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생전에 꼭 해드려야 할 일들

   
정희성
ǻ
김&정
   
8500
2005�� 05��



>■ 책 소개


  
  
    
"부모님 살아생전 섬기기를      다하여라!"는 미래시제가 없다는 경구입니다. 
      

내 그대 사랑했다네! 사랑의 과거시제입니다. 내 그대 사랑한다네! 사랑의      현재시제입니다. 내 그대 사랑하려네! 사랑의 미래시제입니다. 남녀의 사랑이라면 옛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과거 현재, 더 나아가      미래시제이건 상관없겠지요.


      

"부모님 살아생전 섬기기를 다하여라!"는 미래시제가 없다는 경구입니다. 늦기      전에, 생각난 김에 현재진행형의 "지금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과 연애하자!"고 열여덟 편의      고백을 묶어봅니다. 불효자클럽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제 주위에 넘쳐나는 이 시대 동갑나기 불효자들의 참회와, 불효자들이 해야 할      효도를 대신해준 이 시대의 선한 누이들과 아내들에게서 엿들은 얘기를 논픽션과 픽션의 혼합이라는 형식을 빌려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로 때우는 어버이날이 더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365일 동안 하루같이 기다리는데, 생신 때나 어버이날만 호들갑을 떠는 일을 더는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무덤자리에 퍼질러 앉아      울고불고 하는 "청개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아, 부모님 생전에 한 번 더 어깨를 주물러드리려고 달려갑니다. - 서문      중에서


&부모님께 현재진행형의 "지금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자. 이 책은 열여덟 편의 감동적인 예화로써 자녀들이 일상에서 혹은 기념일을맞아 부모님께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이벤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 저자 정희성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시문학을 배우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1983년 「女苑〉」의 기자로 잡지인의 길을 걷기 시작해, 「행복이 가득한집」「마리끌레르」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1993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단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출판 및잡지 편집기술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차례
"열아홉 살 꽃님이"로 부활하는마술 
포스트잇 편지를 씁니다 
여기가 아버지 묏자리입니다 
3대째 가족사를 엮은 가족사진 전시회 
추억의 은하철도 여행,고향 마을을 찾아서 
어머니 고향엔 아직도 복사꽃이 필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게 해드리세요! 
이 돈,어머니만을 위해 다 쓰세요! 
아이들만 부모님께 보낸 "아름다운 비행" 
신혼여행 한번 다녀오세요! 
부모님께도 팬덤이있었잖아요? 
"사랑과 영혼" 찍고 왔습니다! 
평생 농군인 아버지께 되찾아드린 "땅" 
삼청공원엔 아직도 두 분의 속삭임이맴돌까요? 
"카사블랑카" 한 번 더 보실래요? 
"리즈 테일러"라야만 야한 속옷 입나요? 
전기 없는 마을에 모시고 가 "백투 더 퓨처!" 
양가 부모님을 함께 모신 "참 좋은 어버이날" 





부모님 생전에 꼭 해드려야 할 일들


Tip 1

어머니에게 일주일 일곱 번, 요일마다 다른 사랑의 멘트를 전하세요.


월요일, 엄마 사랑해! 날 낳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화요일,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국이 제일 맛있더라, 식당 된장국은 돈이 아까워!

수요일, 엄마가 먼저 죽으면 나도 먼저 따라 죽을거야! 건강해야 돼 엄마!

목요일, 나 오늘 엄마 젖 먹고 싶어! 우유는 싫다, 울 엄마 젖을 달라!

금요일, 엄마, 늘 내가 전화 먼저 끊어서 미안해! 오늘은 엄마 얘기 맘껏 다해요! 다 들어 줄게!

토요일, 엄마는 세상에서 누가 젤 이뻐! 나지, 맞지! 엄마 닮았거든!

일요일, 엄마, 나 오늘 엄마 위해 기도했어! 이렇게 키워줘서 너무 감사해요.



포스트잇 편지를 씁니다

한 어머니가 아이의 도시락에 날마다 쪽편지를 넣어 보냈습니다. 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등등 아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해대는 잔소리가 아니라 사랑을 적었습니다.


