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익힘책

   
임혜정
ǻ
서사원
   
15000
2020�� 03��



책 소개


“아들의 사춘기, 학교 공부, 형제 및 친구관계, 게임, 성교육, 아들의 자립까지”

이 책은 어쩌다 아들 삼형제를 키우게 된 엄마이자 교육자(수학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작가 개인을 돌아봤을 때는 쭉 엘리트 코스만 밟은 지극히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의 삶을 돌아봤을 때는 부족하고 엉성한 점투성이다. 왜냐하면 어쩌다 아들 삼형제를 만나면서부터 어떤 한 부분도 본인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으며, 아들들은 천방지축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부모가 똑같겠지만, 정말이지 자식은 내 맘 같지 않았다. 게다가 성격도 특징도 모두 제각각인 아들이 셋이나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엄마의 멘탈은 하루도 정상일 수 없었다.

아들들의 사춘기, 교우관계, 학교생활, 공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순간순간 부딪치며 울고 웃고 하면서 어쨌든 삼형제와 엄마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 책은 아들 또는 형제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로 가득하다. 교육자이자 엄마로서 터득한 노하우와 성장기에 따라 변화하는 아들들에게 교육적인 시스템 및 사회제도적으로 도움 되는 부분들까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아들의 성장기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알고 있으면, 엄마들이 조금은 아들들과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임혜정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남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첫째 아들과 만나며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고, 둘째 아들과 함께 임용고사를 통과해 남자 중학교에 발령받았으며, 셋째 아들과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을 키우며 고려대학교에서 교육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서정중학교 수학 선생님,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이자 17년 차 초, 중, 고 세 아들 엄마입니다. SKY에서 익힌 능력치로 ‘선생 노릇’은 그런대로 잘 하고 있는데, ‘엄마 노릇’은 아들 엄마만 세 번째인 지금도 신통찮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래서 삼형제 엄마는 오늘도 오묘하고 찬란한 ‘아들’의 세계를 배우고 익히며 아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 차례
프롤로그_어쩌다 삼형제, 어쩐다 엄마

아들과 형제 사이
그래도 잘 따라가고 있어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거 학교에서 티내면 안 되잖아요
형제에게 공평함이란
삼형제, 징하게 싸우죠!
“한 판 붙어볼래?…” “금방 붙네요”

아들, 그들만의 세상
아들의 가벼움, 엄격근엄진지의 황금비율
아들의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 “오늘 저녁 뭐예요?”
아들의 언어, 형이 있으니까 욕을 빨리 배우지
아들의 위기, 학교 폭력
아들의 성, 야동의 충격
아들의 놀이,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놀라는 거예요?”
아들의 게임, PC방에서만 영롱하게 빛나는 눈빛
아들의 감정, 엄마의 눈물
아들의 감정, 일단 좀 달래주세요!

아들의 사춘기
‘정신없는’ 아들, 그럼에도…
띠꺼움의 시절 그리고 지랄총량의 법칙
엄마, 아빠 진짜 왜 저래요?
그랬으면 제가 집에 안 들어오고 방황했겠죠!
어깨빵과 가오충

아들의 공부
우리 반 남자애들 다 ADHD 같지 않냐?
멍한 남학생의 모습에서 내 아들을 보다
제가 언제부터 눈이 풀렸죠?
수학의 정석

성장하는 아들
자연 속으로, 필순아 필순아
가정의 어려움 속으로, “어 아빠 가게가…”
동네 속으로, “저 배고픈데, 어떻게 해요?”
세상 속으로, “오늘 제가 발표할 주제는”
세상 속으로, 진정한 독립 준비
자신만의 길로, 학교 밖! 생활의 달인 필홍
자신만의 길로, 푸르메 어린이 영웅 필홍!
자신만의 길로, “엄마가 말한 거 딱 나왔어요”
칭찬으로 자라는 아들, “우리 반 애들이 예쁜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쩌다 삼형제,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다

에필로그_엄마가 아들에게

 




아들 익힘책


아들과 형제 사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거 학교에서 티내면 안 되잖아요

모든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게 느껴져 학교만 가면 긴장되고 힘들 수도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자기만 친한 친구가 없는 것 같아 힘들기도 하다. 특히 적응이 어려운 아들들의 학교생활에는 더욱 큰 어려움이 있다.


