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켄트 너번(역자: 하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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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마음
   
11000
2010�� 06��



■ 책 소개
세상의 모든 아들에게 보내는아버지의 선물!

성장기의 아이에게나 성인에게나 각자의삶에 점철된 고통을 이겨내고 지혜로운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훌륭한 충고가 필요하다. 성장기에 놓인 소년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줄 존재는 무엇보다부모일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자녀들에게 완벽한 멘토가 되어주는 부모는 거의 없다. 삶의 진정성이 담긴, 참된 정의를 판단하는 목소리가우리 사회에서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는 탓이다. 

이런시대에 켄트 너번은 당당히 일어나 이 시대의 모든 소년과 아버지를 향해 가슴속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독자에게 참된 길로 나아가는 방향성을제시하고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인생에 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답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현명하고 다정한 친구처럼 우리의 손을 이끌고 나아가 우리 스스로 진리에 다다를 수 있도록 안내할 뿐이다.

■ 저자 켄트 너번
종교학과 예술학에서 박사 학위를받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베네딕트 사원과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의 박물관에 설치된 작품을 만든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하다. 몇년간 미네소타의 오지브에 부족과 함께 부족 연장자들의 회고담을 수집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작은 은총』『나는 당신의 안식을 위한악기가 되리』『늑대도 아닌 개도 아닌: 인디언 노인과 함께한 잊힌 길 위에서』 등이 있다. 

■ 역자 하지연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영문학을부전공한 그녀는 호주에서 영어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번역의 길에 들어섰다. 옮긴 책으로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소년이여,야망을 가져라』 등이 있다. 

■차례
추천의 글
글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우리에 대하여
배움에 대하여 
일에 대하여
소유에 대하여 
베풂에 대하여
재산에 대하여
여성과남성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성의 신비에 대하여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옛사랑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정절에대하여
술에 대하여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남자다움에 대하여
힘에 대하여
싸움에대하여
전쟁에 대하여
믿음과 종교에 대하여
외로움과 고독에 대하여
스포츠에 대하여
여행에 대하여
뜻밖의 순간에대하여
열린 마음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노년의 짐에 대하여
노년의 선물에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배움에 대하여
아들아, 세상에서 네게 아주 커다란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을 꼽으라면 너는 무엇을 떠올리겠니? 무엇을 꼽았든, 나는 거기에서 ‘배움’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바탕을 마련하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심을 키우는 일이지. 그것이 반드시 학교 교육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진짜 배움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거야. 세상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고 끝없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움의 자세란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향해 네 마음을 활짝 열어두렴. 네가 느끼는 감정, 구름의 움직임, 새들의 지저귐, 처음 가본 도시, 낯선 나라의 가난한 주민들과 부자들, 기계공과 작가들……. 이 모든 것들을 향해서 말이야.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무한하단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세계 어디든 교육의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 그건 주로, 스스로 자유롭게 탐색하게 하는 것과 체계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방식, 둘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에 대한 논란이었어. 미지의 세상 속에서 무작정 헤매고 직접 부딪히며 인생의 교훈을 깨우쳐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주제에 대해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응용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방식을 통해 배워왔고, 또 기성세대는 가능한 한 이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사용하고자 애써왔지.


혹 네가 무언가를 배울 때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는 느낌이 든다면 공자의 이 말을 떠올리거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것이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학교의 형식적인 교육 방식이 고루하게 느껴지니? 그러나 그것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과정이라는 걸 염두에 두렴. 학교 교육은 네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배경을 갖게 해주고, 혼자서는 결코 터득할 수 없는 사회적인 개념을 심어준단다. 또 네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문화와 그것들이 쌓아온 유구한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이처럼 앞서간 수많은 사람들의 드넓은 경험의 흐름을 너는 학교를 통해 배울 수 있단다.


