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자인이 온다

   
황윤정 외
ǻ
미술문화
   
16000
2018�� 01��



■ 책 소개

 

Made in China에 대한 편견을 깨다!

 

중국 디자인의 성장세가 무섭다. 초창기 중국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디자인과 품질을 외면해왔고 그 결과 중국산은 항상 ‘짝퉁’이라는 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현재 중국 기업들은 디자인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으니 이제는 디자인으로 승부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들은 높은 몸값으로 세계의 디자인 인재를 끌어 모으며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어느덧 중국 디자인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과거 ‘중국산=짝퉁’의 오명을 벗고 수려한 디자인으로 한국 제품들을 앞서고 있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앞으로 무섭게 성장해 갈 중국 디자인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한국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 저자
황윤정

저자 황윤정은 1986년 가을밤에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적 디자인 브랜드 홋HAUT의 그래픽 디자이너이며, 전통과 디자인의 접점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세계 길거리 그래픽 디자인과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 《디자인은 다다르다1,2》를 집필했고 페이웬화와 공동으로 《대만맛집》을 저술했다.

 

페이웬화
저자 페이웬화는 1986년 여름오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공업디자인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화교 4세로서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문화와 역사에 박식하다. 미식에 관심이 많아 황윤정과 공동으로 《대만맛집》을 저술했으며 향후 여행과 음식, 디자인 전문가로서 한국과 중국을 잇는 교두보로 활약하고자 한다.

 

■ 차례
Intro. 이제는 중국 디자인이다!

 

제1부. 새롭게, 스마트하게
1.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샤오미
2. 프리미엄 스마트폰 디자인의 역습, 화웨이
3. 사용자의 경험을 우선으로 하는 가전업체, 하이얼
4. 하늘을 나는 만능 헬리콥터, DJI
5. 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홍치

 

제2부. 전통과 현대의 융합
6. 현대 중국식 스타일의 가구, 판지
7. 콘크리트에서 쇠똥까지, 벤투 디자인
8. 다국적 디자인 그룹의 가장 전통적인 디자인, 핀우
9. 자연을 향해 속삭이는 도자기, 얼위
10. 대나무 공예 디자인, 소젠
11. 중국 건축과 산수화의 조화, 왕슈
12. 지역성을 향하는 건축 디자이너, 추이카이
13. 산수도시 속의 건축을 꿈꾸다, MAD
14. 소설 같은 건축을 짓는 건축가, 지아쿤
15. 문화·장소·예술성의 건축가, 쭈페이

 

제3부. 서양과 중국의 조화
16. 중국의 넘버원 패키지 디자이너, 판후
17. 중국의 와인병 패키지 디자인, 주오샹 디자인
18. 책에 생명을 불어넣다, 주잉춘
19. 중국과 독일 사이에서, 허젠핑
20. 한자를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 비쉐펑
21. 천년고도와 신도시의 사이에서, 한자잉
22. 예술과 디자인의 세계를 넘나드는, 센스팀
23. 한자 폰트 디자이너, 위에신

 

제4부. 클래식하게, 세련되게
24. 패션쇼를 오페라처럼, 궈페이
25. 쓸모없는 패션을 만든다, 마커
26. 중국적 소재와 서양식 재단의 만남, 지에청
27. 옥으로 만든 쥬얼리, 통원웨이
28. 중국의 보석 디자이너, 정쯔잉  

 




중국 디자인이 온다


새롭게, 스마트하게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샤오미

4번의 실패를 겪은 40살의 남자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가 복제품 때문에 망했고 중국판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벽에 막혀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킹소프트의 창립 멤버로 재기했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돌연 퇴사한다. 그리고 8명의 동료들과 창업을 앞두고 좁쌀로 죽을 끓여 먹다가 좁쌀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낸다. 그 회사가 바로 ‘샤오미’다.


하지만 샤오미 디자인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다. 짝퉁 애플이라는 오명에서 알 수 있듯 샤오미의 디자인은 언뜻 보기에 애플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샤오미는 창립 초기에 애플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과의 유사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샤오미는 이런 표절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해당 브랜드들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레이쥔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으며, 향후 5년 내에 무인양품과 같은 샤오미 홈을 만들 것이라 선언했다.


