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홍현진 외
ǻ
푸른향기
   
14300
2019�� 09��



■ 책 소개

 

자신을 지키며 살고 싶은 육아맘을 위한 생생한 조언

 

모든 게 뒤죽박죽, 통제할 수 없는 것투성이인 일상에서 육아의 버거움은 종종 육아의 기쁨을 압도한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엄마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는 강요와 겁주기에서 벗어나 힘들지,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힘든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엄마는 처음이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육아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자라는 과정이라고.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안다면 임신/출산/육아가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는 조금 먼저 엄마라는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로서, 뒤에 올 엄마들은 보다 덜 힘들도록,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 저자
홍현진

「마더티브」 편집장. 에너자이저 아들이 버거운 골골맘. 기자생활 접고 제3의 사춘기 만끽 중. 『마을의 귀환』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공저. 삶의 세세한 결을 들여다보며 화두를 던지는 글을 쓰고 싶다. 덕질하는 할머니 되는 게 목표.
 
이주영
현재 8년 차 기자이자 「마더티브」 에디터. ‘일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잘 가꿔가고픈 엄마. 『난지도 파소도블레』 공저. 어쨌든 살고, 사랑하며, 글을 쓸 것이다.
 
최인성
두 아이 엄마의 이야기를 쓰는 「마더티브」 에디터. 여름밤의 낭만을 사랑하나 현실은 말복 더위 육아 중. 9년간 기자로 일했다. 이달의 기자상, 민언련 좋은 온라인보도 부분 보도상 수상. 삶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쓰고 찍고 편집하며 흥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 그림 봉주영 
「마더티브」 에디터. 엄마가 돼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실패해도 애 탓하지 않겠다고 다짐 중이다. 「오마이뉴스」 전 디자인팀장.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서비스기획 부문 우수상. 제46회 한국기자상 전문보도부문 수상.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그림 그리는 꿈을 꾼다.

 

■ 차례
프롤로그 - 임신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 홍현진

 

1부 임신편
애 낳으면 인생이 끝날 줄 알았다
다시 임신한다면 태교 말고 이것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멘붕 임신증상 4가지
[엄마의 책] 사장님, 왜 이렇게 살쪘어요? -『아기 낳는 만화』

 

2부 출산편
1. 쉬운 출산은 없습니다
자연분만 실패한 저는 ‘루저’일까요?
4.14kg ‘쌩’으로 자연분만, 내가 왜 그랬을까?
둘째 출산은 쉽냐고요? 유서 썼습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냐… 출산 후 좌절하는 증상들
[엄마의 책] 남편은 아들이 아닙니다 - 『엄마 되기의 민낯』

 

2. 산후조리원이 진짜 천국이 되려면
모유 안 나오는 엄마에게 조리원이란
산후조리원 ‘인싸’ 대실패기
조리원은 돈ㅈㄹ? 천국 맞다니까
[엄마의 책]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 엄마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3. 호갱은 그만! 출산용품 다시 보기
엄마를 현혹하는 말들 - 기적의 속싸개, 국민모빌
‘있어빌리티’가 뭐길래? - 강남유모차, 명품아기띠
내복은 그만! 애 말고 엄마를 위한 출산선물
[엄마의 영화] 환상 와장창 - 「임신한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

 

3부 육아편
1. 수면교육, 정말 필요한가?
왜 나는 수면교육에 실패했나?
님아, 그 수면교육 하지 마오
[엄마의 영화]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툴리」

 

2. 완벽한 육아는 없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욱하는 엄마의 변명
일하는 엄마에겐 죄가 없다
노래하는 어른은 되고, 우는 아이는 왜 안 되죠?
[엄마의 책] 엄마가 일하는 게 싫다는 아이에게 - 『엄마 왜 안 와』

 

3. 반반육아, 남편과 육아를 함께하는 꽤 확실한 방법
저는 ‘완벽한 남편’과 삽니다
‘육휴’ 남편이 3시 하원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용품 사면 벌어지는 일

 

4. 친정엄마는 육아도우미가 아니다
친정엄마에게 애 맡기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3가지
친정엄마와 같이 살 때 각오해야 할 6가지
친정 도움 못 받는 나, 억울한가요?
[엄마의 책] 나 같은 딸을 낳아 키우는 심정 -『딸에 대하여』

 

5. 어린이집, 믿으셔야 합니다
어린이집을 믿고 싶은 당신이 해야 할 것
어린이집에서 아빠가 ‘인싸’ 되는 법
엄마도 아이도 성장하는 시간
[엄마의 책] 배우자 선택이 커리어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 - 『뒤에 올 여성들에게』

 

6. 아이와 개고생 여행, 왜 하냐고요?
어차피 애는 기억도 못한다는 말에 대해
한국사람 많은 리조트 여행이 어때서?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육아편

수면교육, 정말 필요한가?

