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콘돔쓰렴

   
이은용
ǻ
씽크스마트
   
13000
2018�� 05��



■ 책 소개


남성 몽정기의 오답노트 

“모든 남자 어른은 몽정기(期)를 거쳤다. 회식 자리에서 음험한 손길을 뻗는 성범죄자나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나 이 과정 이후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성정치에서 극과 극인 양쪽 모두 이 공통의 경험에 대해서는 과묵하기만 하다. 지식으로 후대에 전승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평등과 해방의 성정치가 활발한 담론과 깊게 닿아 있다는 걸 고려하면 심각한 공백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국 남성 누구나 성인지적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인 사정을 이은용의 고백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성교육이 철저히 성별 분업 아래 여성에 의해서만 이뤄져온 사실도 새삼 발견했다. 지은이는 낮게 속삭이지만 이 책은 매우 급진적이다.”

 

시작은 한집에 같이 사는 벗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였다. 부실한 성교육과 한국 사회의 막힌 흐름 때문에 감추기 일쑤였던 18·19금 이야기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성’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성별을 획득하고 사춘기를 겪고 여러 문화를 접하며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성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럽고 어색하던 시절에 성장한 부모 세대는 아이들과 성을 주제로 친밀하게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저자는 산뜻한 문체로 성에 무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곤조곤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서투르게 마구 부딪다가 망치지 말고 천천히 예의 바르게 다가가고 모자람이나 흠 없이 서로 뜻 잘 맞추기를 바라는 아빠의 속내를. “콘돔 꼭 미리 마련하라”는 말과 함께.

 

■ 저자 이은용
현재 〈뉴스타파〉 객원 기자. 20년 6개월 동안 〈전자신문〉에서 기자(16년), 논설위원(1년), 출판 담당 부장(2년 6개월), 부당 해고된 뒤 복직 싸움을 한 노동자였다. 공정 보도 체계를 바랐을 뿐인데 갑자기 쫓겨나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한 해고였음을 인정받아 내내 뿌듯했다. 기자는 어릴 적 꿈. 올곧은 기사 쓰려 애썼다. 특히 〈뉴스타파〉에서 쓴 기사(newstapa.org/author/eylee)가 보람찼다. 블로그 ‘이은용 단소리 쓴소리’를 열어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쓰려 애쓴다. 이롭고 재미있어 잘 읽히는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

 

2005년 7월 〈옐로 사이언스〉, 2010년 12월 〈미디어 카르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를 출판했다. 2013년 1월 편저 〈ICT 시사용어 300〉을 썼고, 2014년 1월 공저 〈최신 ICT 시사상식〉을 내놓기도 했다.

 

■ 차례
머리말. 얽매임 없되 곱고 바른 새 몸짓 새 숨 ㆍ 6

 

1장 몸
무릎 ㆍ 14
평등 열쇳말-순결(純潔)
넓적다리 ㆍ 26
평등 열쇳말-성폭력(性暴力)
엉덩이 ㆍ 36
평등 열쇳말-샾미투(#MeToo)
눈 ㆍ 44
평등 열쇳말-캣콜링(catcalling)
발 ㆍ 52
평등 열쇳말-모계사회(母系社會)
손 ㆍ 58
평등 열쇳말-강간(强姦)
입 ㆍ 66
평등 열쇳말-마초(macho)
가슴 ㆍ 74
평등 열쇳말-타임스 업(Time’s Up)
생식기 ㆍ82
평등 열쇳말-존중(尊重)

 

2장 몸짓
자위 ㆍ 92
평등 열쇳말-동성애(同性愛)
포르노 ㆍ 98
평등 열쇳말-섹시(sexy)
숨 ㆍ 104
평등 열쇳말-핑크(pink)
컵 ㆍ 112
평등 열쇳말-스토킹(stalking)
골목 ㆍ 118
평등 열쇳말-설거지
처음 ㆍ 126
평등 열쇳말-걸레질
입맞춤 ㆍ 134
평등 열쇳말-명절(名節) 놓기

 