너는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이란다, 무엇보다 네가 올바르게 자라나는 것은 내 최고의 기쁨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내게 주신 것에 늘 감사드린다 등 자녀 교육의 본보기가 될 만한 도시락 사랑고백을 담아 보낸 것이지요.


사랑이 전제가 되는 모든 일은 이래서 노동이 아닌가 봅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 라고 조건을 달지 않고, 네가 못났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공부를 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 앞에선 매일매일 쓰는 도시락 편지는 노동이 아니라 기쁨이겠지요. 한 어머니의 도시락 편지가 책이 되어 나오고, 이를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시락 편지 신드롬 이 생겼다지요.


아내들이 남편에게 도시락 편지를 보냅니다. 매일 사랑해요, 어려워도 우리 가족을 생각하고 힘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뿐입니다라고 남편의 용기를 북돋고 아내의 지순한 사랑을 고백하는, 기쁜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아내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의 편지든, 사랑하는 그이 또는 그녀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음식을 싸는 마음가짐으로 접어 보내는 곁사랑의 편지든, 분초를 다투며 정보가 쏟아지고 동영상 메일로 소통을 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로선 신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쓰고 또 써도 성에 차지 않아 산더미처럼 구겨진 폐지를 쌓아 올리던 그 불면의 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병증이었습니다. 연애편지 쓰기라면 누구도 청마 유치환 선생을 못 따라갈 것입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 청마는 주일학교에서 만난 여학생에게 매일 편지를 씁니다. 청마는 귀국해서 당시로는 드문 신식 결혼식을 통해 아내를 맞는데, 일본에서 편지로 애틋한 정을 고백하던 바로 그 여학생입니다.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청마는 연애편지 부문에서 이제 고수 정도가 아니라 지존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청마가 쓴 편지는 무려 5천 통에 이릅니다. 그 모두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같은 학교 교사이던 아홉살 연하 정운 이영도 시조시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연서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그들의 사랑은 플라토닉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통영에는 청마거리라고 하여 시인을 기리는 거리가 있고, 그 시절 청마가 정운에게 편지를 부치러 하루에 한 번꼴로 들르던 우체국이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외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복 이라는 시에 나타나 있는 그 우체국입니다. 청마는 정운을 끔직하게 연모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절절한 고백 끝에 묻어나는 역설의 행복에 청마는 그렇게 취해서 살았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오로지 한 사람만을 해바라기 하는 일은 고금을 따져도 공통된 숙명입니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조선조 4대 여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매창의 시조를 보아도 사랑과 별리,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그리움이 절절합니다. 청마와 매창에는 언감생심 발치도 못 따라간다고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존재와 사랑을 확인하는 통로로 여전히 편지를 애용합니다. 요즘은 핸드폰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말입니다. 문득 핸드폰을 열어봅니다. 저장공간 부족! 이라는 메시지가 뜰만큼 핸드폰은 소화불량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어머니의 흔적, 아버지의 숨결은 없습니다.


편지를 쓴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훈련소에서 잘 지냅니다. 용돈 좀 부쳐 주세요라고 짧게 써 부친, 그것도 불효막심한 아양만 잔뜩 늘어놓았던 이등병 시절의 편지가 떠올라 얼굴이 붉어집니다. 내친 김에 쪼르륵 달려가, 이번엔 철든 아양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아파트 옆 강변 공원에 산책이라도 나가셨는지, 두분 모두 부재중이십니다. 잘 됐다! 애인에게 쓰듯 부모님께 연애편지 한 통 써놓고 가야지! 작심은 좋았으나, 글이 안됩니다. 어머니, 아버지! 써놓고서는 문장성 치매(?)에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꾀를 냅니다.


늘 하던 대로 짧게 쓰지 뭐! 하고 독백처럼 내뱉고는, 끼적거리던 편지를 내동이치고 쪼르륵 문구점에 달려가 포스트잇을 한 묶음 사 옵니다. 명함 반만 한 크기의 포스트잇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로 다양하다는 걸 오늘에야 유심히 봅니다. 빨간 쪽지를 한 장 뜯어 이렇게 씁니다.


