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어요

   
최현아
ǻ
태인문화사
   
14000
2020�� 07��



■ 책 소개

 

아빠육아, 아빠와의 유대 강화로 아이들의 사회성과 자신감을 키워준다!

 

이 책은 아빠, 엄마, 아이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육아휴직을 통해 함께하며 삶의 밸런스를 맞추고 행복할 수 있었던 방법을 저자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나갔다.

 

라테파파(latte papa)란 말이 있다. 한 손엔 커피를 다른 한 손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빠를 가르키는 말이다. 세계 최초로 남성 육아휴직을 도입한 스웨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대왕 때 이미 시행한 바 있다. 《세종실록》에는 노비들의 출산을 걱정하며 세종이 직접 형조에 명을 내려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100일 동안 휴가를 주게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세종은 더 나아가 남편의 배우자 출산휴가 제도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남편의 육아휴직 제도는 엄마의 심리적 안정 및 보호 차원에서도 추천되어야 하지만 아빠와의 유대 관계가 돈독한 아이는 사회성이 발달해 자신감과 자아성취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하니 더욱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로 우리는 위기와 불안, 불확실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일자리, 교육, 건강관리 등을 비롯해 일하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 등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육아 역시 바뀌어야 한다. 육아=여성, 생계부양자=남성이라는 성역할을 뒤집어야 한다. 인성과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협업력, 공감력을 키워주는 육아를 해야 한다. 바로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중요한 이유다.

 

■ 저자 최현아
남편을 육아휴직 시킨 전업주부, 거제와 서울을 오가는 삶, 연년생 남매 맘, 독박육아,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보통은 아내가 워킹맘일 때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다. 어떻게 해서 저자가 전업주부임에도, 그녀의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독박육아를 이겨내려고 애쓰다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녀는 실패를 깨끗이 인정한 후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요구했고, 행복을 되찾았다. 저자에게 남편의 육아휴직은 나를 찾는 여정이자 또 다른 세상을 여는 문이었다. 실직의 두려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여전히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 아빠들의 육아휴직이다. 그녀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직업이자 라이프스타일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고, 지금은 남편만큼의 수입을 일구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행복은 행복을 선택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1장 육아우울증과 미니멀라이프
설마 내가 육아우울증을
육아우울증 탈출, 미니멀라이프
육아휴직의 시작, 미니멀라이프
이제 돈 버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냐, 시간이냐
어쩌다 육아휴직
살고자 한다면
미니멀라이프 Q&A

 

2장 전업주부 남편이 육아휴직을?
회사님, 한 가족을 살리셨어요
생활이 가능해?
저도 돈 좋아합니다만
부모님이 도와주셔?
네, 저는 전업주부입니다
행복을 보장할 직장은 없다
그래, 지금이 멈춰야 할 때

 

3장 그해 봄, 나의 휴가는 시댁살이
힘 빼고 살 타이밍
돈이 아닌 일상을 버는 삶
거제댁이 미쳤구나
또 미친 듯이 비우다
계절의 여왕을 찾았다
시부모님과의 관계 Q&A

 

4장 그해 여름, 비로소 거제 바다를 즐기다
매일 바다에 가다
노쇼핑 일지
아이들 책이 왜 이렇게 없어요?
공유경제의 꽃, 육아
단유, 서운함은 1도 없다
나는 엄마 공주님
저, 나쁜 엄마인가요
육아는 엄마도 키우는 일
시간제 엄마로 사는 법
육아휴직 가계부 Q&A

 

5장 그해 가을, 현모양처를 버리다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의 내면아이
실패한 모성애
한 명만 아파도 모두가 아파지는 공동체, 가족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만
‘아줌마’라는 한없이 만만한 존재
노키즈존과 맘충
독박육아는 학대다
하루살이 엄마의 생존법
육아우울증 Q&A

 

