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쓸데없는 행동은 없습니다

   
우도 베어 지음(역:장혜경)
ǻ
갈매나무
   
14800
2022�� 05��



■ 책 소개


아이의 지혜로 어른이 자란다
아이와 어른은 어떻게 교감하고 성장하는가?

“어떤 아이를 볼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막막하다면, 그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아이의 막막한 심정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의 지혜’다. 그들이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공명이 곧 신호인 셈이다. 이는 아이가 건네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들의 아름답고 황홀한 모험의 세계에 동참할 기회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른에게도 도움이 된다. 교감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아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의 소소한 마음과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알아준다는 뜻이다. 그 감정에 공명하고 그 모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 저자 우도 베어
교육학자이자 상담심리 전문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건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미술치료사로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아내 가브리엘레 프릭베어와 함께 “창의적 치료를 지향하는 미래연구소”를 공동 설립하여, ‘신체의 기억’을 불러냄으로써 치유에 이르고자 하는 ‘창의적 신체 테라피’ 개념을 개발해왔다. 최근에는 트라우마, 섭식장애, 치매 등 인간 내면의 상처가 몸을 경유해 나타나는 문제를 음악과 춤 등 예술을 매개로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대표 저서로, 《창의적 신체 테라피》, 《감정 연구》, 《심리 치료와 존엄》 등이 있고, 국내에는 《아름답거나 혹은 위태롭거나》, 《코로나로 더 힘겨운 어린이 청소년에게》 등이 번역되어 있다.

■ 역자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 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내 인생 내가 결정합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처음 익는 여성 세계사》, 《숲에서 1년》, 《나무 수업》,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들어가는 글 아이의 지혜로 어른이 자란다

1부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아이의 감정세계
- 아이의 행동 이해하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 자기효능감
낯선 세상을 향하여 - 호기심
꼭 지켜봐 주리라는 믿음 - 숨기와 찾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 - 짓기와 쌓기
“아이의 공명하는 지혜를 탐구하세요”

사소하지만 너무 소중한 - 비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미소
누구나 한번쯤 팬이 된다 - 팬심
“어릴 적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어른은 잃어버린 심장 한 조각 - 감탄
같은 순간, 다른 경험 - 시간 감각
“끈기 있게 질문하고 기다려주세요”

속임수가 아닌 상상일 뿐 - 거짓말
“내가 제일 잘나가!” - 잘난 척
“쓸데없는 행동들에 단서가 있어요”

방해받지 않으려는 사투 - 생활 리듬
아직은 감추지 못하는 나이 - 자기중심성
여자애가 반짝이에 ‘미치는’ 이유 - 취향
“당당한 고집을 허락하세요”

이기는 게 전부는 아니다 - 전쟁놀이
‘멍때리기’라는 축복 - 몽상
“노는 게 제일 좋아!” - 모험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세요”

세상에 유치한 놀이는 없다 - 역할놀이
전문가가 되어보는 첫걸음 - 수집
사람한테 반하는 멋진 경험 - 우상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세요”

2부 몰라서 이해하지 못한 아이의 진짜 속마음
- 아이 마음 어루만지기

그냥, 가만히, 같이 - 기대기
하이파이브의 짜릿함 - 밀기
자유롭고도 내밀한 쾌감 - 간지럼
“‘몸으로 만나는 기적’을 느껴보세요”

세상을 손안에 쥐어보는 일 - 붙잡기
“나 잡아봐라”의 즐거움 - 붙잡히기
“긴장을 풀고 부담을 덜어주세요”

집안의 침묵이라는 블랙홀 - 금기
나보다 부모를 보호하려는 안간힘 - 억압
친숙한 존재가 사라졌을 때 - 변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 무력감
““괜찮아”라고 애써 꾸미지 마세요“

다만 조심하라는 신호일 뿐 - 불안
자기주장과 자존심 그리고 자존감 - 경쟁심
“아이에게 ‘부분적’으로 솔직하세요”

