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주얼리

Vintage Jewellery

   
캐롤라인 콕스(역자: 마은지)
ǻ
투플러스
   
28000
2012�� 04��



■ 책 소개
color=#ff0080>120년주얼리 디자인의 역사!

지난120년 간 세계를 매혹시킨 빈티지 주얼리, 각 시대를 대표하는 주얼리 스타일을 한 눈에 보여준다. 시대를 주름잡은 주얼리와 화려한 보석에매혹된 사람들, 역사에 길이 남은 디자인과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예술과 실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얼리 디자인은 역사적 사건과 예술의흐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대의 정서와 유행을 반영한다. 

이 책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주얼리 디자이너 및 각 시대별 주얼리의 핵심적인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재료와 연마 기법,빈티지 쇼핑 가이드 및 가짜 구별법, 주요 용어설명 등 유용한 도움말을 제공하여 주얼리 디자인과 역사에 대한 학술서로서도 매우 유용하다. 여기에소개하는 빈티지 주얼리는 시대를 상징하고 문화와 스타일을 대표하며 미래의 주얼리를 예견한 작품으로, 높은 수집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다. 영국왕실의 보석부터 희귀하고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주얼리에 대해 사진과 함께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 저자 캐롤라인 콕스(Caroline Cox)
런던대학교 패션학부의 객원교수인 캐롤라인 콕스는 선도적인 패션 전문가이며, 작품을 통해 패션, 미, 문화의 관계를탐구한다. 강연과 방송을 겸행하며, 사순의 문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콕스는 칼튼에서 펴낸 "빈티지 슈즈"를 비롯하여 총 8권의 패션역사서를 저술했다.

■ 역자마은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ISD)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했다.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문화재청, 포스코 경영연구원 등에서 번역 및 감수를 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번역지원사업 대상자로선정된 바 있다. 역서로는 『착한 그림, 선한 화가 박수근』이 있다.

■ 차례
머리말 
게르다 플뢰킹거, CVE 
책을 내며

데카당스의 멋(1890-1910) 
아름다운시대, 벨 에포크 | 예술로서의 주얼리 | 아르 누보 | 리버티 스타일 | 오스트리아의 아르누보: 빈 공방 | 1890-1910 주얼리의 주요특징 

에드워드 시대(1910년대)
카르티에 |파베르제 | 부슈롱 | 머리장식 | 전쟁 시기 | 1910년대 주얼리의 주요 특징 

간결미와 세련미(1920년대)
예술과 산업 | 원석의 대두 | 기계의 미학 | 이국적인 뱅글 | 패션과 주얼리의결합 | 1920년대 주얼리의 주요 특징 

화려한할리우드(1930년대) 
아르 데코, 미국으로 가다 | 양식 진주 | 오튀 할리우드 | 다이아몬드: 태그 라인의 탄생 | 1930년대주얼리의 주요 특징 

화려한 모조품(1940년대)
환상적인 플라스틱 | 칵테일 시간 | 미리암 하스켈 | 초현실주의의 기이한 영향 | 비트족의 보석 | 1940년대 주얼리의 주요 특징

세기 중반의 대성황(1950년대) 
프랑스의 조형주얼리 | 티파니의 장 슐룸 베르거 | 향수 어린 호화로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영향 | 세 줄 진주 목걸이 |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 주얼리에티켓 | 참 브레이슬렛 | 스칸디나비아의 모더니즘 | 1950년대 주얼리의 주요 특징 

코스튬과 크리스털 | ‘시스’ 졸토브스카 백작부인 |케네스 제이 레인 | 팝과 플라스틱 | 미래적인 충격 | 예술가와 디자이너 | 히피 시크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1960년대 주얼리의주요 특징 

대담하고 아름다운 신체(1970년대)
트렌드와 영향 | 바디 주얼리 | 주얼리의 탐구 | 캐나다의 브루탈리스트 | 펑크와 주얼리의 해체 | 앤드류 로건 | 1970년대주얼리의 주요 특징 

