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

   
브루스 D. 페리 외(역: 황정하)
ǻ
민음인
   
16000
2015�� 04��





■ 책 소개


미국 최고의 아동 트라우마 전문의가 쓴 정서 지능의 핵심, 공감 능력 발달에 관한 안내서


아이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감 능력의 발달 과정을 아동 트라우마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 바로 공감이며, 이는 관계를 단단하게 이어 주는 강력한 접착제다.


소아 정신과 전문의이자 아동 트라우마 전문가인 브루스 페리는 학대와 방임에 관한 열 개의 사례를 토대로 이 소중한 능력이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지 보여 주며,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한다.


■ 저자
브루스 D. 페리

휴스턴에 본사를 둔 비영리 기관 아동 트라우마 아카데미ChildTrauma Academy(www.ChildTrauma.
org)의 선임 연구원이며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 의학부 정신 의학 및 행동 과학 외래 교수이다. 지난 30년 동안 아동 정신 건강 및 신경 과학 분야에서 임상의 및 연구자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트라우마를 겪는 아동에 대한 풍부한 경험 때문에, 와코의 다윗 파 진압 사건, 오클라호마 시 폭탄 테러 사건,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9.11 테러 사건, 카트리나 허리케인, FLDS 일부다처종 파 사건과 가장 최근의 아이티 지진까지 트라우마를 겪는 아동과 관련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건이 일어나면 수많은 지역 및 정부 기관이 페리 박사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다.


폭력에 대한 백악관 회담White House Summit on Violence, 교육에 대한 캘리포니아 의회, 미 하원 같은 정책 결정 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아동 학대, 아동 정신 건강, 신경 발달 및 청소년 폭력에 대해 발표했다. 또한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투데이 쇼」, 「굿모닝 아메리카」, 「나이트라인」, CNN, MSNBC, NBC, ABC와 CBS 뉴스, 「오프라 윈프리 쇼」 등 수많은 미디어에도 출연했다. 그의 연구 성과는 「데이트라인 NBC」, 「20/20」, BBC, 「나이트라인」, CBC, P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물론 세계 각국의 십 수 가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시카고 트리뷴》의 ‘퓰리처상 수상작 시리즈’, 미국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타임》, 《뉴스위크》, 《포브스》, 《ASAP》,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롤링스톤》 등 수많은 인쇄 매체에서 페리 박사의 임상 및 연구 활동을 대서특필해 왔다.


마이아 샬라비츠
조셉 볼피셀리 박사와 함께 『반드시 도와야 한다: 10대 문제아가 부모에게 사기치고 아이들을 해치는가Help at Any Cost: How the Troubled-Teen Industry Cons Parents and Hurts Kids』와 『회복 방법: 완벽 지침Recovery Options: The Complete Guide』을 저술한 과학·건강 전문 저널리스트로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 역자 황정하
연세대학교 전산과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지퍼에서 자동차까지』, 『진단명 사이코패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1215 마그나카르타의 해』, 『자전거 세계여행』,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7』, 『앙코르: 장엄한 크메르 문명』,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우리는 과연 사랑을 충분히 주고 있을까


1장 아기를 관찰하는 시간 - 공감의 뿌리를 찾아서
2장 얼굴에 털모반이 있는 아이 - 눈맞춤으로 시작되는 인간관계
3장 나에게만 사랑을 주세요 - 개별적인 돌봄의 부재
4장 세상은 내게 너무 강렬해요 - 자폐 아동의 공감 능력
5장 진실을 말하지 않는 형제들 - 공감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맥락
6장 매력적인 소시오패스 - 반복적인 애착 박탈이 가져온 잔인성
7장 회복력 -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공감하는 존재로
8장 무리에 속하고 싶었던 카멜레온 소녀 -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는 또래 집단의 압력
9장 갱단에서 자라난 아이 - 잔인한 세상에 뇌가 적응하는 방식
10장 스크린 마더 - TV 시청이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
11장 어서 커서 다윗의 신부가 될래요 - 불평등한 사회에서 약자가 받는 스트레스
12장 아이슬란드의 행복한 아이들 - 공감 능력을 키워 주는 사회
13장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 공감 결핍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


에필로그 공감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향하여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


우리는 과연 사랑을 충분히 주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관심을 보일까? 우리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들의 대답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공감이다. 공감은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고, 서로를 치유하거나 상처 입히는 인간관계의 원동력이다.