엄마, 사랑해! 어머니가 쓰시는 낡은 경대의 거울에 떡하니 붙였습니다. 노란 쪽지를 한 장 뜯어 이렇게 씁니다. 나하고 보물찾기 하실래요, 엄마? 이번엔 수화기에다 붙이고, 전화기 밑에 살짝 보이게 용돈 넣은 봉투를 놓아두었습니다.


아버지는 파란색을 좋아하시니, 파란색 쪽지에 이렇게 씁니다. 아버지, 이번 토요일에 저하고 목욕탕 한번 가시죠, 제가 등 밀어 드릴께요! 그리고는 아버지가 즐기시는 바둑알 통을 열고 이번에는 용돈 봉투와 함께 넣습니다.


몇 장 써보니, 신바람이 납니다. 짧은 메모 형식이니 글실력 떨어지는게 티도 안납니다. 양복 주머니에도, 찬장 유리에도, 식탁 테이블 위에도 막 붙이고 넣고 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아파트 대문에 한 장 더 붙이고 돌아옵니다.


"다녀갑니다. 두 분을 사랑하는 애인이!"


돌아오면서 울었습니다. 애인한테는, 이제는 아내가 된 여자한테는 자식한테는 온갖 짓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해 온 놈이 정작 그들보다 먼저 내 애인이던 부모님께는 이십 년 넘게 한 장의 편지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부끄러워서 울었고,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는 자식놈에게 여전히 짝사랑을 바치는 그들의 사랑이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나이 오십을 바라봐도 두 분께는 여전히 철부지 아이이기에, 그만큼 다 보듬어 안아주시기에 포스트잇 편지를 나무라지 않으시겠지요! 두 분께는 청마가 쓴 5천 통의 편지만큼이나 장문의 연서로 보이겠지요.



Tip

오늘만큼은 스카이라이프를 틀지 않습니다. 핸드폰도 냉큼 꺼버립니다. 어머니 마른 어깨를 주물러드립니다. 어릴 적, 생배를 앓으면 신기하게도 내 손은 약손! 하고 한마디하시고 배를 어루만져주시던 그 정성을 떠올리며, 구석구석 살보다 뼈가 더 잡히는 어머님 몸을 만져드립니다.


"엄니, 내 손이 약손이지, 시원하시지요!" 발가락도 만져드립니다. 가뭄에 터진 논바닥처럼 골이 깊게 패인 발꿈치를 꾹꾹 눌러드리고, 발가락은 살살 어루만져 드립니다. 오늘만큼은 벙어리가 되렵니다.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잔잔한 미소만 보내드리면서,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옛날 얘기를 , 들어도 골백번 더 들었을 얘기를 오늘 처음 들은 것처럼 박수까지 쳐가며 들으렵니다.


나이 드시면 애가 되신다잖아요! 아버지께서 곁에서 샐쭉하십니다. 2교시는 아버지 차례입니다. 덥석 아버지를 업어 드립니다. 아니, 업히신 것이 맞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 한번 어깨 높이까지 추켜봅니다. 소싯적에는 쌀 한 섬을 후딱 져 나르시고, 백중날 씨름판에서도 이름을 날리셨다는 아버지의 몸이 이리 가뿐해졌습니다. 불효의 세월에 이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늘 밤에는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랍니다. 슬그머니 부모님 곁에 누워 옛날 얘기를 들으렵니다. 오늘은 제가 나중에 잠이 들려고요!


이런저런 우리가 자랐을 어릴 적 얘기를 들려주시다가, 깜빡 두 분이 잠에 빠지시면, 조용히 커튼을 내리렵니다. 별빛을 함빡 받아다 두 분의 머리맡에 등불처럼 켜 두렵니다.



신혼여행 한번 다녀오세요!

스무 번째 결혼기념일이 돌아옵니다. 11월 19일, 국화가 이우는 계절입니다. 결혼 전 무려 10년 가까이 연애를 하다 혼례를 치른 터라, 20년이 아니라 30년을 같이 살아온 셈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을 앞두면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설레던, 그 시절 신혼여행이 떠오릅니다.