참고 문헌 ㆍ 141




아들아 콘돔쓰렴


무릎

전두환 패거리가 제 몹쓸 짓으로부터 사람들 눈길 돌려놓으려 열어 둔 3에스(S) - 섹스, 스포츠, 스크린 – 덫’ 때문이었을 터. 나는, 또 친구 셋은 큰 어려움 없이 1984년 가을 어느 날 전주 제일 극장에 들어가 다른 영화관에서 상영을 끝낸 뒤 다시 개봉한 <무릎과 무릎사이>에 숨죽였습니다. 열여섯. 고등학교 1학년. 등받이 없는 의자였다면 진즉 뒤로 넘어졌을 것이요, 누군가 그 꼴을 따로 찍어 뒀다면 두 볼 붉게 익어 낯 못 들 성 싶어요. 무릎에 닿는 남자 손 때문에 금세 숨 가빠지는 배우, 이상하고 색다른 자극. 왜? 나는 그 까닭을 고스란히 알지 못했죠. 사실은 도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무릎에 손 좀 닿았다고 그리 빨리 숨 가빠지나요? 음. 그럴 수 없는 걸 나는 마땅히 알았습니다. 열여섯 해 삶만으로도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여 이장호 감독이 그린 <무릎과 무릎 사이>는 내 머리를 매우 세게 때렸습니다.


나는 그러나 1984년 가을 <무릎과 무릎 사이>를 본 뒤로 ‘그게 무릎일 확률은 매우 낮겠지만 사람 몸 어딘가 쉬 느껴지는 곳이 있긴 있나 봐’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눌렸어요. 비슷한 그림 안에 내가 놓이면 나는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까. 설마 그게 무릎일 리야. 몰랐습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더해 가끔 주워듣거나 뜻하지 않게 들여다보게 된 이런저런 것만으로는 마땅히 알기 어려웠죠. 겪어 본 적? 없었고요. 1997년 뜻밖에 이장호 감독을 본 스물여덟 번째 가을까지도 나는 ‘제대로’ 겪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여태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겠고.


엉망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무릎’에 얽힌 내 생각. 갈피를 잡느라 꽤 긴 시간 흘렀고. 나는 이제야 겨우 ‘무릎’과 <무릎과 무릎 사이>가 어수선했다는 걸 잘 알겠어요. 무릎에 마음 묶일 내가 아님을 느꼈고, 무릎에 곧바로 숨 가빠질 사람 거의 없을 것도 알았죠. 음. 나는 이제 어처구니없어 무릎을 바라보지 않아요.


평등 열쇳말-순결(純潔)

‘깨끗함’이란 뜻에 ‘남자와 몸으로 맺은 적이 아직 없음’을 얽어 세상 여성을 오랫동안 묶어 둔 말. 갈라져 터지면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는 ‘처녀막’을 이 말에 잇대어 이죽거린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나머지 수많은 여성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처녀막은 운동을 많이 하거나 자전거를 타다가도 갈라질 수 있을 만큼 여린 것이어서 이른바 ‘숫처녀’임을 따져 밝힐 기준이 아니기 때문. 남자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뒤 생겨난 옛 찌꺼기입니다. 버릴 때 됐어요.


모든 이가 똑같이 느낀 건 아니겠지만 한국 남자 여럿에게 영화 <클래식>속 주희는 이른바 ‘순수한 사랑’ 본보기였죠. 두 갈래로 곱게 땋아 내려 빗장뼈 위 까만 교복에 놓인 머리카락, 화장하지 않아 더 고운 얼굴, 착하고 여린 마음씨, 오직 한 사람을 그리워한 것 따위. 그런 주희와 예쁜 편지 주고받으며 사랑한 준하 모습 위에 자신을 은근히 비춰 본 한국 남자 참 많았을 텐데요. ‘깨끗함’과 ‘처녀막’과 ‘숫처녀’따위를 버무린 덫에라도 걸린 양 많은 한국 남자가 오랫동안 헛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 탓에 수많은 여성 발목에 ‘순결’ 쇠사슬이 채워진 것이라고 나는 봅니다.