사실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들들은 정확한 말로 ‘엄마 저 이게 힘들어요.’ 하지 않는다. 우리 집 삼형제도 그랬다. 첫째는 때로 거칠고 공격적인 언행으로, 둘째는 때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셋째는 때로 과장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스스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런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이들의 행동거지를 지적하며 혼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 안아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아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댈 수 있는 어깨는 내어줄 수 있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은 내어줄 수 있다.


낯선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 공부 속에서 나름 적응하기 위해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들들은 오늘도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다. ‘말 없음’이 ‘신호 없음’은 아님을 새삼 알아간다.


*아들의 어려움 알아차리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든 학교 급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친구 관계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결정적입니다. 늘 놀러오던 친구가 놀러오지 않거나, 아이의 말 속에서 친구 이름이 거론되지 않거나, 학교 가기 싫어하거나, 일상 중 말 속에 친구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친구 관계에 대해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의 친구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2009년 학급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이 있었습니다. 이후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운 심정 속에 살아가고 있는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을 평소처럼 하지 않거나, 화를 많이 내고 돈을 많이 쓰면 이상 징후가 있는 것”, “옷이 더러워지거나 멍이 든 것도 유심히 봐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니 부모가 이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라며 아이의 어려움에는 징후가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징후, 신호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아들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사실 부모가 강압적이고 잘못된 훈육 태도를 가진 경우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위축감은 또래 관계에서도 공격하기 쉬운 나약한 아이로 비춰질 가능성까지 커지게 합니다.


아이들이 힘들 때 떠오르는 사람, 자신의 상태를 신호 보냈을 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주는 사람이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부모에게까지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고 있다면 그건 더 큰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그들만의 세상

아들의 놀이,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놀라는 거예요?”

하루는 막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씩씩거렸다.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놀지 말래요! 축구도 하면 안 된다, 야구도 하면 안 된다, 다 안 된대요. 다칠 수 있대요.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놀라는 거예요?”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자 아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금지시켰다. 학교 측에서는 책임 문제가 있으니 운동장 사용 금지라는 가장 쉬운 선택지를 골랐다. 그렇게 축구 골대가 없어지고 정글짐도 사라졌다.


화나기는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야구를 즐기던 필홍이와 친구들은 운동자에서 쫓겨나자 친구 집을 전전했다. 더 이상 집에 놀거리가 마땅치 않자 아이들은 동네 골목과 공터에서 야구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동네 어른들의 항의를 들었다. “딴데 가서 놀아. 조용히 놀아야지.”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동네 정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놀게 되었다. 그러자 할머니들로부터 “시끄러우니 비켜라. 너네는 딴 데 가서 놀아.”라는 말을 또 들어야 했다.


둘째는 이 상황을 전하며 너무 속이 상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놀라는 거예요? 운동장은 공놀이 하다 다칠 수 있다며 금지시키고, 정자는 할머니들이 시끄럽다고 저리 가라 하고, 동네에서 노는 것도 안 된다 하고, 도대체 어디 가서 놀라는 거예요? 결국 PC방이나 가라는 말로밖에 안 들리네요.”