권력과 영광(1980년대)
모스키노와 포스트모더니즘 | 파워 주얼리 | 솔직한 모조품 | 버틀러 앤 윌슨 | 새로운 블랙 | 뉴 주얼리 운동 | 1980년대주얼리의 주요 특징 

미래의 수집품(1990-2010)
주제가 있는 주얼리 | 캣워크와 주얼리 | 프랭크 게리 | 가즈미 나가노 | 테오 페넬 | 솔란지 애즈거리-파트리지

부록 
쇼핑과 수집 
용어설명 
더읽을 책 
갤러리와 마켓 
Picture Credits 
색인





생활의 달인을 통해 대한민국 주부들

빈티지 주얼리


데카당스의 멋(1890-1910)

아르 누보

아르 누보의 채찍형 곡선과 정교한 아라베스크 무늬는 벨 에포크의 주얼리 디자인에 널리 사용되었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 누보는 잠자리, 공작, 해골박각시나방 등의 자연물 모티프를 반복한 이국적인 표현과 프랑스 상징주의의 환각적인 실험정신, 화가 오브리 비어즐리의 작품이 가진 자극적인 매력,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팜 파탈 등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 20세기 이후에 처음 나타난 국제적 디자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 누보는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 빈에서는 제체시온슈틸, 스페인에서는 아르테 호벤이라고 불렸으며, 미국에서는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의 작품과 관련지어 티파니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르 누보의 곡선미는 바르셀로나의 안토니 가우디, 브뤼셀의 빅토르 오르타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나 파리의 르네랄리크, 브뤼셀의 필리프 볼페르스의 정교한 주얼리 디자인 등에 널리 사용되었다.


아르 누보 주얼리가 두각을 드러낸 이유는 19세기의 복고주의 스타일과 소위 다이아몬드의 독재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찾기 시작했다. 또 19세기 중반, 일본 미술의 발견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비대칭의 미, 간략한 구성 및 선의 절제에 눈뜨게 되었고, 이것은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퇴폐적인 상징주의 신비와 결합하여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의 아르 누보 작품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포니슴 스타일의 유기적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현란한 한 개의 보석을 강조한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과 달리 작은 보석을 전체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다이아몬드의 광채와는 전혀 다른 바로크 진주나 담수 진주의 불규칙한 형태가 인기를 끌었고, 오팔의 은은한 우윳빛도 선호되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결합된 금속과 준보석은 밝은색과 파스텔톤의 음영을 나타낼 수 있는 에나멜과 함께 색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에나멜은 실리카 파우더, 산화칼슘, 금속산화물 착색제 등이 섞인 유리질의 물질로서 일본의 전통예술품인 인롱(印籠 : 옛날, 허리에 찼던 세 층 또는 다섯 층으로 된 작은 약상자. 본디는 도장·인주 등을 넣었다)이라는 소지품 통을 장식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에나멜의 발견 이후 아르 누보 디자이너들은 바스티유, 샹르베, 클루아조네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주얼리의 금속면에 에나멜을 입히기 시작했다.


아르 누보 스타일의 새로운 주얼리는 지극히 유기적인 생물형태를 보여주는 수련, 붓꽃, 아네모네 등을 주제로 채택하거나, 율동적인 힘이 넘쳐나고 굽이치는 덩굴손 등으로 묘사되었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고조된 감정과 복잡성을 극대화한 묘사를 통해 자연의 양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백조, 제비, 공작 등의 동물상은 평온한 삶을 상징한 반면, 독사, 박쥐, 불을 뿜는 전설의 용, 사악한 독수리나 말벌 등은 위험을 내포했다.



