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

   
김화영
ǻ
21세기북스
   
16000
2020�� 12��



 

■ 책 소개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은 ‘엄마’이자,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내’가 되기로 했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육아 굴레 속에서 매일을 해치우듯 살던 김화영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삶을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은 건 나와 남편의 선택이었지만, 지금의 삶은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는 그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일을 사랑했던 삼십 대 여성이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얻게 된 일상의 질문들에 꼬박꼬박 답하면서 얻은 답들을 매일의 작은 사건과 함께 적어 넣었다.

저자는 7년 동안 육아를 지속하면서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는 표현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일곱 해가 지나는 동안 자란 건 아이와 본인 모두였다는 것을 깨닫고, 육아가 던져 준 의무와 책임감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결심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을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육아의 기준은 ‘내 아이들’이고 내 삶의 기준은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책에는 김화영 저자가 누군가의 삶도 모방하거나 탐닉하지 않고 그저 나와 우리 가족이 좋으면 그만인 단순한 공식대로 살아가기로 한 결심과 그 실천의 과정이 담겨 있다.

■ 저자 김화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9년 동안 IT, 소비재, 패션, 국제 총회 등을 맡아 ‘워커홀릭’이라 불리며 일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출산하며 외벌이 남편과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했고, 전업 주부 7년차인 지금은 삼형제를 키우고 있다. 유년기, 청년기, 신혼기를 지나 당도한 육아기는 ‘인생 4막’이자 가장 치열한 ‘육아 사막(Desert, 沙漠)’이기도 하다. 자매로 성장한 저자가 아들 셋을 돌보는 일은 매 순간이 도전이다. 다행히 유년기를 함께 보낸 동갑내기 첫사랑을 육아 파트너로 만나 부나방처럼 불사르는 매일을 살고 있다. 현재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의 연구원으로서 ‘사는 일’을 연구하고 있다.

브런치 brunch.co.kr/@hzerow
인스타그램 instagram.com/_hzero_w

■ 차례
프롤로그

◈ 한쪽 귀로만 듣는 지혜
모유 스타일이 아닌 엄마
사소한 불편을 함께 이겨내려 할 때
오늘의 집안일은 여기까지!
한쪽 귀로만 듣는 지혜
성숙한 가족이 되어가는 길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아이 고유의 영역을 지켜 주자는 약속
손 내미는 아이, 안아 주는 엄마

◈ 아이의 보폭으로 함께 걷는 길
여행이라는 고단하고 소중한 도전
아이의 세계에 타인이 들어왔을 때
아이의 보폭으로 함께 걷는 길
순수한 칭찬의 마력
극한 육아 총량의 법칙
다 같이 집안일을 하자
‘함께’라는 마법
가장 하기 싫은 일, 가장 못하는 일
좋은 가풍을 가진 가족이 되고 싶어

◈ 엄마라는 섬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소하게 웃는 버릇
잇츠 오케이! 그럴 수 있어
욕심이 탐욕이 되려고 할 때
몸은 튼튼, 마음은 단단하게
각자의 일상을 소중히 채우기
육아는 투게더
가족 관계의 적정 거리
기념일에 대처하는 방법
‘복福 짓는 법’ 배우기
우리는 역사가 될 거야
Home, Sweet Home

◈ 삶을 사랑하는 방식
오늘을 즐길 충분한 자격
소확행을 위해, 엄마는 오늘도
늙어가는 나를 껴안아 주기
부부 설렘 소생술
내 삶을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
진심으로 표현할 것
독박 육아와 욕과 클래식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는 너라서, 너는 나라서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


한쪽 귀로만 듣는 지혜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엄마, 이러다 밥 다 타겠어! 가스 불 켜놓고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 프라이팬에서 불이 날 것 같으다고오! 엄마? 엄마아아!”


저녁 밥을 하다가 화장실이 급해 잠깐 달려갔는데, 그새 첫째 아들이 소리친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잠깐 화장실 간 거야, 오래 안 걸려서 잠깐 간 거야.”


아이는 최근 유치원에서 안전 교육을 받으며 들은 주의 사항을 잔소리하듯 잔뜩 늘어놓는다. 불이 났을 때 대피 요령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한 후에야 제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집에 불이 날까 걱정이 됐는지 아이는 꽤나 진지하다.


