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어른이 되다!”
아이와 부모 사이, 현대 가족 관계에 대한 혁명적 탐구
육아와 행복에 대한 잘못된 신화의 진실을 밝히다!
현대 가족의 역설에 대한 해답을 찾아 떠나는 도발적인 여행이다. 2010년 뉴욕 매거진 커버스토리로 발표된 분석기사가 150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수년간의 추가 조사와 연구 끝에 2014년 1월에 나온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저자가 2014 TED콘퍼런스의 마지막 날 강연에 오르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결국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추적하는 이 책은 역사, 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철학으로 풀어내는 가족 관계에 대한 방대한 통찰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시끄럽고, 기대와 후회가 반복되고, 상실과 사랑이 교차하는 가슴 뭉클한 우리의 사연들이 소개된다. 육아와 행복에 대한 잘못된 신화의 진실을 밝히는 책이자, 현대 부모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고, 사랑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 저자 제니퍼 시니어
제니퍼 시니어는 프리스턴 대학교 인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뉴욕 매거진’에서 20년 이상 정치와 사회 분야의 굵직굵직한 인물기사와 커버스토리를 다뤘다. 1997년 전문 저널리즘 단체인 Newswomen’s Club of New York이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프런트페이지 상을 받았고, 뛰어난 업적을 세운 공로로 2002년에는 GLAAD 상을, 2011년에는 에릭슨 상을 받았다. 그녀의 기사는 매년 분야별로 가장 잘 쓰인 글들을 모아내는 The Best American Political Writing에 수차례 수록되었고, 2006년 당시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를 다룬 인물기사 ‘Dreaming of Obama’는 ‘뉴욕 매거진’의 지난 40년간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인 『뉴욕 스토리』의 대미를 장식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고정 기고자이며, 미국 공영방송, CNN, Today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 역자 이경식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연극 ‘춤추는 시간 여행’ ‘동팔이의 꿈’, 텔레비전 드라마 ‘선감도’ 등의 각본을 썼다. 옮긴 책으로 『승자의 뇌』 『결핍의 경제학』『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소셜 애니멀』『스노볼』『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오바마 자서전』 등이 있으며, 저서로 사회 에세이 『청춘아 세상을 욕해라』, 경제학 에세이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역사 에세이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평전 『이건희 스토리』『안철수의 전쟁』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부모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1장 나의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둑맞은 잠 | 과잉의 대장 | 몰입 | 분열 | 놓쳐 버리는 것들?
2장 조급한 엄마, 야속한 아빠
여자의 일 | 마감 시한, 쪼개지는 시간 | 고립감 | 명령 불복종 | 침대 속 이방인 | 남자의 일 | 나의 시간
3장 소박한 선물
미친 짓, 진짜 미친 짓 | 놀이하는 인간 | 어린 철학자들 | 사랑의 힘
4장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육 전쟁 | 어린이의 짧은 역사 | 아이의 미래 | 경쟁력 | 호랑이 엄마들 | 싱글맘의 시간 | 새로운 아빠의 신비 | 고립된 아이들 | 아이의 행복 | 도둑맞은 저녁 식사
5장 사춘기 아이들
엇갈리는 가족 | 배은망덕한 아이들 | 배우자가 미워질 때 | 청소년의 뇌 | 가족의 역설 | 아이의 사생활 | 익숙한 공포 | 후회의 순간들 | 행복한 아이로 키운다는 것
6장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쁨과 행복 |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 기억하는 자아 | 우리는 그렇게 성장한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부모로 산다는 것
나의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둑맞은 잠
오전 8시에 어떤 집의 현관에 도착할 때의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얼굴만 보고도 그날 아침과 전날 밤에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제시를 ECFE에서 처음 만나고 몇 달이 지난 뒤에 사우스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그녀의 집 현관 앞에 섰다. 토목기사인 그녀의 남편은 출근한 지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지금 집에 있는 제시는 지쳐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났거나 늦게 잠들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늦게 자기도 했고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당신이 도착할 때까지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제시는 내 뒤에서 현관문을 닫으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다섯 살 벨라와 네 살 에이브는 집 안 여기저기를 유쾌하게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런 모습에 엄마는 더욱 지친 기색이다. 그리고 갓난아기인 윌리엄은 2층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기가 일찍 일어났거든요. 다른 두 애도 일찍 일어났고요. 그런데 아기가 동물 인형에다 토했지 뭐예요."
정확하게 바로 그 시점에 에이브가 침대에 오줌을 쌌다.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것은 침대 시트를 갈고 에이브를 씻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또 그때 윌리엄이 식탁에서 주스를 어마어마하게 게워내기 시작했다.
