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세계의 청소년에게 전하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한국인 최초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성장 과정을 담은 책이다. 외교통상부 담당 기자인 저자는취재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면서 알게 된 반기문 유엔 총장 이야기를 세세히 풀어내고, 반기문 유엔 총장의 지원을 받아, 그의 가족과주변인들로부터 전해들은 그의 성장과정, 그의 꿈, 그 꿈을 실현하기까지의 시간들을 미공개 자료,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또한 우리 청소년들이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보너스 페이지에 ‘외교관의 되는 법’과 ‘유엔이란무엇인가(국제기구에 들어가는 방법)’를 담았다. 부록에는 청소년들의 화두인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반기문 사무총장이 유엔 연설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 저자 신웅진
1969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졸업한 후 1994년부터 뉴스전문채널 YTN기자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정치부 소속으로 외교통상부 담당 기자이다. 외교통상부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반기문이라는 인물을 가깝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가 소문대로 실력과 인품을 다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가 가지고있는 기본에 충실한 삶의 태도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이후 청소년들에게 반기문이라는 인물의 성장과정과 그가 영어 공부를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반기문 총장은 그 자체로 글로벌 세대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인물이기때문이다.
■ 차례
이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세계의 꿈을 이룰 한 사람의성실함과 열정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꿈을 위한 작은 도전이 큰 세상을 만듭니다 - 강지원 변호사, 푸르메재단대표
프롤로그 - 세 가지만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습니다
1부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1. 공부라는 놈을 믿고 마음을줘라
부지런한 장끼처럼 온 세상을 날아다닐 아이 어리바리 전학생의 전학 극복기 운동은 젬병 공부에는 욕심쟁이 영어 때문에 가슴이두근두근 잘하는 과목 하나가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공부는 열심히 해주면 배신하지 않는다
2. 꿈도 물을 줘야 자란다
꿈은 어디서 시작될지 모른다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와주고 싶어 한다 충주의 스타 탄생 꿈의 설계도가 완성되는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설계도를 따라서
3. 결핍이 없이는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없다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면 뿌리칠 힘이 키워진다 돼지똥 지고 다니던 반 씨네 장남? 이룰 꿈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순박한 가정교사, 아이의 가슴을 뛰게 하다 장래가 촉망되는 성실한필기의 왕 장 장군의 영어 선생님, 반 이등병 너무나 조용한 연애 너무나 소박한 결혼 지금은 인도로 간다
2부 실력과 인품을 다 갖춘 큰 인물이 되라
4. 최후의 승리는 결국 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을 만나다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법 선량하게 사는 것은 대물림된다 따뜻한 리더십과 철저한 자기 관리 ‘대한민국 황희 정승’의 자기원칙 날카로운 양심을 따라라 종이 한장으로 감동시키는 방법 먼저 인간이 돼야 진정 성공할 수 있다
5. 열정만 있다면 부족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장관님의 프랑스 어 과외 시간 열정은행운의 여신을 웃게 만든다 우리 남편 좀 말려주세요 댄스 파티에서의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련하게 열심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 최고의 외교관이 흘릴 수밖에 없는 눈물 자신을 위해 한 시간도 쓰지 못한 그의 시련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는 것을 두려워말라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끝’이라 하지 말고 ‘다시 시작’이라고 외쳐라 대한민국을넘어 세계로
에필로그 - 한국인의 새로운 자부심 반기문 총장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빌며
부록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연설문(영한 대역)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1. 공부라는 놈을 믿고 마음을 줘라
공부는 열심히 해주면 배신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에 푹 빠져 있던 기문에게 고2때 영어 담임이었던 김성태 선생님은 더 큰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 시절 학생들이 쓰던 영어 참고서는 대부분 일본의 영어 교재를 번역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도 있었고, 그 부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어색한 부분과 오류도 꽤나 많았다. 김성태 선생님은 그것으로는 효과적인 영어 수업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들이 자칫 영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서울에 올라가 온 서점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새로운 영어 교재를 구해왔다. 우리나라 영어 교재가 한두 권씩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교재를 중심으로 수업 준비를 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김성태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열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좀 하던 아이들은 물론, 영어라면 진작에 포기했던 아이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특히 기문의 실력은 발군이었다. 그 시절 영어 시험은 대체로 주관식으로 철자 하나만 틀려도 점수가 팍팍 깎였고, 70점만 받아도 명문대를 갈 수 있는 수준의 시험이었다. 기문은 그런 시험에서 75점을 받았다.
김성태 선생님은 기문을 불러 격려해 주었다. "기문아, 너 정도 실력이면 서울의 좋은 대학도 갈 만하다. 가다가 처지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해봐라."
