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이, 심리 읽는 엄마
1장 독서과다 - 어린 독서광, 우리 아이 심리 읽기
책은 잘 읽는데 학교 공부는 통 안 하려고 해요
3학년인 준서는 아직도 엄마가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면 교과서나 학습자료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숙제도 미루고 미루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야 대강 해치우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학습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졸음과 싸워가며 숙제를 해야 하니 당연히 실수도 많고 공부 자체도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낮에 머리 맑을 때 했으면 20분이면 다 했겠다. 그런데 이게 뭐니! 벌써 몇 시간째 이러고 있잖아!”
엄마의 짜증도 밤마다 반복되었다. 시험을 봐도 성적은 안 오르고, 특히 수학은 50점도 못 받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공부 좀 해보게 하려고 게임도 주말에만 하게 하고 TV 시청도 엄격하게 제한했지만, 준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책상에 앉아 있긴 하지만 주로 책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준서는 한 가지 주제나 어느 책에 ‘필’이 꽂히면 그 책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곤 했다.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책을 뺏어보기도 하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도 쳐봤지만, 날마다 싸움을 반복하다 아이가 상처받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요즘은 그것도 마음대로 못 하고 있다.
“다른 애들은 책을 안 보려 해서 문제라는데, 우리 준서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에요.” 준서 어머니는 자뭇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준서 어머니의 진짜 고민은 준서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읽는 데 쏟아 붓느라 학교 공부나 숙제를 게을리한다는 데 있었다.
준서를 직접 만나보니, 준서는 놀이나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많은 아이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커서 상담하는 선생님에게 금방 팔짱을 끼고 손을 잡는다든지 하는 신체적 접촉도 곧잘 하였다. 하지만 준서는 자신의 호기심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심리평가 결과, 준서의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친밀감, 놀이에 대한 욕구가 억눌려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라고 판단한 준서 어머니의 생각과는 달리, 준서의 문제는 엉뚱한 곳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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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서의 문제를 보다 다각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가족 상담을 실시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문제는 가족구성원 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 상담 결과, 준서 부모님은 아이에게 상당히 엄격한 규율을 제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엄하게 야단을 치는 편이어서 준서에게는 항상 어려운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특별히 어려운 대상은 아니었지만 화가 나면 아이를 무섭게 닦아세우는 스타일이었다. 성격적으로도 우유부단해서 평소에는 아이에게 끌려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면 크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다. 준서는 엄마와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지만 부모와 아이가 서로에게 원하는 욕구와 대응법이 다르다 보니 삐거덕거리는 상황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준서가 좋아하는 책은 주로 모험에 관한 책이었다. 비행기나 자동차 같은 탈것에 관한 책도 좋아한다고 했다. 준서가 이들 책에 집착하는 것 역시 놀이욕구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노는 것은 부모님의 강력한 금지에 부딪히지만 책을 읽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회피의 일환으로 독서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책을 빼앗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아무런 대안도 갖지 못한 아이들이 유일한 욕구 해소 방안이었던 책을 빼앗기게 되면 절망감을 느낀다. 또 어쨌거나 준서가 독서를 즐거워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독서 자체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다른 해소법을 추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이럴 때 준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와 함께 신체적인 놀이를 많이 해주는 것이다. 책으로만 풀던 놀이와 즐거움의 욕구를 현실적으로 해소함으로써 독서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숙제를 먼저 하고, 그 뒤에 엄마와 또 놀자고 제안을 해본다. 처음에는 문제집 한 장, 숙제 절반 정도를 먼저 해놓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다. 그런 뒤 목표한 학습이 끝나면 “우와! 이제 책 읽는 시간이네!” 하며 엄마가 함께 책을 보는 식이면 아주 좋다.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는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이 생기기만 한다면 그다음 과정은 한결 쉬워진다. 또 숙제를 미리 해놓으면 책을 읽거나 노는 시간도 훨씬 더 즐거워진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게 해주면, 독서와 학습의 시간 안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런 패턴이 습관이 되면 공부를 제쳐 놓고 책에만 빠져 지내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2장 독서편식 -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 아이 심리 읽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으려고 해요
초등학교 2학년인 성호는 자동차에 무척 관심이 많다. 장난감도 온통 자동차, 책도 거의 대부분 자동차에 관련된 것들뿐이다. 많은 남자아이들이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성호는 유별난 데가 있었다.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동차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성호가 이런 특별한 취향을 갖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성호 아버지가 자동차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호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거나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유난히 기뻐하며 칭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몰래 ‘피는 못 속이지’ 하는 생각이 들며 저를 닮은 아들을 드러내놓고 귀여워했던 것 같아요.”
성호 아버지의 분석은 정확했다. 성호는 자동차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화를 받아왔고, 스스로도 자신은 자동차밖에는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폭넓은 경험과 꿈을 만들어주고픈 성호 아버지는 고민이 컸다. 자신이 생각 없이 아이를 대한 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은 아이를 편협하게 만들었다는 자책도 있었다.