최근 샤오미는 디자인에 있어 예전과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무인양품과 애플의 양분을 한껏 섭취하더니 이제는 조금 더 샤오미스러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국내에서 열풍을 불러온 제품은 샤오미 체중계 미 스케일이다. 미려한 곡선에 순백색으로 처리된 이 체중계는 외관 디자인부터 깔끔하고 우아하다. 멀티탭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파는 USB 결합형 멀티탭은 기존의 멀티탭 디자인에 USB 단자를 억지로 심어놓은 것처럼 어딘가 어색하고 궁상맞다. 그러나 샤오미에서 출시된 멀티탭은 레이아웃 디자인부터 스위치 디자인까지 깔끔하고 정갈한 모양새다. 이는 분명 애플이나 무인양품에는 없는 샤오미만의 디자인 감성이다. 스마트폰 디자인 역시 급변하고 있다. 기존에 아이폰과 유사하다는 평을 들었던 샤오미 폰은 필립 스탁이라는 프랑스의 슈퍼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들은 샤오미의 스마트폰, TV, 체중계, 정수기 등 다양한 제품을 매우 저렴한 값에 구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제품들은 샤오미의 공통적인 플랫폼을 공유한다. 어플리케이션 ‘미 홈’에 접속하여 TV를 켜거나 실시간으로 정수기의 수질을 체크하는 식이다. 사람들은 미 홈에서 콘텐츠를 구입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면 주저 없이 구매한다. 한마디로 샤오미 월드가 열리는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리즘을 완벽한 비례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마니아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샤오미는 미니멀리즘을 누구의 취향도 타지 않는 보편적인 장치로 만들고 가격을 내려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애플과는 다른 샤오미 디자인철학의 핵심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디자인의 역습, 화웨이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의 성장세가 무섭다. 2014년 화웨이는 온라인에서 샤오미를 제치며 중국 스마트폰 1위 업체로 떠올랐고 애플과 삼성에 이어 세계 3위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화웨이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핀란드 헬싱키에서 화웨이 광고판을 마주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노키아의 본국인 핀란드에서 천지가 개벽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화웨이는 세계 1,2위 업체인 애플과 삼성의 아성에 도전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화웨이는 애초에 통신장비 회사였기 때문에 자사 장비로 만들어진 이동통신 설비가 많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었다. 화웨이는 더 나아가 기능 면에서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더했다. 독일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와 협업하여 스마트폰에 고품질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화웨이는 디자인에 있어서도 프리미엄 이미지에 사활을 걸었다. ‘화웨이 롱야오’ 브랜드로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으로 무장한 ‘화웨이 쇼우지’ 라인업을 구축하여 해외 시장에 선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화웨이의 <아너 매직> 시리즈가 등장하자 그 세련된 디자인에 한국 스마트폰계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조약돌 같은 둥근 원형의 디자인은 기존 스마트폰 디자인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형태였고 사람들은 화웨이에서 출시한 제품 중 가장 완벽도가 높은 디자인으로 평가했다.


이런 과감한 행보의 일환으로 화웨이에서는 독자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까지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갤럭시의 안드로이드 UI와 아이폰의 애플 UI가 양분되어 있는 한편, 화웨이에서는 두 가지 UI의 장점을 섞어놓은 ‘EMUI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이 EMUI는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다. 최근에는 런닝머신 AI시스템을 삽입해 스마트폰의 편의성을 높인다고 하니 어쩌면 화웨이가 스마트폰 UI의 새 시대를 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현대 중국식 스타일의 가구, 판지

판지는 애초부터 카페에서 자신이 만든 가구를 늘어놓고 판매한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일반 가구 매장처럼 재고를 쌓아놓고 판매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질 좋은 샘플을 하나 갖다놓고 그것을 주문 받는 시스템이다. 구치가오는 값싸게 대량생산되는 현재의 ‘메이드 인 차이나’ 가구에 반기를 들고 중화민족의 수공예 정신을 살려 생명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그가 가구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가구에 혼을 불어넣은 듯하다. 먼저 스케치를 하고 디자인을 한 후 목재 시장에서 재료를 찾고 마음에 들면 공장에서 샘플을 만든다. 여기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수십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 완성된 가구들에는 재질, 색상, 무늬 등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최근 판지는 ‘판지 앳 홈’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판지의 가구가 일반 가정집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소비자들의 집을 통해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판지의 테이블과 소파로 꾸민 모습은 현대의 가정집 풍경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그러면서도 중국 특유의 유려한 곡선과 라운딩이 남아 있어 북유럽 스타일이나 일본의 젠 스타일과는 차별화된다.