기문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선생님이 고마웠다. 그리고 김성태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한 학기가 지나자 기문은 매 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 시작했다. 공부에 대한 방향 감각이 생긴 덕이었다. 김성태 선생님은 그런 기문에게 "선생님이 가르칠 건 남겨둬야 하잖아? 허허, 너한테는 더 가르칠 것이 없구나."라고 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탁월한 성적을 낸 반기문의 남다른 공부법을 궁금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인정받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공부에게 온통 마음을 줘버렸다는 게 달랐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특별히 출세를 목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공부에게 진심을 주었고 공부는 그의 진심을 배반하지 않았을 뿐이다.
2. 꿈도 물을 줘야 자란다
꿈은 어디서 시작될지 모른다
기문의 생활, 학습 태도를 찬찬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하루는 기문을 부르셨다. "기문아, 너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한 것이 있느냐?" 기문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정치외교학과에 다녔던 것 알고 있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네가 외교관이 되면 참 좋을 것 같구나. 넌 영어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다투지 않는 성품에다 매너도 참 좋은 아이거든."
"선생님께서 잘 봐주시고 칭찬해주시는 거 감사해요. 이런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하지만 아직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외교관이라니……."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낯설던 시절이었지만 기문도 오래 전부터 그런 꿈을 조금씩 품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외교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외교관이 되어야 할지 생각하기 어려운 때였다. 당장은 먼 나라 이야기같이 들렸다. 그래도 외교관이라는 말에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기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 변영태 외무부 장관(3대,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재임)이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강연회를 열었는데 기문이 다니던 충주 교현 초등학교에도 방문했다. 그날 변영태 장관은 외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역설하는 대신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미래, 체력을 키우십시오. 체력은 국력입니다라는 주제로 일종의 건강 계몽 강연을 했다.
기문은 변영태 장관처럼 우리나라를 위해 외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 나라를 위해 큰 사람이 돼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었다. 변영태 장관의 강연회 이후 기문은 "나도 나라를 위해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식구들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꺼내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국제적인 일을 한 적이 있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기문은 헝가리 국민봉기와 관련해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탄원서를 보낸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지배를 받던 헝가리에서 1956년 10월 23일 공산당 독재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자 소련은 탱크를 몰고 헝가리를 무력 침공했다. 이에 기문은 소련을 규탄하는 내용의 글을 전교생 앞에서 읽어 내려갔다.
기문은 헝가리 혁명이나 유엔, 유엔 사무총장의 일, 국제 정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는 있었다. 남의 나라에 탱크를 몰고 들어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헝가리의 사정이 일제강점기의 우리 사정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옳은 것을 위해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대로 행동한 것이었다. 동네 골목을 평정하는 일에나 관심 가져야 할 초등학생으로선 일종의 오버일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이 인연은 대단히 길게 이어졌다. 정확히 50년 뒤 헝가리 정부로부터 헝가리 자유의 메달을 받게 된 것이다. 2006년 가을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수락연설을 통해 바로 이 일화를 소개했고, 헝가리 정부는 이 오래된 일화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3. 결핍이 없이는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없다
지금은 인도로 간다
외교부 입부 연수를 마친 후 기문은 해외 근무지 중 인도를 지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반기문이 외교부에 들어간 1970년에도 미국과 관계된 일은 언제나 외교부에서 최우선이었다. 북한과 극한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한창 경제발전을 하고 있던 때라서 군사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미국의 도움이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부 내에서도 미주국은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고 인기 부서였고, 해외 근무지로서는 미국이 1순위였다.
반기문은 1등으로 연수를 마쳤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기문도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물가가 비싼 미국에 가면 생활비가 많이 들어 부모님과 동생들을 돕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영어권 나라 중에 생활비가 아주 싸게 드는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 인도를 선택했다.
지금이야 인도가 친디아니 하며 중국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인도는 오지에 속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외교부 입부 연수 1등이 인도에 가다니, 모두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급기야는 외교부 감사관이 반기문을 불렀다. 뭔가 부당한 인사조치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최우수 성적으로 연수를 마치지 않았나. 미국으로 지원했는데 발령이 잘못 난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제가 지원한 것이 맞습니다. 미국은 다음에 갈 기회가 있겠지요. 지금은 제가 지원한 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국에 가고 싶은 바람을 접고 인도로 발령지를 선택했지만 기문은 별로 속상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음 번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생활하다 보면 그런 기회가 생길 거다 라고 생각했다.
