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역자: 하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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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들
   
15000
2013�� 06��



■ 책 소개
안하무인의 아이들 앞에서 절절매던 지난한타협의 시간은 끝났다!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 계발이라는 명목하에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어떤 요구를하든지 다 들어주었던 미국 엄마, 어느 날 저녁 프랑스 친구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육아’에 충격을 받는다. 프랑스식 육아가 무엇인지 수많은프랑스 친구 및 지인들로부터 전수받은 다양한 테크닉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이런 것들을 적용시켜 ‘전형적인 미국 아이’였던 자신의 두 딸이어떻게 변했는지도 상세히 담고 있다. 

자신이 모든상황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는 점, 모든 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점 등 저자의 아이들은인생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몸으로 익혀나가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었고, 아이의 인생 전반에 밑거름이 될수 있는 것들까지 얻었다고 한다. 

■ 저자 캐서린 크로퍼드
남편, 두 딸과 함께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작가 겸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유명 육아 관련웹사이트 Babble.com과 What they play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CBS와 FOX 등 미국의 주요 방송사 육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일하는 엄마를 위한 육아 조언을 제공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French Twist: An American Mom’s Experiment inParisian Parenting』 등이 있다.

■ 역자 하연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를졸업했다. 2012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로마 멸망사』『엘리자베스 1세』『카이로』『대영박물관이 만든 이집트상형문자 읽는 법』『드라큘라, 그의 이야기』『낙천주의 예술가』『부끄럼쟁이 바이올렛』『암탉 데이지, 집으로 돌아오다』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뜯어먹는 영어일기』가 있다.

■차례
Chapter 1. 왜 나만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Chapter 2. 판이하게 다른 프랑스엄마들
Chapter 3. 병사는 사령관 하기 나름
Chapter 4. 가정의 중심은 어른
Chapter 5. 문제도 답도식탁에 있다
Chapter 6. 자율과 독재의 미학
Chapter 7. 자라면서 익히는 삶의 품격
Chapter 8. 달라진우리 아이들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왜 나만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나는 뉴욕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에 산다. 전 세계 헬리콥터 부모들의 총사령부쯤 되는 곳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좋지만 늘 아이들을 바라보고,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들 문제에만 집중하고, 분석하고, 고민하고, 매달리고, 아이들에게 백기를 드는 요즘 부모들의 세태가 절대 옛날 방식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렇게 자잘한 부분까지 일일이 부모와 상의하고 그럴 때마다 칭찬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기타 멘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만한 인정을 해주지 않을 경우 매우 힘들어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문제를 대화로 풀어내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감정을 표현하라고 끊임없이 독려한다. 이를 테면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식이다. "리엄, 테이블에 왜 올라가고 싶니?" "코코, 저 껍질콩에 왜 화가 났는지 얘기해보렴." 이 동네 사람들은 아이를 어른과 똑같이 존중하고, 좋고 싫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프랑스인 친구 루시 뒤랑이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순종적인 그집 아이들은 부모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정말 조용해졌다. 식탁을 차리라고 할 때도 어르고 달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저녁상에 나온 음식 중 먹기 싫은 음식은 그냥 안 먹었다. 그렇다고 그 부모가 다른 음식을 내밀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모들은 식탁에 남아 와인을 마셨고, 아이들은 거실로 가서 놀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막내 대프니가 내 관심을 끌기 위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소리쳐 부른 것이다. 이때 아주 작은 자극만 더해져도 바닥에 드러누워 세차게 발길질을 해댄다. 나는 평소처럼 즉각 대프니에게 달려가는 대신 루시를 쳐다보며 조언을 구했다. 루시가 내 팔을 잡고서 프랑스 엄마들은 익히 알고 있는 마법의 한마디를 건넸다. "피가 났다면 모를까, 절대 일어서지 마."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내가 달려와 법석을 떨어주지 않자 대프니는 목청을 조금 더 높였다. 그러더니 울음을 터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게 뚝 멈추고는 다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루시가 아이를 다루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아이들은 반항하며 눈을 흘기거나, 문을 쾅 닫거나, 벽과 바닥을 두들기거나, 음식을 던지거나, 조르는 법이 없었다. 부모의 말에 대드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대프니가 크레용으로 복도 벽을 온통 뒤덮어버렸을 때 우리 부부는 어째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육아 서적은 대부분 아이를 야단치면서 특정 사건에 너무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한다. 한 가지 잘못을 놓고 지나치게 법석을 떨면 아이가 그 효과를 기억해 훗날 관심을 끌려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프니가 아파트 전체를 크레용으로 칠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생각하는 자리에 서 있으라고 해야 하나? 따끔하게 경고를 해야 하나? 아직 세 살도 채 되지 않았으니 장난감을 가지고 놀 권리를 박탈해봤자 별 의미도 없을 것이었다. 루시에게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부엌에 가서 스펀지와 비눗물을 가져와. 그런 다음 애를 의자에 앉히고 낙서를 직접 문질러서 지우게 하면 돼." 믿을 수가 없었다. 낙서를 직접 지우게 한다고? 남편이 힘껏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 크레용 낙서를? 이어 루시는 대프니가 스스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깨닫고 낙서 지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을 때까지 아주 잠시만 시키면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치란 있을 수 없다는 루시의 시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캐서린, 총사령관은 결국 너야." 미국 부모들이 아이들의 감정과 정서에 대해 끝도 없이 고민하는 동안, 프랑스 부모들은 말대꾸하지 않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좌지우지하는 총사령관이 될 수 있다. 남편을 든든한 부사령관 삼아 아이들로부터 집, 놀이터, 슈퍼마켓, 더 나아가 우리 삶의 통제권을 탈환할 수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의 삶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다. 아니, 아이가 생기기 전의 삶과 비슷하되 더 향상된 버전이 될 것이다.