이 책은 사회 전체에 공감의 물결이 확산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공감은 사실상 신뢰, 이타심, 협동, 사랑, 관용과 같은 모든 사회적 가치의 근원이다. 범죄, 폭력, 전쟁, 인종 차별, 아동 학대,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 대부분이 공감에 실패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면 의사소통과 관계 유지를 비롯해 수많은 일 처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공감 능력의 부족은 또한 자폐증, 우울증,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같은 많은 정신 질환과 신경성 증상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기를 관찰하는 시간

공감의 뿌리를 찾아서

공감의 뿌리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아기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도록 한다. 1981년에는 최초의 학내 육아 시설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십 대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의 전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참여를 권할 때 함께 온 아기에 주목하곤 했다. 아기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붙이기 쉬운 법이다. 아기는 대화의 창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된다.


"그저 아기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맞이하는 거죠." 고든의 말이다. "우리는 부모 중 한 명과 함께 아기를 관찰합니다. 함께 공감하거나 감정 이입하는 것을 지켜보면 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현재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에는 별도의 아홉 가지 평가 과정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포함된다. 연구 결과, 프로그램 진행 후에는 괴롭힘과 공격성이 크게 줄어들고 서로 나누고 돕는 등의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군에는 과거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 피해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독해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전반적으로 이런 효과는 오래 지속되어 삼 년 후까지도 관찰되었다.


열일곱 살된 아이들에게 아기가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아기 소피아가 아이들을 향해 방긋 웃자, 교실에서 가장 무뚝뚝하던 남자아이가 저절로 입을 헤벌쭉 벌리고 따라 웃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반사 작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기가 웃으면 즐거워진다. 만일 아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두뇌 발달 과정에서 중 뭔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아기의 생존 본능이다. 만일 아기가 보호자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면 육아는 그저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아기는 계속해서 뭔가를 요구하기 마련인 데다 냄새나고 시끄러우며 까탈 부리고 귀찮게 한다. 부모는 계속해서 아기를 달래고 먹이고 입히고 보호해야 한다. 부모가 아기의 끝없는 요구를 받아 주도록 하려면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세상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느끼려 애쓴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감하면 세상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려 하며, 자신의 상황보다 그의 상황을 더 크게 느끼고 영향받는다. 동정은 공감과 달리 그의 상황을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그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우러나는 점에서 공감과 비슷하다. 이 개념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연민Pity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상대방에 대해for가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with 애석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감정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소개하고, 공감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와 다양한 장애 및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본다. 공감이 어떤 조건 하에서 발달하는지, 아기나 사회가 그런 조건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설명한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는 공감의 고통이 커도 왜 문제가 되지 않는지, 공감의 표현에는 어떤 사회적 영향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뇌와 스트레스 반응 체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유발하는지 알아야 한다.


첫 번째로 공감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게 해 주는 이 능력이 소피아 같은 아기에게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발달되는지 알아보자. 공감은 생물적 특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은 심지어 가장 원시적인 단세포 생물도 갖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이다.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능력은 자기와 같은 생물 종과 다른 생물 종을 구별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또한 공감의 뿌리는 처음부터 스트레스 반응 체제의 토양에서 형성된다. 이것은 메리와 소피아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엄마가 주의 깊게 돌본 아기는 관계 형성과 유지에 관련된 뇌 영역과 함께, 자신의 감정, 생각, 경험에 대한 반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자기 조절self-regulate 능력이 발달한다. 하지만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은 첫 경험은 항상 스트레스 요인 또는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공감 능력은 이런 과정을 거쳐 발달해 간다. 처음에는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느낌과 선천적 반응에 불과하지만, 점차 타인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유사성과 차이점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초기의 공감 능력은 정서적 전염에 가까워서 한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양상을 띤다. 한 아기가 울면 곧장 방 안의 모든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식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던 아이는 곧 자신과 타인의 몸을 구분하고 타인이 겪는 경험을 자신의 것과 분리해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모자 댄스가 선두에서 보조를 맞추며 이후 형성될 모든 인간관계의 형태와 색채의 원형을 만들어 낸다. 즉 공감 능력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며, 메리 고든의 표현대로 가장 먼저 보고 이해해야 하는 숙제이다.



