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드라마처럼 극적이고 꿈결처럼 아련한 38가지 클래식 이야기
“클래식, 달콤 쌉싸름한 인생을 읽다”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식 평론가 홍승찬 교수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클래식 이야기. 빠르고 치열한 세상에서 음악을 통해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는 삶을 그리며 살아가는 그가, 이번에는 인생의 백만 가지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38가지 클래식 이야기를 꿈꾸듯 노래하듯 펼쳐 놓는다.
무수한 세월을 지나온 클래식 명곡과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음악가들의 삶, 더불어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대 뒤편에는 달콤 쌉싸름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다. 저자는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낭만적인 사랑을 보여준 바그너부터 절절한 고독을 노래한 말러의 가곡에 얽힌 이야기까지, 인간사의 달콤 쌉싸름한 희노애락이 빚어낸 클래식의 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 저자 홍승찬
“정원을 가꾸고 산책을 하며 사색을 즐기다 문득 여행을 떠나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나누는 그런 삶을 꿈꿉니다.”
빠르고 치열한 세상에서 느리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는 삶을 그리며 살아간다.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쌉싸름한 인생의 여정에서 그 자신이 그러했듯, 다른 이들도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여유를 누리며 꿈을 꾸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서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여전히 음악을, 인생을 그리고 꿈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음악 평론가.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듯 부드럽고 따뜻한 해설 덕에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시작하여 크레듀에서 계속하고 있는 온라인 강좌 SERI CEO의 ‘뮤직 인사이트’를 비롯한 강연과 칼럼, 저서를 통해 어렵게만 여겨지던 클래식을 일상으로 데려오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생활 속의 예술’을 추구하며 공연장은 물론 삶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공연들을 기획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의 전당 이사 및 공연예술감독,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 국립발레단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재직하며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저서로는 《생각의 정거장》,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등이 있다.
■ 차례
Allegro Giocoso 빠르고 즐겁게
바이올린의 영원한 맞수_ 과르네리와 스트라디바리
아내에게 바친 최고의 생일 선물_ [지그프리트의 목가]
기차를 사랑한 음악가들 이야기_ 음악은 기적(汽笛)을 타고
무대에서도 인생에서도 필요한 단 하나_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때로는 바보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다_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지휘자는 무엇으로 마음을 움직이는가_ 줄리니, 하이팅크 그리고 바렌보임
하늘을 이고 있는 호수 위 오페라 무대_ 브레겐츠 페스티벌
Tribute to Shin Joong Hyun_ 세상에서 하나뿐인 기타, 하나뿐인 소리
역사가 있기에 오늘이 존재합니다_ 세계 최고의 공연장 카네기홀
Grazioso 우아하고 부드럽게
가지지 않아 아름답고 머물지 않아 향기롭다_ 말러 가곡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함께하는’ 음악입니다_ 어느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
우리 산책할까요?_ 알고 보면 재미있는 그들의 산책 습관
그는 시냇물이 아니라 바다였다_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진정한 낭만의 정수_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음악사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_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
당신이 받게 되는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같다_ 비틀스 그리고 애비로드
때로는 그 같은 넉넉함이 필요합니다_ 비올리스트들의 쉼터, 비올라 조크
위로하러 오시니 그 뜻대로 이루어지리라_ 오라토리오 [메시아]
대담한 도전과 창작의 영혼_ 유재하를 추억하며
Lamentoso 비애에 젖어
꽃이 피고 저 혼자 지는 일 같습니다_ 진정한 신뢰는 짝사랑과 같다
슬픔은 형벌인 동시에 축복이다_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자유로운 그러나 고독한_ 지금 당신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누구나 마음껏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_ 프레디 머큐리 그리고 차이콥스키
