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나쁜 그림》은 신화부터 역사적 사건, 화가 자신이 살았던 당대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책이다. 그림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화가의 내밀한 개인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여성을 바라보았던 시각과 그를 해석하는 방식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그림 속 이야기를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해주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 욕망과 광기, 사랑과 배신, 유혹과 관능, 복수와 파국 등 그림 속 ‘나쁜 여자’들의 삶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 ‘나쁜 그림’들이 주는 감각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처럼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세밀한 부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며 그림 속에 담긴 여성의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을 입체적으로 풀어 보여준다. 그림 안에 담겨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작품을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 저자 유경희
저자 유경희는 미술평론가이자 아트테라피스트. 요즘은 공부하느라 창백해진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손발을 놀려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도취되어 있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기뻐하는 중이다.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통해 ‘자기 안의 예술가’를 발굴해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윤리적 인간보다 미학적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을 위해 사소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아주 조금 그러한 성취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야말로 활력 있는 삶의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삶 자체가 예술이고, 예술로 꿈꾸는 세상을 살고 싶다.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하던 중 뉴욕대학교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토탈미술관, 국가인재개발원 등 공공기관과 삼성전자, 신세계, 미래에셋, 현대카드 등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교양 그림》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치유의 미술관》 《창작의 힘》 《예술가의 탄생》 《아트 살롱》 《가만히 가까이》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1.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
탐닉 고디바, 숭고와 관능의 틈새
복수심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랑이자 증오
고혹 은빛 여우들, 늙은 세이렌
죽음 부재의 미학이 만들어낸 전설의 미인
욕망 엄마의 욕망을 욕망하는 딸들
자살 죽고 난 후의 영웅
호기심 뒤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레즈비언 사랑이냐 생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동경 꿈속에서조차 훔쳐보다
천박함 나는 네가 천해서 좋다
집착 쫓는 남자와 쫓기는 여자들
2. 당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그림들
추문 -최초의 풍기문란죄, 미모는 무죄
무지 -뚜껑 열리게 하는 사람들
공포 -사랑하면 다친다
노출 -드러난 남근이 된 발
위험 -다나에의 관능은 생명력이다
불경함 -가슴을 보여주고 싶은 성녀
음탕함 -최초의 여성, 성적 자기주도권을 거머쥐다
불길함 -출렁이는 뱃살 속 향연
자기애 -자신과 사랑에 빠진 여자들
3. 욕망할수록 가질 수 없는 삶
매혹 -꼬리치는 여자의 역사
완벽 -가장 기괴하지만, 가장 온전한 인격체
도발 -동물과 사랑에 빠진 여자들
희열 -남성 성기를 품은 신의 여자들
숭배 -롤리타 콤플렉스, 억압된 영혼의 아름다움
은폐 -살짝만 보여줘
색욕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여성
독립 -청혼하는 여자, 기다리는 여자. 누가 더 매력적인가?
나쁜 그림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
집착 _ 쫓는 남자와 쫓기는 여자들
남성이 쫓고 여성은 달아나는 그림이 있다. 여성은 분명 남성을 거부하고 있는데, 남자는 여성의 의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승길까지도 쫓아다닐 기세다. 마치 빨리 깨어나고 싶은 불길한 꿈처럼 쫓고 쫓기는 그림, 예술사에는 스토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넘쳐난다.
스토커 혹은 스토킹은 몰래 접근하다, 미행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Stalk에서 유래된 말이다. 관심 있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사람과 그런 사람의 병적인 증후 혹은 행위를 일컫는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넌,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등은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었다. 스토커는 전혀 모르는 상대일 수도 있고, 사랑을 거절당한 상대일 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스토커는 아폴론처럼 잘생기고 멋진 데다 권력을 소유한 남성일 경우도 있다. 사실 아폴론이 월계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스토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모두 첫사랑에게 받은 깊은 상처 때문이다. 게다가 그 첫사랑의 실패가 순전히 에로스(큐피드)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폴론은 조그만 화살통을 메고 다니는 에로스를 만났다. 올림포스 신궁에서 활과 화살통을 메고 다니는 존재는 아폴론과 에로스 뿐이었다. 에로스는 만난 아폴론은 장난감 같은 화살로 무얼 하겠냐며 조롱했다. 화가 난 사랑의 신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황금 화살을 쏘아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를 사랑하게 만들고, 다프네에게는 미움의 납 화살을 쏘아버렸다. 화살에 맞은 순간, 아폴론은 하필이면 남자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선머슴 같은 다프네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아폴론은 끈질기게 구애해야 할 운명, 반대로 다프네는 아폴론을 미워하고 피해 다녀야 할 운명의 쌍곡선이 펼쳐졌다.
