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최민식
ǻ
레몬북스
   
15000
2021�� 10��



■ 책 소개


자녀 양육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진짜 양육이 시작된다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의 최고 조건은 ‘좋은 엄마’를 만나는 것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그만큼 어떤 엄마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평생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꿈꾸는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거나 부모 자격증을 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따뜻한 품을 제공하되 적절히 좌절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엄마, 너무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기보다 실수를 통해 성장해 가는 엄마가 강하고 균형 잡힌 아이를 만든다. 완벽한 엄마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아이의 실수를 눈감아주지 못해 오히려 성장에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육아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제때 잘 안아주고, 자주 눈 맞추고 웃어주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엄마가 아이의 성장에 훨씬 더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불안한 부모들이 들으면 좋을 마음 치유와 심리 성장 솔루션을 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 이상으로 자녀를 기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엄마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세상을 보는 좀 더 올바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 저자 최민식
대구 계성고를 나와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쌍용 그룹 계열사 쌍용 화재 특종업무과장, 교육부과장을 지냈으며 쌍용 중앙연수원에 3년간 파견되어 그룹 신입사원교육팀장으로 참여했다. 12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목자의 길을 가는 중, 상담학과 정신분석학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심리치료연구소(현 서울대상관계연구소)에서 심리치료사 1기로 졸업했다.샌프란시스코 신학교(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상담학 석사를 취득(2003년)한 후, 숭실대 일반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기독교철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2017년).

현재〈공간과 공감 심리상담소〉를 개설하여 22년간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하고 있으며, 심리치료사 및 상담사 그리고 정신분석학 및 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을 위해 〈공간과 공감 정신분석 아카데미〉를 매주 화요일 진행하고 있다. 한신대학교 정신분석 대학원 외래교수로 있으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부부이마고 상담과정 강사(대상관계이론파트 담당)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남서울 양강교회 담임목사로 작은 목회를 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전범(典範)을 따라 철학과 신앙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자기(Self)’를 찾아가는 영적·정신적·신체적 인격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아기를 기다리는 딸에게
◆ 출산, 처음에는 누구나 설레면서도 두렵다 
◆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 아기는 배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나
◆ 엄마는 아기를 양육하고, 아기는 엄마를 양육한다

PART 2 아기는 엄마의 말을 다 듣고 있단다: 말하기로 안아주기
◆ 아기에게 세상을 열어주는 첫 만남, 말하기: 상징적 탯줄 자르기 
◆ 아기의 옹알이와 몸짓은 엄마에게 전하고자 하는 언어다
◆ 엄마의 말하기는 양육 실패를 바로잡는다 
◆ 말하기를 통해 엄마는 자신을 대상으로 제공하고 아기를 대상화시킨다
◆ 태어나면서 포기되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줄 수 있는 선물 

PART 3 아기는 엄마의 품이 세상이고 우주란다: 품으로 안아주기
◆ 아기의 몸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담고 있다 
◆ 조각나 있는 아기의 몸은 엄마의 품 안에서 하나의 몸이 된다
◆ 아기는 엄마 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머물 수 있어야 한다
◆ 내장에서 피부까지 확산하는 생명 에너지

PART 4 감각 발달이 중요하단다: 몸으로 안아주기
◆ 엄마의 따뜻한 품, 아기의 감각을 통합하다 
◆ 천재성과 평범함
◆ 감각 상실, 피부 경계 상실의 의미

PART 5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거울이라고 생각한단다: 거울 반영으로 안아주기
◆ 엄마의 얼굴은 곧 아기의 얼굴 
◆ 아기는 엄마의 얼굴에서 자기 얼굴을 본다
◆ 엄마의 거울 반영을 받지 못한 아이들 

PART 6 ‘자기’는 곧 ‘존재’란다: 존재로 안아주기
◆ 존재가 먼저다
◆ 사회적 요구냐 존재냐 

PART 7 유아에게 충분하지 않으나 필요한 아빠: 아빠의 안아주기
◆ 어머니의 딸 vs 아버지의 딸
◆ 선택의 문제 
◆ 아빠는 엄마가 아니다 

에필로그 | 생생한 정동을 만들어가는 첫 1년 
참고문헌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아기를 기다리는 딸에게

출산, 처음에는 누구나 설레면서도 두렵다

여성이 아기를 가지면 두 가지 정서를 느낀다고 한다. 먼저 새 생명을 가진 데 대한 벅차고 설레는 기분,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두려움이다. 먼저 새 생명이 가져다주는 설렘은 여성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들에서 시작된다.


