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구마 겐고

   
구마 겐고(역주: 민경욱. 감수: 임태희)
ǻ
안그라픽스
   
20000
2014�� 03��



■ 책 소개 


나의 매일은 숨 가쁜 세계일주! 


건축가 구마 겐고의 첫 자서전 


 




가족과 집을 뜯어고치는 것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에서 건축 데뷔작 M2의 쓰디쓴 실패, 기로잔전망대, 돌미술관 등 지역의 재료를 최대한 이용한 건축, 사람이 함께 만드는 아오레나가오카, 일본 건축가의 최대 영예인 제5대 가부키극장까지 그의 즐겁고 정신없는 35년 건축 여정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구마 겐고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은 건축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만드는 일은 즐겁고,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더 즐겁습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건축을 합니다. 동료와 함께 말입니다.”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 저자 구마 겐고 


도쿄대학 대학원 건축학과를 수료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객원연구원, 게이오기주쿠대학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도쿄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기로잔전망대, 구름위의호텔, 워터/글래스, 나가사키현미술관, 산토리미술관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작은 건축』『자연스러운 건축』『연결하는 건축』『약한 건축』『반오브젝트』『신‧도시론 TOKYO』『10택론』 등이 있고, 인터뷰집으로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와의 대담을 모은 『삼저주의』가 있다. 


 




http:||kkaa.co.jp 


 




■ 역자 민경욱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관련 회사에서 일하며 1998년부터 일본문화 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해오다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현재 일본문화 전문 블로그 ‘분카무라(tojapan.co.kr)’에서 일본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거짓말의 거짓말』『종신검시관』『SOS 원숭이』『유리고코로』『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커뮤니티 디자인』 등이 있다. 


 




■ 감수 임태희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건축학 연구생 과정을 거치고 귀국해 6년 동안 건축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교토공예섬유대학(京都工藝纖維大學)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차례 


1. 세계를 달리다 


세계일주 티켓 | 건축가는 경주마 | 20세기 건축가들의 출세 경로 | 건축의 전투 능력 | 새롭게 등장한 클라이언트 | 언제나 이익을 생각하는 중국 | ‘문화’와 ‘환경’의 국가 중국? | 못 해 먹겠네! | ‘구마 겐고’라는 브랜드 | 중국의 오너문화, 일본의 샐러리맨문화 | 예를 다한 연애 | 프랑스인은 역시 노련해 | 미디어와 건축을 지배하는 유대인 | 망상에 가까운 장대한 러시아인의 꿈 | 해적판이 나오다니 축하해 | 나란 인간은 촌놈이구나 


 




2. 가부키극장이라는 도전 


영예보다 무거운 어려움 | 새로운 건물은 칭찬받지 못한다는 법칙 | 화려한 가부키극장 | 모더니즘과 스키야의 융합 | 가라하후을 놓고 벌어진 공방 | 도쿄에 바로크를 | 옥신각신한 덕에 |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부키월드 | 가위에 눌리다 


 




3. 20세기 건축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세기의 발명’ | 새하얀 집과 시커먼 석유 | 오일쇼크로 최초의 좌절 | 샐러리맨 경험 | 뉴욕 지하에서 일본 험담 | 토론을 중시하는 덫 | 다른 장소에서 승부해주지 | 르코르뷔지에와 콘크리트 | 안도 다다오와 콘크리트 | 머리가 아니라 완력 | 인간심리를 이용한 콘크리트 | 맨션을 소유하는 ‘병’ | 콘크리트혁명을 넘어서기 위해 | 포기를 알면 인생이 재미있어진다 | 외로운 어머니 | 더 외로운 샐러리맨 | 해안에도 난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공무원들 | 현장이 없는 사람들 | 다시 ‘공생’을 생각하다 


 




4. 20세기에 반기를 들다 


거품 덕에 받은 엄청난 비난 | 오른손을 못 쓰게 되다 | 지방이라는 주름 | 보이지 않는 건축을 | 보이지 않는 건축의 진화 | 예산 없음 = 아이디어 | 최대한 돌을 사용하다 | 라이트의 건축과 이어지다 | 졸부 스타일의 유행 |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나 | 고생, 각오, 도발, 돌변 | 가자, 현장으로 | 자신의 기준을 뛰어넘다 | 중앙을 싫어하는 비뚤어진 인간 | 불황에 고마워하다 | 원점에 있는 낡은 집 | 일본은 왜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는가 


 