아들아, 어떤 생각을 하든 이 사실 하나만은 외면하지 말거라. 지금까지 학교를 거쳐갔던 숱한 선배들이 모두 너와 똑같은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여러 문화권의 무수한 사람들이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이 다양한 형태의 학교 교육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너의 갈증을 완벽히 충족시켜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또한 기쁜 일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너는 네 스스로 지식과 함께 지혜를 배우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지.


지식은 다양하지만 지혜는 단 하나뿐이란다. 지식은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지혜는 말이 없어. 지식은 진리의 테두리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만 지혜는 진리의 중심에 서서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하지. 이 두 가지를 함께 배우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천재적인 사람이라 한들 인간으로서 완벽해질 순 없어.


지혜를 얻는 길은 매우 많단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도 있고, 스승으로부터 얻을 수도 있고, 일을 통해 얻을 수도 있지. 혹은 아이나 어른, 연인이나 이방인의 눈으로 얻게 되기도 한단다.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넘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가운데 불현듯 지혜를 얻기도 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 속에서 지혜를 찾기도 해. 인생은 네가 이해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무수한 방법을 통해 네게 지혜를 안겨줄 거란다. 만일 네 가슴이 이 모든 지혜의 원천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면, 넌 얼마든지 그 축복을 전부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러나 반대로 마음을 꼭 닫아놓기만 한다면 지혜의 축복은 영원히 네게 찾아오지 않을 거야.


아들아, 배움 앞에서 중요한 건 너의 마음가짐이야. 어디에서 무엇은 배우든 열정적으로 배워라. 그러면 네 자리가 초라하건 빛나건 상관없이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또한 살다 보면 네가 자신만만해 하는 어떤 분야에 대해 너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기도 할 거야. 그렇다고 해도 결코 부끄러워 말거라. 네가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는 기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것이 배움의 최종 목적이니까.


일에 대하여
일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창조적인 행위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간에, 일은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단다.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시간을 거기에 바치기 때문이지.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선택해야만 행복할 수 있어.


나의 꿈은 조각가였단다. 하지만 조각가가 되려는 결심을 품고도 나는 택시 운전을 했었어. 순전히 돈 때문이었지. 조각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기사 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내내 조각에 가 있었어. 그런데 겨우 6개월 만에 나는 수많은 택시 기사들의 모습과 똑같아져 있더구나. 택시 기사처럼 말하고, 택시 기사처럼 생각하고, 택시 기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나를 발견했지. 여느 택시 회사 직원들과 다름없이 야간 택시 기사의 생활 습관과 생활 리듬을 갖게 되었고, 휴일에 조각을 하는 순간까지도 내 안에는 택시 기사의 의식이 남아 있었어. 좋든 싫든 난 어쩔 수 없이 택시 기사였던 거지.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단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불만스러워 필요한 만큼만 일을 하고 마음으로는 거리를 둔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 일을 하는 이상 너는 그 직업과 멀어질 수 없어. 그러다 보면 어느덧 너의 인생은 그 일로 채워져 있겠지.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재미있어 보이는 일, 보수가 높은 일 혹은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일을 고르지. 그러한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에 모든 시간을 바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처음에는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불안해지고 공허해져가는 스스로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거야. 일에 바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담을 느끼고 종국에는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는 일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에 견딜 수가 없어지지. 이른바 ‘조용한 절망의 세계’로 들어서는 거야.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 엄두를 못 내. 금전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그러고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를 찾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지. 이런 삶의 자세는 성공으로부터 멀어지는 가장 빠른 길이란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그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어떤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은 바로 그 일이 되어가지. 앞에서 이야기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란다. 작정하고 인생을 변화시키거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대감을 아예 낮추는 것. 만약 기대감을 낮추는 쪽을 선택한다면 꿈은 서서히 사라질 거야. 꿈이 없는 사람은 이미 반쯤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단다.


그러니 아들아, 직업은 반드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돈이나 명예, 화려함 같은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거라. 매일 매 시간 어떤 일에 마음을 쏟을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이 너의 소중한 시간을 바칠 만큼 의미 있는 일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단다. 시간으로 일의 가치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지 않겠니.