스토커와는 한 번쯤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게 마련이다. 다프네가 아폴론의 손아귀에 막 들어오려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강의 신인 아버지 페네오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달라고 말이다. 이에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월계수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 후 아폴론은 다프네를 잊지 못하여 월계수의 나뭇가지로 관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다프네와 아폴론의 신화는 여러 시대에 걸쳐 작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거장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만큼 스펙터클한 작품은 드물다. 미켈란젤로의 화신이라 할 만큼 뛰어난 조각가였던 베르니니는 월계수가 되는 순간의 다프네의 모습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처럼 다프네의 머리카락은 잎사귀로, 허벅지는 나무껍질로, 발가락은 뿌리로 변하여 대지를 움켜쥐고, 두 팔에서는 가지가 뻗어나오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통상 다프네 이야기는 관능적 사랑을 극복하는 정절의 승리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을 위해 명예를 마다하는 남자 혹은 사랑만을 쫓는 남자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폴론이 황금 투구를 버리고 월계수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프네를 축성한 것은 분명 명예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폴론보다 더 씁쓸하고 불쌍한 스토커는 키클롭스이다. 키클롭스는 외눈박이 거인족인데 그의 이름은 둥근 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어머니인 대지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키클롭스. 그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추한 모습의 거인 아들을 역겨워한 아버지 우라노스에 의해 오랫동안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었다. 뛰어난 대장장이이기도 했던 그들은 훗날 가장 강력한 무기인 번개를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치고 풀려난다. 이 키클롭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의 모험 중 세이렌과 더불어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즉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고, 결국 오디세우스의 지략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 스토리의 주인공 말이다.
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이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갈라테이아는 이 거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느 날 폴리페모스는 갈라테이아가 그의 연인 아키스와 사랑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들에게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 갈라테이아는 바다로 몸을 피했지만, 아키스는 바위에 깔려 죽고 말았다.
오귀스트 로댕과 같은 해에 태어난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이 그린 폴리페모스는 그 어떤 키클롭스보다 섬뜩하고 애처롭다. 르동은 유년 시절 외숙부에게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그는 형에게 애정을 듬뿍 쏟는 어머니를 보면서 스스로 버려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외로움과 방치, 편애는 르동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키클롭스는 마치 르동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듯 갈라테이아를 처연하게 훔쳐보고 있는 듯하다. 키클롭스가 덩치만 큰 어린아이로 그려진 점, 눈 하나가 얼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점, 그 커다란 눈에서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점 등은 근원적 애정결핍의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다. 즉 외눈박이 사랑이라는 건 세상과 인간을 제대로(입체적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또 한 명의 기괴한 존재, 반인반수인 판도 유별난 스토커였다. 헤르메스의 아들이자 목동의 신인 판은 염소 얼굴에 뾰족한 귀, 그리고 염소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명랑한 성격을 가진 판은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기도 하고, 나그네에게 갑자기 나타나 공포를 주기도 한다. 이로부터 당황스러움과 공황,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판의 상징물 중의 하나가 높이가 다른 갈대를 엮어 만든 팬파이프(시링크스)인데, 이 물건이 판의 상징이 된 사연이 애달프다. 판은 님프 시링크스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의 구애를 피해 달아났다. 시링크스는 아르카디아의 님프로 순결을 상징하는 처녀 신 아르테미스를 멘토로 삼았다. 어느 날 시링크스는 판이 쫓아오는 걸 알고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라돈강까지 달아났는데, 강물에 막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판에게 잡히려는 순간 시링크스는 강의 님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달라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갈대로 변신했다. 아쉬워하던 판은 갈대가 바람과 어울려 내는 소리에 반하여, 몇 개의 갈대 줄기를 밀랍으로 이어 붙인 다음 피리를 만들었다. 이것이 팬파이프(판의 파이프라는 뜻)의 유래가 되었고, 그래서 팬파이프를 시링크스라고도 부른다. 이오니아의 에페소스에는 판이 시링크스를 가두었다고 하는 동굴이 남아 있는데, 시링크스의 순결에서 연유하여 처녀성을 알아보는 데 쓰였다고 한다. 즉 처녀를 동굴 안에 들어가게 하면 진짜 처녀는 무사히 살아나오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
판은 관능적 쾌락을 좋아했고 그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에 판은 정욕의 상징이 되었다. 그림 속에서 판은 님프 시링크스를 쫓아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미 갈대숲이 무성한 강변에 도착해 있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관능과 정욕에는 어쩔 수 없이 스토킹적인 요소가 따르기 마련이다.
