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를 놓아주세요!

   
마르쉘 뤼포(역자: 정재곤)
ǻ
큰솔
   
9800
2007�� 06��



>■ 책 소개
부모와 아이의 올바른 관계맺기에 대한 자녀교육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맺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똑똑한 사랑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마르셀 뤼포 교수는 오랜 기간 동안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한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거리 조절에 실패하여 문제가 생겼던 사례를 들려주고 그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심리학적인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 저자 마르셀 뤼포
프랑스 마르세유 대학의교수이자 아동정신과 의사로, 오랫동안 마르세유의 생트 마르그리뜨 병원에서 임상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파리에서 "청소년의 집"을 운영하고있는 탁월한 임상의일 뿐만 아니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 『형제와 자매』『너, 오이디프스!』『아이의 욕망』 등이있다.


■ 역자 정재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및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현재 출판 기획 및 번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가난한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외젠 앗제』『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세기의 눈』 등이 있다. 


■ 차례
여는 글 - 아이는 엄마와의 첫관계를 통해 세상을 정복해나갈 힘과 자신감을 길러낸다 


1. 엄마와 아이는 태초에 한 몸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분리되어야 한다 
애착은 신체적인 접촉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 어느 시기보다생후 6개월이 중요하다 
이른 헤어짐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2. 성장이란 헤어지는 일이다 
엄마와 아이사이에 아빠도 있다 
헤어짐에도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엄마가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다 
아이의 거짓말은 성장하고 있다는증거이다 


3. 엄마에게 집착하는 아이는 성장마저 거부한다
어리광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엄마와 떨어지지 못하면 학교를 두려워하게 된다 
처음에는 부모의 관심을 끌기위해서였다 
떨어지지 못하면 홀로서기는 불가능하다 


4. 질병이나 장애는 분리를 어렵게 한다
부모가 아프면 아이가 부모 역할을 한다 
질병은 과도한 애착관계를 부른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더라도 분리는필요하다 


5. 부모의 이혼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겪는다 
아빠의 공백이 엄마와 아이를 강하게 묶는다 
차라리 고통을 드러내는 편이낫다 


6. 죽음이 진짜 이별은 아니다 
아이들은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죽음 뒤에도 관계는 이어진다 
상실의 경험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 
죽음을 접한 아이에게는 이별의시간이 필요하다 
죽은 이와의 관계를 매듭지어야 현실이 보인다 


7. 기억과 망각은 이별의 고통을 덜어준다
놀이는 아이가 불안함을 잊게 해준다 
집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는 곳이다 


8. 청소년기는 어린 시절과 작별하는 시기다
아이는 새로 시작하기 위해 가출한다 
친구는 부모를 대신하는 새로운 애착 대상이다 
사춘기의 사랑은 성인기로들어가는 입장료이다 
부모와 멀어져야 새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부모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중독이다 


9. 자신의 근원을 알아야 안정된 자아를 형성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부터 돌아봐야 한다 
아이의 탄생이 기쁨이었음을 믿게 해야 한다 
입양아는 더 많이 사랑받고 보호받기를바란다 


맺는 글 - 세상의 모든 부모는 언젠가 아이가 드넓은 바다를 혼자서 항해하기를 꿈꾼다




엄마, 나를 놓아주세요


적절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분리되어야 한다

삶이란 곧 이별이다. 자율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다. 헤어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이가 자라나고 새로운 능력을 터득하면서 스스로 헤어지길 원하는 자연스러운 이별이 있는가 하면, 엄마의 입원처럼 고통스럽고 극적인 성격을 띠는 강요된 이별도 있다.


1945년, 정신분석학자 르네 스피츠는 엄마와 일찍 떨어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태어나서 18개월이 될 때까지의 정서적 결합 때문에 생기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통틀어 "입원성 장애"라는 항목으로 분류했다. 여기에는 아이가 버림을 받은 경우, 장기간 보호기관이나 병원에 입원했던 경우, 엄마와 반복해서 떨어져 지내야 했던 경우, 그리고 엄마의 보살핌이 부실한 가운데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경우까지 포함된다.


스피츠가 관찰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되면 아이는 처음에는 몹시 슬퍼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잘 울고, 자기 곁에 있는 어른들에게 막무가내로 매달리면서 접촉을 꾀하려 한다. 둘째 달에 접어들면 여전히 슬퍼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접촉하려고 애쓰는 강도가 약해진다. 신체 발달에 장애가 생기고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석 달째에 접어들면 아이는 불안해하면서도 모든 것에 무관심해져 접촉을 거부한다. 대개는 늘 엎드려 있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먹을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정신운동적(psychomoteur) 지체가 나타나 다른 아이들보다 활력이 떨어지고 잘 앉지도 못하고 걸으려 하지도 않는다.