더벅머리를 드라이로 한껏 부풀린 사자머리를 해가지고, 이웃집 아저씨가 운전해준 포니 승용차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내달리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카메라며 신혼용품을 챙겨 뒤따라온 친구들이 차가 막혀 늦어지자,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른 버스를 타고 될 것을, 이번 차 놓치면 영영 신혼여행도 못 갈 것 같은 생각에 카메라도 못 챙기고 설악산으로 향한 신혼 여행길이었습니다.


가는 길 내내 손을 꼭 잡고, 바로 몇 시간 전 해프닝 덕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직 순서도 되지 않았는데, 신부 손을 그러잡고 단하로 내려가자 주례이신 은사님이 호통을 치십니다.


"아직 손잡을 때 아니네, 이사람아! 성혼선언은 마치고 내려가야지 급하긴…." 하객들이 한바탕 배꼽을 잡습니다. 소꿉장난 같은 신랑신부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받으며 걸어나가자, 꽃잎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폭죽이 터지고 오색테이프가 비둘기처럼 날아오릅니다. 설악산에 가려면 속초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새색시 얼굴에만 정신이 팔려 그만 강릉행 버스표를 끊은 것을 강릉에 내려서야 알아차립니다.


"설악파크호텔 가려면,여기서 한참 걸어가야 하나요." 고속버스 옆구리서 가방을 꺼내 건네주던 차부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봅니다. "여기서 총알택시로 가도 40분 거리요!" 마침 호텔 당직이던 선배가 목이 기린처럼 길어져 있습니다. 도착할 때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도 기별이 없자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애간장이 타들어 가더랍니다.


"차가 많이 막히데, 선배!" 이렇게 한마디 하고 슬쩍 새색시 눈치를 봅니다. 싱긋 웃어주는 것으로 신랑의 주변머리 없음을 눈감아 줍니다. 만날 때마다 아쉬운 헤어짐을 되풀이하지 않게 되어 좋았습니다. 어스름한 공원 벤치에서 남 눈치 보며 도둑 뽀뽀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어 좋았습니다. 반쪽으로 굴러다니던 동그라미가 나머지 반쪽을 찾아 완전한 동그라미가 된 만큼, 꽉 찬 영혼의 충만감이 좋았습니다. 조금만 뒤척여도 대숲 스치는 바람소리가 나는 차렵 이불을 같이 뒤집어쓰고 방 안에서도 별을 헤던 밤이 좋았습니다. 세간이라곤 13인치 골드스타 텔레비전과 비키니 옷장하나 덜렁이지만, 저녁마다 아내가 차려주는 냉이된장국이  너무 좋아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혼기념일을 지키는 의식은, 저 시절 냉이된장국 냄새를 떠올리는 추억 여행입니다. "아저씨 좀 천천히 가요! 이러다 첫날밤도 못 치르고 제삿밥 받게 생겼네!" 하며 강릉에서 속초로 내달리던 총알택시 속에서도, 나를 산처럼 믿고 가만히 고개를 기대던 연분홍 아내의 수줍던 미소를 떠올리는 추억여행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혼인서약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한다는 다짐을 다시금하는 결사 의식입니다. 바보 사랑으로 아내가 눈물 흘리는 일이 더 이상 없게하자고, 가슴을 치는 고해성사의 의식입니다. 가끔 장미 백 송이와 진주목걸이를 잊은들 어떻겠습니까? 소망의 별을 헤는 사랑의 동행이 여전하니 말입니다.


달 하나 천강에 빠져죽도록

예쁜 여자 손 잡고 걷는다

찔레꽃 모래언덕

물빛 손목 꼭 잡고 걷는다

천강에 길이 훤히 열리고

빛여울 길이 열리고

오늘부터 달은 뜨지 않는다.


