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크게 1부 정치파워 그룹, 2부 경제파워 그룹, 3부 사회파워그룹으로 구성했으며, 각 그룹의 & 행보와 역학관계를 토대로 향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파워 그룹으로는 전통적진보주의, 온건 보수주의, K스트리트(로비스트)를 경제파워그룹으로는 군산복합체, 다국적기업, 월스트리트를 분석한다. 사회파워 그룹으로는 진보적싱크탱크, 인터넷미디어, 시민운동단체를 살펴본다. 오바마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파워집단과의 관계를 통해 세계 정세의 변화 가능성을 예고하면서동시에 우리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충고를 건넨다.
■ 저자 우태희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행정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4학년 재학 중 제27회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1984년 상공부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통상진흥국, 상역국, 통상협력국, 산업정책국, 기획관리실 등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1997년 주무과장인 산업정책과장으로발탁되었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U.C.버클리대학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졸업할 때는 현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교수로부터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 후 산업자원부 산업혁신과장을 맡으면서 노사정위원회 실무위원으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 2006년6월까지 대한민국 뉴욕총영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했으며, 이후 산업자원부 투자진흥과장, 청와대 산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거쳐 현재 주미한국대사관 상무관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있다.
■차례
추천사 _ 로브 와니(W. Robert Warne, 前 KEI 원장)
머리말 _ K스트리트를걸으며
제1부 정치파워 그룹
파워1 전통적진보주의
1. 최초의 흑인대통령 탄생
2. 지지기반 변화
3. 2008년 대선경쟁
파워2 온건 보수주의
1. 새로운 보수주의 판도
2. 기독교복음주의
3. 감세론자
4. 민주당의 의회장악
파워3 K스트리트
1.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2. 대표적이익단체
3. 로비스트 규제
제2부 경제파워 그룹
파워4 군산복합체
1.이라크전과 미국정치
2. 민간군수기업
3. 군수 대기업과 정치인
& 파워5 다국적기업
1. 월마트와 미국 정치
2. 미국제약업계
3. 미국 농업계
4. 미국 자동차업계
& 파워6 월스트리트
1. 금융과 미국 정치
2. 서브프라임 사태와금융위기
3. 살아남은 은행들
& 파워7 에너지기업
1. 에너지와 미국 정치
2. 부시 행정부의에너지정책
3. 고유가와 석유 대기업
제3부 사회파워 그룹
파워8 진보적싱크탱크
1.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의 보급소
2. 진보적 싱크탱크
3. 보수적 싱크탱크
파워9 인터넷미디어
1. 인터넷 신문
2. 인터넷과 정치
3. 미국의 기존 언론사
4. 정치양극화의 심화
파워10 시민운동단체
1. 단체의 종류
2. 정치개혁
3.행정개혁
4. 기업개혁
에필로그
오바마 시대의 세계를 움직이는 10대 파워
제1부 정치파워 그룹
파워1 전통적 진보주의
- 최초의 흑인대통령 탄생
오바마의 본명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이다. 그는 케냐 출신 미국 유학생과 캔사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1961년 8월 4일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쓴 부모의 결혼은 결국 2년 뒤 이혼으로 끝났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고 오바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오바마는 7살 때 하와이로 돌아와 외조부모 슬하에서 고독하게 자랐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틀대학에 입학하고 인종차별정책 항의집회에 참가하면서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로 돌아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한 오바마는 낙후된 주거환경, 범죄와 실업증가 등 지역문제 해결에 앞장서면서 하버드법대에 진학했다. 그는 수석으로 졸업한 뒤 시카고로 돌아와 자선봉사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고 지역인권변호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였다. 2000년 그는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경선에 나갔다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2002년 주 상원의원에는 재선되었다. 2004년 11월, 오바마는 역사상 세 번째 흑인 연방 상원의원으로 기록되었고 이때부터 그의 ‘흑인대통령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 지지기반 변화
일반적으로 평균적인 미국인의 정치성향은 보수중도 성향이라고 한다. 갤럽에서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인들의 정치 성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미국 성인인구를 100으로 볼 때 40%가 보수주의자, 40%가 중도주의자 그리고 나머지 20%가 진보주의자로 나타났다. 그래서 민주당은 항상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하게 된다.
민주당의 최고 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캘리포니아 서부 버클리 지역에서 불기 시작한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면서 민주당은 전국적인 지지기반을 갖추게 된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은 노동자, 환경보호론자, 여성단체, 소수민족의 네 부류였다. 문제는 50년이 지난 지금 이들 지지세력들이 약화, 분열되고, 일부는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노동운동, 환경보호운동, 여성인권운동 등은 쇠락하고 있다. 민주당의 가장 기초적인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기존 지지기반은 약해졌지만, 새롭게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집단이 바로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건축가, 엔지니어 등 고소득 직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1970년대만 해도 공화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침체와 보수주의 반격 등을 보면서 이들의 정치 성향도 바뀌게 되었다.
