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함께 자라는 아이의 사회성 수업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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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파스
   
14000
2018�� 04��



■ 책 소개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의 심리상담가가 들려주는 아이를 크게 키우는 방법!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공부를 우선시하느라 노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친구도 관리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이건 결코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하나의 영역만 잘 발달되고 다른 영역에서 발달이 부진한 경우 그 부진한 것의 영향을 받는다. 뇌도 서로 연계되어 영향을 주기에 골고루 발달되어야 뇌 발달도 상승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즉 100을 최고점으로 할 때 공부머리 80에 사회성 20인 아이보다는 공부머리 50에 사회성 50인 아이가 훗날 더 똑똑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공부머리도 사회성이 바탕되어야 자라게 된다. 애써 공부시켜도 사회성이 부족하면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우리는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많은 어린 영재들이 사회성 부족으로 사춘기 무렵, 평범한 지능으로 돌아가는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번아웃키즈가 되어 뒤늦은 일탈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회성이 먼저 되어야 공부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 저자 이영민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으며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지닌 빛깔을 뽐내며 자라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심리상담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3년부터 소아정신과, 아동상담센터의 전문상담가로 활동하였고, 2010년부터 서울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으로 있다. 상담 외에도 건강가정지원센터 및 다수 기관의 부모교육 전문 강사,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외래 연구원 및 외래 강사, 한국재활협회 멘토링 슈퍼바이저, EBS [부모], BBS 라디오 방송, 법원 가사상담위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부모와 아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건강한 가족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동남보건대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 《엄마도 상처받는다》, 《학교 가기 싫은 아이, 학교 가고 싶은 아이》, 《1013끼리 통하는 두근두근 핑크 노트2》, 《공부왕의 최강비밀 노트》,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20가지 인생 공식》, 《내 고민을 알기나 해?》가 있다. 《특수아동 치료교육 및 심리상담》, 《초등인성교육 프로그램》, 《중등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공동연구하여 지었으며, 편역서로 《학습장애 클리닉》,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클리닉》이 있다.

 

■ 차례
* 프롤로그 - 아이의 사회성이 아이의 행복을 결정한다  

PART I. 아이의 사회성, 이대로 괜찮은가요?
1장. 지금 내 아이가 사회성을 빼앗기고 있다
1.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의 무엇을 결정하는지 모르는 부모들에게
2. 우리는 사회성에 대해 한참 잘못 알고 있다
3. 사회성의 곪은 상처가 사춘기에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4. 왕따에 대한 불안은 떨칠 수 없다
5. 내 아이도 나쁜 아이일 수 있다

2장. 아이의 성장 시기마다 사회성의 결정적 요인이 달라진다
1. 사회성,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2. (생애 초기 0~2세) 부모와의 애착, 사회성의 첫 단추!
3. (유아 전기 3~5세) 생애 첫 단체생활이 시작되다!
4. (유아 후기 5~7세) 본격적으로 사회적 관계가 대두되고 갈등도 다양해진다!
5. (아동기 8~11세) 동성 친구들과의 놀이가 즐겁다!
6. (사춘기) 내 삶의 0순위는 친구!

3장. 부모의 사회성, 아이의 사회성에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1. 사교성이 적은 부모, 저 같은 분 있나요?
2. 내가 내 아이의 사회성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녀의 사회성을 방해하는 부모의 생각 유형
3. 혹시 부모를 통해 남 탓을 먼저 배우고 있지 않나?

4장. 아이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1. 관계가 좋으니 공부도 즐겁다!
2. 사회성 지능, 행복한 아이의 비결이 되다
3. 사회성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은 역량들이 있다
4. 자녀의 사회성 회복을 돕기 위한 주요 특성들을 꼭 이해하자


PART 2. 아이의 사회성 문제, 어떻게 도와야 할까? -Q&A
5장. 친구를 대하는 내 아이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개인에게 필요한 특성들-
1. 친구랑 놀고 싶어 하나요? (대인동기)
2. 친구를 어려워하나요? (대인신념)
3. 친구를 사귀는 기술이 있나요? (대인기술)

6장. 내 아이가 갖춰야 할 사회적 기술과 특성은 무엇일까? -관계 형성에서 필요한 특성들-
1. 관계에서 표정이나 옷차림에 신경 쓰나요? (대인지각)
2. 관계에서 친구의 말과 행동을 오해하나요? (대인사고)
3. 관계에서 자신과 친구의 감정을 적절히 느끼고 표현하나요? (대인감정)
4. 대인관계에서 너무 즉흥적인 행동을 하나요? (대인행동)

7장. 아이의 사회성에서 부모가 자주 묻는 그 외 질문들 -FAQ-
1. 자녀의 친구 갈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2. 자녀와 선생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요?
3. 또래 부모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에필로그 -나를 통찰하며 남과 공감하자

 




부모가 함께 자라는 아이의 사회성 수업


아이의 사회성, 이대로 괜찮은가요?

