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사용 설명서

   
변택주
ǻ
원더박스
   
13500
2019�� 03��



■ 책 소개

 

혼자 생각하며 말하기 NO, 함께 생각하며 말하기 YES

 

생각하는 말하기를 하면 남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는 힘이 커지는 건 물론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 생각이나 바람을 조리 있게 펼치는 능력도 함께 자란다.

 

또한 말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섞이고 갈래를 치며 생각이 좋은 쪽으로 자라고, 자란 생각을 바탕으로 더 좋은 말이 나오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혼자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말을 나누는 이들과 모두 함께. 생각하는 말하기는 자연스럽게 ‘함께’ 생각하는 말하기로 흘러간다.

 

《내 말 사용 설명서》에서 벼리와 도서관 할아버지가 나누는 얘기줄기는 말하기의 바탕, 말하기와 듣기, 남다른 말하기를 위해 생각해 볼 것들, 다툼을 푸는 말하기를 거쳐, 함께 슬기를 모으는 방법으로 물 흐르듯 명랑하게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십 대들은 입시와 취직이 중심이 된 교육 환경, 물질이 중심이 된 삶의 모습, 각종 미디어가 폭력적으로 주입하는 아름다움의 기준 같은 것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그 결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삶으로 인한 경쟁 심화, 자존감 저하, 인간적 가치의 혼란 같은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 저자 변택주
말하기만큼 우리 사이를 좋게 하는 것이 드물다.

 

한 권 두 권 책을 펴내다 보니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학생들과 말결을 섞으며 책 읽을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책을 읽고 뜻을 나누다 보니 평화가 ‘어울려 살림’이라 새긴다.

 

이 바탕에서 모래 틈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평화도서관인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러 나라 곳곳을 다닌다. 이제까지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복도, 반찬 가게와 카센터, 밥집과 카페, 교회와 절, 연립주택 현관 그리고 아픔이 깃든 역사 터를 아울러 모두 서른 곳에 둥지 틀었다.

 

그동안 《법정 스님 숨결》, 《가슴이 부르는 만남》, 《카피레프트, 우주선을 쏘아올리다》와 같은 책들을 좋은 이웃들과 어울려 빚었다.

 

■ 그림 차상미
보통의 하루를 모티브로 조용하고 투명한 그림을 그린다. 출판, 웹, 영상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와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에서 본문과 표지 그림을,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에서 표지 그림을 그렸다.

 

■ 차례
여는 말

 

하나.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말버릇 길들이기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말은 쉬워야 해
정말 참말만 해야 해?
바른 말과 그른 말
할 말은 뭐고 못할 말은 뭐야
대화를 할 때 눈부처를 그려야 한다던데
말은 사실에 들어맞아야 해
마음을 끄는 말은 어떻게 해?

 

둘. 듣는 게 중요해
엄마 잔소리 때문에 속상해
엄마하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귀도 떠야 들려
마음 나누기가 가장 중요해
말 잘하는 비결은 듣기에 있어
말에 매달리지 말고 여겨듣기
아이가 겪는 어둠은 몰랐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좀 웅얼거리면 어때

 

셋. 생각은 말에 힘을 주지
나를 뭐라고 알려야 하지?
이름 짓기에 따라 달라지는 생각 틀
왜 물어봐야 해?
뭘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잘 물어야 좋은 답이 나와
말이 지닌 힘은 생각에서 나와
쓸데없는 말이라고 해서 다 쓸모없진 않아
남에 기대어 나를 높여도 될까
혐오표현은 안 돼
상식에 질문을 던져 보기

 

넷. 다툼을 풀고 싶어
함께 푸는 시험 문제
꼬집고 나서는 벗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아야 좋은 대화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땐 말을 쉬어
꼭 사이좋게 지내지 않아도 괜찮아
라이벌은 서로 어깨동무하는 사이
헐뜯기를 멈추니 모두가 우리 편
말이나 글만으론 부족할 수 있어

 

다섯. 슬기를 모아 볼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반말을 해도 될까, 존댓말 써야 할까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리켜야
회의를 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안전하다고 느껴야 얘기가 터져
말문이 터지게 말을 걸고 싶어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
동무랑 갈등이 생겼어
어떻게 해야 갈등이 덜 일어날까
갈등이 있다고 함께 지낼 수 없는 건 아냐
외교 천재 소손녕

 

맺는 말




내 말 사용 설명서


듣는 게 중요해

귀도 떠야 들려

할아버지, 엄마는 내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아. 내게는 중요한 일인데 엄마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얘기하거든. 그래서 나도 엄마가 뭐라고 하면 못 들을 체해.


