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즐겁고 어린이는 귀엽지

   
전희성
ǻ
포르체
   
14800
2020�� 05��



■ 책 소개

 

예쁘게 접어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은,
‘우리’라서 행복한 날들

 

아이가 생기면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작가의 꿈은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친구 같은 아빠 좋아하고 있네.’였다. 주관과 고집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거나 화내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구 같은 아빠의 꿈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조금 더 천천히 실패하는 쪽으로 전진해보겠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어쩌면 어른보다 크고 넓고 순순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점차 성장해가는, 아빠의 성장과 ‘육아의 가치’를 통해 깨달은 진정한 행복이 담겨 있다.

 

작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결혼하게 해 주세요.” 라는 웃픈 소원을 빌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간은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했다고 말한다. 때로는 가장의 책임이 무겁고 고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너를 만나서 행복을 배웠다. 마음은 있지만 아이에게 쉽게 전하지 못한 말, ‘아빠 계속 좋아해줘서 고마워.’라는 아빠의 진심과 함께.

 

■ 저자 전희성
1980년 여름에 태어나 부천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 학원을 다니다가 디자인학과에 진학해 게임 회사와 에이전시를 거쳐 현재 신문사에서 13년차 인포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2017년 초 《집으로 출근》이라는 육아 에세이를 출간했다. 2019년 웹툰 플랫폼 ‘만화경’을 통해 웹툰 작가로 데뷔했고, 삼성 갤럭시 테마 등록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이제는 제법 어린이 같아진 두 살 터울의 1호기 아들과 2호기 딸을 키우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 @junheesung_nuj

 

■ 차례
들어가며

 

1장 귀여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귀여운 날들이 지나간다 │ 그림자 놀이 │ 많이 컸어? │ 인간 복사기 │ 심장이 쿵! │ 백업은 필수 │ 아는 이름 다 나오기 전에 거들어야지 │ 어느새 ‘놀자’에서 ‘놀아 줘’가 되어버렸다 │ 관찰 │ 장난전화 │ 나는 다섯 살이야 │ 있다가도 없는 것 │ 내 말 안 듣고 있었어 │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지만 │ 진화하는 너 │ 내가 너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 집에 가서 또 싸우겠지만 │

★아, 내가 아빠구나!

 

2장 우리 친구할래?
부전자전 │ 친구 같은 아빠 │ 시리야 아빠 좀 깨워 봐 │ 아침 김밥 │ 장사꾼들 │ 쿨가이 │ 네가 나를 찍어준 날 │ 아파트 │ 조금 이른 효도 │ 제법 진지한 토탈 케어 │ 눈치가 생겼다 │ 이중인격 │ 과유불급 │ 너무 많이 뛰어놀던 날 │ 네 덕 │ 시골 아침 │ 오늘 안에 끝나는 것인가 │ 행복의 주문 │ 양육 │ 가을 │ 아빠 계속 좋아해줘서 고마워 │ 인생은 역시 타이밍 │

★철없는 아빠의 철든 육아

 

3장 이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우리라는 세상 │ 역지사지에 관하여 │ 늦은 귀가 │ 싱그러운 아침 │ 웬만하면 사랑만 하는 게 어떨까? │ 위기탈출 나눔원 │ 하늘에 뭐 있어? │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 각자의 창 │ 기억해줄래? │ 책 많은 곳 │ 붕어빵 │ 새싹 │ 비밀장소 │ 아빠, 바닷물은 왜 짜? │ 노력 부족 │ 너희의 온기가 │ 횡단보도 │

★아빠라는 이름으로

4장 걷던 쪽으로 한 걸음 더
우리집 냉장고에 없는 것 │ 진심 │ 네가 아니라서 │ 어린이집 │ 대리운전 │ 자연스러웠어 │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것 │ 유치원에 간 사나이1 │ 유치원에 간 사나이2 │ 유치원에 간 사나이3 │ 느므추으 │ 너도 울고, 나도 울고 │ 각자도생 │ 엄마! │ 아빠 갈 때 가자니까 │ 지옥문 │ 너의 목욕시간 │ 환청 │ 균형 │ 아빠가 좋아 │

★포기하면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생겨버렸다.