"이때가 7시 37분이었죠. 어떻게 그 시각을 정확하게 기억하느냐하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때 했거든요"
이것은 왜 그녀가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지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녀가 늦게 자야만 했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저녁 시간은 제시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녀가 하던 일을 오늘 오후까지 마감해야 한다. 게다가 또 다른 걱정거리 하나를 초조하게 안고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조만간에 외곽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이주할 동네에는 제시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 걱정을 하느라 그리고 일을 하느라 그녀는 새벽 3시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부모들
새로 부모가 된 사람들이 받는 여러 가지 고문 가운데서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수면 부족이다. 그러나 곧 부모가 될 사람들은 아무리 이런 사실을 경고해도 첫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이 사람들이 수면 부족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이따금씩 잠을 설치는 것과 지속적으로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부분 수면 박탈 분야의 전문가인 심리학자 데이비드 딩어스는 지속적으로 수면 부족을 겪는 집단은 이 문제를 상당히 잘 제어하는 부류와 이 문제로 허물어지는 부류 그리고 이 문제에 재앙적으로 반응하는 부류,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곧 아기의 부모가 될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기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아이가 태어나고 난 다음에야 안다는 데 있다.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든 간에 (딩어스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특별히 차이가 없는 고정된 특징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데), 대니얼 카너먼과 그의 동료들은 수면 부족에 따른 정서적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려고 별도로 연구 조사를 했다. 이 연구진은 텍사스의 엄마 909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서, 엄마들이 빨래를 하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낮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로 그 사람들이다. 하루에 여섯 시간 이하로 잠을 자는 여자들이 누리는 행복감은 일곱 시간 이상으로 잠을 자는 여자들에 비해서 질적으로 다르다. 이 두 집단이 누리는 복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연봉 3만 달러 이하의 소득을 버는 집단과 9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버는 집단 사이의 복지 차이보다 더 클 정도다.
보닛은 또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높으며 자제력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사실은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부모로서는 특히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2011년에 심리학자 로이 바우 마이스터와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존 티어니는 『의지력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펴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인용한 가장 흥미로운 연구 가운데 하나는, 하루에 200명이 넘는 피실험자들을 추적한 뒤에 내린 다음의 결론이다.
"사람들이 의지력을 더 많이 소모하면 할수록 이 사람들이 다음 차례의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나는 이 결론을 보고 한 가지의 의문을 떠올렸다. 부모가 잠을 자고 싶은 충동과 싸우느라고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치면, 부모는 이 충동에 맞서서 싸우는 대신, 나중에 어떤 충동적인 유혹에 쉽게 굴복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대답은 고함을 지르고자 하는 충동이다. 엄마나 아빠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인 자기 아이를 큰 소리로 꾸짖는 걸 유쾌하게 여길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한다. 제시도 원래 자신은 천성이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다고 고백한다.
"맞아요, 나도 고함을 지를 거예요. 그러고는 고함을 질렀다는 사실을 자책하면서 나 자신에게 몹시 화를 내겠죠. 왜 나는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에요."
조급한 엄마, 야속한 아빠
제시 톰슨이 참석하는 ECFE 강좌는 사람의 수는 적었지만 다들 집중했고 모임의 분위기는 일사분란했다. 이에 비해서 앤절리나 홀더가 참석하는 강좌는 모인 사람의 수도 많았고 늘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여자들은 서로가 겪는 갈등이나 사정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라서 쉽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번갈아 가면서 격려하고 서로의 말을 자르면서, 앞서 말한 사람의 이야기 위에 또 다른 것을 보태서 전체 이야기를 아주 높이 쌓아 올렸다. 이 모임의 에너지와 선의에는 분명 다소 허풍과 과장도 섞여 있긴 하지만, 이런 우호적이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모임의 참석자들이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서문에 등장했던 앤지는 스물아홉 살이며 그 모임에서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또한 이따금씩 남편이 함께 참석하기도 하는 몇 안되는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다. 비록 그녀의 남편 클린턴은 낮에만 참석하긴 했지만….
"지난 두 주는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최악의 두 주였어요. 엘 리가 위장염에 걸려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치다꺼리를 내가 다 해야 했거든요.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서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청소하고, 잠은 자지도 못한 채 일하러 나가고…."
거기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 우리 두 사람 사이 관계는 지금 끔찍할 정돕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내가 막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는 걸 몰라요. 어제 이 사람이 자기도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아직도 내가 챙겨야 할 그 모든 일들이 그렇게나 많이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 내가 그랬어요. 정말?"