지난 학기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대대적 공사에 들어가느라 운동장이 폐쇄됐다. 이후 없어진 운동장이 얼마나 남자 아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남학생들이었다. 갈 곳이 없어지자 복도를 뛰어다니며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의 강철 방화문이 망가지는 일도 발생했다. 보통 힘으로는 손상되기 힘든 문이 갇혀서 놀지 못한 사내아이들의 넘치는 힘에 파손되고 말았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운동장이 개방됐다. 스물두 명이 공 하나에 목숨 걸 듯 뛰어다니는 축구. 약 7,000제곱미터 안에서 공을 사냥하듯 거칠게 달리는 이 운동을 보노라면 남자들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축구를 모르는 엄마가 보기에는 공을 그냥 뻥뻥 질러대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 안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고 전술이 있으며, 온갖 군상의 애환과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즉, 축구 하나를 통해서도 아들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었다.


학교 체육관,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뛰는 남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수업 시간 무기력했던 모습과 달리 넘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놀 곳과 놀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조용히 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점점 그늘져가던 남자 아이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놀이는 아들들을 남자 본연의 모습으로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아들의 사춘기

‘정신없는’ 아들, 그럼에도

출근 준비를 하며 삼형제의 등교 준비까지 돕는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다. 식사 준비, 아이들 숙제, 준비물 챙기기 등으로 몸은 바쁘지만 내 멘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 늘 어이없는 행동을 시전하며 내 멘탈을 테스트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정신없는 사춘기 큰아드님이다.


사춘기의 첫째가 아침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진짜 없어요!”다. “엄마 저 생활복 없어요”, “엄마 저 티 어디 갔죠?”라는 짜증 섞인 물음에 “거기 있을 텐데...”라고 말하면 “아 진짜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분명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던 물건이 왜 자꾸 첫째 눈에서만 ‘진짜’ 없어져, 안 그래도 까칠한 중학교 남학생 심기를 건드리는 걸까?


그러나 내가 찾으러 나서면 십중팔구 그렇게도 ‘진짜’ 없다던 그 물건이 제 자리에 얌전히 있다. “여기 있잖아!” 하며 물건을 건네면 “어, 진짜 없었는데 왜 여기에 있지?”라고 말한다. 공손한 감사 표시도 없이 자기가 필요한 물건만 찾았으니 땡이라는 표정이다. 그렇게 내 멘탈은 깊은 한숨과 함께 살짝 흔들린다.


안 그래도 눈치 없고 주위에 큰 관심도 없으며 자기 물건, 할 일을 잘 챙기지 못하던 아들들이 사춘기가 되면 이 증세는 정말 심각해진다. 바로 눈앞에 있는 물건도 보지 못하고 ‘진짜 없어요’ 기술을 시전한다. 애써 뭔가를 설명해주면 ‘진짜 못 들었어요’라는 응용 기술도 선보인다. 우기기에 관해서 이놈들은 ‘진짜’ 기술자다.


학년 초 학부모 총회가 끝나면 참석하신 부모님들과 반에 모여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내 아이가 어렸을 때는 중학생 학부모들이 대체로 나보다 훨씬 연장자이기도 하고 뭔가 한참 ‘어른’이라는 생각에 약간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니 자리에 앉으신 중학생 학부모님을 대하는 순간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첫마디는 “힘드시죠?”다. 어머님들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집에서 하는 정신없는 행동을 학교에서도 그대로 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님들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씻고 옷을 제대로 벗어 놓지 않고, 방을 치우지도 않으며 심지어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머리는 떡이 져 있는 모습, 자기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잘 챙기지도 못하면서 큰소리 뻥뻥 치고 까칠하게 말하는 그 모습의 아들들이 학교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근심 어린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님들, 아이들이 집에서 하던 대로 학교에서도 할까 봐 걱정되시죠? 저도 제 애가 집에서 하던 대로 학교에서도 한다고 생각하면 아휴... 한숨밖에 안 나와요. 그런데 어머님들 아이들이 학교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아요. 자기들도 학교에서는 나름 사회생활을 하느라 학급에서 맡은 일도 할 줄 알고, 다른 친구 눈치도 보며 자기 행동을 절제하고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 말도 가려서 하고 노력하는 게 보이거든요.”