여태까지는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때면 누가 누구를 키우는 건지 의문스럽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니까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는 표현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이와 보낸 지난 7년을 되돌아보면 그 사이 정말 자라고 있던 건 ‘너’일까 아니면 ‘나’일까. 아이가 나를 미치도록 힘들게 할 때마다 아이 탓을 했는데 사실은 그냥 내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7년 동안 아이와 나는 모습도, 생각도 참 많이 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도, 나도 전보다는 표정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아마도 누구를 키워 내야 한다는 버거운 책임과 강박 관념을 내려놓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엄마니까’라는 말을 외면했다. 뭐든지 그 말 하나로 끝맺음되는 엄마의 역할이 누군가 내게 억지로 쥐어 준 삶처럼 느껴져서였다. 출산 후 ‘엄마’라는 테두리 선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안에서의 삶을 숨 막히게 경험했다. 사교육 열풍으로 뒤덮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와 중심잡기를 하며 산다는 것은 마치 외줄타기 같았다. 교육 방식에 대한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은 매우 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 남들처럼 하지 않았을 경우에 감내해야 하는 미지의 불안은 초조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말하던 시를 떠올리며, 내 앞에 놓인 거친 시간들을 살아낼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사는 나다운 엄마가 되기로 했다. 누구의 삶도 모방하거나 탐닉하지 않고 그저 내가 좋고 우리가 좋으면 그만인 단순한 공식대로 말이다. 내 삶고 네 삶도 누가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아이의 보폭으로 함께 걷는 길

첫째의 다섯 째 봄이었다. 아이는 유치원 하원 때가 되면 ‘드디어 하원이다!’ 하며 빗장 풀린 망아지처럼 몹시 흥분했다. 내가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잠깐 동안 아이는 눈앞에 보이는 다른 친구의 장난감을 뺏거나 친구의 장난감 자동차 위를 오르내리며 하원 세레모니를 시작한다. ‘그래, 해라. 세레모니’ 하며 마음속으로 깊게 심호흡을 하고 있으면, 종종 주변 엄마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나는 친구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수위일 때는 아이의 행동이 스스로 자제될 때까지 기다려 주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고 돌려주지 않으려 할 때다.


‘이제 친구한테 장난감 돌려주자’라고 말하면 아이는 이건 자기 거라고 우긴다. 나는 거듭 빨리 돌려주자고 말하면서 아이를 타일렀다. 그러자 장난감을 뺏긴 아이 엄마가 내게 잠시만 기다려 보자면서 조용히 재모에게 말했다.


“재모도 집에 같은 장난감이 있나 보다. 그런데 이건 태언이가 가지고 온 거라서 다시 돌려줘야 해. 재모가 돌려줄 때까지 기다릴게.”


그 말을 듣고 잠시 기다렸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장난감을 순순히 내주는 게 아닌가. 보통은 뺏긴 아이가 돌려 달라고 울거나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나는 재모가 장난감을 돌려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두 아이에게, 또 이 상황을 기다려 준 태언이 엄마에게 고마웠다.


누구나 삶에 임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나 역시 내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나다운 자연스러움’을 모토로 내 걸음과 속도로 살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시간표에 얽매여 아이의 속도를 잃어버릴 때가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되는데, 그 여유가 없어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눈이 멀어 버린다. 그래, 말하는 대로 한 번에 바로잡을 수 있다면 어디 그 모습이 아이겠는가.


기다림에 조바심을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은 곧 바스러질 것처럼 메마른 상태가 된다. 마음이 건조해지면 여유를 가지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조바심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내 아이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태도를 가져 보기로 했다.


여섯 살이 되자 재모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는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라고. 아이가 언젠가 유치원을 좋아하기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등원 시간을 지키다가도, 등원 길에 갑자기 아프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 내 속도로만 걷고 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쌍둥이 동생들을 먼저 데려다 준 다음에 첫째가 등원하는 것으로 동선을 변경했다. 우리는 이른 아침 주스 한 잔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며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유치원에 도착했다. 한글을 조합해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이는 상가 전광판을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한의원 전광판을 읽는데 아토피, 소아 비만 등의 단어에 아이의 어눌한 발음이 덧입혀지자 웃음이 새러 나왔다. 둘만의 짧은 데이트를 마친 우리는 유치원 문 앞에서 힘껏 포옹을 한 다음에 가볍게 뽀뽀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이는 엄마와 보내는 둘만의 시간이 그리워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분간은 무작정 시간표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아이의 걸음에 맞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기다림이란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므로.


가장 하기 싫은 일, 가장 못하는 일

첫째는 호기심이 많다. 질문도 많고 말하는 것도 즐겨 하루종일 재잘댄다. 가끔 아이가 하는 질문에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다.


“엄마, 나 오늘은 뭐 해? 유치원 가?”

“응, 오늘 월요일이라서 유치원 가야 해.”

“나 아직 다 못 쉬었단 말이야. 가기 싫어!”


