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을 위한 살아 있는 멘토사전

   
고수유
ǻ
거인
   
18000
2012�� 01��



■ 책 소개
아이들의 꿈에 용기를 불어넣는 응원가 같은 책
꿈을 향해 마음껏 활개 쳐봐!

꿈을 실현하고 행복한삶을 얻기 원하는 우리를 비롯하여 삶의 방향을 잃었거나 힘든 삶의 고비를 만난 사람, 또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멘토이다. 아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세상을 뒤흔든 400명의 멘토들을 선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안철수에서 스티븐 잡스까지세상을 뒤흔든 400명의 멘토 이야기는 때로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때로는 마음을 쓰다듬는 손짓처럼 노래하며 그들의 꿈과 희망을응원한다. 

■ 저자고수유
홍익대에서 ‘대학국어작문’과 ‘창의적 글쓰기’ 강의를 했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 이문열에게 소설창작을 배웠다. 1995년에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박학천 논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근무했다.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최근에 펴낸 『실패가 두려운 청년을 위한 멘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시집 『피카소 거리의 풍경』, 불교 소설 『붓다와의 위대한 하루』,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김수환 추기경의 62가지 인생이야기,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중국에 저작권이 수출된 『워렌버핏과 함께한 점심식사』『부와 성공을 이루어주는 억만장자 이야기』(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어린이 책 출판 기획사 ‘어린왕자’를 이끌면서 어린이에게 유익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국어가재밌어지는 맞춤동화』『20인의 수학자 편지』『20인의 과학자 편지』『20인의 철학자 편지』『이솝이야기에서 리더십 꺼내 읽기』『행동하는 CEO의성공 시크릿』『4학년 리더십』『너도 리더가 되고 싶니?』『워렌 버핏』 등 이십여 권을 출간했다. 이제 작가는 오랫동안 구상해 온 『해리포터』처럼흥미진진한 판타지를 출간할 예정이다.

■차례
머리말 : 꿈을 키우는 여행에 초대하며 

제1장 당당하게 서는 힘, 자신감 
제2장 꿈을 이루는 힘, 끈기 
제3장 세상에 나를 알리는 힘, 용기
제4장 마음을 사로잡는 힘, 배려 
제5장 열정을 키우는 힘, 도전 
제6장 세상을 바꾸는 힘, 창의성 
제7장 집중력을키우는 힘, 탐구





초등학생을 위한 살아 있는 멘토사전


당당하게 서는 힘, 자신감

싫어하는 일에 도전하는 의사 - 박경철(1964~현재)

박경철 의사는 원래 클래식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 가요는 즐겨 들었지만 클래식을 무척 어려운 음악으로만 여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생각했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 어려워지지 아닐까? 그러니까 일단 부딪쳐 보자.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부자 동네에 있는 학교로 전학 오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고 의기소침한 아이로 변했다. 이 점을 염려한 담임선생님은 그의 아버지에게 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기자 그는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클래식 음반 100장을 구입했다. 월급을 모두 음반을 사는 데 써 버린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일을 할 때도 들었고, 심지어는 수술을 할 때도 들었다.


그렇게 지낸 지 4개월이 되자 어느덧 자연스럽게 클래식 곡을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반년이 넘자 이제는 곡만 들어도 작곡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었다. 그는 공부를 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싫어하는 게 있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잖아요. 일단 자신감을 갖고 부딪쳐 보세요. 노력하며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작가 -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개인의 존재를 강조하는 철학)를 주장한 사상가이다. 그는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명문 슈바이처 가문 출신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는 단신이었고 눈도 사시였다. 그런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 문학을 교류했다. 1938년에는 소설 『구토』를 펴내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구토』는 사르트르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자 그의 출세작인 동시에 20세기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 될 겁니다."


그의 책 『구토』는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 책으로 그는 처음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1940년에는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났다. 1943년에는 『존재와 무』를 내놓아 철학자로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장 폴 사르트르!" 그는 196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수상을 거부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만 독자들과 소통해야지, 그 어떤 영예를 누리게 된다면 독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상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다. 1980년에 그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를 사랑하는 약 2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꿈을 이루는 힘, 끈기

작은 키의 단점을 극복한 축구 황제 - 에드슨 아란테스토 펠레(1940~현재)

운동장 한쪽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어떤 남자가 다가와 왜 울고 있느냐고 묻자 아이가 말했다. "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친구들은 제 키가 작아서 축구를 못 할 거래요. 그래서 너무 속상해요."