늦연애라는 제목을 붙여 시를 바치기로 합니다. 예쁜 그대 평생 손잡고 걸으리라고 노래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둑하고 험할지라도, 그대가 환한 보름달이기에 그대를 초롱불 삼아 무소의 뿔처럼 담대하게 넘어지지 않고 달려나갈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신혼 사진을 잘 갈무리 해 놓은 앨범을 뒤적이며 추억에 잠겨 있다가, 툭 바닥에 떨어지는 낡은 사진을 한 장 들어 올립니다. 세 살배기 시절의 내 사진이 자리를 못 찾고 갈피에 끼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어머니, 아버지의 혼례식 사진입니다. 사모관대에 족두리를 차려입은 부모님을 중심으로, 혼례청에 온 가족이 둘러서서 찍은 흑백사진입니다. 신랑 신부 사이에 버짐투성이 개구쟁이 하나가 떡하니 올챙이배를 내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버지의 씨에서 어미니 배를 기다리며 있어야 할 제가 X파일의 한 장면처럼 생뚱맞게 등장해 있습니다.


부모님의 결혼식이 뒤늦어서입니다.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살림을 차린 지 만 3년이 지나서야 연지 곤지를 찍으셨기 때문입니다. 네 살 밑 여동생이 철부지 시절, "난 왜 이 사진에 없냐고? 나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거 맞지, 그렇지?" 하며 울며불며 하던 사진에, 저희 부부보다 25년 먼저 혼례를 치른 신랑 각시가 선하게 서있습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저희처럼 가을이었다는 사실을 무득 떠올립니다. 동치미를 잘 담그시던 할머니 솜씨 덕에 동치미 국물에 만 잔치국수가 동이나 한참 애를 먹었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백 근짜리 돼지 한마리가 순식간에 동날 정도로 흥청망청 동네잔치였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현상액 속의 흑백사진 인화지처럼 떠오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결혼 기념일이 아니라 결혼식 기념일이 낡은 사진에 유성펜으로 흘려져 있습니다.


당기 4277년, 甲申年 성덜 열여드렛날 1960년 10월 18일을 가리키는 당시의 연대 표기가 암호처럼 흘려져 있습니다. 음력으로 따지던 시대니, 올해 기준으로 열흘 뒤입니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그 시절 신혼여행 때의 추억을 되밟아 보자고 아내와 설악산 여행을 약속한 것이 급체처럼 명치 끝에 걸립니다. 눈치 빠른 아내가 어깨 너머로 사진을 들여다보다 손가락을 꼽더니, 어머나,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열흘 뒤네요!"합니다.


아내가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처럼 환호성을 지릅니다. 공교롭게 우리 결혼기념일인 11월 19일이, 올해 음력으로 상달 열여드렛날입니다. 아내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얼른 한마디 합니다.


"여보, 우리 설악산 여행 가는 대신 부모님 신혼여행 한번 보내 드립시다." 그 시절이야 신혼여행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잖아요? 설령 남들이 신혼여행을 떠나는 시절이었다고 해도, 제가 세 살배기로 다 컸을 때야 비로소 삼관대에 족두리를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부모님의 형편이 따라주었을까요? 살아오시면서 이런저런 여행을 다니시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번엔 작정하고 두 분의 신혼여행을 보내드리기로 결심합니다. 결혼 20주년 기념을 시 한 편 받는 걸로 만족하는 아내의 넉넉한 마음이 고맙습니다.


한 항공사가 자매회사인 여행사와 손잡고 부모님께 신혼의 추억을 찾아 드리는 효도여행 패키지를 팔고 있는 것을 찾아냅니다. 안내문을 보니, 턱시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혀드리고 특급호텔에서 왕과 왕비처럼 2박 3일 동안 모신다는 자랑이 대단합니다.


얼추 셈해 보니, 우리가 설악산 여행을 위해 준비한 돈과 엇비슷합니다. 행여 늦을세라 패키지 상품을 예약합니다. 동치미 국물에 국수말고, 돼지 한 마리 잡아온 동네 사람들 다 대접한 연후에 여행을 보내드린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꿩 대신 닭 정도에 만족합니다. 어머니의 여행 가방에 딸려갈 분갑에 낡은 사진을 액자에 담아 같이 넣어드리렵니다.