에드워드 시대(1910년대)

카르티에

1847년,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1819-1904)가 고급 주얼리와 호화품 판매를 위한 회사를 차리면서 카르티에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귀족들의 부유한 자손들이 카르티에의 고객이 되었으며, 그 중에는 찰스 프레데릭 워스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외제니 황후도 있었다. 수익이 늘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지자 카르티에는 1880년대 후반부터 모든 제품을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 카르티에가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에드워드 7세, 알바니아의 조그 왕 등 귀족들의 공식 주얼리 제공자가 된 덕이기도 했지만, 이 회사가 새로운 절단 및 세팅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르티에는 금이나 은보다 단단하고 가벼우며 밝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보석들의 멋진 속성을 더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백금의 사용을 개발했다. 강도 높은 백금을 사용하면 보석을 잡아주기 위해 필요한 금속의 양이 아주 적어져서 보다 섬세한 디자인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인비저블 세팅으로 인해 다이아몬드가 살갗 바로 위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갈란드 스타일의 꽃장식 목걸이 등이 디자인되었다. 카르티에의 선조세공은 에드워드 시대 패션의 순백 레이스에 가벼운 느낌을 더했다.


마르키즈 컷, 바게트 컷, 브리올레트 컷 등 새로운 연마 기법의 개발, 드 비어즈 광업 회사가 남아프리카에서 거대한 다이아몬드 매장 층을 발견한 사건, 그리고 국제적인 부자고객들 등 이 모두는 루이 오코크, 베르나르와 샤를 모레를 비롯한 여러 주얼리 디자이너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인기 있는 보석상은 카르티에였다. 외교관 등 외국에서 온 중요한 손님이 라 페 거리의 매장을 방문하여 쟁반에 받쳐 끊임없이 나오는 화려한 보석을 접할 때면 언어의 장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 시대의 화류계에서는 카르티에가 디자인한 멋진 주얼리를 착용하면 누구든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오그던 밀즈 부인과 도리스 듀크 부인은 사교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브로치, 티아라, 양 손가락에 낀 반지를 과시하며 서로를 이기려고 애썼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큰 128.54캐럿이나 되는 흠잡을 데 없는 티파니 옐로 다이아몬드를 남편에게 선물 받은 듀크 부인이 우위를 차지했다. 카르티에의 다이아몬드 주얼리는 1909년 맨해튼 5번가에 카르티에 부티크가 열린 후 인기가 더해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말굽 형상을 이루는 35개 박스가 다 차는 날이면 그것을 다이아몬드 말굽이라고 불렀다.


카르티에는 주얼리와 패션의 관계를 처음으로 이해한 주얼리 디자이너 중의 하나였다. 1899년 그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쿠튀리에인 찰스 프레데릭 워스와 같은 쇼핑 거리에 매장을 열었을 뿐 아니라, 부유층 여성들이 새 옷과 어울리는 보석을 함께 장만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알아차릴 만큼 센스가 있었다. 에드워드 시대 여인들의 위로 빗어 올린 머리와 낮은 목선은 화려한 목걸이를 필요로 했고, 따라서 카르티에는 도그칼라 초커, 소투아르와 새로운 형태인 장신구인 라발리에르를 제작했다. 라발리에르는 하나의 펜던트 아래로 또 하나의 펜던트가 매달려 있는 이중 펜던트로, 파리에서 처음으로 단발머리를 한 인기 여배우 이브 라발리에르의 이름에서 따온 장신구의 한 종류이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목을 드러내는 패션은 카르티에에서 제작한 초커로 더욱 강조되었고, 벨벳 또는 모아레 소재의 의상은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한 섬세한 투시세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또 긴팔 옷이 유행하면서 팔찌는 사라지고 대신 진주를 여러 줄로 길게 연결한 브로치 등 몸에 다는 주얼리가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할리우드(1930년대)

