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엄마도 퇴근하고 싶다

   
이미선
ǻ
믹스커피
   
15000
2019�� 07��



■ 책 소개

 

아이를 낳긴 했는데,
‘진짜 엄마’가 되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저자는 스스로가 육아 체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툭하면 아이에게 화내고, 힘들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출산 전에는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와 행복한 시간만 보낼 것 같았는데 화만 가득한 엄마가 되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옆집 엄마는 아이를 우아하게 키우는데 왜 ‘나’만 지지리 궁상인지 고민스럽다. 또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듯 사랑하는 아이를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고 내일을 준비한다. 다만 사람들이 육아를 하는 부모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고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 저자 이미선
컴퓨터학을 전공한 공대생이지만 졸업 후 전공과는 다른 작은 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전공과의 공통점을 찾자면 IT 전문지였다는 것. 햇수로 7년간 어설픈 IT 전문기자로 일하다 결혼과 출산으로 휴식기를 거친 후, 현재는 임신·출산·육아 전문 온라인 미디어 <리드맘>의 메인 에디터로 활동하며 반쪽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다.

 

8년째 육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보맘’이고, 기본적으로 화가 잠재되어 있는 ‘버럭맘’이며, 바쁜 남편을 대신해 두 아이를 돌보는 ‘98% 독박육아맘’이기도 하다. 또한 매 순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매일 반성과 다짐을 반복하는 ‘나쁜 엄마’다. 육아를 하며 알게 된 여러 경험과 감정을 많은 부모들과 공유하고자 <리드맘>의 인기 콘텐츠 ‘독박육아맘의 애 키우는 이야기’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엄마의 탄생’ 시리즈로 에세이를 발행한 바 있다.

 

■ 차례
지은이의 말 _ 저는 ‘쓰레기 엄마’입니다!

 

#1. 이제부터 ‘여자’ 아니고 ‘엄마’
출산은 엉덩이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느낌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갈까 말까?
분유 먹이면 매정한 엄마?
모든 엄마가 맘충이 아님을
여자를 놓은 대신 엄마가 되었다
쇼핑은 했는데, 나 뭘 산 거지?
이상해, 옷이 자꾸 줄어들어
나 곱창이 너무 먹고 싶단 말이야!
아이 낳기 전 저의 무지를 반성합니다

 

#2. 이 구역 최고의 버럭맘은 “나야 나”
소리치지 않는 육아의 이상과 현실
두 아이 엄마의 희로애락
내 아이 공부를 내가 시킬 수 없는 이유
싱크대에 처박힌 식판
그네에 담긴 철학
싸우지 않고는 못 사는 3살 터울의 남매
하나 더 낳아 vs. 하나만 잘 키워
아들한텐 “야!”, 딸한텐 “치대지 마!”
아들 엄마, 어쩔 수 없는 엄마깡패?

 

#3. 혼자만의 반성, 전하지 못한 이야기
너는 내게 ‘힘듦’이자 ‘위로’다
미안해, 육아가 하나도 즐겁지 않아
첫째와 둘째, 달라진 엄마의 마음가짐
육아 8년 차에 알게 된 육아의 현실
내 가슴을 후벼 판 노래 〈어른들은 몰라요〉
잠든 아이들을 향한 나의 고백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아이가 화내는 모습이 나를 닮았다
독박육아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4. 남편, 남편님 혹은 남편놈
남편 머리의 땜빵 4개
비수가 된 남편의 말
딸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아빠라는 존재
애가 잘못하면 다 내 탓이냐?
그 핸드폰 부숴버릴 거야
잠 좀 줄이라고? 당신이나 자지 마!
우리, 데이트 한 번 합시다
조기유학? 기러기 아빠는 안 시킬게
육아를 하며 내 남편이 ‘남의 편’같이 느껴질 때

 

#5. 누가 내 육아를 힘들게 하는가
제발 장난감 좀 그만 사주세요
내 아이는 내가 잘 키울게요
내 아이 이름을 내가 지을 수 없는 이유
돈 없으면 아이 낳고 키우기 힘든 세상
이 어린이집, 믿고 보내도 될까요?
아이가 고열로 고생하던, 나 혼자였던 밤
항상 주말에만 아픈 이유
내 육아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

 

