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취한 미술사

   
백종옥
ǻ
미술문화
   
16000
2017�� 08��



■ 책 소개

 

휴식과 이완, 치유와 충전의 행위 ‘잠’, 무엇이 현대인들을 잠 못 들게 하는가?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모든 인간들이 잠들지 않고 끝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미덕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잠을 외면하거나 억압할수록 사람들의 수면 욕구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 책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거의 매일 잠을 설치고 피곤해 하던 저자가 잠을 주제로 한 그림들에서 위안을 얻고 잠과 예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잠과 예술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잠과 예술은 새로운 탄생과 도약을 위한 에너지를 주고,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휴식과 재충전의 행위가 된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잠과 관련된 작품들을 신화, 꿈, 일상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분류했다. 1부 ‘신화 속의 잠’에서는 서양 문화의 근간인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잠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관한 그림들을 소개한다. 2부 ‘꿈의 이미지’에서는 잠자며 겪은 꿈 이야기에 주목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3부 ‘일상의 잠’에서는 일상의 모습에서 분류될 만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3부 마지막 장에서는 현대미술에서 계속해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잠’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 저자 백종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국내 미술계 현장에서 10여 년간 기획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미술생태연구소를 운영하며 전시기획,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대미술 강좌 등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 묵혀두었던 미술에 관한 생각들을 풀어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 차례
책머리에 | 휴식을 주는 잠과 예술

 

프롤로그 | 잠, 예술과 만나다
몰타의 [잠자는 여인]
신화와 종교 속의 잠
잠을 다룬 문학과 예술
잠과 예술의 역할

 

Part. 1 | 신화 속의 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다
사랑과 배신 | 아리아드네
로마 시대 조각 [잠자는 아리아드네]
야콥 요르단스 [아리아드네를 발견하는 바쿠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
조르조 데 키리코 [아리아드네]

 

이별과 재회 | 프시케와 에로스
고대 그리스 조각 [잠자는 에로스]
카라바조 [잠자는 큐피드]
프랑수아 에두아르 피코 [에로스와 프시케] & 자크 루이 다비드 [큐피드와 프시케]
모리스 드니 [자신의 비밀스런 연인이 큐피드였음을 알게 된 프시케], [비너스의 복수]

 

성적 욕망 | 사티로스
안토니오 다 코레조 [주피터와 안티오페]
안토니 반 다이크 [주피터와 안티오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주피터와 안티오페]
파블로 피카소 [잠자는 여인을 벗기는 파우나]

 

질투와 복수 | 아르고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머큐리와 아르고스]
윌리엄 터너 [머큐리와 아르고스]

 

영원한 사랑 | 엔디미온
치마 다 코넬리아노 [잠든 엔디미온]
안니발레 카라치 [디아나와 엔디미온]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디아나와 엔디미온]
지로데 트리오종 [잠자는 엔디미온]

 

Part. 2 | 꿈의 이미지, 다양한 예술의 소재가 되다
계시의 순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콘스탄티누스의 꿈]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베들레헴 마구간 안의 요셉의 꿈]
조르주 드 라 투르 [요셉의 꿈]
마르크 샤갈 [야곱의 사다리]

 

불길한 예감
헨리 푸젤리 [악몽]
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
페르디난트 호들러 [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꿈]

 

상징적인 풍경
라파엘로 산치오 [기사의 꿈]
윌리엄 블레이크 [젊은 시인의 꿈]
오딜롱 르동 [칼리반의 잠]
프란츠 마르크 [꿈]

 

미지의 세계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르네 마그리트 [무모하게 자는 사람]
살바도르 달리 [잠],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석류 주위를 날아다니는 벌 때문에 꾼 꿈]

 

Part. 3 | 일상의 잠, 휴식 같은 예술을 선사하다
달콤한 낮잠
요하네스 베르메르 [잠이 든 여인]
존 싱어 사전트 [버드나무 아래 배 안에서 잠든 두 여인]
빈센트 반 고흐 & 장 프랑수아 밀레 [낮잠], [잠자는 농부들(정오의 휴식)]
폴 고갱 [잠자는 아이]
앙리 마티스 [시에스타, 니스], [꿈]

 

관능적인 여인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
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귀스타브 쿠르베 [잠자는 두 여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잠자는 여인]
피에르 보나르 [침대 위에서 조는 여인]