- 2008년 대선경쟁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오바마에 열광하는 젊은층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다. 이들은 ‘오바마 돌풍’으로 미국의 새로운 정치혁명을 추진했다. 둘째, 인터넷의 선점과 효과적인 활용이다. 회원수 1억 3,000만 명으로 미국 내 최대 회원수를 자랑하는 마이스페이스에서 ‘오바마의 친구들’은 31만 명에 이르러 힐러리(18만 9,000명)와 매케인(4만 7,000명)을 압도했다. 셋째, 자유진보세력의 연합전선 구축이다. 오바마가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블루칼라는 물론 전문직 종사자, 서비스업자, 자유의지론자, 농촌인구에 이르는 광범위한 계층으로 지지세력을 늘려갔기에 가능했다. 넷째, 풍부한 선거자금의 확보이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추대된 직후 오바마는 연방선거보조금을 받지 않고 대선을 개인모금으로 치르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지 32년이 되었는데, 보조금을 거부한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다.
파워2 온건 보수주의
- 새로운 보수주의 판도
부시 대통령이 집권했던 8년 동안 미국 정치권력의 중심은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신 보수주의자에게 있었다. 부시 집권 1년 뒤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이들의 입지는 한층 더 강화된다. 알카에다 응징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이들은 젊은 시절 닉슨, 포드, 레이건 행정부 등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수십 년간 냉전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 이념적 방향을 같이 해온 동지들이다.
- 민주당의 의회장악
1006년 민주당은 중간선거의 승부수로 ‘공화당의 부패문화 청산’을 앞세우며 정치공세를 높였다. 그 결과 2006년 11월 7일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스캔들로 유권자들은 공화당을 부패정당으로 보게 되었고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민주당의 의회장악은 1994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민주당의 새 지도부는 제60대 하원의장에 낸시 펠로시를 선정했다. 펠로시는 첫 여성 하원의장이다. 펠로시는 깨끗한 정치, 일하는 의회를 만들겠다고 공헌했다. 민주당은 ‘정직한 지도자-투명한 정부’ 법안을 첫 법안으로 제출했다. 부패청산을 위해 의원들에 대한 공짜선물, 공짜식사, 공짜여행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증원, 감세법안, FTA 비준, 에너지법안 등 공화당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 반대하면서 부시 행정부를 무력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9.11테러를 계기로 부시 행정부 전면에 포진하게 된 네오콘들은 미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강공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라크 전쟁 등 강경대응을 하면 할수록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계속 떨어졌다. 이라크전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상황 악화는 부시의 정치적 입지를 계속 약화시켰다. 결국 미국 역사학자 대부분은 부시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파워3 K스트리트
-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로비스트는 특정 산업이나 관련 단체의 이익을 위해 정치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로비스트들은 입법담당자인 의원 그리고 고위 정책담당자에게 해당 기관이나 조직, 세력의 입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인적관계와 외교적 방법 등으로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로비스트를 연방의회 상원과 하원에 이어 ‘제3원(院)’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로비스트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언론에 이어 ‘제5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이렇게 로비스트 제도가 발전하게 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미국에서는 로비활동을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인이 공직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선거자금이 필요한데 로비스트들이 선거자금을 모금해주기 때문이다. 셋째, 3권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부와 의회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회 내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과 의원들이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로비스트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로비스트의 기능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모두 공존한다. 한편에서 로비스트가 각종 이해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해서 문제를 설득하고 해결해야만 시위, 뇌물, 극한의 충돌 등을 방지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반면에 로비스트는 고객에게 고위 정치인, 공무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일감을 따내고, 로비의 대가로 고객으로부터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로비스트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가해 전체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반한 입법활동과 행정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정치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당 중심의 정치’에서 ‘인물 중심의 정치’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자기만의 정책을 내세워 지지자들은 만들고 스스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것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워싱턴 정치에 문외한인 새로운 인사들이 정계에 진출하게 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K스트리트(워싱턴의 로비회사들이 모인 거리, 즉 로비계를 의미한다)에 의지하려는 경향도 커지게 되었다.