다이아몬드: 태그 라인의 탄생

1930년대 영화산업의 영향력이 엄청나서 영화가 보석 디자이너의 이름을 광고할 뿐 아니라 보석의 이미지 자체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미국의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은 다이아몬드 상인들 중 드 비어즈 컴퍼니는 항상 고가의 가보급 보석을 구입해오던 오랜 고객들마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았다. 다른 고객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갑부나 성공한 자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를 바꿔야 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는 다이아몬드 산업의 영향력 있는 주주 모임인 국제다이아몬드상인협회가 있었다. 이 협회는 코코 샤넬이 그동안 고수해오던 방침을 바꾸어, 작품에 나타난 재치보다 원석의 가치에 비중을 둔다면 호화로운 보석을 다시 유행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협회는 그녀에게 모조 보석 대신 진짜 원석을 사용하여 재주껏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하고,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를 재정립하기 위하여 그녀를 정식으로 고용했다. 샤넬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사교계 명사인 시빌 콜팩스 부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엘리스 드 울프와 함께 매혹적인 우주 테마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그 중에는 별모양의 귀걸이와 목 주위를 두르며 혜성이 지나간 자리를 표현한 빛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있었다. 시기가 힘든 만큼 여러 가지 용도를 겸할 수 있도록 제작된 작품도 여러 점 있었다. 귀걸이를 브로치로 사용하거나 에드워드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처럼 티아라를 분리해 팔찌나 펜던트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이 컬렉션에서 가장 눈부신 작품은 1932년에 제작된 혜성 목걸이이다. 목과 어깨에 흘러내리듯 걸쳐 목 앞에서 고정되는 혜성의 꼬리는 총 649개의 다이아몬드로 표현되었다. 이 컬렉션은 즉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으나, 갑부들조차 엄두를 낼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행성을 표현한 샤넬의 작품에 나타난 복고 바로크 스타일은 1940년대에 샤넬의 경쟁상대인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부셰의 작품, 줄리아나 주얼리 등에서 다시 나타났다.


한편 드 비어스 회사의 관계자들은 할리우드가 제안하는 스타일과 비교할 때 다이아몬드만으로는 대중의 상상을 부추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파리의 한 고급 작업장에서 제작된 작품보다는 화면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의 영향력이 훨씬 컸다. 따라서 드 비어스를 비롯한 보석회사들은 오트 쿠튀르의 세계에서 워너 브라더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다이아몬드를 새로 브랜딩하여 대중 시장을 사로잡을 방법이 여기에 분명히 있을 터였다.


또 미국의 광고 회사 N. W. 아이어를 통해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는 이유를 조사했다. 결과는 명백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원석은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 결과 고안해낸 마케팅 전략은 드 비어스라는 이름이 아닌 다이아몬드의 일반적인 상징을 사용하여 꿈을 창조하는 곳, 할리우드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영화 잡지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치장한 유명인사의 사진을 싣고, 시나리오 작가들을 설득해 로맨스의 상징으로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장면을 삽입하고, 구혼자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가 금전적인 투자가 될 뿐 아니라 그의 감정까지도 상징한다고 설득한다면 효과가 금세 확산되리라고 기대했다. 이 캠페인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고, 점점 더 많은 예비부부들이 드 비어스의 유명한 슬로건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문구에 넘어갔다. 1941년에는 다이아몬드 판매가 55퍼센트나 증가했고, 미국 약혼자들의 80퍼센트가 다이아몬드 반지로 특별한 날을 기념했다.


중서부의 가장 큰 보석상으로 알려진 헬츠버그는 이 유행을 자본화한 회사로 전쟁 후 미국의 도시 근교 시장을 개척했다. 최신 에어컨을 설치한 헬츠버그의 매장들은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했다.



세기 중반의 대성황(1950년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1955년 맨프레드 스와로브스키와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인기 있는 라인스톤의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무지갯빛의 오로라 보리얼리스 라인스톤이다. 이 새로운 보석은 표면에 다색의 금속을 입혀 광택을 높이고 석유를 물에 풀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한 변화무쌍한 시각적 효과를 냈다. 전쟁 기간 동안 고품질 크리스털을 보석상들에 공급하지 못한 이 회사에게 오로라 보리얼리스는 꼭 필요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크리스털 제조업체로 알려져 있는 스와로브스키는 19세기 초에 작은 가족 회사로 시작되었다. 유럽 유리산업의 중심지인 보헤미아에서 생산된 유리는 이탈리아의 무라노 유리와 비교할 때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은 더 저렴하여 높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창립자의 아들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타고난 혁신가였다. 모든 형태의 유리에 매료되어 있었던 그는 유리에 필수적인 광채를 내기 위해 여러 기술들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는데 이 기술들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1892년 기계로 유리 크리스털을 정확하게 절단하고 면을 다듬어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산란시켜 강렬한 광채를 내는 샤통을 제작한 것이 스와로브스키의 진정한 돌파구가 되었다. 스와로브스키는 기계 원형에 특허를 낸 후 자본가 프랑크 바이스와 아르만드 코즈만의 후원으로 1895년에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의 와텐스에 회사를 차렸다. 부지 선택이 중요했다. 새 유리 가공법은 엄청난 전력을 요구했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수력발전소 옆에 공장을 세웠다.