세상 사랑 어디 다 <클래식> 같던가요. 아니죠. 사람 사는 곳 사랑은 영화 <오! 수정> 에 더 가까울 겁니다. 수정과 영수와 재훈이 서로 마음 건드려 가며 조금씩 밀고 당기는 거. <오! 수정>을 비롯한 홍상수 감독 영화를 시처럼 들여다보는 사람 많죠. 나는 어디선가 늘 본 성싶은 수정과 영수와 재훈이 덕에 낯 붉혀 가며 가만히 웃습니다. 진짜 사람 이야기 같거든요. 낯부끄러워 감추고 싶고 하여 꼭 바꿔 나가야 할 사람 사는 곳 사랑 얘기.


눈. 아름답죠. 서로 눈만 마주쳐도 거짓말처럼 품은 뜻 흐를 때가 있으니 참 놀랍기도 하고. 내게도 잊지 못할 눈 있습니다. 열여덟에서 열아홉 살로 넘어갔을 무렵. 1986년 십이월과 1987년 이월 사이. 고등학교 3학년짜리 덜 익은 머리로 대학에 가려던 때. 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이와 그걸 들어줄 교수가 만나 보는 - 면접 - 날이었죠. 저 멀리 눈. 열람실 안쪽 끝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건. 자리에 앉은 채 딱 눈만 보였죠. 얼굴이 다 보이지 않더군요. 여러 사람 사이로 내 눈과 맞닿을 수 있을 만큼만 딱 맞춰 열린 성싶은 눈길 위에 그 눈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죠. 얼굴이. 내 면접 차례가 돼 벌떡 일어섰을 때. 그쪽으로 돌아봤는데 안 보이더군요. 그 눈도. 그게 끝이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위 나는 그 눈부터 찾아봤습니다. 같은 학과에 모인 마흔여섯 명 가운데 열둘이 그 눈 가졌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없었습니다. 결국 그 눈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눈이지 않을까’ 싶던 학과 친구와 만났지만 아니었죠. 썩 긴 동안 그 친구를 살폈고 그날 조심히 내 마을 건넸으되 그 사람 가슴에 닿지 않은 것. 친구는 자기를 그리 “생각해 줘 고맙다” 했으나 내게 그 말은 에두른 ‘싫어’로 들렸어요. 나는 며칠 뒤 군대로 되돌아갔고, 친구는 이듬해 졸업했습니다.


음. 눈은 지금도 불현듯 얽히긴 합니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자동차 창 너머로도. 한 번. 때론 한 번에 머물지 않고 서너 번 더. 어떤 이는 움직이는 곳과 때가 엇비슷해서인지 자주 마주치다 보니 뭔가 마음이 건너오는 듯도 해 살짝 놀랐다가 아닌 성 싶어 눈길 돌리고는 하죠. 눈은 참 어려워요.


평등 열쇳말-캣콜링(catcalling)

운동 경기장이나 극장 같은 곳에서 뭔가 마음에 차지 않은 걸 드러낼 때 부는 날카로운 휘파람과 놀림을 길거리 여성에게 쓰는 짓. 여성 얼굴이니 몸매를 두고 놀리거나 휘파람을 불며 집적대기 때문에 사회 문제로 떠올랐죠. 성희롱이랄 수 있겠습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2018년부터 캣콜링을 하지 못하게 법으로 막기로 했다죠. 한국에서도 서울 이태원 같은 곳에서 캣콜링이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될 낌새가 엿보였는데요. 경범죄 처벌법 제3조41항 ‘지속적 괴롭힘’을 어기면 1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ㆍ과료를 물릴 수 있되, 이를 캣콜링에 맞춰 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와 ‘행위를 반복해 하는’ 같은 괴롭힘 기준이 흐릿하기 때문. 한국에서도 캣콜링을 두고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된 성싶습니다. 놀림 당하면 누구나 기분 더러워지게 마련이니까요. 심지어 힘으로 으를 수 없을 남자에게 쫓기는 여성들 기분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안 효섭과 보경이 사랑 나누는 그림. 윽. 더러워. 어찌 그럴 수 있죠? 고린내 날 텐데. 미리 닦기는 했겠으되 엄지발가락 발톱 아래엔 때 끼게 마련이잖아요. 이걸 아름답게 느껴야 하는 겁니까. 예쁜 배우 발가락이라서? 나는 어수선했습니다. 사람들은 발가락을 어찌 여기는지 좀 살펴봤습니다. 음. 발에도 신경 많이 모여 있어 즐거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라 말하는 이가 있네요. 발가락을 입에 넣고 빨거나 발 여기저기를 혀로 간질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 듯하고. 음 그럴 수 있겠죠. 그러고 보니 그게 뭐 잘못됐다거나 이상한 것도 아니겠네요. 그게 즐거워 즐기는 사람 사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나는 윽. 여태 거북합니다. 사람 몸 가운데 신경 많이 모인 곳이 발뿐인 것도 아니고 말이죠.


