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미학의 대가들이 한데 모여 벌이는 철학적 논쟁
서구 지성사의 획을 그은 주요 사상가들이 미와 예술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다. 18세기 중반 철학의 분과학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미학은 합리성 편향의 인식관을 비판하고 이를 수정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합리성 중심의 철학적 전통에서 오히려 자신의 진가가 드러나는 독립적 학문으로 발돋움하였다. 현대 사유의 탈이성적 경향은 사실상 근대에 성립된 미학이 출발했던 준거점과 내용상 깊은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저자는 미학적 사유의 역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 저자 브리기테 셰어
저자 브리기테 셰어(Brigitte scheer)는 철학, 독문학, 영문학 및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의 철학적 미학 담당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하였으며 독일 철학회 미학 분과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칸트의 미적 이념론의 수정을 통한 칸트 미학의 정초, 미적 이념」「르네상스 사상에서 인간의 자아계발 및 존엄성 문제」 등이 있다. 연구 영역으로는 미학, 예술철학, 칸트와 독일관념론, 언어철학이 있다.
■ 역자 박정훈
역자 박정훈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학부 및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예술철학, 예술사, 근대독일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예술의 역사와 종교의 역사: 헤겔 철학 체계에서 절대정신과 세계사의 연관」이 있다. 연구 영역으로는 예술철학, 근대미학사, 칸트와 헤겔 철학이 있다.
■ 차례
서문
서론 철학적 미학의 개념 및 영역
1장 미학 이전의 역사
고대의 미
중세의 미
고대와 중세의 예술
르네상스의 미와 예술론
2장 미학, 독자적 학문의 동기를 부여받다 -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3장 미학,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 되다 - 바움가르텐
4장 미학, 인식 일반으로서의 반성이 되다 - 칸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판정을 통한 미의 조명
인식 일반
숭고
미적판단론
칸트의 예술관
5장 예술, 직관 가능한 진리가 되다 - 헤겔, 쇼펜하우어
헤겔 체계의 단서
미학에 대한 편견들에 관한 헤겔의 논박
미와 예술의 근본 특징들
세 가지 예술형식 및 예술의 종말
개별 예술들의 체계
쇼펜하우어의 예술관
6장 예술, 작품 속에 정립된 진리가 되다 - 하이데거
7장 미학, 합리성 비판을 통해 비동일자를 구제하다 - 아도르노
진리 내용, 논리성, 예술의 수수께끼적 성격
예술의 언어적 성격
미메시스
역자후기
참고문헌
사항색인
인명색인
미와 예술
미학 이전의 역사
르네상스의 미와 예술론
르네상스기에는 고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미와 예술을 새로이 파악할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되었다. 말하자면 ① 교회의 세속화 및 교권에 대한 비판, ② 교리에 대한 지식인들의 불만, 그리고 고대의 작품 및 인간상의 수용, ③ 신앙과 지성적 인식의 분리가 유명론을 통해 촉발됨, 이에 따라 교회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채 학문의 자유가 확보됨, 마지막으로 ④ 강력한 공동체적 연대가 완화되면서 - 12/13세기 신비주의를 통해 이미 전개되기 시작했던 - 개인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 것 등이 바로 그러한 동력에 해당한다.
이로 인한 결과로서 인간들이 그 어떤 전제도 없이 직접 외부 자연을 대면하게 된 일을 들 수 있다. 자연은 단지 - 신의 증거이기는 해도 창조주에 비한다면 본래성이 사라지는 - 신의 피조물로서만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관찰하고 체험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자연과의 관계가 이러한 면모를 갖춤에 따라 다시 고대의 자연 관계에 대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조형예술의 발전, 그리고 르네상스 예술가의 지위 상승은 예술가들과 인문주의자들 간의 유대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런 유대는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었다. 인문주의자는 예술가의 제작에 필요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고, 예술가는 인문주의자의 교향을 탁월한 감각으로 표현한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원근법적 표현을 재발견하는 일은 예술론에 있어, 그리고 인식론적 연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후기 고대의 무대 미술이나 도자기 미술을 보면 이때 이미 원근법 기술이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재발견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것이 현실을 해명하는 새로운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15/16세기에 이르면서 가시적 사물들은 점차 독자성을 지닌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즉 사물의 가상적 성격이 사라지고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더 이상 형이상학적 관념의 메타포에 머물지 않게 된다. 이렇듯 외부 현실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르네상스 예술의 새로운 기획이 드러난다. 즉 가시적 현상을 가능한 한 자연에 충실하게 재현하는 일이 촉구된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 자체를 통해 진리가 (그리고 합법칙성이 혹은 - 다 빈치의 말을 빌리면 - 필연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대상을, 그리고 대상과 심상의 연관을 관찰자의 눈으로 지각하는 절차와 똑같이 표현하려는 회화에서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회화에서 이런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중앙원근법이 발견되었고 단일한 무한구조를 지닌 광학적 공간이 창안되었다.