흔히 일을 ‘천직(vocation)이라고들 부르지.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고 과장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말 속에는 굉장히 중요한 지혜가 담겨 있단다. 천직이라는 말은 ’부름(calling)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이것은 ‘목소리(voice)’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지. 다시 말해 천직이란 ‘해야만 하는 일’을 뜻한단다. 즉, 네가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일, 네가 누구이며 네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게 해주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 일을 하도록 너를 부르고 너의 인생에 목소리를 주는 것이지. 단순히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일과는 전혀 다른 거란다. 세속적인 기준 하에 특별한 대우를 받는 전문직을 갖는 것과도 다른 일이지.


그러한 일을 찾았을 때는 가슴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라. 물론 자신의 천직을 찾을 만큼 운 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그러지 않고 어떤 보상을 바라며 일을 시작한다면 설사 나중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보람도, 기쁨도 느끼지 못해. 돈이나 명예는 취했을지언정 가슴은 잃어버린 상태일 테니까. 그러한 인생이 돈이나 명예와 교환된 일회용품과 다를 게 뭐 있겠니.


사랑에 대하여
사람들은 왜 사랑에 빠질까? 글쎄, 그 해답을 아는 사람은 없단다. 사랑에 대한 의문은 지금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왔어. 인간이 언제 어떻게 왜 사랑에 빠지는지, 또 어떤 사랑은 오래 지속되고 어떤 사랑은 쉽게 식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언젠가 너도 이 신비로운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원인과 이유를 캐내려 하겠지. 하지만 이러한 신비를 알게 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란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야. 우리의 생명이 단순한 뼈와 근육, 신경조직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사랑은 두 사람의 관심과 매력, 공통점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결합이란다. 우리네 삶 자체가 애초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거두어지는 것처럼, 사랑 역시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선물과도 같단다.


언젠가는 네게도 사랑이라는 선물이 활짝 핀 꽃처럼 다가올거야. 그러면 너는 사랑을 꼭 부여잡은 채,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겠지.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꾼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정신을 사로잡고 잠시 동안 우리를 축복해주다가 홀연히 떠나가버린단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사랑이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왔다가 가버린다는 사실을, 아무리 애를 써도 떠나가는 사랑을 붙잡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이 식었거나 상대가 사랑의 마법에서 깨어날 때쯤, 그동안 누린 사랑이 좋은 선물이었음을 깨닫고 다가올 사랑을 믿기보다 이미 식어버린 사랑에 불을 붙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는 해. 그러고는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으려고 하고 만들기도 하지. 상대가 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 이유를 알려고 하고, 노력하면 그 사랑을 다시 불태울 수 있다고 억지를 쓰며 연인의 마음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쓴단다. 사랑이 식어버린 이유를 환경 탓으로 돌리고 그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둘의 사랑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고집하는 거지. 둘 사이에 일어난 어떤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 하지만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일 뿐 거기엔 어떤 의미도 없단다. 사랑의 신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야.


아들아, 너는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사랑이라는 축복이 다가오면 그 선물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거라. 혹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자책하지는 말거라. 그건 네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의 마음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일 뿐이야. 또 네 마음에 없는 누군가가 네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누군가 너를 찾아와 네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해. 하지만 보답할 수 없는 선물은 정중하고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이 좋단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남의 가슴에 못 박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사랑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랑이 너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단다. 세상 사람들의 인생과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 다르지만 어떠한 경험 앞에서 느끼는 고통과 기쁨은 누구나 같은 법이야.


네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너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사랑이 네게 찾아오면 그저 신비 그 자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면 된단다. 사랑이 네 몸을 채우는 방식을 느끼고 손을 내밀어 그 사랑을 나누어주렴. 네 안에 사랑을 꽃피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돌려주어라. 영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주렴. 할 수 있는 만큼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라. 사랑은 아무리 퍼주어도 사라지지 않는단다. 많은 연인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야.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과 욕망을 착각하게 된 것이지.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느라 사랑이 제 마음에서 우러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해.