 

계속되는 잠
만 레이 [잠자는 여인]
파블로 피카소 [꿈]
로이 리히텐슈타인 [잠자는 소녀]
조지 시걸 [잠자는 소녀]
프랜시스 베이컨 [잠자는 형상]
데이비드 호크니 [미완성 자화상과 모델]




잠에 취한 미술사


신화 속의 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다

사랑과 배신 | 아리아드네

로마 시대 조각 [잠자는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로, 테세우스 그리고 디오니소스와 얽힌 사연으로 유명하다. 그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크레타에는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관계하여 낳은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이 괴물에게는 해마다 아테네의 소년소녀들이 7명씩 제물로 바쳐졌는데,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이기 위해 제물로 위장하여 크레타로 향했다. 그런데 미노스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반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칼과 미궁을 빠져나올 실타래를 주었다. 그 덕분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왔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로 출발했다. 항해 도중에 일행은 낙소스 섬에 머물렀는데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혼자 남겨두고 낙소스 섬을 떠나버렸다. 잠에서 깬 아리아드네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을 때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그녀를 자신의 처로 삼았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에게 결혼 선물로 왕관을 주었는데, 그녀가 죽자 왕관을 하늘로 던져 별자리를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신화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러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건네진 ‘아리아드네의 실’에 대한 이야기는 지혜로운 여성을 언급할 때 드는 전형적인 예처럼 되었고 한편으로는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실마리에 대한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바티칸의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에는 높이 161센티미터 정도의 잠자는 아리아드네 조각상이 있다. 풍만한 몸체를 바위에 기대고 앉아 왼팔로는 옆으로 숙인 머리를 받치고 오른팔로는 위에서 머리를 감싸고 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1512년에 벨베데레 정원에 놓으려고 이 조각상을 인수했는데 여러 번 옮겨진 후 1779년에 현재의 박물관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 이 조각상의 배경 벽감은 붉은 도료로 덮여 있지만 한때는 화가 크리스토포로 운테르페르제가 그린 이집트적인 주제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뱀 모양의 팔찌가 있는 이 조각상이 뱀에 물려 죽었다고 전해지는 클레오파트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00년대 말에 이탈리아 고고학자 엔니오 퀴리노 비스콘티가 결국 이 조각상을 아리아드네라고 인정했다.


이렇게 한동안 클레오파트라로 오인되었던 바티칸의 아리아드네 조각상 외에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도 메디치 가문의 아리아드네 조각상이 있다. 우피치의 아리아드네는 바티칸의조각상보다 누운 자세에 가깝고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있어서 좀 더 관능적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인 낮과 밤 그리고 묶여 있는 노예상의 자세와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아리아드네 조각상은 고대 이후 지속적으로 조각가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별과 재회 | 프시케와 에로스

프랑수아 에두아르 피코 [에로스와 프시케] 자크 루이 다비드 [큐피드와 프시케]

프시케와 에로스 이야기 중에서 화가들이 즐겨 그린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프시케가 등불을 밝히고 잠든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비너스의 복수로 지옥의 잠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고 잠에 빠져버린 프시케를 에로스가 깨우는 장면이다. 물론 이와 다른 장면들을 그린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신고전주의 화가 에두아르 피코가 1817년에 그린 에로스와 프시케가 그것이다.


피코의 출세작인 이 작품에서는 어두운 밤이 되면 궁전에 와서 프시케와 잠을 자다가 날이 밝기 전에 떠나는 에로스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건축적인 배경을 한 연극무대와도 같은 화면구도와 에로스의 우아한 자세로 매우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즉 신고전주의 회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1817년에 피코가 에로스와 프시케를 그린 것처럼 같은 해에 신고전주의의 대가인 다비드도 큐피드와 프시케를 그렸다는 점이다. 물론 두 화가가 하나의 신화적 주제를 사실적인 화풍으로 다루었지만 두 그림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피코의 그림이 우아한 연극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면 다비드의 그림은 한창 끈적끈적하게 열애 중인 한 쌍의 청춘남녀가 촬영장 같은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피코의 그림이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시적이면서도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면 다비드의 그림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떨어질 수 없는 진한 애정 관계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질투와 복수 | 아르고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다양한 신과 인간들 그리고 기묘한 외모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롭스가 있는가 하면, 눈이 100개나 달린 괴물 아르고스도 있다. 기원전의 옛 유물들을 살펴보면 온몸에 수많은 눈이 박혀 있는 괴물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아르고스다. 그리고 아르고스의 주변에는 항상 그를 칼로 찌르려는 어떤 인물과 함께 소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1635-38년경에 그린 헤르메스와 아르고스에는 그들의 신화가 생생히 담겨 있다. 루벤스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을 그리고 있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쓴 헤르메스는 왼손으로 피리를 불면서 아르고스를 지켜보는데, 오른손으로는 몰래 칼을 숨기고 있다. 아르고스는 아무것도 모른 체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잠에는 장사 없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이다. 아르고스는 100개의 눈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루벤스의 그림에서 아르고스의 눈은 두 개뿐이다. 루벤스는 이 그림 외에도 헤르메스가 아르고스의 목을 치는 역동적인 순간도 화폭에 담았다.


