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탄생

   
이승원
ǻ
휴머니스트
   
14000
2005�� 04��



>■ 책 소개
100년 전 학교의 풍경을 통해 근대의일상을 탐험하는 작품인 이 책은 "학교"라는 시공간 속에서 찾아낸 다양한 빛깔과 소리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이승원 선생은100년 전의 한국 풍경에 푹 빠져 있다가 100년 전 학생들의 모습과 자신의 지난 학창시절의 모습이 겹쳐지고, 정치적 상황과 교육이 밀접하게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100년 전 학교의 풍경은 "지금-여기"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책은 그 질문 아래에 숨겨진 의미를 "경쾌하고 발랄하게" 찾아 나선 저작이다.


우리가 100년 전 학교의 풍경을 탐사하는 것은 한국 근대의 기원을 알기 위함이다. 또한현재 우리의 몸 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근대적 습속의 기원을 파헤쳐 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100년 전 학교는 단지 입시를 위한 교육기관이아니었다. 근대 초기의 학교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었던 도가니였다.


100년 전 한국의 목표는 서구 문명의 수입을 통한 "부국강병"이었다. 부국강병의 목표를실현하기 위해, 자주독립을 위해 학교는 우후죽순처럼 창설되었고, 근대식 학교는 온갖 이질적인 담론과 풍속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학교는 새로운시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교육함과 동시에 기존의 풍속과는 전혀 다른 서구적 풍속과 문화를 한국인들에게 제공하는 매개체의 역할까지 수행했다.그렇기에 100년 전 학교의 풍경을 탐사하는 것은 때로는 굴절되고 때로는 왜곡된, 그리하여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한국 근대의 실체를 파악하는것과 맞물려 있다. 100년 전의 학교는 한국 근대를 다양한 시선에서 접근할 수 있는 프리즘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리즘의 스펙트럼을 통해 한국근대의 고고학적 탐색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 저자 이승원 
인천대 강사. 인천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는 8여 년 동안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근대 초기의 각종신문과 잡지를 찾고 읽고 정리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여러 동학들과 함께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100년 전 한국 사람들의삶과 풍속 그리고 감각과 제도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학교의 탄생』은 그 성과를 담아낸 작품이다. 지은 책으로 『소리가만들어낸 근대의 풍경』(2005)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는 『철학극장, 욕망하는 영화기계』(2002), 『국민국가의 정치적상상력』(2003), 『아브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2004)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근대계몽기 서사물에 나타난 신체 인식과 그 형상화에관한연구〉〈20세기 초 위생담론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다거점의 고향, 복수의 시공간 이용악론〉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지은이의 말
0. 프롤로그 - 학교 종이땡, 땡, 땡 
1. 입학시험 - 무시험에서 부정행위까지 
2. 통학 길 - 학교 가는 길에 벌어진 에피소드들 
3. 교과서와수업시간 -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웠나? 
4. 신체검사 - 위생과 단발 
5. 성교육 - 사실과 "구라"의 경계 
6.운동회 - 근대적 스포츠의 탄생과 축제 
7. 외국어 교육과 특목고 - 외국어만이 살길이다 
8. 유학생 -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가다 
9. 수학여행 - 국토를 발견하다 
10. 학교의 안과 밖 - 먹물과 날라리의 세상살이 
11. 학생운동 - 동맹휴학에서단지동맹까지 
12. 에필로그 - 빛나는 졸업장





학교의 탄생


프롤로그 - 학교 종이 땡, 땡, 땡

조선조 대다수 선비의 꿈이란 입신양명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사서삼경을 외우고, 과거시험 합격이라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용맹 정진했던 조선조 선비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변했다. 새벽 닭 울음소리를 타고 과거제도 폐지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벽 닭 울음소리를 타고 과거제도 폐지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3 수험생이 입시준비에 코피 쏟아가며, 부모님 쌈짓돈 허비해 가며 공부했는데, 갑자기 대학입시제도가 폐지되었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그 동안 신분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 한번 힘껏 토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학교는 구원의 장소였다. 사농공상의 견고한 신분제도가 붕괴된 후 그 거대한 사회적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시공간의 탄생, 그것이 바로 학교 였던 것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근대 교육의 물꼬는 터졌고, 걷잡을 수 없는 해일이 되어 세상을 뒤엎어 갔다. 선교사들의 자선활동과 조사시찰단으로 다녀온 개화 지식인들이 선두에 서서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목청껏 외쳤다. 고종은 문명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민의 지식을 개명시키는 일이 최우선이며,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고 힘주어 선언하며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국가를 보존하는 길이 곧 교육에 있다는 고종의 말, 이 발언은 예사로운 표현이 아니다.