아기를 잉태하는 과정에는 설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남모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산후우울증 때문이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더더욱 출산을 미루게 되고, 자꾸 미루다보면 아기를 낳아야 할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알고 있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보 중 대다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산후우울감은 아기에게서 오는 것이다</P> 산후우울감은 아기가 출산 후 3~4일 만에 자신의 탄생에 대해 가지는 우울감이다. 즉 산후우울감은 산모가 아니라 아기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기의 관점에서 자신의 출생은 매우 서운한 일이다. 아기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으며, 이러한 ‘지고(地高)의 상태(the supreme state)’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상실감을 가진다. 산후우울감은 곧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당한 데서 오는 우울한 느낌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 상승 욕구’를 가지고 성장과 성숙을 지향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그 첫 출발점이 낙원 같은 자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인간’의 차원으로 진입하는 ‘탄생 사건’이다.


아기가 자신의 배 속 낙원을 떠나보내는 애도의 감정이 ‘우울감’으로 나타난다. 아기를 보호하는 엄마도 이 기간에는 아기의 애도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애도하는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삼칠일(21일) 동안은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통과의례가 문화적으로 행해져 왔다. 이 애도 기간에 아기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즉 태중의 아기는 죽고 동시에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아기는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기의 우울감을 왜 엄마는 자신의 산후우울감으로 느끼는 걸까? 출산 후 엄마와 아기는 심리적, 정신적, 영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동안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 융합되는 현상을 겪게 된다. 아기가 느끼는 우울감을 엄마도 똑같이 느끼게 됨으로써 아기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출산 후 엄마는 아기의 감정과 느낌, 생각 등을 공유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아기의 약함과 생소함과 낯섦과 관련된 감정들을 가져오게 되고, 아기는 엄마의 힘과 여러 가지 능력 그리고 안전한 감정과 포근함과 공감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처럼 산후우울감은 엄마와 아기 사이의 최초의 의사소통의 표현인 셈이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완벽함이란 신에게 속한 영역이라면, 실패는 인간의 속성이다. 완벽한 양육은 없을뿐더러 오히려 완벽한 엄마는 나쁜 엄마이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더 나은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하고, 실패를 통한 성공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출산 후, 첫 6개월이 지난 후 아기는 ‘엄마가 안 해주니까 나 혼자 힘으로 해야겠네’ 하며 스스로 해내기 위한 도전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스스로 욕망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실패는 성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완벽함은 회복 불가능한 실패를 가져다준다.


‘너무 좋은 엄마’는 나쁜 엄마다

우리 사회에도 ‘너무 좋은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치 이상적인 엄마의 모델처럼 회자된다. 그런 엄마는 자녀의 일정을 일일이 짜주는 것은 기본이고, 차량으로 등하교, 학교와 학원 간, 학원과 학원 간 이동까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


안타깝게도 대개 그런 엄마는 자신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거나, 공부를 잘했어도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 자녀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공부, 엄마의 꿈을 실현해 드릴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엄마라 할지라도 자녀 양육에 있어 실패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엄마는 자녀 양육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덜 실패하도록 노력하면 된다. 물론 엄마가 해서는 안 되는 큰 실패는 아기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만, 작은 실패는 자녀 스스로 자라게 한다.


그렇다면 해서는 안 되는 큰 실패는 무엇이고, 해야 마땅한 작은 실패는 무엇인가? 출산 후, 첫 3~6개월 동안 엄마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즉 아기가 요구하는 대로 엄마가 맞춰주되,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는 아기를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뜻하게 돌봐줘야 한다. 이때 아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의 ‘말하기’ 와 엄마의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말을 다 듣고 있단다: 말하기로 안아주기

아기의 옹알이와 몸짓은 엄마에게 전하고자 하는 언어다

출산 후 탯줄을 잘라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아기는 자기 입으로 젖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배 속에서는 탯줄을 통해 수동적 위치에서 받아먹었지만, 출산 후에는 아기가 능동적으로 입을 가지고 직접 젖을 빨아 먹어야 한다. 이 순간부터 아기는 스스로 주체적 위치에 있기 되며, 동시에 인간화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이때 입과 혀는 젖을 먹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만, 장차 입은 먹기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을 하기 위한 것으로 발달해 갈 것이다.


