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보다 뇌과학

   
만프레드 슈피처 외(역:박종대)
ǻ
더난출판
   
14000
2020�� 08��



■ 책 소개

 

독일 최고의 뇌과학자, 아이의 뇌에 주목하다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를 통해 현대인의 스마트폰 중독 실태와 위험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 큰 호응을 얻은 독일 최고의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 그가 이번에는 소아과 의사 노르베르트 헤르슈코비츠와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공동 집필한 《우유보다 뇌과학》 속에는 우리의 예상을 깨는 아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영유아가 등장한다. 태아 때부터 산모가 즐겨 먹는 향신료의 맛을 기억하는 이 영특한 아이는 인간 스펀지처럼 시시각각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수정하고 저장하기를 반복한다.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법을 읽어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언어의 음소 하나하나를 느끼며 문법을 감지하기도 한다. 불과 생후 1년 사이에 말이다!

 

저자는 아이의 뇌를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원시림에 비유한다. 아이는 매 순간 초 단위로 세계와 소통한다. 모든 순간이 학습이고 교육이다. 저자는 자칫 딱딱하게 와닿을 수 있는 뇌과학적 지식을 생생한 묘사와 한눈에 들어오는 설명을 통해 보다 쉽게 알려준다. ‘최신 뇌과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아이를 바라보면서, 참다운 인생 초기 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 저자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

독일 뇌과학계의 일인자.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를 정신과학적, 뇌과학적, 사회심리학적 사례를 제시하여 분석하고,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세계적 학자다. 지금껏 슈피처만큼 과학적 인식을 쉽고 간명하게 설명한 과학자는 거의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 울름대학교 정신병원장이자 신경과학과 학습 전이센터 원장이다.

 

1958년 출생.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의학, 심리학 및 철학을 전공했고 정신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하이델베르크의 정신과 클리닉에서 선임 의사로 일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두 번에 걸쳐 객원교수로 재직했고, 1999년부터 20년 가까이 신경학자와 정신과의사들을 위한 전문 월간지 〈신경의학Nervenheilkunde〉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 일했으며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바이에른 알파 방송의 〈정신과 뇌〉라는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수많은 저서를 발표했고, 그중 《디지털 치매》는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20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한국에서도 언론으로부터 ‘2014년을 여는 책 50’에 선정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밖의 저서로는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사이버 스트레스》 《학습(Lernen)》 《스크린을 조심하라!(Vorsicht bildschirm!)》 등이 있다.

 

노르베르트 헤르슈코비츠(Norbert Herschkowitz)
소아과 의사. 뇌 연구가이자 저명한 저술가이다. 스위스 베른대학병원의 소아과 병동에서 25년 동안 ‘발달 및 발달 장애과’를 이끌고 있다. ‘스위스 뇌 연구 협회’의 이사진이다.

 

■ 역자 박종대
성균관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늘 표층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기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게 꿈이다. 지금껏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나폴레옹 놀이》 《목 매달린 여우의 숲》, 《여우가 잠든 숲》 《토마스 만 단편선》 《위대한 패배자》《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 차례
제1장 아기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
아기가 태어나다 _ 첫 3개월
세상을 발견하다 _ 4~6개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 _ 7~9개월
생애 첫걸음, 생애 첫마디 _ 10~12개월
미키 마우스와 칸트 _ 발달을 촉진하는 법

 

제2장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인간 스펀지 _ 두 살배기
생물학적 준비 _ 걷기의 전 단계
세계를 선물하다 _ 놀이와 학습 사이
맘마, 맘마 _ 생애 첫마디
어린 탐험가의 뇌 _ 언어 능력의 폭발
오리는 꽥꽥 _ 15~18개월
브로콜리와 인과 법칙 _ 기대 뉴런의 활성화
탁아 시설의 한계 _ 루마니아의 실험
도덕관념의 원천은 부모 _ 전두엽의 발달
예민하고 불안한 아이 _ 기질과 양육 방식
해변을 선물하라 _ 기질과 환경
동물원과 장난감 _ 본보기가 중요한 시기