어머님들이 웃으신다. 정신없는 사춘기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래도 학교에서는 집에서와 다르다니 다행이라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신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 다르다는 점은 사회적 인간으로 잘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그리도 ‘정신없는’ 모습일까? 반대로 생각해 보니 알게 됐다. 사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 도리를 지키며 정신 차리고 생활하기 위해 꽤나 애쓰고 있음을. 아침부터 오후까지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들이 집에서는 긴장감이 풀리며 흐트러지다 보니 ‘정신없는’ 모습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춘기의 이성과 감성이 뒤엉킨 두뇌 상태일지언정 학교에서만큼은 나름 정신 차리고 긴장하며 보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긴장이 풀린 집에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나사 풀려 ‘정신없는’ 아이가 된다. 밖에서 지친 아이에게 집이 그대로 편한가보다 싶어 다행이다.


그래, 밖에서도 집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늘 맘 졸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마음 둘 데 없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집에서 마주하는 ‘정신없는’ 사춘기 아들과 학교에서 만나는 ‘조금은 정신 든’ 사춘기 남학생들 모습에서 크느라 애쓰는 성장통이 보인다. 그래서 ‘아이고 애쓴다’ 하고 등 두드려주고 싶은 짠한 마음이 든다.


자기도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를 만큼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을 위해 속 터지지만 조금은 더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린다. ‘정신없는’ 그 아들이 자신이 쉴 곳은 집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공부

수학의 정석

수학은 전통적으로 남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더 잘하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학생들에게 밀리고 있다. 왜 남자 아이들이 수학마저도 못하게 되었을까? 이런 결과는 지나친 선행 중심 학습과 무관치 않다. 집과 학교에서의 경험치로나 연구 결과에서 남자 아이들은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다.


지나친 선행은 지금 공부하는 내용과 선행 내용을 멀티태스킹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꼼꼼하지 않은 우리 아들들은 선행에서 배운 덜 익은 지식을 자기가 다 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아 탄탄하게 수학 실력을 다질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아들들에게 수학은 정복 가능한 사냥감이 되어야 한다. 수학은 우리 아들들이 살아갈 미래와도 연관성이 크다. 아들들이 무엇을 하고 ‘먹고 살지’와 연결된 진로는 이공계열 비율이 높고 이 분야에서는 수학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수학 공부 속에는 논리적 구조화의 과정,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가며 맞고 틀리고가 명확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이 있다. 원시 시대 남자들이 어떤 사냥감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하고 재구조화하고 실행하여 사냥감을 포획하는 과정이 닮았다.


이렇게 수학은 아들들이 스릴 넘치는 성취감을 맛보며 성장하여 자신의 직업을 얻는 데 유용한 과목이다. 지나친 선행으로 불필요한 공포심을 줄 필요도 없고, 실제 자신의 실력과 다르게 뭔가를 잘 알고 있다는 허황된 인식으로 공부할 기회를 놓치게 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사내들은 인류의 역사 300만 여 년간 대부분을 사냥꾼으로 진화했다. 이들에게 사냥감을 잡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사냥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 지향의 분명한 행위임을 고려한다면, 수학은 사냥과 너무도 닮아 있다. 사냥감의 예측되는 이동경로, 동물 분변을 통해 알 수 있는 개체 수와 이동 거리, 바람의 방향과 해의 고도를 고려한 사냥지의 위치 선정 등.