영화 <플래시 댄스> 속 알렉산드라는 열여덟살. 알렉산드라가 일하는 철공소 사장인 닉은 서른은 족히 넘었을 듯했죠. 배우 마이클 누리가 1945년생이니까 <플래시 댄스>를 찍었을 무렵엔 서른아홉 살이었겠습니다. 영화 속 닉이야 그보다 젊게 정해 뒀을 확률이 크니 열여덟 된 이가 서른은 족히 될 사람 샅을 발로 더듬은 것. 안쪽까지. 다른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 있었지만 <플래시 댄스>속 그림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18금 충격’ 같은 것.


사람 생식기가 엄지발가락에 달렸더라면 어땠을까요. 왼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크기가 아주 조금 다른 것 한 개씩 모두 두 개를 가진 거죠. 왼쪽 오른쪽 엄지손가락 크기가 아주 조금 다른 것처럼. 아마 많이 좋았을 겁니다. 발끝 엄지발가락 두 개가 귀중하고 요긴하니 사람마다 더욱 깨끗하게 보살펴 돌봤을 테고. 입에 넣고 빨거나 핥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 됐겠죠. 한데 우리 생식기는 지금 엄지발가락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음. 나는 아무래도 내내 그리 못할 듯합니다.


평등 열쇳말-모계사회(母系社會)

수천 년 전 가족 안에서 아버지 쪽 힘이 세지기 시작한 뒤 잊힌, 어머니가 한가운데인 채 핏줄을 이어 간 동아리. 어머니가 한가운데였다 하여 ‘아빠 마음대로’인 봉건 사회 가부장제처럼 ‘엄마 마음대로’인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가족이 살아남아 유전자를 위로 잇기 위해 나름의 구실을 맡다 보니 저절로 어머니 쪽에 무게가 쏠렸다고 봐야 할 거에요. 영화 <플래시 댄스> 속 알렉산드라가 탁자 밑으로 발을 뻗은 게 어쩌면 750만 년 전부터 사람 몸에 스며든 지 오래여서 매우 자연스런 몸짓일 수 있다는 뜻. 여성이 남자에게 먼저 말 걸거나 손 내민다고 별나거나 되바라지게 여길 게 없다는 얘기죠. 기분 나쁜 말이나 몸짓이 아니라면 차분히 웃으며 좀 더 주고받는 게 좋겠습니다. 기분 나쁘다면 곧바로 멈춰야 하겠고요.


열입곱. 고교 2학년. 1985년 어느 일요일 밤이었을 겁니다. 전주 아중리 가는 쪽 인후동에 있던 그 친구 학교 앞 하숙집까지 바래다주러 갔죠. 시내버스 타고. 내 하숙집 있던 효자동에서 아중리 쪽 안후동까지는 꽤나 먼 길이었어요. 밤늦게 친구 혼자 보내기가 안쓰러워 갔던 건지, 그 친구가 바래다 달라 했는지는 가물가물. “잠깐 들어왔다 갈래?”에 이끌려 못내 방으로. 막상 친구 하숙방에 들어간 나는 말 가난 몸짓 가난. 방바닥에 앉기는 앉았던 성싶은데 무슨 말 했는지, 어떤 말 들었는지 가물가물. 나는 내 나름으로 그 친구 마음을 읽기는 했어요. 입맞춤. 한데 내가 그걸 어디 해 봤어야 말이죠. 가볍게 입맞춤하고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 못했죠.


