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의 심리학

   
잔 시오파생(역자: 정미애)
ǻ
와이겔리
   
15000
2013�� 03��



■ 책 소개
프랑스 임상심리학자 잔시오파생이 오랜 임상 생활 동안 상담실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영재들과 심리학 이론, 뇌 과학 이론을 토대로 영재 아이의 모든 것을 담아낸심리서이자 양육 지침서다. 

영재는 어떤 아이인가? 왜그렇게 똑똑한 아이들이 성장과 학업에 어려움을 겪을까? 이 책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화답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영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바로 잡고 이 비정형적인 아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려 한다.

영재 아이를 다각도에서 다룬 이 책은, 아동심리학의 주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영재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그 심리를분석하여, 아이의 참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꼭 영재 자녀를 둔 엄마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자녀가 영재이든 아니든 진단 결과는 부차적인문제다. 저자는 여기서 거론하는 주제들이 영재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며, 영재는 다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모든 문제가극단적이고 대대적인 양상을 띤다는 게 차이라고 강조한다. 자녀에게서 이제 막 특출한 재능을 엿본 엄마든,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의심하는엄마든, 영재교육을 고민 중이거나 이미 시작한 엄마든, 이 시대의 열혈 엄마라면 누구나 자녀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 저자 잔 시오파생(Jeanne Siaud-Facchin) 
프랑스 임상심리학자이자심리요법가. 정신과로 유명한 파리의 라 살페트리에르 병원 인지기능검사실, 마르세유의 라 티몬 병원 연구실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영재에 관한 풍부한 임상 경험과 연구 성과를 담은 책 두 권, 『영재의 심리학-지능과 감성이 남달라서 고통받는 아이』와 그 성인 버전『행복하기에는 너무 똑똑한가요?-어른이 된 영재들』(가제, 출간 예정)을 출간하여 프랑스 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다. 영재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애정으로 프랑스 유일의 영재지원센터 ‘제브라 협회’를 설립하고, 유능하고 헌신적인 스태프들과 함께 영재 아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성인 영재들에게다양한 활동 기회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한편 2003년 마르세유를 필두로 아비뇽, 파리에 프랑스 최초의 학습장애 진단치료센터Cogito’Z를 열어, 현재 세 도시를 오가며 상담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다른 저서로는 『학습장애 아이 지도하기』 『명상이 내 삶을 어떻게바꾸었고,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꾸게 될까』 등이 있다. 

- 홈페이지 www.jeannesiaudfacchin.com
- 제브라 협회 www.zebrasurdoue.com 
-Cogito’Z www.cogitoz.com

■ 역자 정미애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거인 신발』『나만의 비밀친구, 제8의 힘』『그해 겨울엔 눈이 내렸네』『로라에게 생긴 일』『마지막 수업』『행복의 역설』『치유』『어느 날 내게붉은 노트가』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1장영재아동, 정의의 문제
영재아동이란?
영재인가, 지적 조숙인가? 이상한 얼룩말! 
제2장 영재아동의 인성
정서적 특징
영재아동은 어떻게 정체성을 구축하는가
영재아동의 방어기제

제3장 영재아동의 사고방식
영재아동은 다르게 생각한다 
사고의인지구조

제4장 영재아동과학교
영재아동과 마주한 학교
학교와 마주한 영재아동 
맞춤식 교육을 향해
이 아이들에게 어떤 학교가필요할까?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지침

제5장 영재아동의 일상
영재아동의 심리 메커니즘 이해하기
영재아동의 일상행동
어떻게 아이를 도우면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을까 

제6장 영재아동의 식별 기준
조숙한 징후들
검사는 언제 받아야 할까?

제7장심리평가
심리평가란 무엇인가? 
IQ 평가: 지능검사 
보완적 평가
제8장 영재 진단, 어떻게 알릴까?
본인이영재임을 알려야 할까?
형제자매에게도 알려야 할까? 
학교에도 알려야 할까?
주위에는 어떻게 말해야할까?

제9장 영재아동의심리장애
병리 문제는 어떻게 나타날까? 
가장 빈번히 나타나는 병리 문제들 
영재아동의 특정한 병리 형태
그 밖의 병리 문제: 방어적 성격의 영재성 
청소년이 별안간 영재임을 알게 될 때 
그렇다면 잘 사는 아이들은?
영재아동의 치료





영재의 심리학


영재아동, 정의의 문제

영재아동이란?