누구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면 오직 사랑으로 충만해 있지만 그 사랑이 식어가면 다시 사랑을 욕망으로 보게 된단다. 사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는 거지. 사랑은 신비로운 선물이라는 것을, 베풀수록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야. 이와 같은 사랑의 신비를 잊지 말고 항상 가슴에 새겨두어라.


스포츠에 대하여
하루하루의 일상이 바쁘겠지만 가능한 한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스포츠를 만들어보아라. 스포츠의 단점만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비난하지만, 스포츠는 다른 분야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해준단다.


스포츠에는 몇 가지 고유한 특성이 있어. 먼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유한성을 들 수 있겠구나. 스포츠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또 일단 끝이 나면 네가 얼마나 잘했는지 명확한 평가가 내려지지. 바로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니? 정해진 기준에 맞춰 자신을 평가하고 그 즉시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말이야. 인생에서 이처럼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있겠니. 하지만 스포츠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지. 또한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 더 빠른 기록과 더 느린 기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인생의 다른 경험들과는 달리 현실의 한 조각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야.


스포츠는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면서도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 속에 아주 생생하게 남는단다. 누군가에게 몇 년 전 자신이 한 스포츠 시합에 대해 물어보렴. 그러면 그 사람은 마치 어제 시합을 치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말해줄 거야. 그 게임에 임하는 동안 어느 때보다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기에 일상생활에 대한 것보다 더 생생히 기억하는 거란다. 물론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그런 순간이 있을 수 있지만 스포츠를 할 때만큼은 아닐 거야.


스포츠는 너의 지성과 의지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특별한 무대이기도 해. 육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스포츠의 결과는 아주 간단해. 누가 누구보다 강하고 누가 먼저 한계에 부딪히느냐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지성으로도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단다. 어떻게 하면 더 영리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는지, 즉 이성으로써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교훈을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배울 수 있어.


너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 승부에 승복하는 편이니, 아니면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편이니? 분노라는 에너지를 통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 화만 내다가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사람이니?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너 하나만 이기기를 바라니, 주변 사람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면서 자신도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니? 상대의 강점에 정면으로 맞대응해서 극복하는 사람과 상대의 약점을 캐내려 애쓰는 사람, 이 둘 중 넌 어느 쪽에 속하는지 자문해보렴. 실전에서는 이와 같은 갈림길에서 신중하게 결정할 시간이 없단다. 어떤 사람이 될지 본능적으로, 순간적으로 내리게 되지. 그리고 너 자신의 행동은 시합이 끝난 후에야 알 수 있어. 그렇게 스포츠는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너의 실체를 말해준단다.


지인 중에 하프마라톤 경주에 출전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계단 오르기, 쪼그려 뛰기,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누워서 다리 들어올리기 등, 육상 선수도 힘들어할 훈련을 아주 열심히 했단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마라톤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단다. 어느 날 마라톤 경기장에서 그를 만났어. 여전히 성실하게 연습하고 있더구나. 운동장을 몇 바퀴나 뛰었는지 허리를 숙인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토해내고 있었어.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물었지.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겁니까? 스포츠는 즐겁게 살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한데 당신은 꼭 고문 받는 사람 같아요.” 그러자 그는 결승선에서 1미터쯤 떨어진 지점에 발끝으로 선을 긋더니 이렇게 말하더구나. “이 마지막 1미터를 위해 뛰는 거예요. 이 마지막 1미터를 뛰는 순간이면, 전 정신과 상담사를 만났을 때보다 나 자신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요.”


그가 운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 ‘마지막 1미터’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단다. 어느 스포츠나 경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몇 분 혹은 몇 미터를 앞둔 순간이 있단다. 그때만큼 인간의 육체와 의지가 완벽하게 시험받는 순간은 없어.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 인간의 진면목이 극명히 드러나는 법이니까. 재능이 있든 없든 이 ‘마지막 1미터’에서 자신의 역량을 아주 정확히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가 있지.