"돈이 클 텐데, 여행이 다 뭐냐? 이 나이에 남세스럽게 웨딩드레스는 다 뭐고…." 이렇게 펄쩍 뛰실 게 분명한 어머니,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야, 천 번을 겪어도 좋은 기쁜 사역일 테고요.



Tip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닦아드립니다. 구두코 부분만 구두 형체고, 몇 번이고 기우고 때워서 광고 잘 나지 않습니다. 침을 탁탁 묻혀 물광을 내드립니다. 우리를 키우시느라고 다 닳아버린 구두굽까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드립니다. 다 닦아드리고 나선 천 원짜리 한 장 받아야지요.


"아빠 나, 착하지!" 일곱 살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서 말입니다.



카사블랑카 한번 더 보실래요?

신문을 들추시던 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로 묻습니다. "요즘 대한극장은 한다냐?" 막 새잎이 올라온 난초분을 골똘히 쳐다보다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만 귓전으로 흘렸습니다. "예? 뭐라고 하셨어요?"


"난 단성사 광고가 안보이길래 단성사도 망했구나 했는데, 멀틴가 뭐로 새 단장했다네!" "아, 그거요. 저도 들었어요. 옛날 스크린 가지곤 장사가 될 리 없지요. 너도나도 복합관이다 해서, 영화도 한곳에서 골라보는 시대예요, 아버지." "그게 그렇다며! 그러면 대한극장도 그렇게 바뀐 거냐? "그럼요. 대한극장은 한참 전에 바뀌었어요."


아버지께서 아쉽다는 듯 혀를 차십니다. 저 시절, 70밀리 대형 스크린을 떠올리신 게지요. 〈벤허〉니, 〈십계〉 같은 대작 명화는 역시 70밀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 세대의 상식이었습니다. 광화문의 국도극장, 을지로의 국제극장이 살아 있던 시절에 충무로와 종로 5가에 스카라, 명보, 피카디리, 서울, 단성사 등이 처마를 맞대고 영화팬들을 맞던 그 시절에 대한극장은 70밀리 대형 스크린과 도리 시스템이라는 최신 음향시설 덕에 가장 잘나가는 극장이라는 명승을 누렸습니다.


영화보고, 레스토랑 가서 돈가스 먹으면 최고의 데이트 코스이던 시절, 아버지 어머니에겐 극장이 영화관과 동의어였습니다. 그래서 티파티, 뤼미에르, 아트네온, 캣츠21, 메가박스 같은 곳은 부모님에겐 극장이 아닙니다. 낯선 외제 구두 상표처럼 들립니다. 무슨무슨 시네마라고 이름을 단 극장들은 영화사 이름으로 오해되기도 하고요.


아버지가 대한극장의 안부를 물이신 것은 대한극장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어머니와의 추억에 대한 안부를 물으신 것과 동일합니다. 아버지는 홍콩 무협물 외팔이 시리즈를 더 좋아했지만, 어머니의 가녀린 뺨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에서 짓궂은 재미를 질기시려고, 〈애수(Waterloo Bridge)〉나 〈가스등(Gaslight)〉, 〈춘희(Camille)〉같은 최루성 영화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레타 가르보나 오드리 햅번 같은 서양미인들 구경도 만만치 않은 재미이셨겠지요. 어머니는 특히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를 서너 번도 더 보셨다지요. 스토리도 스토리고, 배우들의 명연기도 서너 번 발길을 하게 한 힘이었겠지만, 험프리 보가트의 멋진 트렌치 코트에 반했기 때문이라는 게 맞을 겁니다. 나중에 얼핏 이 사실을 눈치 챈 아버지가 한 삼 년간은 가을에서 초봄에 이르기까지 내내 트렌치 코트만 입고 데이트 장소에 나타나셨다는군요. 두 분이 그 좋아하는 영화관, 더 정확히 말해 대한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남과 여〉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릅니다.