과학적 열망이 가득했던 르네상스기의 중앙원근법적 표현을 후기 고대의 원근법적 예술형식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우선 양자 모두 당대의 예술 발전 전반에 걸쳐 정점에 놓여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두 시기 모두 원근법 양식이 발양됨에 따라 세계관 자체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르네상스기에 원근법을 발견한 일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훨씬 후대에 가서야 자연과학 및 철학을 통해 명시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인식론적 문제, 즉 주객의 관계 문제, 다시 말해 인식이란 주관의 인식 조건에 종속되어 있다는 문제를 선취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에서 외부 현실에 대한 원근법적[관점주의적] 현시는 후기 데카르트의 인식론과 궤를 같이하는데, 그는 인식을 ① 방법론적으로 제어하고 ② 주관성의 조건에 의해 도출하며 ③ 구성이라는 의미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수학이 이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된다.
르네상스기에 원근법이 재발견됨으로써 자연과학적 탐구, 그리고 자연연구의 방법론에 대한 더 근본적인 자각이 나타났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이런 점에서 자연탐구자이기도 했다. 정신사적 지평에서 본다면 르네상스 회화의 - 중앙원근법을 위시한 - 원근법적 구도는 다양한 기능을 충족할 수 있으며 단지 과학적인 의미에만 국한할 수 없다.
림베르티누스의 논고에 나타난 언급을 통해 박산달이 내린 결론은 원근법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일은 단지 표현 기교를 능숙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학 논고들을 통해 설명되는 완전함에 피안의 시각이 의식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도 중세 예술론의 전형이었던 기호 및 상징의 다면성을 갖는다. 즉 하나의 상징은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원근법은 인간중심적 현실 체험 및 현실 지배를 나타내면서도 (원근법은 데카르트 지식관의 "현출" 이다) 동시에 세속에서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는, (즉 "신에 대한 관조" 와의 유비를 통해) 초인간적 통찰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학, 인식 일반으로서의 반성이 되다 - 칸트
18세기는 단연코 "미학적인" 시대라 불릴 만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성 및 감정, 취미와 비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미학을 정초하려는 바움가르텐의 위대한 기획 직후 칸트가 이보다 진일보하여 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려 시도한 사실은 정신사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칸트 미학이라 하면 대개 『판단력 비판』만을 떠올리는데, 미적판단력 비판을 골자로 한 이 후기 저작은 오늘날까지도 미학 이론의 교과서로 통용된다. 미적판단력 비판은 칸트가 다양한 철학 유파들에 조응한 결과물이며 그의 사상들, 그러니까 결코 명확한 목적에 따른 것은 아니었음에도 제3- 비판- 을 통해 통합된 사상들이 미학의 문제들에까지 적용된 결과물이다.
미학의 문제들에 대한 칸트의 숙고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합리주의 형이상학에 입각해 있던 시기에는 취미 개념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유일한 방안이었다. 칸트에게 취미는 개인의 지평을 넘어서는 판정 및 평가의 심급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류 형이상학의 척도인 완전성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취미 비판의 학문성을 확보하려던 칸트는 인식론을 위해 감행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미학 이론에서도 시도한다. 『순수 이성 비판』에 따르면 대상 인식은 주관과 떨어져 있는 사물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직관되는 객체의 규정 가능성을 위한 주관성의 인식 조건을 산출하는 일을 뜻한다.
칸트에 따르면 엄밀하고 학문적으로 정초된 인식을 위해서는 인식 대상들이 인식 주관을 따라야 하며 주관이 대상을 따라서는 안 된다. 칸트가 보기에 인식론상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조건하에서만 인식판단의 구속성에 대한 입증이 가능하다. 즉 인식대상들이 주관성에 놓인 선험적 인식 조건들에 따를 때에만, 비로소 보편타당하며 필연적인 인식이 도출될 수 있다. 칸트는 이 문제를 두고 가능한 경험 대상들에 대한 선험적 종합 판단이 어떻게 생각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표현하였다.
