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이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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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
   
12000
2005�� 03��



>■ 책 소개
자녀 셋을 세계적인 음악가로, 나머지4남매를 교수와 사업가,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의사로 키워낸 "조기교육"의 선구자, "극성 엄마"의 원조 이원숙의자서전.


오래 전 화제가 된 바 있는 그의 교육기가 오늘날 다시 궁금한 이유는 갈수록 "아이를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이 시대 부모들에게 그의 너무도 다양한 경험들이 시대를 초월한 답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날 명성을 안기까지 겪었던 좌절과 실패, 각기 개성이 다른 아이들을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각각 재능과 적성을 찾아주기까지 그의 정성과지혜로운 자녀교육 방법이 담겨져 있다.


■ 저자 이원숙 
191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원산 루시여고를 거쳐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1년간 공부한 후 귀국해 정준채 씨와 결혼했다. 결혼 직후동덕여고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1962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전 가족이미국으로 이주, "코리아하우스"라는 한식당을 열어 7년간 운영했으며 한국에서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을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11년간의 사업을 정리한 후 미국 벨리폴지 신학대학에 입학, 만학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1990년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오늘날까지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음악계의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싹회 어머니상(197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1990년), 자랑스런이화인상(1995년), 제6회 기독교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1. 내 교육관의 뿌리, 부모님의 평등교육
내 인생의 방향타가 되어주신 부모님 
아버지, 아버지가 아니셨다면 
공부 못하는 딸 
강인한 생활력을 물려주신 어머니
어머니의 정성으로 키워낸 1등 졸업생 


2. 일곱 남매의 재능을 찾아준 맞춤교육 
자녀교육의 최우선 원칙은 부부의 일관된양육태도 
부모가 아이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 세 가지 
조기교육에는 극성을 떨어도 좋다 
아이의 적성과 재능 파악하기
아이와 호흡 맞는 선생님이 최고 스승 
아이에게 물려줄 빛나는 자산, 튼튼한 체력과 올바른 습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음악교육의 핵심은 풍부한 감성 길러주기 
성공한 사람과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의 차이 
어려움을 아는 아이일 수록 최선을다한다 
아이가 소중하다면 노동의 참맛 가르쳐야 
형제간의 경쟁심 자극이 아이를 망친다 
기회를 최대한 열어주는 것이 부모가 할일 
큰 세상으로 내보내라 
자기와의 눈물겨운 싸움이 진정한 천재를 만든다 
선택은 네가 해라 
최선의 교육은 함께공부하는 것 
부모는 아이의 가장 믿음직한 비평가이자 옹호자 
때론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품 넓은 부모가 아이도 크게키운다 
일곱 아이를 두루 돌볼 수 있었던 중점주의 교육 


3. 지날수록 소중한 시간들 
한 순간도 헛되지 않은 삶 
반성은 하되 후회는하지 말자 
배움의 길에는 나이가 없다 
예순여섯 나이에 신학생이 되다 
후진양성의사명감





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1. 내 교육관의 뿌리, 부모님의 평등교육

내 인생의 방향타가 되어주신 부모님

사람들은 일곱 남매 중 세 아이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내고 다른 네 아이 또한 모두 사업가와 교수, 의사 등으로 키워낸 내게 뭔가 독특한 교육법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남달리 독특한 교육법으로 아이들을 키워낸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아이들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교육법은 내 부모님이 나를 키우신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평생 나와 언니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해라, 하지 마라 말씀하신 적이 없다. 아버지의 품 넓은 교육관과 온갖 장사를 해가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두 딸을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킨 어머니의 교육열은 내가 일곱 남매를 키우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부모님의 교육방식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인격존중과 평등교육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아이라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셨다. 그뿐 아니라 딸도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셨다. 그래서 나는 평생 아버지께 야단 한 번 들어본 일이 없고 매 한 번 맞아본 기억도 없다. 심지어 "그건 그렇지 않다"는 말씀조차 듣지 못했다. 아무리 자식을 인격체로 대하려 해도 철모르는 아이니 말썽을 부리고 말도 안 되는 떼를 쓴 적도 있을 터인데 그럴 때조차도 아버지는 교훈이 될 만한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주시며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때를 기다렸다.


이런 태도는 자식을 믿지 못하면 절대로 보여둘 수 없다. 당장은 실수를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고 스스로 깨달았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뭔가를 성취해낸다는 신뢰가 있어야만 야단치거나 강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면 자식 또한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를 통해 체득했다. 그래서 나 또한 내 아이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격체로 대하며 함부로 하지 않고 키울 수 있었다.


공부 못하는 딸

"어허, 이거 병정이 칼을 죽 차고 나왔구나. 그렇지만 이런 건 다 소용없다. 사람만 되면 된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통신부(성적표)를 받아 볼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갑을 병정으로 평가하는 통신부에는 언제나 갑과 을보다는 병과 정이 더 많았다. 내가 공부를 못했던 것은 일본어 때문이었다. 일본어를 모르면 따라갈 수 없는 국어와 역사, 지리 등의 과목은 늘 바닥권이었고 그나마 일본말을 몰라도 타고난 숫자 감각으로 공부할 수 있던 산수 성적만 월등히 좋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늘 이렇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공부는 못해도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배화여고에 다닐 때 일종의 결핵 질환인 척추 카리에스를 앓은 후 철이 들었다. 한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심하게 앓던 나는 병을 이겨낸 후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기쁨에 새출발을 다짐했다. 건강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럽던지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며 공부에 열을 올렸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스스로 공부하게 되기를 기다리신 것 같다.