맘껏 소망을 품는다는 것 - 무절제
“나는 강해!”에 숨은 절망감 - 몸싸움
“내려놓기를 연습할 시간을 주세요”

“엄마 바보!”에 담긴 생명력 - 반항
“너는 내 편이야?”라는 질문 - 편 가르기
통제 상실은 모두가 겪는 일 - 야뇨증
“아이에 대해 본인 앞에서 이야기하지 마세요”

무조간 바닥부터 드러눕는 이유 - 떼쓰기
대책 없이 타조처럼 행동한다면 - 무시
“슬픈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 공명
“세 가지 존중을 반드시 기억하세요”

마치는 글 선물 같은 어른 되어주기

 




아이에게 쓸데없는 행동은 없습니다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아이의 감정세계

어른은 잃어버린 심장 한 조각 - 감탄

몇 년 전 뒤셀도르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름이었다. 나는 빨간불에 걸려 사거리에 정차해 있었다. 더워서 차 창문을 열어 놓은 채였다. 교통량이 너무 많아 살짝 짜증이 났다. 바로 옆 인도에 꼬마 하나가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 아이가 오른쪽에서 달려와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와, 차다!” 이어 또 한 대가 따라오자 그것도 가리키며 소리쳤다. “와, 차다!” 나는 아이의 감탄에 감동했다. 그리고 저렇게 감탄해본 적이 언제였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엘리자베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다. 아직 말은 못 해도 멜로디는 구분할 줄 알아서 노래를 따라 부르려고 애를 쓴다. 다시 아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리가 날 때마다 좋아하며 활짝 웃는다. 아이는 소리를 모방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려고, 화음을 맞추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다시 멈추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헤 벌린 채 감탄한다.


***


감탄은 원래 아이들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능력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감탄의 능력은 금세 퇴색하고,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탄을 그저 아이들의 영역으로 여깁니다. 실제로도 감탄하는 아이는 많이 보지만 감탄하는 어른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감탄이란 뭘까요? 감탄은 세상을 내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감탄은 놀람입니다. 감탄은 익숙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뜨는 해, 저녁노을, 습관처럼 듣는 음악의 멜로디에도 불현 듯 감탄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감탄이 단순히 놀람의 의미만 가지는 건 아닙니다. 감탄은 세상으로 들어가는 정서적 문이자 호기심의 시작이며, 안팎으로 모두 작용합니다. 감탄하는 아이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엽니다. 아이의 감탄은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의 한 조각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작업입니다.


감탄은 연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육도 수업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허락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여기가 최고!”


아주 오래전 자녀들을 데리고 서커스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마법 같은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광대가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 가지고 노는 모습에 아이들과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탄은 뒷좌석에 앉은 아이의 한 마디로 그만 비눗방울처럼 팍 터지고 말았습니다. “저건 아무것도 아냐. 훨씬 더 큰 것도 봤어.”


지금도 나는 비교적 자란 아이들, 특히 청소년들한테서 그런 식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비교를 통해 감탄을 망치는 말들. 아이들은 종종 인터넷과 기네스북을 들먹이며 더 크고, 더 넓고, 더 대단한 장면과 사진이 있다고 떠벌립니다. 그들은 유일하고 유의미한 사건만이 중요한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더 크고 더 좋은 것과 비교합니다. 이런 비교가 감탄을 죽이고 감탄을 경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감탄은 경험과의 직접적이고 열린 만남이기에 일체의 비교를 벗어납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움을 어찌 비교한단 말입니까? 동물원 코끼리의 유유자적한 걸음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의 마법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감탄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감탄은 직접적이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경험입니다.


더 큰 사건, 더 대단한 기록, 더 엄청난 충격을 쫓는 사냥은 다시금 감탄을 느껴보려는 어리석은 경쟁입니다. 어쩌면 그런 경쟁에도 직접적인 감탄을 느껴보고픈 수많은 사람들의 동경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탄은 경쟁과 노력을 벗어납니다. 감탄하는 아이는 심장의 한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자신이 가진 그 모든 감정으로 세상을 직접 마주하고 세상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능력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이의 숨은 지혜

아이가 오래오래 감탄할 수 있으려면 우리 어른들이 함께 감탄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아이의 감탄에 전염되어 보기라도 해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감탄하세요. 언제 마지막으로 감탄했는지 한번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무엇 때문에 감탄했나요?


