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훈이의 세계 신화 여행

   
정다훈
ǻ
휴머니스트
   
13000
2005�� 07��



>■ 책 소개
누구나 한번쯤 여행을 떠나고싶어한다. 자신을 짓누르는 일상을 떠나 다른 공기를 숨쉬는 것. 여행의 묘미는 친숙함과 낯섦이 끝없이 마주치는 공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아닐까. 그리하여 결국 그것은 스스로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책은 스무 살의 꿈많은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내딛은 힘찬 걸음걸음의기록이다.


스무 살 여학생 정다훈이 2004년 여름 아나톨리아, 이오니아, 안달루시아, 아프리카북부, 그리고 유럽의 미술관 속에 흩어져 있는 세계의 신화와 이야기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신화 여행을 통해 신화가 "인간과 세계의 의미 있는관계 맺기"라는 결론을 끄집어낸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의 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과 이야기들을 그 현장에서 보고, 듣고,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정 곳곳에서 과거와 싸우고, 현재와 놀고, 미래를 생각하는 저자의 여행 기록은, 신화가 온갖것들이 충돌하는 전쟁터이자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즐겁고 유쾌한 놀이터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 이오니아(터키 남부, 그리스),안달루시아(스페인 남부, 소피아 등), 아프리카 북부(탕헤르, 카르타고 등), 그리고 유럽의 미술관들을 다니며 찾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신화와 이야기들. 평범한 대학생인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신화의 세계가 바로 현실임을 체험한 그 소중한 경험들을 우리에게들려준다.

&>■ 저자 정다훈
1984년생.2005년 현재 서강대학교 중국문화전공 2학년에 재학중생이다. 지은 책으로 『클릭! 차이나』『지금 중국이라 하셨나요?』등이있다.


■ 차례
I. 해가 뜨는 곳,아나톨리아
내가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우 
출발! / 수메르의 발견
반(Van)은 진짜 에덴동산이었을까?
에덴동산 이야기 / 신화의 속 뜻 
늑대와 함께 아라랏 산을 보는 거야 
아 임 쿠르디쉬 / 늑대와 춤을 
함께 가자!아브라함을 찾아서
우르파의 매력 / 아브라함의 동굴 / 이란 소녀 시마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라 
수피의 노래와춤 / 삶과 죽음 
그 많은 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태양의 여신 / 천 개의 신 
이슬람과 기독교의 칵테일 
금지된 성역/ 로맨스 / 조각난 환상 / 이스탄불


II. 그리스 코드, 이오니아
잊혀진 동방의빛 속으로 터기 트루바
‘이야기’의 천재 / 사라진 문명
“마이 도터(내 딸!)” 고비 할아버지의 포근한 치유
아스클레피온 /뱀의 비밀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예쁜 것들은 꼭 이름값을 한다 / 아프로디시아스
인간과 세계의 의미 있는 관계 맺기,신화!
여신의 도시 / 시인과 과학자 /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을까?
영웅을 생각한다
동전 이야기 / 크레타의영웅담
앉아서 하는 상상 여행
미노코스 / 산토리니


III. 이슬람의 향기, 안달루시아
잃어버린여신을 생각하다
"여신"의 도시 속의 여자 / 환전의 마술
평화라는 그림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곳
신이 만든 사람의 도시 / 성프란체스코 성당
신화의 세계를 구현한 가우디의 도시
베틀로 집 / 이상 도시 / 신화와 동화의 합체 
역사 속으로 사라진이슬람
코르도바의 모스크 / 이슬람의 힘
엄마의 추억이 아스라이 스며들다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 마지막 이슬람 왕조의전설 


IV. 신화 이후의 신화, 북아프리카
이븐바투타의 고향
사람들이 사는 곳 / 이븐 바투타
또 다른 이슬람의 세계
카라위인 모스크의 풍경/ 인샬라
환상으로 다가온지중해의 "하얀집"
하산 모스크 / 오만과 편견 / "차이" "다름"
종교 역사 문화라는 세 가지 빛깔, 튀니지 튀니스 
하늘바다 들 / 파티마의 손 / 차이, 다름
트로이 사람들을 여기서 만나네!
한니발 장군을 만나다 / 디도와 아이네아스 / 아시아의힘


V. 그림! 신화를 말하다, 유럽의미술관
그림이 들려주는 신화 이야기
고야의 크로노스 / 루벤스가 들려주는 트로이 / 벨라스케스의 헤파이토스
예술 속의 여신
의문의 시작 / 여신의 원형 / 우리들의 "허스토리"는?
삶은 고통과 희열 사이에 어딘가에
리베라의 비명소리 / 카뮈와 그리스 비극 
그리스인들의 친구, 디오니소스
말하는 그림 /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정답고 살가운 신들은 우리 곁을떠났다
불쌍한 신들의 화려한 난민촌 / 동방의 신들이여, 편안하십니까?