얼굴에 털모반이 있는 아이

눈맞춤으로 시작되는 인간관계

제레미가 태어나자 분만실의 소란이 일순간 멈췄다. 출산의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산모 안젤라가 무슨 일이냐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곧바로 아기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기의 오른쪽 뺨은 시커먼 털이 가득한 커다란 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흉측한 점은 이름까지 흉물스러웠다. 털모반hairy nevus이었다.


이제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 얼굴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얼굴은 인간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며 공감에 필요한 데이터를 전달하는 주요 통로다. 단순한 미소만으로도 작은 신경 화학적인 보상이 주어진다. 즉 누군가에게 미소를 보내기만 해도 둘 사이에 작은 연결 고리가 생성된다. 웃음은 상대방의 눈을 보게 해 주고, 눈을 바라보면 진심으로 짓는 미소인지 그저 예의상 보내는 웃음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만이 진정한 기쁨을 주는데, 이런 신호는 얼굴을 마주해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제레미처럼 얼굴에 선천적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직접 얼굴을 마주한 웃음이나 눈 맞춤에 어려움을 겪는다. 제레미의 얼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머릿속에 저장된 얼굴 목록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무섭거나 역겨워하거나 공포감을 갖기 쉽다. 안면 기형인 아기를 만난 사람은 아무리 태연하려 애써도 대부분 첫인상의 충격으로 인해 사심 없는 미소를 보여 주지 못한다. 아기는 얼굴을 찡그리거나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보내는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는 감정 신호를 금세 알아차린다.


물론 신생아의 경우 이런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아기의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반면 제레미의 경우는 달랐다. 얼굴의 결점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마의 굳은 결심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아이의 생애 초기 경험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이 또한 평범한 거울 반사 반응이 되지 못했고, 결국 아이의 스트레스 처리 능력 발달을 저해했다.


스트레스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실 모든 배움의 과정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배운다는 것은 결국 새롭고 낯선 어떤 것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작은 스트레스 경험이 쌓이면 뇌는 점점 더 처리 능력이 발달해서 더 큰 스트레스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언제나 먹을 것이 주어지고 젖은 기저귀가 교체되며 엄마나 아빠가 금방 되돌아오면, 아기는 점차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조금만 참으면 곧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레미는 이런 연습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기에게서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안젤라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기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사라지면서 엄마는 곧 아기의 얼굴에 익숙해졌고, 진심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통의 엄마들이 하는 까꿍 놀이, 즉 분리와 재결합의 리듬감을 제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레미가 본능적으로 이 리듬감을 살리려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해도 엄마는 아이의 신호에 반응하지 않았다. 안젤라는 정말 말 그대로 언제나 오로지 아기만 바라보았다. 이런 집착은 아기가 기고 걷고 스스로 놀게 되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지나친 공감이 일으키는 역효과는 이미 학술적으로 확인된 현상이다. 한 연구에서 5~13세 아이들에게 고통받는 아이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부모와 강제로 떨어지거나 부당하게 처벌받거나 절름발이 아이가 계단을 올라가려 발버둥 치는 등의 비디오였다. 처음에는 영상 속 피해자의 고통이 커질수록 비디오를 보는 아이들의 집중도도 높아졌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떤 수준을 넘어서서 영상 속 피해자보다 자신의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자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 버렸고, 영상 속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대신 자신의 기분을 달래려고 애썼다.