- 로비스트 규제
그동안 미국에서 로비스트 산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술한 선거자금법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로비활동공개법의 경우, 1996년 발효된 이후 실제로 이 법에 의해 벌금을 내거나 징계를 받은 로비스트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느슨하게 운영된 것이 사실이다. 이에 2002년 미 의회는 거액헌금 자체를 막는 초당적인 선거자금 개혁법을 통과시켰다. 정치권, 이익집단, K스트리트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를 개혁하기 위해 미 의회가 칼날을 든 것이다.
이 법은 자본가들이 정치권에 돈을 기부하는 것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대신 일반 시민들의 소액기부를 권장하고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무제한으로 기금을 모금해서 후보자에 대한 지지 및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기업이나 노조의 돈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로 해 일정유형의 선거 직전 정치광고도 제한토록 했다.
벌써부터 오바마는 워싱턴 로비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공언하고 있다. 오바마는 로비스트가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정부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K스트리트 로비스트들이 회전문처럼 공직에 왔다 갔다 하는 악습을 버리고 수의계약 형태의 정부입찰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로비 관련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강화해 모든 로비활동을 투명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계약을 경쟁입찰방식으로 전환하고 관련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할 계획이다.
제2부 경제파워 그룹
파워4 군산복합체
- 이라크전과 미국정치
전 세계 군사비 사용액은 연간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40%인 4,781억 달러는 미국의 군사비용이다. 실로 미국의 군수산업은 세계 최대 규모이다. 군수산업은 업종의 특성상 소비자가 바로 정부이다. 네오콘과 같은 정부의 강경파, 보수적 싱크탱크, 보수언론 등이 강력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미국의 외교안보전략 및 국방예산 수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미국 국방예산이 급증하면서 국방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 2%에서 4% 가깝게 근접했고 전체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1%(전비 제외)로 상승했다. 거기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비용이 소요된 이라크전이 터지면서 군산복합체들은 최대 호황을 누리게 된다.
- 군수 대기업과 정치인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7년 동안 계속된 이라크전은 오는 2010년 5월 종료될 예정이다. 고유가 시대에 중동지역에서 최대 우방국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석유공급이 가능해졌다. 이라크재건 사업에 미국 군수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실리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첫째,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인 미국의 체면손상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지정학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고 부시 행정부는 가장 인기 없는 정부로 추락해버렸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공조전략의 실패다. 정상적인 UN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라크전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강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국가에서도 국민들의 분노와 반대시위가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미국 외교전략이 고립을 당하게 된 것이다. 셋째, 이슬람 문화권과의 충돌 가능성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라크는 제거되었지만 이란이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이라크전 이후 이란은 중동지역 강자로 부상했고 과거보다 더 큰 협상력을 갖게 됐다.
파워5 다국적기업
- 월마트와 미국 정치
힐러리 클린턴은 1986년부터 6년간 월마트의 이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월마트 본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에 위치해 있어 힐러리와 월마트의 인연은 각별했다. 당시 빌은 아칸소 주지사였고 힐러리는 ‘로스’라는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힐러리는 자신의 웹 사이트에서 월마트 이사 경력을 뺐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이후 힐러리는 “월마트에 축복과 저주가 뒤섞여 있다”는 언급을 했다. 값싼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한편 중국 등으로 일자리를 이전시켜 미국 내 실업을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러리는 될 수 있으면 월마트와 멀리하려고 애썼고 2005년에는 월마트의 정치헌금 5,000달러를 돌려주기까지 했다.