어느 부모든 혼자 있는 시간은 꼭 만들어야 한다. 미국 대도시 놀이터를 돌며 관찰한 결과, 아이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부모는 뼈 빠지게 일하면서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적을 불문하고, 부모가 피곤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될 수 없다. 나는 현명한 프랑스 부모들을 본받아 뭔가 조치를 취하고 변화를 일으켜보기로 했다.


우리 애들도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의 성격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첫째 우나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이디스 워튼을, 둘째 대프니는 코미디언 존 벨루시를 닮았다. 우나는 차분한 타입이다. 예리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생각이 깊었다. 대프니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자면서도 움찔거리다가 눈을 뜨자마자 쏜살같이 우리 침대로 달려온다. 활력이 넘치고 욕심도 많고 시끄럽다. 아이들은 성향별로 독특한 과제를 부모에게 안긴다. 우나는 스스로 부모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눈을 치켜뜨는 등의 건방진 행동을 놀랄 만큼 일찍 시작한다. 정의감이 투철한 워튼형은 비도덕적인 상황을 보면 이를 바로잡으려 하거나 최소한 지적이라도 하려 한다. 이런 아이에게 윗사람을 존중해야 하며, 어른들은 보통 꼬마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대프니는 불쾌한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쇼핑몰이나 체육관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목청이 더 커진다. 벨루시형은 정직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일단 거짓말을 해도 무사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는 경향이 짙다. 지나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숨겨둔 과자가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혹시 아이가 삐뚤어지려는 전조는 아닌지 어쩔 수 없이 염려가 된다.



판이하게 다른 프랑스 엄마들

프랑스 엄마들이 임신 중 접했던 전문의의 조언이나 출산 서적 내용에 대해 들어보면, 프랑스와 미국은 출발점부터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태아 중심적이다. 태아의 건강이 중요하긴 하지만, 좀 지나치다 싶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첫 임신 초기에 남편과 나는 곧장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수돗물도 의심! 페인트도 의심! 플라스틱 식기는 다 갖다 버리고! 도우미는 심층 검토! 비타민도 심층 검토! 갑각류, 조개류는 먹지 말고! 선반도 다 없애고! 꼽자면 한이 없다.