"나 이 남자가 죽자 살자 쫓아다녀서 결혼했잖아!"
여전히 많은 결혼과 치정에 의한 살인은 귀여운 스토킹과 혐오스러운 스토킹 사이에 있다.
당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그림들
위험 _ 다나에의 관능은 생명력이다
위험에 처할 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기가 더 쉽다. 전쟁 시기에 얼마나 전설적인 로맨스가 많았던가? 오죽했으면 전후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사랑은 이국적인 배경에서 더욱 자란다. 색다른 분위기, 여행지, 낯선 곳에서 느끼는 흥분 또는 두려움 때문에 감각들이 예민하게 고조될 때 사람들은 신비주의자가 되고 황홀경을 느끼고 사랑이라는 야릇한 감정에 휘말린다. 사람들은 고통과 위험이 닥쳤을 때 로맨스를 쉽게 받아들인다. 위험 요소가 일종의 최음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다나에야말로 감옥에 갇히는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에로틱한 사건을 연출하게 된 기막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아가니페와 결혼하여 딸 다나에를 낳았다. 다나에를 낳은 뒤 아가니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 신탁에 물어보니 아크리시오스에게는 아들이 없을 것이고 딸 다나에가 아들을 낳을 터인데 아크리시오스는 그 아이에게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겁에 질린 아크리시오스는 너무도 사랑하는 딸인 다나에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높은 탑에 위치한 청동 감옥에 가두었다.
젊은 나이에 빛도 들지 않는 청동 감옥에 갇혀 아무도 만날 수 없다니 다나에는 참으로 불운한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행운이 남아 있었다. 바로 다나에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청동 감옥 밖에서도 다나에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제우스가 이 귀중한 정보를 흘려들을 리 없었다. 제우스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 침투하기 위해 색다른 계획을 세웠다.
제우스가 어떤 신이던가. 창조적인 발상과 변신의 귀재가 아니던가. 그가 마음먹으면 못 하는 게 없었다. 특히 그 일이 아름다운 여자와 관련되었을 때 그의 변신 능력은 가히 따라올 자가 없었다. 독수리, 뻐꾸기, 황소, 백조는 물론 사티로스, 여자 등 인간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먹구름, 빗물 같은 무생물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 제우스가 다나에에게 찾아갈 때는 황금 비로 변신해 청동 감옥의 틈을 파고들었고, 무사히 감옥에 침투한 뒤에 그녀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었다. 황금 비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누가 마다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랑의 결실로 페르세우스가 탄생한다. 메두사의 목을 자른 그 유명한 영웅 말이다. 다나에가 아들을 낳았다는 걸 안 아크리시오스 왕은 딸과 손자를 나무궤짝에 넣어서 바다에 던져버리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하여 세리포스섬에 다다른 모자는 어부 딕티스에게 구출되는데 그는 섬의 왕 폴리덱테스의 친형제였다. 왕은 아름다운 다나에에게 욕정을 품었으나 페르세우스 때문에 감히 다나에를 범할 수 없었다. 왕은 페르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강요했다.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사람들은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에겐 왕의 아들답게 특혜가 주어졌다. 그는 결국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메두사를 처치한 페르세우스는 고국에 돌아와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를 죽이게 된다. 결국 예언은 정확히 실현되고, 그 역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황금 비로 다나에를 유혹하는 제우스를 그린 그림이 무수히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이 소재가 특별히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은유임을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시대를 보낸 티치아노,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 판 레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그의 딸 아르테미시아 등 수많은 화가들은 앞다투어 이 신화를 재해석했다.