나에게만 사랑을 주세요

개별적인 돌봄의 부재

유지냐는 두 살 반에 러시아 고아원에서 입양되었다. 브루스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유아기 방임 학대의 영향에 대해 언급한 후, 유지냐는 학교 개선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을 요청해 왔다. 오프라 쇼에서 소개된 방임의 극단적 사례들은 부모의 돌봄이 전혀 없이 방치되거나 동물처럼 키워진 야생 아이들에 대한 것으로, 전작 『개로 길러진 아이』에 실린 바 있다.


유지냐는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사회적 관계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년기의 방임은 분명 그녀의 정신에 극복해야 할 흉터를 남겼다. 만일 양부모가 이렇게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유지냐도 사람과의 공감 능력을 키우기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생애 첫 몇 해 동안 개별화된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이해해야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고아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그곳에서는 공감 능력이 결핍되는가? 이 문제를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르네 스피츠다. 스피츠도 관련 메커니즘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설의 아이들은 중요한 인간관계가 결핍되어 고통받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엇보다 부모 자식 간 결속감의 부재가 아이의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영아는 특별한 애착 관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정신적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스피츠는 아이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국 스피츠와 의견을 같이하는 또 다른 이론가 존 보울비는 부모 자식 간 애착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건강의 여러 측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의 차이는 놀라웠다. 다른 미묘한 수치는 차치하더라도, 사망률 하나만으로도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고아원에서 돌본 아기는 37퍼센트가 두 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지만, 엄마가 키운 교도소 내의 아기 중에는 사망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것이다. 개별화된 양육의 부재는 그저 건강에 해로운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상자의 삼 분의 일이 넘는 수를 죽음으로 몰아갈 만큼 치명적이었다. 이 엄청난 유아사망률은 현대식 공중위생이나 의료 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60년 전 개발 도상국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옥시토신은 엄마에게 어떻게 마법을 거는 걸까? 병원에서 분만 촉진을 위해 옥시토신을 부여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진다. 더 강력해지는 진통을 좋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옥시토신이 작용하는 곳은 뇌가 아니라 자궁이다. 산모의 경우,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편안해지면서 긴장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뇌의 옥시토신은 젖을 사출시켜 모유 수유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스트레스 체계를 억누르고 진정 효과가 있는 화학 물질을 분비한다.


대부분의 영아 유기는 출생 직후에 벌어진다는 사실에도 주의해야 한다. 엄마의 젖이 돌기 시작하면 아기를 버리는 일이 훨씬 줄어든다. 모유가 나오면 엄마의 뇌에 옥시토신이 넘쳐흐르고, 수유 과정에서 유대감 형성에 가장 중요한 반복적 접촉이 이어진다. 모유 수유 이후 벌어지는 영아 살해는 대부분 산후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영아 유기는 언제나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 후의 유기는 감정적 파탄을 야기할 수 있다. 수가 전하는 유지냐의 생모 갈리나의 이야기는 입양 과정에서 아기만 슬픔을 겪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유지냐의 생모는 함께 있던 내내 울기만 했죠……. 그녀의 가슴에는 정말 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을 거예요."


일단 유대감이 형성된 후 엄마와 아기가 이별하면 이들은 헤로인 금단 증상과 동일한 고통을 받는다. 짝과 떨어진 프레리 들쥐나 연인과 이별한 젊은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고통에는 극도의 불안감은 물론 망상증까지 포함된다. 많은 산모가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일어날 리도 없는 대재앙이 아기를 덮칠 것만 같은 기괴한 공포감을 느낀다. 이런 걱정이 매우 비합리적임을 인지해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눈앞에서 잠시만 안 보여도 즉시 찾아내 데려오고, 자고 있는 아기가 제대로 숨 쉬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이런 행동은 강박 신경증 증상과 유사하다. 또한 실제로 강박 신경증이 있었던 산모의 경우 옥시토신 수준이 높아지는 임신 기간과 출산 후 몇 달간 증세가 악화되는 소견을 보인다.



