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런 여행 어때?

   
김동욱
ǻ
씽크스마트
   
15000
2018�� 05��



■ 책 소개

 

그동안 누구를 위해 떠났던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고, 편안하게 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대부분이다. 사실 그건 어른을 위한 여행이지 아이를 위한 여행이 아니다. 아이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어른의 바람이자 착각일 뿐. 아이는 시큰둥해서 딴짓하며 여행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여행의 시간과 기억을 돌려주고 싶다는 아빠의 마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여행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라진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여행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즐겁게 노는 것이고 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여행은 자주 다녀도 정작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여행 방법을 잘 몰라 고민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아이와 주로 떠나는 곳은 놀이공원, 워터파크, 정해진 시간 내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체험장... 만약 그런 곳보다 아이들이 마음 깊이 좋아하는, 감성발달에 더 도움이 되는, 훨씬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이 있다면?

 

아이에게는 반드시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여행의 유통기한이 어른의 기대치보다 길지 않다. 이 책 속의 여행은 장소가 아닌 경험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반드시 그 장소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 여행의 실사례를 보여준다. 잠든 감각을 일깨우는 창의적인 자연탐험,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던지는 색다른 감각여행으로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동욱
제주 태생. 국문학 전공. 5년의 잡지사 기자 생활 후 다양한 방송과 언론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005 ㆍ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여행

 

여행 안내문
011 ㆍ 아이가 행복한 여행을 위한 다섯 가지 조언
    ㆍ 첫째, 어떤 여행을 할지 먼저 정하고, 장소를 나중에 정하라
    ㆍ 둘째, ‘콘트라프리로딩’, 직접 딴 사과가 더 맛있다
    ㆍ 셋째, 뻔한 소리지만 철저한 준비만이 답이다
    ㆍ 넷째,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라
    ㆍ 다섯째,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녹음하라

 

상상을 이룬다는 것
024 ㆍ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038 ㆍ 구름에 오르다
052 ㆍ 아이의 비밀 기지 건설하기
067 ㆍ 왕께서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본다는 것
084 ㆍ 아주 작은 빛의 기적, 반딧불이를 찾아서
093 ㆍ 노란색 달빛을 훔쳐 먹은 날
108 ㆍ 색깔달력, 아이가 물들인 열두 개의 색깔
132 ㆍ 상상의 시간을 지켜줄 사진기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듣고 말한다는 것
150 ㆍ 소리사냥을 떠나자
164 ㆍ 소리의 색깔을 듣다
176 ㆍ 쉿, 여긴 침묵의 숲이야
187 ㆍ 마음의 소리를 듣는 여행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냄새를 맡는다는 것
206 ㆍ 향기를 모으다, 추억이 쌓이다
216 ㆍ 세상 어디에도 없는 향수
225 ㆍ 향기달력, 아이가 사랑한 열두 개의 향기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피부로 느낀다는 것
250 ㆍ 바람 불어 좋은 날
260 ㆍ 맨발로 느끼는 지구
269 ㆍ 무지개를 찾아서
279 ㆍ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숲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공감하고 깨닫는다는 것
296 ㆍ 죽음이 무서운 아이와 떠난 여행
309 ㆍ 불편함이 선물하는 행복
325 ㆍ 더불어 산다는 것  

아이와 만들어가는 여행 계획표




아빠, 이런 여행 어때?


상상을 이룬다는 것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밤에 일찍 재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아이가 도통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을 때면 괴물까지 동원해 아이를 겁주곤 했다. 그러면 아이는 이불을 폭 뒤집어쓴 채 두려움에 떨며 그야말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나 1년에 몇 번쯤 늦게 잔다고 결코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나도 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동안 아이에게 지나쳤음을 고백하고 있다. 낮만큼이나 멋진 밤이라는 시간을 그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일찍 재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밤이 어떤 시간인지 아이에게 알려줄 의무가 내겐 있었다.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아이에게서 밤을 밀어냈으니 그걸 다시 찾아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밤은 모름지기 깜깜해야 한다. 어둠이 세상을 삼켜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감각의 자극들이 낮과는 다르게 새롭고 더 예민하다. 그렇지만 도시에는 밤이 없다. 낮처럼 환한 거리, 그건 밤의 공간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빛이 어둠을 가리가리 찢어버린 지 오래다. 도시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었으므로 결국 우리는 불빛이 미치지 않는 밤의 심장을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일단 첫 시도이므로 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 결과 나온 곳이 해발 980m의 양구두미재였다.