지금 내 아이가 사회성을 빼앗기고 있다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의 무엇을 결정하는지 모르는 부모들에게

텅 빈 놀이터의 울림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을 놀이터에 혼자 보내지 않는다. 혼자 놀고 있으면 방치된 아이로 비춰질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정말 그런 아이들이 있어서 잘못 어울리다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겁낸다. 혹은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그렇게 볼까 싶어 아이를 쉽사리 놀이터에 내보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웃 친구들이 놀이터에 자연스레 모여 노는 모습이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새 달라진 놀이터 풍경에 씁쓸하다. 어릴 적 대문밖 친구들 소리에 한걸음에 나가 놀던 내 어린 시절엔 놀이터도 없었다. 골목길 따라 우루루 몰려다니며 뛰놀던 개구쟁이들에게는 함께 모인 자리가 바로 놀이터였다. 놀이 기구조차 변변치 않아 머리를 맞대어 놀이를 궁리해야만 했고 여러 놀이를 시도하다 놀이인지 싸움인지 알 수 없어 다투기도 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논 경험은 아직도 내게 행복한 기억이다. 마땅한 놀이 기구 하나 없는 공터에서 해질녘 어두움도 잊은 채 놀이에 흠뻑 빠져 있던 유년 시절이었다. “저녁 먹어라”라며 외치는 엄마의 부름에 마지못해 들어가야 끝나던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놀이 기구만이 덩그러니 놓인 텅 빈 놀이터를 마주하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알록달록한 놀이 기구들이 손길도 제대로 닿지 못한 채 녹슬어 간다. 아이들이 사라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놀이터는 소위 ‘노는 아이들’의 우범 지대가 되어 동네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점점 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텅 빈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 권리가 박탈된 상징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일찍 직업 전선으로 내모는 것만 아동 인권의 위배는 아니다. 아이들이 놀아야 할 시기에 놀 권리를 빼앗는 것도 아동답게 살 인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아이답게 누릴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성장을 거부하는 피터팬처럼 어린 시절에 대한 판타지를 품고 고착되어 자라기를 거부하는 자가 되지는 않을까? 혹은 친구들과 노는 법도 모르고 노는 재미도 모르다가 마냥 사람이 불편한 어른이 된다면 어떨까? 과연 부모는 진정 자녀가 이런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사회성의 곪은 상처가 사춘기에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사회성의 결핍에 대한 반항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사춘기다. 사춘기가 되면서 물 만난 고기마냥 놀려는 아이들 투성이다. 요즘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사춘기가 오면서 집중의 어려움이 생기고 자신도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면서 공부에 게을러지거나 아예 손을 놓으려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와 담을 쌓고 있어요”라고 호소한다.


공부건 뭐건 이제부터 내 맘대로 할 거예요

심한 경우에는 단순히 학업 흥미가 떨어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친구와 어울리느라 집도 나가고 학교도 안 가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서현이는 외둥이로 늘 사랑받았다고 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 공부에 손을 놓아 부모를 애타게 만들었다. 서현이는 초등학교에 가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힘들어해서 부모와 함께 4학년 2학기 때 미국에 갔다가 부모는 먼저 들어오고 5학년을 홈스테이로 지내다 귀국했다. 사실 서현이는 부모와 같이 들어오고 싶었는데 영어 실력을 쌓길 바라는 부모의 일방적인 요구로 남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홈스테이 주인은 한국식으로, 하교 후에는 집에서 수학과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도록 엄격히 다스렸다. 서현이는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귀국해서 6학년 친구들과 사귀는 데도 삐거덕거렸고 힘들어했다. 중학교에 와서는 공부 양도 많아지고 친구 관계도 나아지지 않아 더 힘들어했는데, 엄마가 이런 서현이에게 성적이 잘 안 나온다고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춘기가 온 서현이도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아 갈등을 빚게 되었다.