6장 그해 겨울, 나와 마주하다
나를 찾게 한 마지막 기회, 육아휴직
김장하다 도망친 며느리
호텔에서 하루 살기
‘혹시나’ 했던 일은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자아 찾기 Q&A

 

7장 다시 봄, 그리고 우리 집
다시 거제? 새로운 거제!
육아의 이유
어린이집 적응은 엄마 먼저
뭣이 중헌디!
부부 관계 Q&A

 

8장 디지털 노마드족, 꿈을 이루다
아줌마 티 내지 마세요?
커피값 아끼지 맙시다
자아 찾기를 위한 수련, 블로그 1일 1포스팅 하기
유튜브는 ‘엄마 유튜버’를 환영한다
출판사에 까이다
엄마의 시간 관리
주부들이 SNS를 해야 하는 7가지 이유
첫 방송 출연, 운명이었을까?
아줌마, 삶을 브랜딩 하다
글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기 Q&A

 

에필로그
육아휴직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어요


육아우울증과 미니멀라이프

이제 돈 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육아휴직!” 숙고의 시간 끝에 결정했다. 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게 더 가치 있다고 확신해서였다. 더불어 남편과 나도 좀 쉬기로 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엄마, 아빠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딱 1년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보기로 했다.


‘좀 쉬면 어때?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살면 어때?’ 이렇듯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무책임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면 자신의 욕구를 숨겨야만 할까?’, ‘자신을 지우고 육아를 하고 돈을 벌어야만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


부모의 역할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와 함께 그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은 책임 있는 부모의 모습이 아니다. 부모 자신을 지우고서 아이를 위해 밥을 하고, 아이를 위해 돈을 벌고, 아이를 위해 애쓰는 것, 이런 게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까? 희생은 곧 사랑인가?


아이와 부모가 양립하며 둘의 욕구를 잘 조절하는 삶,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삶, 내 인생을 아이 인생에 걸지 않는 삶이 나는 책임감 있는 부모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육아휴직을 결정한 후 남편이나 나나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겠다는 의욕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특히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보며 경제적 문제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남편을 이해했다. 흔치 않은 상황이니까.


“난 괜찮아. 미니멀라이프 시작하면서 간소하게 생활하고 있잖아? 지금은 어린 우리 아이들을 보자. 돈보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더 중요해. 그리고 우리의 꿈과 일상도.”


맙소사. 돈벌이도 없는 전업주부가 남편더러 육아휴직을 하라고 바람을 넣고 있다니.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모든 결정이 우리 가족을 한 단계 높은 행복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사실을.


미니멀라이프 Q&A

Q 아이가 커갈수록 자잘한 물건들이 늘어납니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오는 교구며 만들기 작품, 그림 같은 것들이요. 첫째인 남자아이는 레고 블록, 둘째인 여자아이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 많은데요. 아이들의 자잘한 물건을 어떻게 비워야 할까요?


A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엄마가 자신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을 대거나, 치우거나, 버린다는 것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싫어합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 같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자잘한 걸 끌어안고 있기에는 공간이 부족하고, 엄마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지요. 아이와 의견을 잘 조율하여 한 공간에서 부드럽게 공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저는 이런 해결책을 드립니다. “보물상자를 만들어주세요. 소설 《작은 아씨들》에 나올 것만 같은 나만의 보물상자 있잖아요. 그런 걸 아이에게 마련해주고, 소중한 걸 선택해서 그 상자 안에 보관하게 해주세요.”


나만의 작은 세계가 있다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아이를 위해 예쁜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갈 물건에 대해 아이와 상의하거나 혹은 스스로 고르게 하는 것. 이것은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는 것 이상입니다. 바로 선택을 연습하게 하니까요.


선택을 연습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선택해온 것의 총합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겁니다.


하지만 물질이 과하게 풍요한 시대인 지금, 우리 아이들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이 주어지거든ㄴ요. 자신이 원하고 선택하기 전에 부모에 의해 발달 단계에 맞춰 준비되어 있어요.