아이의 말을 듣던 남자가 말했다.


"너처럼 키가 작고 축구를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단다. 운동화 살 돈이 없어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공을 찼어. 그러다 뾰족한 돌에 채이면 발에서 피가 나기도 했지. 그래도 공을 찰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난 소년은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어. 그런데 키가 작다고 키가 클 때까지 연습만 하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요?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지. 실망하지 않고 더 많이 연습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 냈단다. 그래서 나중엔 정식 선수로 뛰게 되었어."

"우아! 정말이요"

"그래, 그러니까 너도 꿈이 있다면 어려움이 있어도 도전해 보렴. 넌 할 수 있을 거야."


자신의 등을 토닥여 주며 일어나던 남자에게 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소년이 누구예요?" 아이의 질문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바로 나란다. 사람들이 나를 펠레라고 부른단다."


아이에게 희망을 준 이 남자가 바로 축구의 황제 펠레였다.


땀방울의 대가를 믿는 육상선수 - 우사인 볼트 (1986~현재)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미터 결승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가 1위로 골인한 우사인 볼트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셨습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신발 끈이 풀려 있었어요. 더군다나 양옆을 두리번거리며 속도를 줄었는데도 세계 신기록입니다. 이 선수가 제대로 달렸다면 도대체 어떤 기록이 나왔을까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처럼 세계의 관심을 받는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100미터를 9초 58로 뛰는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앞으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은 얼마로 예상하십니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9초 4대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힘드니까요. 하지만 내 땀방울의 대가를 믿습니다."


어릴 적에 그는 단거리의 전설인 칼 루이스와 마이클 존슨 같은 영웅이 되고 싶었다. 꿈을 이루어 가는 그에게 꼬마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사인, 나도 당신 같은 훌륭한 육상 선수가 될 거예요."

"그래, 힘내라. 열심히 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손을 맞춰 준 우사인 볼트는 말했다. "단순한 기록 경신자가 아닌 모든 육상인이 존경하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저 어린이들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상에 나를 알리는 힘, 용기

장애는 부끄럽지 않다 - 오토다케 히로타다(1976~현재)

"귀여운 우리 아기."


오토다케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기형아임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눈을 맞추며 그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평범한 아들이었다. 보통의 아이와 똑같이 자란 것이다. 오토다케의 어머니는 그와 함께 길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1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팔다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도록 가르쳤다.


"장애는 핑계가 되지 않아. 네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의 말 때문에 그는 더욱 힘을 냈다.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어머니는 선생님께 당부했다. 그는 농구부에 들어가 매니저 역할을 했고, 짧은 팔로 글을 쓰면서 일본의 명문대학교인 와세다대학교에 들어갔다.


"저는 장애가 있긴 하지만 인생이 즐거워요."


그는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을 썼고, 아사히 TV와 TBS 뉴스의 캐스터로 활동했으며, 2002년에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장애로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감동을 주었다. 그는 장애인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깬 사람이 되었다. 2002년에 도쿄 도민 영예상을 수상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구한 청년 - 전태일(1948~1970)

노동자를 대우해 주지 않는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복 제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자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그의 아버지는 취직을 못 해서 평화시장이나 중부시장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몇 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전태일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해고당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이 처참한 현실을 바꿔 보겠다!


그는 노동법 관련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며 인권을 부르짖는 그를 사장들이 좋게 보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결국 해고당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너희는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일하면 된다. 인권이니 뭐니 괜히 안다고 설쳤다가 저 녀석 꼴 날 거야!"


1970년 11월 13일, 그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 조건의 기준을 정해 놓은 법률)을 지켜라!"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처참한 환경 속에서 일해 왔는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22살 노동 운동가의 죽음이 한국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바꾼 것이었다.