루벤스는 1577년에 독일 베스트팔렌 지방의 지겐에서 태어나 벨기에 안트베르펜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였다. 1626년 사랑하는 아내 이사벨라와 사별하고 외교관으로 유럽을 떠돌던 그는 1630년에 젊은 엘레나와 재혼하였다. 엘레나는 노년의 루벤스에게 많은 예술적인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 종교, 역사, 풍경, 인물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중에서도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한 대형 작품들이 특히 유명하다.



꿈의 이미지, 다양한 예술의 소재가 되다

계시의 순간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베들레헴 마구간 안의 요셉의 꿈]

서양미술사에서 고대 신화와 기독교의 성서 이야기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빈번하게 다루어진 주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꿈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들은 극적이고 흥미진진한데 특히 요셉의 꿈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나사렛의 목수이자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꿈들을 꾸게 된다. 처음에는 천사가 나타나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말하는 꿈을 꾼다. 두 번째 꿈은 예수가 탄생한 후에 꾼다. 당시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새로운 유대인의 왕을 찾아 경배하려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갓난아이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명을 내리자 요셉은 즉시 이를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헤롯왕이 죽은 후 세 번째 꿈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가라고 지시한다. 이런 일련의 꿈 이야기들을 여러 화가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도 베들레헴 마구간 안의 요셉의 꿈을 그렸다. 렘브란트가 보여주는 장면은 어두운 마구간 안의 풍경이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이래로 발달하던 키아로스쿠로로 불리는 명암법이 바로크 시대를 연 카라바조의 회화에서 강렬한 조명을 받은 것처럼 표현되었다면, 렘브란트의 회화에서는 어둠 속에서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빛으로 변하면서 화면의 공간감이 매우 풍부해졌다.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처럼 명암이 진하게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소도시 레이던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피터르 라스트만에게서 그림을 배운 다음 20대 중반에 이미 레이던에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화명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비싼 값에 팔렸지만 그의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첫 번째 아내 사스키아가 낳은 아이들은 계속 사망했고 겨우 아들 하나를 남기고 아내도 사망해버렸다. 게다가 40대 중반부터는 수입이 줄어들면서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재정적인 문제는 렘브란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플랑드르의 루벤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와 동시대를 살면서 바로크 미술의 황금기를 일군 거장임에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불길한 예감

헨리 푸젤리 [악몽]

불길한 꿈에 대한 이미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헨리 푸젤리의 악몽이다. 작품을 보면 가로로 놓인 침대 위에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몸을 뒤틀며 얼굴과 팔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다. 그리고 여인의 배 위엔 괴물 같은 존재가 유인원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그림 밖의 관찰자에게 불쾌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괴물의 뒤에 펼쳐진 어두운 장막 사이로는 말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눈동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눈이 먼 상태로 보인다. 이 그림을 보면 괴기스러우면서도 야릇한 느낌이 든다. 즉 기묘한 양면감정이 든다는 말이다.


악몽에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림 뒷면에 한 젊은 여인의 미완성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악몽에 등장하는 여인과 뒷면에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은 안나 란돌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스위스 관상가 요한 카스파 라바터의 조카딸로, 푸젤리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가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면서 푸젤리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런 시각에서 악몽을 보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악몽을 꾸고 있는 여성 위에 앉아 있는 괴물 같은 존재는 바로 푸젤리의 모습이다. 그 괴물은 질투의 시선으로 잠든 여인을 정복하고 소유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말 머리는 성적인 의미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눈이 먼 말은 맹목적인 성욕을 은유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괴물에 정복당한 여인의 자세는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이면서도 한편으론 성적인 흥분 상태에 빠진 모습이기도 하다. 즉 공포와 무의식적인 성욕의 분출이 교차하고 있다.