임신과 육아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저자는 아마 로랑스 페르누일 것이다. 그녀의 책 『세상에서 가장 많은 부모들이 보는 임신 출산』과 『세상에서 가장 많은 부모들이 보는 육아』는 프랑스에서만 수천만 권이 팔렸다. 1956년 초판이 나온 이래 수차례 개정과 증보를 거쳤지만 기본 토대, 특히 임신 중에도 외모를 가꿔라, 신선한 버터를 먹어라, 가슴을 탱탱하게 유지해라 등과 같은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프랑스 엄마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얻게 된 결론은 프랑스인들이 스스로를 가꾸고 돌보는 데 있어 전문가 수준이며,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손길을 점점 더 필요로 하게 되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자국 산모들에게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프랑스 여성들은 출산 뒤 골반저 근육 교정 트레이닝을 10회 무료로 받을 수 있고, 배를 임신 전 상태로 되돌리는 복부 테라피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 미국인 친구 라모나는 운 좋게도 프랑스로 이주한 직후 애가 들어섰다. 그녀가 파리의 한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보려고 피팅룸 앞에 줄을 서 있을 때 나이 지긋한 프랑스 여성이 그녀를 다그쳤단다. "왜 줄을 서 있어요? 임신했잖아요! 맨 앞으로 가야죠! 댁의 권리예요! 법에도 그렇게 돼 있어요!" 하고 말이다. 라모나는 그제야 임신부인 자신이 줄을 서서 기다림으로써 사람들의 질서 체계에 혼란을 일으켰음을 깨달았다. 라모나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줘. 내 임신 카드 유효기간이 이제 넉 달밖에 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최대한 써먹을 거야. 남들은 구매 수량이 일곱 개로 제한된 품목을 열두 개나 사도 뭐라 하지 않고. 백화점에서 제일 큰 피팅룸은 내 차지야. 언제든지 44사이즈 계집애들 따윈 밀쳐내고 줄 맨 앞으로 갈 수 있어. 난 임신부니까!" 나는 만삭의 몸으로 뉴욕의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다가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울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배가 불룩했고, 속이 메슥거려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와 시선조차 맞추지 않았다.


미국에서 임신이 가져다주는 최대 특전은 베이비샤워(임신부의 친구들이 출산 전 아기용품을 선물하는 파티) 정도다. 베이비샤워나 벌여야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는다는 말이다. 나름 파티라고 무알코올 펀치도 마실 수 있게 해준다. 프랑스에 베이비샤워가 없는데 이 사실은 미국에 비해 출산 준비물이 훨씬 단출하다는 뜻도 된다. 프랑스의 출산 준비물 목록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시장 갈 때 들고 가는 쇼핑 목록보다 짧았다.


미국에서 임신 중 준비해둬야 한다는 물품 목록을 처음 봤을 때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기용품을 다 장만했다가는 아기용품 보관용 아파트가 한 채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압박에 절대 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인은 물욕이 한도 끝도 없이 솟구친다. 내 막내 남동생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검소하다. 휴대전화를 하나만 사서 아내와 함께 썼을 정도다. 그것도 무려 5년 동안! 절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물이든 돈이든 통신수단이든 낭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마 벤은 지금도 신발이 두 켤레뿐일 텐데, 그중 한 켤레는 슬리퍼다. 쉽게 말해 벤은 구두쇠다. 그러던 중 올케가 첫아이를 임신했다. 벤이 이메일로 600달러짜리 유모차를 샀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사자후를 토해냈다. 우리 중 가장 심지가 굳었던 사람도 아이가 생기자 무너져버린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프랑스의 브르타뉴 출신 친구인 발레리는 정부의 각종 노력 덕택에 프랑스 여성들이 임신 기간을 무사히 견뎌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즐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발레리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는 정부가 개개인의 복지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어. 일단 임신부들은 누구나 임신 4개월째부터 매달 보조비로 150유로를 지급받아. 임신 중 매달 한 번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 보조금이 나오지. 산부인과 진료는 임신 기간 내내 무료야. 입원을 하면 일주일까지 무상으로 보조해주고, 아이가 둘 이상인 경우, 이 보조금은 아이가 18세 되는 해까지 지급해줘. 엄마가 얼마를 벌든 상관없어. 또 첫아이의 경우 법적으로 유급 육아 휴직 기간이 16주로 보장되어 있고, 둘째 아이부터는 기간이 더 늘어나. 나는 큰애가 열일곱, 작은애가 열넷이라서 아직 다달이 보조금을 받고 있어. 그런데 베이비샤워까지 한다면 너무 과하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가정의 중심은 어른