5. 재해와 건축 


건축가의 임사체험 | 인류사를 바꾼 리스본대지진 | 죽음을 잊고 싶은 도시 | 죽음 가까이 있는 건축가 |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 부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6. 약한 건축 


허무를 넘어 | 건축혐오 | 격렬한 이동이 건축가를 단련시킨다 | 직접 만나는 것이 필요한 이유 | 초속으로 판단하다 | 뛰어난 인재를 간파하는 면접, 당일 설계 | 조직 운영도 능력 가운데 하나 | 욕먹고 싶지 않아요 | 행복한 자기회의 | 반상자의 집대성 | 디스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이다 | 진지하게 즐거움을 즐기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세계를 달리다

나란 인간은 촌놈이구나

전 세계의 클라이언트를 경험했습니다만,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게 한국입니다. 현재 제 사무소에서도 한국 프로젝트가 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무서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1997년 통화 위기로 경제가 파탄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뒤,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는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약진으로 자신감도 붙었고, 현대를 비롯한 건설업체도 연전연승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건설업체는 반한감정이 심한 중국에서도 대량의 일을 수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갑자기 백화점이 무너지기도 하고, 느닷없이 지하철이 무너지기도 하는 등 시공 기술 수준이 문제가 됐는데, 지금은 그 부분이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세계 시장에서 일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질이 필요한지 의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약점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디자인에서도 약한 편이었는데, 그 부분도 빠르게 학습해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흡수력, 학습력과 더불어 밖으로 진출하려는 의욕, 서로 도우려는 의식도 강합니다.


한국은 일본 기업에 진정한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특히 그들의 세계화 DNA가 경제 위기를 넘긴 뒤에 자신감을 얻어 한번에 가속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 클라이언트의 자신감과 높은 뜻을 보고 있으면 ‘아아, 나는 일본이란 촌에 사는 놈이구나.’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드니까요.


일본에서는 스카이트리가 화제가 되어 시공 기술은 일본이 세계 최고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그것은 갈라파고스 섬 속에서 세계 최고일 뿐입니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세계 최고는 일종의 전통공예 같습니다. 일본만의 영역이라서 세계 최고의 시공 수준이 있어도 결국 중국에조차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시장을 일본 건설업체는 놓치고 있습니다.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눈을 돌려도 일본 건설업체는 크게 뒤처져서 한국과 비교가 안 됩니다.


21세기에는 일본만 홀로 남겨질 거라는 인상이 제 안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가부키극장을 향한 도전

옥신각신한 덕에

가부키극장을 콘크리트상자 하나로 하자는 외부 압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모든 방법을 검토했습니다. 건축가는 “상자에 넣는 게 좋지 않겠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아무리 자신의 미의식에 반(反)하더라도 열심히 해결책을 생각하고 마는 슬픈 습성을 지닌 인종입니다. 상자에 넣는다는 해결책은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일종의 신선한 놀라움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상자에 넣는 해결안의 모형도 열 개 정도 만들었습니다. 이를테면 하후지붕을 남기면서 유리 상자 안에 넣는 안이라든가, 지붕을 완전히 없애고 상자로 하는 안까지. 지붕의 방식에 대해서도 결코 한 가지가 아니라 지붕과 상자와의 절충안 같은 것도 모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팀 모두가 보면서 생각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도 팀도 확인한 게 ‘2층 지붕이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라는 진실이었습니다.


결국 후세를 의식하게 된 겁니다. 여기서 타협하면 후세에 ‘가부키극장을 콘크리트상자에 넣은 건축가’라는 칭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축물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이 하는 험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성됐을 때 극찬을 받는 건축물은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건물은 도시에서 이물질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건축의 창조 과정에 참가한 사람이 완성될 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예는 건축사를 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거의 대부분이 호되게 욕을 먹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건축이란 그런 것이고,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도시를 만드는 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긴 안목으로 물건을 보려 해도 결국은 자기가 살 수 있는 짧은 시간을 기준으로 좋은지 나쁜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숙명입니다.



20세기 건축

르 코르뷔지에와 콘크리트

건축이란 그 장소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는 “얼마나 건축과 그 장소를 분리할 것인가?”가 큰 테마가 된 세기였습니다.