이처럼 판지는 서양식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면서도 중국 특유의 느낌을 풍기는 독특한 브랜드다. 만약 판지의 디자인을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현대식 중국 스타일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스타일을 개발하려는 노력 없이 북유럽 스타일을 카피하는 데 급급한 한국 가구업계의 상황과 견주어보면 중국 디자이너들의 이런 실험은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소설 같은 건축을 짓는 건축가, 지아쿤

중국에서는 왕슈와 더불어 중국 건축계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인물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지아쿤. 왕슈가 항주를 대표한다면, 이 건축가는 쓰촨을 대표한다. 1982년 쓰촨성 충칭시의 건축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잠시 청두시의 건축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흥미를 느끼지 못해 그만두었다. 직접 고백하길, 학부 시절부터 도통 건축 설계에 몰두하지 못했다고 한다. 건축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평소 그림에 관심이 있었는데 건축이 그림 그리는 일과 유사해보였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정작 건축학과에 들어오니 그림을 그릴 일은 거의 없었고 수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림과 글쓰기에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다. 글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졸업 후 10년 동안 2개의 건물을 설계할 동안 무려 4편의 소설을 썼다.


지아쿤이 본격적인 명성을 쌓게 된 것은 2002년 완공한 <녹야원불교조각박물관>의 프로젝트를 맡으면서부터다. 녹야원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첫 번째 설법한 장소로, 불교조각을 수집해놓은 박물관에 걸맞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 엄숙함을 나타내듯 박물관의 외관은 매우 경건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건물 주변에는 사바세계(현실세계)를 상징하는 연못이 둘러싸고 있는데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연못을 반드시 건너야 한다. 마치 사바세계에서 정토세계로 향하는 과정 같다. 녹야원 박물관에서 연못은 고도의 건축적 상징인 셈이다. 그리고 건물 곳곳에 불교조각들을 배치하여 부처님이 세상 모든 곳에 계신 듯한 느낌을 준다.


쓰촨 대지진은 지아쿤의 작품에서도 큰 분기점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한 후 그의 시선은 지역 사회와 역사로 향했다. 2014년에 지은 <수정방박물관>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수정방은 중국을 대표하는 술로 쓰촨성의 명주이기도 하다. 수정방이 이러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지하 창고에서 14세기에 만든 양조장 유적지가 발굴되면서부터다. 청두시에서는 이 발굴터를 역사문화단지로 지정하며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지아쿤에게 박물관 건축을 맡겼다. 그러자 그는 건물을 지으면서 주변 민가와 경치가 어우러지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박물관의 지붕은 주변 건물과의 지붕 라인을 맞추며 시각적 조화를 이루고자 하였고 옛 공장의 통풍과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며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 박물관은 전통적인 공동체를 보호하면서 역사를 보존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혹자는 이러한 그의 화려한 건축적 성과에 책을 내지 말고 조금 더 일찍 건축계로 뛰어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내비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문학적 외도를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는 소설가 생활을 하던 시절을 운동선수들이 시합에 나가기 전 몸을 깨끗하게 하는 과정으로 비유했다. 자신이 건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결국 건축을 업으로 삼을 것을 알았고, 그 전에 가볍게 숨을 돌리며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지아쿤의 궁극적 목표는 평생 건축과 문학의 세계를 유람하며 사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건축가, 건물을 설계하는 소설가. 건축과 소설, 서로 다른 두 장르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낼 그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바이다.



서양과 중국의 조화

중국의 와인병 패키지 디자인, 주오샹 디자인

중국에 와인병 패키지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다? 맥주라면 몰라도 서양의 와인을 디자인하는 회사라니, 언뜻 들어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이 디자인한 와인병이 패키지 분야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펜타워드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과 은상을 11번이나 휩쓸었다고 한다. 이곳의 이름은 주오샹 디자인. 디자이너 우콴푸가 선전에 설립한 회사로 수년간 브랜드 디자인 분야에서 꾸준한 실적을 쌓았다. 이들은 업계 최초로 와인병의 전통적인 모양을 탈피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곡선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디자인했으며 유리병 대신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해 단단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물론 주오샹 디자인에서 이런 형태의 시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와인병 패키지더라도 그래픽 디자인을 다양하게 하여 디자인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직업군을 와인병에 표현하기도 하고 중국의 예술가들과 콜라보하여 예술적 정취가 살아 있는 패키지를 만들기도 한다. 또 산지의 등고선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그래픽에 적용하였는데 7가지의 색을 사용하여 만물이 생장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주오샹 디자인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와인병 패키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주오샹 디자인은 브랜드 디자인의 가치를 소비자의 경험에서 찾는다. 소비자들이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것은 단순히 비싼 값의 물건을 사고 싶은 게 아니라 물건을 통해 감각의 만족도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와인은 다른 제품과 달리 소비자의 감성 체험이 더욱 중요시되는 소비재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격이나 맛이 아닌 와인을 통한 감성의 자극이다. 그래서 주오샹 디자인은 와인병 패키지가 그 와인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한다.