아이가 엄마 아빠의 코를 핥거나 엉덩이를 움켜쥐고 매달리는 등 성가시게 굴 때 말로 타이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포옹과 입맞춤은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나 더듬기에 가까운 행위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아이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은 데다 워낙 나에게 애착을 갖고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한데 나는 내 몸이 밤낮없이 놀이터로 개방되고 있는 상황에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프랑스 엄마들은 처음부터 몸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모유 수유에 제한을 두거나, 부모 침대에 아이를 들이지 않거나, 엄마의 치마는 성역과 같아서 절대 밟고 올라서면 안 된다고 주입시킨다(프랑스 엄마들은 집에서도 트레이닝복 쪼가리는 입지 않는다). "아기에게 무턱대고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당신 가슴은 남편의 몫임을 기억하라." 이 말은 한 프랑스 친구가 첫아이를 출산한 뒤 의사로부터 들었다는 조언이다.


여기 미국 엄마들은, 대략 15년간 아이 옆에 엄마가 붙어 있지 않으면 아이의 지능이 낮아지거나 끔찍한 알레르기가 발생하거나 비만아가 되거나 인생 전반에 걸쳐 낙오자가 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연쇄살인범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시달린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의 애교에 넘어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순간 부부 관계, 몸매, 나아가 결혼생활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지혜를 전수받는다. 미국 엄마인 나는 모유 수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프랑스 스타일을 100%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미국 아이들보다 훨씬 높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미국과 영국에서 소아 비만이 골칫거리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우리 집은 브루클린의 아파트로, 침실 세 개에 식당과 거실을 포함하여 공간이 여덟 개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전부 아이들 물건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거실에는 거대한 장난감 주방이 차려져 있고, 식당에는 장난감이 가득 담긴 장난감 수레가 놓여 있었다. 부엌은 아이들 미술용품으로 거의 뒤덮였고 벽마다 아이들이 어지럽게 그려놓은 낙서 때문에 무슨 갤러리 같았다. 나는 나만의 물리적 영역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아이 물건은 아이의 영역 안에 둔다. 나머지 공간에 아이 물건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경우는 없다. 아이의 영역으로 정해놓은 범위가 가정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단 한 곳, 거실은 예외 없는 성역이다. 거실에는 절대 장난감이 나와 있을 수 없다. 엄마 아빠와 다른 어른이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일단 프랑스 아이들의 살림살이가 미국 아이들에 비해 단출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엄마 아빠의 생활이 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사실,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영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자라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도 프랑스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 곧장 거실에서 장난감, 세발자전거, 색칠공부 책, 장난감 주방용품, 운동기구, 아이들이 그린 그림, 보드게임, 봉제 인형을 싹 치웠다. 치우는 김에 가구 배치도 바꿨다. 아이들 물건에 뒤덮여서 보이지 않던 공간이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생활에 중점을 두는 프랑스인들과 비교하니, 내가 그간 아이들의 개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잘못된 행실을 그냥 눈감아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그런 개성을 말살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좀 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부모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아이들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면서도 고삐를 절대 놓지 않는다. 동시에 고유의 개성을 고스란히 살려준다. 프랑스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밤에 잠도 더 푹 자게 됐다. 자다가 불현듯 깨서 내일 대프니가 학교 갈 때 입힐 옷을 빤다든가, 가정 통지문에 서명을 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다루는 프랑스식 육아법은 가족 전체의 삶을 그만큼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내가 프랑스 스타일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율과 독재의 미학