입학시험 - 무시험에서 부정행위까지

2004년 작, 미션 임파셔블! 뉴스를 접할수록 그들의 치밀한 조직 활동에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점조직으로 활동하며 가끔씩 접선장소에 은밀하게 모였다. 그래서 오히려 주위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다. 모의 훈련을 거치고 급기야 실전훈련에 돌입했다. 성공적이었다. 각자가 맡은 임무에 따라 그들은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가장 위험한 임무를 부여받은 제1조는 직원으로 위장하고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각 사무실에 침투했다. 제2조는 주위를 살피면서 1조와 3조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제3조는 정보기관 근처에 거점을 잡았다. 1조는 휴대전화를 통해 수시로 3조에게 기밀을 유출했으며, 3조는 다시 그 정보를 분석해서 1조에게 송신했다. 그들은 한국 국민의 철저한 신고정신에 대해선 무지했다.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시선은 다름 아닌 접선책의 친구였다. 적은 항상 내부에 존재한다. 친구의 신고 때문에 그들은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2004년 대미를 장식한 남한 학생 스파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학생들이 빼돌린 국가기밀은 남한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고급 정보였다. 국가는 스파이들이 국가기밀을 훔쳐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천 가지의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았다. 특히 신세대스파이들의 능력에 대처하기 위해 사이버 수사대를 비롯한 각종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해킹 이야말로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세대 스파이들은 정부의 대책에 허점이 있음을 알아챘다. 인터넷 해킹이 아닌 구식 막대 휴대전화를 이용한 쌍방향 통신, 즉 막대휴대전화 모스 부호를 이용해서 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생활필수품 인 휴대전화를 최신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새로운 병기로 용도 변경했으니 말이다. 점수에 대한 시험결과에 집착하는 내 욕망이 내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갈지 몰랐습니다. 전 통제 불능입니다. 수능시험만 생각하면 제 욕망은 언제나 통제 불능입니다. 제발!


그렇다면 100년 전의 입학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종의 교육조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전국 곳곳에 공립․사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한국 사람들도 신학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로 달려갔다. 대부분 평민들이었다. 나무장수, 농사꾼, 장사치, 신기료장수, 기생, 백정 등등. 거기에 양반의 자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근대 학교는 사농공상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 총집합된 종합선물 세트였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약 8세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고, 10세 이상으로 규정한 학교도 있다. 의학의 경우에는 22세 이상 40세 이하, 외국어 학교는 16세에서 25세 이하였다. 나이제한을 통과한 학생들은 신체검사를 받았다.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보았다. 한문 강독과 한글강독, 한문 글짓기와 한글 글짓기, 산술(수학), 체조였다. 체조는 일부 학교에서만 실시되었다.



교과서와 수업시간 -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웠나?

1859년 무렵, 독일 사람인 다니엘 고틀로프 슈레버는 어린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여(?) 두 가지 학습보조용 장치를 고안했다. "똑바로 앉기 홀더(Up-right Holder)와 헤드홀더(Head Holder)라는 기계이다. 기능회복 프로그램의 창시자인 슈레버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균형 잡힌 몸매를 위해 그 기구들을 고안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일꾼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강제적으로라도 신체를 교정하면 성인으로 자란 후에도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슈레버가 당시 한국에 왔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19세기 후반은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들의 신체교정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서구 열강은 물론 일본에서도 어린이들, 특히 초등학생을 위한 체조법이 개발되어 학교에 보급되었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에게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수업에 임할 것을 강조했다. 바른 자세가 학습능력을 좌우하는 지표이자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기술로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세밀하게 짜여진 수업시간표와 군인처럼 절제된 자세를 통해 근대인으로 길러졌다. 따뜻한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공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딱딱한 의자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공부해야만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근대 초기 교육에 관한 주된 방침은 서구적 화제와 교과과정을 모방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이었다. 새 시대를 건설하기 위한 실험을 가로막는 모든 구시대적 산물을 해체하는 것이 근대 초기 교육의 목표였다. 이는 단지 지식의 차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지식은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계몽가들과 교육가들은 구시대적인 발상과 인식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려 하였다. 그렇지만 5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유교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수업은 옛것과 새것의 아슬아슬한 공존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을사조약(1905)이 체결된 후 1년이 지난 1906년에 보통 학교령이 공포되었다. 조선 교육령이 반포 된 후에는 일본어 대신 국어 가 주당 10시간으로 늘어났는데, 이때 국어는 일본어였다.


근대 교육의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새로운 교과서를 발간한다. 이름하여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이다. 1895년 소학교령을 반포하고 이에 발맞추어『국민소학독본』을 발간한 것이다. 지금의 초등학생 교과서로, 일종의 종합교과서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 교과서의 목적은 당대의 교육목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요컨대 학교교육을 통한 문명개화가 그 핵심내용이다. 인간의 자주권 확립과 기술문명의 개발, 그리고 애국심의 고취 등이 주된 내용이다. 『국민소학독본』의 목차는 대조선국(大朝鮮國)을 시작으로 해서 성길사한(成吉思汗)2로 끝난다. 제1장 대조선국의 핵심내용은 대조선은 아시아 여러 국가 가운데 한 왕국이며 독립국이라는 것이다.