세상은 내게 너무 강렬해요

자폐 아동의 공감 능력

자폐증은 보통 공감 능력이 결손되는 장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공감 능력 문제가 이 장애의 핵심 증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물론 공감에 있어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공감 능력의 모든 측면이 동일하게 손상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측면은 더 고양되어 있을 수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으로 인해 어떤 공감 요소가 영향을 받는지, 이것을 뇌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알아내면 이 증후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감이란 무엇인지, 이것을 고양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폐증은 어떤 종류의 기술이나 흥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공학, 수학, 의학 전공 대학생은 자폐증이 있는 가까운 친척이 있을 확률이 문학 전공자보다 여섯 배나 높다. 영국 자폐증 협회에 의하면 협회원의 아빠나 할아버지가 이런 분야의 전문가일 확률이 일반인의 두 배에 달했다. … 자폐아는 지능이 낮은 경우도 있지만, 서번트 재능으로 알려진 음악, 수리 계산, 예술 등 특정 분야에 일반인에 비해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경우도 많다. 자폐증이 있는 장애아 중 일부에서 이런 능력이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 환자 대부분이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간절히 바란다고 생각해요." 샘은 말을 이어 갔다. "낯선 장소에 가면 무언가가 내 말문을 막고 굳게 만듭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당황스럽고 미칠 것 같은 모든 격렬한 감정에 노출됩니다."


"아주 미미한 신호만으로도 나는 미친 듯이 공감해 버린다. 어떤 방에 걸어 들어간 순간,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의 감정이 한꺼번에 물려든다. 실제로 이런 증상은 자폐증 환자나 자폐 스펙트럼 환자에게 흔하다. 문제는 쏟아지는 감정을 제대로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부하로 인해, 너무 많이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생긴다. 앞에서 보았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 수준이 저하되던 유치원생이나, 지나친 공감에 고통스러운 나머지 시한부 환자의 간호를 회피하는 간호사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자폐증을 공감의 결핍으로 규정할 수 없다면, 그럼 자폐증이란 무엇인가? 또한 유지냐같이 삶의 극초기에 방임된 아이들이 왜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이는가? 스위스의 연구자 카밀라와 헨리 마크램이 주창한 새로운 자폐증 이론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증상을 한데 묶어, 뇌가 공감 능력을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설명해 준다. 헨리와 이혼한 전처 사이의 아들은 고기능성 자폐증 환자다. 아들이 일으키는 몇 번의 공포 발작을 지켜보면서, 이들은 강렬한 세계intense world" 라는 이론을 도출해 냈다.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자폐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사회적 결함은 지나치게 높아진 공포감과 감각 이상으로 인한 이차적 증상일 가능성이 있으며, 반드시 뇌의 사회적 중추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자폐아가 반복적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학대받은 아동과 같을지도 모른다. 즉 스트레스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이다. 자폐아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위축을 경험하는 것은 감각의 과부하를 관리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사회적 자극은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복잡한 자극이다. 만일 큰 소음이나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참을 수 없다면, 유치원에서 어떤 기분이겠는가! 하지만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고 숨기만 하면, 뇌가 이것을 배울 기회가 없어진다.


샘은 자폐인이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주류 사회의 공감 능력 결핍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말한다. 음악, 수학,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자폐인이 대단히 많으며,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배런 코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스퍼거 증후군 증상을 보인 위인으로 아인슈타인과 뉴턴을 꼽는다. 둘 다 복잡계에 집착했고, 사회적으로 괴짜 취급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언어 발달 지체도 보였다.


자폐증 환자에게 발달 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뇌의 사회적 영역이 손상되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한 사회적 자극에 노출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이들의 삶은 모두에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들의 증상이 그냥 자폐증이라는 장애로 남을지 정상적 스펙트럼에 들어가게 될지는 다음 문제다. 방임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사회적 경험이 필요하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제대로 사용해 주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현대인의 사회적 근육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매력적인 소시오패스

반복적인 애착 박탈이 가져온 잔인성

라이언은 유지냐처럼 어린 시절 고아원에 방치되었던 적도, 대니처럼 사기꾼 부모 손에서 자란 적도 없었고, 두들겨 맞거나 굶주리거나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전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부모의 안정된 보살핌 속에 성장했고 어떤 발달 장애나 진단 가능한 정신병도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지능도 평균 이상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가난에 찌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라이언은 브루스가 그동안 만나 왔던 살인자들은 물론 그 어떤 소시오패스보다 더 냉혈한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소녀를 강간하고 공개적으로 굴욕감을 주고는,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을 정도로 공감 능력이 부족해지고 체면이나 수치심 같은 감정이 없어지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라이언은 단지 나쁜 종자인 것일까?