수많은 다나에 그림 중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으니, 바로 클림트의 것이다. 클림트는 선배 화가들의 다나에와 전적으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높디높은 탑에 갇혀 벌거벗고 누워 있는 비너스의 자세로 다나에를 그렸다. 게다가 통상 옆에는 날개 달린 천사인 큐피드(에로스)를 함께 그렸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이 그림은 그저 비너스와 큐피드를 그린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다나에가 황금 비를 직접 받아들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시녀가 받거나, 큐피드와 함께 받거나, 아니면 창가 쪽에서 빛이 들어오면서 황금 비가 내리는 정도로만 그렸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와 형태와 분위기를 드러낸다. 우선 여성의 몸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잠을 자는 듯한 포즈다. 당시 이런 구도의 조형법은 매우 낮선 것이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다나에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가 쉰다섯의 나이에 독감의 후유증인 뇌졸중으로 죽자 14건의 유자녀 양육비 청구소송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클림트와 관계가 있었던 모델들의 아이였다. 클림트는 여러 모델들과 각별히 정을 통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모델 가족의 장례비용을 대주기도 했으며, 집세를 내주기도 했을 만큼 그는 정을 통한 모델들을 챙겼다. 모델들은 클림트를 아주 좋아했고, 언제나 그의 요구에 따라 관능적이다 못해 외설적인 포즈까지 선뜻 취해주었다.
<다나에>는 클림트가 사랑했던 여러 여성들이 혼재해 있는 모습이다. 빨간 머리를 특히 좋아했던 클림트답게 이 그림에는 빨간 머리를 지닌 모델 미치 짐머만의 모습도 있다. 짐머만은 클림트와의 사이에 아이를 둘 두었다. 또 상류층 고객이자 한때 그와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이미지도 담겨 있다. 사고로 장애를 입은 그녀의 오른손 이미지가 그림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형상은 다나에의 허벅지와 그 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 비다. 그녀의 허벅지는 관능의 메타포이자 다산의 상징이다. 잉태를 위한 생명력의 이미지를 허벅지와 황금 비가 암시하는 것이다. 마치 성모마리아의 수태처럼 황금빛 빗줄기는 신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단순한 도발이나 관능을 넘어선 생명력의 잉태에 관한 이미지로 거듭난다. 더군다나 황금 비라는 모티프는 금세공사 가문에서 태어나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문양과 색채를 사용했던 비엔나분리파의 주창자였던 클림트에게는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의학에서는 이 신화를 근간으로 하여 다나에 신드롬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강간 사건을 다루다 보면,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정상적인 배란일이 아님에도 급작스럽게 배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사실 동물은 배란 형태가 각기 다르다. 야생토끼나 낙타 같은 동물은 수컷이 있어야만, 즉 수컷이 교미 동작을 취해야만 배란이 되고 평소에는 배란이 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원숭이처럼 위협과 공포를 느껴야 비로소 배란이 되는 동물도 있다. 그래서 수컷 원숭이는 교미 전에 암컷이 안고 있는 새끼를 빼앗아 던지고 때려 새끼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게 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상황에서 암컷 원숭이가 배란을 하고 발정해 교미가 가능하게 된다.
공포 배란 현상이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강간과 같은 공포 분위기에서 배란을 하는 여성이 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강간으로 임신되었다는 예는 강간 사건에거는 그리 드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 신화 속 다나에와 같은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는 은유적인 것으로 기능해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면에서는 당대의 예사롭지 않은 의학상식도 유추해볼 수 있다.