아기의 옹알이, 울음, 몸짓은 엄마의 말하기로 완결되어야 한다

탯줄이 거세되고 배꼽이 닫히는 순간 첫울음이 터진다. 이제 입은 탯줄을 대신하게 된다. 탯줄은 빨아들이기만 하는 관이지만 입은 빨아들일 뿐만 아니라 내뱉기도 하는 기관이다. 아기는 입을 통해 옹알이를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표정을 동반해 웃기도 하면서 급할 때는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아기는 입으로 할 수 없으면 몸짓을 통해 자기 의사를 전달한다. 아기의 입과 몸의 여러 가지 신호와 기능들은 엄마의 ‘말하기’를 통해 표현되면서 의사소통의 차원을 높인다. 그리하여 아기의 옹알이, 몸짓, 울음, 고함 등은 엄마의 말하기로 완결되어야 한다.


엄마는 아기가 보내는 여러 가지 신호를 해석해 내고 해석한 대로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그 해석을 아기에게 ‘말하기’로 확인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아기가 보내는 여러 가지 신호를 엄마는 언어로 바꿔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엄마와 아기 사이에서 상호 전달되는 공감의 시작이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 엄마는 그 옹알이를 말로 바꿔준다. 그 과정을 통해 아기는 엄마의 언어를 배운다. 아기는 엄마의 말하기를 듣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하, 내가 한 울음(옹알이)이 바로 저런 뜻이로구나.’ 아기는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져도 옹알이나 몸짓을 계속한다. 그것은 엄마가 사라져 보린 무서운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옹알이하는 이유, ‘나도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요’

만일 아기가 옹알이를 잘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배 속에 있을 때, 부부간에 대화가 없었던 경우, 둘째, 아기가 태어났지만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 아기의 몸짓 옹알이에 반응해 주지 않는 경우, 셋째, 엄마 아빠 간에 지속적인 갈등이 있어 아기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힘든 상황 등이다.


아기의 의도를 엄마 아빠가 알아채지 못하고 둘만의 대화를 계속해 나가면, 아기는 엄마에게 장난감이나 그런 유사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 엄마는 아기가 그런 행동을 할 때는 ‘나도 대화에 끼어들고 싶다’라는 표현을 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엄마는 이런 행동을 하는 아기에게 반응해 줘야 한다. ‘네가 지금 엄마 아빠한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로구나. 아이 기특해’ 또는 ‘지금은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것을 좀 듣고만 있어주면 좋겠어’라고. 그리고 아기가 서운하지 않게 안아줄 필요가 있다.


엄마의 말하기는 양육 실패를 바로잡는다

엄마의 ‘말하기’가 멈추면 아기는 몸을 사용한다

아기는 엄마가 말하는 것을 자기가 말하는 것으로 지각한다. 그것은 아기의 여러 가지 신호들을 엄마가 말하기로 바꿔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기는 이런 식으로 엄마와 소통한다. 그런데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 아기가 생기발랄하게 신호를 보내던 몸의 생생함은 시들어버린다. 아기가 엄마와 소통하지 못하면, 아기의 지각은 몸 안에 쌓이게 된다. 그 결과 아기 몸은 딱딱해지고 사물처럼 된다.


유아기에 아기의 신호 보내기와 엄마의 ‘말하기’를 주고받기를 하지 못한 아이는 사물 취급을 당한다. 이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의사소통을 위해 ‘말하기’가 불편해지고,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수월하게 된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지나간 ‘미투’ 사건을 일으키는 남자들은 이러한 유아기 배경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양육 실패를 바로잡는 엄마의 ‘말하기’

엄마들의 자녀 양육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아기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온다. 엄마들의 마음속에는 자녀 양육에서 ‘한번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있다. 자녀 양육 과정에서 엄마가 뭔가 잘못하고 있으면, 아기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엄마에게 보낸다. 그래서 아기는 먹은 것을 토하거나 밤새워 운다거나 비명을 지른다. 아기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치면 자폐증 증상이나 소아 정신분열 증상을 보기도 한다.


어느 부모나 자녀 양육을 완벽하게 잘 해내지는 못한다. 실수를 덜 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저질러진 실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에 자기 성찰을 잘 해온 엄마라면 이전에 아기에게 저지른 실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엄마는 그래도 의식이 어느 정도 깨어 있는 엄마다. 돌토가 제시하였듯이, 양육 실패의 문제는 아기에게 엄마의 ‘말하기’로 풀어가야 한다. 아기에 대한 엄마의 실패나 문제 행동들에 대해 엄마는 그때의 상황을 아기에게 잘 설명하여야 하며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할 것이 있으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돌토는 이런 방식으로 아기에게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잘 통하는 시기가 세 살까지라고 말한다. 왜 세 살인가? 세 살이 지나면 아이가 상징적 언어(사회적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엄마는 아기에게 사회적 장벽 없이 심리적인 전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아기는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엄마가 일으키는 심리적 전이에 대해 사회적 방어벽을 세운다.


