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한 두 남자와의 갈등과 여동생의 죽음, 집안의 몰락으로 처절한 가난을 감내했던 천경자. 이 책은 불행한 시대 속에서 역경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친 화가 천경자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루고 있다.
50여 점의 주요 작품과 풍부한 자료사진, 흥미 있는 일화와 절절한 사연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림의 탄생배경을 저절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 천경자의 감동적인 예술혼과 미의식을 접하고 나면 오늘날 삭막한 사회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꿈을 자각하고, 현실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 저자 최광진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현대미술 비평에 있어서 자율성과 재현의 문제」로 1호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천경자 전』(1995), 『청전 이상범 전』(1997), 『소정 변관식 전』(1999) 등 한국 대가들의 전시회를 연이어 기획했다.
한때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을 지냈고, 2004년부터 理美知연구소를 통해 기호학, 포스트모더니즘, 동서비교미학, 한국미학, 창작론 등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시대정신과 예술의 길을 모색하는 강좌를 해오고 있다. 2015년에는 서울시 예술연구서적 발간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한국의 미학-서양, 중국, 일본과의 다름을 논하다』를 펴냈고, 그 밖의 저서로 『부드러운 욕망』, 『현대미술의 전략』 등이 있다.
■ 차례
책을 내며
프롤로그: 천경자 예술의 마력
천경자 신드롬 | 황후의 카리스마 | 불행한 생애, 행복한 예술가
1. 정한의 뿌리
고향의 봄 | 사춘기의 방황 | 꿈에 부푼 일본 유학 | 빗나간 사랑 | 여동생의 죽음 | 뱀으로 승화된 한恨 | 부산 갈매기
2. 행복의 그림자
장밋빛 서울 | 보랏빛 환상: 채색화의 신경지 | 회색빛 우울
3. 꿈과 낭만을 찾아서
뉴욕에서 사모아로 | 타히티, 고갱의 발자취 | 파리, 화려한 고독 | 이탈리아, 보티첼리에 취해 | 베트남, 전쟁터의 시정 | 아프리카, 사막의 여왕이 되어 | 인도, 신비와 침묵의 땅 | 중남미, 탱고를 찾아서
4. 문학기행
폭풍의 언덕 | 헤밍웨이의 집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모뉴먼트 밸리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5. 환상 속의 자아상
비련의 여주인공 | 길례 언니 | 우주 소녀 | 프리다 칼로와 천경자
에필로그
자신의 한을 승화시킨 실존적 낭만주의자
부록: 희대의 진위논란, [미인도]의 진실
사건의 발단 | 진품 판정이 나온 경위 | [미인도]의 원본 | 문제의 본질과 해법
천경자 연보
도판 목록
천경자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정한의 뿌리
고향의 봄
한반도 최남단,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역에 자리 잡은 전라남도 고흥, 긴 해안선과 조그만 섬들이 떠 있는 황혼이 유난히 아름다운 그곳은 한국이 낳은 색채화가 최경자의 고향이다.
그녀가 태어난 고흥군 서문리는 계곡의 물줄기가 강물이 되어 마을을 관통하고, 개울 건너 소나무가 우거진 봉황산이 있다. 마을에서 바다로 뻗은 신작로를 따라가다 보면 상점과 요릿집이 즐비한 봉황교가 나오고, 다리 건너에는 나병 환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들어간다는 소록도가 있다.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슬픔이 공존하는 곳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호기심 많았던 소녀는 봄마다 봉황산 기슭에서 열리는 협률사 신파의 공연에 가슴 설레었다. 곡마단의 구슬픈 트럼펫 소리, 번쩍거리는 금종이를 붙이고 화려한 재주를 부리는 곡예사들의 공연은 어린 소녀의 꿈과 환상을 채워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그들의 화려함 이면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고통과 슬픔이 숨어 있다. 샤갈이나 피카소 같은 작가들이 한 대 곡마단이나 서커스를 좋아하고 그것을 즐겨 그린 이유도 여기에서 인생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경자는 곡마단의 화려함 속에서 인간의 비극적 슬픔을 읽어냈고, 슬픔이 쌓여 화려한 아름다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천경자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고향의 봄은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커다란 능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집 대문 밖에 도사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타일러도 가지 않자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져서 죽여 버렸다. 또 한 번은 동네 친구와 산에 나물을 캐러 갔는데, 친구가 꽃무늬 놓은 허리띠 모양의 것을 무심히 집어 들었다가 독사에 물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 뱀은 그녀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천경자의 예술적 감수성은 자연의 혜택과 더불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 무남독녀로 자란 어머니 박운아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어릴 적에 남장을 하고 서당에 다녔다. 연사라는 아호를 쓴 어머니는 서예와 동양화에서 재능을 보였으며, 순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눈이 큰 미인이었다. 