같은 순간, 다른 경험 - 시간 감각

아빠가 다비트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한다. “그런데 지금 하던 일을 마쳐야 갈 수 있어. 10분밖에 안 걸리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다비트에게 설명한다.


3분이 지나자 아이가 칭얼대며 아빠에게 묻는다. “10분 지났어?” 2분 후에 또 묻는다. “이제 10분이야?” 아이는 계속 묻는다. 10분이 너무 길다. 아빠에게는 금방이지만 다비트에겐 영원이다.


셀마는 반대다. 셀마는 꼼지락거린다.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잠깐 인형놀이를 해야 한다. 정말 잠깐일 뿐이다. “나 금방 갔다 올게.” 인형들에게 작별 인사도 해야 한다. 엄마는 시간이 없다고 셀마를 재촉한다. 엄마는 얼른 셀마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한다. “알았어. 2분만.” 셀마가 대답한다.


셀마는 또 노느라 시간을 까먹는다. 엄마가 짜증이 나서 말한다. “왜 엄마를 힘들게 해? 어쩌자는 거야, 유치원 안 갈거야?”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건 셀마도 안다. 셀마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주 잠깐 인형놀이를 한 것뿐인데......


***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을 압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초, 분, 시, 일로 잰 시간입니다. 이 객관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8시에 출근을 한다는 말은 8시에 일터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나란히 주관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간 경험’이라 부릅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가기도 합니다. 시간은 우리를 수렁에 빠뜨려 허우적대거나 헤매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러고는 혼자서 질주하듯 빠르게 달아나기도 합니다.


아이의 시간 경험은 어른들과 다릅니다. 다비트처럼 빨리 아빠와 맛난 것을 먹으러 가고 싶을 때는 시간이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셀마처럼 잠깐만 인형놀이를 할 때는 제트기처럼 빠르게 흐릅니다. 셀마가 주관적으로 경험한 인형놀이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지만 엄마의 시간은 너무도 느립니다. 셀마에겐 주관적으로 경험한 시간이 중요한데 엄마는 자꾸 시계를 쳐다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 경험이 충돌하면 아이도 어른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 경험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다고 해서 갈등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는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기만의’ 시간을 사는 것일 뿐......


아이의 숨은 지혜

시간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주세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지? 너한텐 금방이지만 나한텐 엄청 길게 느껴져.” 아이의 시간 경험을 이해하면 아이도 우리의 시간 경험을 이해할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속임수가 아닌 상상일 뿐 - 거짓말

페리둔이 급식실에서 떠든다. “우리 아빠는 못 고치는 차가 없어. 스패너 하나만 있으면 돼. 우리 집 스패너로 세상 모든 자동차를 고칠 수 있어.”


일로나가 입학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가 묻는다. “오늘 숙제가 뭐야?” 일로나가 대답한다. “없어요.” 엄마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일로나가 다시 대답한다. “내일이 환경의 날이어서 오늘은 우리 집에서는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만 하면 돼요. 그게 숙제야.” 들어보니 그럴 듯해서 엄마가 다시 묻는다. “그래? 살펴 봤어?” 일로나가 대답한다. “네. 분리수거랄 잘하고 있어요. 그것도 환경을 돕는 거잖아요.”


아빠가 퇴근하자 엄마가 일로나의 학교에서 환경의 날을 정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아빠가 껄껄 웃는다. “우리 딸 작가 시켜도 되겠는걸. 잘 지어내는데.” 엄마가 깜짝 놀라 아빠를 돌아본다. 일로나가 지어냈다고? 그럼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페터가 유치원에서 반짝이는 로봇을 가져온다. 유치원 마당에서 보았는데 마음에 들어서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어 왔다. 부모님이 어디서 났냐고 묻자 아이는 당황한다. 그냥 집어 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한다. “선물 받았어.”


