 사람들이 유일하게 빠른 곳, 아우토반 
5.흩어져 산다 / 6. 아파도, 늙어도, 일자리가 없어도 걱정이 없는 나라 
7. 저녁 8시면 숨죽이는 도심 / 8. 아는 만큼 싸게 탄다


3부 유럽과 독일, 독일과 유럽 
1. 마인 강은흐른다, 프랑크푸르트 / 2. 유럽 12개국의 중앙은행, ECB 
3. 유로, 오리로, 위로, 에우로 그리고 EYP / 4. 바젤Ⅱ의바젤이라는 곳 


4부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독일 경제 
1. 기로에선 독일 경제 / 2. 독일 경제의 아킬레스건, 동독지역 
3. 너무도 많이 들어간 통일 비용, 왜? / 4. 내가 경험한 독일통일




독일 견문록


아는 만큼 가까워진다

독일인 베스트100

우리가 아는 다른 나라 사람을 떠올릴 때 의외로 독일 사람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아인슈타인, 칼 마르크스, 헤르만 헤세, 베토벤, 마틴 루터, 보리스 베커, 등 각 분야에서 알려진 이름들을 꼽을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간접적으로 독일과 인연을 맺고 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처음 배우는 나비야 나비야부터가 독일 동요이다.


독일의 제2국영방송은 2003년 8월 독일 사람들이 뽑은 독일인 베스트100을 선정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 결과 만72세에 서독의 초대총리가 되어 1949년부터 1963년까지 14년 간 총리를 지내면서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콘라드 아데나워가 약 78만 표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약 56만 표로 2위, 과학적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가 50만 표로 3위를 차지했다. 4위에는 우리에게는 좀 낯설지만 반나치 저항운동가 숄 자매 그리고 5위에는 동방정책을 펼친 빌리 브란트 총리, 6위에는 작곡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 7위에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10위에는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등이 뽑혔다.


소리에 민감하다

소음을 못 참는 사회: 서울에서 느끼는 독일 생활과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주변을 둘러싼 소음과 그 소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대함이다. 독일에서 살던 주택가는 인구밀도가 꽤 높은 곳이었지만 강원도 산골에나 가야 느낄수 있는 절대고요라는 것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떠들며 노는 경우도 있었지만 밤 시간이나 낮의 정숙시간대에는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하는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핸드폰이 6,000만 대가 넘게 보급되었지만(전 인구의 78%) 버스나 전철에서 핸드폰 벨소리나 대화소리는 매우 드물게 들린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 질식할 것 같은 조용함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조심하게 된다.


남녀가 같이하는 목욕탕

정말 그런 곳이 있었다 : 우리가 말하는 독일의 목욕탕은 엄격히 말하면 온천수영장과 10개 가까운 사우나실, 그 옆에 딸린 작은 풀장, 적외선실, 마사지실, 욕조, 맥주나 쥬스 등을 마실 수 있는 바가 갖추어져 있는 대형 휴식공간이다. 남탕과 여탕이 분리된 경우는 원칙적으로 없고 다만 남녀가 같이 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수요일 오전은 여성 전용 혹은 목요일 오전은 남성 전용 등과 같이 특정 시간대별로 남녀의 이용시간을 구분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리 일반 적인 일은 아니다.


독일 섹스 산업의 역사, 베아테 우제

독일인에게 섹스의 다양함을 선사 : 베아테 우제는 18세 때 직업 조종사가 되었고 2차 대전 때는 공군 전투폭격기를 몰았다. 베를린이 소련군에 함락될 때 그녀는 2살 된 아들을 태우고 베를린을 빠져 나와 독일 북부 덴마크 국경 근처의 도시 플렌스부르크에 정착했다. 연합군은 그녀가 조종사로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녀는 플라스틱제품 판매를 시작했고 여행을 하면서 너무 많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것을 보았다.