#6. 독박육아로 살아남기
독박육아맘으로 사는 몇 가지 팁
절대 잠들지 마, 어떡해서든!
육퇴 후 그녀들의 은밀한 밤 모임
‘시’ 자도 세월이 약이더라
어쩌다 하루, 내가 꿈꾸던 그날 밤
남편의 카드를 쓴다는 것
내 SNS에 아이 사진만 가득한 이유
엄마, 한 템포 쉬어가도 괜찮아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빨리 커라, 그리고 천천히 커라
네게 화를 내는 진짜 이유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는 말의 의미
핫도그 사달라고 조르던 내 어린 시절
아이가 아프면 나는 죄인이 된다
버리지 못한 너의 것들
우리 둘만의 시간, 그 특별한 의미
네가 내 아이여서 고마워

 




가끔은 엄마도 퇴근하고 싶다


이 구역 최고의 버럭맘은 “나야 나”

그네에 담긴 철학

첫째가 7살의 가을을 보내고 있던 10월의 어느 날, 언제나처럼 하원 후에 놀이터를 찾았다. 한참 미끄럼틀에서 놀던 아이는 그네를 좋아하는 동생을 따라 그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나를 불렀다.


“엄마, 밀어줘.”

“너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그네를 밀어달래. 혼자 좀 타봐.”

“안 되니까 그러지.”


그네 타는 방법을 여러 번 알려줬지만 첫째는 아직도 혼자 그네를 탈 줄 몰랐다. 내 입장에선 그런 아이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혼자서, 그것도 서서 그네를 신나게 타는 첫째 또래(가끔은 더 어린) 아이들을 보면 ‘까불 줄만 알았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네.’라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냥 한 번 밀어주면 되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내 몸이 좀 힘들어지지만 상황은 빨리 종료된다. 하지만 끝까지 혼자 해보길 강요하는 내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그네를 타고 높이 오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리를 폈다 접었다 해야 하고, 그 타이밍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많이 해봐야 한다. 잠깐 해보고 안 된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면 다음번에도 그네를 타기 위해 타인의 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안 되면 엄마가, 혹은 아빠가 해주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좋겠다. 안 되면 더 노력해서 되게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네는 우리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다. 하는 방법을 알고 익혀야 하며, 그것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고작 그네 하나 타는 것도 혼자 못하는데 앞으로 수많은 고비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우 7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비단 그네 타는 문제만이 아니다. 아이는 종종 스스로 시도조차 하지 않고 도움을 청할 때가 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직접 시도해본 후에 도움을 주는 것과 어려울 것 같아서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다르다.


아이가 어릴 때 재미 삼아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는 ‘신점’을 보는 사람이었는데 첫째를 보면서 ‘아빠가 잘되면 잘되고, 아빠가 잘 안되면 힘들 수 있는 아이’라고 표현했다. 점을 맹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은 꼭 점을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만큼 부모에게 의지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무엇이든 아이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지금껏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혹은 남편이 무심코 아이에게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찾는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내 안에서 또 뜨거운 불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불꽃은 이내 밖으로 표출된다.


“왜 해보지도 않고 그래, 네가 해보면 되잖아. 왜 이것도 못해.”



혼자만의 반성, 전하지 못한 이야기

아이가 화내는 모습이 나를 닮았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의 언행이 아이에게 학습되어 그대로 나타난다는 의미인데, 화내는 모습까지 나와 비슷한 아이를 보면서 좌절하고 또 반성한다.


아이가 화내는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첫째가 5살 때의 일이다. 당시는 첫째의 떼와 고집이 부쩍 늘고 자기주장도 강해진 때였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발을 쿵쾅대며 감정을 분출시킬 때도 있었다. 가끔은 떼를 쓰며 엄마를 상대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 당황한 적도 여러 번.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나는 격하게 반응하곤 했다. 혼을 내거나 똑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한번은 첫째가 집에서 동생과 놀다가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도 소용없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기도 했다. 이따금 동생을 향해 소리치기도 했다. “나 이제 네 오빠 안 할거야!” 그렇게 한참을 혼자 화를 내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동생과 웃으며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첫째가 화내는 모습은 나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내가 꼭 그랬다. 아이들이 계속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리면 화를 냈다. 그 화가 쌓이면 방에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했다. 더 많이 화가 나면 “네 맘대로 해! 난 이제 네 엄마 안 할거야!”라며 절대 해서는 안 될 모진 말까지 쏟아낼 때도 있었다. 꼭 뒤돌아 후회할 거면서.