소시오패스는 정신 의학상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나 공감 능력과 양심이 완전히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 진단은 받는데, 이들은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다양한 그룹 중에서도 최극단에 위치한다. 연쇄 살인범은 모두 소시오패스라 할 수 있지만 살인자 대부분은 소시오패스가 아니다. … 하지만 소시오패스는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라이언이 바로 그랬다. 자기 자신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소시오패스에게 다른 사람이란 그냥 물건이나 다름없다.


오, 바로 이것이 문제였군. 브루스가 생각했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기가 생후 8주가량 되었을 때, 아만다는 아기가 자신보다 유모를 더 좋아하고 유모가 얼러 주면 더 잘 반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모를 보는 아기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아기는 유모와 있을 때만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아만다에게는 그다지 열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만다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아만다는 생각했다. 이건 잘못된 거야. 아기의 진짜 엄마는 나란 말이야.


그래서 그녀는 아기와 지나치게 친해진 유모를 해고했다. 다시 한 번 후보자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남편과 상의하고, 심사숙고했다. 결국 가장 좋다고 생각한 유모를 선택해서 고용했고 아만다는 다시 자신의 바쁜 사회생활로 돌아갔다.


누군가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면 언제나 상대방은 곧 떠나 버렸다. 아이는 이런 관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안정감도 편안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이전 유모를 다시 보고 싶다고 반항하고 항의하고 울고 비명을 질러도 언제나 무시당했다. 이전 유모는 아이가 자기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부터 라이언의 뇌에서는 인간관계를 관장하는 부분의 발달이 지체되었고 기능 장애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 어떤 유전적 영향이 더 있었을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인 애착 관계의 소실은 아이의 뇌 발달을 손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생애 초기에 받은 양육 방식 중 최소한 일부는 유전자에 각인된다. 유전자 자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님을 주의하기 바란다. 발달 과정에서 유전자 중 어느 것을 활성화시키고 어느 것을 사장시킬지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우리도 부모가 되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엄마, 아빠가 했던 방식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사람의 경우는 쥐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아주 다르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이것을 양육 방식이 다른 습관보다 더 바꾸기 힘든 한 가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엄마처럼 변해 간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은가? 아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키우려면 뭔가 어색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라이언의 부모는 아기의 유모를 수시로 바꾸는 행위로 인해 라이언에게 적게 핥아 주는 환경을 조성했다. 당연히 이런 스트레스 상황이 아이의 공감 능력을 저하시켰을 것이다. 정상적인 애착 관계 형성에 실패하자 아기의 옥시토신 시스템에 변형이 생겼다. 아기는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데에서 평온과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보살핌의 결핍은 곧바로 쾌락, 소망, 동기 부여를 관장한은 핵심 중추에 영향을 주었다. 미니의 연구에서는 생애 초기의 환경에 따라 쥐의 보상 체제에 뚜렷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뇌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때로 이것은 라이언이나 유지냐의 사례와 같이 매우 파괴적인 양상을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옥시토신, 도파민과 쾌락 사이의 연결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 연결 고리로 인해 사람은 서로 사랑해 주고 사랑받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내가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이 나를 기쁘게 해 주는 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생애 초기의 애착 관계 결핍으로 인해 여기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면 사회적 상호 관계에서 매력을 느끼거나 즐거움과 평온을 얻기 힘들어진다. 이 문제는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얻는 쾌락의 정도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얼마나 좋아할지 결정한다.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크든 작든 사실상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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