주오샹 디자인의 대표 우콴푸는 앞으로 중국이 경제 발전을 함에 따라 세계적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중국 디자인의 큰 장점으로 중국의 전통문화를 꼽으며 전통 민속공예의 감각을 차용하여 현대적 디자인에 접목할 것을 권한다. 그는 앞으로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특별한 디자인을 만들기보다 중국 소비자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대중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언젠가 평범한 마트에서도 이들의 특별한 디자인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는 바이다.


천년고도와 신도시의 사이에서, 한자잉

한자잉은 1961년 톈진 출생으로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산시성으로 이주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산시성 내에 있는 시안의 미술대학 공예학부에 입학했지만 전통적인 방직 기술만 훈련하는 기존의 도제식 교육에 염증을 느꼈다. 그러던 중 시안 미술대학으로 강의하러 온 일본인 교수에게 현대 광고 디자인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시안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시베이 대학교에서 의복 제작을 가르치지만 4년 뒤 고리타분한 시안을 박차고 선전으로 떠난다.


한자잉은 선전방송에서 틀어주는 홍콩의 TV광고와 신문광고를 보며 광고 디자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는 이후 선전의 한 회사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당시 중국 내륙에서 홍콩 인쇄소에 인쇄를 맡길 수 있는 곳은 선전이 유일했는데, 디자이너들이 전화로 인쇄를 부탁하고 직접 가지러 가는 식이었다. 디자인 선진 도시 홍콩과 붙어 있었던 덕에 선전의 디자인 산업은 빠르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한자잉은 1990년, 중국 회사 최초로 4도 인쇄 신문을 디자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선전의 디자인 산업발전을 지켜보던 그는, 디자인 분야가 반드시 회사에 종속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디자이너 스스로가 디자인 전문 회사를 차릴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년간의 준비 끝에 회사에서 나와 독립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게 된다. 당시에는 디자인 전문 회사 자체가 거의 없었고 디자이너란 개념 자체가 낯선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자잉의 스튜디오는 금세 주목을 받았고 안정적으로 독립에 성공하게 되었다.


현재 그는 중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의 시인’으로 불린다. 2011년에 열린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출품작이 대표적인데, 언뜻 보면 무질서한 점들이 수없이 찍힌 낙서 같다. 하얀 여백을 배경으로 무질서하게 섞인 한자는 문자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후 이 작품은 GDC 실험 분야에서 수상하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제 한자잉은 자신의 고향 시안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천년고도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싫어 뛰쳐나왔지만, 결국 자신의 근본을 고향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 시안에서 배웠던 경전들과 서예, 수묵화를 복기하며 디자인 작업에 전통의 것을 차용했다. 한때 선전의 현대적인 디자인에 열광했던 그였지만, 아이러니하게 고향의 것을 디자인에 접목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게 된다.