열여덟. 고교 3학년 되자마자. 그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헤어지자.” 함께 탔던 전주 효자동 가는 시내버스에서 나는 혼자 내렸죠. 말없이. 그 친구 눈엔 눈물 고인 듯했어요.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갑자기 왜?’를 품은 채 ‘차라리 잘됐을지도 모르겠다’며 마음 추스를 생각부터 했어요. 나쁜 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리 생각하다니. 차가운 내 마음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 들었을 겁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거예요.


스물넷. 대학 3학년. 1992년 늦여름이었습니다. 전주 코아백화점 지하 1층 나이트클럽에서 나는 ‘프렌치키스’라는 걸 어설피 해 보다가 내 앞니가 사람 이에 부딪힐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처음이었기에 엉성하고 거칠기 짝이 없었을 내 몸짓 때문에 이 시렸을 그 사람에게 새삼 미안하네요. 나는 사실 그날 그 사람에게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 사람 입안에 혀까지 밀어 넣었음에도 마음을 닫고 있었죠. 내내 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기기 두세 시간쯤 전 전북대학교 앞 맥줏집에서 만났을 때부터. 마음 담지 않은 ‘프렌치 키스’의 미안함. 또 그리될 것 같은 두려움. 나는 참…그릇된 시작이었죠.


입. 입술에서 후두까지. 음식이나 먹이를 섭취하며, 소리를 내는 기관. 포유류 입 가장자리 위아래에 도도록이 붙어 있는 얇고 부드러운 살 - 입술. 음식을 먹는 사람 수효. 사람이 하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 번에 먹을 만한 음식물 분량을 세는 단위. 음. 입. 벗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길. 벗 가슴 느끼는 살.


평등 열쇳말-마초(macho)

쓸데없는 허세와 지나친 몸짓으로 여성을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남자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한 낱말. 쓸모없으니 빨리 버려야 할 말입니다. 이른바 ‘남자다운’ 말과 몸짓에 사람 마음 사로잡아 끄는 힘이 있을 줄로 안 남자가 많았습니다. 드러내 뽐낼 만한 일로 여겼죠. 남자가 둘일 땐 그저 그만그만한데 서넛이나 네댓쯤 되면 서로에게 기대어 가며 기를 점점 더 크게 펴고는 합니다. 장난기가 솟는 거죠. “야 저기 쟤 괜찮다!”거나 “오, 그렇네! 죽이는데”라고. “야, 니가 가서 말 한번 붙여 봐라. 쟤 전화번호 따오면 내가 술 산다. 못 따오면 니가 사고. 어때, 해 볼래?” 같은 따위.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적 있습니다. 그 사람, 그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았을까요. 음.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용서해 주십시오. 같이 사는 벗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꾸벅.



몸짓

포르노

내가 본 첫 포르노그래피는 사진 가득한 미국 잡지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쯤 됐을 때 친구가 가진 것 서너 권을 봤는데 <플레이보이>도 들어있었던 듯해요. 사람 발가벗은 모습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정작 ‘일부러 다 드러낸 그림’과 맞닥뜨리니 어안 벙벙했죠. 무슨 죄라도 지은 듯했습니다. 열네댓 살 때 ‘18금’ 그림 봤으니까. 꺼림칙했죠. 내 머리를 때린 두 번째 포르노는 거칠고 잡스러운 카세트테이프였습니다. 고교 2학년 때 옆 반 아이들 사이에 돌던 거였는데요. “숫처녀” 어쩌고저쩌고하며 앓거나 허덕이는 소리가 들렸죠.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된 아이 누구나 그걸 처음 듣고는 ‘참, 조잡하다’며 비웃었으되 쉬 귀를 때진 못했죠. 40분쯤 이어진 잡스럽고 거칠게 앓으며 허덕이는 소리에 귀를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포르노는 움직이는 그림 담긴 비디오테이프. 대학 입학 학력고사를 끝낸 고교 3학년 겨울 때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넷이 한집에 모여 처음 본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생식기가 어찌 만나 서로 맺는지를 내보이는 데 초점이 가득했기 때문. 1시간 반쯤 이어진 잡스럽고 거칠게 앓으며 허덕이는 그림에 눈을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네댓 예닐곱 번째 포르노는 더 쉬웠어요. ‘18’금 시절에 열아홉 – 만으론 열여덟 - 된 데다 학교 벗이나 선배 여럿과 한잔한 뒤 헤어지기 아쉬울 때 술 사 들고 함께 찾아간 값싼 여관 어디서나 밤새 포르노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돌렸기 때문. 쉬 접하다 보니 눈과 귀와 머리가 무디어졌을까요. 스물 된 뒤로는 웬만한 앓는 소리나 허덕이는 움직임엔 귀와 눈이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시끄럽고 떠들썩했으되 그저 그렇거나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은 그림이 속에 거슬리게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서른 전 포르노그래피가 그리 저물었죠. 싫증 남. 음. 포르노. 그것 보고 들으며 흘려보낸 내 젊을 적 시간이 참 아깝네요. 어쩌다 한두 번쯤으로도 넉넉했을 텐데. 나는 너무 오래 눈과 귀를 빼앗겼습니다.


