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김내리
ǻ
카시오페아
   
18000
2020�� 12��



■ 책 소개


“일상에 그림이 필요한 순간, 나는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에 들어섭니다”

전시 모임 커뮤니티 대표이자 도슨트로서 미술 작품의 의미를 전하고 가슴속에 각자만의 그림 한 점을 품게 만드는 일에 힘쓰고 있는 김내리 작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미술 작품이 일상에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들을 엿봤다. “그림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는, 그동안 몰랐던 그림의 세계와 이야기들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나와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1월 첫째 주 새해의 굳은 의지를 다지게 하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시작으로 12월 마지막 주 역사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한해를 정리하게 만드는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까지, 이 책은 저자만의 따듯한 스토리텔링으로 인생의 바닥이 느껴질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곤함을 느낄 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워졌을 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림 이야기를 풀어냈다. 

촉망받던 법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칸딘스키, 명예와 부귀영화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사전트, ‘삶이 곧 예술’이라는 평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가치를 실천했던 라르손. 이처럼 화가의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된 그림들과 그에 얽힌 스토리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반성과 울림을 전한다.

■ 저자 김내리
전시 모임 커뮤니티 I·ART·U 대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과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도슨트로도 활동하며 미술 작품의 의미를 전하고 가슴속에 각자만의 그림 한 점을 품게 만드는 일에 힘쓰는 중이다. 더불어 전시회에 직접 오지 않아도,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편하게 그림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시와 작품,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일상에 그림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인생의 바닥이 느껴질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곤함을 느낄 때, 인생의 무미건조함을 느낄 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워졌을 때, 저자는 “그림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그림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나아갈 방향을 찾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1년 52주 365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이다. 희망찬 출발을 준비하기 위한 그림, 격정적 로맨스가 담긴 그림, 보기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그림,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그림,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 인류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 깜짝 선물과 같은 그림 등 그저 펼치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하루가 충만해지는 그림 52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useum_k/
블로그 https://blog.naver.com/tbee0909


■ 차례
프롤로그 일상에 그림이 필요한 순간, 나는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에 들어섭니다

1월
1 WEEK 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2 WEEKS 가정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신재현 〈호작도〉
3 WEEKS 겨울의 낭만과 로맨스가 싹트는 공간
쥘 세레 〈샹젤리제 스케이트장〉
4 WEEKS 소박한 요리에 담긴 엄마의 마음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요리 도구, 냄비와 프라이팬, 달걀 세 개〉

2월
5 WEEKS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6 WEEKS 고난과 역경을 묵묵히 참고 견디다 보면
이반 시시킨 〈북쪽〉
7 WEEKS 말없이 온기를 내어주는 친구
찰스 버튼 바버 〈다시는 안 속아〉
8 WEEKS 친구와 취향을 나누는 삶
전기 〈매화초옥도〉

3월
9 WEEKS 봄,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순간
폴 시냐크 〈박자와 각도, 음색과 색채의 리듬을 페인트로 재현한 배경 앞에 서 있는 페네옹〉
10 WEEKS 사랑과 희망의 나무
빈센트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
11 WEEKS 눈으로 듣는 음악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8〉
12 WEEKS 익숙한 것을 고집하고 싶지만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13 WEEKS 사랑과 평화, 그리고 그리움
마르크 샤갈 〈초록의 바이올리니스트〉

4월
14 WEEKS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따듯한 마음
구스타브 카유보트 〈대패질하는 사람들〉
15 WEEKS 복잡한 인간사가 담긴 그림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6 WEEKS 아기에게 엄마는 온 세상
메리 카사트 〈아기의 첫 손길〉
17 WEEKS 시와 음악, 색채의 협연
파울 클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5월
18 WEEKS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꽃에서 느낀 인생의 허무함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19 WEEKS 영원한 사랑이자 뮤즈
클로드 모네 〈양산을 든 여인-카미유와 장〉
20 WEEKS 일상을 예술로 만들다
칼 라르손 〈숙제를 하는 에스뵈욘〉
21 WEEKS 여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다
신윤복 〈월하정인〉