미국의 여느 집 아이들처럼 우리 딸들도 뭘 하든 상을 바라게 됐다. 머리를 잘라도, 엄마를 따라 주유소에 가도, 뭔가를 기대했다. 아이들에게 상을 주지 않고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혹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대프니는 병원이라면 경기를 일으킨다.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점은 겨우 이해를 시켰는데 그래도 내키지 않는 눈치, 아니 질색을 한다. 그래서 주사를 맞을 때마다 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주사를 맞고 나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고함을 쳐서 목이 다 쉰 아이에 대한 연민이 더해져 가까운 장난감 가게로 직행하곤 했다.


역시 병원 공포증이 있는 다섯 살배기 프랑스 아이 크리스티앙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 물어봤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병원을 다녀오면 조그만 선물을 줘. 지난번에는 독감 주사를 맞히고 나서 문방구에 데려가 테이프를 사줬어." 테이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한창 포스트잇에 심취해있는 대프니도 문방구에 데려가면 훨씬 재미있어 할 텐데. 어차피 장난감은 집에 수두룩하다. 포스트잇 한 뭉치가 커피 한 잔 값 정도 하려나? 됐다. 문제 해결!


무엇보다 요새는 우리 딸들이 너무 점잖아져서 뇌물이며 상으로 유혹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을 제공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아예 기대조차 안 하게 됐다. 가끔 울컥하는 기분에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사다 주면 정말 뛸 듯이 기뻐한다. 선물을 소나기처럼 뿌려대던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 이제는 아이들과의 외식이 즐거워졌다. 테이블에 진득하게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이프와 포크로 격식을 갖춰 식사를 하고 엄마 아빠가 일어나자고 할 때까지 재잘재잘 대화도 나눈다.


부모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만화영화를 보도록 테이블에 비디오 스크린을 설치한 레스토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정말 개탄스럽다. 프랑스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틀어주지 않아도 소리를 지르거나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 가거나 포크를 내던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고 풀코스 식사를 소화한다. 내가 아예 텔레비전을 안 보여주는 히피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도 디즈니 캐릭터 이름을 줄줄 꿰기는 하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나간 자리에서 아이들을 비디오에 의존하게 만들다니.



자라면서 익히는 삶의 품격

프랑스인들은 종종 미국인은 따분하며 영국인은 무례하다고 빈정댄다. 한편 영미권에서는 프랑스인을 자의식에 찌든 속물이라고 비방한다. 우리는 따분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우리도 꽤 재미있는 사람들이지만 효과적으로 포장하지 못할 뿐이고, 프랑스인들은 그저 지나칠 정도로 훈련을 잘 받았을 뿐이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교실에서는 정숙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교실 밖에서는 뛰어난 대화 기술을 터득할 수 있도록 부모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이 과묵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실제로 겪어보면 말수가 상당히 많다. 그들은 대화도 기술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프랑스 부모들 가운데 아이들의 재미없는 얘기를 묵묵히 참고 듣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나와 대프니는 내게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에 이미 백만 번쯤 들었던 유튜브 동영상 줄거리나 텔레비전 만화영화 줄거리를 되풀이해도 기꺼이 재미있는 척해줄 수 있다.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면서 손으로는 열심히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생모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미국에서는 어른들끼리 둘러앉은 테이블에 어린애가 갑자기 끼어들어 좀 전에 이어지던 대화와 상관이 있건 없건 제멋대로 말을 뱉기 시작하면 어른들이 일제히 대화를 중단한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는 최연소 구성원이 대화를 계속 가로챈다. 아이가 어른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당하고 있으면 짜증이 솟구친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그런 것이다.