평등 열쇳말-섹시(sexy)

돈이 될 실마리를 찾느라 온갖 거짓으로 얼룩진 그림이나 소리 따위를 죽 벌여 놓을 때 쓰이는 꾸밈말. TV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섹시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려는 꾐이 넘칩니다. 특히 남자를 꾀려고 여성 몸을 은근히 드러내는 광고가 많죠. 표준국어대사전엔 ‘섹시하다’를 두고 ‘외모나 언행에 성적 매력이 있다’는 뜻이라며 ‘관능적이다’거나 ‘산뜻하다’로 순화하자고 쓰여 있는데요. ‘관능적’이라는 말뜻이야 말이 그러하니 뭐, 그렇다손 치더라도 ‘산뜻하다’로 걸러내 쓸 일은 아닌 성싶습니다.


남자 포르노 배우 생식기는 어마어마해 보입니다. 부풀어 꼿꼿하게 됐을 때 길이가 20센티미터를 넘겨야 출연할 수 있는 걸로 알려졌죠. 돈독 오른 포르노 제작자들이 큰 생식기를 내밀어 보통 사람 꾀려는 데 지나지 않은 거죠. 속지마세요. 내 것이 너무 작은 건 아닐까 걱정할 까닭도 없습니다. 여성 포르노 배우 생식기도 매끈해 보입니다. 나도 뒤늦게야 알게 됐는데 배우 생식기와 항문 둘레를 밝은 빛깔로 문신하거나 화장품을 발라 곱게 꾸민다는 군요. 속지 마세요. 모두 돈독 오른 포르노 제작자가 ‘섹시한 것처럼’ 만들어 놓은 헛된 그림이죠. 꾸미지 않은 몸 그대로도 더욱 예쁜 사랑 얼마든지 나눌 수 있죠. 자기 몸 소중히 여기세요.


스물일곱. 신문 기자 수습 마쳤을 무렵. 함께 입사한 친구 여섯이 서울 신촌에 모여 한잔한 뒤였죠. 술기운 거나한 만큼 시간도 어지간해 인천과 서울 여기저기로 흩어지지 않고 다섯이 여관에 들었습니다. 새벽 한 시쯤 됐을 때 벽 너머 방에 든 두 사람 때문에 우리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어요. 살다 처음 들은 거친 소리 때문이었죠. 어쩜 그리 크고 높게 오래 이어질 수 있는지 참으로 믿기 어려웠어요.


앓는 소리. “오우, 예.” 흔히 그쯤으로 꾸며질 때 많죠. 열에 여덟아홉이 꾸민 소리일 겁니다. 이인 책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290쪽 아래쪽으로부터 291쪽 둘째 줄까지엔 ‘많은 여성이 남자에게서 헌신을 이끌어내고자 할 때 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남자 덕분에 황홀경의 절정을 경험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비명을 지르고 신음을 내며 쾌감을 약간 과장해 표현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면서 자신에게 붙잡아 두는 행동이 오르가슴 연기’라고 쓰여 있죠.