과한 풍요는 우리 아이들이 ‘소중하고도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기회를 앗아갑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라도 선택을 연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갑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할 준비를 합니다.


혹여나 비울 것을 잘못 선택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책임감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은 분명 아이들이 자라서 큰 선택을 하게 될 때 도움이 됩니다.



전업주부 남편이 육아휴직을?

생활이 가능해?

우리 집 자금 관리는 남편이 전담해왔다. 다행히 나나 남편이나 낭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간 남편의 월급만으로도 무탈하게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막상 육아휴직을 준비하니 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뿐만 아니었다. 실제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열이면 열 모두 “생활이 가능해?” 같은 질문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했다. 집집마다 케이스가 다르니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그랬다.


우리 부부의 경우 소비 자체로 만족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다. 물건을 사든 경험을 사든 고심 끝에 사야 진짜 내 물건 같고, 값진 경험처럼 느껴졌다. 외식비는 거의 들지 않았고, 아이들 옷이나 장난감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체험 활동에도 큰돈을 들이지 않았다. 아이들 책 역시 중고를 구입했다. 어느 정도의 물질적 부족함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과잉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비방식이 그처럼 변했던 것은 단지 육아휴직으로 인해 돈을 아꼈기 때문이 아니다. 육아휴직과 함께 미니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의 육아휴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비를 다시 포기하더라도 다른 것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자기계발에 더 가치를 두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잠시 쉬어가기 위한 여유를 줄 수 있었다.


저도 돈 좋아합니다만

전업주부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세속적인 욕망에 관심이 없는 부류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우리 부부는 세속적인 욕망에 관심이 많다. 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돈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돈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부부 관계와 금전적인 부분 모두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런 부부들은 돈에 대한 대화가 전혀 없다가 돈을 잃고 나서야 상대방을 탓한다. 우리 부부는 경제관념들을 모아서 하나의 가치관을 세우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돈은 자식과 같은 거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여 움켜쥐고만 있으면 제대로 자랄 수 없어.’


오랜만에 둘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남편이 갑자기 말문을 연다. 이렇게 자주,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대화가 오간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세상으로 나가 좋은 에너지를 보태는 사람이 되도록 뒷받침해줘야 하는 것처럼, 돈 또한 세상으로 나가 가치 있는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게 키워야 한다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잘 키운 자신이 세상에 나가서 당차게 자기 꿈을 펼치면 얼마나 기특하고 이쁠까? 돈도 마찬가지로, 그 돈이 좋은 기운으로 부를 스스로 늘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돈을 쓸 때마다 ‘감사한 돈아, 세상으로 가서 좋은 일의 밑거름이 되거라.’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아, 이 커피 사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이런 경제적 능력이 허락돼서 다행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 나는 이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어’라고 생각한다.


육아기에서도 3세 이전이 중요하다고 하듯이 돈도 작은 돈일 때 소중히 다루고 아껴주는 것이 중요하다. 육아를 위해 공부하듯 돈 또한 잘 불리기 위해 투자 공부도 해왔던 사람들이 우리 부부다. 육아휴직을 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모두 저당 잡히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이유가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아서였다.


돈을 벌기 위한 목표와 동기를 분명히 해야 장기적으로 돈을 버는 일에 대한 회의감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돈? 좋다. 벌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이 불행한데? 잘못된 것 아닌가? 육아휴직을 결정한 데에는 다시금 돈을 제대로 벌기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갖자는 마음도 있었다.



그해 여름, 비로소 거제 바다를 즐기다

매일 바다에 가다

어느덧 거제살이 10년 차. 멋모르고 남편을 따라 본래 터전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왔다. 하루는 길지만 10년은 참 빨랐다. 처음 거제에 왔을 땐 신혼 생활을 하며 알콩달콩 관광지 온 듯 살았다. 그러다 3년 만에 첫째를 갖게 됐다. 기쁨도 컸지만, 두려움은 더 컸다.