하나의 지수: 평균보다 높은 IQ

영재아동은 표준지능검사에서 IQ 점수가 130을 넘는 아이다. IQ는 지능에 대한 측정이 아니라 지적 역량에 대한 평가로서, 한 아이의 지적 작동을 같은 나이의 또래와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수치이다. 지능검사에서 높은 IQ를 얻는 것은 영재 진단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IQ가 높다는 사실이 영재성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영재성과는 다른 가능성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IQ는 영재 진단을 유도하는 하나의 지표로만 간주되어야 하며, 반드시 다른 요인이나 임상 징후들로 보완되어야 한다.


* 130을 넘는 IQ는 영재 진단을 유도하는 지수이다. 이 점수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수치로 산정된 하나의 데이터만으로 영재 진단을 내리기에는 충분치 않다.

* 영재 진단은 다른 임상 요소들과 여타 보완적 검사 자료들이 뒷받침되어질 때만이 내려질 수 있다. 이를 포괄적 진단이라 한다.

* 지능은 인성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지능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지능의 작동 방식이 인성 전반에 통합되면서 인성에 특정한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의 인성은 지능 형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적 측면·정서적 측면의 특성

영재 아동과 그저 단순히 높은 지적 잠재력만을 지닌 아이를 혼동하지 않으려면, 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의 특성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재아동은 총체적 인성 차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 지적 측면에서 볼 때, 영재아동을 특징짓는 것은 이들 특유의 독특한 지능 형태이다.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것은 양적인 크기가 아니라 질적인 양상이다. 영재라는 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사고방식, 다른 추론구조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영재아동의 지능은 비정형적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이들은 대개 학교와 사회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영재아동은 극도의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 아이의 수많은 감각 장치들은 외부 세계에 항상 접속된 상태로 온갖 정보를 포착한다. 영재아동은 이렇게 주위환경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매우 예리하게 인식하고 분석하며, 타인의 감정 상태 또한 대단히 섬세하게 감지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강력한 스펀지, 엄청난 흡수력의 소유자인 영재아동은 따라서 늘 온갖 감정과 감각과 정보의 물결에 시달리는데, 이것들을 일일이 느끼고 통합하고 정교화하기가 대개는 어렵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감정 영역과도 거리를 두려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감정과도 단절하려 한다. 이러한 작동은 이런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약화시키고 심리적으로 취약한 아이로 만든다.

* 영재아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이러한 지적 작동 및 정서적 작동의 특이성이다. 요컨대 영재아동은 남다른 아이이다.

* 영재아동은 이러한 이중적 측면에서의 작동을 제대로 이해받아야만 잠재적으로 매우 풍부한 자신의 지적·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꽃피울 수 있다.



영재아동의 사고방식

영재아동은 다르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암시적인 것이 영재아동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한 집단에 공통된 암시

우리가 속한 문화 집단·사회 집단·가족 집단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을 똑같이 이해하도록 해주는 공통의 코드가 존재한다. 이것을 우리는 사고의 문화 용기(容器)라 부른다. 이 문화 용기가 바로 어떤 준거틀 안에서 구성원들 간의 갖가지 공통된 암시를 만들어낸다.


의사소통에도 이 의사소통을 간소화하고 코드화·체계화하는 암시들이 존재한다. 학교에는 바로 이 암시가 무수히 깔려 있고, 이 덕분에 학생은 교사가 지시하는 바가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고 예측하여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 교사가 어떤 교과 주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면 학생은 마땅히 이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재현하여 대답해야 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영재아동은 암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재아동은 이처럼 학교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암시를 공유하지 못한다. 이것이 중대한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영재아동은 사고체계, 세상에 대한 이해, 주위환경에 대한 분석이 일반아동과는 다른 까닭에 교사의 지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른다. 이에 대해 교사는 그 즉시 자신의 코드, 자신의 규범 체계에 비추어 이 아이가 무례하다고, 일부러 그런다고, 이건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확신해버린다. 이렇게 해서 영재아동과 교사 양쪽 모두 상대가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폄하하고, 화나게 할 목적으로 행동한다고 믿게 되면서 순식간에 가해자/피해자 관계가 형성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유는 결국 단순하다. 영재아동은 코드가 다르며, 따라서 당신이 얘기하거나 요구하는 것의 의미를 당신의 코드가 아닌 자신의 코드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신이 기대하는 답이 아이의 이해 체계로는 답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아이는 당신의 그 답을 하나의 가능한 답으로 여길 수 없기에 자신이 보유한 지식 속에서 더 적절하다 싶은 답을 찾는다.