또 한 권의 교과서인 『신정심상소학』의 편찬 목적은 "만국이 교류하여 문명이 진보하기를 힘쓰니 교육 한 가지 일이 현재의 급무"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 장은 ㄱ에서 ㅎ까지, 가에서 하까지 한글 표기법을 실었다. 이는 "여러 어린아이들이 우선 깨닫기 쉽게"하기 위함이며, "배우는 자들은 오직 한문만 우선 깨닫기 쉽게"하기 위함이며, "배우는 자들은 오직 한문만 숭상하여 옛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시세(市稅)를 헤아려 국문도 참조하여 또한 오늘날의 것도 배워서 지식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이 교과서의 첫 단원은 학교이다. 교과서는 단지 교육용 도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교과서는 한 국가의 정책방향으로 총체적으로, 그리고 밀도 있게 투사한 텍스트이다.



운동회 - 근대적 스포츠의 탄생과 축제

요~이, 땅! 요이는 준비라는 일본어 요우이를 짧게 발음한 것이다.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할 때면 꼭 요~이, 땅!을 외쳤다. 물론 그게 일본말인지는 몰랐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대한 기억은 주로 운동장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와 상(賞)이라는 도장이 쾅 찍힌 공책과 연필, 그리고 정말 하기 싫은 집단체조로 구성되어 있다. 운동회와 스포츠의 공간은 축제와 놀이의 공간이지만, 근본적으로 생존경쟁의 축소판이다. 1900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우승열패와 생존경쟁의 각축장인 셈이다. 올림픽에서 8여 년만에 다시 세계 9위로 진입했다고 열광하는 한국. 세계 9위, 순위가 모든 걸 말해준다. 스포츠의 힘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일본을 보라고. 100년 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오늘날 대통령이 학교 운동회에 참석했다는 보도는 좀처럼 듣지 못했다. 운동회가 국가적 행사가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100년 전의 운동회. 그 운동회는 아시안 게임, 올림픽, 월드컵보다 더 큰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황제가 운동회에 직접 방문하여 학생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관람한 것이다. 근대 계몽기에 실시된 운동회는 국가행사의 축소판이었다. 1898년 개국 기원절 경축회장의 하늘에는 태극기와 만국기가 펄럭이고, 애국가와 군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특히 이 시기 국가적 행사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징물은 국가(國歌)와 국기였다. 국가와 국기, 그리고 국가의 문장은 자국이 독립국가임을 세상에 알리는 상징물이다. 근대계몽기 서구로부터 유입된 사회진화론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우승열패 와 약육강식이다.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힘센 놈이 이긴다이다. 근대 계몽기에 행해진 대다수의 운동회는 국가의 의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공간이었으며, 충군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장이었다.



외국어 교육과 특목고 - 외국어만이 살길이다

고종은 가비차(加非茶)를 즐겨 마셨다. 고종이 특별하게 애음했던 기호식품 가비차. 그것은 바로 커피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100년 전에도 영어는 영국의 언어로 사람들 가슴속에 인식되지 않았다. 영어는 미국의 언어였다. 한국은 일본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정치적 고투를 벌였다. 시국은 매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 속에서 전개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두 나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이면서 동맹국이자 적국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달랐다. 한국에게 미국은 아주 선(善)한 문명제국의 상징이었다. 한국이 근대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통로는 크게 두 곳이었다. 일본과 미국이다. 1876년 일본의 대포소리와 함께 한국은 외부세계에 문호를 개방한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로서 미국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그들의 문물과 제도를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그래서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유길준은 아예 미국에 눌러앉아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1895년 2월, 고종은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한다. 이에 많은 학교들이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활개를 쳤다. 그 중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한 학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법관양성소(1895년), 외국어학교(1895년), 무관학교(1896년), 경성의학교(1899년) 등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군사․외국어․의학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다. 근대 사회의 국제법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 법을 습득하기 위한 법관양성소, 다른 나라와의 외교를 위해서 필수적인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한 외국어 학교, 근대는 곧 군사력을 앞세운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이니만큼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서양식 군사정책을 배우고 신식군사를 육성하기 위한 무관학교, 그리고 부국강병의 기초는 건강한 인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 서구 의학을 수입해서 건강한 국민을 육성하는 데 온 정열을 바쳐야 할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교. 여러 특수목적 학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외국어 학교의 중요성 남달랐다.