천경자는 어머니가 집 마루에서 난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고, 어머니가 수를 놓고 바느질을 할 때면 옆에서 원삼 쪼가리를 가지고 놀며 색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뱀으로 승화된 한恨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은 천경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갈수록 나빠지는 집안 형편과 남자와의 갈등으로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나 괴로움과 슬픔이 올라올수록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천경자는 자신에게 몰아닥친 잔혹한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한의 무게를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놓았다. 고독을 친구 삼고 슬픔을 땔감 삼아 삶의 고통을 그림으로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삶의 시련이 절정에 달해 극적인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그녀는 불현듯 1949년 서울 동화백화점에서의 전시회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는 3등 열차에서 본 환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햇빛에 꽃 비늘을 반짝거리며 날쌔게 찔레꽃 사이로 사라지는 실뱀 두 마리였다. 그녀는 환상 속 이미지를 스케치하기 위해 광주역 앞에 있는 뱀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똬리를 틀고 꿈틀거리는 비단뱀과 잔뜩 독을 품고서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들을 보며 묘한 생명의 충동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사건과 추억을 되살리며 그녀는 뱀의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다음 날 그녀는 백로지를 잘라 스케치북을 만들고, 팔촌 외종질과 함께 뱀 집을 다시 찾았다. 만약 겁이 나서 그리지 못한다면 북을 놓아버리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뱀 집에 들어서니 생 장작개비 냄새와 닭 고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은 상자를 열어 손으로 뱀의 목을 잡고 포즈를 취해 주며 뱀을 그리려는 기이한 화가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생동감 있는 뱀의 모습을 그리려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풀어줘야 했다.
그래서 다음 날에는 뱀을 넣을 유리상자를 만들어갔다. 주인은 작대기로 유리상자 안에 수십 마리의 독사와 꽃뱀을 넣어 오동나무 아래 놓아주었다. 뱀들은 투명한 상자 안에서 얽히고설키면서 유연한 몸을 꿈틀거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 꿈틀대는 뱀을 응시하면 정신이 몰입되어 뱀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실제로 관찰한 뱀의 눈은 똥그란 것이 붕어 눈깔처럼 순하게 생겼다.
그러나 진분홍색 바탕에 먹물로 까만 열십자가 그려진 독사의 눈은 살기가 돌았다. 그동안 많은 뱀을 보았지만, 독사의 눈을 정면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으스스한 공포가 오히려 복잡한 상념을 사라지게 하고 마취약처럼 고통을 잊게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적요감이 엄습해오면, 비로소 자신의 모델들이 탕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뱀 스케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한군이 침공했다는 소문이 돌며 세상이 어지러웠지만,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뱀 집을 찾았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자 독을 품은 독사의 몸뚱이가 꽃처럼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화가 나면 색깔이 엷어지고 부풀어 오르거나 똘똘 뭉쳐 똬리를 틀거나 몸을 꼿꼿이 세우는 뱀의 생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징그럽고 무서운 뱀을 그림으로써 나는 생을 갈구했고, 그 속엔 저항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저력이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다.
뱀과 여인은 태초부터 악연이었다. 성경에서 뱀은 하와를 유혹해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여 신의 분노를 샀다. 그 일로 뱀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고 살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었다. 천경자도 뱀과의 악연이 많다. 고향 뒷산에서 친구가 독사에 물려 죽은 이후 그녀에게 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경 유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흰 나리꽃 속에서 빨간 실뱀이 나와 식구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지기를 사흘이나 계속했다.
천경자의 기억 속에서 뱀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극적인 위기 상황에서 뱀과의 만남은 묘한 충동을 자극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자기편으로 삼아 스스로를 지키려는 보호본능 같은 것이었다. 뼈대가 없는 뱀은 부드럽고 힘이 없지만 독을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 천경자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뱀의 지혜와 독이 필요했던 것이다.
천경자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그림으로 보상받으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한번은 연극연출가 이원경이 광주에 내려왔을 때 천경자 집을 방문했다. 그를 보자마자 천경자는 "아이고 선생님, 우리 옥희가 죽었어요"하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울면서 뱀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울면서 그림만 그리는 모습을 어이없어 하며 지켜보았고, 「생태」라는 제목을 지어주었다.