 

5장 ‘같이’의 가치
무제 │ 같이 좀 하자 │ 동변상련 │ 녹색 어머니 │ 아내의 퇴근 │ 천천히 빨리 와 │ 아빠 생각만 하자 │ 엄마가 │ 엄마도 누군가 필요해 │ 해줄 말이 있어 │ 행복의 크기 │ 치트키 │ 할아버지랑 문방구 갔어? │ 또 다, 또 │ 한파 속 갤러리들 │ 각자의 회전목마 │ 재롱잔치 │ 발치 │ 권력의 ㅣ동 │ 지금은 뭐든 다 괜찮아 │ 부모 노릇 │ 시간 도둑들 │ 운 좋은 사람 │ ★행복에 대하여

 

6장 오늘을 사는 법을 너에게 배웠다
바다 │ 아빠의 아빠 │ 눈사람 │ 그네 │ 눈썰매 │ 참 부럽다 │ 인정 │ 발레가 뭐길래 │ 레인부츠 │ 맨 인 블랙 │ 마음 같아서는 │ 뽀시래기 │ 아내의 생일 │

★오늘을 사는 법

 




인생은 즐겁고 어린이는 귀엽지


들어가며

어느덧 8년 차, 내게 나 말고도 지켜야 할 존재,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였던 초보 아빠에서 나를 뒤로하고 아이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중수 아빠가 되었다. 이제 막 육아의 세계에 발을 뗀 아빠들에게는 섭섭한 이야기일 테지만, 평생 신기하기만 할 것 같은 육아의 순간들도 내게는 더 이상 대단히 신비롭거나 새롭지 않다. 육아의 순간은 일상이 되었고 늘 그렇듯 소중함을 익숙함으로 바꿔 놓는다.


하지만 아침부터 이유 모를 짜증에 아이들에게 괜한 화를 냈던 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먼저 다가와 “아빠, 미안해! 사랑해!”라고 말해두전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날 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을 되뇌고 우리의 일상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육아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한 순간, 우리라서 행복한 날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자 외려 육아의 또 다른 가치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아이는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고, 듣고, 그리며 나는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살 것들을 배웠다. 오늘을 의미 있게 사는 법,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나는 아이를 통해 배운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노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또한 그들 나름의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느낀다. 다만 아빠의 마음, 아빠의 노력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표현에 거침없는 아이보다 먼저 아빠의 진심을 보여줄 때 아이들이 들려주는 마음의 크기는 육아의 행복을 배로 늘려준다.


결국 나는, 함께하는 일상의 작고 반짝여 더 소중한 순간들을 잘 찾아보면 행복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것이라고, 나와 같은 모든 보통의 아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잘나거나 우리 가족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귀여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귀여운 날들이 지나간다

이제 1호기에게는 유모차도, 아빠도 조금 작다. 빠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귀여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순간이 지나간다고 아이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질 리 없겠지만, 어딘가 아쉽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 듯 몰려온다. 아이는 자라서 어쩌면 잠깐이나마 친구였을지도 모를 나를 온전히 ‘아빠’로만 여길 것이고, 나에 대한 아이의 이해와 관용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럴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나를 더 이해하고 기억해줄 거라고 믿어본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에게 “우리 그만 교대할까? 아니면 애들끼리 자리라도 바꿔볼까?”라고 물을 때 “둘 다 깨”라는 답이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아직은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많이 컸어?