미와 예술의 문제에 대해 칸트는 이와 유사한 해법을 추구했다. 만일 미가 사물 그 자체에 깃든 - 이 사물들을 수용하고 판정하기 우해 우리 모두에게 갖춰져 있는 감관들에 종속되지 않은 - 속성으로 간주되어야 했다면, 미에 대해 신뢰할 만한 규정이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저런 속성들을 통해 사물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지 여부는 사물 자체가 안겨주는 은총에 달린 일이 될 것이다. 객관주의적으로 오도된 미학에 만족하지 못한 만큼 취미에만 매몰된 주관주의적 미학에도 만족하지 못한 칸트는 주관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력 있는 미 판정의 문제에 대해 『순수 이성 비판』에서의 인식 문제에서 자신이 취한 것과 비슷한 방식의 해법을 추구했다. 이는 미학에서도 사물과 관찰자의 위상을 둘러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고려되었음을 뜻한다.
칸트는 비판적 초월론 철학의 맥락에 따른 전회를 통해 미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에서 벗어났다. 이제 더 이상 (바움가르텐이 그랬던 것처럼) 사물, 혹은 현실 전반에 미가 존립한다는, 그래서 인간의 표상 능력을 통해 재현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칸트가 보기에 이런 조화를 가정하는 일은 비학문적으로 형이상학을 존수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미학은 - 이미 인식론이 그랬던 것처럼 - 적합한 판단의 가능 조건을 추적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칸트의 예술관
칸트는 미와 숭고에 대한 판정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판단력 비판』은 미와 예술에 대한 판정을 넘어서 제작[생산]에 대해 주제화하는 예술철학을 제공한다. 미 분석에서의 판정 작업만으로는 예술미의 특수성을 이해하기에 불충분하며, 이는 칸트의 천재론이 풀어야 하는 과제가 된다. 그런데 이 원리는 분명하게 규정되기는 어렵다. 하나의 규칙을 규범화하기에는 이 원리가 독창적/창조적/천부적/복합적인 면을 갖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의 이런 창조 원리를 표현하기 위해 "인게니움" 이라는 전통 용어를 수용한다. 이는 철학적/수사학적 전통에서 선천적 재능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규범을 숙지하고 이에 대한 연습을 통해 설명되는 후천적 능력과 대비된다.
칸트가 받아들인 이 천재 개념은 자신의 예술철학에서 핵심을 이루었고, 이 무렵에는 이 개념과 관련해서 획기적인 역사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런 변화 자체가 예술이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천재 개념은 시에 대해 편향된 규범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문학이론인 질풍노도를 통해 개진되었다. 이 시기는 "천재의 시대" 라고 불렸는데, 이로써 천재 개념이 예술이해를 위한 관건이라는 점이 당대에 유포되었다.
바움가르텐은 이 용어의 관념이 볼프의 경험적 심리학을 통해 이미 형성되었다고 본다. 볼프에 따르면 인게니움(위트)는 별다른 노력 없이 상이한 사물들 간의 유사성을 지각하는 능력을 뜻한다. 볼프가 보기에 인게니움은 하나의 사물에서 다수의 표징을 구분하는, 그가 명민함이라고 불렀던 능력과 대비된다. 또한 볼프는 인게니움 혹은 위트가 예술에서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인식했었는데, 왜냐하면 작품 속의 메타포와 알레고리를 형성할 때 상이한 사물 간의 유사성을 지각하는 이 능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볼프에 따르면 작시능력을 이루는 생생한 상상력이 위트(인게니움)와 결부된다.
칸트는 천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천재란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천부적 소질)이다. 예술가의 선천적 생산능력인 이 천재 자체가 자연에 속하는 까닭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천재란 심정의 선천적 소질(인게니움)이며 이를 통해 자연이 예술에 규칙을 부여한다."
칸트는 자신의 천재관을 해명하기 위해 라틴어 "인게니움" 을 사용했는데, 동시대인들은 물론 바로 직전 세대의 관점에서 이 말의 의미가 어떠했는지가 중요하다. 보임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상상력 개념에서 마땅히 중요하게 간주해야 할 창조적 계기는 위트 개념을 통해 강조되었다. 위트는 사물들 간의 유사점들을 감지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근본적으로 위트는 창조적 계기를 훨씬 더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예술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칸트의 입장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 대한 칸트의 반발로 이해될 수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는 합리성에 근거한 예술이상을 확증하는 입장이었고 이에 따라 이론적 인식과 미학적 생산 간의 종차는 불분명해졌다. 예술가의 제작은 정확성의 척도에 종속되기 때문에 고전주의 이론가들은 아름다움도 규범의 지도에 따라 산출된다는 견해를 가졌다.