6월
22 WEEKS 스스로를 가장 믿을 것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23 WEEKS 끝내 이룰 수 없었던, 그러나 영원히 바라는 꿈
빈센트 반 고흐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24 WEEKS 여성들에게 용기와 자유를 전하다
알폰스 무하 〈페르펙타 자전거〉
25 WEEKS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을 잠시 잊는 방법
레지널드 마쉬 〈20센트짜리 영화〉
26 WEEKS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녀
로버트 헨리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7월
27 WEEKS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는 부부의 일상
프란스 할스 〈이삭 마사 부부의 초상〉
28 WEEKS 작품의 값어치를 새롭게 매기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
29 WEEKS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다
앙리 루소 〈꿈〉
30 WEEKS 좌절하지 않고 끝없이 노력한 위대한 영혼
앙리 마티스 〈폴리네시아, 바다〉

8월
31 WEEKS 인생의 아름다움만을 그린 이유
오귀스트 르누아르 〈몰랭 드 라 갈레트〉
32 WEEKS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일
에두아르 마네 〈비눗방울 부는 소년〉
33 WEEKS 선조의 혼이 담긴 몸짓
이응노 〈군상〉
34 WEEKS 아름다운 그림에 숨은 그들의 속사정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9월
35 WEEKS 풍요롭고 무탈한 일상을 위해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중 9월〉
36 WEEKS 세상 사람에게 행복을 내리는 옥토끼
작자 미상 〈약방아 찧는 옥토끼〉
37 WEEKS 적정한 삶의 소중함
노먼 록웰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38 WEEKS 감추고 있던 고통이 드러나는 순간
에곤 쉴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39 WEEKS 기계 문명이 약속하는 멋진 신세계
페르낭 레제 〈기계 문명의 시〉

10월
40 WEEKS 황홀한 가을과 영원한 사랑의 기억
제임스 티소 〈10월〉
41 WEEKS 자신의 정신과 미학을 드러낸 초상화
조반니 볼디니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의 초상〉
42 WEEKS 유한함에서 느끼는 삶의 진정한 가치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43 WEEKS 마음의 길잡이가 돼주다
장한종 〈책가도〉

11월
44 WEEKS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기로
칼 슈피츠베크 〈가난한 시인〉
45 WEEKS 미술의 정의를 바꿔놓은 위대한 움직임
잭슨 폴록 〈가을 리듬: 넘버 30〉
46 WEEKS 첫사랑이라는 의미가 퇴색한 후
오귀스트 로댕 〈꽃장식 모자를 쓴 소녀〉
47 WEEKS 달빛과 함께 걷는 거리
존 앳킨슨 그림쇼 〈비 온 뒤 달빛이 비치는 거리〉

12월
48 WEEKS 가려지지 않는 그녀의 뜨거운 열정
타마라 드 렘피카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
49 WEEKS 슬픔 속에서도 삶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카미유 피사로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춘 오페라 거리〉
50 WEEKS 추울수록 더욱 활기차게
헨드릭 아베르캄프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있는, 성 부근 겨울 풍경〉
51 WEEKS 해피 크리스마스
앤디 워홀 〈크리스마스트리〉
52 WEEKS 인류가 만들어낸 역사 속으로
주세페 아르침볼도 〈사서〉

에필로그 풍요로운 일상을 맞이하며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을 나섭니다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은 흐른다’는 진리를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스스로가 작아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떡국을 먹고 멋진 새해 계획을 세워봅니다. 저는 새해 계획에 희망만을 가득 담습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굳은 포부를 가져봅니다. 그러고 나면 왠지 운명의 지배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말이지요.


장엄한 대자연을 홀로 마주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다는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보여요. 그 신의 영역 앞에 지팡이를 짚은 남자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고독해 보이지만 자연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요.


저는 자연을 ‘운명’이라는 말로 바꿔봅니다.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로도 불리는 프리드리히의 운명은 누구보다 가혹했어요.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천연두로 돌아가시고, 이후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열세 살에는 형이 스케이트를 타다 호수에 빠진 프리드리히를 구하고 익사한 사건까지 일어나지요. 이처럼 가혹한 운명을 마주했던 프리드리히는 적막감이 감도는 쓸쓸한 풍경에 ‘고난에 빠진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담아냈습니다.