가장 큰 사랑은 용서랍니다_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작곡가의 영혼이 깃든 정원_ 윌리엄 몰튼의 ‘라 모르텔라’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_ 경극 [패왕별희]
바흐의 삶이 담긴 마지막 작품_ [저는 이제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을 있게 한 당신을 기억합니다_ 낙촌(樂村) 이강숙
Con Bravura 대담하고 활기차게
음악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적_ 콘세르바토리오 그리고 엘 시스테마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_ 부활을 노래한 말러의 [교향곡 2번]
그들의 저력에는 이유가 있다_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메카, 핀란드
공연장의 CEO는 무엇을 지녀야 하는가_ 에스플러네이드 그리고 벤슨 푸아
전쟁의 참상에서 희망으로 피어난 음악_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시대를 앞서간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_ [살짜기 옵서예]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꿈꾸다_ [헤이 주드] 그리고 [비긴 어게인]
옛 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_ 브람스의 [교향곡 4번]
아름답게, 맑게, 정직하게_ 일상과 함께 숨 쉬는 예술, 다카라츠카
세대를 넘어도 이어지는 정신_ 작곡가 이흥렬과 [진짜 사나이]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
Allegro Giocoso 빠르고 즐겁게
아내에게 바친 최고의 생일 선물_ <지그프리트의 목가>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만든 곡으로 사랑의 감정을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한 직접 작곡한 음악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뜻깊은 날을 축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요? 반대로 그렇게 구애나 축하를 받는 입장이라면 그건 또 얼마나 뭉클한 감동이겠습니까? 우리가 즐겨 듣는 명곡들 가운데는 작곡자가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정한 음악이 적지 않습니다.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였지만 아래의 경우만큼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에피소드는 없을 것입니다.
1870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이른 아침,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작은 마을 트립셴에 있는 어느 가정집에 악사들이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그 전날 근처 호텔에 묵으며 밤늦게까지 호흡을 맞춘 그들은 집주인의 지시에 따라 1층 부엌에서 조용히 조율을 마친 다음, 2층 침실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단의 맨 위 층계에서부터 제1바이올린 둘, 제2바이올린 둘, 비올라 둘, 플루트 하나, 오보에 하나, 클라리넷 둘, 바순 하나, 호른 둘, 첼로 하나, 콘트라베이스 하나, 이렇게 모두 열다섯 명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잠시 후 안주인이 잠에서 깨는 일곱 시 반이 되자 이들은 집주인의 지휘에 맞추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취리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그 가운데는 지휘자인 한스 리히터(Hans Richter)도 있었지요. 리히터는 비올라를 연주했고, 중간에 트럼펫을 불기도 했습니다.
악보에 적힌 대로 조용하게 감동을 가지고 연주되는 음악이 새벽안개처럼 피어올라 안주인의 귓가에 몽롱하게 젖어들 즈음, 집주인은 침실 문을 열고 침대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꿈결처럼 들리는 달콤한 음악 소리에 잠을 깬 안주인의 눈에는 다섯 명의 화동을 앞세운 남편이 어린 아들 지그프리트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지요. 아직도 잠이 덜 깬 그녀의 손에 남편이 악보 뭉치를 쥐어주자, 그제서야 그녀는 이 아름다운 곡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남편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곡으로 아내를 감동시킨 이 사람, 바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입니다.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의 서른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이 곡의 처음 제목은 <피디새의 노래, 오렌지빛 해오름과 함께 하는 트립셴의 목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그의 코지마에게 생일 축하 인사로 바친 관현악곡>입니다. 사람들은 이 긴 제목을 줄여 트립셴 목가라고 불렀고 바그너의 가족들은 계단의 음악이라 불렀습니다. 악사들이 계단에서 연주했기에 이렇게 부른 것이지요. 바그너는 처음부터 이 곡만큼은 출판하지 않고 오직 코지마를 위한 곡으로 고이 간직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지요. 빚쟁이들의 끈질긴 독촉에 견디지 못한 바그너는 이 곡의 출판권을 넘겨야 했고, 출판업자들은 악보를 팔기 위해 소규모 실내악을 대편성 관현악곡으로 고치면서 곡의 제목도 <지그프리트의 목가>로 바꾸었습니다.