스포츠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이 밖에도 아주 많이 있어. 네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하나 선택해 전심전력을 다 쏟아보렴. 단, 그것을 통해 명예를 얻으려 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보다 순전히 그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스스로의 진면목을 확인하거라. 아마 다른 어떤 경험에서도 얻을 수 없는 동료애와 스스로에 대한 영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인생의 다른 영역에서 ‘마지막 1미터’를 앞둔 사람을 만났을 때, 너는 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거야. 그것이 어떤 경험이고 무슨 의미를 갖는지는 느껴본 사람만이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경쟁의 무대에선 활짝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의 공감을 느낄 수 있지. 그러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 게다가 몸도 건강해지고 자아도 확인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일 아니니. 부디 이 경험의 가치를 누리고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선물로 간직하거라.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사랑을 꿈꾸고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하지만 인생에서 완벽한 것은 거의 없단다. 그렇기에 완벽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실망감에 휩싸이지. 채워질 줄 모르는 이기심과 욕망에 휩싸여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해. 한데 완벽해지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단다. 바로 아버지가 되는 거야.


누구나 자기 자식을 완벽하게, 무한히 사랑한단다. 그건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아이는 그러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받으며,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면서 태어나지.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부모에게 내맡긴단다. 아무런 조건도, 동기도 없이 자의식이 결핍된 상태로 자신을 부모에게 선물해. 그와 같은 아이의 완전한 사랑은 부모의 완전한 사랑을 불러내지. 네 아이가 뼈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탄생하는 그 빛나는 순간, 너는 네게 주어진 그 놀라운 생명체를 바라보면서 아이와 하나가 되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을 거야.

 

옛날에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단다. 아이는 그저 짐만 될 거라고 생각했지. 아이가 태어난 뒤 내게 지워질 무겁고 버거운 책임감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되어보니 세상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더구나. 아이 때문에 내가 제약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책임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적도 없었단다.


아버지가 된 다음에야 나는 비로소 내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분들이 아낌없이 베푸신 사랑을 깨닫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지. 내 아들이 이렇게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도 있었단다. 이기심과 욕망이 제거된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그제야 알게 된 거야.


아이에게 사로잡히면서 나는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었어. 그 강렬한 경험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그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희열 중의 하나란다. 언젠가 너도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진정한 인간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일단 자식만 낳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뜻은 아니야. 결혼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른단다. 너의 한계와 이기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말이야. 자식은 너무나 완벽한 선물이고, 때문에 누구나 그에 보답하기 위해 완벽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지. 또한 마음은 본능적으로 그 완벽함의 방식을 알아챈단다. 그러한 완벽함의 기준을 삼아 노력하면 삶의 수준이 훨씬 높아질 수 있어.


너 또한 그런 노력을 모른 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아버지가 되면 너는 자연히 네 삶의 모습과 좋은 아버지상에 대해 네가 정한 표준을 여기저기에 견주어보게 될 거야. 그런데 인생을 제대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즉 결혼 생활이 원만치 않거나 인생을 갉아먹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거나 아버지로서의 자질을 익히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마음속에 언제까지고 남은 수치심 때문에 진정한 아버지가 되기가 힘겨워진단다. 술에 의존하거나 다른 여자에게 도망을 치더라도 네가 실패했다는 냉엄한 진실은 영원토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야.


그러므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선물로 생각하거라.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고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지는 기적과 같은 거란다. 건강하든 병약하든, 예쁘든 못생겼든 세상의 모든 아이는 세상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지. 그 빛을 얻는 것보다 크고 값진 경험은 없을 거야. 부디 그 경험의 소중함을 알고, 네 아이의 완벽한 사랑에 완벽한 사랑으로써 보답하거라.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