나를 흉내 내는 너를 보며 좋은 모습만 보여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아이를 보면 그 부모가 보이는 법이라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나의 행동을 곧잘 따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마냥 귀여워 보일 때도 있지만, 아차 싶은 경우도 더러 있다. 언젠가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에서 호기심과 배움을 찾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태도는 ‘지금’ 만들어진다. 어쩌면 부모의 덕목은 아이 앞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동심 어디 갔니

눈을 뜨자마자 전날 뉴스에서 떠들던 일기예보가 생각나 창문을 열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보고 아이들은 환호했다. 나는 겨울다운 풍경을 보고 잠깐은 미소를 지었지만 출근길 걱정이 앞서 주섬주섬 우산을 챙겼다. 아이들은 여전히 고사리 손을 창밖으로 내밀고 겨울을 잡으려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비보다 눈이 더 싫어졌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눈이 오면 빙판 위에서 운전을 해야 했으며, 신발이 더러워지거나 젖는 상황에 진력이 났다. 나에게도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강아지처럼 털어내던 게 즐겁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눈이 오면 우산부터 찾게 된 것이다.


변변한 외투와 장갑 없이도 온몸이 꽁꽁 얼 때까지 눈을 만지고 놀던 동심은 이제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만 또 그냥 아쉽다고 하기에는 훨씬 이상하고 복잡한 느낌이다.


이런 이상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느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아내의 재촉에 아이들도 나도 채비를 서두른다. 등원차량이 오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면 작은 눈사람이라도 하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글렀지만 작은 눈사람이라도 만들 수 있는 그 마음을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반만 덮어도 충분하던 이불 밖으로 이제는 발이 삐죽 인사를 한다. 두 번, 세 번 접어 입던 긴 팔 외투가 어느새 손을 뻗으면 팔꿈치 사이로 쑥 올라온다.


작아진 신발 때문에 발가락이 아프다고 투덜거리며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너에게 “오늘만이야!”라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새 신을 주문한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너의 매일이 너무 빨라서 너의 순간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때가 있다.


★아, 내가 아빠구나!

아주 가끔 아이들을 보다가 ‘아, 내 아이구나 내가 아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아이삼매경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책임감이라는 것이 전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지난날의 나를 돌아봤을 때 헛웃음이 나는 것이다. 진짜로 책임감이라는 것에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것에는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비록 지금이라고 전과 아주 다른, 훌륭한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 책임감의 무게만큼 내 삶의 진중함이 늘어간 탓이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들에게 오늘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는 태도를. 에너지가 차고 넘치고 또다시 차오르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은 군대에 비교하자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화생방을 하면서 행군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비록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훈훈하고, 고된 행군처럼 고독한 싸움이 아님에 한 차례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아빠라는 군장을 메고 꿋꿋하게 걸어나간다.



우리 친구할래?

친구 같은 아빠

아이가 생기면 복잡한 심경 속에서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내가 꿈꾸고 원했으며, 어쩌면 가장 쉬워도 보였던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의 목표는 반쯤 성공했지만 반쯤 실패한 것 같다. 어쩌면 점점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같은 아빠는 시간이 갈수록 신기루 같은 느낌만 자아낸다. 아이가 자기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면 ‘나라는 사람의 그릇으로는 벅찬 목표였나?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기 때문이다.


약간의 권위와 어설픈 단호함, 얕은 성찰을 통한 개똥 육아철학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냥 친구 같은 수가 없어진다. 아빠와 친구의 가깝지만 먼 거리만큼 실패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느 한 쪽을 그만두기에는 어렴풋이 남아 있는 ‘친구 같은 면’이 발목을 잡고 만다. 아직 아이와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배낭여행도 가봐야 하고, 동네 목욕탕에도 가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두었던 글러브로 캐치볼도 해야 하니 내 어설픈 다짐의 마침표가 설사 실패일지라도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실패하는 쪽으로 전진!


쿨가이

추운 겨울 어느 날 아침,

등원차량을 기다리며 펭귄처럼 너를 품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허겁지겁 내려와

이것저것 노닥거리기 딱 좋은 시간이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이기도 해.

너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콘크리트 바닥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조개껍질을 찾기도 하고,

이유 없이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알 수 없는 힘겨루기를 하기도 해.

그러고 나면 꼭 오늘 집에 일찍 오냐고 물어보지.

“미안해 약속이 있어”라고 말하면

넌 또 쿨하게 괜찮다고 얘기해.