스케치한 뱀들을 화폭에 옮기고 나서 도대체 몇 마리나 그렸는지 세어보는데, 온통 뒤엉켜 있어서 세기가 어려웠다. 뱀 대가리에 성냥개비를 놓아가며 세어보니 정확히 33마리였다. 순간 자신에게 고통을 남기고 떠난 두 번째 남자가 35세 뱀띠라는 사실이 떠올라 화면 상단에 꽃뱀 두 마리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중앙에 위협적인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들고 있는 한 마리의 독사를 중심으로 수십 마리의 뱀들이 뒤틀린 창자처럼 뒤엉켜 있는 작품 「생태」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꿈과 낭만을 찾아서
뉴욕에서 사모아로
천경자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뉴욕에서 열린 국제미술교육협회 총회 참석을 시작으로 8개월간 남태평양과 유럽을 여행하는 코스였다. 1969년 8월 초 천경자는 호놀룰루를 거쳐 회의가 열리는 뉴욕으로 갔다. 총회가 끝난 후에는 홍익대학교에서 함께 재직한 건축가 나상기와 함께 김환기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김환기는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1963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점 시리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그들은 지난 일들을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향출신의 김환기와 천경자는 모두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감성이 풍부하고 색채 감각이 뛰어났다. 김환기의 초청으로 홍익대학교 교수가 된 천경자는 김환기의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천재 시인 이상과 사별한 뒤 김환기와 재혼한 김향안은 천경자가 1961년 수필집 『유성이 가는 곳』을 출간했을 때 신문에 서평을 쓰기도 했다.
천경자는 한 달 넘게 뉴욕에 머무르면서 김환기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김환기가 매일 들러 사색을 한다는 센트럴파크에 가보기도 했다. 1950년대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김환기가 뉴욕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뉴욕일정을 마친 천경자는 잠시 브라질로 건너가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작품 3점을 출품하고, 8월 하순 처음으로 남태평양 땅을 밟았다. 당시만 해도 여자 혼자 남태평양을 여행하는 것은 매우 드물고 위험한 일이었다. 천경자가 남태평양에서 처음 찾아간 사모아는 한국 원양어업활동의 신기원을 연 지역으로 1958년부터 한국 기업이 어업기지를 둔 곳이다. 그곳은 미국령인 아메리칸 사모아와 독립국가인 웨스턴 사모아로 나뉘는데, 아메리칸 사모아의 파고파고에는 수백 명의 한국 교민이 선박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머나먼 고국에서 온 특별한 여행자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여행을 안내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사모아는 전쟁과 거리가 멀고 먹을 것이 풍부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심이 좋고 여유가 있었다. 또 갖가지 꽃과 예쁜 아가씨들이 많아서 가는 곳마다 그림이 되었다. 하루는 웨스턴 사모아의 아피아 시에서 영국 부인이 경영한다는 호텔 파티에 참석했다. 테이블마다 음식이 요란하게 차려져 있었고, 잔디 위에서는 가수가 기타를 치면서 히피퐁 노래를 부르고 플루메이아를 머리에 단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파티 중에 잔뜩 흥이 오른 천경자는 즉석에서 「웨스턴 사모아 아피아 市」를 스케치했다.
사모아에서 마지막 날, 천경자는 수십 개의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선물로 받아 목에 걸고 20여 명의 환송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타히티행 팬아메리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운행하는 타히티행 비행기에 손님이라곤 천경자 한 사람뿐이었다.
문학기행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때로는 좋은 영화 한 편이 삶에 지쳤을 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천경자는 인생의 모진 바람과 폭풍우가 몰아닥친 20대 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았다. 애틀랜타의 농장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한 뿌리 남아 있는 당근을 뽑아 먹으면서 외치는 장면이라든가, 벨벳 커튼을 찢어 드레스를 만들어 입는 장면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천경자에게 삶의 용기와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
인생의 근원적인 향수에 젖게 해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장소를 보고 싶은 마음에 천경자는 미국 중부에 있는 애틀랜타로 날아갔다.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이자 흑인 노예해방과 인권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애틀랜타는 미국 문학사상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마가렛 미첼이 태어난 곳이다. 그녀는 법률가이자 역사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들은 남북전쟁 이야기와 방대한 독서를 토대로 역사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했다.