하지만 성호는 호기심이 많고 집중력이 뛰어나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쉽게 달라질 수 있는 아이였다. 상담 후 성호 아버지에게는 좀 특별한 과제가 주어졌다. 자동차 책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아이에게 보다 폭넓은 자동차 관련 경험을 쌓게 해주라는 것이었다. 일단 책의 내용을 자동차에서 중장비 쪽으로 각을 틀게 했다. 이 대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호가 중장비를 더 크고 멋진 자동차로 선선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공사장으로 중장비 구경 가기, 중장비 만져보기, 중장비 기사와 얘기 나누기 등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성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자동차 이야기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크고 멋진 중장비를 운전하려면 운동을 많이 해야 해. 자동차보다 더 힘이 세져야 자동차가 내 말을 잘 듣거든” 현장에서 만난 중장비 기사의 얘기를 듣더니 성호는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이라도 한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도 성호 아버지는 성호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의 연구소, 자동차 모터쇼 등 성호가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이면 어디건 성호를 데리고 다녔다. 결국 성호가 자동차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책 속에 빠져서 지내는 것만이라도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성호 아버지의 노력은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보러 다니는 동안 성호가 바깥 활동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것에도 흥미가 전이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외에 처음으로 성호의 관심을 끈 것은 강아지였다. 자동차 모터쇼 옆 전시장에서 애견쇼가 열리는 것을 보고 강아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뒤 성호에게는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다. 자동차와 강아지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알아오는 것이었다. 성호 어머니는 저녁마다 성호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며 강아지를 만나고 만져볼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강아지 주인들에게 말을 붙이면서 성호가 원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결국 성호는 강아지에 푹 빠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산책과 대화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성호는 제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세상의 온갖 일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하는 아이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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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세심하게 살펴가며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형성해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다. 아이가 새를 좋아한다면 새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분류학적인 측면에서 새는 조류다. 조류와 다른 동물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의적 측면에서 새는 하늘을 날며 알을 낳는다. 그렇다면,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알을 낳는 오리너구리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식으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또한 ‘내가 새라면’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써보게 하거나 새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 같은 활동을 시켜보면 아이의 관심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유독 좋아하는 분야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사, 과학, 동화, 판타지 소설 등 모든 분야의 책을 똑같이, 똑같은 비중으로 골고루 읽는다는 것은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필독도서를 운영하는 것도 아이들의 독서 균형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저학년은 동화나 이야기 중심의 책을 많이 읽고 고학년이 될수록 픽션을 좋아하게 된다.
또한 남녀 간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독서에 대한 선호도가 비교적 높다. 이는 학자들의 견해나 임상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여자아이들이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고,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덜 충동적이라는 뇌의 특성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장 독서거부 - 책과 거리 두는 우리 아이 심리 읽기
책을 읽다가도 금방 덮어버려요
7살 민영이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에 떠밀려 책을 펼치기는 하지만 엄마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곧 덮어버리곤 했다. 민영이에게 책은 엄마의 관심을 유도하고 잔소리를 회피하는 방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 읽는 것은 지루하고 심심해요.” 엄마와 함께 세미나에 참석했던 민영이는 책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따분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엄마가 보고 있을 때만 책을 읽고 엄마가 보지 않으면 딴 행동을 하는 민영이를 일일이 쫓아다닐 수 없어 버거워하면서도, 민영이 어머니는 민영이가 책 읽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도 교육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민영이는 몇 가지 검사를 해보니 주의집중력이 또래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민영이 어머니에게는 매우 세부적인 단계별 지침이 주어졌다. 우선 처음 1주일 동안은 날마다 5분씩 엄마가 책을 읽어준다. 아이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데, 이때 책은 아이가 직접 고르게 하면 더욱 좋다. 아이가 어떤 책을 읽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면 엄마가 두세 권 정도 먼저 제시한 뒤에 고르게 하면 된다. 그다음 1주일은 엄마와 민영이가 한 단락씩 번갈아가면서 읽는다.
이 활동은 하루에 10분 정도가 적당하다. 여기까지 아이가 잘 따라오면 3주째부터는 보다 다양한 활동을 시작한다. 하루 20분 정도 책읽기를 하는데, 한 단락을 읽고 난 뒤 문장 바꾸기 놀이를 통해 책 읽는 것이 재미있는 놀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문장 바꾸기 놀이는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의문문을 감탄문으로, 감탄문은 감탄소리로 바꿔보는 것이다.