영재아동과 학교

영재아동과 마주한 학교

영재아동과 학교: 서로 융합하기 힘든 두 체계

학교, 왜 필요한가?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 과정에 시간과 역량을 투자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학교는 지식을 전수하는 한편, 전수한 지식을 학생들이 이해하고, 배우고, 소화하고, 재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친다. 학교는 최대 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지식과 이런 학습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교수법을 채택하고 있다. 학교는 결국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 지능을 연마하는 즐거움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학교가 영재아동이 본디 타고난 지적 장치와는 조금씩 골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괴리

영재아동은 입학하기 전에 이미 오랜 학습 기간을 거친다. 늘 만사에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미지의 것에 자극을 받고, 어른들의 앎의 세계에 흥미를 갖는 아이이기에, 영재아동은 많은 지식과 때로는 상당한 역량을 갖춘 채로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에 가면 훨씬 더 많은 걸 배우고, 훨씬 더 많은 걸 할 줄 알게 될 거야. 그뿐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걸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도 있어." 그러나 이 아이가 학교란 코흘리개들을 위한 곳이구나! 하고 이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는 새로운 지적 자극에 맞닥뜨리고 싶어 그토록 안달했는데, 정작 아무도 자신이 요청하는 지식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것이 최초의 실망이다. 영재아동에게 학교란, 제아무리 학습 과정에 시간과 역량을 투자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지식이 높이 평가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절대 드러내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해결책: 학교를 동반자로 간주하자

학교를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 교육의 동반자로 간주하면 어떨까? 이 아이들이 배우고 이해하고 알게 되는 방식은 우리에게 친숙한 방식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 아이들로 인해 우리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게 되고, 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재검토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도 직면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남다른 지적 작동과 학습 과정의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건 결국 부모든 교사든 일상에서 이들을 지도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름을 의미한다. 물론 학교교육은 학교의 소관이지만 부모 역시 깊이 연루되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학교와 학교 체계는, 아이가 장차 상급 학년, 상급 학교로 올라가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 즉 자신의 풍요로운 지능과 창의성과 특이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정이다. 이 험난한 도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지능이 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약하고, 지적 잠재력을 개발하는 기쁨이 넘쳐날 수 있다. 또한 그런 대가를 치르고서야 성인이 된 영재는 직업 차원에서, 또 삶의 차원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혼란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 영재는 자신의 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적 행보에 실패했다는 쓰라림과 자기 자신의 일부를 죽이고 말았다는 고통이 늘 마음속 깊이 자리하게 된다.


학교와 대화를 나누자. 그러면 아이로 인해 맞닥뜨리는 온갖 어려움을 부모와 교사가 함께 나눌 수 있다. 부모와 교사는 자신과 상대의 이중적 관점을 통해 이 아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고, 이로써 아이의 성공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여지가 눈앞에 보일 것이다. 문제를 공유할 수 있으니,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함께 대처해나가는 것이 더 쉽다. 각자 이 아이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해결책과 아이디어를 모색할 수 있고, 이것이 모두에게 평화를 주는 건설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서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를 무작정 이 문제의 장본인이나 책임자로 물지도 않으면서 교류와 공유라는 건설적인 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질 때, 대화의 물꼬는 언제든 트일 수 있다. 협력이야말로 아이의 학업 과정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행복한 학교생활, 배움의 기쁨, 학습에 대한 투자, 거기에다 원만한 교우 관계와 사회성까지, 이것이 우리 아이들 교육에 꼭 필요한 요인들이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활짝 만개하도록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핵심 쟁점이자 도전이다. 이는 교육을 둘러싸고 동반자 관계에 있는 모든 이들과 관련된 도전이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쟁점이다.



영재아동의 일상

영재아동의 심리 메커니즘 이해하기

영재아동은 자신의 과도한 정서적 감수성과 극도의 명민한 지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작동 메커니즘에 맞서 늘 고군분투 중이다. 과도한 감정적 부하와 지적 정교화, 영재아동을 특징짓는 이런 점들이 아이의 일부 행동들을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한 색조로 물들인다. 부모로서도 이런 자녀와의 일상은 때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아이로서는 하루하루가 실질적인 고통에 맞서 싸워야 하는 숱한 투쟁의 연속이다.


물론 아이라면 누구나 까다로운 행동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재아동의 경우에는 그것이 빈도와 강도에 있어 일반 아동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위다. 영재아동이 지닌 극도의 감정적 감성은 주위환경의 아주 미세한 감정적 변화에도 반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아이는 종종 자신이 감정에 사로잡히고 감정에 압도당하고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까 봐 두려워한다. 날카로운 감성의 소유자, 이 아이는 아주 최소한의 정서적 반응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 작동에 비추어, 모든 것이 의미를 지녀야 한다. 어떤 행동이나 어떤 말, 어떤 생각이 별 의미 없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다. 만일 누가 이런저런 말, 이런저런 행동을 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숨겨진 의도, 밝혀야 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이유가 없을 수는 없다. 만사가 해석되고 분석된다. 이런 특성이 이 아이를 격렬하고 극단적인 감정적 반응으로 이끈다. 