당초의 우려와 달리 이 책은 6개월 만에 백만 부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고 그해에만 30여 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939년에 영화화되었고,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비비안 리는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미첼은 1949년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이 작품 하나로 영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천경자는 미첼의 유물이 전시된 도서관을 둘러보고, 다음 날 시가에서 멀지 않은 미첼의 생가를 찾았다. 그곳은 누구의 집이라는 표시도 없이 출입금지 표지판만 붙어 있는 3층 건물의 폐가였다.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워하던 천경자는 할 수 없이 건너편 잔디밭에 주저앉아 물끄러미 그 집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이윽고 목화밭을 바라보며 생에 대한 무한한 슬픔을 느끼고, 대작을 쓰고 난 뒤의 허탈감에 젖었을 미첼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폐가나 다름없던 「애틀랜타 마가렛 미첼 생가」는 천경자의 손을 거치면서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초록 지붕의 하얀 집으로 변했다. 지울 수 없는 한과 고통을 남겼던 인생의 역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고요한 대기는 늦가을의 힘없는 낙엽마저 떨어뜨릴 수 없을 것 같다. 하늘의 흰 구름은 보랏빛 환상이 되어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이처럼 천경자의 풍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깃든 비극적인 주제나 인간적 슬픔을 정감 있는 색채를 통해 환상의 세계로 승화시킨 것이다.
환상 속의 자아상
비련의 여주인공
천경자는 인생의 시련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생각했다. 이러한 자아상은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생전에 그녀의 어머니는 천경자가 남으로부터 피해나 수모를 당할 때마다 "니나 나나 전생에 황후였는가 보다. 그런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안 좋단다"라는 말로 위로해주곤 했다. 이 말은 삶의 고난이 심해지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천경자는 힘들 때마다 자신이 전생에 어느 왕조의 황후였다는 상상을 하며, 현실의 고통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세상에 저항하곤 했다.
인생의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운명과 핍박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순수한 꿈을 향해 매진한다. 그들의 삶이 비록 미숙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꿈을 향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응원하게 된다. 천경자는 영원히 미완성이 될지도 모를 꿈을 향해 쓰라린 고배와 불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슬픔에 공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천경자의 「청춘의 문」은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완벽한 미모에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들의 우상이 되었던 그레타 가르보는 스크린의 여신이었지만, 뭇 남성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나중에 여배우 미미 폴락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면서 그들이 동생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폴락은 이혼을 당했다. 이 사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자 가르보는 폴락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인기절정의 시기에 은퇴를 결정했다.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평생을 고독하게 산 비운의 여배우였다.
「청춘의 문」에서 그레타 가르보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창백한 얼굴을 하늘로 쳐들고 우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다리에는 화려한 꽃들로 치장되어 있지만 상념에 젖은 표정과 가늘게 늘어진 손가락은 왠지 멜랑콜리한 슬픔이 느껴진다. 목에 두른 보라색 색종이는 현실과 이상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실제보다 다소 길어진 얼굴과 관능미가 제거된 꼿꼿한 몸, 그리고 가느다란 손은 천경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이다. 그녀는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슬픔과 고독을 읽어내고 거기에서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또 다른 작품 「팬지」는 뭇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마릴린 먼로를 모델로 삼았다. 그림 속 마릴린 먼로는 유리병 안에서 팬지꽃을 화관으로 쓰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장 로맨틱한 꽃으로 알려진 팬지는 처음에 흰색이었다. 그런데 사랑의 신 주피터가 자신이 연모하는 시녀에게 화살을 쏜다는 것이 실수로 길가에 있는 오랑캐꽃을 쏘아 3가지 색의 제비꽃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제비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세 번 키스한 것이 3색의 팬지꽃으로 피어났다는 설도 있다.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불리는 팬지는 그림에서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을 벌이고 있고, 화병에는 마릴린 먼로가 섹시한 입술로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게슴츠레하게 뜬 눈에는 우수에 찬 슬픔과 고독이 가득하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녀의 삶에 말 못할 고뇌와 슬픔이 왜 없었겠는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태어난 마릴린 먼로는 정신장애가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입양되었고, 양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보육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4년 만에 헤어지고, 유명한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두 번째 결혼도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끝이 났다. 어찌나 맞았는지 얼굴에 있는 멍을 감추기 위해 늘 짙은 화장을 해야 했다는 먼로의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스타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이후 극자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지만 두 번의 유산과 심한 우울증에 괴로워하다 이혼해야 했다.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던 먼로는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이자 화려한 대중스타였지만, 동시에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었다.