이런, 벼리 마음이 많이 다쳤구나. 그런데 그거 알아? 귀도 떠야 들린다는 걸. 우리는 눈을 일부러 떠야 뭘 볼 수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으니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듣고 안다고 생각하기 쉬워. 그런데 그렇지 않아.


요즘에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면서 가는 시계가 있는 집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지. 평소에는 그 시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잠이 오지 않는 날 밤이면 유난히 크게 들리곤 해. 귀가 언제나 열려 있다면 한결같이 들려야 하지 않겠어? 귀를 뜬다는 건 듣는 대상으로 마음이 간다는 뜻이야. 마음 가는 데 소리가 따라붙어.


잘 들어야 한다고 하면 흔히 ‘귀 기울여 듣기’를 떠올려. 그런데 나는 ‘귀 기울이다’라고 하면 애써 듣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마음이 가지 않으면 애를 쓸 수밖에 없거든. ‘귀 기울인다’고 하면 힘 이 있는 이가 힘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준다거나 잘잘못을 가리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아. 그래서 나는 ‘귀 기울이다’라는 말보다는 ‘귀담아듣다’라는 말을 즐겨 써. 그 말에는 ‘남이 하는 얘기나 뜻에 마음을 두다’는 뜻이 담겨 있거든. 마음에 두면 애쓰지 않아도 그 사람이 말을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저절로 그이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야.


나와 쿵작이 잘 맞는 사람 얘기만 그렇게 들으라는 건 아냐. 나를 거스르는 사람이나 하다못해 내게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도 귀담아들어야 해.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비록 내 귀에 거슬릴지라도 내게 무슨 말을 건넬 때는 나와 뜻을 섞겠다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지금 내가 엄마 하는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왜 나만?


그럴 리가 있나. 엄마도 너도 나도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아무리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해도 마음 귀가 작으면 남이 하는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아.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마음 귀를 키우면 돼.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이나 ‘이래서 저런 얘기를 하는구나’ 하는 것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내려놔. 그러고서 듣기를 거듭하면 마음 귀가 커져.


아울러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를 때때로 “이렇게 들었는데 제대로 들었나요?” 하고 물어봐. 이러기를 거듭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속내도 알아차릴 수 있어. 어떤 사람이든지 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속내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이내 속살을 열어 보이곤 하지. 그때 비로소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엄마가 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마찬가지야. ‘으이구, 또 잔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진저리치기에 앞서 엄마가 어째서 저 말씀을 하는지 곰곰이 새겨 봐. 엄마가 하는 말에 짜증이 날 때는 대개 내가 엄마 뜻에 미치지 못했거나 내가 해야 할 것을 미루고 하지 않았을 때가 많아.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하는 얘기가 잘 들어오지 않거나 와닿지 않을 때가 바로 마음 귀를 키울 아주 좋은 기회라고 받아들여. 그런 다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도록 해 봐. 이럴 때는 귀 기울여야 한다고 해야 맞겠구나.



생각은 말에 힘을 주지

이름 짓기에 따라 달라지는 생각 틀

이름 짓기는 스스로에게만 쓸모 있는 건 아냐.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이름을 어떻게 지어 붙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는 해.


미국 물류 서비스 회사 피아이이는 배송 기사 부주의로 해마다 25만 달러나 손해를 봤어. 그 가운데 56퍼센트가 컨테이너 물품을 제대로 분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지. 그래서 품질 관리 전문가에게 하소연했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사람은 단박에 “오늘부터 배송 기사들은 모두 물품 분류 전문가라고 부르세요!”라고 했다는구나. 그렇게 했더니 배송 오류에서 일어난 손해 비율이 56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한 달 만에 뚝 떨어졌대. ‘기사 아저씨’에서 ‘물품 분류 전문가’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인데 말이야. 놀랍지?


한때 학교 급식을 놓고 입씨름이 벌어진 적이 있어. 집이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커니,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주다 보면 이 아이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나서서 알리는 꼴이 되니 골고루 주어야 한다커니 하고.