아이들의 말이나 그림, 행동들은 여전히 의미가 함축되어 상징화된 것들이다. 사춘기 이전의 아동기에도 아이들은 그림이나 놀이에서 내면의 결핍과 상처를 상징화하여 많이 드러낸다. 그러나 유아기로 내려갈수록 아기의 상징은 더 깊은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그 말은 어릴수록 치료가 더 수월하다는 뜻이다.



감각 발달이 중요하단다: 몸으로 안아주기

엄마의 따뜻한 품, 아기의 감각을 통합하다

엄마의 따뜻한 품에서 아기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발달해 간다. 건강한 엄마는 유아 초기부터 아기의 감각이 정상적으로 발달한다면 그 아기는 최소한 자폐를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엄마는 아기에게 좋은 품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 아기는 ‘감각’을 획득하게 된다. 아기는 감각을 발달시켜 가면서 자연스럽게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을 가지게 된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몸에 생체 시계를 지니고 나온다. 그래서 아기가 젖을 먹고자 하는 시간이 엄마가 생각하는 시간과 다르다. 엄마의 시간 개념은 시계로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이다. 아기가 엄마의 품을 통해 감각을 획득해 가면서 몸의 생체 시계는 차츰 물리적 시간에 가까워진다.


같은 원리로, 엄마의 품은 아기의 공간 개념에도 변화를 준다. 아기는 우주에서 몸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우주적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가 엄마의 품을 통해 한 개인이 지닌 몸의 한계 내에서의 공간 개념, 즉 지구적 공간 개념을 가지게 된다.


모든 감각은 통합되어야 한다

사람은 ‘우주적 존재’로 태어난다. ‘우주적 존재’라 하니 대단하게 들릴지 몰라도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내 몸의 존재는 우주 안에 하나의 점으로도 찍을 수 없을 만큼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엄마의 품 안에서 ‘지구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 된다. 우주적 존재가 지구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우주적으로 볼 때 보잘것없는 존재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아기가 존재의 중심을 잡는 순간은 바로 엄마의 품 안에서 감각이 통합되는 순간이다. 인간은 육체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감각이 통합됨으로써 하나이 완벽한 개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감각의 통합은 인간의 정신을 ‘나’라는 개체 밖으로 벗어나기 못하도록 든든하게 지켜주는 경계를 정해준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존재 규모만큼 살아가면 될 뿐, 우주적으로 거대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특별하게 사는 것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감각이 잘 통합될 때 거기서 온전한 감정이 나온다. 그래서 영어 feeling이라는 단어 안에는 ‘감정’과 ‘감각’의 의미가 다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분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둘은 몸에 견고하게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감각은 각각 구멍을 통해 작동하지만, 감정은 온몸에 퍼져 있다. 감각과 감정은 개인의 몸을 지키는 최후의 교두보이다. 이 둘(감정과 감각)은 그 사람의 정신과 신체를 결합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만일 감각이나 감정에 문제가 발생하여 정신과 신체의 결합이 풀려버리면 정신은 피부 경계를 뚫고 외부 세계로 퍼져나가 버린다. 그때 당사자는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엄마가 아기를 따뜻한 품으로 품어준다는 것은, 엄마가 홀로 있는 아기가 느끼는 바로 이런 공포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따뜻한 엄마의 품에서 아기는 감각을 얻고, 그 감각을 통합하며, 그 감각을 바탕으로 감정을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그 아기는 지구 위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거울이라고 생각한단다: 거울 반영으로 안아주기

아기는 엄마의 얼굴에서 자기 얼굴을 본다

부분 대상 관계 vs 전체 대상 관계

아기는 처음부터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엄마의 젖가슴이다. 이렇게 볼 때 아기는 엄마의 한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위니캇은 이것을 아기의 엄마에 대한 ‘부분 대상 관계’라고 부른다. 엄마를 전체로 만나지 못한고 한 부분을 보면서 엄마의 존재를 인식한다.


첫 6개월 동안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희미하게 보다가 6개월이 지나면서 얼굴 전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아기의 시각이 엄마의 눈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아기가 엄마의 눈을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이며, 또한 엄마의 존재 전체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처음 인사를 나눌 때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볼 필요 없이 눈만 마주치면 되는 이치와도 같다. 아기도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엄마를 ‘전체 대상 관계’로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통한 ‘딥-러닝’의 강도를 높여간다.