노동계 표를 놓칠 수 없는 민주당 후보들은 노동계의 눈총을 받아온 월마트와의 관계청산에 나섰다. 오바마 상원의원의 부인인 미셸도 2008년 5월 14일 월마트의 주 거래업체인 트리하우스 푸드스의 이사직을 사임했다. 저가판매를 강조해온 월마트가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준다는 악명이 높아져 남편의 선거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월마트처럼 국가간 국경을 넘나들면서 생산과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는 기업을 다국적기업이라고 한다. 월마트 이외에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만나게 되는 코스트코, 코카콜라, 맥도날드, 피자헛, KFC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200대 다국적기업이 세계경제 활동의 25%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막강한 월마트가 미국 정치인들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월마트는 ‘보수적인 경영방식’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월 1,300달러에 불과한데도 노동조합이 없다. 최근 수년간 평균 이직률이 40%에 이르러 매년 60만 명을 신규채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근로자의 불만이 커지고 노동계의 반발을 사 월마트는 급기야 불법노동자 채용, 성차별, 노동착취 등으로 수백 건의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 지나친 저가 판매전략의 부작용이다. K마트와 같은 경쟁업체들이 잇달아 ‘최저가’를 표방하면서 할인점의 마진율은 크게 떨어졌고 경영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셋째, 너무 매장 수를 늘리는 데만 주력해서 지방의 인심을 잃고 말았다.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월마트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등한시 해 매장 늘리기 정책이 지역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오바마가 당선되자 월마트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월마트가 기부하고 있는 정치헌금의 85%가 공화당으로 가고 있어 민주당에게 미운 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노동조합 결성이 쉬워지고 결과적으로 기업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2006년 월마트는 ‘국제서비스노조’와 한판 승부를 겨뤄야 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월마트는 종업원 건강보험 혜택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있고 최저임금제 상향 법안을 위해 로비하는 등 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파워6 월스트리트
- 서브프라임 사태와 금융위기
2008년 3월에 발생한 베이스턴스 사태는 미국 금융위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해 7월 미국 제2위의 모기지 대출업체인 인디맥이 파산할 때만 해도 큰 위기감은 없었다. 9월 7일 미 재무부가 양대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연방 주택금융지원국이 경영을 대신한다고 발표하자 다들 수군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리먼브라더스의 갑작스런 파산신청과 메릴린치의 매각으로 시작된 금융기관들의 파산 도미노는 세계경제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가는 무려 504.48포인트나 폭락해 또 다른 ‘블랙먼데이’로 기록되었다.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은 ABC방송에 출연해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금융불안이 가라앉지 않자 폴슨 재무장관과 버냉키 연중의장은 급하게 금융구제대책을 마련하고 9월 18일 저녁 미 의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부실 모기지 매입을 위해 정부가 공적자금 7,00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9월 27일 폴슨 장관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금융구제법안에 대한 당정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하원에서 부결되고 만다.
금융구제법안은 ‘비상경제안정화법’으로 이름이 바뀌고 내용도 당초 12개 조문에서 43개 조문으로 늘어났다. 탐욕에 빠진 월가를 국민의 혈세로 도와준다는 비판이 많아지자 여러 가지 제약을 신설한 것이다. 내용상 크게 세 가지 제약을 두었다. 첫째, 7,000억 달러 공적자금이 한꺼번에 집행되지 않고 단계적으로 지원되도록 했다. 둘째, 납세자 보호를 위해 경영진이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부실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에 대한 임금 및 퇴직 보너스를 제한했고 부실자산 매입시 해당 기업의 주식 매입권을 보장했다. 셋째, 공적자금 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감독위원회를 설치했다.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세계 금융위기를 유발한 월스트리트에는 큰 개혁의 바람이 불 것이다. 남의 주식을 빌려서 거래하는 공매도 금지 등 각종 규제가 신설되고 고위험 상품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파워7 에너지기업
- 고유가와 석유 대기업
최근 고유가는 인위적 공급감축에서 비롯된 1970년대의 석유파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석유파동 이후 그동안 공급관련 투자나 신기술개발을 소홀히 했고 대외적으로 달러약세, 투기자금 유입, 개도국 수요급증, 지정학적 위험 고착화 등 4대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반면 미국이 소비하는 석유는 전 세계 소비량의 약 25%를 차지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대에 들어서고 미국 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자 미국 에너지정책의 전면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공화당의 20여 개가 넘는 에너지입법을 모두 무산시켜버렸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선유세 과정에서 신규 시추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자 상황이 바뀌었다. 오바마도 할 수 없이 ‘연안시추 절대불가’ 입장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안시추 허용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석유시추가 이뤄지려면 미 내무부가 5개년 계획을 작성하고 임대를 위한 개별적인 허가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내무부가 운영 중인 계획(2007~2012년)을 변경할지 또는 2012년 이후 계획에 반영될지 아직 공식입장이 발표되지 않았다. 더구나 시에라클럽 등 환경단체들이 석유시추금지 조항의 부활을 위해 강력한 로비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석유시추를 허용하긴 했지만 일단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으니 차기 의회에서 재론할 가능성도 있어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제3부 사회파워 그룹
파워8 진보적 싱크탱크
- 진보적 싱크탱크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는 적극적인 정책홍보 마케팅으로 다른 싱크탱크와 차별화된다. 정책연구는 연구결과보다도 이를 어떻게 적시에 포장해 홍보하느냐에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디어 평가단체가 매년 평가하는 언론인용 실적에서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5년간 13% 이상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바마는 경선 초반 경험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자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캠프에 합류시킨다. 특히 코드가 맞는 브루킹스 출신 브레인들이 대거 영입됐다.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아프리카담당 차관보, 필립 고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담당 국장, 제이슨 퍼먼 특별경제자문관 등이 그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참모들을 바탕으로 차기 정부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2000년 부시 행정부 출범시 미국기업연구소가 정책 산실의 역할을 했듯이, 오바마 행정부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브레인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파워9 인터넷 미디어
- 인터넷 신문
‘애프터다크’라는 스크린세이버를 처음으로 개발해서 애플과 계약을 맺고 큰돈을 번 조안 블레이즈와 웨스 보이드 부부는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을 종결짓자는 이슈를 가지고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98년 9월 22일 ‘무브온’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열흘 만에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 웹사이트를 방문해 서명했다.