아이는 한 달이 넘도록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해 아이의 등원 거부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일주일 정도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건 어떨지 의논했다. 이미 유치원을 1년 이상 다닌 상태에서는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어 권유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무리하게 강행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한 건 막상 유치원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즐겁게 생활한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방과 후 영어 수업이 이전보다 어려워져서 재모 마음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안하면 허전해지고 막상 닥치면 하기 싫어하는 모순적인 아이 마음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걸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강요하면 더욱 거부할 아이란 걸 알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가 이해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 내야 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각자 ‘하기 싫은 일’을 종이에 적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기 싫다는 마음에 휩쓸릴 때마다 그 목록을 보며 하나씩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 역시 싫은 일은 최대한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우리는 모두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위주로 하며 산다. 하고 싶은 한 가지를 위해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내는 경우도 많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마음에 무게 중심을 두면 그 여정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오늘 재모가 하기 싫은 일은 ‘유치원 방과 후 영어 숙제’, 나는 ‘화장실 청소’다. 예전에도 영어 숙제를 하기 싫다기에 답을 적는 칸에 이름만 써서 가져간 적이 있다. 그러나 다음 날, 숙제를 해온 아이들이 받은 스티커를 본인만 받지 못해 시무룩한 얼굴을 했던 걸 기억한다.


“아, 엄마는 이제 화장실 청소나 하러 가야겠다...”


재모 귀에 들리도록 크게 말하면서 일부터 터벅터벅 화장실로 걸어갔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중 밖이 조용하기에 살짝 문을 열고 봤더니, 식탁 의자에 앉아 영어 숙제를 하는 재모가 보였다. 집중하느라 튀어나온 작은 입으로 영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겐 하기 싫은 일만큼 어려운 것이 가장 못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고 싶어 작은 그림을 그려 넣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못하는 것이라고 접어 뒀던 페이지를 다시 열어 보려는 용기만으로 마음의 부담이 반 이상 줄어드는 경험을 한다. 또한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 다시 좋아하게 되는 과정도 종종 겪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나만의 자질’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의욕이 얼마나 좋고 간절한 것인지 한 번 더 느끼게 되기도 한다. ‘좋다’와 ‘싫다’는 따지고 보면 서로를 비춰 반사하고 있는 사소하고 빤한 것일 때가 많으니까.



엄마라는 섬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일상을 소중히 채우기

가끔 나이를 빨리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해에 떡국을 먹으며 나이 먹는 걸 반겼던 어린 시절 이후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참 오랜만이다. 나에게 흐르는 시간만큼 내 아이들의 시간도 흐를 것이기에 종종 이런 바람을 가지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과 동시에 어떤 기관에서 여섯 살까지 키워 주고 ‘자,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데려가시오’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여러 번 했다.


세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자기 생각을 갖게 되고 대화하는 방식이 진화하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사리가 다량 생성되는 걸 느낀다. 투정과 울부짖음, 버둥대는 발길질과 과격한 몸짓, 이유 모를 반항과 눈 흘김 등 아이들이 대화에 임하는 자세는 각양각색이다. 가끔 훈육을 할 때 아이 손을 잡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유명한 박사님이 알려 준 방법대로 아이 양손을 붙잡고 아이가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는 잠깐 동안 보이는 아이의 반응은 ‘내가 정말 너를 이렇게 키웠나’ 싶을 정도로 다이내믹하다. 언젠가 아는 지인에게 너무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는 말을 했더니 그녀는 내게 ‘사리가 진주가 되어 목걸이로 꿰어질 때까지 인내하라’는 말을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이가 자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서서히 독립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반가운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가 직립 보행의 기쁨을 느끼면 더 이상 기어 다니지 않게 되듯이, 말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거부하게 된다. 어느 정도 부모와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 없이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친구들과의 사회를 겪으며 점점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는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본인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한다. 보통은 꿈이나 일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내 꿈을 찾고 일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나만의 일’을 찾는다는 건 중요하다. ‘나만의 일’이 구체적으로 직업과 연결되거나, 공부로 발전하거나, 단순히 오늘 할 일에 그쳐도 상관없다. 다만 그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롯이 내가 하는 일이라는 핵심이 있어야 한다.


재모는 잠들기 전이나 이른 아침에 자신의 일정에 대해 묻는다. 주 중반이면 이미 며칠이나 유치원에 갔는데도 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낸다. 주말이면 운동 외에 아무 일정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신만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 나는 스리슬쩍 매일 해야 하는 몇 가지를 짚어 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자리 잡았으면 하는 세 가지가 바로 운동, 공부, 독서 습관이다. 이 세 가지 활동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조금씩 실천하는 게 좋다. 사실 이건 아이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다. 어른인 내게도 반복되는 일상을 계획으로 지켜내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므로.


습관은 기억과도 근접한 거리에 있다. 기억이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이뤄지는 모든 운동과 행동은 기억에 의존해 이뤄진다. 단순하게는 창문을 열고 닫는 법, 냉장고에서 그릇을 꺼내는 법부터 회사나 학교로 찾아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법 등 우리는 뇌세포의 기억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기억은 습관을 만드는 가장 기본 단계이다. 기억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면 행동으로도 반복할 수 있다. 습관이란 내 기억이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뇌에 삶의 방식을 새겨 가는 것이 아닐까.