끝내 서현이 부모도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상담실을 방문했다. 서현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친구를 사귈 기회도 안 줬고 미국에서도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근데 부모가 보기에는 지금 노는 친구들 중에 술 담배도 하고 위험한 아이들이 많아 보여 걱정이라고 한다. 서현이는 자신의 친구를 뭐라 하는 부모가 더 싫단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한 번도 자신의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저항한다. 부모에 대한 분노가 사춘기때 터져 전에 없는 모습으로 무섭게 아이는 일탈하고 있다.


경중은 있겠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서현이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아무리 발달상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해도 사춘기는 부모에게 견디기 힘든 시기다. 만약 자녀가 심한 일탈로 간다면 부모와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서현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놀려는 아이도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어른과 계속 다투기도 하고 이성 친구에게 빠지기도 하는 등 아이에게 공부는 더 이상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심각한 경우는 자신의 기본 생활 즉 학교나 학원 등을 완전히 벗어나 충동적인 삶에 빠져드는 때다. 충동성을 사춘기 뇌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폭언, 폭행, 일탈, 분노 폭발들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즉 ‘너무 이른 시기에 학업에 지친 아이들이 사춘기를 틈타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는 모습’일 수 있다.


한마디로 ‘제때 놀지 못해서 생긴 병’이다. 늦게 문제가 나타날수록 양상도 심해진다. 사회성 발달이 더딜수록 뒤늦게 노는 맛에 빠지는 강도가 그만큼 강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늦지 않아!

사춘기가 되면서 학업에 손을 놓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는 애간장이 탄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공부도 잘해서 자랑스럽기까지 한 아이들이 갑자기 공부에 손을 떼어 당황스럽고 속상하다. 왜 갑자기 아이들이 돌변하는 걸까?


줄어든 놀이시간, 늘어나는 학업시간... 우리나라 아이들의 실제 모습이다. 놀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모습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이른 나이부터 학업을 압박하면 막상 길러야 할 감성과 사회성을 막아 버린다. 이는 발달적으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만든다. 어쩌면 아이들은 사춘기를 통해 자신의 비정상적인 발달 균형을 찾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충분히 놀아 본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상쇄시키려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다. 부모의 바람대로 대학 이후에 이런 마음이 생기면 참 감사한데 아이들이 그렇게 부모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다. 더욱이 공부하는 기계는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춘기 즈음 자아가 강해지면서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 욕구를 분출시킨다. 그나마 사춘기를 빌미로 그런 목소리를 낸다면 마음에 갈등이 되겠지만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낼 줄 아는 사춘기 자녀라면 부모가 그만큼 잘 키운 거다.


사춘기 자녀가 보이는 모습을 존중하자. 지금이라도 자녀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면 자녀의 거친 반항이나 분노의 시간은 점차 줄어든다.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에 소홀한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놀도록 격려하고 자리도 마련해주자. 부모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럼에도 지금 부모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와 적이 되어 공부 거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망치는 길로 무의식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


부모의 사회성, 아이의 사회성에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혹시 부모를 통해 남 탓을 먼저 배우고 있지 않나?

‘뗏지병’에서 시작되는 남 탓

관계를 배워 가는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너무 귀하게 여기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가 맘 상할까 봐 몹시 걱정한다. 그로 인해 아이는 자기 행동이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을 잘 배울 수 없게 된다.


한 예로 어린아이가 바닥에서 넘어지면 어른들이 하는 반응이 무엇인지 기억나는가? 특히 할머니들이 많이 하시던 반응이다. 바로 바닥을 치며 “뗏지” 하고 혼내는 거다. 어른들은 나름 아이들의 기를 세워 주기 위해 이렇게 하신다. 인지적으로는 아이의 발달에서 물활론적 사고가 생기는 시기라 사물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꾸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문제 상황에서 남 탓을 기르는 반응으로 본다. 그래서 이를 “뗏지병”이라고도 부른다. “뗏지” 하고 혼내 주는 것을 보면서 아이는 자기도 그렇게 한다. 바닥을 치면서 같이 뗏지, 뗏지 하며 자기가 왜 넘어졌는지를 고민하기보다 나를 넘어뜨린 바닥만 애매하게 혼낸다.


그 결과, 아이는 문제가 생기면 나로 인한 이유를 생각하기보다 ‘남 탓하는 모습’을 먼저 학습하게 된다. 자기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남을 탓하는 습관을 길러, 문제가 생겼을 때 이유와 결과를 생각해서 해결하려는 기회를 놓친다.


일단 자기 잘못을 보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에서도 내 잘못보다는 다른 요인부터 생각해 외부 환경이나 사람들을 탓하게 된다. 그게 적어도 자신을 덜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바로 만나는 훈련이 중요하다. 잘한 내 모습도, 잘못한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 만나게 하는 훈련이.