마침내 앤지는 소리를 내어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마디 더 불쑥 뱉었다.
"할 수 없지 어떡해요, 내 직업이 간호사니까요."
그 말은 회심의 한 방이었다. 자신의 자의식을 다치지 않으려고 정교하게 고안된 그 발언은 매우 효과가 좋았다. 여러 여자들이 그 말에 폭소를 터트렸다. 앤지도 그 여자들을 따라서 함께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남편은 자기도 충분히 일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자기는 한 주에 닷새, 오전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을 하고, 또 쓰레기도 자기가 갖다 버린다고…. 또 자기는 눈을 치우고 정수기 관리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자기보다 아이들 돌보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위기의 부부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나 여자 모두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오랜 습관을 갑작스럽게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 다음으로 가장 극적인 결과는 결혼생활 자체의 변화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리적인 이득에 대한 기존 관념에 최초로 정면으로 도전한 심리학자 르매스터스가 1957년에 쓴 유명한 논문 「위기의 부모」가 엄마와 아빠를 개별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쌍으로 묶어서 바라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르매스터스는 새로 아빠 엄마가 된 사람들 가운데 83퍼센트가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9년에 네 명의 연구자가 어떤 대규모 연구 조사에서 수집한 132쌍의 자료를 분석했는데, 이들 가운데 약 90퍼센트가 첫 아기가 태어난 뒤로 결혼생활의 만족도가 감소하는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2003년에 세 명의 연구자가 자식과 결혼생활 사이의 상관성을 다룬 100개 가까운 연구 조사를 분석했는데, "갓난아기를 돌보는 여자들 가운데 겨우 38퍼센트만이 결혼생활에서 평균보다 높은 만족도를 느끼는 반면, 아이가 없는 여자들 가운데서는 평균 이상의 만족을 경험하는 비율이 무려 62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족 및 사회적 쟁점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민간 연구소인 미국적 가치 연구소는 편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보다 양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하는데, 이 말이 맞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연구는 평균적으로 결혼생활의 만족도 곡선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뚜렷하게 내리막으로 치닫는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부부는 흔히 자기들 사이에 태어날 아이를 자기들 결혼생활의 질을 높여 줄 존재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부부 사이에 새로 편입시키는 일이 부부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또한 이 관계를 영속시키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또 이 갈등이 점점 심화될 가능성은 훨씬 높다.
소박한 선물
처음 샤론 바틀릿과 같은 강의실에 있을 때 나는, 비록 그녀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두 배 가까이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으며 있는 그대로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리도 ECFE 강의실 긴 탁자의 맨 끝자리를 선택해서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줄곧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남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예정된 모임 시각이 10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마침내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을 통해서 나는 그녀가 세 살배기 손자 캐머런을 혼자서 키우는 할머니임을 알았다. 그녀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한 말이 워낙 감동적이어서, 나는 몇 주 뒤에 제시와 앤지 및 클린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집으로 방문해도 될지 물었다. 답장이 바로 그날 왔다.
"그럼요. 나는 손자를 키우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우리 자식들이 남긴 아이들을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비록 이 일이 우리가 진작부터 생각하던 노년의 계획은 아니지만, 이 일에는 나름대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일은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젊고 튼튼한 사람이라도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에 세 아이를 키웠으며 고정된 수입에 의지해서 혼자 살아가는 예순일곱 살의 할머니라면 어린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회과학 저작들은 샤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은 아이가 없으면 훨씬 더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포착하는 게 있고 포착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리고 사회과학이 온전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날 우리가 함께 갔던 물놀이장에서 일어났다.
마노 파크 스플래시 패드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저 콘크리트로 만든 물놀이 바닥 분수장이다. 수수한 원색들로 색칠을 했고, 수수한 스프링클러 시스템과 빙빙 돌아가는 물살을 만드는 어떤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낙원이다. 그리고 이날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어른도 여기에서 어린아이가 된다. 그런데 캠은 도착하자마자 물 분사기 사이로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깔깔거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샤론 역시 그런 캠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녀의 얼굴에는 함박 미소가 퍼진다. 무척 힘이 들고 무릎이 아프고 예순일곱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미소는 바닥 분수장에 있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의 힘
장차 성장해서 캠의 엄마가 될 미셸을 샤론이 처음 보았을 때, 태어난 지 겨우 다섯 달밖에 되지 않았던 그 아이는 몸무게도 3.6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다. 입양 기관에서 샤론에게 보여 줄 당시 이 아기는 발달 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다. 지능이 평균 이하이던 이 아기의 생물학적인 엄마가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샤론은 아홉 명의 다른 아이를 위탁받아서 돌볼 때와 마찬가지로 이 아기를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샤론은 미셸이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이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딸은 고등학교를 끝내 졸업도 하지 않았고 숱하게 많은 남자친구들과 어울려서 가출하기를 밥 먹듯 했다. 심리치료사들은 미셸의 이런 행동을 애착 실패라는 용어를 들어서 설명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샤론이 미셸에게 많은 것을, 기본적인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미셸이 믿어 주기 까지는 아주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답니다.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철저한 불신 때문에 수많은 저항과 시련이 있었어요."