이렇게 5분, 10분 단위로 책 읽는 시간을 늘려가다 보면 아이의 주의력이 빠르게 신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의 주의집중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채 책장에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읽으라고 강요한다면, 아이는 점점 더 책에서 멀어져버리고 만다. 아이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부모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아이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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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연령별로, 개인별로 모두 다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TV 프로그램이 10분, 20분 만에 완결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아이들은 어른들만큼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을 수 없다. 아이들의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은 관심사가 어른들과는 다르다. 어른들이 의미적인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직관적인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어른들이 추상적인 기술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비해 아이들은 구체적인 기술에 관심을 보인다. 퍼즐 맞추는 것을 예로 들면, 어른들은 인물의 머리 모양이나 하늘 색깔처럼 퍼즐의 의미를 해석해서 맞춰가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퍼즐의 모양을 보고 맞춘다. 또 가을 하늘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말할 때 어른들은 ‘푸른 하늘이 가슴 시리다’라고 표현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그냥 ‘파랗다’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에 집중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책을 읽다가 금방 싫증을 내는 것이 아이의 발달단계상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닌가부터 점검해보아야 한다. 7살짜리 아이가 1시간 동안 책을 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없다. 나이가 어리고 책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작고 짧은 책을 먼저 읽게 해서 책에 대한 부담감을 완화해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물론, 책을 읽다가 금방 덮는 아이는 책읽기 자체에 큰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책보다 더 재미있는 다른 놀이가 가까이 있는데,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장난감을 바꿔가면서 노는 것이 보통인데, 책 또한 그런 장난감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불필요한 걱정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장난감이나 놀이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가 책만 재미없어한다면 부모로부터 책읽기를 지나치게 강요받고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라고 하는 일보다는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더 재미있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이가 자발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흥미를 유발시켜주어야 한다. 최근에 아이가 경험한 일과 관련이 있는 책을 읽게 한다거나 어머니가 책을 먼저 읽고 중간 중간에 재미있는 말 등을 적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감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또래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넓히는 것이다.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가 착하고 순하고 똑똑한 아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책뿐만 아니라 다른 장난감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서적으로 우울이나 불안을 갖고 있는 경우일 수 있으므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또 실제로 집중력이 부족해서 진득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독서활동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전문가들과 상담해보는 것이 좋다.
4장 독서습관 - 책에 서툰 우리 아이 심리 읽기
책에 낙서를 하고 보란 듯이 찢어놓아요
정훈이의 책 중에는 멀쩡한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정훈이는 책에 낙서를 하고 책장을 구기는 것은 물론, 연필로 구멍을 내서 책장을 찢어버리는 일까지 벌이곤 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손을 놀리느라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아이가 책마다 낙서를 하는데, 참아 넘기는 데도 한계가 있네요.”라며 정훈이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정훈이는 책을 찢는 것에 대해 “그냥 신경질이 나서요.”라고 대답했다.
“왜 신경질이 나는데?”
“엄마가 잔소리를 하니까요.”
“그럼 책 때문에 신경질이 난 것은 아니구나.”
“…….”
아이들이 책에 낙서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책 속에 있는 그림에 자기만의 표정을 그려 넣는다든가 남자를 여자로 만들어놓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일은 그냥 장난일 뿐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아직은 책을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개념이 없는 데다 책장의 여백을 찾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또 낙서란 게 한두 번 하다 보면 금방 습관이 되어 책을 읽다 조금만 주의가 흐트러지면 으레 연필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서 연필로 책장에 구멍을 내서 잡아당긴다거나 일부러 책장을 찢어내는 행동, 책을 읽으면서 책장 끝을 잡아 뜯는 행동 등은 원인을 찾아 해소해주어야 한다. 독서를 피하려고 하거나 독서습관의 문제로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 원인은 아동의 인지적인 문제보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는 경우가 더 많이 때문이다.
임상 경험으로 보건대, 책을 피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는 대개 부모의 일방적으로 지시적인 독서환경이 원인이 된다. 앞서 얘기한 정훈이도 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아이들은 욕구가 좌절되었거나 욕구 좌절이 예측될 때 마음속에 쌓인 화를 적절히 풀어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곤 한다. 이럴 때 책은 매우 만만한 대상이다.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더 큰 꾸중으로 이어질 것을 알기에 책을 찢는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파괴적인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특히 부모가 책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해왔다면 아이들의 이 같은 반응은 부모에 대한 공격성의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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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속마음 엿보기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아이로서는 적응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나 숙제에 대한 압박감, 다른 형제나 친구들과의 비교 등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화를 풀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러니 손쉬운 책을 상대로 분풀이를 한다. 자신의 감정을 견뎌내고 분출하기 위한 가장 가까운 통로를 찾아낸 것이 하필 책이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책을 손상시키는 습관이 있다면,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때는 아이가 책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책을 손상시키고 책에 분풀이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정상적인 독서활동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분노 조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 감정적으로 흥분하면서 야단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은 그런 행동을 그만두는 것 같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부모는 그저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야단을 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된다는 것은 아이가 그러한 상황을 자꾸 만들어내야 할 만큼 심리적인 상처가 크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일단 부드럽게 행동을 제지하고 마음을 읽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구나!”, “네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부모가 이렇게 공감하려는 태도로 접근할 때 거칠게 저항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일단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켜놓고, 더 좋은 합일점을 찾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고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