악몽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면서 푸젤리는 4개의 비슷한 그림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1790-91년에 제작한 두 번째 악몽 역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악몽 연작은 판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그중 판화 한 점이 100여 년 후에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에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욕망의 표출이라고 주장했다.


푸젤리는 매우 양면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 같다. 폭력적이고 모순된 행동으로 주변인들과 불화를 일으켜 자산의 평판을 떨어뜨렸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수준 높은 미술비평을 할 정도로 지식인이었다.


미지의 세계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밤하늘이 어두운 비취색으로 물들자 하얀 보름달이 떠오르고 별들은 조용히 반짝인다. 커다란 갈기를 가진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언덕을 배회하다가 누워 있는 나그네를 발견한다. 무지개 색깔의 옷을 입은 그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채 노곤히 잠들어 있다. 사자는 살며시 나그네의 어깨 쪽으로 접근하여 무심히 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이 기묘한 그림은 앙리 루소가 1897년에 그린 잠자는 집시 여인이다. 그 후 1897년 이 작품은 전시회에 출품되었는데 전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도난당한 작품은 13년 후에 어느 미술 애호가에게 재발견되었으나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서 화상 칸바일러가 이 작품을 사들여 복원했고, 마침내 1939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이 이 그림을 구입해 소장하게 되었다.


앙리 루소는 27살 즈음에 세관원이 되었다. 그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불분명하지만 파리 근교에서 약 22년 동안 세관원으로 일하면서도 아틀리에를 장만해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는 원시 열대 우림, 파리 시내와 근교 풍경,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 등을 그렸고 잠자는 집시 여인처럼 우화적인 그림들도 여럿 남겼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정작 그가 파리를 떠나 멀리 여행을 가본 적이 전혀 없음에도 그런 그림들을 그렸다는 것이다.


앙리 루소의 그림들은 소박하게 그려졌지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엇갈려있다. 하지만 그가 말년에 이르렀을 때 피카소와 아폴리네르 등 당시 젊은 예술가들은 그를 인정하고 존경했다.



일상의 잠, 휴식 같은 예술을 선사하다

달콤한 낮잠

빈센트 반 고흐 장 프랑수아 밀레 [낮잠], [잠자는 농부들(정오의 휴식)]

빈센트 반 고흐는 초상화와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잠자는 사람을 그린 그림은 흔치 않다. 그중에서 그가 1890년에 그린 낮잠은 한낮에 농부들이 들판의 건초더미 위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고흐가 실제로 현장에서 농부들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가 1866년에 그린 잠자는 농부들(정오의 휴식)을 모사한 것이다. 밀레의 그림과 다른 점은 그림 속의 인물과 건초더미들의 위치가 좌우로 바뀐 것뿐이다. 그렇다고 화풍까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밀레의 그림이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라면 고흐의 그림은 색채와 붓 터치가 매우 활기차다.


고흐는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880년부터 생의 마지막 때까지 고흐는 밀레의 작품을 계속 연구했다. 특히 고흐가 즐겨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밀레의 영향을 받은 소재다. 이처럼 초기에 선배 세대의 작품을 모방하며 연구하고 후기로 갈수록 독특한 양식을 구축하는 게 동서고금의 화가들이 자신의 길을 성취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고흐는 생 레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겨울을 보냈다. 겨울이 끝나고 생의 마지막 봄을 맞이한 그는 그해 5월 생 레미의 생활을 접고 파리에서 가까운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주했다. 그곳에 사는 폴 가셰 박사에게 의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베르에 온 지 70일 만에 고흐의 생은 끝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관능적인 여인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의 모딜리아니는 1917년 12월 파리의 베르트 바일 갤러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전시회는 개막 후 몇 시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파리의 경찰국장이 모딜리아니의 전시 작품들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명 붉은 누드로 불리는 작품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가 너무 충격적이고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모딜리아니는 주로 가늘고 기다랗게 과장된 모습의 인물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나체화는 그런 작품들에 비해 여성의 몸을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였다. 모딜리아니의 이 누드화는 미술사 속에 등장했던 이전의 누드화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우선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으로 치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와 비교될 만하다. 인상파를 탄생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마네는 평범한 파리의 매춘부를 그린 올랭피아를 1865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하였는데, 관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한 누드모델의 시선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혹평이 쏟아졌다. 마네의 올랭피아 이후 50여 년이 흘렀고 전위적인 현대미술들이 등장하는 20세기가 되었지만,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문제 삼을 정도로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마네 이전엔 스페인 화가 고야가 누드화로 수난을 겪었다. 고야가 1800년에 그린 옷을 벗은 마하 도 일찌감치 신화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성상을 강조했다.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여성의 정면을 그린 누드화가 드물었다. 그래서 벌거벗은 채 도전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여성을 등신대 크기로 그려서 현실감을 느끼게 만든 인물화가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딜리아니는 옷을 벗은 마하의 구도를 여러 작품에 차용했다. 비스듬히 누운 여인이 두 손으로 머리 뒤를 받치고 있는 자세는 모딜리아니의 팔을 벌리고 잠자는 누드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계속되는 잠