상징적인 존재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빌라사보아는 파리 교외에 있는 아름다운 녹지에 놓인 단독주택입니다. 코르뷔지에는 거기에 ‘필로티(pilotis)’라는 가는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현대적인 주택을 만들었습니다. 빌라사보아는 대지의 습도가 높아서 고상식(高床式)으로 집을 위로 올리는 편이 좋았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지만 현지에 가면 거짓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빌라사보아는 예산 초고와 불편한 환경으로 나중에 여러 문제가 일어나, 시공주가 건축가를 고소했습니다. 재판에서 코르뷔지에는 친구였던 아인슈타인을 대동하고 나와 “그 대단한 아인슈타인도 칭찬했다.”라며 열심히 항변했는데,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화가 치밀었을 겁니다. 굳이 힘을 들여 집을 띄우기보다 주변의 푸른 녹음을 그대로 활용해 지면에 세우면 훨씬 집을 싸게 지을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요.


나중에 코르뷔지에는 이 필로티를 사용한 건축기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빌라사보아는 20세기 주택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졌습니다. 19세기까지 특권계급에만 허용된 건축에서 장식을 빼서 시민 개인에 가까운 장소로 건축을 가져온 것은 그야말로 코르뷔지에의 업적인데, 빌라사보아에 부여된 평가는 좀 더 다른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야말로 20세기라는 시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20세기란 장소와 건축을 분리한다는 주제가 건축계를 지배했던 시기였습니다.


왜 코르뷔지에가 빌라사보아에서 필로티 건축 이론을 내놓았을까요? 그 기법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됐기 때문입니다. 장소와 건축을 분리하면, 미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어떤 곳에서든 건축을 세울 수 있는 건축기법을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른 시기에 그는 예리하게 간파했던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통용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상품으로 수없이 팔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케팅의 천재이기도 합니다. 코르뷔지에는 건축에 ‘상품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20세기에 반기를 들다

졸부 스타일의 유행

20세기 모더니즘건축에서는 필로티라고 부르는, 가는 기둥으로 건물을 들어 올리는 방법이 유행했습니다. 그렇게 지형이라는 제약을 없앰으로써 자연과의 접점을 잃은 20세기 건축은 지루한 존재로 추락했습니다. 거꾸로 ‘지형’의 힘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게 기로잔전망대였습니다.


20세기 모더니즘건축은 재료에서도 ‘자연’을 무시했습니다. 콘크리트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붙이는 반드르르한 텍스처(재료)를 ‘소재’라고 바꿔 불렀던 것입니다. 이 방법을 컴퓨터그래픽에서는 텍스처매핑(texture mapping)이라 하는데, 돌이나 나무 같은 본래 생생한 모든 ‘소재’는 얇은 텍스처로 콘크리트 위에 붙여지는 게 됩니다. 이 방법으로 건축시공은 간소해지고 재료라는 날것에서 오는 제약이나 문제는 확실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환경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현장이란 환경(지형), 소재(물질), 예산(경제)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건축가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 세 가지와 싸우면서 현장에서 삽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게 하는 안이한 방식이 세상에 차례로 발명되면서 어느새 현장에서 멀어져 인간으로서의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재료의 진정한 재미에 눈을 뜬 것은 아까 말씀드린 돌미술관, 나카가와마치바토히로시게미술관과 그 뒤를 이은 나스역사탐방관까지 세 프로젝트를 체험하면서였습니다. 저는 그 세 프로젝트를 제 맘대로 ‘도치기 3부작’이라 부릅니다.


다시 한번 당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원래 ‘돌’이라는 건축재료에 대해 저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돌을 붙인 건축 자체가 너무 거짓말 같아서 싫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돌건축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돌덩어리를 쌓아올려 만드는 ‘조적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면 콘크리트로 우선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두께 2,3센티미터의 얇은 돌을 붙이는 텍스처매핑 방법이 보급돼 일일이 돌을 쌓아 건물을 만들자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화려하게 보이고 싶어서 얇은 돌로 화장을 하는 건데, 그 행위가 너무 약삭빠르고 졸부처럼 느껴졌습니다.


20세기 건축계를 지배한 모더니즘건축은 콘크리트와 철이라는 건축의 ‘본체’를 만들기 위한 공업재료에 대해서는 강한 관심을 보였지만 돌, 나무, 흙이라는 다른 소재에 대해서는 본체에 대한 일종의 메이크업으로, 없어도 되는 조연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콘크리트와 철을 테마로 건축 디자인을 전개하는 건축가는 많습니다만, 그 이외의 재료에 흥미를 드러내는 건축가는 괴짜 취급을 당하는 풍조가 20세기에 생겨났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 물들었던 게 아닐까요.