아이의 유치원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후, 양구두미재를 향해 첫 밤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 마음에 날씨가 초를 쳤다. 분명 비 소식은 없었는데,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하늘이 검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는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철수와 잔류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아이는 계속 있고 싶어 했다. “그래, 이런 것도 다 추억이 되는 법이지.” 나는 아이의 편을 들었다. 결심이 서자 우리는 날씨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 서둘러 텐트를 치기로 했다. 역할을 나눈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아 텐트가 세워졌다.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젖은 몸을 말렸다. 그러는 사이 슬그머니 밤이 찾아왔다. 머리에 그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밤이었다. 텐트를 끔과 동시에 어둠이 우리를 순식간에 꿀꺽 삼켰다. 아이와 나는 이날 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포의 본모습은 때로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겉만 화려한 사람처럼 말이다.


빛이 사라지면서 눈이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니 놀랍게도 귀가 활짝 틔었다. 눈이 보일 때는 거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또렷이 들렸다. 작게 들리던 소리들은 더욱 크게 들렸다. 비도 거세졌다. 누군가 노크하듯이 빗방울이 텐트를 때렸다. 나는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안에서 느끼는 것만큼 밖은 요란스럽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밖에 나갔다 온 후로 그 소리들이 이전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첫 밤 여행에서 무사히 귀환했다.


양구두미재의 밤이 정말로 인상에 남았는지, 아이는 다시 한 번 그곳에 다녀오자고 성화를 부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주 만에 재차 같은 장소로 떠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 밤, 별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졌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별들이 하늘을 밝혔다. 은하수를 처음 본 밤 이후로 아이는 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는 법. 그렇게 해서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은 누가 가르치거나 억지로 주입하는 지식과 달리 진짜 자신의 것이 된다.


밤 여행을 통해 아이가 쓸데없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별을 사랑하게 되고, 밤을 낮과 같이 생기 넘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큰 선물과도 같은 변화다. 그런데 변화가 아이에게만 찾아왔냐면 그렇지 않다. 아내와 내게도 찾아왔다. 우리의 밤 여행은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와 잠시 강제적으로 분리되는 시간이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았을 때, 우리는 밤의 적막에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밤 여행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밤의 적막이 가져다주는 사색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그러니 만약 당신도 우리처럼 밤 여행을 계획한다면 부디 스마트폰일랑 꺼두길.



본다는 것

아주 작은 빛의 기적, 반딧불이를 찾아서

어느덧 더운 바람이 불어와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던 6월 초. 슬슬 어스름이 깔릴 무렵 우리는 깊고 깊은 숲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곶자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주 특별한 제주의 숲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반딧불이를 보는 것이었다. 아직 해가 기울기 전이었으므로 반딧불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냐.” 날개가 검고 앞가슴등판이 적황색인 시시한 곤충이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며 나무와 풀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꽁무니에 불을 밝힌 채 날아다니는 곤충만을 반딧불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거라면 나도 여러 개 봤는데....” “그래, 하지만 그게 반딧불이라는 걸 미처 몰랐지? 사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야. 잘 모르면 옆에 두고도 없다고 생각하게 돼. 그러니까 관심이 있다면 뭐든 열심히 알려고 노력해야 해. 그래야 제대로 볼 수 있어.” 숲 속 조그마한 빈터에 우리는 준비해 온 작은 텐트를 쳤다. 그리고 밤이 선물 상자를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깜빡 깜빡. 밖에서 어떤 장난꾸러기가 전등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새 졸고 있던 아이를 깨워 서둘러 텐트 밖으로 나갔다. 밤이 까만 장막을 드리운 숲이라는 무대에서 수많은 반딧불이가 화려한 군무를 추고 있었다. 놀라운 그 광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며 여기저기서 내보내는 반딧불이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숲이 마치 거대한 우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지럽게 반짝이는 그 별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이가 갑자기 현기증을 호소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눈앞에서 엄청난 수의 조명이 예고도 없이 깜빡거리는데, 나 또한 약간 현기증이 났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빠, 똑같아요. 눈을 감아도 반딧불이가 막 날아다녀요.” 아내와 나도 아이처럼 눈을 질끈 감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아이의 말처럼 반딧불이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녔다. 반딧불이가 빚어낸 밤의 풍경에 감동한 뇌라는 녀석이 나중에 꺼내 보려고 녹화해두었던 영상의 재생버튼이 눌렀음이 분명했다. 아무튼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반딧불이의 춤을 감상하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잠시 쉬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잡아서 유리병 속에 넣어두었던 반딧불이들이 반짝이며 텐트를 밝혔다. 그것들을 다시금 숲으로 날려 보내고 가만히 않아 있노라니 갑자기 텐트 바깥이 비정상적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불을 밝혔다가 껐다. 집단때맞음이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다른 반닷불이의 빛을 감지하고 모두가 그에 맞춰 빛을 내는 것이다.