‘무브온’ 운동을 통해 5일 동안 25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었다. 우편을 통한 자금모집과 달리, 인터넷을 통한 모금활동은 경비가 적게 들었다. 또한 두 사람은 조직적으로 워싱턴을 설득하는 운동도 시작했다. 일반 국민이 얼마나 클린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가를 알리기 위해 해당 의원들에게 25만 통의 전화를 걸고 100만 개의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한다. 무브온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정치적으로 이익표출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블레이즈와 보이드의 운동은 진보주의자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는 ‘인터넷 풀뿌리운동’의 효시를 이루게 되었다.
또 ‘무브온’은 인터넷 시대에 이메일과 조직망을 이용해 단일 이슈에 대한 지지층만 확보하면 무서운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출발한 이 운동은 그 뒤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비영리 ‘정치활동위원회’로 성장한다. 그래서 총기규제, 핵무기 억제, 선거개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진보적 미국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무브온은 지지자가 많아져도 정치에 초월해서 웹사이트를 객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브온은 다시 한 번 히트를 친다. 무브온은 부시의 재선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진보주의자들을 다시 규합했다. 조지 소로스와 조지 클루니 등이 동참해 170만 명의 회원들로부터 모두 1,000만 달러의 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모은 정치자금으로 무브온은 중요 격돌 국면에서 인터넷은 물론 TV 광고를 통해 부시를 공격했다.
2008년 2월, 무브온은 슈퍼화요일 직전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당초 클린턴 대통령 구출을 위해 결성된 무브온이 예상을 깨고 힐러리가 아닌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다. 무브온은 현재 330만 명의 회원을 갖고 있으며, 이 사이트를 통해 지난 10년간 모금한 정치자금은 무려 8,183만 달러에 이른다.
파워10 시민운동단체
- 정치개혁
지금까지 민주당에서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흑인 지도자는 오바마 이외에도 네 명이나 더 있다. 그러나 모두 다른 후보와 타협하거나 중도탈락했다. 공화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흑인 지도자들도 있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이들이 모두 대선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흑인 이익단체인 NAACP를 모체로 차별당하는 흑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투쟁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예전 흑인 지도자들과는 달랐다. 오바마는 ‘투쟁하는 흑인’이 아니라 ‘통합과 화합의 흑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NAACP와도 가능하면 거리를 두고 자신이 꼭 필요할 때만 이 단체와 협의했다. 그렇지만 선거 막판에 오바마의 큰 힘이 되어준 것은 흑인 유권자들이었다. 흑인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11.9%인 2,300만 명 정도 된다. 이중 90% 이상이 압도적으로 오바마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오바마 당선으로 대표적인 흑인 시민단체인 NAACP의 급성장이 예상된다. NAACP의 정식 명칭은 ‘전미유색인진흥협회’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민권단체 중 하나다. 2000년대 들어 NAACP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흑인들에 대한 대외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에게 NAACP가 흑인의 이해관계만 대변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구시대의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운영방식과 향후 활동방향 등을 둘러싼 이사회 구성원들과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NAACP는 미국 시민사회와 산업계에 변화를 촉구하는 스톱 캠페인을 벌이고 나섰다. 방송, 음반업계 등에서 흑인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와 이미지의 사용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흑인 지도자들의 정계 진출을 돕고 소위 ‘브래들리 효과’를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에필로그
오바마 집권 후의 정책 방향은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민주당 정강정책 보고서’에 제시된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라크 주둔 미군 조기철군, 보호무역주의 부활, 세제개혁 및 중소기업 지원강화, 재생에너지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형편에 맞는 건강보험 적용 등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한편 오바마가 집권하고 민주당 주도 미 의회가 더욱 세력을 얻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한ㆍ미관계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오바마는 2008년 2월 의회발언록을 통해 특별히 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고 한미관계를 재확인하고 활성화시킬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대화와 적극적인 외교를 주장하지만,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견지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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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오바마는 한미 FTA에 조금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안에 한미 FTA가 양국 의회에서 비준되고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양국 무역발전과 경제협력 강화에 새로운 추진력을 줄 것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처럼 오바마의 당선이 한미동맹을 새롭게 결속시키고 미래 동반자관계 정립에 크게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