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라는 데는 다 철학이 있다

   
이창후
ǻ
좋은날들
   
12000
2013�� 04��



■ 책 소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6월청소년권장도서
윤리학이 인생 최대의 수수께끼에 답하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다. 거짓말 안하기,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기 등등 이들 규범은 도덕이나 윤리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삶과 부딪힌다. 그런데 왜어떤 행위는 해도 좋고 어떤 행위는 하면 안 될까? 도대체 옳고 그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고, 나아가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삶일까?

이 책은, 철학자들이 일깨워주는 삶에는 다그만한 철학적 이유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삶의 다양한 가치와 규범에 관한 수수께끼를 현실 문제와 연관지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한편으로,철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손을 이끌어준다. 그것은 결국 오늘을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 저자이창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이래 석사 과정에서는 윤리학을, 박사 과정에서는 논리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와성균관대에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 ‘학술적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다. 

철학과 태권도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이다. 삶을 밝히는 도구이자 학문으로서 철학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또 그 대중화에 힘써온 한편, 어려서부터 줄곧 태권도를 수련해 특전사 복무 때에는 태권도 교관을 맡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국기원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해외에도 많은 태권도 제자를 두었을 만큼 철학 못지않게 그의 태권도 사랑은 각별하다. 
저서로는 『영화로 읽는 윤리학 이야기』『나를 성장시키는 생각의 기술』『태권도 현대사와새로운 논쟁들』『태권도의 철학적 원리』 등이 있으며, 『정보기술의 윤리』 (공역)를 우리말로 옮겼다. 대학 시절부터 늘 파란색 옷만을 입어서‘파깨비’(파란 도깨비)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nbsp& 

■ 차례
머리말 - 철학이 이끄는 나의 삶, 나의 꿈
1. 한 번뿐인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눈물의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 |결코 패하지 않는 전쟁의 신

2. 바람직한 삶을 위한 또하나의 조건
도덕적 삶이 중요한 이유 | 나는 왜 복수를 하면 안 될까?

3. 왜 그렇게 행위하면 안 되는가, 라는 수수께끼
규범의 정당화 문제의 객관성 | 도덕적 정당화는 실제 사실과상관없다

4. 정말로 어려운 문제의 답을찾으려면
태권도 고수가 된 나의 비결 | 철학으로 생각하는 방법 깨치기 |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답을 찾는다
5. 당연한 것에서부터 생각하기, 행위의 목적
목적이 규범을정당화한다

6. 어떤 목적을 추구해야 할까요?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 | 복수에 대한 공리주의적 판단

7.너희가 공리주의를 아느냐? 
진리는 평범함 속에 있다 | 이순신 장군과 왜군의 충성심은 어느 쪽이 옳을까?
8. 쾌락주의는 결코 나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목적 | 쾌락과고통, 행복에 대한 이해

9.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많은 이유 
공리주의는 예측된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공리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

10. 공리주의뿐인가? 의무주의도 있어요


11. 중요한 것은 행위의 속성이다
의무주의는 행위의 속성으로 판단한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생각

12. 어렵지만 어렵지않아요, 칸트의 정언명법!
정언명법과 가언명법 | 모든 사람들이 따르기를 원하는가? | 수단시하기만 하지 말고 목적으로도예우하라

13.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제대로하세요
자유로부터의 도덕 | 복수에 대한 의무주의적 판단

14. 윤리적 판단 기준을 현실 문제에 적용해보기
잘못된 행위에 대한 윤리학적 판단 | 특허 괴물의 행위는 도덕적으로옳을까? | 인터넷 인형녀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할까?