그때 정부에서는 가난한 아이들만 골라서 급식을 하자고 했어.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급식을 주는 건 세금낭비라는 거야. 그러면서 꺼내 든 말이 ‘무상급식’이었어. 급식이 마치 어떤 일을 하고 나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도록 몰고 간 말이지. 그걸 먹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어먹는 것 같도록 한 거야. 돈을 내고 타야 하는 버스를 공짜로 타고 가려고 생떼를 쓰는 것과 같은 인상을 심어 줬단 말이야. 아주 그릇된 말인데, 이것이 옳지 않다고 드잡이하는 야당에서도 ‘무상급식’이라는 말을 생각 없이 따라 썼어. 그러다 보니 여느 시민들 머릿속에서도 세금을 마구 낭비한다는 인식이 들어앉고 말았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세금으로 하는 일이 참 많아. 은행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서 금융 제도를 이어 가는 데에도 세금이 쓰이고, 주식 거래 규제를 만드는 데도 주식과 상관없는 우리가 낸 세금이 들어갔어. 길을 닦는 데는 물론이고, 인터넷도 세금으로 개발했다는구나. 스마트폰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위성통신 체계도 세금으로 만들고,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전기 기반 시설을 세웠기 때문이야. 입법, 사법, 행정 제도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도 대부분 세금에서 나가. 이런 사람들이 아이들이 먹는 급식을 ‘무상’이라고 하면서 쌍심지를 돋우며 나오다니 말이 돼?


우리나라에서 초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한 지는 70년 가깝고,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을 한 지도 15년이 넘었어. 집안이 넉넉한 아이가 초등학교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잖아. 무상급식 논리대로 하면 무상교육이라고 하면서 이것도 가난한 집 아이들만 돈을 받지 않고 넉넉한 집 아이들에게는 돈을 받아야 한다고 나서야 하지 않겠어?


교육을 의무라고 하여 누구나 받도록 한 건 벌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모든 사람이 골골 누려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야. 몸이 튼튼해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급식도 초.중등 교육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지. 만약에 야당이 무상급식이라는 틀을 벗어 던지고 의무교육 안에 들어 있는 ‘의무급식’이라고 받았다면 어땠을까?



다툼을 풀고 싶어

헐뜯기를 멈추니 모두가 우리 편

학급회의나 학생회에서 작은 문제가 하나라도 있으면 두고두고 비판하는 애가 꼭 한둘이 있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떤 문제가 하나 생길 때마다 오래전 얘기까지 끄집어내서는 쟤는 저번에 저랬고 얘는 이번에 이랬다면서 깐족대는 거야.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죽겠어.


학급이든 학생회든 회의를 하면서 어떤 사안에 다른 뜻이 담겼으면 좋겠다거나 담아 낸 뜻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비평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냐. 비난이라면 몰라도.


현상이나 사물이 옳고 그름을 가리어 밝히는 것을 가리키는 ‘비판’과, 사물이 옳고 그르고 아름답거나 그렇지 못함을 가려 가치를 매기는 ‘비평’은 비슷한 말이야. 이 두 낱말은 모두 사물이나 일어난 일을 겨눠. 그러나 비난, 헐뜯기는 ‘남이 저지른 허물을 드러내거나 꼬집어 나쁘게 말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사람을 겨누는 화살이야. 비난은 비판이나 비평과는 결이 아주 다른 말이지.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쟁점만 놓고 얘기하면 비판이나 비평이 되고, 쟁점 소용돌이 안에 서 있는 사람까지 싸잡아 꼬집는 것은 비난, 헐뜯기라고 해야 해.


어떤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야.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결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몰아세우거나 미워해서는 안 돼. 뜻이 다를 뿐인데 그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야.


“비난을 멈추니 모두 우리 편”이라는 말은 내가 발행인으로 있는 잡지에 몇 해 전 실린 수필이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그해, 딸을 셋 둔 어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마음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까닭은 하루 빨리 밝혀 달라는 서명을 받으려고 그랬지. 그런데 반응이 싸늘했어.


“애들이나 잘 키우지. 이럴 시간 있으면 돈이라도 벌어. 왜 툭하면 데모질이야!” “도대체 진실이 뭐냐? 진실이 있기는 해? 어느 정당 소속이야?” “나라 말아먹을 빨갱이들!”


이 어머니는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 누구라도 마음은 있는데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을 뿐이라고 여기고, 저라도 나서서 도우려 했던 거였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어. 둘레 건물 관리인도 “현수막 여기다 걸지 말아요! 거리가 지저분하고 살 수가 없어. 어서 치워요!” 하면서 언짢아했지. 한 시간만 걸었다가 내릴 거라고 사정했지만 막무가내로 떼라고 삿대질하고. “점점 외딴 섬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대. 이 어머니는 ‘피켓을 들고 나 하나 나온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닌데 가만히 있을걸...’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만, 힘이 빠졌어.