 

제3장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세상
유치원에서 배우는 인생 _ 미취학 아동기
수다가 중요한 이유 _ 언어 능력의 발달
두 번째 언어를 배울 시점 _ 모국어 단계
기억 놀이의 천재들 _ 좌측 반구에 피가 돌 때
최상의 학습은 잘 노는 것 _ 새로운 교육 모델
인격 발달의 열쇠 _ 공감 능력의 확장
행복과 운동의 비밀 _ 뇌 속의 이웃사촌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_ 뇌의 발달과 집중

 

제4장 모든 것이 아이를 만든다
뇌 연구와 학교 _ 7~12세
바이올린에 토를 하는 아이 _ 행위의 내적 동기
좌절은 필요하다 _ 주의력과 자극
공부하면 돈을 주는 부모 _ 의욕과 자부심
배움의 원리 _ 시냅스 가지치기
뇌의 연결망과 학습 _ 시냅스의 정글
음악 수업과 연극 수업 _ 추가 교육의 효과
유치원을 닮은 초등학교 _ 태도를 배운다는 것
공감하고 판단하는 아이들 _ 지식과 감정의 발달
인간이 된다는 것 _ 교육과 멘토의 역할

 




우유보다 뇌과학


아기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

아기가 태어나다 _ 첫 3개월

아기는 모든 걸 쭉쭉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비슷하다. 단순히 엄마 젖만 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주한 세계 자체를 빨아들인다.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20~30년 동안의 신생아 연구를 통해 갓난아이 단계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 살짜리 아기가 많은 자극을 통해, 이 시기에 벌써 세상을 배우는 것을 보며 매번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 있던 아홉 달 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신세계로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깔, 냄새가 신기하다.


예를 들어 박수 소리를 들으면 처음 서너 번은 움찔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의 경험으로 자신에게 위험을 끼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이는 아기에게도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 용어로 ‘습관화(habituation)’라 부르는 과정이다.


습관화는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초보적인 학습 형태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나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는 내 속에 간직된다. 냄새를 예로 들어보자. 실제로 아기는 태아 상태에서 이미 냄새를 맡는다. 엄마 뱃속에서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마의 냄새도 어느 정도 기억한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 품에 처음 안기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편안함을 느낀다. 지난 아홉 달 동안의 엄마 냄새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러면 아기들은 마음이 놓여 금방 잠이 든다.


갑자기 욕망이 생긴다

우리는 보통 스스로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의식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통제 없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기들은 아직 무언가를 욕망하지 못한다. 그저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에 내맡겨져 있을 뿐이다. 주의력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자극에 반사적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뇌간과 특정 메커니즘에 의해 통제되는 주의력이 생긴다.


아기가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능력은 태어난 지 4~5개월 때부터 생긴다. 말하자면 주의력 전환 능력인데 이를 위해서는 뇌간만으로는 부족하고 좀 더 높은 차원의 뇌 영역이 필요하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 벌써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 그 수가 무려 수십억 개에 이른다. 참으로 실용적인 설계다. 태어난 지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신경세포 간의 연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개화(開化)’ 라고 부른다. 이는 곧 아기가 첫 3개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연결점을 만들어내고, 그와 함께 새로운 관련성을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토대로 아기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배울 가능성이 생긴다.


생애 첫걸음, 생애 첫마디 _ 10~12개월


이제 10~12개월로 넘어가 보자. 이 나이가 되면 아기의 세계상은 한층 넓어진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고, 언제 어디든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아기의 육체적ㆍ인지적ㆍ정서적 발달에 경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나’ 라는 좁은 틀에서 나와 ‘인간’ 이라는 사회적 틀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아기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하고, 남들에 둘러싸이고, 한 집단과 중점적으로 관계를 맺고, 한 집단의 일원이 되고, 이 집단에 영향을 받는다.