15. 두 가지 사고방식, 목적론과 의무론
옳고 그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 목적론과 의무론에 대한 바른이해

16. 윤리학의 중요한 개념들
가치는 행위를이끄는 힘이다 | 행위와 규범의 관계 | 당위와 허용, 좋음에 대하여

17. 좋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일까? | 행복과 자아실현에 관한 가장 유명한철학

18. 윤리학에서 철학으로 나아가기 
철학적 사고의 힘을 기른다는 것 | 건강과 안전, 내 삶을 지키는대전제

19. 철학적 사고방식이란 무엇일까요?
체계적인 생각, 기준에 따라 생각하기 | 암묵적 전제 드러내기와 철학적 반성

20.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윤리적인 것
윤리학은 삶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작업이다 | 살아가는힘으로서의 철학

21. 그럼,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하나요?





그렇게 살라는 데는 다 철학이 있다


왜 그렇게 행위하면 안 되는가, 라는 수수께끼

어떤 행위는 해도 괜찮고, 어떤 행위는 하면 왜 안 될까? 지금 우리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 문제를 가리켜서 규범의 정당화 문제라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쉬울 것 같은데,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문제랍니다. 이 문제가 왜 어려운지를 먼저 설명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건대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그 답이 아래의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요.



규범의 정당화 문제의 객관성

첫 번째로 객관성을 이해해봅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게요.


① 올림픽 경기에서 권투를 가장 잘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② 사람이 일생 동안 가장 많이 하는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요?

③ 굶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위 수수께끼의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칠레

② 숨소리

③ 헝가리(비슷한 발음의 영어 단어 hungry가 배고프다는 뜻이므로)


이런 답을 맞히기는 경우에 따라서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번 수수께끼를 풀고자 진지하게 각 나라가 올림픽에서 거둔 권투 경기 금메달 성적을 떠올리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요. 권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한 3번 수수께끼의 답을 찾으려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보면 웃게 되겠지요. 동시에 이 수수께끼들이 난센스 수수께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진짜로 올림픽에서 권투를 가장 잘하는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지 따지려던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난센스 수수께끼는 장난이라는 말입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말이지요. 이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은 수수께끼의 답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권투 경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1번 수수께끼의 답이 칠레이며 그 이유가 칠레라는 말이 주먹으로 칠래의 칠래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방식으로 답을 찾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라는 것입니다. 3번 수수께끼도 마찬가지지요. 이때 수수께끼의 답은 객관성이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성이란 그 내용이 내가 볼 때나 다른 사람이 볼 때나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2번 수수께끼의 답은, 비록 난센스 수수께끼라고 할지라도 객관성이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사람이 일생 동안 가장 많이 내는 소리는 숨소리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난센스 수수께끼 가지고 제가 너무 까다롭게 따지는 것 같나요? 하지만 이렇게 따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학의 문제가 진지하게 따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정당화는 실제 사실과 상관없다

두 번째로 관념성을 이해해 봅시다. 사실은 여기에 도덕적 정당화라는 수수께끼의 가장 중요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도덕의 문제가 사실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도덕적으로 나쁜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게 거짓말이지요. 즉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에게 "착한 일을 해야만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께서 선물을 주신단다"라는 부모님의 거짓말은 그렇게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들 하지요. 선의의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용인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그냥 재미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게 만우절에 하는 거짓말들입니다.


사실을 살펴보자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거짓말쟁이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는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 돈을 갈취한 사기꾼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복수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복수가 허용되었던 적도 많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항상 나쁜 행위라고 간주되어 왔지만, 동시에 동서고금을 통틀어 살인과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도 많지만 나쁜 사람들도 많지요. 어쩌면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실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거짓말은 나쁜 짓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즉,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복수를 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이 나쁜 짓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에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혹시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거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거짓말이나 복수를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혹은 하지 않는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 어떤 행위가 옳고 그런가 하는 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행위하는가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도덕적 정당화의 문제, 즉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행위가 그른가 하는 문제, 혹은 왜 그 행위가 옳은가 하는 문제는 실제 사실과 상관없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의 생각에 납득이 되는 답이어야 하지요. 결국 그 답은 사실과는 관련이 없는 생각의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즉 관념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규범의 정당화에 관념성이 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규범의 정당화라는 수수께끼가 객관성과 관념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만 이 문제가 왜 어려운지 이해됩니다. 관념성이란 무엇인가요?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생각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한편 객관성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누가 봐도 옳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순수한 생각일 뿐이면서도 누가 봐도 옳은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윤리학에서 철학으로 나아가기 

"나쁜 짓 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자아실현을 하는 삶을 살아라." 이 생각에는 도덕성과 자아실현의 두 개념이 결합되어 있지요. 이때 두 개념은 단지 나란히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도 정해져 있습니다. 단지 "도덕적으로 자아실현을 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범위 내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삶을 살라"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두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죠?