독일 최초의 여의사 중 한 명이었던 어머니로부터 배운 산아제한 등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녀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기간인 오기노 주기설을 전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부부생활과 섹스에 관해 조언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1946년에는 섹스용품 통신 판매업을 시작했고 1962년에는 세계 최초로 섹스 숍을 열었다. 1967년에 이미 200만 권의 카탈로그를 찍어 2,300만DM의 매출을 올렸다. 1972년 독일의 유력지 디 자이트는 그녀를 시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섹스상품 통신판매 기업가라고 평했다. 1996년에는 창사 50주년을 기념하려 베를린에 에로틱 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뒤부터 읽는 두 자리 숫자

두 자리 숫자는 뒤부터 읽는다 : 독일에서 적응이 잘 안 되던 부분이 숫자에 관한 것이었다. 두 자리 숫자를 읽는 방식이 우리나라나 영어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27일이라는 숫자를 이십 칠 즉, 10자리 숫자부터 먼저 읽으며 영어에서도 십 단위 수를 먼저 읽고 단수를 읽는다. 그런데 독일어에서는 이를 7과 20, Sieben und Zwanzig라고 읽는다.


1층과 0층: 건물에 들어설 때 인터폰으로 "1층으로 올라와" 라는 말을 처음에 들으면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1층으로 올라오라니. 독일에서 1층은 우리의 2층이 되며 우리의 1층은 독일에서는 0층이 된다. 이러한 표기는 유럽대륙이나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보드카 고르바초프

이 보드카는 프랑스의 그레이 구스(grey goose)나 폴란드의 쇼팽(chopin), 벨베드르(belvedere)처럼 최상급은 아니지만 꽤 좋은 품질의 보드카이다. 그리고 세계 판매 랭킹은 77위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독일에서는 30%의 매우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고르바초프가 독일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스템이 차이를 만든다

학력평가 쇼크, 구겨진 자존심

또 다시 중위권 이하를 기록한 PISA 결과 : 2004년 12월초,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2차 평가결과가 발표되자 독일은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2001년 말 발표된 1차 평가에서 독일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중하위권에 랭크된 데 대해 경악하였던 독일인들은 이번에 순위가 조금 올라갔다고는 했지만 중위권 이하라는 것이 확인되자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교육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스물 아홉 살이 되어야 사회로 : 독일 대학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학생들이 너무 늦은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독일연방통계청이 펴낸 독일 대학 백서에는 대학을 졸업하는 평균 나이가 28.9세(남학생 29.3세, 여학생28.4세, 2002년 기준)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대학졸업 연령이 높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다른 나라보다 긴 13년이 걸리고 군복무(1년)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된 요인은 재학기간이 길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독일의 대학과정이 다른 나라에서의 석사과정까지 포함한다고는 해도 어쨌든 사회 진출연령이 높은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운전 잘하는 독일 사람들

제도가 행위를 만든다: 독일에서 사람들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면 앞뒤 안 가리고 바로 횡단보도로 들어선다. 건너면서 좌우를 살피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경우에도 차가 오고 있건 말건 건넌다.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관념이 확실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에 자동차도 으레 횡단보도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사람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하는 운전을 한다.


흩어져 산다

볼 것이 별로 많지 않은 나라 독일? :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로부터 독일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볼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특히 7박8일, 유럽9개국 일주 등과 같이 한 나라에서 한두 도시만을 보는 것으로 짜여진 유럽여행을 다녀온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가 있다. 사실 독일에 살 때도 한국에서 온 친지가 하루, 이틀 정도로 독일을 볼 수 있는 일정을 짜달라고 하면 난감해지곤 했다.


독일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곳을 둘러보려면 상당 시간을 들여 여러 도시를 이동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내려서 시내에 있는 괴테 생가를 둘러 본 후 하이델베르크를 구경하려면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한 시간 달려가야 하고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를 보려면 다시 서북쪽으로 두 시간 가까이를 올라와야 한다. 독일에 볼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데는 역사적으로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해 부국이 아니었고 화려한 건축물을 많이 남기게 되는 절대왕정도 없었던 점 그리고 2차 대전 말기에 무차별적인 대 공습을 받아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된 점등의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와 같이 볼거리들이 몰려 있지 않고 제한된 시간에 둘러보기에는 너무 떨어져 있다는 데 원인이 있다.