부모의 남 탓 모습-감히 내 아이의 기를 꺾다니…

남 탓을 하게 되는 요인으로 부모의 양육태도가 있다. 내 자녀는 마음이 너무 여려서 쉽게 상처받는다며 남들의 행동을 공격적인 것으로 보는 부모들이다. 이들은 아이가 조금만 다퉈도 친구 문제에 끼어서 그 친구랑 관계를 끊게 하거나 상대를 굉장한 가해자로 여겨 문제를 크게 만들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맞고 오거나 약세인 상황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엄마만 찾는다. 부모가 해결해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말만 하면 “엄마에게 갈래”, “엄마한테 이를 거야”라고 한다. 친구랑 갈등이 생기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친구랑 끊어진다. 그 아이의 잘못이고 나쁜 아이니까. 무엇보다 엄마가 놀지 말라고 했으니까.


남의 티끌보다 내 눈의 들보 보기

남 탓을 하는 자녀의 모습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것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끔 눈 먼 사랑이 되어 객관적인 관점을 잃는다. 사람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 자녀도 장단점이 있다. 단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늘 점검하지 않으면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다. 갈등이 반복된다면 아이의 단점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와 조화롭게 지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관계에서 내 아이가 어떤 모습인지 늘 살펴야 한다. ‘내 앞에선 너무 소중하고 예쁜 자식이지만 밖에서는 꼭 좋은 모습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들으면 먼저 내 아이를 돌이켜 봐야 하는 이유다. 내 눈의 들보는 얼마나 큰가? 그러면서 남의 티끌을 갖고 문제 삼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이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관계가 좋으니 공부도 즐겁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공부의 내적 동기가 자라다

아이가 알아서 공부하는 모습은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일명 스스로 학습이라고 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어린 시기에는 이러기가 힘들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사춘기 전까지는 부모의 감독이나 도움으로 공부하는 방법도 배우고 여러 과목을 접하는 기회를 체험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 부모가 함께하지 않아도 자녀가 공부에 대한 자기만의 이유나 즐거움 같은 동기가 있을 때 비로소 자기주도 학습이 시작된다. 이를 내적 동기라 부른다.


그러면 학습의 이러한 내적 동기가 어떻게 생길까? 사람은 배움에 대한 기본적인 동기는 있다. 그런데 배우려는 욕구를 강요당하거나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동기가 자라지 못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공부에 빨리 질리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학습을, 어려운 과제를 하다 보니 자발적인 흥미를 잃는 것이다. 강압적으로 해서 흥미도 없다.


유아기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누군가의 응원이나 관심, 경쟁 자극으로 공부를 하려고 시작한다. 처음에는 공부가 왜 재미있는지 알기 힘든 아이들이 좋은 결과나 깨달음의 희열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배우면서 자기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학업의 외적 동기가 내적 동기로 옮겨 가는 것은 자녀의 주체적인 삶에서 중요하다. 부모가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듯이 학업도 결국 자녀가 해야 한다.


사춘기가 오면 대부분의 자녀는 더 이상 부모가 공부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욕구로 공부도 알아서 하고 싶다. 사춘기부터는 내가 하고 싶고 재미있어야 공부를 한다. 여기서 공부는 꼭 학과목만 말하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는 자기다움을 나타내는 능력을 찾으려 한다. 학과목의 성적에만 급급하지 말고 뭐든 배우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이루는 끈기와 도전의 경험이 중요하다.


이러한 배움의 욕구나 도전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긍정경험이 없으면 왜곡되게 나타난다. 강압적으로 배운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하려 든다. 유아기의 억압된 감정들이 사춘기 때 강하게 터지면서 배움의 시간은 노는 시간으로 대체된다. 반면 부모의 무관심으로 방임된 아이는 배움의 욕구를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맨다. 만약 좋은 또래나 선생님들이 있다면 그들을 통해 배워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만남도 부족하다면 아이에겐 할 줄 모른다는 무기력만 쌓이고 단순 반복 놀이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잠재능력을 썩힐 수 있다.