첫 번째 대답은 도덕성과 자아실현이 나란히 같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데 나쁜 짓인 경우와, 도덕적이긴 한데 자아실현이 안 되는 경우에 직면했을 때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번째 대답은 이런 고민을 이미 반영했습니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더라도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철학적 사고의 힘을 기른다는 것

윤리학에서 우리는 왜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이 나쁜 짓인지를 배웁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서 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을 단지 단편적으로 배우고, 기억하고, 거기에서 끝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윤리학과 철학을 배우기 전에 얻은 대부분의 판단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일 뿐입니다. 철학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생각을 해서 얻은 결론과 다릅니다. 어떤 점에서 다르냐 하면 내용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달라요. 사소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한 경우를 가지고 설명해보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갑자기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내가 왜 귀신을 무서워할까?" 귀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무서워하는 까닭을 어느 순간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귀신이 나를 해치고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였습니다. 흔히 귀신이 나오는 영화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창백한 귀신은 총칼에도 죽지 않고 다가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연출하잖아요. 결국 귀신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제가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깡패 같은 친구들이 무서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었습니다. 물론 죽음 자체가 현실성 없는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이해 때문에 갑작스럽게 귀신이 무섭지 않게 된 것이었지요.


이것이 이해가 되나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도 이제는 귀신이 무섭지 않나요? 저라면, 남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귀신을 갑자기 무서워하지 않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귀신이 없다는 얘기는 그전에도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지만 어린 아이로서 여전히 귀신과 어둠은 무서웠었거든요. 그렇다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단순한 생각이 왜 저를 바꿀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윤리학을 하고 철학을 해서,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 그 끝에서 얻어야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기억으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달라지고,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철학적 사고방식이란 무엇일까요?

체계적인 생각, 기준에 따라 생각하기

철학적 사고의 첫 번째 특징인 체계적인 생각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따라서 생각을 진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법을 기억한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정언명법은 모든 행위를 할 때 따라야 하는 기준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생각도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의 행동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정언명법이듯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적절한 기준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생각이 따라야 하는 적절한 기준이 뭘까요? 철학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적절한 기준 자체를 스스로 설정합니다. 이것이 철학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도 그런 점이 있어요.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궁극적인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징검다리를 내세웁니다. 구체적인 답을 찾기 위한 징검다리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생각을 해나가기 위해서 여러분이 스스로 답을 찾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떤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고 말했지만, 사랑이나 재산 혹은 강함은 왜 안 될까요?


최배달 총재의 삶은 시종일관 실전적인 강함을 추구한 삶이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한 말 중에는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지 못하며, 인정받지 못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고, 신용이 없어지면 존경받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러한 최배달 총재의 삶을 보다 보면 강함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굳이 안 될 이유는 없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많은 것들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많은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무 거나 추구하며 살아라"라는 게 될 것입니다. 원래 그 사이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실패하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궁극적인 목적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을 설정하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가에 대해 그것은 최종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아무 거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도록 막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최배달 총재가 추구한 실전적인 강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완전성의 기준에서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이것이 곧 최배달 총재의 삶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할 만한 삶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여학생에게 최배달 총재처럼 실전적인 강함을 추구하라고 권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말하듯이 그 여학생에게도 행복을 추구하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이것은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서 임의대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자가 생각해 내야 하는 답의 조건은, 남들이 먼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면서도 동시에 남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여러분에게 간단하게 설명할 때, 여러분이 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면서 특별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면, 혹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더라도 거기에 불합리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최종성과 완전성이라는 조건이 납득할 만하다고 느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먼저 그것을 분명하게 말한 사람은 세상에 없었지요.