프랑스인들에게는 품격 있는 사회 구성원 길러내기가 지상 과제이기 때문에, 담론의 기술 훈련 역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뭔가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미 진행 중인 대화와 관련해서 딱히 할 말이 없다면, 그 입 다물라!


물론 프랑스 부모들도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세 살짜리에게 얘기를 가려서 하라고 나무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여섯 살만 돼도 대화의 수준을 높이든지 아니면 입을 다물라는 훈육이 시작된다. 할 얘기가 없는데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버릇이 우리 딸들에게도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나와 대프니가 말을 할 때 이러쿵저러쿵 지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어른들끼리 한창 재미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아이들이 시답잖은 얘기로 방해를 하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 프랑스 엄마들은 가차 없이 "엄마는 그 얘기 너무 지루해"라든지 "그 얘긴 아까 했어"라고 쏘아붙인다.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단련이 되어 있어 비판을 수용할 줄 안다. 그 정도 쏘아붙였다고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민하기 그지없는 우리 집 딸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문제엔 프랑스 스타일을 반만 적용하기로 했다.


자상하고 용기를 북돋는 미국 엄마 말투로, 대화에 끼어들기 전 상대방의 귀를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 미리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당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를 죽이지도 않는다. 그저 "다른 얘기를 해보라"고 유도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허투루 칭찬해주지 않게 되었다. 두 딸 모두 머릿속 생각을 먼저 정리한 뒤 입 밖에 내는 습관을 키우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도 저녁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가 분명 들을 만해지고 있다. 훗날 학교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야기 전달만큼 중요한 대화의 기술은 듣기다. 이건 대프니에게 쉽지 않은 문제였다. 대프니가 끼어들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느라 급급하기보다 진실로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될 때까지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프랑스에 갔다가 파티에 참석하게 될 수도 있다. 프랑스인들은 오렌지 제스트(채 썰어 설탕에 졸인 오렌지 껍질)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오만 가지 주제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인다. 그들에게 논쟁은 스포츠와 같아서, 전혀 악의나 뒤끝은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논쟁을 벌이다 핏대 정도는 세워줘야 파티다운 파티를 즐겼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누군가가 대놓고 내 의견을 반박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데, 프랑스 사람들의 소통 방식을 경험하고 나니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대프니에게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대프니는 상대방이 자신의 뜻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즉각 가시를 빳빳이 세운다. 그래서 특히 이 가시를 누그러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자기주장이 매우 강하지만 그렇다고 과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그 점이 좋다. 비판이나 반대에 부딪히면 양은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우나와 대프니에게 프랑스 스타일은 필수적이다.



달라진 우리 아이들

결국 프랑스식 육아법과 미국식 육아법 사이 적절한 균형 유지가 관건이다. 우리 부부는 제멋대로였던 아이들의 태도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고 아이들을 비롯한 온 식구의 나쁜 생활 습관 몇 가지도 뜯어고쳤다. 하지만 때로는 욕심이 지나쳐서 주관을 잃은 채 진짜 프랑스 엄마가 빙의라도 한 듯 너무 으르딱딱거리지 않았나 염려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대프니와 뮤지컬 영화 < 메리 포핀스 >를 시청하던 중, 내가 주인공인 보모 메리 포핀스의 어떤 면이 프랑스 스타일에 위배되는지 조목조목 짚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메리 포핀스의 혁신적인 육아 방식보다 아버지인 조지 뱅크스의 권위적인 방식에 한 표를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메리 포핀스도 마음 놓고 보지 못할 지경이 되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 때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프랑스인들이 그 부작용 때문에 나이가 들면 괴팍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단연코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랑스 부모들은 훨씬 엄격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행실을 다잡는 데 공을 많이 들이고, 이후부터는 좀 느긋해진다. 아이들이 언제나 흠잡을 데 없이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어차피 훈육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부모들은 아이가 10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어떻게든 휘어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프랑스 부모들은 더 큰 자유를 부여한다. 그래서 가족 간 갈등이 훨씬 덜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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