예술, 직관 가능한 진리가 되다 - 헤겔, 쇼펜하우어
헤겔 체계의 단서
헤겔의 『미학 강의』는 미학 이론 분야에서 엄밀한 체계적 사유의 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는 초월론 철학의 체계를 통해 미와 예술론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했던 칸트에 비견할 만하다.
『미학 이론』에서 어도르노는 헤겔 미학의 체계적 구상을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과 칸트는 예술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없이 거시 미학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마지막 이들이었다." 여기에서 "거시 미학" 이란 고유한 단서도 방법론도 없는, 오히려 전체 체계의 구축 과정에서 이를 도출하는 미학을 뜻한다. 즉 미와 예술의 본질이 체계 전체를 통해 연역되는 것이다.
미학에 대한 헤겔의 강의록들이 의미 있는 체계적 예술론의 마지막이었다는 점은 다양한 평가들 가운데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 미학에 대한 심도 있는 수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헤겔 미학의 체계상 지위는 논외로 한 채 헤겔 미학의 현재성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헤겔의 예술작품관을 가장 심도 있게 받아들여 성과를 얻고자 노력한 저서로는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을 들 수 있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헤겔 제자들의 필기록이 미술사학자 호토에 의해 집대성되어 1835년에 (헤겔 사후 4년 뒤) 초판이 나왔다. 이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강의 텍스트의 질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종종 제기되어왔고 헤겔의 "주요 저작" 이라 할 『정신현상학』 혹은 『논리학』에 비한다면 대중적 저서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비난은 그가 다른 곳에서 설파한 변증법의 수준이 『미학 강의』에서는 견지되고 있지 않으며, 정신적 내용이 감각적 질료를 압도하는 까닭에 조야하고 통속적인 관념론이 되고 말았다는 견해였다.
미와 예술의 현상이 체계 속에 자리잡게 되면, 이는 생성된 것이지 결코 초역사적 원리에 따라 규정된 것일 수는 없다. 헤겔에 따르면 지식을 획득하는 전체 과정에서는, 즉 미와 예술 개념의 역사적 전개에서는 진리 및 지식의 파악 정도에 따라 이 현상들이 상대화된다. 따라서 미와 예술의 체계적 성격은 곧바로 경험계를 뛰어넘는 (즉 칸트의 초월론 철학에서 추구되었던 바의) 근본적 규정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현상들의 역사적 성격을 뜻한다.
헤겔이 보기에 구체적으로 이해된 절대자가 현재한다는 점은 예술의 참된 지위와 가치를 인식하는 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이 절대 정신에 속한다면 예술은 정신이 타자와 매개되고 화해하기 위한 전개 과정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는데, " 예술생산에서 정신은 오직 자신의 것과만 관계 맺는다" 는 점이 바로 그 이유이다.
헤겔에 따르면 예술작품들은 구조적으로 볼 때 "개념의 자기 전개" , 즉 "자신의 타자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고찰된다. 여기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 란, 예술의 감각적 질료는 가공하고 인간 정신의 자기이해를 위한 형식이 생성됨으로써 개념이 타자를 전유하는 힘이 역사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뜻한다. 헤겔은 이런 숙고를 통해 예술을 형식적/구조적으로 연역하였다. 그리하여 [예술미의] 통상적인 개념(본질적 술어를 내포한 개념)이 대상의 탐구의 마지막에 생겨나는 반면 "예술미의 철학" 의 경우 "예술미의 개념에서 시작" 하지 않을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예술관
헤겔과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도 예술을 직관 가능한 진리로 이해했다. 다만 이런 구상을 뒷받침하는 체계 면에서는 두 사상가 사이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헤겔의 경우 가상이 본질적이고 미는 가상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갖는 반면, 쇼펜하우어의 경우 현상계는 - 마야의 베일- 에 비유될 수 있는, 단적으로 가상과 기만의 세계이며 진리는 이 베일을 뚫고 이념을 포착함으로써 획득 가능한 것이 된다.