천경자의 작품에서 팬지꽃과 마릴린 먼로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운명이다. 화려하게 핀 꽃은 아름답지만 곧 져야 할 운명이기에 슬프고, 마릴린 먼로의 아름다움은 내면에 치명적인 상처와 고독이 있기에 슬픈 것이다. 천경자는 내재된 존재의 슬픔을 간파했고, 슬픔이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운명이라면 슬픔과 한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었다.
프리다 칼로와 천경자
천경자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과 드라마틱한 삶을 진솔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와 비견할 만하다. 프리다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18살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게다가 21살 연상의 난봉꾼인 디에고 리베라와 어렵게 결혼했지만, 그가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며 견디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세 번에 걸친 유산의 아픔과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녀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기구한 삶의 역경과 남자로 인해 고통 받으면서도 특정 유파를 따르지 않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두 여류작가는 통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한 예술적 이상은 결코 같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꿈과 환상을 쫓고 그곳에서 영혼의 위안을 얻은 천경자와 달리 프리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유물론자였다. 당시 프리다가 유럽에 갔을 때 초현실주의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린 것은 항상 내 현실이었다"라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이상을 위해 투쟁한 레온 트로츠키를 절대적으로 지지한 프리다는 리베라와 함께 공산주의 모임에 적극 참가한 현실주의자였다. 따라서 천경자와 달리 환상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체념과 원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즉 4차원의 세계나 영적인 세계에서 구원을 갈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프리다가 자신의 고통을 관조하고 객관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천경자는 자신의 슬픔과 한을 아름다운 환상과 대립시키며 신명나는 승화를 추구했다.
프리다와 천경자의 자화상은 외형적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예술세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전혀 다르다. 프리다의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을 보면, 원망과 체념이 섞인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목에 걸친 가시나무 목걸이와 흐르는 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심리적 고통을 암시한다. 프리다의 작품에도 머리에 꽃과 나비가 나오고, 자신의 고향에서 친구처럼 기르던 원숭이와 개, 앵무새 등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의 강박적인 심리의 대용물일 뿐 악몽 같은 현실을 반전시킬 어떤 환상적 장치는 아니다.
반면에 천경자의 자화상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자신의 한과 고통을 승화하고자 하는 초월적 열망으로 가득하다. 유난히 긴 목의 여인은 밀려오는 고독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여 입술을 굳게 다물고 초점을 잃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에 화관처럼 쓰고 있는 네 마리의 뱀은 22세 때의 슬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당시 그녀는 집안의 몰락과 처절한 가난, 불행한 결혼,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등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불행의 비를 맞으며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뱀을 그렸고, 그것을 계기로 화가로서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천경자에게 뱀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다. 또 동공을 열고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의 눈에는 숙명적 한과 초월적 환상이 가득하다. 이처럼 자신의 한과 환상을 드라마틱하게 대립시켜 승화시키는 것이 천경자 예술의 문학적 구조이다.
내 그림 속에 아름답다 못해 슬퍼진 사상, 색채를 집어넣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한이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식의 그런 범상한 한이 아닌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이 불쌍하고 아름답고 슬픈 혈육 관계의 한 같은 것, 그런 것을 그림으로써 아름다운 자연에 곁들여 승화시키고 싶어서이다. 그러니까 창도 그렇고, 소설이나 전설 역시 그렇고, 모든 예술은 한을 승화시켰을 때 향기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천경자 예술은 자신의 한을 환상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굿이나 판소리의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한은 고통의 원인을 원망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억압된 감정을 신명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천경자가 특히 즐겨들었던 판소리 심청가에서 마음씨 착한 심청이는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으로 황후로 환생하고, 맹인 잔치에서 아버지를 만나 눈을 뜨게 해준다. 혈육의 정 때문에 생긴 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하늘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심청전의 스토리에는 한국 특유의 한의 미학이 담겨 있다.
자아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오는 감정의 응어리인 한은 풀리지 않으면 살기가 되어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죽어서라도 반드시 한을 풀고자 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신과 만나는 조건으로 여겼기 때문에 체념과는 달리 비극적이면서 종교적이다. 그래서 천경자는 아름다움의 원류로서 한을 사랑하고, 슬픔 뒤에 오는 정화로 생의 의지를 복원하고자 했다. 이처럼 한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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