님아, 그 수면교육 하지 마오

잠, 이라고 쓰면 깊은 한숨과 함께 눈물이 핑 돕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잠, 그놈의 잠 때문에 고생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가네요. 생후 한 달쯤 됐을 때예요. 순하게 잘 자던 아이에게 갑자기 그분이 오셨어요. 무시무시한 공포의 등.센.서.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려고 하면 아이는 바로 깼어요. 등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옆으로도 눕혀보고 푹신한 베개를 받혀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는 저와 한 몸이 되어야 했어요. 아이 낮잠 시간에는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갔어요. 잠든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같이 자거나 스마트폰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아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어요.


수면교육은 생후 6주부터?

수면 교육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책에는 이렇게 나와요. ‘아기의 잠투정은 당연하고, 크면 다 잘 자게 될 테니 참고 기다리라.’는 말은 잘못됐다고요. 아기가 스스로 일찍부터 푹 자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수면은 아기들의 신체, 정서,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심지어 어릴 때 잘못 형성된 수면습관은 성인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그러니 어릴 때부터 훈련을 통해 수면습관을 바로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요. 이 책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잘 자는 아이들은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마치 수면교육을 하지 않으면 마음 약해져서 아이를 망친 엄마가 될 것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왜 안 해서 애도 엄마도 고생해?’라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죠.


수면교육은 아이의 울음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요. 젖을 물리거나 안아서 재워달라는 아이를 혼자 재우려면 아이는 당연히 울게 되니까요. 전문가들은 말해요. 아이의 울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수면교육 과정에서 아이가 울어도 그건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고집 부리느라 우는 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오히려 아이가 울면서 긴장감을 해소하고 스스로 진정할 수도 있다고요.


네, 이론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머리로는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울려서 재운다는 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교육’하고 ‘훈련’한다는 것도요.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실제로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아이가 혼자 잘 수 있도록 방문을 닫고 나오면 꺼이꺼이 넘어갈 듯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고, 내가 불쌍해서 울고,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걸까 자책하며 울고, 이웃집에서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울고... 며칠 해보다가 바로 그만뒀어요.


나만의 수면교육

아이 잠 문제는 엄마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자극해요.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가 잘 못 자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수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는 게 아닐까, 이러다 아이 잠버릇이 영영 엉망이 되는 게 아닐까.


아이 잠 문제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히 힘들면서도 저는 제 자신의 잘못을 묻고 또 물었어요. 아이의 수면 패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인과관계를 찾으려 애썼고, 종종 아이를 원망했어요.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랬을까요. 그러나 저보다 일찍 결혼해서 세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를 만났어요. 친구는 둘째가 저희 아이처럼 등센서가 너무 심했는데 아기띠만 하면 내리 3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고 했어요. 수면교육,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자기는 그냥 3시간 동안 아기띠 하고 밥도 하고 화장실도 갔다고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낮에도 밤에도 잘 잔다고 했어요. 친구는 애도 편하고 엄마도 견딜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은 거예요.


저도 저만의 방식을 찾기로 했어요. 머릿속에서 ‘수면교육’과 ‘통잠’을 지우기로 했어요. 낮에 몇 번 잤는지 밤에 몇 번 깼는지 새는 일도 그만뒀어요. 아이가 낮잠 들면 굳이 눕히려 하지 않고 그냥 품에 안고 재웠어요. 아이 재우는 것도 가뜩이나 힘든데 침대에 눕혔다 깨면 다시 재웠다... 씨름하는 시간을 없앴어요. 그냥 아이가 자고 싶은 대로 재우기로 했어요. 아이는 예전보다 더 오래 자기 시작했어요.


소파에 기대앉아서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저는 책을 읽었어요.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글을 썼어요. 아이 낮잠 시간을 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드니 더 이상 낮잠 시간이 괴롭지 않았어요.


시간은 가고 아기는 자란다

느림보 수면교육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안아주거나 젖을 물려야만 잠을 잔다 해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가고 싶더라도, 감이 잡힐 때까지는 수도 없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아기를 잘 재우는 일뿐 아니라 그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지금도 똑같이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것도 지나간다. 시간은 가고 아기는 자란다.


아이는 저마다 다르고 아이를 재우는 방법에는 수십, 수백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아이와 엄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으면 해요. 아이도 엄마도 너무 힘들지 않은 방식으로요.


마법에 속지 마시라. 수면교육을 하는 백 명의 엄마가 있다면, 수면교육을 하는 백 가지의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한 전문가가 추천한 방법을 가지고도 이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정확한’ 방법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어린이집, 믿으셔야 합니다

엄마도 아이도 성장하는 시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건 생후 10개월쯤이었어요. 아이 돌이 6월, 복직이 9월. 원래는 돌 지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었죠. 그런데 더 빨리 어린이집에 보낸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살기 위해서였어요.


10개월이 되면서 육아는 다른 차원으로 어려워졌어요. 아이는 호기심과 에너지가 대폭발했고 계속해서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랐어요. 기고, 짚고 서고, 넘어지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을 때, 저는 진심으로 절망했어요. 먹고 자는 것에 이어 싸는 권리까지 박탈당하다니. 인권이 사라진 느낌이었죠.