Home, Sweet Home

어릴 때 엄마가 즐겨 불러 주던 동요 중에 ‘내 이름(예솔아!)’라는 노래가 있었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예 하고 대답하면/너 말구 네 아범’ 하던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손녀가 예, 하고 달려가지만 막상 할아버지가 부르는 사람은 손녀의 아빠와 엄마였다는 이야기다.


처음 ‘누구 엄마’로 불리던 날의 떨림을 기억한다. 남편과 내가 ‘재모 아빠, 재모 엄마’로 불리기 시작하던 때의 그 간지러움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라는 단어의 진중함을 느낀다. 평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일처럼, 세 아이가 커갈 때마다 어떤 부모로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관계의 적절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이 아닐까. ‘참아야지’ 하면서도 화를 내버린 밤이면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아이 사진을 보며 내일은 좀 더 다정하게 행동하고 선한 영향을 주리라 다짐한다. 아이가 더 나은 세상과 환경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간섭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이므로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많은 부모가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마 그 저변에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로 정서적인 친밀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과 부모의 말을 잔소리가 아닌 삶의 지혜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란 자식이 생기면 자연스레 붙는 이름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부모가 될까 고민할 때마다 결국 부모란 지울 수 없는 문신의 흉터처럼 느껴진다. 그 흉터 위에 ‘내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다른 결로 겹겹이 새겨진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실은 우리가 부모로 살게 된 시작점 앞에 이미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리숙한 부모인 ‘나’와 어린 ‘너’, 서로의 뜨거움을 공유하는 지금 이 시간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이해받으려는 부모가 아니라 이해해 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본다. 언제 어디서든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포용하고 품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애써 본다. 세상에 나아가 깨지고 부딪혀도 다시 충전할 수 있는 ‘홈 스윗 홈’이 될 수 있게 말이다.


삶을 사랑하는 방식

삶에 부단히 집중하는 일

동생과 한남동으로 ‘날씨’에 대한 사진 전시를 다녀온 날이었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라고 넌지시 건네는 한마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와서 침묵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고요한 날도, 빛이 좋아 해를 바라보던 날도, 바람이 콧등과 머리칼을 간지럽히던 날도 모두가 사진이라는 프레임에 다소곳이 담겨 있었다. 가끔 SNS를 보면 사진 한 장으로 결론지어지는 일상이 참으로 간결하게 느껴진다. ‘보여지는 한 장’이 모든 것을 가늠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한다.


어느 날 TV에서 방송인 이영자가 군부대에서 강연하는 장면이 나왔다. 목소리에서 그녀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년간 진행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그녀가 장병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열등감’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집이 생선 가게였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는 게 콤플렉스였어요. 누가 냄새 맡는 시늉만 해도 혹시 나한테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싶어 움츠러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까 봐 항상 내 냄새를 확인하던 것이 습관이 됐어요. 내가 원래 음식 냄새를 잘 맡는 게 아니라 내 냄새를 확인하던 습관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뱄던 거죠. 군부대에 있는 동안 내 안의 열등감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라요.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누가 봐도 뻔한 경주를 거북이는 왜 한다고 했을까 돌이켜 보면, 거북이는 자신이 느리다는 열등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 거북이는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갔을 뿐이에요.”


열등감이라는 주제를 그녀의 인생에 담아 전한 강연은 한 문장 한 문장 공감으로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녀가 자신의 열등감을 인지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기까지의 여정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아이와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렇던데 우리 집 애들은 왜 이러지?’라는 말이 내 안에서 울릴 때다. 놀이터에 나가서 놀 때면 아이와 수십 본 시간 약속을 하지만, 집으로 향할 때는 항상 대성통곡을 하며 아파트 전체를 울리게 된다. 특히 첫째 재모는 놀이터에 가면 돌아오지를 않아서 아이를 들쳐 안고 황급히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방법을 써서 아이와 약속하면 조금은 달라질까 싶어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그렇게 불같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1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놀이터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지키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며 부단히 노력하는 것 중 하나는 나 스스로를 단련하는 일이다. 아이들 저마다 성장 시점이 다르기에 약속과 규율을 익히고 그걸 지키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인내하는 일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나보다 남에게 집중하는 귀가 커질수록 열등감은 점점 더 커져 간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놓인 삶에 부단히 집중하는 연습을 평생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네 삶도, 내 삶도 쉽지 않기에 서로의 카운슬러가 되어 위로 받고 보듬어 가면서 말이다. 그저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사는 데 집중하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격려하면서. 세상에는 더 나은 삶도, 별로인 삶도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상상하며 살아갈 뿐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