학교의 안과 밖 - 먹물과 날라리의 세상살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는 변변한 영한사전이 없었다. 그런데 새롭게 등장한 영어단어를 설명하는 코너가 있었다. 신어사전(新語辭典) 이라는 코너가 그것이다. 1929년 3월 1일, 그 유명한 3․1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정확히 10년 후, 조선 학생 청년들을 위한 잡지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이름하여 「학생」이다. 「학생」은 이름 그대로 당시 조선 학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창간된 잡지였다. 이 잡지에 16인치와 오페라 빡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十六인치] 16 inch (英) 폭이 넓다는 말. 바짓가랑이가 넓다는 말이니, 나팔바지 입은 모던 뽀이를 가리키는 말.


[오페라 빡] Opera-bag (英) 흔히 양장 부인들이 들고 다니는 손가방.


나팔바지를 입고, 오페라 백을 들고 다니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 기성세대는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봤지만, 최신 유행을 따라잡으려는 그들의 욕망을 붙잡지는 못했다. 학생들의 이런 패션은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의 것이었다. 한국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의복제도를 마련했다. 흰옷을 금지하는 대신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으라고 법으로 강제한다. 왜 하필이면 검은색일까. 검은색은 문명의 색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페리가 이끌고 온 서구 열강의 함선을 흑선(黑線), 즉 구로후네라 불렀다. 개국(開國)을 맞이한다. 일본의 개국 이후 기차가 들어왔다. 그 기차도 시커먼 색이었다.



학생운동 - 동맹휴학에서 단지동맹까지

만민 공동회의 세력이 막강해지자 고종과 그의 오른팔들은 불안에 떨었다. 고종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황제는 극약 처방을 내린다. 고종의 비밀 결사대, 일명 정치깡패가 만민공동회장을 습격한다. 이름하여 황국협회이다. 이들은 일부의 보부상들이 조직한 것으로 고종으로부터 비밀리에 자금을 받고 활동하는 정치깡패집단이었다. 보부상은 보상(보상 : 봇짐장수)과 부상(負商 : 등짐장수)이 결합한 단체로 조선시대 경제계를 주름잡았다.


1898년 11월 21일 먼동이 틀 무렵, 황제의 명을 받아 보부상 2천 여 명이 만민공동회를 급습한다. 하루가 지나고, 수만 명의 시위대가 보부상들과 일대일 격전을 벌일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열사가 탄생한다. 마포전투에서 보부상의 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이름은 김덕구, 신기료장수였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김덕구를 의사(義士)로 규정하고 1898년 12월 1일 만민장(萬民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사립 흥화학교(興化學校)학생 김한표 등도 술을 뿌렸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학생들도 장례식의 뒤를 따랐다.



에필로그 - 빛나는 졸업장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천막을 치고 의자를 갖춰서 정렬했다. 내의 귀빈석을 마련하고 단상을 설치했다. 하늘엔 오색 깃발을 수놓았고 만국기가 흩날렸다. 교문에는 무슨 학교 및 졸업식이라는 화려한 간판이 걸렸다. 학생들은 행사장에 모였다. 학교장과 내외 귀빈들이 학생들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는 일장 연설을 펼쳐놓았다. 이에 학생들 중에 우등생으로 뽑힌 졸업생 대표가 답사를 했다. 교가를 부르고, 환호성을 쳤다. 졸업식이 끝나면 학교에서 장만한 각종 요리를 먹으면서 파티를 열었다. 이로써 졸업식이 모두 끝난 건 아니다.


1900년대 초 졸업식의 풍경은 비장한 연설과 다과(茶菓), 그리고 군악을 동원한 노래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이때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는 4․4조의 창가형식으로 만들어진 교가였다.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문명개화와 충군애국의 뜻을 담은 군대의 진군가와 비슷했다. 배재학당의 경우 방학예식 때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제목은 무궁화가이다.


一. 성자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二. 애국하는 열심의기 북악같이 높고 충군하는 일편단심 동해같이 깊어

三. 천만 인 오직 한 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 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나라 황제 황천이 도으샤 군민공략 만만세에 태평 독립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히 본전하세


1910년대에 들어서면 색다른 졸업식 풍경이 연출된다. 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남과 동시에 모자를 하늘 높이 날렸다. 그리고 선생들에게 몰려가 헹가래를 쳤다. 마치 군대 신병교육훈련을 마친 훈련병들이 살기 등등했던 조교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런 학생들의 행위는 약과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던 시커먼 교복을 찢어 버렸다. 교복을 찢다 못해 엉덩이를 까 보였다. 다시는 입지 않을 옷이라서 찢었다고 하기엔 너무 싱겁다. 학생들이 교복을 찢어버린 건 자신의 신체에 새겨져 있는 규율로부터 벗어나려는 행위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학교는 학생들을 규율로써 벗어나려는 행위였다. 그 규율의 표지는 교복이라는 복장에 투영되어 있다.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했던 학교 규율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상징적 제스처로 그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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