주위환경을 제어하려는 욕구

영재아동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환경을 제어하고 조절해야 하는, 거의 사활이 걸리다시피 할 절대적 필요성을 느낀다. 마치 관제탑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이는 아주 미미한 변화라도 놓칠세라 늘 주위환경을 호시탐탐 살펴야 한다. 어떤 상황과도 불시에 맞닥뜨리지 않고, 어떤 것도 자신의 분석 대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는 모든 것을 미리 알기를 원하며, 커브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채로 전진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 미지의 것은 이 아이에게 두려움을 유발한다.


절대적인 정확성에 대한 욕구

언제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정확해야 하는 욕구는 이 아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확함을 추구하도록 충동질한다. 그 어떤 모호하고 불분명한 점도 허용될 수 없다. 단어는 언제나 적확해야 하고, 사고는 언제나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인성과 분리될 수 없는 작동, 그것이 이 아이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실이든, 어떤 사물이든, 어떤 상황이든, 아주 사소한 것까지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아이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반항이나 반발심의 표명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욕구다.


욕구불만에 대한 내성이 아주 약하다

욕구불만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를 성격이 나쁘거나 단순히 반항적인 아이로 치부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니, 주의하자, 욕구불만을 참지 못하는 것은 감정적인 취약성에 해당한다. 기쁨이나 만족감이 당장 채워지지 않음을 못 견디는 것은 의심스럽거나 불확실한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떤 것에 대한) 욕구와 (그것이 해소되는) 충족, 그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뭐든 가능하고 뭐든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에 무엇보다도 우선 일어나는 것이 사고(思考)다.


일부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사고는 욕구와 충족 사이의 시간에 형성된다. 예컨대 배가 고픈 아기가 그 즉시 우유를 먹지 못하면, 이 아기는 우유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젖병을 떠올리고 젖병을 상상하면서 우유를 먹게 될 때까지 배고픔을 견딜 수 있다. 아기는 젖병에 대한 사고, 젖병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일 배가 고플 때마다 바로 젖병을 물리면, 아기는 계속해서 구체적인 것, 직접적인 쾌락만을 접하게 되고, 사고를 창조하는 길은 전혀 열리지 않는다.


이렇듯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사고를 시작하지 못하면, 욕구불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영재아동의 경우에는 사고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고를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히며 끝도 없이 뻗어나갈 사고 과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불확실한 상황이 지나치게 우려할 만한 수위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욕구와 충족 사이의 시간에는 반드시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 아이를 엄습하고, 이 불안이 아이의 전반적인 심리적 안정을 상당히 약화시킨다.



영재아동의 식별 기준

검사는 언제 받아야 할까?

검사는 진단이 목적이 아니다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아이의 작동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함이다. 이는 아이의 작동 유형이 어떠하든, 아이가 겪는 어려움의 성질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영재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드는데도 검사를 피하거나 거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재로 오인하여 검사를 받게 하는 편이 설령 영재로 판명나지 않는다 해도 더 낫다. 검사를 시행함으로써 우리는 아이의 지적·정신역동적 작동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고,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적절한지 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검사의 요점은, 아이가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진단은 명확히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

부모

부모는 자녀의 영재성을 그 누구보다 잘 예측한다! 항간의 비난과 트집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예측은 무려 80%가 들어맞는다! 이쯤 되면 부모들이 으레 제 자식을 천재로 생각한다는 역설을 몰아낼 수도 있겠다!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를 냉정한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모는 거의 언제나 모든 영역에서 자녀의 장단점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중에는 객관적 판단이 다소 떨어지는 부모도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부모들이여,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자! 부모의 직관이야말로 최상의 징후다.


학교

학교는 영재아동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영재아동은 부모의 환상이 만들어낸 존재도 아니고 유행의 산물도 아니다.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낙제생도 영재아동일 수 있음을 유념하자. 그리고 만일 이 아이가 구술은 뛰어난데 필기는 약하다면, 소란을 피우면서도 수업은 귀 기울여 듣는다면, 성적이 들쑥날쑥하다면, 초등학교 때 보여준 실력을 중학교에 가서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모든 것에 늘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협상하는 아이라면, 이 아이를 영재아동이 아닐까 의심해보자. 또한 교정에서 주로 혼자 놀고 동급생들보다 상급생들과 더 자주 어울리려 드는 아이, 혹은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쉬운 아이, 혹은 어른들과 흔쾌히 논쟁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도 영재아동에게서 발견되는 특징들을 보이고 있음을 잊지 말자.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영재아동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리고 수업시간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아이 역시 영재아동일 수 있다!