마음을 사로잡는 힘, 배려

맨손으로 종을 치는 동화 작가 - 권정생 (1937~2007)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날이었다. 교회 종지기였던 권정생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을 치기 시작했다.


뎅, 뎅, 뎅. 맑은 종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아침 미사를 보기 위해 교회에 온 사람들 역시 종소리를 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권정생은 부지런히 종을 쳤다. 바로 그때, 그에게 인사를 하려던 한 사람이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장갑도 안 끼시고 종을 치세요?"

"아, 이거요? 저는 원래 장갑 안 낍니다."


추위로 빨갛게 손이 텄지만 권정생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저는 늘 종을 칠 때면 이렇게 맨손으로 칩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물론 장갑을 끼고 종을 치면 손이 얼지 않아서 좋죠. 하지만 그만큼 제 손이 게을러져서 맑고 투명한 종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조금 춥더라도 맨손으로 종을 쳐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한테까지 이 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난과 질병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평생을 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보았던 권정생의 작품 『강아지똥』은 오늘날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동화이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박사 - 안철수(1962~현재)

안철수는 어린 시절에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공부와 운동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많지 않았다. 비범한 인물이나 천재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절대로 저런 사람들처럼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항상 아들을 존중해 주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성적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그는 어머니에게 누누이 들었다.


그가 고등학생 때, 숙제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어서 지각을 할 뻔한 적이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막 택시를 타려던 순간 그의 어머니가 따라 나와 한마디했다.


"학교에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안철수에게 형수님이냐고 물었다. 안철수가 웃으며 어머니라고 대답하자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런 어머니를 두고 있다니 학생은 참 복 받았네. 절대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잊지 말게나."


세월이 흘러 유명한 기업인이 된 안철수는 말했다. "제가 작은 벤처 기업(전문 지식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경영하는 중소기업)으로 시작해서 한국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기초를 잘 다지고 항상 상대를 배려해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한 덕분입니다."



열정을 키우는 힘, 도전

UN 사무총장이 된 시골 소년 - 반기문(1944~현재)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충청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반기문이라는 학생이 끼어 있었다. 미국을 방문한 한국 학생들은 다른 외국 학생들과 함께 미국의 명소들을 차례대로 견학한 끝에 백악관을 찾게 되었다.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이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먼 데서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반기문은 말로만 듣던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만나자 가슴이 떨려 왔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케네디 대통령이 반기문에게 물었다. "학생이 대표이니까 한 가지 물어볼게요. 학생의 꿈은 뭔가요?"


반기문이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습니다."


외교관이 되겠다던 반기문의 꿈은 어렸을 적부터 키워 온 것이었다. 가난하지만 영특했던 시골 소년 반기문은 한 번도 1등을 내준 적이 없었고, 그의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는 어김없이 외교관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의 꿈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면서 확고한 결심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반기문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 이 말은 이후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마침내, 그는 한국인 최초로 2006년 10월 14일에 제8대 UN(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가장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한 지휘자 - 사이먼 래틀 (1955~현재)

사이먼 래틀은 15살 때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가로 데뷔했다. 리버풀 관현악단의 타악기 주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 그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사이먼, 앞으로의 꿈을 말해 주지 않을래요?"

"제 꿈은 세계 최고의 지휘자가 되는 겁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꿈을 꾸죠."


그의 말에 기자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사이먼이 날카롭게 눈을 치뜨며 말했다.


"현재 최고의 지휘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물론, 카라얀이죠."

"맞습니다. 제 말은 카라얀을 뛰어넘는 지휘자가 될 거라는 말입니다."


그의 당당한 말에 기자는 깜짝 놀랐다. 신동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이제 겨우 15살밖에 안 된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너무나 포부가 컸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인 카라얀을 뛰어넘겠다고요? 너무 큰 꿈이 아닌가요?"


그러자 사이먼이 대답했다.


"저는 꿈은 이룰 수 있기에 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사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손해 볼 게 없죠. 사람들이 앞으로 저를 볼 때마다 카라얀에게 도전했던 지휘자라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 창의성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삼은 소설가 -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현재)

학교에서 단체로 수족관 견학을 간 날, 14살 소년 베르나르가 친구에게 물었다.


