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육아

   
도로시 로 놀테 외(역:김선아)
ǻ
중앙생활사
   
13800
2016�� 07��



■ 책 소개

 

내 아이의 ‘진정한 성장’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그러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모범’, 즉 ‘인생 샘플’이다. 아이는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부모에게서 전부 흡수한다. 그 점에 착안을 둔 이 책은 육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모가 되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가 가득하다.

 

저자
도로시 로 놀테(Dorothy Law nolte)

도로시 로 놀테는 평생을 교사로서 또 가정생활교육 강사로 살아왔으며 1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부모들과 교육가들에게 사랑을 받은 시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배운다(Children Learn What They Live)’의 저자다.


세 자녀의 어머니, 세 손자와 다섯 명의 증손자들을 둔 할머니인 그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강연가, 육아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레이첼 해리스(Rachel Harris)
저자 레이첼 해리스는 심리치료사로서 가정치료와 부모양육 교육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로시 로 놀테 박사와 오랫동안 동료 강사로서 인연을 맺으며 함께 강의를 해오고 있다.

 

■ 역자 김선아
역자 김선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던 해에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오클랜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메시 사범대학에서 고등교사 과정을 수료했다. 뉴질랜드, 홍콩,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산업의 투자유치, 마케팅을 담당했다. 레고 디자이너가 꿈인 태권소년 여섯 살 지빈 군과 울고 웃으며, 매일 조금씩 함께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좋은 책을 만드는 좋은 작가·번역가가 되고 싶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주요 역서로는 『스눕-상대를 꿰뚫어보는 힘』『엄마가 되어버렸어』『무심한 엄마가 왕따 아이를 만든다』『아파트테라피』『유태인 자기대화』『이기적 이타주의자』『마인드 리딩』『흰 빵의 사회학』『바보세대』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사 - 내 아이의 ‘진정한 성장’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들어가는 글 -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배운다’에 얽힌 이야기
시 -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배운다

 

야단을 맞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싸우는 것을 배운다
두려움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불안감을 배운다
동정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연민을 배운다
놀림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수치심을 배운다
질투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시기심을 배운다
수치심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은 죄책감을 배운다
격려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감을 배운다
관용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인내심을 배운다
칭찬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남을 인정하는 것을 배운다
포용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배운다
허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인정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목표를 갖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운다
서로 나누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운다
정직함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진실함을 배운다
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의를 배운다
친절과 배려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운다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배운다 




아이가 성장하는 마법의 말

긍정 육아


야단을 맞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만약 우리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사소한 일에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법, 더 나쁘게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이들은 세상의 바르고 아름다운 것보다 잘못된 것에 주목하게 된다.


비난의 감정은 말투나 억양, 순식간에 오가는 눈빛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될 수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말하는 태도에 아주 민감하다. 예를 들어 엄마가 "이제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저 가야 할 시간이구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아빠가 서두르면서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했다면, 아이는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니 넌 정말 나쁜 아이구나!라는 뜻을 담은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이가 엄마 아빠의 말 중 어떤 것을 더 잘 들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는 이 두 메시지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조하게 내뱉은 아빠의 말은 어쩌면 아이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과소평가하도록 할 수도 있다.


물론 누구나 화가 나는 상황이 있고 남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끊임없이 비난하거나 습관적으로 불평하는 태도다. 비난을 늘어놓는 것이 습관적으로 행해지면 그 결과가 누적돼 결국 가정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분위기로 만든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선택해야 한다. 우리 가정을 비판적이고 책망하는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고,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다.


순간적인 홧김에

여섯 살 소녀 애비는 자신이 꺾어온 꽃을 물이 담긴 플라스틱 꽃병에 꽂고 있었다. 그런데 팔꿈치로 꽃병을 건드려 그만 바닥이 물바다가 됐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애비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에 엄마가 달려왔다.


"세상에!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이게 뭐니?!"


에비의 엄마는 화부터 내고 말았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도 있을 것이다. 생각도 하기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순간적으로 내뱉고 나서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애비의 엄마도 너무 지쳐 있었거나 아주 바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른 분위기를 바꿔 더 심각한 상황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뱉은 말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좋다.