미셸은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까지 툭 하면 가출했다. 한 번씩 나가면 몇 달이 지난 뒤에야 돌아오곤 했다. 미셸이 돌아오기 전까지 샤론은 이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샤론과 가까운 사람들은 샤론의 인내에 놀랐다.
"사람들이 나한테 그럽디다. 미셸은 번번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데 왜 미셸을 자꾸만 받아 주느냐고요. 그러면 내가 그랬습니다. 내가 걔 엄마니까 그렇죠, 라고요. 내가 그 아이를 왜 사랑했는지 이유는 말할 수 없어도, 나는 그 아이를 사랑했어요, 언제나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육전쟁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사회학 교수이자 ECFE의 자문위원인 윌리엄 도허티는 1999년에 과도한 일정에 시달리는 아이들이라는 신조어를 처음 만들었다. 이 신조어로 그는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마치 작전사령부의 참모요원 직책이라도 맡게 된 것처럼 바쁘고 빡빡한 학습 및 과외 활동에 시달리게 된 현상을 매우 적절하게 묘사했다. 이런 과도한 일정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 왔다. 비판은 주로 그런 과도한 일정이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자유와 그런 게으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을 아이들에게서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친 계획과 열정이 아이들의 부모에게 끼칠 수도 있는 해로움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 부모야말로 자기를 포함해서 아이의 일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따라서 과도한 일정에 시달리는 아이들이라는 문제에 관한 한 공동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힘이 엄마와 아빠를 이렇게 과도한 지경으로까지 몰아붙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부모들 자체가 과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모든 과도한 일정 뒤에는 엄마나 아빠가 있다. 이들이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서 티볼에서 아이스스케이팅 그리고 체스 교습까지 받게 하며, 많은 경우에는 자기 아이와 함께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하고 심지어 릴라이언트 스타디움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어떤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서 풀타임 직장을 그만뒀어요. 시간제로 일하는 일자리를 가지려고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나는 도무지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어요."
사춘기 아이들
엇갈리는 가족
장차 부모가 될 엄마와 아빠가 부모로서의 기쁨을 상상할 때에는 아이들이 나중에 사춘기를 지나게 될 일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사춘기는 부모 입장에서는 재미없기로 유명한 양육의 한 단계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사춘기 아이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음탕한 짓거리 하기, 부모와 조상 욕하기, 물건 훔치기, 서로 싸우기 같은 것밖에 없다."고 했으며,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노라 에프론도 사춘기에는 애완견을 한 마리 집에 들여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당신이 바라보고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가 집에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아름답던 과거의 미소는 사라지고 없다. 아이의 얼굴에 뺨을 부빌 때의 그 따뜻함도 없고 공받기를 할 때의 그 유쾌함도 없다. 모두 사라지고 없다. 이런 것들 대신에 새벽 5시의 하키 연습과 삼각법의 미로 속 모험, 한밤중에 불쑥 들려오는 벨소리와 함께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지겨운 호출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사춘기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다 그렇게 말썽을 일으킨다. 그런데 문제는 왜 사춘기 아이들이 예컨대 일곱 살 먹은 코흘리개보다 더 많은 고통과 번민을 부모에게 안겨 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학자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설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사춘기는 현대적인 개념의 어린이 존재라는 역설(즉, 쓸모는 없지만 소중한 존재라는 역설)이 육아의 다른 어떤 단계보다도 강력하게 존재감을 주장하는 시기다. 아이가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기에 특히 어렵고 까다로운 시기다.