#쿨가이 그런데 #엄마는 안쿨함


오늘 안에 끝나는 것인가

무심하게 떨어지는 꽃잎을 하나 휙 잡아채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꽃잎을 잡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하며 하늘을 향해 폴짝거린다. 물론 헛손질이다. 이제 그만 가자는 나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기세라면 꽃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호기와 2호기가 폴짝 뛰지 않아도 될 만큼 커서도 이 마음을 간직하길 바란다. 즐거운 일을 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길 바란다.


벚꽃잎이 내린다.

봄이 내린다.


가을

아이들과 함께 한바탕 땀 흘리며 지냈던 또 한 번의 여름이 장마가 온 뒤로 지나가 버렸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우수수 쏟아지는 가을비를 바라본다. 두 아이를 매달고 택시를 붙잡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비바람 덕에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아이는 웅덩이에서 물장구만 친다. 왠지 남 일 같지 않다. 어쩌면 아이는 택시가 천천히 오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별 생각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장면이지만 으레 1호기가 떠오른다. 아빠가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는 생각이 또렷해지는 시기다.


★철없는 아빠의 철든 육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생기가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아빠라는 무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 참 용감한 생각이었다. 막상 육아의 현장에 던져지고 나니 이것이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 같은 아빠는 전교 1등 같은 느낌이다.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했어요”라는 말이 실은 가장 어렵고, 약간은 재수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기만 한다고 ‘친구 같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명예의 직함을 얻기 위해서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기 위한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1호기만 있을 적에는 친구 같은 아빠와 가장으로서 아빠의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더니만, 2호기가 함께한 뒤로는 부쩍 그 간극이 커지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 나는 조금 더 철없이. 아이에게 동화되어 하루하루를 즐기며 보내고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 덕분에 나는 점점 더 철이 든다.



이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요즘 들어 동생에게 땍땍거리는 1호기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등원 길에 좋은 주제 하나를 찾아냈다. 한겨울 감나무 꼭대기에 남아 있는 까치밥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1호기에게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호기! 저기 꼭대기에 있는 감 보이지? 저 감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못 딴 게 아니라 겨울이라 먹을 게 없어서 배고플 까치를 위해 남겨 놓은 거야. 세상은 나누면서 살면 더 즐겁고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래. 작지만 의미 있는 양보와 배려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 ‘함께’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야. 우리 가족도 엄마, 아빠, 재이, 소이가 함께 있어야 행복한 것처럼.”


이렇게라도 겨우내 배고플 까치를 위한 온정을 우리네 삶과 연결해 이해시켜 주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과 부족한 내 식견과 언변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다가 “그저 나누고 배려하면 세상은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정리하고 만다.


1호기는 이해를 한 건지 못 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한다.


“까치는 좋겠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인 나는 아빠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관심과 의미 있는 투표, 타인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와 고민, 비겁함에 맞서는 연습을 한다. 소시민적이고 아주 미미한 움직임일지라도 아빠가 된 나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나는 내 가족과 나의 아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정의롭지 않고, 상식에서 벗어난다면 조금 물러서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삶에 대한 태도가 아이들 덕분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자꾸 변한다. 태도가 변함에 따라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일이 계속 늦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바꾸며 내일도 살아가야겠지.



걷던 쪽으로 한 걸음 더

유치원에 간 사나이1

1호기가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 초청 수업 때의 일이다. 학부모 구연동화 수업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반차를 내고 갔는데, 이거 듣자하니 그냥 책만 읽어서는 경쟁력이 떨어지겠구나 싶은 것이다. 나는 어리석고 호기롭게 “책 내용을 바탕으로 ‘몸으로 말해요’ 퀴즈는 하는 게 어때요?”라고 말했다.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나의 발칙한 제안에 원장님은 박수를 쳐주셨다고 하지만 나는 ‘대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손짓발짓을 해야 되나’ 하는 폭풍고민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2