다훈이의 세계 신화 여행

                           

해가 뜨는 곳, 아나톨리아

반(Van)은 진짜 에덴동산이었을까?

여행 안내서에 "반(Van)은 에덴동산이요. 길가메쉬와 관련된 지역"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에덴동산이라? 일단 출발이다. 설명은 거의 없지만 그곳에 가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은 벌써 반을 다다르고 있다.


호반의 도시, 반! 무척이나 아름다운 호수이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품은 것을 신이 알아버렸는지 신의 노여움을 받은 탓에 나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현지인 쿠르드족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는데,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병원에 누워 있다 나온 지금도 내 병명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짐작컨대, 급성장염이 아니었을까, 링거 주사를 맞고 2시간 정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링거를 맞으면 금방 일어나서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오래 갔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배가 아파 고생을 해야 했다.



그렇게 아픈 배를 달래가며 찾은 에덴동산의 이야기, 그것은 반 호수의 조그만 섬에 너무도 소박하게 지어진 아흐타마르 교회에 있었다. 반 시내에서 약 40km 지점에서 배를 타면 20여 분 거리에 있는 거리에 있는 섬 안의 아르메니안 교회(아흐타마르)! 아빠는 이 교회 외벽에 부조로 만들어진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는데,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사실인가 보다. 교회 외벽의 보조는 성서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것인데, 부조에 새겨진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다른 생각을 끌어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에덴동산 이야기

"신은 인간을 창조했다. 최초로 창조된 아담과 이브는 낙원이라 불리는 에덴 동산에 살고 있었다. 신은 그들에게 다른 모든 것을 허락했으나 절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죽음과 고통의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꼭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알고 있을 법한 이 에덴동산의 이야기! 그런데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한 장면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법한 전지전능한 신은 왜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을까? 신은 인간이 처음부터 그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면 되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와 같은 명령을 내렸을까? 그리고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무슨 그리 죽을죄이기에 인간을 추방하고 고통을 안긴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나의 지도 교수이자 여행 파트너 아빠와의 토론에서 얻은 해답은 자유의지였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그에게 자유의지도 함께 부여했다. 무엇을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최종 시험대에 선악과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일 것이다.


성경에서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지만, 뱀의 유혹 이전에 이미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이브와 아담의 마음 안에 있었을 것이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이 두 남녀의 불장난에서 나는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하필 실수하는 사람이 여자일까?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본연의 욕구를 말하기 전에 어쨌든 신의 명령에 불복종한 그 당사자가 왜 여자이냐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도 실수하는 인간, 사악한 인간은 대부분 여자로 그려진다. 판도라는 신이 열어보지 말라는 상자를 열어 인간에게 재앙을 전해준다. 또 여자의 조상인 피라는 판도라를 계승하여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고통과 죽음의 역사는 여자와 함께, 여자 때문에 시작된다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왜 그리스 신화에서 여자는 재앙을 부르고 실수하는 존재로 묘사될까? 왜 히브리 신화는 여자를 재앙덩어리로 본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는 한 여행은 계속 될 것이며, 사실 그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대에서도 이렇게 오래된 신화 속의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향기, 안달루시아

엄마의 추억이 아스라이 스며들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나나 무스쿠리를 아는가? 실은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엄마를 통해 알게 된 가수일 뿐이다. 잔잔한 허밍으로 들리던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 엄마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CD를 꺼내 들으셨다. 거실 벽을 통해 내 방까지 전해지던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애잔하고 슬펐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느 날인가 재즈 피아노 곡집을 뒤적이다 멜로디가 익숙한 곡을 발견했다, 악보대로 그 곡을 치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피아노로 치고 있는 곡이 거실에서 들리던 나나 무스쿠리의 허밍이었음을, 그리고 그 곡의 제목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이라는 것을.