반딧불이와 함께한 여름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 행복을 맛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시골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게 반딧불이다. 하지만 이제는 곶자왈처럼 깊은 숲에서나 만날 수 있다. 환경오염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환경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춤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딧불이를 살린다는 것은 흙과 물과 공기를 살리는 일이며, 이는 곧 거기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 궁극적으로 인간을 살리는 일이다.



듣고 말한다는 것

소리사냥을 떠나자

계절이 성급하게 여름으로 넘어가 버린 듯, 신성한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5월 말의 초저녁. 잠시 친정에 다녀오겠다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어진다는 얘긴가 보다 하고 받았는데,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아이였다. 인사말도 생략한 채 아이는 다짜고짜 말했다. “이것 좀 들어보세요, 아빠.” 전화기 너머로 족히 수백 마리는 됨 직한 개구리들의 우렁찬 울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짝짓기 철을 맞아 수컷들이 암컷들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랫소리였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말했다. “차창을 열고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개구리 합창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요. 얘가 아빠한테 당장 전화해서 함께 듣자고 하지 뭐예요.” 그 마음 씀이 고맙고 예뻐서 아이를 살포시 안은 다음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뜻밖의 전화 선물을 받은 나는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보답할 방법은 없나 찾아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소리를 사냥하러 가자.” 뜬금없는 내 제안에 아내와 아이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새였다. 내가 생각하는 소리사냥은 특정 소리를 목표로 정한 후에 그걸 최대한 고스란히 사로잡는 여행이었다. 여행지에 갔을 때, 우리는 단지 보기만 하지 않는다. 냄새도 맡고, 소리도 듣고, 온도나 습도와 같은 공기의 질감도 느낀다. 나는 소리사냥이라는 다소 황당한 여행을 통해 아이에게 소리와 관련된,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오로지 들리는 소리만 듣는 수동적 듣기가 아니라, 듣고자 하는 소리를 스스로 찾아내어 듣는 능동적 듣기를 통해 아이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소리를 성공적으로 포획했을 때 느낄 뿌듯한 성취감은 시도하고 도전하기를 겁내지 않는 아이로 성장시킬 것이다.


집과 야외에서 몇 차례의 마이크 작동 테스트를 거친 후, 우리는 드디어 첫 소리사냥에 나섰다. 장소는 조간대 조수 웅덩이. 사냥감을 그곳에 사는 생물들의 소리였다. 우리는 제주도 성산 지역 암반조간대의 조수 웅덩이에서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다양한 생물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 조수 웅덩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우리는 보말고둥과 댕가리를 비롯해 각종 게들을 잡아서 유리병에 담았다. 졸지에 병에 갇힌 녀석들은 당황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이는 이때다 하고 유리병 입구에 마이크를 가져다댔다. 그런데 소리를 채집하던 아이가 갑자기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아빠, 귀가 엄청 간지러워요. 얘네가 ‘사각사각, 딸깍딸깍, 또로로로록’ 소리를 내면서 자꾸만 귀를 간질여요.” 아이의 헤드폰을 건네받아 들어보니 정말 그랬다. 마치 누군가 내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겨울로 안내하는 늦가을 서늘한 바람에 바짝 마른 갈댓잎이 부대끼는 소리를 우리는 담고 싶었다. 그게 처음의 계획이었다. 가창오리 군무를 보러 나포 들녘 제방에 다녀오는 길, 우리는 가까운 신성리 갈대밭에 들렀다. 마치 해안으로 밀려왔다가 서둘러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갈댓잎 소리는 시원했다. 아이는 갈대밭 산책로 한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그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마이크를 꺼냈다. “여긴 갈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 갈댓잎 소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우리는 다른 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녹음된 그 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각각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늦가을 갈대밭 풍경을 그렸던 것이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

향기를 모으다, 추억이 쌓이다

한파 경보로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어야 했던 어느 겨울날, 우리는 좀이 쑤셔서 미칠 지경이었다. 겨울은 눈 덕분에 즐겁지만, 바깥 활동을 하기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계절이다. 무료함을 달래줄 건수가 없나 궁리를 하다가 문득 그간 채집한 향기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걸 다 열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향기들을 찾아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 단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의 향기에도 주목했다. 특별한 향기를 지닌 꽃이나 풀, 이파리, 열매 따위를 보면 그것들을 가져와서 유리병에 담았다. 31개의 유리병 속에는 아무런 향기가 없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담겨 있었다. 향기는 어느 곳에나 있다. 무색무취하다는 물 또한 처음 비로 내릴 때는 향기를 지니고 있다. 햇빛도 향기가 있다.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느꼈다.