지그프리트는 바그너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전설 속 영웅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그 이름을 붙였고 그가 가장 공들여 작곡했던 4부작 음악곡 <반지>의 세 번째 악극 제목도 <지그프리트>입니다. 주인공 지그프리트는 몰락해가는 신들의 세계 발할을 구원할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배신을 당해 죽음에 이르고 말지요. <지그프리트의 목가>에는 악극 <지그프리트>에 나오는 주요 동기(선율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연속된 음)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3막에 나오는 사랑과 평화의 동기는 처음과 끝을 장식합니다. 여기에는 바그너 부부의 사랑과 결실이 마침내 그렇게 평화롭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듯하면서도, 그 사이에 펼쳐지는 굴곡들은 순탄치 않았던 그들의 결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독일의 자장가를 넣은 것은 그들 사이에 태어난 두 딸과 아들 지그프리트를 위한 기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지마는 이름난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와 결혼했지만 뷜로의 스승이자 벗이기도 한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 딸까지 낳았고 그 때문에 뮌헨을 떠나 트립셴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바이에른의 제후인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의 작품을 광적으로 좋아하여 전폭적인 후원을 보냈지만 바그너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과 신하들의 공격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 사이 바그너의 부인 미나가 세상을 떠났고 코지마는 뷜로와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마침내 1870년 7월 18일에 그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한 달 뒤인 8월 25일, 두 사람은 루체른 중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결혼한 뒤 처음 맞은 코지마의 생일이었기에 바그너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 선물했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이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테니까요.
1872년 4월, 바그너 부부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사랑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던 트립셴의 보금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1938년 8월 25일, 대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트립셴의 바그너 저택에서 음악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음악제로 꼽히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 10회에 불과했던 연주회가 지금은 100여 회로 늘어났고 4주의 축제 기간 동안 약 12만 명이 찾아올 만큼 사랑받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가 페스티벌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지만, 바그너의 저택은 바그너 기념관으로 변신해 지금까지도 그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가고 없지만 그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이지요.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고 했습니다. 사랑 또한 세월 앞에는 덧없지만 그 자취는 오래도록 남는가 봅니다.
Grazioso 부드럽고 우아하게
진정한 낭만의 정수_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얼마나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어느 곡을 들었을 때 단박에 누구의 곡인지를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도대체 얼마나 많이 들어야 지금 흐르는 음악이 전체 형식에서 어떤 부분인지 짐작할 수 있는 건지 몰라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작곡가들은 곡을 만들 때 음악의 구조와 형식이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편이며 심지어는 일부러 속이려 드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그래야 뭔가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인정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또한 작곡하는 재미이기도 하겠지요.
낭만주의 시대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작곡가들의 이런 성향을 벗어난 괴짜 한 명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Anton Josef Bruckner)입니다. 그가 작곡한 거의 모든 교향곡 1악장의 제1주제는 현의 틀레몰로 위에서 장엄한 선율을 펼치고 있어, 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브루크너 개시라고 부르고 있지요. 트레몰로는 같은 음을 짧게 수없이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각각의 주제와 주제, 부분과 부분 사이에는 긴 휴지부를 두어 확실하게 구분 짓는가 하면, 주제에는 종종 셋잇단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두고 각각 브루크너 휴지와 브루크너 리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는 제시부의 주제뿐만 아니라 전개부의 처리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데, 동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주제를 대위적이고 입체적으로 엮어가며 정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작곡가들이 원래의 주제를 얼마나 많이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을 때, 오히려 브루크너는 원래 있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 놓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던 경력답게, 관악기들의 소리가 마치 파이프 오르간의 울림처럼 들리도록 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만 알고 몇 번 들어보면 어느 곡을 들었을 때 최소한 그것이 브루크너의 곡인지 아닌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흐르다가 멈추면 다음 주제나 부분으로 넘어간다는 것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요.