만약 애비의 엄마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애비에게 소리 지른 것을 사과하고 어질러진 것을 함께 치운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애비는 이 일에 대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애비의 엄마가 계속해서 애비를 꾸짖는다면 애비는 자신이 정말 조심성 없고 무능한 아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려서 짜증이 치밀어 올라도 욱하는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니?" 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상처 주지 않는 말을 평소에 연습하고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연습이 돼 있다면, 아이는 말썽을 부리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자신을 자책하거나 비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활방식을 배우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아이에게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도록 격려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해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좀 더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우고 원칙을 정해주면 사고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해주면 더 바르고 예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행동의 지침이 될 명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의 인내심이나 융통성과 준비성과 상관없이 아이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최대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이견을 조율하냐다. 교착 상태에 빠지면 양쪽 모두 손해다.


이렇게 사소한 문제를 함께 결정하는 것은 아이가 십대로 접어들면서 더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만약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나눌 때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란다면, 부모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고 문제를 풀어가려 할 것이다.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싸우는 것을 배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적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는 우리 가정과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정에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곤 한다. 물론 우리의 문화 속에는 적대심과 분쟁이 차고 넘치도록 많다. 요즘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과도한 폭력과 싸움에 장시간 노출돼 있다.


적개심은 갑자기 폭발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형제끼리, 학교에서는 급우끼리, 길에서는 낯선 사람끼리, 또는 운전 중이나 일상에서 이웃 간에도 갑작스럽게 적개심이 폭발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이런 적개심과 분쟁이 가득한 곳에서 살고 있다.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거나 이웃끼리 다투는 것을 보거나 뉴스를 통해 크고 작은 전쟁 혹은 분쟁에 대한 사고를 접하기 때문이다.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강한 척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마치 건드리기만 해도 덤벼들 것 같은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일부러 시비를 걸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가벼운 의견 대립조차 피하려 할 만큼 싸움 자체에 겁을 먹거나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기도 한다. 이런 각각의 유형은 초등학교 놀이터나 어린이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정에서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으면 아이들은 싸움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 여기게 된다. 또 인생은 전쟁이고 싸우지 않고서는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다른 사람과의 의견 대립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는지를 보면서 다른 사람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싸움을 하는지, 아니면 건설적인 대화로 푸는지를 보며 똑같은 해결책을 따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쌓여가는 먹구름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뭔가 큰 사건이 터져서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더는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인 경우가 많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치고 배고픈 채로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종종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평정심을 잃곤 한다.


네 살배기 프랭크는 유치원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다. 컴퓨터를 쓰고 싶었는데 자기 차례가 오지 않았고, 선생님은 다같이 공평하게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게다가 아빠는 사무실에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겨 프랭크를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어땠니?" 아빠는 쾌활한 척 그리고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사실은 피곤하고 지칠 대로 지쳐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었다.


"좋았어요."

프랭크는 차 뒷자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라디오에는 뉴스가 방송 중이었고 길이 막혀서 차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싱크대 한쪽에 놓인 작은 TV에서는 뉴스가 빠른 속도로 사건 사고 소식을 전했다. 식구들은 모두 배가 고팠다. 혼자 재킷을 벗던 프랭크는 실수로 싱크대 위의 도시락을 쳐서 떨어뜨렸고 바닥 여기저기에 크래커 가루가 쏟아졌다.


가정에서 이런 상황은 꽤 흔할 것이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대부분 이와 비슷하게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챙기는 게 매우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는, 불만족스럽고 짜증나고 그리고 신경이 날카로울 때 사소한 일에 신경질이 나는 감정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런 사소한 감정들을 느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그때그때 창조적인 방법으로 없애지 않으면 이런 감정들이 불쑥 치밀어 오르거나 계속해서 쌓여서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큰 분노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조금 울적하고 분한 마음이 생겼다가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서 어느 순간 갑자기 엄청난 분노로 폭발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이 경우 프랭크의 엄마는 짜증을 억누르고 그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엄마는 프랭크에게 작은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건네주며 "괜찮아. 이걸로 깨끗하게 치우렴." 하고 말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위한 닭고기구이를 오븐에 넣고 프랭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격려하는 투로 말했다. "벌써 거의 다 치웠네. 자, 나머지는 엄마가 도와줄게." 엄마는 빗자루로 남은 부스러기들을 쓸어 모은 다음 프랭크가 들고 있던 쓰레받기에 담았다. 프랭크의 얼굴에는 감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이 사건의 다른 결말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도시락을 떨어뜨린 후, 프랭크는 짜증이 폭발해서 이렇게 소리쳤을 수 있다. "난 이 도시락이 싫어! 유치원도 싫어!" 엄마는 이 사건을 아빠 탓으로 돌리며 고함을 질렀을 수도 있다. "아니, 내가 요리하는 동안 프랭크를 돌보지 않고 뭐하는 거예요?" 아니면 프랭크를 혼내며 불평을 터뜨렸을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좀 조심할 수 없니?"