좋은 뜻으로 거리에 나왔는데 다들 몰라주고 미워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겠다. 나라면 그쯤에서 그만두었을 것 같아.


이 어머니도 그럴 뻔했지. 그런데 그때 마침 방학을 맞은 중학생 딸이 함께하겠다고 나서는 것 아니겠어. 어머니는 힘을 얻어 다시 거리로 나갔어. 둘이 하니까 마음도 놓이고 모녀들이 와서 서명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


시위를 마치고 돌아서면서는 길거리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치워서 둘레를 말끔히 했어. 이렇게 돌아갈 차비를 하는 걸 보고 떡볶이를 파는 아주머니가 따끈한 국물이라도 마시고 가라고 손짓하더래. 이때 ‘아, 사람들은 모든 걸 제 처지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정부를 비난하는 말들을 빼고 문구를 이렇게 바꿨어.


“저는 제 아이를 안전한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은 엄마입니다.”


그랬더니 사람들 호응이 올라갔어. 서명이 하루 1백 명을 넘기도 하고, 피켓과 서명대를 맡기고 다니라는 가게 주인도 생겼다. 길 가던 이들이나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생수와 두유를 건네기도 하고. 하루는 건물 관리인 아저씨가 추운데 몸이라도 녹이고 하라고 불러서는 “애기 엄마, 유가족이우?” 하고 묻더래. 어머니는 말이 나오지 않아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오면서 속으로 ‘우리 모두가 유가족인걸요. 우리 아이들이잖아요’ 하고 곱씹었어.


그때 떠오른 말이 “비난을 멈추니 모두가 우리 편”이었대.



슬기를 모아 볼까

안전하다고 느껴야 얘기가 터져

할아버지, 회의 때 한 마디도 섞지 않고 가는 애들이 적지 않아. 얼굴을 보면 불만이 가득한데 입도 뻥끗하지 않더라고. 어떻게 하면 애들이 한 마디라도 하고 가도록 할 수 있을까?


그러게. 한 마디라도 나눠야 회의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으련만. 회의에 온 아이들이 빠짐없이 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놓이도록 해야 해.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지.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을 느끼면 끼어들기 어려워. 뭘 고쳐야 한다는 말을 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고. 그래서 회의를 아울러야 하는 살림지이(운영위원)들은 회원들이 안전하다고 믿도록 하는 걸 머리 과제로 여겨야 해.


그렇지만 살림지이들만 조심한다고 회원들이 믿음을 갖게 되지는 않아. 회원이 말을 할 때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든지 말을 하고 있는데 관심 없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는 회원이 있다면 숫기 없는 회원들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든. 어떤 사람은 누가 말을 할 때 볼펜 따위로 탁자를 톡톡 치기도 하고 피곤한 티를 내며 엎드리기도 해. 아예 대 놓고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어. 이처럼 회의 진행을 훼방 놓는 헤살꾼이 있을 때 분위기를 돌려놓지 않으면 안 돼.


이럴 때 회의를 아우르는 사람은 헤살꾼이 무안하지 않도록 웃음을 머금고, 말하는 사람을 지극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워야 해. 이렇게 회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을 거드는 사람이 있으면 금세 회의에 생기가 돌아. 분위기를 되잡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려 “이 친구가 내놓은 이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요?” 하고 물으면서 회의를 아울러 봐. 그러면 마음이 놓인 아이들은 서로 도두보며 얘기 고리를 이어 나갈 수 있어.


티 나게 나서지 않고 은근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띄우고, 서로 이어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에 산으로 가려던 회의가 항구로 돌아왔어. 회의라는 배가 이토록 차분히 닻을 내린 까닭은 구성원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놓치지 말아야 할 겉 헤살꾼에게 대 놓고 그만두라거나 자세를 바로 하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단느 거야. 헤살꾼도 품어야 할 우리 회원이니까.


한 가지 더 얹으면, 진행자는 어떤 아이가 말이 어눌하거나 말하기가 서툴러서 제 뜻을 또렷이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귀담아듣고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도록 해야 해. 그리고 헤아린 뜻을 간추려 말하면서 “이런 말이었지?” 하고 되묻는 거지. 말을 한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이 친구가 내놓은 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물으면 돼. 아울러 어떤 아이가 말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좇기보다 그 애가 전하려고 했던 뜻을 꺼내 올려놓고 얘기바람을 일으켜야 해. 이렇게 하면 아무리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해도 두려움이 사라져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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