저녁8시면 숨죽이는 도심

유럽 일주 여행 중에 독일에 머무는 하루가 마침 일요일이라면 제대로 된 쇼핑은 포기해야 한다. 독일의 상점들은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평일에도 저녁 8시가 넘으면 백화점이건 동네 가게이건 모두 문을 닫는다. 독일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상점의 영업시간이 법에 의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매일 밤 12시 정도까지 가게문을 열어놓거나 주말도 일하며 보내느라 가족이나 친구들 만나기가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업 종사자들을 생각할 때 이 제도는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독일에 살다보면 적응이 돼서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녁때 갑자기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연휴로 며칠 동안 가게문을 열지 않을 때 혹은 여행 차 들른 도시의 상점 문이 모두 닫혀 있을 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숨통을 터 주기 위해 기차역이나 공항에 있는 상점과 주유소 부설 상점에 대해서는 영업시간을 자유화해 놓았다. 대신 이곳의 물건값은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일하는 만큼 매우 비싸다.



유럽과 독일, 독일과 유럽

마인 강은 흐른다, 프랑크푸르트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독일 도시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은 아마도 프랑크푸르트일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직항편이 있어 런던, 파리와 더불어 유럽 여행의 출발점이 되거나 여행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르는 도시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 목적이 아니더라도 북페어(도서전시회 보통은 할인판매를 겸한 도서전시회를 가리킨다 국제적 규모의 이러한 전시회들이 많이 열린다 우리말로는 도서장터라고도 할 수 있다), 모터쇼, 소비재박람회 등 유수 견본 시에 참가하기 위한 방문객이 많다. 또한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유럽 본부가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하고 있어 여기서 유발되는 내왕객도 적지 않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곳으로, 차범근 선수가 뛰었고 지금은 그 아들인 차두리가 뛰고 있는 아인트라하트 축구팀이 있는 곳으로, 유럽중앙은행, 독일연방은행이 있는 금융 중심지로 하이델베르크나 로렐라이 언덕을 가기 위한 기착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유럽에서는 런던 히드로 공항 다음으로 여객 수가 많은 대형 공항이다. 2004년 연간 이용객 수는 5,000만 명을 넘어서 우리나라 인천국제공항 이용객2,400만 명의 두 배를 상회했다. 항공화물 수송량은 유럽에서 최대이다. 이 공항에서는 50초마다 한 대씩 비행기가 이착륙을 한다.


유럽12개국의 중앙은행, ECB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유럽중앙은행은 일반적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라고 불리는 유럽연합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에 의해 설립되었다. 유로화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로화 도입의사를 표명하고 도입에 필요한 여러 수렴조건을 충족한 나라에서 사용된다. 2004년 5월에 폴란드, 헝가리 등 10개국이 신규 가입하기 전 EU 회원국은 15개국이었다. 이들 중 영국, 스웨덴, 덴마크 세 나라가 아직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데, 영국은 아직도 도입여부를 저울질하고 있고 스웨덴과 덴마크는 국민투표에서 유로화 도입을 부결시킨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서로 다른 12개 주권국가들의 통화정책을 관할하고 이들 나라에 공통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에서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이 같은 화폐를 쓰게 된다면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로 차원에서의 통화정책 결정: ECB가 부여받은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유로지역에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ECB가 물가안정의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통화정책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결정은 ECB의 정책이사회에서 이루어진다.


프랑크푸르트와 독일연방은행: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중앙은행인 독일연방은행(1957년 기존의 렌더방크(Bank Deutsche Lander)를 개편해 설립한 독일의 중앙은행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렌더방크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는 달리 주마다 하나씩 설립된 연방제 중앙은행이었기 때문에 각각 법적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방 분권적인 형태로 인해 렌더방크는 더 이상 서독의 경제부흥과 경제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고, 한층 강력한 중앙집권적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비로소 연방은행이 출현하였다)과 함께 도이체방크 등 독일 주요 은행의 본점이 위치해서 유럽에서는 런던에 버금가는 금융도시로서 위상을 다져왔다. 여기에 더하여 유럽중앙은행이 자리 잡게 됨으로써 유로시티(EUROCITY)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대형 유로화 로고 조형물은 프랑크푸르트가 ECB, 유로화의 도시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반면 한때 유럽 전체의 금리를 좌우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독일연방은행의 위상은 ECB의 출범과 함께 불가피하게 위축되었다.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독일 경제