클래식하게, 세련되게

중국적 소재와 서양식 재단의 만남, 지에청

여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한 소녀가 있다. 어린 나이부터 옷에도 관심이 많아 엄마가 사주는 대로 고분고분 입지 않았고 남들보다 멋지게 입고 싶어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재봉사를 찾아가 옷 만드는 법을 배웠고, 여름방학 동안 멋대로 옷을 리폼해서 입었다. 그러나 정작 패션 디자이너는 꿈도 꾸지 못했고, 문과 성적이 좋아 당시 모든 학생들이 희망하던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그녀는 패션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다. 결국 밀라노 패션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패션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패션의 세계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독립 브랜드 ‘지청’을 런칭하며 중국적 소재와 서양식 재단을 접목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그녀의 첫 컬렉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컬렉션의 주제는 <돈오>였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선의 깨달음으로 생각을 끊고 스스로를 관조하는 데 중점을 둔 수행방식을 일컫는다. 허리띠로 질끈 묶은, 품이 넉넉한 의상은 승려들의 가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이다. 황토색과 빨간색, 남색의 조합 역시 가사에서 많이 보이는 색의 조합이며 천을 이은 듯한 가방도 승려들의 가방에서 모티브를 갖고 왔다. 중국의 청자 역시 그녀에겐 패션의 대상이 된다. 푸르스름한 정차의 패턴을 그대로 적용한 패션 디자인은 신비로우면서도 환상적이다. 청자라는 전통 소재를 현대의 패션으로 다양하게 재해석한 시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모두가 손꼽는 그녀의 대표작은 <대나무 안개>다. 대나무는 중국 문화에서 중요한 소재로, 사계절 내내 푸르게 뻗어 있기 때문에 청렴결백한 선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안개가 낀 것처럼 어두우면서도 흐릿한 형상, 대나무에 매달린 판다, 굽이굽이 뻗어 있는 대나무 들이 패션에 절묘하게 녹아든 것이다. 이처럼 대나무라는 전통 소재를 추상적으로 패션에 녹여낸 지에청의 작품은 중국 패션계에서도 뜻깊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그녀의 작품이 워낙 유명해지면서 나온 부작용도 있었다. 그녀에게 저작권 허락을 받지 않은 많은 짝퉁들이 인터넷 쇼핑몰에 범람했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많은 정신적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가 중국 패션계에 미친 영향은 확실하다. 중국의 독특한 전통을 세련되게 버무려 서양식으로 재해석하고 세계 패션 무대에 선보인 그녀의 행보는 향후 중국 디자이너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녀는 중국 전통 문화가 무궁무진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하며 중국적 스토리를 패션에 적극 적용시킬 것을 권장했다. 이때 전통을 직접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중국적 요소를 차용하여 중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옥으로 만든 쥬얼리, 통원웨이

한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그녀의 이름은 통원웨이. 상하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의 신진 디자이너다. 연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혈혈단신으로 파리로 떠나 명문 패션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 터를 잡은 강단 있는 여자다. 중국 배우 판빙빙,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카를라 브루니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그녀의 제품을 찾으며 패션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녀의 예술적 소질은 서예가였던 할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중국의 고전 예술을 귀동냥으로 배워왔고, 12살 때부터 중국 문학을 탐독하며 예술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스무살 무렵에는 파리로 넘어가 패션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정작 그녀가 소질을 발휘한 부문은 의류가 아닌 주얼리 액세서리 분야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중국의 고대 예술품을 떠올렸다. 중국에서 옥은 군자를 상징하고 부귀와 내세를 보장해주는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중국인들이 옥을 지니고자 했지만 가격이 매우 높았기에 주로 옥은 황실의 소유품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는 옥 세공품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물론 중국의 우수한 세공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통원웨이는 자신의 주얼리 작품에 옥의 소재와 세공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금 같은 보석들을 응용하던 서양의 주얼리 디자인계에서 그녀가 내세운 ‘옥’이란 소재는 참으로 독특한 것이었다.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과는 사뭇 달랐던 그녀의 주얼리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그녀는 파리 패션계에서 동서양의 예술을 접목한 디자이너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거둔 성공이지만 그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자국 더 나아가 새로운 과제를 설정했다. 바로 옥의 소재 자체만이 아니라 옥의 전통 세공술을 다른 패션 소품에 적용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옥을 다룰 때는 ‘투각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문양을 내고자 하는 부분만 남기고 겉에서 뒤까지 모두 파내는 기법을 말한다. 우선 고급 가죽을 골라 무늬를 디자인하고 이탈리아의 장인에게 레이저 커팅을 부탁했다. 재질이나 질감은 다른 명품가방과 다를 바 없지만 중국의 옥 세공품처럼 정교하게 파내진 이 가방은 서구적인 형태에서 미묘하게 중국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 이런 투각 기법을 응용한 가죽 가방이 인기를 끌자 그녀는 이제 휴대폰 케이스 같은 소소한 소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기존의 중국 디자이너들이 중국의 전통문양을 직접적으로 넣어 서양인들의 거부감을 샀다면, 통원웨이는 전통문양을 현대적으로 변형하고 간접적으로 응용함으로써 중국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그녀의 디자인에 찬사를 보냈고 그녀의 브랜드 샤우&샤우쉐도우는 프랑스의 명품 백화점인 파리 생제르맹 백화점에 입점 제의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앞으로 옥보다 더 아름답게 빛날 샤우&샤우쉐도우의 성장을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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