두려움이 커서 아이를 마냥 귀엽다고만 보지 못하고 부담스러워했던 적도 많다. 하루종일 아이와 부대끼며 수없이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수없이 설거지를 하며 창밖의 바다 풍경을 마주했다. 그 바다는 나를 후련하게 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막막하고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풍경은 나에게 희망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시절 거제의 바다는 나에게 낭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파란 눈물이었다.


하지만 육아휴직 후에는 달랐다. 네 식구가 함께 매일 바다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만 가자, 이제 밥 먹어야지!”


아이들은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모래 파기에 심취해있다. 발가락이 모래로 지저분해지고 목과 팔 언저리가 새까맣게 타 티셔츠 자국이 선명해질 때까지 하루종일 놀았다. 한때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던 바다였다. 하지만 육아휴직 후에는 거제의 바다를 비로소 휴양지로 삼을 수 있었다.


아이들 책이 왜 이렇게 없어요?

“책 육아 안 해?” “왜 이렇게 아이들 책이 없어?”


우리 집에는 없는 게 많다. 아이들 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이 우리 집에 오면 꼭 시비 아닌 시비를 건다. 나도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책 육아가 필수가 되었고, 내 또래 엄마들이라면 거실에 서재를 꾸미는 등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고 무던히도 노력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 기준에서 우리 아이들의 책은 적지 않다. 책을 ‘적당히’ 구비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책 육아가 그처럼 미니멀하게 변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풍요가 지나친 시대를 사는 우리, 나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결핍을 가르쳐주고 싶다. 책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너무 흔하게 접하면 책의 소중함을 간과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북디자이너인 정병규 선생은 ‘중학생 때까지 책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 싶어 미칠 정도가 되어 스스로 책을 구할 때 진정 책을 소중히 여기고 깊이 있게 될 것이라는 조언이다.


정병규 선생은, 아이들이 어른들 몰래 책을 보며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열다섯 살을 기다리며 사노라’ 하는 문구를 일기장에 적길 바랐다. 책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이들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이렇듯 책에 대한 갈망을 키워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집에 책이 많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책이 아주 많았다. 물론 아이들 책도 많았지만, 대부분 어른을 위한 책이다. 아빠가 한창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방마다 책이 쌓여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삼 남매 중 두 명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한 명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책의 양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책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나는 유달리 책을 좋아했다. 아빠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아빠가 하는 행동도 따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일은 책의 양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아도 다양한 통로로 세상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그것은 여행이 될 수도,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책은 다양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그 수단을 찾기를 바란다. 부모의 책 읽기 강요는 아이를 책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 삼남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가장 좋아했던 나보다 성인이 된 후에야 책을 읽기 시작한 둘째 동생의 학벌이 가장 좋다. 여전히 책은 재미없다고 하는 막내가 셋 중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다.


나는 학벌과 돈을 숭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삼남매의 경우는 책 육아의 정답은 없다는 사례가 될 것 같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책을 아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 정도인 것 같다. 책보다는 그저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서 책을 들고 오는 것 같다. 우리 부부 또한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정답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 육아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육아를 망친다. 책 육아도 마찬가지다.


시간제 엄마로 사는 법

단유 후 비교적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제일 먼저 찾기 시작한 곳은 바로 ‘배움’이 있는 곳.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육아 강의를 비롯해서 재테크, 자기계발, 글쓰기까지 닥치는 대로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배우고 싶은 게 많아졌다. 왜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를 찾아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무엇인가를 듣고 배우면서 비로소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충만감과 함께 더해지는 지적 갈증이 배움에 더 몰입하게 만든 것이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배움에 대한 만복감이 충족될수록 아이들에게 무심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고심이 깊어질 무렵, 한 육아 강의에 패널로 오신 마음 수련 강사님의 말씀이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강사님의 부인은 늘 바빠서 밤 10시나 11시쯤 퇴근을 한단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6학년인 따님과 사이가 굉장히 좋다고 하셨다.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나는 그로 인한 결핍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곧 의문은 풀렸다.