아동기 때 너무 많이 공부한 아이들도 반작용이 나타난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대부분 학업에 대한 열의보다는 사춘기 호르몬과 전쟁을 치른다. 오랜 시간 공부만 해온 것에 회의감이 들면서 집중도 힘들고 공부에 흥미가 떨어져 동기를 잃고 갈팡질팡한다. 특히 아동기 때 강압적으로 공부한 아이는 사춘기에 심한 후폭풍으로 공부의 내적 동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사춘기 동안 공부를 강력히 거부한다면 조금은 느슨하게 헤매는 시간을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성적이 떨어진 책임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아야 다시 갈증도 생기면서 공부하려 할 것이다. 아이가 열정이 없어서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노력을 안 한다고 꾸짖지도 말자. 이 시기에는 하나의 열정으로 모아지기도 어렵고 노력이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영역의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도 이 혼돈의 시간을 통해 알아갈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알아 가도록 부모는 도와주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에게 진정한 자기주도 학습도 생긴다.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 주자.


그렇다면 내 자녀가 언제 잠재력을 발휘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될까?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는 그저 기다리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힘들 수밖에 없다.



아이의 사회성 문제, 어떻게 도와야 할까? -Q&A

친구를 대하는 내 아이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개인에게 필요한 특성들-

친구랑 놀고 싶어 하나요? (대인동기)

유치원부터 학교 입학 후에도 도무지 친구를 찾지 않고 별로 관심이 없네요. 집에만 있으려는 아들이 걱정입니다.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아이가 친구랑 놀기보다는 자꾸 엄마하고 집에서 지내려 한다. 학교에서 친구랑 노는 걸 못하지는 않지만 굳이 친구를 집에 부르거나 찾지 않는다. 어쩌다 친구가 놀자고 해도 집에 있겠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놀기는 하는데 오래 가지 못하고 어느새 재미없다며 혼자 노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을 귀찮게 여기고 장난 거는 아이들이 제일 싫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인동기가 낮아 친밀한 관계가 부담되고 혼자가 편하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다 갈등이 있는 게 불편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영역을 즐긴다. 잘 살피면 부모 중 한 명이 이런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선천적으로 대인동기는 부모를 닮은 경우가 많다.


혹은 후천적으로 발달 초기에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사람이 불편해지면서 대인동기의 그릇이 작아지기도 한다. 영아기에 초기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친밀감을 애착이라고 부른다. 애착이 안정적으로 되면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애착이 불안정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불신이 있다. 따라서 엄마와 불안정한 애착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적다면 외부 친구가 편할 리 없다. 아이의 일차 신뢰대상은 첫 양육자이다.


초기 애착이 부족한 아이들은 외부 탐색의 길에서 쉽게 돌아와 엄마에게 재결합하려고 한다. 엄마와 더 붙어 지내려 한다. 친구들보다 엄마랑 집에서 자기 놀이를 하거나 엄마랑 뭔가 하기를 더 원한다. 한마디로 엄마의 껌딱지가 된다. 이때 엄마가 얼마나 충분히 아이가 편한 만큼 붙어 있어 주느냐가 관건이다. 친구와 놀지 않는다고 화내거나 자꾸 엄마랑 떼어 놓으려 아이를 꾸짖거나 강압적으로 떨어뜨리면 아이는 더 붙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충족되지 못한 갈망은말린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단지 억압하고 있을 뿐이다.


부모가 알아야 할 점

우선 아이의 선천적인 대인동기 그릇이 작음을 이해해주자. 아이는 부모만큼 친구랑 놀지 못해 괴롭거나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정도를 물 흐르듯 따라가 주면 된다. 부모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조바심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한다.


만약 초기 애착 문제가 의심된다면 대인동기를 높이기 위해 일차적인 관계인 ‘아이와 엄마의 놀이시간’을 늘린다. 친구랑 노는 것 대신 우선 부모와의 놀이 양이 필요하다. 부모랑 놀면서 사람들이랑 노는 게 안전하고 재미있다는 걸 경험해야 한다. 부모가 놀아 줄 때는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하면 된다. 놀이를 스스로 선택하기 힘들어 하거나 너무 자주 바뀐다면 부모가 놀이를 제공해 같이 놀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릴수록 공, 놀이터 등 신체놀이를 좋아하고 유치원부터는 체스, 장기, 바둑 같은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부모와 놀면서 동시에 또래랑 함께하는 활동을 병행한다. 어릴수록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준다. 대인동기가 낮은 아이들일수록 남의 집으로 가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안전한 아이의 반경 안으로 친구를 초대해서 노는 즐거움을 먼저 시도한다. 부모에게는 성가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대인동기를 높여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올리려면 부모의 이런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후천적으로 대인동기가 낮아진 아이라고 판단된다면 부모와 놀면서 함께 친구와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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