그에 대한 전형적인 보기가 부엌이다. 이 연령대의 아기에겐 부엌만큼 좋은 놀이터가 없다. 아기는 부엌 수납장을 뒤져 물건을 죄다 꺼내 놓고는 난장판을 벌인다. 부모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이다. 아기는 어느 순간 돌아본다. 어른들이 “그래, 그래!” 하면 괜찮다는 뜻이다. 반면에 어른들의 얼굴이 차갑거나 굳어 있으면 뭔가 잘못된 행동이다. 아기는 이런 식으로 무엇을 하면 괜찮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좋고 나쁜지 배운다.


이러한 사회적 놀이는 아기의 발달과 전체 삼에 무척 중요하다. 인간은 뼛속 깊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속한 이 세계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과 관련해서 사회와 엄마가 아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다. 사람의 발달에 결정적인 요소는 개인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집단이 개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이는 아기가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일과 함께 시작된다.


우리의 환경, 아니 모든 인간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존재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일을,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이건 다른 어떤 것보다 배우기 어렵다. 서너 살이 되어야만 타인에게 고유한 내면세계가 있고, 사물을 보는 각자의 관점이 있음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타인의 행동을 따라하는 법을 무척 일찍 배운다. 1970년대의 한 유명한 연구에서는 어른이 혀를 쏙 내밀면 신생아도 같이 혀를 내민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아기는 주변에서 보고 이해한 것을 일찍부터 흉내 내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인간 스펀지 _ 두 살배기

두 살배기는 매우 특별하다.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서 스펀지가 된다. 모든 것을 쭉쭉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예를 들어 내 딸아이는 언제부턴가 내가 집을 자주 비우는 것에 익숙해졌다. 언젠가 딸아이가 다가오더니 나를 이렇게 불렀다. “하이, 아빠 아저씨.” 의식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저절로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집에 띄엄띄엄 오는 남자 어른을 아저씨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당시 아내와 나는 딸아이가 ‘아빠 아저씨’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고민했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딸아이와 자주 놀아주려 애썼다.


‘하이, 아빠 아저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즉시 받아들이고 변형하고 일반화해서 새로운 상황에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뇌가 정보를 단순히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규칙 속에서 변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이렇게 자기 방식으로 세계와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두 살배기에게 꾸준히 일어난다.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에게 상당히 ‘끔찍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는 ‘끔찍한 두 살(terrible twos)’ 이라는 말까지 있다. 어찌나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는지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을 배우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까지 기다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황을 도발한다. 게다가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날 때까지 부모를 자극한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한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 일에서 확고한 한계는 어디일까? 내가 지키고 싶고, 지킬 수 있는 규칙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통해 자연스레 규칙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 연령대 아이들의 그런 행동은 무척 바람직하다.


어린 탐험가의 뇌 _ 언어 능력의 폭발

언어 능력의 폭발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언어 및 세계와 동시에 교류한다는 사실이다. 토마토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토마토를 손에 쥘 수 있고, 던질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그것으로 케첩을 만들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나는 내가 ‘토마토’라고 부르는 물건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로써 토마토라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굉장히 다르면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다양한 토마토가 있음을 배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배운다.


나는 대상의 이름을 부르고 그것과 교류하면서 세계 속 토마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언어 능력의 폭발은 뇌에서 행위와 이름 붙이기를 담당하는 영역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로써 말의 지도가 탄생한다. 즉 생각에서 단어에 이르는 지도가 생겨나고, 단어와 생각에 어울리는 행동 지도가 탄생한다.


두 살배기는 언제부턴가 90분마다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배운다. 엄청난 능력이다. 그것도 단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거나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의 바다에 빠지고 세계와 교류한다. 아이에게는 이런 교류가 필요하다. 단순히 귀를 열고 많은 것을 듣는 일만으로는 언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없다.