화내고 소리 지르는 첫째를 타일러야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꼭 내 모습 같았기 때문에. 나를 따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의 그런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 엄마가 화가 날 때 보인 행동은 아이에게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또 화가 나면 당연히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많이 닮아 있는 아이를 통해 내 행동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알면서도 부인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라고.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행동을 말로 가르치려 해도 소용없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부모가 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따라 하게 된다. 어릴 적에 내가 무슨 일인가로 혼날 때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도 그러면서 왜 나만 혼내?” 만일 그때 첫째가 말을 좀 더 잘할 수 있었다면 나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그러잖아.”라고. 아이는 그저 엄마를 따라 했을 뿐인데 혼이 나려니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했을까.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 그 말의 의미를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땐 그렇게 반성을 했는데 요즘도 나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또 반성한다. 이제 반성은 그만! 원인을 알았으니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할 차례다. 이제 엄마인 나도, 아이도 한 단계씩 성장할 것이다.



남편, 남편님 혹은 남편놈

조기유학? 기러기 아빠는 안 시킬게

가끔 남편이 이민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 교육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고.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지만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기엔 너무 어렵다며 남편은 혀를 찬다.


우리나라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은 나나 남편이나 같은 마음이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을 때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고민하는 여러 엄마들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면서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이민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민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외국에 가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면부지 타인만 가득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기반을 잡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듯 살아야 하는데 그게 몇 년이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도 없고, 그 사이 고정적인 수입이 확보된다는 확신도 없다.


아이가 없는 상태라면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는 지금은 섣불리 이민을 시도하기에 위험 요소가 너무도 많다. ‘기러기 아빠’라 불리는 형태로 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이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 공부를 이유로 남편 혼자 남겨두고 외국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한 그 기러기 아빠의 모습은 ‘돈 버는 기계’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이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같은 곳에 살아도 남편만 경제활동을 하는 가정이 많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가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만 아빠를 찾는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내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기러기 아빠가 좁은 고시원에서 고독사했다는 뉴스 또한 확신을 주었다.


남편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 살 자신도 없다. 최근 지인 가족과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지인 가족 역시 이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가 골프투어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곳으로의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모양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초등학교에서 4개 국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것도 무료로.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사교육이 활발하지도,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다고 그가 알려주었다고 한다. 남편도 혹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로운 교육 환경에서 자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다양한 방면으로 사고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 주입식으로 배운 것을 외우고 테스트를 거쳐 1등만을 고집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환경에서 나만의 잣대를 갖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까.


이민. 아이들 교육에 진정 그것만이 최선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누가 내 육아를 힘들게 하는가

내 육아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누군가에게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첫째가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여서 힘들어’. ‘둘째가 고집을 너무 부려서 힘들어’, ‘남편이 매일 늦고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어서 힘들어’, ‘부모님이 자꾸 참견하셔서 힘들어.’ 모든 원인은 내가 아닌 내게 주어진 환경에 있다며 ‘남 탓’을 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는 굉장한 ‘원칙주의자’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육아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 기준에 아이들이 미치지 못한다는 게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한다. 그래서 화를 내고 소리 지를 일이 더 많아진다.


또 예를 들면 이렇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흘릴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반찬을 먹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밥을 흘리지 않아야 하고,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내 기준에 아이들이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 마치 로봇에 프로그래밍을 하듯 내 기준에 아이들이 맞춰지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기준이 때로는 너무 높다는 것이다.


육아가 편하려면 마음을 내려놓으면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개입해서 이래라저래라하지 말고 아이의 아이다운 행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론은 이렇게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쉽지가 않다.


최근에 본 드라마 <SKY 캐슬>에서 한 아이가 부모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억지로 공부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이후에 ‘복수’를 하겠다며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자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한다. 그동안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며.


어쩌면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혼자 기준을 정해놓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 기준까지 올라오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분명 그러고 있다.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많은 선배 엄마들의 말처럼 아이가 정말 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세운 기준을 던져버린다면 내 육아가 좀 더 편해지려나.