공기와 물, 바위, 나무 등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그런 대상들 속에 있는 영혼과 감정을 재현해내는 것이 나의 목표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이전의 풍경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풍경 속에 절망에 빠져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내면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신을 의지하는 종교적인 여운이 길게 남지만,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운명의 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단호히 내비칩니다.



일상을 예술로 만들다: 칼 라르손 〈숙제를 하는 에스뵈욘〉

‘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숙제나 해야 하다니!’ 에스뵈욘의 속마음이 눈에 다 보입니다. 얼른 마치고 나가야 하는데 숙제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나 봅니다. 창밖으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콩밭에 갑니다.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아빠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느냐고요? 벽에 걸린 거울 속을 한번 보세요. 거기에 아들의 모습을 그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에스뵈욘은 화가인 아빠 덕분에 농땡이 치는 모습까지 화폭에 담겼네요. 놀고만 싶은 에스뵈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얼른 숙제하고 나가서 놀자”하며 달래주고만 싶은 그림입니다.


라르손은 스웨덴의 화가로, 스톡홀롬의 빈민가에서 매우 어렵게 자랐습니다. 가난해도 따뜻한 가정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일용직 노동자, 선박의 화부, 곡식을 실어 나르는 짐꾼 일을 전전했던 라르손의 아버지는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었어요. 라르손은 아버지에게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폭언까지 들었다고 해요. 식구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밑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을 그의 어린 시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다행히 라르손에게 손을 내밀어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세 살 때 만난 선생님이었지요. 선새님은 라르손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톡홀롬 미술학원에 입학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후 라르손은 1882년 파리에서 스웨덴 미술가 단체에 가입하고, 미술가 카린 베르게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카린의 아버지는 스웨덴의 시골 마을 순드본에 위치한 작은 집 ‘릴라 히트나스’를 딸에게 선물해줍니다. 라르손 부부는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집을 조금씩 개조했고, 이후 릴라 히트나스와 소박한 가정의 일상은 라르손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됩니다.


이 작품 속 라르손 부부가 직접 꾸민 공간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라, 아이들에게는 사랑이 전부이기 때문이다(Love Each Other Children, for Love is All)”라는 신조로 집을 꾸몄는데요. 평온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맑고 투명한 수채화의 색감은 포근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진실하고 사랑 가득한 시선이 듬쁙 느껴집니다.


라르손은 ‘삶이 곧 예술’이라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가치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야 조용히 책을 읽는 아내의 모습, 아이들이 놀고 숙제하고 바느질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등 소소한 일상과 함께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화폭에 녹여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에게 안락한 가정을 선사했던 그의 진심은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어요.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을 잠시 잊는 방법: 레지널드 마쉬 〈20센트짜리 영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경제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특히 전시 피해가 없었던 미국은 유럽에 군수품과 식량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겨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마의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1929년 10월 24일, 천정까지 올랐던 주식 거품이 꺼지며 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10만 개의 기업과 6,000개의 은행이 파산하며 갑자기 꺼져버린 아메리칸 드림으로 인해 도시 노동자들은 실직과 빈곤이라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실직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며 눈앞의 생존에만 몰두했지요.


도시 사회에서의 실직은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꿈을 꿔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했으니까요. 이러한 대공황의 충격은 오랫동안 지속됐고, 대공황이 발생한 10년 뒤에도 미국의 실업 인구는 9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생생한 도시 풍경과 당대의 현실을 묘사한 애쉬캔파(쓰레기통파)의 후배 작가인 마쉬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노동자들의 삶을 담았습니다. <20센트까지 영화>는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영화관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영화관을 찾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으려는 듯 모두들 한껏 치장한 모습입니다. 각박한 현실에서는 꿈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단 20센트만 내면 영화 속 인물의 삶을 살아볼 수 있고 내가 꿈꿨던 삶을 잠시나마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을 영화를 통해 잊으려는 그들의 얼굴이 어쩐지 공허하고 무표정해 보입니다. 화려한 영화관 입구에 쓰인 ’NOW PLAYING’처럼 지금의 삶을 즐겨보려 하지만, 간판에 그려진 스타들의 화려한 삶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이 말이에요.