왜 진단이 필요할까?

사실 영재 진단을 받는다고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는 원래부터 영재였고, 앞으로도 죽 영재일 테니! 검사가 아이를 바꾸지는 않는다. 검사의 기능은 의미를 부여하고, 판명을 내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다. 검사 덕분에 우리는 현재의 정황을 이해하고, 또 무엇보다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이제 더는 우리의 생각을 아이에게 투사하지 않고, 아이의 실제 모습에 맞추어 처신한다. 바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요컨대 영재로 판명된다고 해서 아이는 절대 거만을 떨지 않는다. 단지 마음의 짐을 덜고 고통을 덜 뿐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검사를 받게 해야 할까?

물론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예방적 차원에서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녀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다. 검사를 통해 아이의 지적·정서적 작동의 특징들을 이해함으로써 성장 과정의 여러 측면들을 예측하고 아이를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아이의 조화로운 발달에 매우 유익하다. 일상적인 관찰 결과, 진단이 일찍 내려질수록 아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실제 모습과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갈 공산이 크다.


이와 반대의 결과가 나올 리는 없다! 우리 아이를 감히 영재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은 느낌이 들고, 또 진단을 받아도 여하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이유로 검사를 늦춘다면, 이는 아이의 발달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검사는 몇 살부터 가능할까?

검사는 이론상으로는 2살 반부터 유효하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6세 이전에 시행하는 검사는 아이의 발달 속도와 관련된 요소에 더 민감하다. 다시 말해 아이의 지적 작동의 특이성보다 현재의 발달 단계가 검사 결과에 훨씬 더 뚜렷이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6세 이전의 검사에서는, 아이의 발달 측면과 일부 유형의 학습에서 보이는 조숙함, 즉 장차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할 그런 조숙함이 결과에 반영되기 십상이고, 따라서 똑똑하고 또래보다 앞서는 아이지만 영재는 아닌 경우를 쉽사리 접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발달은 늦지만 진짜 영재아동인 경우 말이다.


따라서 6세 이전의 검사는 신중해야 한다. 이 나이에는 오직 현재의 지능 작동을 파악할 목적으로만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 여하튼 이 검사에서 영재로 의심된다면, 몇 년 뒤에 다시 검사해서 진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때 가서 시행하는 검사는 실질적인 예측 효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나이에 측정된 IQ는 안정적이어서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재 진단, 어떻게 알릴까?

본인이 영재임을 알려야 할까?

이는 흔히 제기되는 질문이지만, 사실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십중팔구 이 질문은 아이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알게 되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여전히 뿌리 깊은 어른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일부 부모들이 제 자녀에게 투사하는 이미지, 그들 자신이 영재아동에 대해 갖고 있는 표상, 즉 영재란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관념이 문제가 아닐까?  어쨌든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영재아동이 지적·감정적 작동에서 뚜렷하게 남다른 특징을 보이는 아이임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본인이 어떤 아이인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게 분명해진다.


그리고 남들과 다를 수 있는 특징들에 대해 알려줄 때는 이것이 결코 우열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갈색 머리냐 붉은색 머리냐, 파란 눈이냐, 검은 눈이냐, 말랐느냐, 건장하느냐가 어디 우열의 문제인가?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이런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로서 각자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세상은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누구나 서로 배울 것이 있고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는 개념을 아이에게 전해야 한다.


반대로, 아이에게 진단 사실을 숨긴다면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진단 사실을 숨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이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영재아동은 매일매일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자문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들의 작동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끊임없이 인식한다. 이 아이의 눈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동일하게 작동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고, 공통된 주제나 관심거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신만이 미운오리새끼로 느껴진다. 소외되었다 느껴지고, 자기 존재와 자신의 삶이 불편하고 불만스럽게 느껴지며, 때로는 타인들과 그토록 다른 것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작 이런 불쾌감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이의 남다른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특이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아이 자신도 타인들이 받아들일 만한 적절한 방식으로 주위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다.


아이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발달장애를 키우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발달장애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표면화되거나, 아이의 인성 구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장차 현재와 미래의 삶을 심각하게 훼손시킬지 모를 심리장애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이 거의 언제나 병리적인 문제를 겪고서야 영재임이 밝혀지는 실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아이가 심리적 장애 증상을 키우거나 학교 같은 곳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킬 때 비로소 심리전문가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병리적 증상이라도 아직 예방 가능성이 있을 때 예방하려면, 아이에게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