"왜 TV 명화극장에선 〈남과 여〉는 안 보여주는 거냐? 그 영화 정말 좋은 영환데…. 네 어머니하고 대한극장에서 보았더랬지." 언젠가, 늘 같은 영화만 재탕 삼탕 하는 안방극장의 몰염치를 탓하시면서 〈남과 여〉 얘기를 하셨던 게 떠올랐습니다. 저도 〈남과 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동네 재개봉관에 까까머리를 털모자로 숨기고 들어가 본 프랑스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70년대 초반이었으니, 한 30년 세월 남짓 부모님은 극장 문을 찾지 않으셨던 셈이 됩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고 한가하게 스크린을 쳐다보고 계실 겨를이 없으셨을 테고, 컬러 TV다 비디오다 해서 영화대신 볼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남과 여〉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제작, 각본, 촬영, 편집, 연출을 도맡아 다재 다능한 실력을 뽐낸 작품으로 1966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과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멜로영화입니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장 루이 트랭띠냥과 아누크 에메라는 빼어난 스타들이 등장해 쿨한 로맨스를 연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저로서도 하도 오래 전 몰래 본 영화인지라, 상처받은 과거를 지닌 두 남녀, 아내를 잃은 홀아비와 남편을 잃은 과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스토리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감각적인 영상속에서 인상 깊게 깔리던 주제가도 곡조를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아버지 〈남과 여〉 한 번 더 보러 가실래요?" 영화구경 한번 모시겠다는 얘기가 엉뚱하게 나와 버립니다. 〈카사블랑카〉 한번 더 보시지 않을래요?가 더 맞을텐데 말입니다. 주말에 심야극장 시간에 맞춰 표를 샀습니다. 롯데시네마가 배급사나 영화사 이름이 아니라, 복합관 이름이라는 것도 이 기회에 알려드리기로 한 겁니다. 복합관에서 영화보는 걸 우리 같은 젊은 세대의 취미로나 여겼던 무심함을 음료수며 팝콘을 잔뜩 사드리는 걸로 얼버무려 볼까 합니다. 영화구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징어도 두어 마리 사고요.


"그래, 니말마따나 〈카사블랑카〉 한 번 더 보러 가보자꾸나!" 두 분이 나란히 나들이 차비를 하십니다. 어머니가 회장 저고리 차림에 구슬 핸드백까지 챙기시려는 걸 아내가 말립니다. "어머니, 마트에 가시는 기분으로 나서세요. 세 정거장만 가면 극장인 걸요. 밤바람이 차니 카디건이나 하나 걸치시면 되겠네요." 어머니가 머쓱해져 저고리 고름을 매시다 주춤합니다.


최루성 영화를 고르고 고르다가, 〈카사블랑카〉 맞먹는 대작 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산 표가 〈말아톤〉입니다. 이 정도면 꿩 대신 닭은 될까 싶어서였지요. 막상 극장에 가니 복합관 사정이 마치 지하철 환승역 같은 탓에, 두 분이 어지러워하십니다. 서로 놓칠세라 손도 꼭 잡고 계십니다.


3관으로 들어가 좌석을 확인하고 두 분을 모십니다. "지금 그대로 손 꼭 잡고 영화보세요. 영화 끝나면 매표소 쪽으로 나와 계시고요." "니들은 안보냐?" "엄니, 난 최루성 영환 싫더라! 집사람과 전 옆에 1관에서 다른 영화 볼게요!" 그러면서 둘이서 낄낄거리고 볼 영화로 택한 〈마파도〉 상영관으로 갑니다. 사실 지난 주 아내와 함께 이미 〈말아톤〉을 봐 버렸다는 걸 말씀드릴수가 없었습니다.



Tip

"밥 한 그릇 더 먹어라! 이 반찬도 먹어보고…."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대로 오늘은 맛나게 먹습니다. 많이 먹었다느니, 반찬맛이 입에 안 맞는다느니, 결코 투정을 부리지 않습니다. 입맛이 달라져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맛이 싱겁고, 짜고, 매운 등 들쭉날쭉이어도 수랏간 최고 상궁이 해준 음식처럼 맛나게 먹습니다. 한 그릇 다 비우고 또 달라고 합니다.


"난 엄니가 해준 밥을 먹어야 살로 가더라!" 배를 퉁퉁 튕기며, 두꺼비 흉내를 내면서 누룽지 숭늉 한 그릇마저 다 비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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