엄마와 석 달 이상 떨어져 지낸 아이는 얼굴 표정이 유연하지 못하고 시선에 구심점이 없다. 잘 웃지 않으며,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도 않는다. 대신 똑같은 동작이나 몸짓을 반복하면서 신음소리를 내곤 한다.


엄마와 어려서 떨어졌을수록 장애는 더욱 심각해진다. 물론 엄마와 다시 만나면 증세가 호전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가 엄마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시기인 생후 3개월과 8개월째 사이에 엄마와 다섯 달 이상 떨어져 있으면, 장애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아이가 6개월째가 되면 벌써 엄마를 웬만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아직은 안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아이가 정상적으로 지내지 못하면 정신운동적 지체를 나타내고 면역 체계도 약해져 쉽게 아프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기질성 장애나 심각하게는 자폐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자폐증은 심리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히는 일종의 정신분열증이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에게 현실 세계는 꿈처럼 보이며, 타인과의 교류도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에는 아이가 병이 들었다고 엄마와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피츠가 살았던 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때 사람들은 아이가 단지 음식물이나 삼키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피츠의 관찰은 소아학과 신생아학에 혁명을 불러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아이도 감각과 감정(물론 초보적인 감정) 능력을 지닌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는 음식물 섭취나 위생 상태에 대한 생리적인 욕구뿐 아니라 사랑을 받고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정서적인 욕구도 충족시켜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분리 과정은 아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헤어짐에도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어린아이를 정복자에 비유하곤 한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탐욕스럽다. 또 구속에 얽매이려 하지 않고 미지의 광활한 대지를 찾아 나서며 겁 없이 산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능력과 역량을 북돋워주는 훈련사이다. 부모의 뜨거운 성원을 받는 아이들은 세상의 새로움에 직면해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헤쳐 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아이가 하루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지낼 수는 없다. 성장하여 새로운 자유를 쟁취하려면 앞서 모든 종류의 어려움을 맞이해야 한다. 걷기 전에는 네 발로 기거나 엉덩이로 움직이는 시절을 겪어야 하고, 마침내 한 발짝을 떼게 된 후에는 언젠가 드넓은 세상으로 탐험을 나설 수 있게 된다.


요즘에는 유아원 보모들도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서서히 떨어지는 훈련을 쌓아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와 떨어져 있는 상황에 점진적으로 적응하도록 이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있다가, 조금 지나면 아이를 반나절 떨어뜨린 채 두다가, 드디어는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하루 종일 엄마 없이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잠 또한 분리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잠자는 습관을 점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아이를 침실에 혼자 놔둔 채 문을 닫아버리고 아이가 울부짖다가 지쳐서 잠에 곯아떨어지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아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부모와 서서히 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 방에 작은 불을 켜놓는다거나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아서 아이가 부모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면 혼자 고립되었다거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덜 줄 수 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고 어루만져주면서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접 말로써 안심시켜주는 것도 좋다. "엄마 아빠가 네 곁에 있단다. 네가 부르면 바로 올 수 있도록 말이야."


또한 아이에게 억지로 잠을 자도록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잠들기 전에 조금은 장난을 치도록 내버려둔다. 아이가 잠이 든 뒤에는 정기적으로 가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아이들이 유별난 의식을 행하는 것은, 의식을 행할 때만큼은 그 시간과 장소를 자기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려는 것이다.


한편 아이들이 치르는 의식은 반복적이기 때문에 학습에 도움을 주는 면도 있다. 누가 구구단을 표만 한 번 슬쩍 보고 바로 외울 수 있단 말인가? 외우고 또 외우고 때로는 틀리기도 하고 도저히 못 외울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조금씩 외워서 나중에는 구구단 전체가 입에서 술술 나온다.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훈련도 구구단이나 마찬가지이다. 학습을 통해 단계적으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2단으로 시작했다가 드디어는 8단과 9단을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손가락을 빨고,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시간에 맞춰 불을 끄고, 자명종을 맞춰놓고, 창문을 열고(또는 닫고), 물이나 뜨거운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이불자락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고…. 어떤 아이든지 나이에 따라 잠자리에 들기 전 강박적으로 행하는 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것일까? 아이에게 잠을 잔다는 것은 부모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음을 뜻한다.


넓게 볼 때, 잠을 잔다는 것은 자기 자신, 자신의 삶에서 멀어짐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잠을 자는 동안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떨어지는 순간이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순간이다. 잠시나마 자신을 버릴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뭐든 되는 대로 내버려두고 긴장을 푼 채 자신을 방어하거나 보호할 필요도 없이 무기를 내던지는 감미로운 순간이 될 것이다.