반기문은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듯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는 결핍을 통해 배운 것이다. 돼지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돼지 키우는 일은 그가 앞으로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돼지가 잘 자랄 수 있고, 돼지가 잘 자라줘야 학비와 생활비에 보탬이 되어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무시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그가 장관을 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4. 최후의 승리는 결국 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먼저 인간이 돼야 진정 성공할 수 있다
반기문은 방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나 운전을 해주는 기사들에게도 늘 깍듯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보기 드물게 좋은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인간 반기문의 진정한 매력은 언제나 한결같은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많은 외교부 직원들이 그의 친절함과 따뜻함을 경험했다. 직원이 아프거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수시로 묻고 격려해주는 세심한 사람이다. 오래 전에라도 한번 인연을 맺은 직원들이 상을 당하면 아무리 바빠도 꼭 찾아간다. 오스트리아 대사 시절에 함께 일하던 후배 외교관이 간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바쁜 와중에도 간암에 좋다는 것이면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 수시로 찾아가 위로했다.
2001년 외교부 차관직에 있을 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퇴진을 해야 했다. 우울하고 답답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날 공교롭게도 주례를 서주기로 오래 전부터 한 약속이 있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부하 여직원의 결혼식이었다. 급하게 주례를 바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예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혹시 그 직원과 가족이 내가 식장에 안 나타날까봐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먼저 발동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 신부의 부모를 만났다.
"아이고 차관님. 안 그래도 소식 듣고 걱정 많이 했습니다. 경황도 없으실 텐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습니까?"
"아, 예. 어떻게 하다 보니 좀 일찍 왔습니다. 오늘 주례는 걱정하지 마세요."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결혼식 주례는 무사히 마쳤다. 그는 그렇듯 겉치레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랬으니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선한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마음 뿌듯한 일이다.
5. 열정만 있다면 부족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열정은 행운의 여신을 웃게 만든다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한 후 2006년 7월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1차 예비투표가 있었다. 유엔 안보의 의장국인 프랑스 측에서 그 결과를 직접 알려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벨이 울리자 동시에 두 대의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전화로 들려오는 프랑스어는 충분히 알아들을 만했다. 게다가 그에게 아주 반가운 내용이었다. 1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고 했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반기문은 필립 두스트 블라지 프랑스 외교장관을 세 차례 만났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블라지 장관은 반기문의 프랑스어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스터 반,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프랑스어를 익힌 사람입니다. 올해 당신을 세 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인사말 정도만 하더니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이번에는 외교 업무도 충분히 소화할 수준이네요. 당신의 프랑스어 아주 훌륭합니다."
반기문은 이 이야기를 적지 않게 하고 다녔다. "허허허. 그 프랑스 사람이 제게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제 자랑한다고 흉봐도 할 수 없어요." 평소 자랑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힘들게 공부한 프랑스어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 스스로도 대견했던 모양이었다. 노력하고 발전하는 그런 것이 반기문의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그의 프랑스어 실력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인정해주었다. 한 작은 파티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만났는데, 유엔 사무총장 후보인 그에게 시라크 대통령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반기문이 파티에서 프랑스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자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반기문의 프랑스어가 매우 괜찮았던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활짝 웃으면서 옆자리에 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꾹 찔렀다. "저 사람이 이번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 사람이랍니다. 프랑스어 실력이 대단하네요."
반기문이 프랑스어를 배우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그들도 짐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만족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반기문 후보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도 높아졌다.
독일어는 1998년 오스트리아 대사로 나갔을 때 익혔고, 독일어권 대사들과 사귀고 싶어 배우게 되었다. 그후 독일어권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연설을 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반기문이 모든 외국어를 원래 잘하거나 외국어에 대단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다는 열정이 언제나 그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끝 이라 하지 말고 다시 시작이라고 외친다
한승수 장관의 유엔 총회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유엔에서 새롭게 시작한 반기문은 대단한 열정으로 일했다. 유엔 총회 의장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각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어느 날 유엔에서 아동 권리에 관한 국제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아랍권에서 절차상의 실수를 문제 삼아 이스라엘의 참석을 반대했다. 이스라엘과 매우 긴밀한 관계인 미국은 이스라엘도 넣어주라고 유엔 총회 의장을 압박했다. 그런데도 아랍권에서 뜻을 굽히지 않자 반기문은 아랍 회원국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말이 쉽지 각국의 담당자를 만나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회의는 정치적 목적에서 여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어린이들의 권리를 위한 것이니 절차상 실수는 더 문제 삼지 맙시다. 어린이들마저 혼탁한 어른들의 정치에 끼워 넣어야 하겠습니까?"
그는 회의의 목적을 상기시키면서 아랍권 대표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었다. 아랍권도 그의 열정에 감복했지만 이스라엘은 이 일로 반기문을 대단히 열정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
그는 국제무대에서 소외된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국제 정치에 있어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다른 국가들은 일이 복잡해질까 가까이하기를 꺼려했지만 반기문은 달랐다. 유엔에 주재하는 팔레스타인 대표와도 자주 만나 그의 진심을 들어주고 수시로 격려했다. 반기문은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국제사회에서도 적이 없는 진짜 외교관으로 통했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인연이 나중에 차례차례 그에게 큰 도움이 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