욕망할수록 가질 수 없는 삶
숭배 - 롤리타 콤플렉스, 억압된 영혼의 아름다움
서양미술사 속 그림 속에는 어린아이가 없다? 정확히 말해 아동의 초상화는 매우 드문 데다 아주 뒤늦게 등장했다. 귀족과 중산층 심지어 서민까지도 어린아이를 유모에게 맡겨 키웠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정이 적은 편이었다. 더불어 근대 이전까지는 유아 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에 아이를 그림으로 담아 기념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왕족과 귀족 자제들의 초상화가 16세기 매너리즘 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17세기에 와서 부부의 개념이 동반자적인 의미로 자리매김하면서 아이도 덩달아 중요해졌다. 오늘날과 같은 아동의 개념이 생긴 건 18세기 장 자크 루소의 아동교육론이 탄생한 이후라고 봐야 한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 정확히 말하자면 1845년 은판사진이 발명된 이후 아이의 초상화는 사진으로 바뀐다. 특히 이 시대에 등장한 소녀 사진은 낯설고 매혹적이다. 바로 루이스 캐럴이 찍은 소녀 사진이 그것이다.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라는 본명을 가진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아동을 위한 환상소설을 쓴 수학자 겸 사진가였다. 그는 유아에서 소녀에 이르기까지 2,700여 점에 가까운 어린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남자아이들은 거의 없고 대개 여자아이들이다. 그 사진의 내용을 보면 그가 다분히 롤리타 콤플렉스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루이스 캐럴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런 기묘한 소녀 사진을 찍었을까? 영국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캐럴은 원래는 수학 강사였다. 빅토리아 왕조의 시대정신을 그대로 보유한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였고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사람이었다. 탁월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자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라파엘전파의 화가이자 시인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당대 유명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맺었다. 사실 캐럴은 볼거리의 후유증으로 난청이 심했고 지독한 말더듬이였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았고 소심했다. 아마 이런 신체적, 심리적 요인은 성인 여성과의 정상적인 연애와 관계 형성에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캐럴이 진정으로 애정을 쏟았던 친구들은 어린아이, 특히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는 사춘기 전 소녀들을 천사처럼 숭배했다. 그렇지만 사춘기가 되면 단호하게 결별했다. 캐럴은 어린 소녀를 데리고 여름 별장이 있는 바닷가로 소풍을 가곤 했다. 거기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했다. 취향이 까다로웠던 캐럴은 소녀 선정 기준도 특별했다. 우선 상류층 자제여야 했고, 예쁘고 가냘파야 했으며, 영특하고 활기가 있어야 했다. 소녀들도 그를 대단히 좋아했다. 풍부한 유머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소녀들을 재미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진사로도 명성이 자자했던 캐럴은 예쁜 옷을 입혀서 아이들을 촬영했고 누드를 찍기도 했다. 뜻밖에도 부모는 선뜻 응했다. 이 유별난 우정과 취향은 숱한 소문과 억측을 빚었고, 급기야 캐럴은 1880년 돌연 사진 촬영을 중단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 소녀 사진들이 롤리타 콤플렉스와 페도필리아를 환기했기 때문이다.
사실 빅토리아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성적 억압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피아노의 다리도 외설스럽다 해여 레이스를 짜 신발을 신기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소녀의 이미지가 강박적일 정도로 순수의 상징이어야만 했던 시대였다. 이 시대의 미술에 자주 등장했던 어린아이의 누드는 때 묻지 않은 순수와 영감을 상징했다. 예컨대 아돌프 윌리엄 부그로나 알렉상드르 카바넬같은 신고전주의 화가의 그림 속 아이들이 그렇다.
로이스 캐럴의 소녀 작품은 기묘한 성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십수 년 전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회고전은 충격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사진 속에서는 캐럴이 특별히 사랑했던 소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 동화도 앨리스 리들과의 대화에서 착상)》의 바로 그 앨리스 리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을 보면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표현만큼 적절한 건 없어 보인다. 나보코프는 캐럴을 두고 "마치 무슨 먼지 나고 불쾌한 놀이라도 한 것처럼 몸은 지저분하고 옷을 반쯤 벗거나 덜 입고 있는, 이 멜랑콜리하고 비쩍 마른 조그만 님펫(Nymphet, 성적으로 조숙하고 성적 매력을 지닌 열 살에서 열네 살 정도의 여자아이)"과 함께하기 위한 책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 이후로 더욱 유명해진 캐럴은 딸을 빌려주는 엄마를 구하는 데 그리 애먹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는 알려진 대로의 보수적인 시대정신과는 달리, 생리 전의 여자아이를 숭배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아마 소녀는 아직 본격적인 타락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이 애매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빅토리아시대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아직 어떠한 개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경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소녀들은 소년들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소녀들은 그들의 오빠나 남동생보다 사회 경험이 적었고 그런 까닭에 더 보호받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더 억압받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웠다. 빅토리아시대 아동문학은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모든 어린아이는 그 출생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년기는 순수와 타락의 경계에서 모호한 시절을 보내는 시기라는 점이 매혹의 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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