쇼펜하우어는 "단지 철학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들도 근본적으로 현존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진력한다" 고 역설했는데, 그가 보기에 이 양자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 나아간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이런 물음에 대해 예술 특유의 방식에 따라, 즉 "직관의 언어" 를 통해 대답한 결과이다.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어떤 예술작품이든, 즉 회화이든, 조각상이든, 시이든, 무대에 올려진 공연이든, 그 무엇이든 직관에 호소하면서 저 물음에 대답한다. 그러나 완전히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그러나 이성을 통해 번역될 수 없는 언어를 통해 음악은 우리의 모든 인생 가운데 가장 내밀한 본질을 언표하는 까닭에 여타의 예술들보다 더 심오하다."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물자체 관념을 완전히 공허한, 그 어떤 손길도 닿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을 비판한다. 물자체는 그저 우리를 위한 사물인 현상의 대응개념으로서만 다루어졌다. 다만 칸트가 자신의 도덕론에서 표상계 너머로 나아간다는 점을 쇼펜하우어도 인정한다. 왜냐하면 주체가 현상계로 완전히 진입하지 못하는 한 도덕법칙을 통해 입증되는 도덕적 의지규정의 자유는 그저 사유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다면 결정론에 따른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미학, 합리성 비판을 통해 비동일자를 구제하다 - 아도르노
미메시스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 나타난 근본 범주의 시작은 미메시스 사상이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아도르노가 이 개념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적/존재론적/미학적 평가로 대변되는 철학사적 전통으로부터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에 대한 아주 새로운, 가령 정신분석 혹은 문화인류학 등을 통해 수행된 해석과 연결되어 있다.
아도르노의 경우 특히 프랑스 연구자 카유아를 통해 친숙했던 - 문화인류학은 태고적 인류가 미메시스적 태도를 통해 자연에 동화됨으로써 자신의 지배권 밖에 있는 자연으로부터 무시로 엄습하는 공포를 완화하고자 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미 인간 밖의 자연에서 이미 발견되는 의태로 인해 미메시스적 태도는 친숙하다. 미메시스 관념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에서 처음 정립된 용어이며 여기에서 정의된 의미가 『미학 이론』에도 견지되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표현된 미메시스는 다음과 같다.
"주변 환경에 스스로를 활동적으로 관철하는 대신 그 안으로 스스로를 상실해 가는 생명체에 깊이 내재하는 경향성, 자연 안으로 다시 침잠하도록 스스로를 내던지는 성향을 뜻한다. 프로이드는 이를 죽음충동이라 했고, 카유아는 의태라 했다. 그런 류의 성벽은 현실적 노동형식을 우회할 수 없는 범죄로부터 섬세한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진보에 역행하는 것을 관통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의 변증법에 대해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작품이 더욱 엄정하게 약동하는 자연을, 그리고 이 자연에 대한 모사를 단념할수록, 성공한 예술작품은 더욱 더 자연에 접근해간다. 미학적 객관화, 즉 즉자적 자연존재의 반영은 주관의 목적론적 통일성의 계기를 온전하게 관철한다. 작품들은 이를 통해서 자연과 유사해진다. 반면 특징적 유사성들은 모두 우연지사가 되어 대부분의 예술 외적인 것이 되며 사물화된다."
여기에서 아도르노에 반대하는 이들이 수용하지 않았던 원시 단계가 나타난다. "자연의 모방" 은 예술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연을 그저 흉내 내는 것이거나 자연 산물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행과정 그러니까 능산적 자연의 모방, 결국 아도르노에 따르면 대상화되지 않은 자연의 모방으로 이해된다.
예술가의 미메시스는 논리학에 따르면 비동일자인 것을 목표로 삼는데 이는 존재론에 따르면 아직 유예된 사회 상태 혹은 구제되고 해방된 자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칸트와 유사하게 아도르노는 - 그 자체로 예술가의 생산에 전범이 되는 - 아름다운 자연이란 외부의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자연을 뜻한다. (칸트도 예술작품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개념적으로 규정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내적인 목적에 맞게 현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자연 및 예술관에 깃든 난점은 예술의 미메시스가 개념적 규정 없이는 우리에게 그 어떤 식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 자연을 전범으로 취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이 이미지로 삼을 바로 그러한 자연은 전혀 없다. 예술에서 참된 것은 비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예술에서는 동일성을 정립하는 이성에 의해 질료로 전락한, 자연이라는 말로 불리는 타자가 관건이 된다. 이런 타자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다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예술의 진리 내용은 예술작품의 추상적 상위 개념이 아니라 이런 다수를 표현한다."
자연을 단지 질료로 폄하하는 규정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은 자연을 "정신의 타자"로 규정한 헤겔을 겨냥한다. 그러나 이러한 헤겔의 파악에는 정신 자체가 타자, 즉 정신에 철두철미 상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연과의 대응 속에서만 생성되는 무언가라고 보는 견해가 잠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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