그때는 그렇게 막연했다. 들리는 음악의 느낌으로 그저 막연히 슬픈 추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지금 스페인 세비야에서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하이라이트는 그라나다이며, 여행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극찬을 하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뿌옇게 끼었던 짙은 안개가 창가의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어쩌면 막연했던 그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도 물방울마냥 안개속에서 조금 선명해질지도 모르겠다. 엽서 한 장 쓰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것 같다. 3시간 반 정도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까.


알람브라 궁전

짧았지만 깊게 잠들었나보다. 벌써 기차는 그라나다 역에 도착하여 멈춰 서 있다.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도시는 생각보다 작다. 역 안에 여행자 안내소도 없고 시내 지도도 구할 곳이 없다. 어쨌든 걸음을 재촉하여 중심가인 누에바 플라자로 향한다. 도시는 활기찬 기운으로 나를 반긴다. 여행 준비의 하나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서 읽었던 그라나다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하긴 그때는 1352년이었고 지금은 2004년이니 시간의 흐름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동상을 중심으로 도심 한가운데 있는 분수에서는 시원하게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븐 바투타는 전쟁의 위험을 이야기하며, 적군(기독교도)의 내습을 그의 여행기에 썼는데 그 지역이 바로 이곳 그라나다이다. 그렇게나 위험하다고 이야기한 이곳에 이렇게 평화로운 광경의 도심이 있으리라고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누에바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람브라 궁전의 표지판이 보인다. 궁전까지 가는 버스는 30번, 32번 알람브라 버스도 광장에서는 자주 출발하고 있는 듯하다. 850m 정도이니 그다지 멀지 않아 그냥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광장에서 한 5분 정도 올라가면 나지막한 산언덕인가 싶은 것이 보이는데, 엄청나게 우거진 숲 속 사이로 걸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표지판을 보니 여기서부터가 알람브라 궁전이다. 나는 궁전의 뒷길로 들어선 것이다. 궁전이라고 하기에 평지에 거대하게 세워진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이다. 산 전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궁전을 지어 놓았다. 아빠는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시며 최고의 궁전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신다. 유럽 전역의 거의 모든 궁전을 본 아빠의 눈에 들었으니 알람브라 궁전의 명성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내가 본 궁전 중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궁전이야. 유럽의 왕궁이 평면에 인공적인 직선으로 정원을 만든 것과는 달리, 이곳은 산의 곡선을 그대로 살리고 울창한 나무숲이 궁전 전체를 덮고 있잖니. 또 높은 곳에 위치해 마치 중세 의 성처럼 주변을 내려다보는 시원함도 함께 가지고 있고,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지었을까."


아빠의 찬사다, 둘러보지 않아도 나 역시도 그렇게 느끼고 있던 바였다. 다만 오르는 길이 너무 숨이 차 잠시 쉬어야 했다. 그리 높지는 않은데 운동 부족인지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온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면서 가져온 자료를 읽었다.


기후는 시리아처럼 온화하고, 땅은 예멘처럼 비옥하며, 꽃과 향료는 인도처럼 풍부하고, 보석과 재물은 중국처럼 넘쳐나며, 해안은 아든(예맨의 항구 도시)과 같이 닻을 내리기에 편리하다고 예찬한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이슬람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이곳 이베리아 땅에 남겨놓은 최대의 보물, 알람브라궁전(Alhambra)이 바로 그것이다.



역시나 최고의 찬사다.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라는 책에서도 알람브라 궁전은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 직접 보면서 이런 글을 읽으면 과장이라거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알람브라 궁전의 외관의 아름다움을 나의 짧은 필체로 서술하는 것보다 이렇게 멋지게 써놓은 다른 분들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덜 미안할 듯하다.