우리에게 향기를 채집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두고두고 맡고 싶은 향기를 붙잡는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소중한 향기를 우리는 마치 그 대상의 영혼처럼 소중히 다뤘다. 채집과 이동 시에 대상물이 흠집 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고, 집으로 가져와서는 종류에 따라 잘라서 껍질을 벗기거나, 거꾸로 매달아 말리거나, 물에 담가 오염된 부위를 씻는 등의 후처리를 거친 후 유리병에 보관했다.


31개의 향기 중에서 아이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것으로는 국화꽃, 아까시꽃, 칡꽃, 댕유지, 상산나무 잎, 계수나무 잎, 비목나무 잎, 목화 등이 있다. 국화꽃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의 고인돌공원 앞에서 채집했다. 국화꽃축제가 막 끝난 후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바람이 잘 드는 응달에 돗자리를 깐 후 펼쳐 널어서 수분을 완전히 증발시켰다. 아까시꽃은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수리산 기슭에서 채집했다. 아까시나무는 흔히 아카시아나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수종이다. 새하얀 아까시꽃은 바싹 말리자 누렇게 변색이 됐다. 하지만 향기는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목화솜은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숲 앞에서 채집했다. 경주시에서 관상 및 체험용으로 심어놓은 것이었다. 제법 넓은 면적이 밭에 목화가 심어져 있었다. 우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다래를 골라서 땄다. 그리고 그릇에 담아서 아이의 책상 위에 두었다.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다래가 팝콘처럼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새하얀 솜이 모습을 드러냈다.


향기를 맡고 추억을 더듬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깨닫게 된 우리는 뚜껑을 열어 그 향기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향기의 강도는 확실히 조금씩 약해졌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향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상관없다. 유리병의 뚜껑을 여는 빈도만큼이나 짙어진 추억이 그 안에 쌓였다. 향기가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추억을 꺼내면 그만이다. 향기는 추억의 다른 이름이니까.



피부로 느낀다는 것

바람 불어 좋은 날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만 해도 맨발로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맨발로 밟았던 땅의 감촉이 마치 방금 전 일인 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맨발에 닿는 지금의 감촉을 사랑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신발에 적응했다. 수신기의 감수성은 한없이 무뎌졌으며 피부도 연약해졌다. 어릴 적 자연을 맨발로 누비며 누렸던 행복을 아이도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핑계로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어린 시절의 행복을 다시금 맛보고 싶었다.


맨발로 걸을 만한 곳을 찾다가 괜찮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6.8km의 우이령길이었다. 우이령길은 전체 길이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4.46km가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구간이 맨발길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과감히 신발을 벗었다. 모두의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걱정과 달리 아이는 금방 적응했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말고는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발바닥으로 오는 땅의 감촉을 아이는 신기해했다.


우리는 이 건강한 숲길을 정말로 천천히 걸었다. 대전차장애물을 지나 오봉전망대 그리고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 왕복하는 데 빠르면 2시간, 게으름을 피워도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러나 아이는 고작 네 살이었다. 모든 것을 아이의 속도에 맞췄다. 아이는 뛰어다니기도 하고 한곳에 눌러앉아 흙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나비를 쫓느라 다시 걸어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어차피 아이에게 맨발의 기쁨을 알려주러 온 여행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됐다고 신호를 보낼 때까지 그곳에서 거의 하루 종일 머물렀다. 놀이를 할 때,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 다르게 간다. 아이에게는 물리적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만족을 해야만 그 시간이 종결되고 다음의 시간이 온다. 마치 태어난 이래 항상 맨발이었던 것처럼 아이는 편안해했다. 우이령길을 다녀온 후 아이는 그 기억이 좋았던지, 야외로 나가면 일단은 신발을 벗고 보았다. 그게 조금 걱정이 됐다.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안전한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발이어도 다치지 않을 곳들을 골라 아이와 다녔다. 그중 아이가 유난히 즐거워한 곳은 갯벌이었다.