불만을 느낄 때는 불만을 즉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혼잣말로라도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짜증에서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적대적인 감정들을 다루는 법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감정들을 다스리면 좋을지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어린 자녀들에게서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하건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과 소꿉놀이를 하는 등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활동을 함으로써 본능적으로 화를 떨치고 욕구불만을 해소한다.


우리도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대신에 잠깐 산책을 한다든지, 정원 일을 하거나 세차를 하는 등 육체적인 활동으로 화를 떨칠 수 있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천천히 심호흡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목적은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자제력을 되찾기 위해서다. 이것은 우리가 긴장된 순간을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서로 나누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운다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시간, 공간, 그리고 에너지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녀들은 가족 안에서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배운다. 그것이 집에 하나뿐인 욕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든 장난감이나 자동차 또는 가정의 수입을 함께 나누는 것이든 간에 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또는 자녀들과 기쁘게 나누는 모습을 경험하게 해줄 때 자녀들은 관대함을 배울 수 있다. 진정한 관대함은 가르친다고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본받을 수 있도록 이기적이지 않고 나누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자녀가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종종 어린 자녀에게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만 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남들과 나누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만 배울 뿐,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너그러운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나눔의 시작

인정하자.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는 나눔이라는 것을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이타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필요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나눠 가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은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계발된다.


다른 사람과 나누는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나가는 것이 바로 부모가 할 일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칠 때는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것부터 실천하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막 걸음마를 떼는 시절에도 몇 가지 핵심 단어를 강조하면서, 전체를 여럿으로 쪼개는 것이 바로 나누는 것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것으로 나눔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 "당근을 나누는 거야. 자, 너도 조금 먹고 엄마도 조금 먹고." 또는 "엄마도 쿠키 한 개, 아빠도 쿠키 한 개, 너도 쿠키 한 개."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복잡한 나눔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자기가 먹기 전에 손님을 먼저 접대해야 한다든지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려 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때의 놀이를 병렬 놀이라고 부른다. 유아들은 다른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다지 어울려 놀지는 않는다. 두 살 반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그제야 실제로 여럿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 시기는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이 시점에 드디어 나눔의 기본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살 어린이반에 들어간 토마스가 나무 트럭을 여러 개 가지고 놀고 있는데 동갑내기 데이비드가 슬금슬금 다가와 트럭 중 하나를 집어든다. 토마스는 곧바로 데이비드에게서 트럭을 빼앗아 버린다.


이런 순간 대부분의 어른들이 끼어들어 토마스에게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해결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다. 만일 토마스가 데이비드와 트럭을 함께 가지고 노는 것을 거부한다면 한동안 같이 놀 친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충분히 혼자 놀다 보면 토마스는 함께 나누는 것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 가령 놀이 친구가 생긴다는 것 등을 깨달을지 모른다. 그 시점에 개입해 토마스에게 데이비드와 함께 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토마스가 여전히 싫다고 하면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데이비드에게 토마스가 나중에는 함께 놀고 싶어 할지 모른다고 말해 주고 데이비드가 따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다른 장난감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보통 이 과정에 호기심이라는 본능이 큰 도움이 된다. 토마스에게 함께 노는 걸 거절당한 데이비드는 노아의 방주라는 놀이기구 세트를 가지고 혼자 놀기 시작했다. 노아의 방주는 예쁘게 색칠된 동물들로 가득 채워진 나무 배다. 토마스는 데이비드 쪽을 힐끗 쳐다봤다. 동물들이 멋있어 보였고 데이비드가 동물을 가지고 아주 재미있게 노는 것 같았다. 토마스는 데이비드를 계속 지켜보다가 점점 관심이 커졌다. 마침내 자기 트럭을 몇 개 들고 데이비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데이비드에게 건네주면서 방주 안에 넣으라고 했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그 보답으로 트럭에 넣으라고 얼룩말 한 쌍을 줬다. 이 아이들은 혼자 노는 것보다 함께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과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언제나 착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누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줌으로써 가능하다.