궁전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우연히 한국에서 관광 온 분들 팀에 끼어 나는 몰래 가이드를 따라다니면서 꽤 많은 정보와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의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에 의해 쫓겨난 곳이다. 옴미아드 왕조의 수도 코르도바에서 쫓겨와 이곳 그라나다까지 왔다는 말인데, 이상한 것은 왜 이곳을 파괴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슬람의 흔적을 찾아 코르도바의 대모스크에 갔었지만 스페인에 의해 파괴되어 성당으로 변해버린 모습만 찾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 알람브라 궁전의 내부는 거의 파괴된 곳이 없다. 1700년대 카를로스 5세가 세웠다는 교회 건물이 궁전 내부에 하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코르도바의 모스크 파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부를 파손시킨 흔적이 없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후에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도 이곳은 파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메수알 궁전은 정교한 장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아랍어 글자와 아라베스크 문양, 벌집의 형태로 조각되어 있는 궁전 내부는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경험하지도, 꿈꾸어 보지도 못한 신비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착각이 든다. 그 착각의 절정에 사자의 정원이라 불리는 하렘과 손님들을 접대했다는 대사의 방이 있다.


손님들을 접견했다는 대사의 방 사이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그 물 사이로 궁전 건물이 비치는데 그 모양이 흡사 인도에서 보았던 타지마할을 연상시킨다. 흰 대리석의 타지마할이 물에 비쳐 보일 때 그 아름다움에 경아랑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스페인은 가지 못한다며 못내 서운해하던 그 녀석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스페인에서 기념품이라도 사다줘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짜로 듣는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 알람브라 궁전에서 자주 보이는 것이 샘물이지요? 아랍 사람들에게 물은 생명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작은 연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도 호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궁전을 다 완공하고 연회를 베풀 때 그들은 초청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진리의 샘물이 나오는 호수에 배를 타고 들어오세요. 연못 양쪽으로 조각된 이 열쇠 형태는 진리의 샘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 하나 정보를 드리자면, 인도 타지마할에서 볼 수 있는 연못 속에 비친 궁전의 모습은 여기 알람브라 궁전을 모방한 것입니다."


실제로 타지마할의 모델이 된 것이 알람브라 궁전이라고 하니 자못 놀랍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많이 비슷하다고만 생각했다. 물웅덩이를 호수라고 생각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호수를 지나 대사의 방으로 들어가니 대사의 방에 있는 천장은 또 하나의 놀라움 그 자체이다. 마치 하늘에 있는 별자리를 다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이 천장은 아랍인이 사막에 살며 이상향으로 여겼던 우주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별 모양으로 새긴 것은 모두 야광인데 천장 아래로 난 12개의 창문과 밖의 창에서 들러오는 빛으로 야광효과를 냈다고 한다. 후에 스페인 사람들이 이 곳을 보수하면서 뜯어냈으나 그 원래의 야광 기술은 복원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신화 이후의 신화, 북아프리카

한니발 장군을 만나다

모로코에서는 이븐 바투타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역 이름에 등장하는 한니발을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페니키아의 해상 식민지인 카르타고,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을 치른 곳, 그 유명한 카르타고를 튀니스에서 찾은 것은 생각지 못한 값진 수확이다.



카르타고 한니발 역에서 야자수 가로수 길을  따라가면 바로 눈앞에 지중해가 펼쳐진다. 그 지중해가 펼쳐진 이곳 카르타고는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부터 있었던 도시이다. 기원전 2000년 전에 알파벳의 기원이 된 문자를 사용한 페니키아인(현재 레바논 지역)이 해상 식민지로 개척한 카르타고는 이후 지중해권 상업의 요충지로 번성했고,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세 차례나 역사를 뒤바꾸는 큰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이 그 유명한 한니발 장군의 포에니 전쟁이다. 만약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를 이겼다면 세계 역사의 중심은 로마가 아니라 튀니지의 카르타고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게 아니라 튀니스 중심가의 식당 골목에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많아 보인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파는 곳이 많은데, 로마와 튀니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서로 주고받았는지를 짐작할 만한 풍경이다. 로마 유적지는 많이 봐서인지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다. 안토니우스의 목욕탕이 있었다는 자리에서 기둥 두 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이제 무뎌져 가는 것인지 더운 날씨에 기운이 없는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


사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죽어버린 로마의 유적지가 아니라, 카르타고를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패전지장의 장수임에도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는 한니발 장군과 오페라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카르타고인으로 기억되는 전설 속의 카르타고 여왕 디도! 그리고 그가 사랑한 트로이의 아이네아스 장군, 그리고 또 한 명인 교부철학자인 창시자 성 어거스틴! 흔적만 남은 카르타고의 유적지 안에서 나는 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번성했던 과거의 그 카르타고를 다시 살려내고 싶을 뿐이다.