“제 아내는 퇴근을 하면 씻지도 않고 곧바로 딸 앞에 앉아요. 그러고선 딸의 이야기를 경청하죠. 입을 헤벌리고 진짜 집중해서 듣죠. 그래서 딸도 늦게 끝나는 엄마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답니다.”


강사님의 말에 무릎을 쳤다. 공부 잘하려면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집중력이 더 관건이듯, 양육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이 아닌 시간의 질이 관건이었다.


내 유년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 과거에 대한 후회, 그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잡다한 생각은 나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그 모든 것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육아는 그 무엇이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그것이 아무리 작고 소소한 일일지라도 의미 있는 일이 된다. 매끼 식사시간은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충만의 시간이며, 주말 저녁 온 가족이 모여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의 시간은 행복한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 된다.


그날 이후 나는 내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인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아이에게 온 힘을 쏟고,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 시간에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시간에 흠뻑 빠질 때 오늘 하루는 선물 같은 하루가 된다.



그해 가을, 현모양처를 버리다

실패한 모성애

사실 남편의 육아휴직은 곧 내 모성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내게 모성애란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내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극복하지 못했다. 내 엄격한 기준에 대어보면 모성애를 가진 엄마는 독박육아를 버텨냈어야 옳다.


물론 나름 열심히 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자연분만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모우 수유가 일생일대의 과제인 것처럼 굴었다. 수십 권의 육아서를 읽어가며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세심하게 신경 쓰며 키웠다. 유명하다는 여러 인터넷 세계의 맘카페를 전전하며 다른 엄마들의 육아와 나의 육아를 견주었다. 무언가 빠진 것이나 뒤처지는 것은 없나 늘 확인해야 마음이 편했다.


나의 육아가 옳은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희생과 포기가 모성애를 보여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엄마가 성공지향적이면 아이가 희생된다고 생각했다. 내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엄마가 사회생활에 투자할수록 아이는 불행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애석하게도 내 육아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모성애에 대한 강한 신념은 나로 하여금 아이에게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육아는 더 힘들어졌다. 연년생 두 아이의 육아는 극한의 작업이었다. 모성애?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나는 깨끗이 포기했다.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후 나는 더 이상 산후조리원의 동기들에게 육아 관련 질문을 하지 않았다. 육아서도 덮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SOS를 쳤다. SOS에 대한 답변은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돌아왔다. 육아휴직과 함께 나는 새로운 모성애를 찾았다.


나를 더 사랑하면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기꺼이 ‘시간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탈했다. 아이들은 더 행복하게 잘 자랐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진부한 진리에 그간 왜 귀를 닫고 있었을까? 나는 아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그해 겨울, 나와 마주하다

‘혹시나’ 했던 일은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덧 육아휴직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만일 육아휴직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휴직을 결정하던 당시, 우리 부부는 기존에 봐왔던 것만 보지 않고 다른 것도 보고 싶었다.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원했다. 다행히 우리는 그 목표를 성취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기준 없이 살아왔다. 사회의 기준과 부모님의 기준을 내 기준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육아휴직은 한 번쯤 그 기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의 기준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우리 부부는 육아휴직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을 모두 얻었다. 나와 남편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웠고, 다시 오지 않을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시절을 충분히 함께 함께했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 부부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육아휴직을 처음 결심했을 때는 우리도 두려웠다. 그때까지 쌓아둔 모든 것을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불안할수록 그 불안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태풍을 만났을 때 가장 안전한 장소가 태풍의 중심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갔고, 태풍의 움직임에 발을 맞춤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태풍을 피해 다니는 삶을 멈추기로 했다. 예측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다가오는 태풍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현재를 살기보다, 태풍이 오면 그때마다 과감히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가 태풍과 함께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육아휴직을 통해 얻은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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