"지구를 벗어나면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는 거지? 벌들은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걸까?"

"넌 정말 쓸데없는 것만 알려고 하는구나."


친구가 한숨을 쉬자 베르나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이런 것들이 알고 싶은걸."


항상 엉뚱한 것만 생각하는 베르나르를 그의 친구들은 괴짜라고 여겼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이 떠올린 질문들의 답을 알고 싶어 했다.


이 질문들을 잊어버릴지 모르니 일일이 기록해 두자. 그는 자신이 생각해 온 것들을 공책에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몽상만 하고 있을 거니?"


그의 공책을 우연히 본 선생님 역시 베르나르가 한심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기록은 계속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상하게 봤지만, 그는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14살 때부터 시작한 그의 기록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고, 훗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는 대표작 『개미』 외에도 여러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독특한 이야기와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그의 소설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매료되었고, 그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디자이너 - 캘빈 클라인(1942~현재)

캘빈 클라인이 만든 옷은 미국의 거의 모든 남성과 여성이 한 번쯤은 입어 봤을 정도로 그는 사랑받는 디자이너이다. 그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단순한 것과 재미없는 것은 다르며, 패션은 단순하면서도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야 한다.


어느 날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수수하지만 자신감에 넘친 미국인들, 특히 신중하고 우아했던 내 어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내 아내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곤 합니다. 그녀는 제게 좀 더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보여 주도록 권하거든요. 그래서 직장과 가정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도록 정교하게 재단합니다. 색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색이어야 하죠."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로운 패션을 표현하기 위해 캘빈 클라인을 창조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캘빈 클라인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함을 동시에 담아낸 제품들은 현대 여성들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기네스 펠트로 등의 할리우드 배우들뿐만 아니라 패션계의 유명 인사들 역시 그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집중력을 키우는 힘, 탐구

글을 쓰기 위해 전신주를 관찰한 작가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919~2010)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작가 샐린저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 글을 쓰고 있던 그가 갑자기 줄자를 들고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간 그는 곧바로 집 앞에 서 있는 전신주의 폭을 재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대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요?" 마침 길을 지나고 있던 노인이 그를 보고 물었다. 샐린저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는 작가인데 지금 새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신주를 묘사해야 해서 이렇게 살펴보고 있는 겁니다."


샐린저의 말에 노인이 우습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신주가 그냥 전신주이지, 뭐 별거 있소? 그냥 적당히 묘사하면 될 것을 쓸데없는 데 힘을 빼고 있구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르신."


전신주의 폭을 꼼꼼히 잰 후, 줄자를 집어넣으며 샐린저가 말했다.


"사물을 직접 보고 쓰는 것과 그냥 상상해서 쓰는 것의 차이는 확연히 다릅니다. 물론, 앉아서 그냥 생각한 대로 글을 쓰면 편하고 좋을 겁니다.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그렇게 성의 없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샐린저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훗날 그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사물을 유심히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깨달음을 얻은 스님 - 틱낫한(1926~현재)

틱낫한은 네 살 때 어머니가 장에 갔다 오실 때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의 어머니는 장에 갔다 오실 때마다 과자를 사다 주시곤 했다.


그러면 그는 항상 앞마당으로 나가서 오랜 시간 동안 과자 하나를 조금씩 베어 먹었다. 과자를 한 입 베어 먹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러다가 개를 발로 툭 쳐 보고는, 또 아주 조금 베어 먹었다.


그는 하늘과 땅, 대나무 숲, 고양이와 강아지, 꽃들과 함께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는 걱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과자, 강아지, 대나무 숲, 고양이 등 모든 것과 함께 완전하게 현재의 순간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훗날 스님이 된 그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어린시절에 아주 조금씩 과자를 먹었던 것처럼, 천천히 즐겁게 음식을 먹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미국 학자에게 틱낫한이 말했다.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앉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걸을 때 걷고 있다는 걸 알죠. 그리고 먹을 때 우리는 먹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수행은 일상생활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고, 그 의미도 안다는 뜻입니다. 내가 왜 앉고, 걷고, 먹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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