나 살겠다고 저 어린 걸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나 살겠다고 말도 못 하는 어린애를 벌써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을까. 그때도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집에 관련된 부정적인 뉴스가 나왔어요.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머릿속에는 온갖 최악의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그려졌어요. 면담할 때 본 가정형 어린이집은 상상 이상으로 좁았고 교사들은 지쳐 보였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 입학 전까지도 등원을 취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어요. 낯을 안 가리는 시기였고 새로운 놀잇감, 새로운 사람들을 좋아했어요. 헤어질 때 울지 않고 엄마아빠와 떨어져 신나게 잘 놀았어요.


어린이집과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1년을 보내고 선생님과 면담을 했어요. 그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혼자 밥도 잘 먹고 낮잠도 푹 잔다고 했어요. 제가 집에서는 밥을 다 떠먹여준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어요. “왜 그러셨어요? 혼자 엄청 잘 먹는데.”


저는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보다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 잠깐 본 모습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가 혼자 놀지 않고 무리를 지어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집에서는 책에 흥미를 안 보였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책을 본다고요.


‘나는 내 아이를 다 안다’는 착각,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죠. 그걸 저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두 돌도 안 된 아이는 이미 어린이집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어요. 제가 모르는 세계가 벌써 열린 거죠. 그때 생각했어요.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아이의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걸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저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제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저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요. 그곳에서 아이는 바깥세상의 규칙을 배우고 또래 친구들, 선생님과 관계를 쌓아가고 있어요. 지금 세 돌이 다 되어가는 아이는 제가 한 번도 알려준 적 없는 말과 행동, 노래를 매일 배워 와요.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어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반자라고요. 아이의 말, 행동, 생활습관에 대해 교사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고민이 되는 점이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보려 하고 있어요.


하원시간. 오늘도 저는 고민합니다. ‘딱 10분만 더 있다 갈까?’ 그러다 어린이집이 가까워지면 저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더라고요.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해요.


우리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엄마도 아이도 함께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요.



아이와 개고생 여행, 왜 하냐고요?

어차피 애는 기억도 못한다는 말에 대해

아이가 세 돌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은 총 4번 해외여행을 했다. 생후 10개월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두 돌 즈음 태국, 28개월에는 홍콩에 갔고 세 돌 즈음에는 한 달간 싱가포르-말레이시아-발리를 여행했다.


아이와 여행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어차피 애는 기억도 못한다고. 좀만 참으면 될 걸. 부모 욕심에 애 고생 시키는 거라고. 사실 여행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내가 왜 사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어린이집이나 보낼 걸. 대체 왜 여기까지 애를 데리고 온 걸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물론 힘들다. 이게 여행인지 유모차 극기 훈련인지 헷갈리고, 아이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그만 좀 해!” “기다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동영상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을 때는 내가 이러려고 애 데리고 여기까지 왔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계속 여행을 떠나는 걸까.


일상에서 아이를 돌보는 건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일 때가 더 많았다. 몸은 아이와 놀고 있지만 영혼은 다른 곳에 있고 손에는 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아이와 노는 게 지루했고 어서 빨리 아이가 잠드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여행지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 들 때까지 온전히 하루를 아이와 살 맞대고 함께 해야 한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아이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놀 수 있을지 생각하고 영혼을 실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은 우리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고 말했다. 말 설고 물 설은 낯선 곳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오직 현재에 집중하며 여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매일 부대끼다 보면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의 팀워크가 끈끈하고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아이의 말 하나 행동 하나, 아이가 자라는 순간순간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나 너무 행복해, 나 노는 게 너무 좋아

처음 일본 여행갈 때는 일주일 동안 아이 짐만 쌌다. 아이 기저귀, 분유, 이유식, 간식으로 캐리어 하나가 가득 찼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는 드디어 기저귀를 뗐고,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됐다. 한 달간 총 7번 숙소를 옮겼는데 아이는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흥분하며 신나했다. 밖에서 뛰어 노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탈서울을 고민했다.


발리 우붓에서 보낸 마지막 날 저녁, 아이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뮤직에 맞춰 춤을 췄다.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니던 아이는 이제 제 발로 걸어 다니며 뭘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자기주장을 명확하게 말한다. 원숭이가 보고 싶다는 아이 덕분에 몽키 포레스트 근처에만 세 번 갔다(부글부글). 풀, 꽃, 도마뱀, 거북이, 고양이, 앵무새, 원숭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됐다. 민폐 여행객이 될까 불안한 순간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아이 덕분에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그전까지 일방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였던 아이는 점점 여행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아이와 여행을 다닌 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여행이 끝날 때쯤 아이는 말했다. “나 너무 행복해. 노는 게 너무 좋아.”


아이와 여행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엄마아빠와 여행하기 싫다고, 친구와 노는 게 더 좋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빠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생각보다 그 시가가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가 이 여행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여행하는 순간, 세 식구 충분히 웃고 울고 행복했으니까. 그걸 나와 남편이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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