듣기만으로 언어 습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느냐는 사실은 2007년 미국의 한 연구로 밝혀졌다. 두 살배기 아이들의 언어 습득을 촉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였다. 일단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전화해서 정해진 지침에 따라 설문 조사를 했다. “당신은 아이와 하루 종일 무엇을 하십니까?” 부모들의 답변은 정확히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날마다 책을 읽어준다든지, 이야기를 들려준다든지,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런 경우 추가 질문을 통해 부모들이 주로 베이비 TV나 베이비 DVD를 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컴퓨터의 가치 평가를 종합한 결과, 매일 책을 읽어주는 행위가 아이의 언어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실제로 어휘력이 풍부했고, 언어 능력 면에서 앞서갔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텔레비전과 DVD는 좋은 학습 수단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상당히 중요한 또 다른 결과가 확인되었다. 날마다 어린이 방송이나 DVD를 시청하는 것이 언어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것도 웬만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날마다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겸하는 것으로는 상쇄가 안될 만큼 부정적 효과가 컸다. 이유는 무엇일까?


텔레비전이나 DVD에서도 말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거기다 다양한 소리에 색깔까지 다채로운 자극을 주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실제 세계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채로운 소리와 색깔만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들으면서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는 세계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채로운 소리와 영상이 오직 눈과 귀로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일방적이다. 모든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종합적 학습이 가능하다. 아이는 환경을 통해서 배운다. 그것도 모든 감각을 동시에 사용해 가면서 배운다.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파악하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두 돌이 되기 전까지 그런 미디어를 접한 아이의 비율이 90퍼센트를 넘는다. 심지어 아이 스스로 DVD를 켜고, TV 리모컨을 사용해서 비디오 프로그램을 고르기도 한다. 두 살부터는 매일 90분 정도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절대 현명한 방식이 아니다. 아이의 지적 발달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해변을 선물하라 _ 기질과 환경

인간 뇌에는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무척 특별한 신경 전달 물질이 있고, 이 물질은 감정 조절을 비롯해 식욕과 공격성, 그 밖의 많은 기능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 체계는 개인의 유전적 요인에 따라 활동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누군가는 좀 더 활발하게, 누군가는 좀 덜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는 자연스럽게 유전적 요인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유전자일까, 환경일까?


이것은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라는 것은 과학적 연구로도 밝혀졌다. 만일 당신이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떤 운명적 타격에도 상대적으로 강하게 버티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정반대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모든 운명적 타격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고, 범죄에 빠져 들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액운이 닥쳐도 잘 참고 받아들인다. 물론 잘 버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아이가 어떤 식으로 액운에 반응할지 모른다. 아이의 유전적 소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전자와 환경적 영향 모두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려면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우리 아이와의 교류에서 몇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각자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를 해변으로 데려가 보라. 그러면 아이가 그 환경에서 얼마나 혼자서 잘 노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숲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뭘까? 아이에게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가 모든 것을 잊고 자신에게 푹 빠진 채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안타깝게도 획일적으로 변해버린 아파트 같은 우리의 거주 공간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변했다. 그렇다면 변해버린 세계에서 어떻게 환경을 찾아주고 만들어줄 수 있을까?


보드게임을 사 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 게임에서는 사회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보드게임은 여럿이서 함께 한다. 그로써 우리는 서로 부대끼고 싸우고 이기고 지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사회적 연출, 즉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 배운다.


아이를 하루 종일 차에 태워 바이올린 학원, 무용 학원, 승마 학원, 유도 학원으로 데려가는 부모는 아이에게 온종일 수동성만 가르치는 셈이다.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자신과 상관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무엇을 배우겠는가?