독박육아로 살아남기

엄마, 한 템포 쉬어가도 괜찮아

유독 힘든 날이 있다. 어제와 같은 일상인데도 자꾸만 지친다. 아이의 작은 투정과 말썽에도 속에서부터 화가 끓어오른다. 매일 바쁜 남편이 밉고 원망스럽다. 싱글을 좀 더 즐기고 결혼할 것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고 불쌍하게 여겨진다. 아이들이며 집이며 다 놓고 혼자 떠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겨우겨우 시간을 보내는 날은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혼자 거실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는다. 평소 같으면 늘어져 있는 집안 곳곳을 정리해야 하지만 일단은 그냥 앉아 있는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늘 하루 무사히 잘 보냈으니 됐어.’


일상이 힘에 부치고 우울해질 때면 오롯이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울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꼭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하니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늘 아이들과 남편, 집안일을 챙기느라 분주했던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한가해지면 그 시간만으로도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다.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재우다가 나도 모르게 같이 잠들 때가 많다. 차라리 그대로 쭉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밤 11~12시면 꼭 눈이 떠진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집안일이 신경 쓰여 깊게 잠들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잠이 깨고 나면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다음 날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당연히 아이들을 기분 좋게 돌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육아빠’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원장은 저서 『균형 육아』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요즘 유독 화가 난다면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마음을 다잡아야 할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에게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신호예요.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의 기본인 잠조차 제대로 못 자고 있죠. 엄마가 폭식을 하고 살이 찐다면 그건 게을러서도, 조절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에요. 내 몸이 나 자신을 챙겨달라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을 자책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잘 먹어야 해요. 아이에게 미안할수록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기보다, 반대로 엄마 자신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세요.


그래서 하루는 그냥 자기로 했다. 설거지도 안 했고, 청소도 안 했고, 빨래도 개야 하지만 일단은 그냥 자기로 했다. 아이들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향했다. 그대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나도 좀 일찍, 푹 자보고 싶었다. 어쩌면 집안일이든 육아든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것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모든 육아맘들도, 혹은 육아대디들도.


때로는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자. 그대로 쉬자. 그래야 또 힘을 내서 내일을 살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우리 둘만의 시간, 그 특별한 의미

둘째 출산을 앞두고 많은 선배 엄마들의 SNS를 정독하며 첫째가 둘째를 질투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그리고 몇 가지의 방법을 실제로 적용해봤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와 둘만의 시간 갖기’였다.


첫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동생이란 아이가 자신보다 더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자기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품에 안아 젖까지 먹인다. 동생이 어리다는 이유로 놀이터에도 나갈 수가 없다. 심지어 동생이라는 그 아이가 잠이 들면 깰까봐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며 꾸중까지 듣는다. 나만을 사랑해주던 엄마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동생이라 불리는 아이 때문에.


둘째를 낳으면 이렇듯 첫째가 둘쨰를 질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부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속상한 일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선배 엄마들과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늘 엄마와 둘이었는데 동생 때문에 더 이상 둘만 있을 수 없으니 그 아쉬움과 그리움, 박탈감을 해소하는 데 둘만의 시간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평소 아이와 즐겨 보는 만화영화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의 내용 중 ‘어머니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공주가 된 후 처음 맞는 어머니날, 새로 생긴 형제자매 없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와 단둘이 보내고 싶어 하는 소피아의 모습을 통해 동생이 생긴 아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둘째 출산 후 처음으로 첫째와 둘만의 시간을 가진 것은 한 두 달 후 놀이터에서였다. 그날은 제삿날이었는데 아침부터 둘째를 데리고 시집에 가서 음식 준비를 하다 첫째 어린이집 끝날 시간에 맞춰 혼자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어린이집 바로 앞의 놀이터에서 약 10분간 짧게 노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그동안 놀지 못한 것을 제대로 보상받으려는 듯 신나게 놀았고, 내 손을 꼭 잡고 거기는 것도 좋아했다. 둘째를 낳은 후 그렇게 해맑은 첫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겨우 10분이었을 뿐인데 아이이게 엄마의 사랑이 100% 충전된 듯 보였다. 동생만 안아준다고 떼를 쓰는 일도, 동생만 먹는 우유를 자기도 먹겠다는 일도 줄었다. 물론 유효기간이 길진 않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둘째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단 한 번도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짬을 내어 두 아이와 번갈아가며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아이들의 만족도가 올라가 서로 싸우거나 떼를 쓰는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면 덩달아 내 육아도 조금은 수월해진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사랑도 꼭 필요하다. 특히 아들인 첫째에게는 아빠와 둘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둘째 역시 딸이지만 그런 시간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주말 아침에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나 좋자는 게 아니라 순전히 아이들을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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