조명이 꺼집니다. 사자 울음소리가 들리고 영화가 곧 시작됩니다. 한 장면도, 대사 하나도 놓치기 싫어 모든 감각을 집중합니다. 안타까운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아쉬운 한숨 소리가 들리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탄성이 터집니다. 누군가 훌쩍이기도 하고, 함께 깔깔대며 웃기도 합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고 사랑합니다.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은 잠시 잊어버립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팍팍한 삶이 다시 우리를 반길 테지만요.


당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 마쉬의 작품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처럼 새롭고 매혹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삶을 갈망하지만 현실의 고통과 불안에 그만 주저앉는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인생을 재발견합니다. 다시금 부딪혀봐야겠습니다. 다가올 날들이 제게 어떤 시련을 전할지 몰라도 꿈과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선조의 혼이 담긴 몸짓: 이응노 〈군상〉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군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35년간 민족 전체가 수탈과 착취를 당했던 암흑에서 벗어나 그토록 바랐던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춤을 췄습니다. 이들의 몸짓에는 자유와 희망, 환희가 넘쳤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벌판을 떠돌며 광복 운동을 펼쳤습니다. 200만 명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은 일제의 강압 통치에 항거해 목숨을 건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으며, 향후 일제의 통치 방향을 전환시킨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그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됐고, 1910년 2월 14일 이뤄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이 춤을 추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응노의 <군상>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파리에서 접한 후부터 작업한 작품입니다. 배경 묘사 없이 간략한 선으로 뒤엉킨 사람들을 표현해 자유와 평화를 향한 한국의 시대 정신과 민족의식을 보여줍니다.


이응노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58년 파리로 건너간 후 한지와 수묵이라는 동양화 매체를 사용해 ‘서예 추상’이라는 독창적인 미술의 지평을 열었지요. 서예 추상은 자연 속의 인간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한 ‘문자 추상’과 흰 바탕에 자유롭고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을 표현한 ‘군상연작’으로 발전합니다.


파리에서 혼돈의 역사 속 생동하는 인간의 삶을 그리던 어느 날, 그는 북한에 있는 아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첩으로 몰리게 되지요.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데 이어 백건우, 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는 등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1969년 사면됐으나 끝내 고국에서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근현대사와 얽히면서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억울함에 매이지 않고 사회, 역사 의식을 담아 저항과 희망의 몸짓을 표현했습니다.



유한함에서 느끼는 삶의 진정한 가치: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테이블 위에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힌 꽃, 보석, 책,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해골이 덩그러니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값비싼 정물에 해골이라니, 이상한 조합입니다. 이러한 그림을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르는데, 바니타스 정물화는 세속적인 삶이 덧없고 짧다는 의미를 상징합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해골을 활용해 메멘토 모리(Mement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꽃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특히 튤립은 부귀영화의 헛됨과 허영, 비참한 말년을 상징합니다.


유럽 교역의 황금시대를 맞아 떼돈을 번 네덜란드 신흥 부자들이 왕관을 꼭 닮은 튤립을 부의 척도인 양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튤립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소상공인과 직공, 하인들까지 투기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튤립을 사들였습니다. 희귀한 줄무늬가 있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한 송이는 집 한 채와 맞먹는 가격에 거래됐다고 해요. 그러다 튤립 버블이 터지면서 가격이 폭락했고, 빚더미에 나앉은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준 튤립 사태로 인해 튤립은 바니타스를 증언하는 상징이 됐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고,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와 예술이 발전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에 맞설 수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때로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허무에 빠지기보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열심히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볼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생각납니다. 그의 에세이 속에는 삶의 허무와 결핍, 그리고 고독한 문학 세계 속에서도 즐겁게 살고 싶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가볍게, 그러나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하루키처럼 저도 유한한 삶을 유의미하게 살 수 있도록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합니다. 삶을 향한 애정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