엄마의 얼굴은 아기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위니캇은 아기에게 있어 엄마의 얼굴은 아기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강조한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아기는 사고(thingking)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의 얼굴을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본다고 생각한다.


이것(엄마의 얼굴=나의 얼굴)은 아기가 최초로 경험하는 은유이다. 아기가 이 은유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려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기는 엄마의 품 안에서 아무런 사고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충분히 머물기가 아이의 은유를 보존한다. 이 은유가 유지되는 한, 엄마 얼굴은 아기에게 잘 반영해 주는 거울로서 보존된다.


엄마의 얼굴이 아기의 거울로서의 은유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엄마의 품 밖에 있는 외부의 현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생후 1년이 되기까지 엄마의 중요한 역할은 아기를 현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이 기간에 아기는 엄마의 품 안에서 아무 생각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아기에게 현실이 침투해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공되는 엄마의 품은 아기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엄마의 눈이고, 엄마의 얼굴이다.


아기가 웃으면 함께 웃어주고, 아기가 몸짓하면 엄마도 아기의 몸짓과 유사한 모양으로 함께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그런 상태가 유지되면, 아기는 엄마를 자기 자신으로 알거나 자신의 연장된 존재로 사용할 줄 안다. 아기의 정서는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반영될 때 자신의 것으로 경험된다. 즉 아기가 웃을 때 엄마도 함께 웃어주면 엄마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웃음을 자신의 웃음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기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엄마의 반영과 확인으로 되돌려 받게 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유아에게 충분하지 않으나 필요한 아빠: 아빠의 안아주기

아빠는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주 양육자일 때 아빠의 역할

엄마가 주 양육자가 되면 유아의 첫 1년 동안 아빠는 엄마의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한다. 생애 첫 1년의 양육 중 특히 첫 3~6개월 동안은 엄마와 아기가 존재론적으로 겹쳐 있으며 아빠는 관계적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에게 아빠가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니다. 엄마와 유아 두 사람이 1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빠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줘야 한다.


아빠는 아기가 자라가는 동안 그 울타리를 조금씩 넓혀준다. 아빠는 아기에게 세상을 조금씩 열어준다. 아기가 기어 다니는 시기가 되면 아빠가 출근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현관문까지 기어가며 배웅한다. 그러면 아빠는 아기를 번쩍 들어 안아주고 뽀뽀하고 엄마에게 아기를 안겨준 후, 현관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이런 일이 몇 달 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면 아기는 아빠가 언제쯤 돌아올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패턴을 익히게 된다.


여기서 아기에게 엄마의 존재와 아빠의 존재가 의미의 차이를 가져다준다. 엄마의 유능함이란 늘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아빠의 유능함은 아침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저녁이 되어 ‘짠!’하고 나타나 아기를 흥분시키는 데에 있다. 엄마가 아기와 늘 함께하는 것으로 아기는 지구력의 정서를 키우고, 짠! 하고 흥분을 동반하여 나타나는 아빠를 통해 아기는 순발력의 정서를 키운다.


모성적 원리 vs 부성적 원리

사람은 일평생 두 가지 원리를 가지고 산다. 하나는 ‘어머니의 원리(모성적 원리)’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의 원리(부성적 원리)’이다. 어머니의 원리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중요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능력,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능력,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이 나에 대해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 복잡한 일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능력, 한 번에 여러 가지 알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다.


아버지의 원리는 자녀가 사회적 존재로 사는 능력, 세상의 복잡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분법(선과 악, 좋음과 나쁨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세상을 구체적으로 상징화(사회화)할 수 있는 능력, 중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권위), 미래의 목표를 세울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평생 이러한 두 가지 원리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오늘날에는 남녀의 역할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서 부성적 원리와 모성적 원리가 뒤섞여 있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서 엄마가 아버지 역할도 하고, 아빠가 엄마 역할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신하여 엄마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있는 여성성(아니마)과 모성성을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만 자녀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엄마의 품과 아버지의 권위가 분명하게 구별되면서 아이의 인격 안에 두 원리가 각각의 모양으로 내면화되는 것이다. 엄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아기에게 엄마는 늘 곁에 있어 눈앞에 보여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녀에게 엄마는 늘 함께 있어 만만한 대상이다. 아빠는 아침이면 멀리 떠났다가 저녁이면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아이를 흥분시키고 집 밖에 있는 특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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