아빠의 공백이 엄마와 아이를 강하게 묶는다

이혼이 힘들게 이루어지면 흔히 엄마와 아이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생기곤 한다. 반면 아이가 아빠와 융합 관계를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혼하고 나면 엄마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 집중되어 배우자에게 주지 못했던 애정까지 모두 아이에게 쏟아 붓는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의 빈자리를 메울 생각에서 어릴 적 엄마와 맺었던 관계로 되돌아가 상처 입은 엄마를 위로하려 든다. 그래서 엄마나 아이 모두 아빠에 대한 반발심에서 이별에 따른 공백을 채우려고 강한 융합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관계가 잠시 동안 위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엄마 입장에서는 배우자를,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를 잃어버린 현실을 잊게 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결합은 아이의 성장을 저해한다. 결합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물론 이혼했던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정신과 의사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남녀 간의 사랑을 인위적으로 맺어줄 수는 없다.


흔히 말하기를, 아이는 부모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쪽 편을 든다고들 한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약한 쪽 때문에 다른 쪽 부모가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지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부모 입장에서 볼 때 배우자의 약점은, 결별의 책임까지는 아닐지라도 원인 제공을 했던 셈이며, 아이 시각에서 볼 때도 부모의 약점은 강력한 부모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는 약한 쪽 부모와 한 몸이 된다. 어떻게? 바로 아이가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아이조차 제대로 간수할 능력이 없는 부모와 역할을 맞바꿔 부모의 부모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약점이 있는 부모에게 지지대가 되어주고 각별한 관심을 베풀며, 매일매일 돌봐주고 심지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을 때도 있다. 또한 아이는 다른 쪽 부모가 새로 사귀게 된 애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기까지 한다. 때때로 엄마는 아이들이 전남편의 새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금지시키기도 하고, 아이들을 만나러 온 아빠는 전 부인의 새 배우자가 그 자리에 없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혼하고 나서 한쪽 부모가 새로운 상대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마치 예전 배우자와 완전히 헤어지지는 않은 듯한 상황이 벌어진다. 아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직 새 짝을 찾지 못한 쪽의 부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홀로 남은 부모가 어서 재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결코 잊지 않는다.



친구는 부모를 대신하는 새로운 애착 대상이다

청소년은 불확실성과 질문․의심으로 가득 찬 시기를 통과한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청소년은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줄 만한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그리고 바로 그 이미지를 절친한 친구나 이성 친구, 또는 자기가 원하는 이상적인 장점을 두루 갖춘 인물에게서 찾게 된다. 이런 까닭에 청소년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친구란 결점이 전혀 없고, 자기가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온갖 장점을 갖춘 완벽한 존재일 것이다. 일찍이 『수상록』의 저자 몽테뉴는 절친했던 친구 라보에티와의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였고, 동시에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달리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라는 존재는 나 자신이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바로 내 모습이다. 결국 가장 절친한 친구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친구라고 내세우는 존재는 대리인일 뿐이다. 자기 자신의 뼈대에 살을 입히고, 자기 자신의 생각과 정복 욕구, 대담성, 상상력 따위를 투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분리될 수 없듯 청소년기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떨어져서 지낼 수가 없다. 마치 쌍을 이루어야만 키울 수 있는 새들처럼 말이다. 교문을 나서면 한 사람의 집까지 따라갔다가, 그러고 나서도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이번에는 상대 친구의 집까지 바래다주고, 또다시 바래다주고…. 마침내 둘 중 하나가 잠시 있을 생각으로 친구 집에 머무르게 되지만 저녁이 될 때가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침내 헤어지고 나서도 두 친구는 못내 아쉬워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한다. 청소년은 오로지 현재만이 지속되는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두 친구는 서로가 지금 이 순간 마치 연인 관계를 방불케 한다. 두 친구는 끊임없이 만나고 말을 주고받고 뭔가를 함께하고 꿈이며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청소년기의 절친한 친구는 마치 자기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도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사귀는 친구는 부모와 기꺼이 떨어지게 하는 분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약간은 역설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청소년은 가족과 떨어지길 원하면서도 자기 친구에게는 달라붙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친구는 좋은 점에서나 나쁜 점에서나 비교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가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건 가족은 청소년에게도 필요하다.


절친한 친구가 누구인지를 보면 그 청소년의 자질을 파악할 수 있다. 내면이 탄탄해서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는 태도를 가질 때, 또는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인정할 줄 알게 되어야 절친한 친구를 떠날 수도 있다. 벌써 자기 자신을 정복했으므로 굳이 절친한 친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토록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비록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마음으로나마 친구를 형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절친한 친구일수록 한때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상상해 오던 바가 사실이라고 계속 믿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깨졌을 때의 상실감은 치유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평생에 걸쳐 친한 친구 관계를 계속 만들어 나간다. 친구들을 통해 젊은 시절 겪었던 가슴 찡한 관계를 잃지 않고 유지하려는 욕망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청소년 시절의 친구들은 영광스러운 미래를 꿈꾸는 과정에서 만난, 이상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투사했던 존재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꿈은 줄어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강렬한 친구 관계는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진다. 절친한 친구의 존재이유가 덜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년에 이르면 좀처럼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가 쉽지 않을 것일까? 미래가 줄어들기 때문에 꿈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도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