슈베르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음악사를 통틀어 브루크너만큼 순진하고 고지식하며 소심했던 작곡가는 없을 겁니다. 그는 한마디로 독일 낭만주의 그 자체였습니다. 현실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오스트리아 린츠의 독실한 가톨릭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교사가 되었지만 곧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작곡가가 되기 전까지 오르간 주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린츠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면서 작곡을 배웠던 브루크너는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할 때까지 빈 국립음악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음악과 종교에만 몰두했지요. 작곡가로서 그의 진가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인정받은 셈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에야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브루크너의 음악이 가톨릭 색채를 띠고 있으며 오르간 특유의 분위기가 강해 이 범주를 벗어난 문화권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있지만 브루크너만큼 자신의 교향곡을 고치고 또 고친 경우는 없습니다. 그는 곡을 완성하면 고치고 또 고치는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교향곡은 작곡이 끝난 다음 바로 연주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단 완성된 악보는 책상 위에 버려져 있거나 서랍 속에 처박혀 있다가 나중에서야 다듬어져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었지요. 게다가 작곡자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연주를 맡은 지휘자들까지 원래의 작품을 생략하거나 개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브루크너의 경우에도 그가 죽은 뒤에 오레르, 하스, 노바크 등이 남겨진 교향곡 필사본을 연구하여 각각 다른 악보로 출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루크너의 작품을 보면 원래의 모습으로 남은 곡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교향곡을 들을 때는 어떤 악보로 연주하였는지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낭만적이라는 부제를 지닌 <교향곡 4번>은 앞서 말했던 브루크너만의 독특하고 전형적인 음악 어법들이 처음으로 확립되어 나타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을 통틀어 유일하게 작곡자 스스로 제목을 붙인 곡이기도 합니다. 단조로 일관되어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던 이전 교향곡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장조의 조성을 가진 이 교향곡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구분되는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삶의 밝은 면을 이야기하려는 듯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위법의 사용도 전보다 더 정교해지면서 훨씬 더 성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요.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듯했던 전작과는 달리, 독일의 울창한 숲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훨씬 더 인간적이면서 제목 그대로 낭만적인 작품이입니다.
약동하듯이, 너무 빠르지 않게라는 지시어가 붙은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현의 신비로운 트레몰로 사이로 호른이 서서히 떠오르는 듯이 울리면 목관이 이를 받아 연주하다가 점차 웅장한 금관 합주가 진행됩니다. 작곡가 자신이 언급했듯이 이 서주 부분은 동이 터오는 중세의 새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바로크 음악의 느낌을 주는 제2주제와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시작되는 제3주제가 이어지면서 흐름은 점점 더 탄력을 받게 됩니다.
제2악장의 지시는 풀어 쓰자면 알레그레토에 가까운 안단테입니다. 느리지만 좀 더 빠른 느낌으로 연주하라는 것이지요. 2악장은 전원적인 느낌의 느린 악장이라 처음 들을 때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들을수록 점점 더 빠져들게 되는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마치 브루크너 자신의 인간성이 그러하듯이 순수하며 가식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한편 3악장은 약동하듯이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냥의 스케르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현의 트레몰로에 이끌려 등장하는 호른이 사냥 나팔을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3악장은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 가운데서도 리듬이나 악상 면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대목입니다. 스케르초에 따라 나오는 트리오 부분에는 너무 빠르지 않게, 어떤 상황에서도 질질 끌지 말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로운 민속춤의 느낌을 주다가 다시 스케르초 부분으로 돌아가서 끝을 맺지요.
약동하듯이,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라고 적힌 4악장은 장중하고 역동적인 금관악기들의 합주 사이에 춤곡인 폴카 선율이 나타나면서 긴장을 풀어줍니다. 오르간과 같은 금관의 음향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잘 드러나 있지요. 마지막에는 1악장 서주의 주제가 다시 등장함으로써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에는 낭만주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특유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때 묻지 않아 감출 것이 없고 감출 줄도 모르며, 하나에 매달리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것이 낭만입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것을 고스란히 품어내며 눈물 흘리는 것이 또한 낭만이지요. 수줍지만 부끄럽지 않고 바람에 마구 흔들리다 쓰러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멀지 않은 옛날, 우리도 잘 아는 어떤 나라에 진정한 낭만을 아는 멋쟁이가 살았는데 그의 이름을 브루크너였다고 합니다.