배은망덕한 아이들
부모를 거부하는 아이들
부모는 처음 자기 아이의 보호자이지만 나중에는 자기 아이의 탈옥을 감시하는 교도관이 된다. 그래서 아이로부터 지겨워 죽겠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 신세가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얼마나 비판적인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이런 내용은 엘렌 갈린스키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7학년부터 12학년의 고학년 아이들은 저학년 아이들에 비해서 자기 부모에게 상당히 낮은 점수를 주었다. 공부와 관련해서 도움을 받는다, 화가 났을 때 기댈 수 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족의 전통을 세운다, 아이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참는다의 항목에서 고학년 아이들로부터 A라는 점수를 받은 부모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배은망덕은 양육의 세계에서 이미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가 되었다. 사춘기에는 이런 배은망덕에 경멸이라는 양념도 함께 덧붙여진다. 부모로서는 이런 상황이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자식을 자기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온 부모 세대라서 더욱 그렇다. 메이의 엄마인 게일을 드어드리의 집에서 만나고 여러 달 지난 뒤에 다시 만났다. 게일은 자기가 아이들이 어릴 때 보모에게 맡기도 외출한 횟수는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번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게일과 그녀의 여자 형제들은 어렸을 때 툭 하면 보모 손에 맡겨졌다. 하루 온종일 정도가 아니라 몇 주씩 그렇게 맡겨진 적도 수두룩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게일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떤 건지 아세요? 그때 우린 진짜 행복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보다 많은 걸 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온 것이다. 그녀의 딸들은 뉴욕의 지하철을 어른 없이 혼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컸다. 큰딸인 메이는 엄마에게 까칠하게 굴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사나워졌다. 게일은 온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에서도 피할 수 없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쁨과 행복
우리는 지금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 시대에 살고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제이기도 하다. 행복은 또한 긍정 심리학이라는 신생 학문 분야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 긍정 심리학은 무엇이 주변의 모든 것을 풍성하게 만들어서 인생을 멋지게 만드는지 그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을 얻는 것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혹은 목적이나 심지어 운명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엄마들이 나에게 말했듯이, 행복은 범위가 매우 넓어서 절망적일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 단어다. ECFE 강좌 모임에 우연한 기회로 참석했던 메릴린이라는 할머니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내가 들어본 대답 가운데서 가장 퉁명스러운 반문을 했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행복과 기쁨을 구분해야 합니까?"
이 반문에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메릴린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좀 더 피상적인 감정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지 뭐예요. 아, 그래도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뒤에 메릴린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울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도대체 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제 와서야 나는 그걸 알겠어요."
의미, 기쁨 그리고 목적은 매우 다양한 원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오로지 아이들에게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메릴린이 했던 보다 기본적인 관찰이다. 즉,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는 그런 감정들을 온전하게 모두 아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기와 처음 눈을 맞출 때의 그 신비로운 감정은 십여 년이 지난 뒤에 이 아이가 커서 얼음판에서 더블악셀 점프를 완벽하게 뛰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자랑스러움과 다르다. 또한 이 자랑스러움이 추수감사절에 멀리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웃음꽃을 피울 때 느끼는 소속감이나 따뜻함과도 다르다. 누구든 이런 수많은 감정들을 따로 하나하나 수치로 계량화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으며, 나로서도 이런 노력이 가지는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숫자는 그저 숫자이고 그래프 상의 어떤 곡선이나 점일 뿐이다. 숫자는 우리가 느끼는 어떤 것의 정도를 반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의 실체를 생생한 입체감으로 구현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기쁨과 같은 감정은 우리의 기본을 드높이는 만큼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의무와 같은 다른 것들은 우리 삶의 배경으로 소리 없이 흐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더 힘들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반적인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 주며,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보다 많이 공명하도록 해준다.
실제로 누군가는 부모가 되어 부모 노릇을 하면서 살아 보면 행복에 대해서 우리가 가진 집착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수 있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이런 지박을 재평가하게 되고, 어쩌면 행복이 무엇일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을 재규정하게 된다.
우리가 오랜 세월 자녀를 키우면서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힘들게 나아갈 때, "우리는 진짜 제대로 된 구덩이를 파고 있는가?" 혹은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물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것들
자, 그럼 이제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그런데 사실 메릴린만 자기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단어를 사용했던 게 아니다. 실제로는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 조지 베일런트만큼 철저하고 섬세하게 기쁨을 탐구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베일런트는 직업적으로는 의사이고 기질적으로는 시인이자 철학자이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그랜드 연구를 수십 년 동안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랜트 연구는 1939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의 삶의 모든 측면을 샅샅이 추적하면서 자료를 수집해 왔다. 이 연구에서 베일런트는 순간순간의 행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랜트 연구에 참가하는 연구진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었다.
"이 사람들의 인생은 과학으로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이었고, 숫자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뭐라고 진단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고, 잡지의 논문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한 것이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