파블로 피카소 [꿈]

파블로 피카소는 다양한 작품들 못지않게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여성들이 7명이나 된다. 그중 2명과는 결혼을 했고 3명의 여인 사이에 아들 2명, 딸 2명을 두었다. 그에게 여성들은 예술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뮤즈 같은 존재였다. 피카소의 1932년 작 꿈에는 피카소가 사랑한 여성들 중 한 명이 그려져 있다. ‘마리 테레즈 발테르’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1927년 1월 어느 날 46세의 피카소는 우연히 만난 17세의 소녀 마리 테레즈에게 반했다. 그러나 이미 올라 코클로바와 1918년에 결혼한 유부남이었던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와 몇 년 동안 비밀리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올가와의 결혼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피카소는 야생마 같은 마리 테레즈로부터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마리 테레즈를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마리 테레즈는 대체로 잠을 자거나 꿈을 꾸는 여인으로 표현되곤 했는데 꿈도 그런 작품들 중 하나다.


엄밀히 말하자면 피카소와 화풍을 변화시키는 시점과 새로운 여성을 만나는 시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여성들은 새로운 화풍을 촉발시키기도 했지만, 이미 새로운 화풍으로 접어든 이후에 등장한 여성들도 있었다.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를 만난 것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기와 비슷한 1927년부터 1937년까지 약10년 동안이다. 시기적으로 봐도 피카소가 원숙기에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마리 테레즈라는 뮤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잠자는 형상]

190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프랜시스 베이컨은 현대미술이 요동치는 시기에 성장했으면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 전형적인 외톨이 화가였다. 그는 매우 기묘한 형상으로 현대인의 공포와 고독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이컨이 1974년에 그린 잠자는 형상에도 그가 추구한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방, 침대, 화장실처럼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내밀한 공간을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는데, 전등과 스위치 그리고 침대로 구성된 잠자는 형상의 공간도 침실로 보인다. 특별한 점은 화면 좌우와 아래 그리고 좌측의 3분의 1 지점에 수직으로 된 틀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밖에서 누군가 실내를 들여다보는 상황으로 생각할 만하다. 베이컨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에 입방체 형태의 틀이 있다. 이 잠자는 형상에선 창틀과 사각형의 방이 형상을 가둔다. 거기엔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욕정, 태만, 공포, 불안, 고독 등이 뒤섞여 뭉뚱그려진 살덩어리가 섬뜩하게 놓여 있다. 욕망과 감정을 가지고 감각적으로 계속 변화하고 생성하는 신체라고 해야 맞다. 베이컨은 한순간의 겉모양을 고정시켜 그리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에서 우연히 솟아난 인간과 괴물의 중간적인 이미지들을 포획했던 것이다.


베이컨은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고 10살 많은 로이 드 메스터와 교류하며 미술을 익힌 게 전부였다. 아마 아카데미의 틀에 박힌 교육에서 자유로웠던 상황이 베이컨의 독창적인 작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 1920년대 후반 초현실주의의 영향 속에 있던 피카소는 해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많이 그렸는데, 치아가 강조된 두상과 왜곡된 몸뚱이들로 인체가 표현되어 있다. 피카소의 이런 그림들이 베이컨 특유의 기괴한 형상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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