아이는 펄갯벌을 가장 좋아했다. 우리는 여름이면 강화도를 자주 찾았다. 강화도에는 무려 353㎢에 이르는 갯벌이 있다. 대부분 펄갯벌이다. 펄갯벌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표본을 볼 수 있다. 펄갯벌은 늪과 같아서, 발이 깊게 박히면 여간해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발이 빠졌을 때 옷이나 몸을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나오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펄갯벌에서는 절대 고상한 척하면 안 된다. 펄이 꽉 잡고 발을 놓아주지 않으면 엉금엉금 기어서 나오면 그뿐이다. 우리는 항상 썰매를 준비해 갔다. 아이는 펄갯벌에서 썰매 타기를 정말 즐거워했다. 그 썰매의 말 노릇을 하는 것은 힘들기 그지없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런 수고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특별한 추억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아이와 함께 맨발로 흙길을 걷거나 갯벌에서 뒹굴고 나면 그 이후에 무척 성가실 것이다. 지구와 맨발로 접속하는 일은 굉장히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꾸만 신발을 벗으려 들 것이다. 그럴수록 부모는 맨발을 드러내도 괜찮은 곳들을 계속해서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부모의 발과 몸은 흙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게 두렵다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심을 담아 건네는 조언이다.



공감하고 깨닫는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나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행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종종 자연스럽게 전하는 편이다. 무엇이 왜 문제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끼는 것보다 더 나은 공부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구는 다양한 생물종이 한데 어울려서 살아가는 곳. 인간도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떤 종도 인간에게 지구를 함부로 할 권리를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들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인 양 행세한다. 여기 우리가 찾아갔던 4개 장소가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슴 아파도 했고, 희망을 보기도 했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더 많은 희망의 장소를 만나게 되면 좋겠다.


추석을 쇠러 제주도 시골집에 갔다가 하도리 철세 도래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도리 철세 도래지는 해안선이 섬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전형적인 만 지형이다.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과도 같았다. 새들의 먹잇감이 풍부했다. 게다가 개간 당시 쌓았던 방죽이 바닷물은 자유롭게 드나들게 허용하면서도 큰 파도가 밀려드는 것을 막아주어 새들이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아이와 이곳에 갔던 날도 해안선의 가장 깊숙한 지점에서 황새와 물떼새, 각종 오리류가 모여 먹이사냥을 하거나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이곳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건설된 해안도로 때문이다. 비록 물이 드나드는 문을 하나 설치하긴 했지만, 해수의 유입이 원활하지 않아서 만이 저수지화되고 있었다. 물의 염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수질이 악화되어 어패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를 게 아니라 해안을 잠시 벗어나더라도 돌아서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하도리 철세 도래지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생태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도로를 건설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라 안타깝고 화가 났다. 한편, 현재 하도리 주민들은 다시금 물길을 터달라고 제주도 측에 요구 중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연이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할 거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장 건설 예정지도 가보았었다. 가리왕산 하봉에서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방면으로 슬로프가 놓이는데, 당연히 산의 사면을 완전히 깎는 대공사가 진행될 계획이었다. 우리 가족은 가리왕산의 깊은 숲을 아주 좋아해서 가끔 그곳의 자연휴양림으로 향하던 참이었는데, 문득 알파인스키장 건설 이야기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조선 시대부터 500년 동안 일반일의 출입을 금해왔던 가리왕산 일대는 녹지자연 9등급, 생태자연 1등급의 극상림으로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던 곳이다. 그런 곳에 스키장이라니? 그 숲에 다녀오고 나서 한 달쯤 지났을까. 마침내 스키장 건설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날 우리는 종일 마음이 울적했다. 그곳에 살았던 불쌍한 이름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랬다.


사라질 위기에서 다행히 탈출한 곳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강화도의 매화마름 군락지와 창녕의 우포늪이다. 강화도에서 매화마름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공이다. 내셔널트러스트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사들여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비영리 민간운동이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1998년 5월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일대 논에서 발견되었다. 긴급하게 해당 논 매입운동을 펼침으로써, 하마터면 경지 정리로 사라질 뻔한 것을 살려낼 수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7대 후손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숲을 개간하거나, 갯벌을 간척하거나, 강을 직선으로 뽑아 무언가를 만들면 당장에는 이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의 시대에서 더욱 각박한 삶을 살 게 뻔한 우리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까?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건 편안히 마음을 보듬어줄 자연이 아닐까? 우리는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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