기로에선 독일 경제

지난 몇 년간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한 경제신문에 독일의 실패에서 배운다라는 시리즈 기사가 실리는 등 독일의 경제상황과 관련 제도를 비관적, 비판적으로 보는 글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 만의 현상이 아니라 독일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경제 활력이 둔화되었는가: 이 같은 독일 경제의 점차적인 성장력 둔화나 최근의 부진은 성숙단계에 접어든 경제의 일반적인 성장률 둔화나 경기순환 적인 현상으로 일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독일 사회에 누적되어온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나게 된 데에 기인한다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독일 경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는 일반적으로 경직된 노동시장과 세계 최고수준의 인건비, 관대한 사회복지제도, 높은 세율, 관료적 규제 등이 주로 거론된다. 특히 이들 문제는 통독과 함께 종전 서독의 사회복지 제도가 동독에도 그대로 이식된 가운데 동독지역 경제가 부진을 겪으면서 심화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하는 시간은 짧고 인건비는 높다: 근무시간이라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독일 근로자들은 우리가 배웠던 근면한 독일인이 아니다. 쾰른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서독지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557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고(미국은 19,04시간), 공휴일은 11~13일에 달하는 데다 휴가일은 30영업일 이상으로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03년 선진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시간당 인건비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의 시동: 경제 부진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경제의 회생을 의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다.


요즘 독일에서 개혁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화두가 되어 있다.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의식이 나라에 퍼져 있는 것이다.


독일은 강점도 많은 나라다: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제도적인 문제가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다. 경제규모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이고, 수출은 2003년부터 미국을 누르고 세계 1위로 복귀했다. 높은 기술수준과 생산성, 축적된 사회간접자본, 전문 직업인력을 양산하는 직업학교체제, 안정적인 정치ㆍ경제ㆍ사회시스템, 유럽 중심부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 물가안정 등을 바탕으로 여전히 높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한 전통적인 지방분권체제 등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는 중소기업이 전문 산업기계ㆍ부품 등 세계적인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고 있어 경제기반이 매우 튼튼하다. 유럽 내에서 다른 나라에 갔다가 독일로 들어오면 구석구석이 잘 정비되고 전국이 골고루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독일 경제의 아킬레스건, 동독지역

통일 15년이 되는 지금에도 동독문제는 해결점이 잘 보이지 않는 독일 경제의 부담이 되고 있다. 동독지역의 경제는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서독지역으로부터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서독지역의 경제는 동독지역에 대한 지원부담으로 인해 힘을 뺏기고 있다. 서독지역에서 매년 동독지역에 이전되는 지출은 헝가리나 체코의 전체 국내총생산(GDP)보다 큰 금액이다. 이것은 서독지역의 경제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성장동력이 상실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무도 많이 들어간 통일 비용, 왜?

통일과 관련해서 동독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출에는 도로, 철도, 통신 등의 인프라 구축이나 행정망 정비와 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많다. 반면에 독일 언론에서 비판했듯이 운영비도 못 건질 대형 수영장을 동네마다 짓거나 시내 보도블록을 대리석으로 깔거나 하는 것은 분명 낭비였다. 많은 돈을 들이고 방치된 공장터와 공동주택도 잘못된 투자 판단의 결과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실책보다는 통독 과정에서 취해진 정책, 판단 그리고 제도의 이식이 광범위하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독 과정에서의 대표적인 정책 오류로 거론되는 것은 급속한 통화통합과 동독 마르크화에 대한 높은 전환비율, 동독지역 임금을 4~5년 내에 서독 수준으로 맞추기로 한 노사협의, 동독 시절 몰수된 재산에 대해 반환우선주의 결정 등이다. 이들은 동독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초기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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