친절과 배려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남을 존중하는 법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남을 존중하는 공손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 가르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남을 존중하는 것과 다르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가족 구성원 간에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고 자신이 대우받는 것처럼 남들을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성장한다.


친절과 배려는 존중하는 마음이 진실이라는 것이 증명한다. 이런 태도는 매일매일, 매주, 매년 사소한 일상에서 수없이 많이 표현된다. 우리가 자녀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할 때 아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자녀가 사소한 방식으로라도 남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예를 들면 동물에게 다정하게 대하거나 어린 동생의 실수나 생떼를 너그럽게 참아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아이의 착한 행동을 칭찬해 그런 태도를 키워 나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친절과 배려라는 품성을 키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모로서 우리 자신도 배우자나 자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우리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마음에 상처를 줬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또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노력할 때 아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우리 역시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말보다 행동을

인간관계 중 아이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부모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존중하는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가장 많이 배우게 된다. 자녀들에게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말로 가르치는 것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우리가 배우자를 대하는 행동을 보고 그대로 배우게 된다.


여덟 살 난 쌍둥이 자매 애나와 에밀리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싸우고 있다. 엄마는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소리를 꽥 질렀다.


"제발 그만 싸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구나!"


두 아이는 놀란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애나가 말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늘 말다툼 하잖아. 이것도 똑같은 말다툼이야."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애나의 말이 옳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상대방에게 말하는 방식, 목소리 톤이나 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정까지도 알아챈다. 우리가 싸우느냐 말다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대화를 통해 불화와 오해를 풀어가는 방식 그리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사이에 오가는 아주 사소한 애정 몸짓까지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정신적인 기준이 된다.


"부탁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천만에요." 같은 예의바른 표현과 "뭘 좀 가져다 드릴까요?", "도와드릴까요?" 같은 배려의 질문을 습관화할 때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운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신뢰하는 대상은 부모다.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든지 우리가 언제나 그들을 위해 옆에 있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감정을 고려하고 존중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이들은 우리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런 안정감과 부모의 변함없는 지지를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게 된다. 자녀들은 우리가 언제나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것이며 그들이 임무를 잘 수행하거나 실수를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늘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안전망

아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 나간다. 어린아이가 "내가 혼자 할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아이의 자존감이 확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할 때 격려하고 지원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항상 아이들 곁에 함께 하면서 계속해서 격려하고 이끌어줘야 한다.


다섯 살인 니콜라스는 잠자리에 누워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자전거에서 보조 바퀴를 떼고 싶어. 그래도 돼?"

"물론이지."


엄마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와 니콜라스는 드라이버를 꺼내 보조 바퀴를 떼냈다. 하지만 보조 바퀴 없이 자전거 타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계속 비틀거렸다. 특히 엄마가 자전거 안장에서 손을 떼고 혼자 타야 할 때는 더욱 비틀거렸다. 그날 밤 니콜라스가 말했다.


"다시 보조 바퀴를 달아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내일 아침에 달아줄게."


엄마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니콜라스는 다시 보조 바퀴가 없는 어린이 자전거 앞에 섰다.


"보조 바퀴를 달기 전에 한 번 더 타볼래?"


엄마는 니콜라스가 한 번만 더 해보면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좋아."


니콜라스가 엄마의 제안에 응했다. 니콜라스는 엄마가 바퀴를 다시 달아준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자기가 못한다고 해도 잃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니콜라스는 자전저 핸들을 꼭 움켜쥐고 자신감에 넘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아 나갔다.


니콜라스의 엄마는 아주 적절하게 균형을 잘 잡았다. 보조 바퀴를 떼 달라는 니콜라스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또다시 붙여달라는 부탁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볼 것을 권했다.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이제 다 컸으니 바퀴 없이 타야 한다는 말로 부담을 주지 않았고, 편하게 한번 더 시도해볼 수 있게 해줬다. 니콜라스가 넘어질까? 물론 넘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끔씩 넘어진다. 특히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할 때 더 많이 넘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자전거 안장에 다시 올라타기 위해 자신을 믿는 마음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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