아이에게 자기 전에 두세 권 정도의 책을 읽어주겠다는 초심을 잃은 지가 오래지만, 앞서 당차게 뱉어놓은 이야기가 있어 그 초심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떤 책을 읽어주면 좋을지, 그 책으로 어떤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떠오르지 않은 사애로 약속의 날만 점점 다가왔다. 원장님께 큰소리 뻥뻥 친 것을 또다시 후회해 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결국 여기저기에 조언을 구하고 검색도 하면서 욕심과 부담을 덜어내기로 했다. 내가 찾은 ‘정보’에 의하면 아주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 같았다. 그냥 힘 빼고 열심히 책 읽어주는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3

대망의 학부모 구연동화의 날,

앤서니 브라운의 《똑똑! 누구세요?》라는 책을 읽어주고 왔다.

최선을 다해 읽고 아이패드로 문 뒤에 숨어 있는 동물을 맞추는 퀴즈도 간단하게 했다.

아들의 어깨는 천장에 닿았다.


아무래도 나, 이쪽으로 조금 재능이 있는 걸까?


★포기하면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생겨버렸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다. 참 괜찮은 문장이다.


어른이 되어서 가장 많이 배우고, 실감하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포기’라는 말의 의미일 것이다. 사회에 막 접어들었던 나에게 ‘포기’는 ‘열심’을 대신했고, 별 다른 문제없이 속 편했던 나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되었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버렸다. 힘들거나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한 발자국씩 꾸준히 앞으로 걸어야만 한다. 아빠가 되고부터 나는 걷는 것을 포기하거나 넘어져 주저앉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예전보다 곱절이 힘들고, 그 힘듦이 쌓이고 쌓여 나를 거하게 짓누를 때도 있다. 때때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의 힘이 닳고 닳아 바닥을 찍으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 구석구석에 포기를 저어하게 만드는 행복한 순간들이 너무 많이 포진해 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내의 토닥거림 한 번이 고된 삶의 무게를 덜어가 버린다.


어쩌면 가장이라는 무거움은 한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최고의 무게일 수는 있어도, 최악의 무게는 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최고의 무게가 나를 조금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가끔 이쯤이면 인내심이 곤두박질치지 않을까도 싶지만,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무한히 솟구쳐 에너지를 채워주는 가족이 있다.


아빠라는 이름은 그것을 감내하는 사람에게 삶을 견뎌낼 힘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오늘을 사는 법을 너에게 배웠다

그네

아이들의 마중을 받기 딱 좋은 날의 연속이다.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달려오는 아이들을 힘껏 들어 올릴 힘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며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향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놀이터에서 아주 잠깐만 놀다 들어가자는 올망졸망한 눈빛도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차려놓은 저녁밥은 데워먹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너희의 그네 한 번 밀어주는 것이 더 배부른 양식이고 충전이니까. 놀이터 벤치에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느슨하게 맨 넥타이를 하고 있는 다른 아빠와 눈인사를 나누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도 받는다.


언젠가, 너희가 스스로 그네도 타고 흔들리는 세상 속으로 한 발을 구를 때도 나는 늘 지금처럼 뒤에서 든든하게 너희를 밀어주는, 그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을 사는 법

아이들은 참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체력을 아끼지도 않고 마음을 아끼지도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뛰고, 최선을 다해 기뻐하고, 최선을 다해 슬퍼한다. 내일을 핑계로 모든 일에 조금씩 발을 빼며 물러나는 내 모습과는 많이 대조적이다.


과연 나는 아이들처럼 하루를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럴 리가’라는 답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훨씬 길게 남은 이와 비교적 적은 삶을 살아갈 이의 태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아까워해야 마땅할 어른이 아이보다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은 어떻게 쓰느냐를 기준으로 아이들은 하루하루 가치 있고 후회 없이 보낸다. 무작정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는 게 아니라,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오늘의 일만을 생각한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빌고 빌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며 최고로 솔직한 감정을 쏟아내고 내일의 피곤함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아이들의 태도를 보며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렇지만, 40년의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오늘을 사는 법’은 아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일 수도 있지만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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