무엇이든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법이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즐거운 과정인지를 깨닫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했으며 자연히 성적도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아마 아버지가 그때 내 성적을 탓하며 공부를 강요하셨다면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자책하며 자신감을 잃었을지 모른다.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을 기르며 공부 못했다고 야단을 친 기억이 없다.


나는 자식을 모독하는 것만큼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치는 것도 결국은 자식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원인은 두 가지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머리가 따라주지 않거나 아직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해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일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를 야단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지 않아도 성적이 안 올라 주눅들고 속상해하던 아이는 그나마 노력조차 할 의욕을 잃고 부모를 야속하게 생각할 것이다. 또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해 노력을 게을리 하는 아이라면 부모가 아무리 야단쳐도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몰라 공부하는 시늉만 하면서 부모를 속이려고 들 수도 있다.


부모로서 공부 못하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물론 속상한 일이겠지만 꾸중보다 칭찬을 해가며 아이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내 아버지를 통해 깨달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실감했다.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하셨든 어떻게든 구실을 달아 "노래도 잘하는 애가…" 하는 식으로 그럴 듯하게 설득하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2. 일곱 남매의 재능을 찾아준 맞춤교육

부모가 아이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 세 가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들의 실수를 야단치지 않는 것이며, 셋째가 칭찬거리가 아닌 것을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성적이 오르거나 기특한 행동을 했을 때 뭔가를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지키지 않거나 아이에게는 하지 말라고 한 언행을 부모는 무심코 하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본다.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사소해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인식조차 못 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거짓말이 된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부모에게 실망하게 되고 같은 일이 반복되면 더 이상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아이의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들이 흔히 잘못하는 또 한 가지는 아이를 야단쳐야 할 때와 덮어주어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따끔하게 야단쳐야 하지만 실수를 했을 때는 모른 척 넘어가거나 격려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다가 이불에 오줌싼 아이를 야단치는 부모를 본 적도 있다. 오줌을 싼 것만으로도 잔뜩 기가 죽은 아이에게 야단까지 치는 것은 아이를 궁지로 내모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르는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더구나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경험하고 성장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잘 모르거나 미숙해서 저지르는 실수까지 자꾸 야단치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는 의욕을 잃고 부모에 대한 반감만 느낄 뿐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칭찬거리가 아닌 것을 함부로 칭찬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넌 너무 예뻐", "너무 똑똑해" 하는 식으로 무턱대고 아이를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아이가 예쁘고 똑똑해 보이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칭찬은 자칫 아이를 오만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 외모나 능력이 남보다 못하다는 판단이 들게 되면 자꾸 남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열등감에 빠질 수도 있다. 칭찬은 아이를 격려하는 것이지 우쭐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애정과 신뢰는 표현하되 칭찬할 거리가 있을 때만 칭찬해야 한다. "머리를 그렇게 묶으니 예쁘다" "한번들은 노래를 그렇게 잘 따라 부르니 참 똑똑하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아이도 부모의 칭찬을 수긍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이의 적성과 재능 파악하기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물어온다.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모두 그렇게 성공했느냐고. 그러나 내가 한 일은 단지 그 애들을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바르게 인도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누구나 타고난 재능은 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의 싹이 보이는 분야를 함께 찾아주는 일, 타고난 재능의 싹을 죽이지 않도록 적절한 교육과 훈련으로 일찍부터 재능을 계발해주는 일이 바로 부모가 할 일이다.


내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그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피아노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명소는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피아노 연습에 열을 올린 반면 명근이와 명화, 경화는 레슨 시간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피아노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선생님은 네 아이 모두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했고 실제로 아이들의 진도도 빠르고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피아노를 계속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는 데 부모의 욕심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아이가 어디에도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걱정하는 부모들 중에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 사교육을 시키면서 그중 어느 한 곳에서 아이의 소질이 엿보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교육은 대개 예체능이나 공부와 관련된 분야에 편중돼 있는데 거기서 소질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가 예체능이나 학습에 소질을 보일 수는 없는 법. 그쪽으로는 소질도, 취미도 없지만 대신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거나 장사에 흥미를 보일 수 도 있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남다를 수도 있다.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려면 부모의 욕심을 앞세우지 말고 아이를 개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아이가 잘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다면 나는 좋아하는 분야 쪽으로 재능을 살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하는 분야라면 당연히 좋아할 수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분야라면 더욱 잘하기 위해 애쓸 것이므로 사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잘한다는 칭찬에 혹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를 선택했을 때는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이 달리는 법이다. 그런 선택은 세찬 파도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과 같다. 반면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야라면 자기 실력이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될 때 더욱 훈련에 열중해 결국 좌절이나 열등감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3. 지날수록 소중한 시간들

후진양성의 사명감

1990년 5월, 나는 거의 11년 만에 한국에 발을 디뎠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어쩐지 나를 기다리는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고국에 돌아와 몇 달 동안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음악회를 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왕이면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고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내심 품고 있었다.


"아, 내가 지금까지 꼭 해야 할 중요한 숙제 하나를 외면하고 있었구나."

우리 아이들이 장차 하고 싶다던 그 일, 후진양성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나이 많은 어머니가 이젠 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일단 할 일이 생기자 다시 기운이 솟았다. 그렇게 해서 세화음악단이 출범했다. 나는 세화음악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음악재단이 우리나라 음악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렵게 음악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세계의 유명한 연주자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열었으며 내실 있는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음악재단 산하에 세화예술협회를 두어 오케스트라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케스트라는 자금난으로 7년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앞으로도 나는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후진을 양성할 생각이다. 그 길을 충실히 가기 위해 지금 몰두하고 있는 일이 바고 세화음악재단을 세계적인 장학재단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인재를 한 명이라도 더 세계 무대로 내보내는 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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