아이들을 돌볼 때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이에게 원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좋은 척도가 있다. 아이가 그것을 재미있어하는가? 재미있어한다면 잘못되지 않았다. 중요한건 재미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두 살배기는 재미있을 때 가장 빨리, 가장 능동적으로 배운다.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세상

유치원에서 배우는 인생 _ 미취학 아동기

세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시기를 우리는 ‘미취학 아동기’라 부른다. 이 시기에는 유치원에 간다. 아직 학교에 갈 나이는 아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고, 유치원에서는 논다. 학교에서 삶의 진지함이 시작된다면 그 전에는 놀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취학 전, 그러니까 유치원 시기에는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다. 삶의 배움은 유치원에서 이미 시작되고, 이 시기에는 학교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발달한다. 그것도 무척 많이.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이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의식일 듯하다. 아이의 인격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만 아직 잠재적으로만, 그러니까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우발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세 살 이후의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타인과의 접촉, 그것도 다른 아이들과의 접촉이다. 어른도 엄마와 아빠로 한정되면 안 된다. 삼촌과 이모, 부모의 친구들과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집단에서 새로 만나는 낯선 이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이들이 그들과 어울려 놀 수 있고, 그러면서 인생의 단독 데뷔를 연습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이가 하나의 작은 인간이 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요소다.


이 시기에 두르러지게 형성되는 것은 인격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능력도 그만큼 발달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운동 영역에서의 학습이다. 아이들은 우선 세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 그런 다음 두발자전거로 나아간다. 또한 수영을 배우고, 가위와 칼, 바늘 다루는 법을 배운다. 인간의 운동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말하기다. 아이들은 이제 모국어를 아주 쉽게 배운다. 나중에 어떤 외국어도 그만큼 더 잘 배울 수 없을 정도다. 특별한 연습이나 훈련도 필요 없다.


두 번째 언어를 배울 시점 _ 모국어 단계

내가 반복해서 받는 질문이 있다. 아이에게 두 번째 언어를 가르쳐도 될까? 이와 관련해서 부모로서 몇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세 살 아이는 다른 언어를 배울 능력이 충분하다. 배움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거의 자동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두 언어 가정, 즉 엄마와 아빠가 각각 다른 말을 사용하는 가정에서도 아이는 문제없이 적응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거기다 아이의 주의력까지 높인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할 때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언어를 배울 최적의 시점은 언제일까? 강조했다시피 3~7세 아이들은 자동으로 언어를 배운다. 학교나 어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오가는 단어와 문장을 받아들이면서 배운다. 일곱 살 아이는 아직 언어를 놀이하듯 습득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언어 센터 외부에 언어가 저장되고, 그 과정은 이전의 자동적인 말하기와 동일하지 않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일단 한 가지 언어, 그러니까 모국어부터 터득하는 것이다. 외국어 학습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예닐곱 살의 아이는 이미 모국어를 충분히 익힌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세 살때 영어를 배웠다고 해서 그게 훗날의 직업이나 삶의 성공에서 별로 이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아이를 만든다

배움의 원리 _ 시냅스 가지치기

부모나 교사는 실수를 단순히 잘못한 것으로 폄하하고 무작정 바로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이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왜 그런 의외의 결과에 이르게 되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실수 속에는 수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는 긍정적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아이는 실수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 학습은 이제 두 가지를 뜻한다. 한편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고히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식 체계 속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강화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학습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뇌가 있기 때문이다. 학습이 가능한 것은 그와 관련된 여러 뇌 영역이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 몇몇 영역은 점점 더 강하게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뇌 영역에서 다른 뇌 영역으로 직접적인 신경세포 연결망이 형성된다. 이러한 강력한 연결망 덕분에 연상은 더욱 풍부해지고, 기억력은 좋아진다.


이 케이블망에 또 하나 추가되는 현상이 있다. 우리는 학습이 시냅스 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시냅스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일정 뇌 영역에서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라고 부르는데, 시냅스 가지치기는 과거에 시냅스가 대폭 증가했던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몇몇 과학자는 뇌 속의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학교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이 앎을 파괴하거나 뇌 발달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학습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본질적인 연결이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필요 없고 별 의미가 없는 기존의 시냅스는 해체된다. 그렇다면 이 연령대 아이들에게 학습이란 한편으로는 시냅스의 축소 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결망의 증가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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