음. 곰곰 되짚으니 깊은 사랑 나눌 땐 ‘아’ 네 ‘음’이네 모두 사라질 때 많더군요. 내 삶에선 그리 큰 ‘앓는소리’… 없었습니다. 거의 들리지 않았죠. 숨은 조금씩 빨라졌어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 열에 여덟아홉은 숨 빨라 진 뒤 끊어질 듯 솟구친 숨소리만으로도 사랑 가득 하 밖으로 흘러나왔다는 걸 함께 느꼈을 거예요. 아마. 숨만으로 넉넉합니다.


평등 열쇳말-핑크(pink)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빛깔. 남자든 여성이든 상관없습니다. 빛깔 고와 눈에 쏙 들어오고 편하면 남자도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는 거죠. 핑크에 덧씌워진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여성스럽다”는 오랜 입길 때문에 그 빛깔 보고도 “곱다”고 쉬 말하지 못한 사람 많았을 겁니다. 깹시다. 남자가 핑크 좋아한다 하여 별나거나 색다른 것 아니니까요.


마흔예닐곱. 같이 사는 벗이 중학생일 때. 요즘도 가끔. 벗이 “어유, 아빠 팬티. 핑크야!”라고 놀렸습니다. 나는 “뭐, 인마. 핑크라 어때서!”라고 말했죠. 어쨌든 나는 ‘핑크’에 허물없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빛깔이잖습니까. 빛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될 일입니다.


입맞춤

<시네마 천국>속 알프레도가 페페에게 건넨 사랑은 영화를 보는 이 가슴에도 잘 닿습니다. 어떤 이는 페페 눈물에 덩달아 눈시울 뜨거워질 테죠. 참 예쁜 그림이자 좋은 이야기예요.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나쁜 짓 일삼은 막시밀리언 라르고가 도미노 페타치에게 억지로 입맞춤했을 때. 역겨웠습니다. 그건 마음 담은 입맞춤이랄 수 없죠. 폭행이에요. 그걸 무슨 ‘남자답다’고 꾸미는 일 많던데 ‘사람답지 못한 짓’이죠. 밀어 붙인 힘 – 박력 – 만큼 사랑도 짙어지리라 여기는 족속이 있던데 어이없는 얘깁니다. 사랑은 사람을 힘으로 잡아 가두는 게 아니거든요.


입맞춤. 내 사랑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 가슴에 닿게 할 열쇠 같은 거. 달뜬 마음 때문에 눈은 아마도 ‘벌써’ 맞춘 뒤 일 겁니다. 예쁜 사랑 하세요. 힘 좀 있다고 벽 같은 곳에 사람 밀어붙여 억누른 채 억지로 하진 마시고.


평등 열쇳말-명절(名節) 놓기

사람에게 고르고 치우침 없어 한결같은 세상을 향해 한국 남자가 집에서 내디뎌야 할 세 번째 걸음. 해마다 돌아오는 설날과 한가위를 앞두고 사람 몸과 마음 다 움츠러들었는데 특히 여성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함께 내던져야 할 때가 됐습니다. 오죽하면 스스로 숨을 멈추겠습니까. 이제 놓읍시다. 같이 사는 벗과 짝과 나는 명절엔 움직이지 않죠. 조용히 집에 줄곧 머물러요.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10년쯤 전부터 그리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처음엔 힘들었죠. 내 어머니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내 어머니 아버지께선 도무지 잘 알아서 받아들일 만한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 노여워하셨어요. 음. 달리 해 볼 게 있었겠습니까. 꾸준히 말씀드렸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내 어머니 아버지, 노여움 푸셨죠. 이젠 먼저 말씀하십니다. “길 막힐 텐데 내려오지 마라. 올 수 있을 때 천천히 와.” 짝과 나도 같이 사는 벗에게 미리 말해 둔 게 있습니다. “나중에 너 혹시 결혼하거든 명절 쇠러 엄마 아빠 집에 올 생각 말아라. 때 더 흘러 엄마 아빠 죽거든 제사 같은 것도 지낼 생각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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