Con Bravura 대담하고 활기차게
<헤이 주드> 그리고 <비긴 어게인>
2014년, 영화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한물 간 프로듀서가 우연히 무명 가수의 노래를 듣고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여 우여곡절 끝에 성공으로 이끈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소 진부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은, 누구나 속을 뻔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뼈대에 탱탱한 살을 입히고 피를 둘러 영화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영화에 삽입된 음악 또한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매력적이었지요. 관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다면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연주를 하거나 노래하는 장면들일 텐데요. 그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면 아마도 뉴욕의 어느 빌딩 옥상에서 펼쳐진 연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녹음에 필요한 스튜디오 사용료를 마련하지 못한 주인공들은 뉴욕 시내 곳곳을 다니며 녹음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노는 뒷골목에서 시작한 녹음 작업은 어느덧 어느 건물의 옥상에 이르러 끝난다는 설정이지요.
그런데 이 장면은 비틀스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 또한 비틀스를 추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다시 살리고자 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했을지도 모르지요. 1969년 1월 30일 점심시간 무렵, 비틀스 멤버들은 답답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어느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연주가 시작되었고 그들은 경찰이 출동해서 멈추기까지 약 42분 동안 공연 아닌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연주한 다섯 곡의 노래들 가운데 마지막 곡은 <겟 백(Get Back)>이었지만 그들은 끝내 그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날의 옥상 공연이 비틀스 멤버들이 함께 한 마지막 공연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비틀스의 해체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무명의 밴드였던 그들을 발굴하여 전대미문의 성공으로 이끌었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구심점을 잃은 멤버들은 서로 다른 관심사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동안 쌓였던 갈등이 불거지면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때 폴 매카트니는 새로운 매니저를 영입하는 대신 애플 사를 설립합니다. 이 애플 사의 옥상이 비틀스의 마지막 공연이 벌어진 바로 그 건물입니다. 매카트니는 애플 사를 통해 비틀스의 연주와 음반 작업을 전담시키는 한편, 과거의 그들처럼 가능성을 지닌 무명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기회를 주고자 했지요. 하지만 이는 오히려 비틀스의 해체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매카트니의 생각과 의욕이 너무 앞선 데다가 회사의 실적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재능 있는 무명의 음악가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애플 사의 정신은 어쩌면 <비긴 어게인>과 같은 영화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애플 사의 옥상에서 펼쳐졌던 비틀스의 마지막 연주를 떠올리도록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렇게 연출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스티브 잡스가 훗날 회사를 세운 뒤, 비틀스의 애플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자 그토록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소송까지 마다하지 않은 까닭 역시 이러한 기회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자신이 차고에서 먹고 자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성공에 이르렀기에, 그처럼 남다른 생각과 패기를 가진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에 매카트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틀스의 팬들은 수많은 명곡들 가운데 그가 어떤 곡을 선택할지 무척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나타난 그가 <헤이 주드(Hey Jude)>를 불렀을 때, 정말이지 그토록 오랜만에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무대에 올라 하필 그 곡을 선택한 까닭이 무엇인지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요. 알려진 것처럼 제목에 들어간 주드는 존 레넌의 아들 줄리안의 애칭으로, 이 노래는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했던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입니다. 그런데 매카트니가 격려하고자 했던 주드는 친구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음악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어린 지망생들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애플 사를 설립하여 처음 발매한 싱글 앨범에 이 곡을 앞세웠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너나없이 자유와 평등을 건국이념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치로 내세웁니다. 세 번째에 이르면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박애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 자리에 오는 것이 다름 아닌 기회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라를 세운 지 이제 겨우 200년이 조금 넘은 나라가 벌써 오래전부터 세계의 질서를 앞장서서 이끌게 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기회의 땅 미국이라는 믿음, 즉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듭니다.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 비틀스의 애플 그리고 영화 <비긴 어게인>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꿈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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