디도와 아이네아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베르길리우스가 안내하고 천국은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안내한다. 글을 쓰는 것이야 작가의 마음이지만 솔직히 『신곡』만큼 제멋대로 라고 느껴지는 책도 드물다. 작가의 기호와 선호도에 따라 심하게 차별 받는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저 불쌍할 뿐이다.


신곡에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극한 고통이 주어지는 상지옥에 가있으며, 소크라테스도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종교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인지 문학 작품 속에서 미리 읽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신곡』에 등장하는 베르길리우스는 이탈리아의 대시인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아이네이스』인데, 이 이야기는 이규보가 『제왕운기』에서 단군신화를 그린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탈리아의 건국 신화를 노래한 것이다. 음악가 퍼셀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근거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오페라의 제목이 바로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as〉이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이야기는 이렇다.


디도는 티베의 왕 벨루스의 딸이다. 그녀의 오빠인 피그말리온이 왕위에 올라 디도의 남편을 숙청하자 그녀는 기원전 814년 카르타고로 망명한다. 트로이 전쟁에 패한 후 각지를 떠돌던 트로이 후손인 아이네아스가 배를 타고 카르타고로 오게 되고,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제우스의 명령으로 아이네아스는 디도를 남겨두고 혼자 로마를 떠나 로마의 시조가 되고, 홀로 남은 디도는 상심 끝에 자살의 길을 택한다.


아시아의 힘

재미있는 것은 로마와 그리스인의 시조가 모두 아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유럽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에우로파는 페니키아 여성이고, 카르타고를 건설한 디도 여왕도 아시아 사람이다. 로마의 시조로 보는 아이네아스도 트로이인이니 지금의 터키 사람이 아닌가. 알파벳의 기원이 된 문자를 만든 이들도 아시아에 자리한 페니키아인이다. 이들이 만든 표음문자가 그리스에 전달되어 현재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와 같은 유럽 문명권의 어원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아시아에 있고, 세계 종교의 발상지와 종교의 창시자가 모두 아시아 사람이며, 유럽의 시조와 알파벳을 만든 사람들 역시 아시아인이다. 현대 서양 문명을 만들었다고 보는 자본주의 이론의 창시자이자,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이자 『자본론』의 저자인 카를 마르크스,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 앨런 그리스펀, 경제학자의 시조 피터 드러커, 현재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인 MIT대학의 폴 새뮤얼 잭슨 등도 모두 아시아의 유대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권 국가사람들의 자기 비하의 근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역사의 흐름에서 생각해보아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현대의 역사 속에서 유럽이 그 흐름을 주도하여 아시아에 대해 그렇게 인식시키고 각인시킨 것이 아니고서야 우리 스스로 작아질 그 어떤 이유가 없음은 거듭 말하지만 자명한 사실이다.


유럽의 어원도 에우로파에서 유래되었다. 이제 궁금한 것은 아시아의 어원이다. 아시아의 어원은 앗쑤라는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터키에서 현지 가이드 경력이 있는 김상진씨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아시아라는 지명이 터키 동무에 실제 있었다고 한다. 서방에서 동양을 부를 때는 그 소아시아 (터키 동부지역)를 일컬었으며, 그것이 널리 전파되어 터키의 동쪽 지역 전부를 아시아라는 명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나는 소아시아(Asia Minor)에서 연유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에우로파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까운 페니키아(레바논)여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카르타고 유적지로 돌아가보자.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끄는 유적지가 하나 있어 잠깐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비르사(Byrsa)언덕이라는 곳이다. 카르타고의 토속신은 남신 바알 하몬과 여신 타닛이다. 이 두 신은 그리스의 제우스와 헤라에 비견되는데, 여신 타닛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다. 카르타고인들은 이 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그들의 신앙관과 풍습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들을 하느님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하지 않았는가) 카르타고 박물관에 있는 어린이관을 보니 마냥 수긍할 수만은 없는 것이 소름 끼친다. 어린아이까지 죽여가면서 신을 추구해야 했는지, 바알신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이의 시체였는지를 바알신이라 생각되는 신상 앞에서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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