도쿄로 돌아와 일주일 동안, 매일 시라이 씨와 돌창고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장인과 넷이서 팀을 짜자’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도쿄 공사현장에서 돌을 사용할 때라고 해도 현장에서 실려 오는 것은 두께 2,3센티미터의 반드르르한 얇은 ‘돌’이라 장인과 접히는 게 우선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먼저, 진심으로 돌과 그 장인을 만나보자, 화장의 방법으로 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돌을 쌓거나 짜고 엮는, 문자 그대로의 ‘돌건축’에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솟았습니다.



재해와 건축

건축가의 임사체험

3·11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일 때문에 타이완에 있었습니다. 마침 도쿄 사무소의 스태프와 전화를 하던 때였습니다. 해외에 있었던 터라 무척 불안했는데, 그 뒤로 더는 일본과 전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뒤쯤부터 타이완 텔레비전에서도 지진 피해 뉴스가 속속 방영됐는데,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이시노마키는 주변의 지면 전체가 내려앉은 탓에 기타카미가와 강의 수위가 1미터나 올랐습니다. 저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렸습니다. 그만큼 세계가 끝난 것 같은 광경이라고 느꼈습니다. 기타카미가와운하교류관은 건물 바로 뒤까지 지진해일이 밀어닥쳐 대지 전체가 액체 상태가 됐고 주변 인도는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건물에는 기적적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아 큰 피해는 없었지만, 우연히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때는 2주 뒤에 현지를 돌아다녔는데 미디어에 보도된 사진이나 영상과 실제 상황에 그다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11대지진은 방문하는 장소에 따라 전경이나 피해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제 눈으로 보는 광경과 미디어를 통해 전해주는 것과의 격차가 매우 컸던 것입니다. 특히 지진해일이 일으킨 ‘면(面)’의 재해는 실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고지대에 있는 주택가에서 피해를 당한 시가지를 내려다봤을 때입니다. 고지대에서는 전형적인 20세기형 주택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늘어서 있었습니다. 도로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래를 보면 도시 그 자체가 적갈색 파편으로 철저하고 완전하게 분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두 경관 사이에 격렬한 격차가 있었고 모든 게 비연속적이었습니다.


보통 인간 생활의 장은 기본적으로 지저분해서 관념적이나 로맨틱한 것 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자신의 침상 주위를 생각해보면 그렇죠.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연하고 아름다운 거리란 환상이고 사람이 밀집한 시가지라면 생활이 쌓여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덕 위에서 거리를 두고 본 이시노마키 시가지의 와해는 전혀 더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용했을 뿐입니다.

정리된 것과 쓰레기, 선과 악, 또는 삶과 죽음을, 우리는 나눠서 생활해왔지만, 그곳에서 그것을 초월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인간 생활의 세부적인 모습이 사라졌을 때의 파편이 자연물로 보일 정도로 분쇄된 모습에 말을 잃은 저는 건축가로서 일종의 임사체험에 가까운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약한 건축

진지하게 즐거움을 즐기다

문화성이나 예술성 같은 유산도 있지만, 배우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어떻게 확립하고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저는 그 점에서 강하게 공감했습니다.


자기 브랜드를 확립하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보수하며 활동하려고 할 때 그 모범이 되는 하나가 가부키 배우의 생존방식이 아닐까요. 그들은 무대를 끝내고 완전히 녹초가 돼도 대기실을 찾은 손님이 있으면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세상을 떠난 나카무라 간자부로 씨와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새로운 가부키극장의 상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보고 들은 모습을 통해 ‘아아, 가부키 배우는 건축가와 똑같구나.’ 하고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건축이란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아도 부족한 일의 연속입니다. 아니, 자기 재산을 모두 내놓는 정도라면 아직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를테면 자기 설계로 어떤 사람에게 수백억 엔의 손실을 입히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 프로젝트를 되풀이하다보면 “제 표현은 이렇습니다.”라고 고집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대신 자신을 움직이는 엔진으로 ‘오랜 시간 견딜 수 있는 해결책을 발견한다’는 목적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 안에는 내 이름을 남기기보다도 후세에도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강합니다. 건축은 형태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건축가는 결과지상주의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세상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즐거움’이라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깨달았습니다.


물론 전문가로서 결과의 완성도에는 집착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그것은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큽니다. 그것과 완성도는 표리일체라서 과정이 즐거우면 결국 완성도도 높습니다. 즐거운 상태를 만들지 않으면 그다음의 완성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건축을 합니다. 동료와 함께 말이죠.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