그렇지만 최종성과 완전성이라는 답의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 행복이라는 답을 제시한 사고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새롭고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공리주의와 칸트주의의 사고방식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발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도 이와 같은 생각의 흐름 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나 공리주의, 칸트주의 등 모든 철학적 사고에는 나름대로의 독창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에 따라 답을 찾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며, 윤리학 같은 철학을 공부할 때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매우 가치 있는 생각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진부하지만 짧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은 "고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얻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여러분이 자기가 하고 싶은 생각을 잘할 수 있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엉터리거나, 아니면 너무 진부하고 뻔한 생각이지요. 좋은 생각이라면 새로우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생각, 그래서 창의적이고도 합리적인 생각이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생각의 적절한 기준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생각해 나가면 창의적이면서도 합리적일 수 있지요.



그럼,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철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알았다면 그것은 반성과 비판을 통해서 안 것이고, 그리하여 자기도 잘 몰랐던 마음 속 깊은 차원에서부터 옳고 그름을 이해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토대 위에 실천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당연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아주 평범한 진리의 가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때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지만, 어린 독자들을 위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몇 가지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합리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셋째,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봅시다. 많은 학생들이 실패하는 까닭은 꾸준한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태권도를 배우고 내일 깡패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잘 안 될 것이 뻔합니다. 혹은 오늘 하루 공부하고 내일 시험 성적이 좋기를 바랍니다. 잘될까요? 이것이 곧 벼락치기 공부이지요. 잘 안 됩니다.


반대로 꾸준히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인생을 많이 사신 교수님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뭐든 1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광범위한 조사와 통계를 가지고 확인한 책이 있지요.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그것입니다. 누구든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관심사에 대해 1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아실현이 요리사가 되는 것이라고 해봅시다. 1만 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그에 대해 연구해야만 크게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계산을 해볼까요. 1년이 365일이니 대략 하루에 3시간 정도씩 노력해야 1년 동안 1천 시간을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휴일이나 명절, 혹은 특별한 일 등이 생기기 쉽죠. 그래서 사실상 매일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대략 6시간 이상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0년 동안 계속하면, 비록 좋은 일 슬픈 일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서 쉬곤 하더라도 1만 시간 정도 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둘째는 합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노력의 핵심은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나씩 쌓아 나간다는 것이고, 그래서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TV나 신문에서 보는 것들은 아주 특별한 일들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자주 일어나는 일, 일례로 로또 복권을 사서 돈을 잃는 일은 너무 평범한 일이고, 그래서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특별한 일들을 자주 보다 보면 그런 일이 흔하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안 듣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여러분이 돈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건강하지도 못해서 누구에게도 전혀 쓸모가 없을 때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 사람 말을 들으세요. 부모님과 형제가 아니겠습니까?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부모님 말씀을 어겨야 하나요? 진짜 의리를 생각한다면 부모님과 형제 말을 들어야 합니다. 윤리학의 핵심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의리를 따지는 그 친구도 얘기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야, 내가 너 어려울 때 도와줬는데 너는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라고요.


셋째,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책을 읽는 학생의 입장에서 1년, 2년의 시간은 매우 길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3년은 영원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이나 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한발만 물러서서 생각해보세요. 자살이나 폭력보다 더 나은 선택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자살입니다. 자살은 모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는 것입니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다면 나중에 다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학교 폭력으로 시달렸다면 시간이 지나서 저처럼 복수를 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입장으로 바뀔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살을 하고 나면 끝입니다. 건강과 안전이 삶의 기본 전제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도덕성은 모두가 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도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나쁜 삶을 살지만, 어쨌거나 있을 수는 있는 삶이지요. 하지만 건강과 안전을 잃으면 그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너무 뻔한 말인가요? 다시 강조하지만, 윤리학 같은 철학을 공부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평범한 진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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