이 모든 과정은 수학의 논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치밀한 논리 과정의 결과물이 사냥감의 획득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사냥꾼의 후예인 아들들이 수학을 못 할 이유가 없다. 다만 과도한 선행이라는 삐뚤어진 학습이 타고난 수학사냥꾼인 사내들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수학에 대한 막연한 엄마의 불안으로 시작한 선행 학습이 아들들의 수학 능력을 거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성장하는 아들

자신만의 길로, “엄마가 말한 거 딱 나왔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교 2학년 첫째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말한 대로 딱 나왔어요. 근데 엄마가 평소에 저한테 이쪽이 잘 맞을 것 같다고 말해서 검사 결과도 이렇게 나온 거 아닐까요?” 필립이가 내민 종이는 학교에서 실시한 진로적성검사 결과지였다. 추천 진로에는 세무 관련 사무직이 있었다. 평소 아이에게 세무, 회계 분야에서 일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하던 터였는데 검사 결과지에 그렇게 나오니 놀랍고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며, 첫째의 풀린 눈에 힘이 조금 들어가더니 자신의 진로를 막연하게나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립이에게 말했다. “엄마 생각에는 너는 현실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성향이고 숫자 계산에는 정확하니까 회계, 세무 이쪽으로 공부하면 잘 할 것 같아.”


그런데 뭔가 자신이 잘 해보거나 인정받아 본 경험이 부족한 큰애는 “제가 뭘 잘 한다고요?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다고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네가 학교 성적 때문에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수는 있는데, 엄마가 봤을 때 너는 회계나 세무 쪽으로 공부하면 차분하게 참 잘할 것 같아. 계산도 정확하고 돈의 흐름에 관심도 많고 말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받은 검사 결과지였다. 이 일은 아이가 엄마의 조언에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 아이의 진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내 바람이 아닌 아들의 희망 진로를 선택해야 했기에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했다. 우선 첫째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았다. 그 안에서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 무엇에 재능이 있었는지,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성격인지를 생각했다.


6살 때였다. “엄마 그런데요, 저는 첫째인데요. 첫째는 숫자로 젤 작은데 왜 나이는 동생들보다 젤 많아요? 거꾸로네요?” 필립이의 말에 수의 기수, 서수 개념을 적용한 간단한 설명밖에 할 수 없었지만, 첫째가 숫자에 민감한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심부름 한 번에 용돈을 100원 주겠노라고, 흔히들 하는 용돈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그때 첫째는 자기 나름 동네 지도를 그리며 말했다. “엄마, 여기 보세요. 제가 심부름을 가면요. 여기 슈퍼나 저기 가게 갈 수도 있겠죠? 근데 거리가 이렇게 다른데 심부름 용돈을 무조건 100원으로 하면 안 되죠! 거리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 우리 아이가 거리에 따른 용돈 액수 산정이라는 함수적 사고를 하네.’라는 호들갑스러운 생각이 1초 동안 잠시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야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야구 선수별 기록을 보여주는 수치들을 표로 만들어 열심히 외우곤 했다. 함수적 사고 수준과 데이터분석가로서의 자질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수 개념이 정확하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첫째는 세무, 회계 분야로 자신의 길을 정했다. 중3 진급을 앞둔 2월 특성화고 설명회에 함께 다녀왔다. 다녀온 후 자신은 특성화고에 진학해 대학보다는 취업 쪽으로 준비를 해야겠다는 나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래, 먼저 취직한 다음에 네가 정말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공부해도 괜찮아. 다만 언제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게 읽기와 쓰기 같은 공부의 기본기는 다져놔야 해.”라고 진심으로 아이의 선택을 지지했다.


3학년 여름방학, 아이는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회계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자신의 교과 성적이 부족하니 이 특별 과정에 최선을 다해 입학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특별 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리 교재를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관련 직종에 근무 중인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더운 여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던 아이는 특별 과정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과정을 마무리했다.


최근 들어 게임할 때를 제외하고 아이가 이토록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시험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아이가 최선을 다한 결과였기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내가 바라는 진로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식이기에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길, 내가 가본 경로로 아이를 인도하고 싶은 건 부모로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거기를 갈 사람은 내가 아닌 자식이기에 아이를 먼저 봐야 했다.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 내 아들을 바라보며 재능을 발견하고, 내 아이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본다. 선택은 아이가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아이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자신이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그 여정 위에 섰을 때 아이는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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