***


위의 아이들이 한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대부분이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야단을 칠 겁니다. 아빠가 세상 모든 자동차를 스패너 하나로 다 고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언젠가 한번 아빠가 스패너로 자동차의 소소한 고장을 수리한 적 있는데 그 광경을 본 아이는 크게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탄의 심정을 ‘우리 아빠는 뭐든 다 고칠 수 있다’라고 과장합니다. 적어도 아이에겐 그것이 진실이니까요.


일로나는 평소 엄마와 선생님이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숙제를 하기 싫어지자 ‘영리한’ 방식으로 숙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까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환경 이야기를 지어내 엄마에게 들려줍니다. 부모님의 관점에선 아이의 말은 거짓입니다. 일로나의 부모님은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어쨌든 일로나의 숙제는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일로나의 관점에선 그건 아름다운 아야기입니다. 게다가 주변의 반응도 좋습니다.


페터의 경우는 약간 다릅니다. 아이는 장난감을 그냥 집어 온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적어도 그게 잘한 짓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들어서 도무지 그대로 둘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그 순간 로봇을 발견한 것이 선물이라고 생각을 바꿉니다. 예전에 유치원 친구에게 선물해준 적도 있으니, 아이는 장난감을 그냥 집어 왔다는 사실과 선물을 받았다는 주장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이의 입장에선 의도적인 속임수가 아닐뿐더러 거짓말도 아닙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저 진실을 살짝 비틀었을 뿐입니다. 아이의 마음에서 소망과 진실이 뒤섞입니다.


우리 인간은 상상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상상력이란 백일몽을 포함한 꿈과 이념, 내면 이미지, 지어낸 이야기, 환상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상상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체험 욕구에 속합니다.


이미지와 환상은 실제 경험의 인상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실제 경험 너머를 상상하기도 하므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입니다. 특히 아이의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늘 불충분한 현실 인식과 불완전한 경험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처럼 인식의 빈틈을 상상으로 메웁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이 못 들은 부분을 상상으로 그려 메우는 대부분이 현실의 문맥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요.


당연히 우리 어른들은 아이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직접 모범을 보일 일이지, 아이의 상상을 거짓말로 몰아붙이거나 야단을 쳐서 고칠 일은 아닙니다. 특히 아이가 현실을 채색하며 현실과 놀이를 하는 중엔 절대로 그걸 거짓말이라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몰라서 이해하지 못한 아이의 진짜 속마음

다만 조심하라는 신호일 뿐 – 불안

멜리는 잠을 이룰 수 없다. 누군가 방에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하다. 귀신일까? 나쁜 범죄자일까? 아이는 그림자를 본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커튼 때문에 생긴 그림자다. 도로변 가로등 불빛이 멜리의 방으로 비쳐든다. 이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 모르니 멜리는 계속 무섭고 겁이 난다.


***


아이의 경우 불안의 만성화는 아이의 인격으로까지 흘러들어 결국 인격을 좌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 아무것도 아닌 양 “괜찮아”라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엄마 아빠는 아이를 안심시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할 테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이 아니니까요. 아이는 어른들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어른들의 도움도 선뜻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불안이 심해서 아이가 그 불안에 전염되는 경우도 불안이 만성화되는 지름길입니다. 부모가 너무 불안에 떨다 보니 그 감정이 아이에게까지 뻗어 나가는 겁니다.


부모는 아이의 모델입니다. 아이가 느끼는 집안 분위기는 부모가 결정합니다. 따라서 어른들의 불안 역시 아이의 마음으로 스며들고 둥지를 틀어 아이에겐 불안을 느끼는 상태가 만성이 됩니다. 이럴 땐 아이보다 먼저 부모를 도와야 합니다. 부모가 불안을 떨쳐내야 아이도 그럴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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