20세기 초에는 다니엘의 아들 알프레드와 프레드리히, 빌헬름의 유리 생산 공정을 간소화하여 1913년부터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에서 결점이란 찾아볼 수 없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20년대에는 쿠튀리에 코코 샤넬과 엘사 스키아파렐리 등이 스와로브스키의 유리 보석을 사용했다. 그러나 패션 요소로서 스와로브스키 보석의 진정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오로라 보리얼리스 라인스톤을 발명하여 홍보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였다. 스키아파렐리는 이 환상적인 보석과 사랑에 빠진 주얼리 디자이너 중 하나였다.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오로라 보리얼리스를 반복해 사용했다. 그녀는 추상적인 디자인과 꽃무늬 디자인에 모두 초록색과 가지색 또는 남색조와 짙은 루비색 등 인상적인 색의 조합으로 오로라 보리얼리스의 반짝이는 효과를 강조했다.


1970년대에는 스와로브스키의 쥐 모양 장식품이 등장했다. 인기 있는 크리스털 장식품 라인의 첫 작품인 이 쥐는 한 직원이 샹들리에에 사용되는 크리스털 부속을 갖고 장난하다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다이아몬드를 빼닮은 모조품인 큐빅 지르코니아를 만든 것도 1970년대의 일이었다. 큐빅 지르코니아는 오늘날 여전히 코스튬 주얼리 생산을 지배하고 있다. 스와로브스키는 또한 회사를 확장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을 위해 크리스털을 공급하는 대신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자체적으로 코스튬 주얼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후면을 깎은 알렉산드라이트 크리스털 보석 및 착용자가 움직일 때마다 다른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블루 파고다 등 황홀한 빛의 효과를 내는 유리 보석이 사용되었다.


 

팝, 미래로 가다(1960년대)

미래적인 충격

앙드레 쿠레주, 루디 건릭, 파코 라반, 엠마누엘 칸, 피에르 카르댕 등 1960년대 중반에 나타난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프랑스의 쿠튀르 문화에 필요한 활력소를 제공하고 패션의 중심지로서 파리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쿠튀르를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이 시기에 빠르게 나이 들어가는 기존 고객들을 위해 파리 의상조합이 완고하게 구성한 디자이너들 가운데는 1950년대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황이 악화되어 문을 닫아야 할 운명을 마주한 패션 회사들은 수입을 올리고 성공에 이르는 방법으로 가방, 향수, 주얼리 등 부수 제품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 층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큰 변화가 필요했다. 신선하고 미래적인 패션이 절실했다. 이러한 장벽을 처음으로 뛰어넘은 디자이너가 피에르 카르댕이다. 그는 1964년 <우주시대> 컬렉션을 통해 흰색 편물 캣 슈트와 튜브 형태의 시프트 드레스 등을 선보였다. 1965년에 엠마누엘 웅가로가 발표한 작품을 보고 은색 도락(a silber binge)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묘사했다. “은색 가발, 은색 밑창 부츠, 은색 단추, 은색 칼라, 은색 스타킹으로 치장하고 브래지어 겸용 알루미늄 목걸이를 하고 꽃무늬 아플리케로 장식한 비치는 바지를 함께 입었다.”


이러한 공상과학적인 경향은 주얼리에도 영향을 끼쳤다. 위베르 드 지방시와 함께 일했던 주얼리 디자이너 파코 라반을 선두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시즌마다 윤곽선을 변형시키는 전통적인 쿠튀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것만이 패션이 개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라반은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실험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가장 특이하면서도 영향력 있던 의복과 그에 걸맞은 주얼리를 창작했다.


1966년 라반은 플라스틱과 금속을 재료로 하고 바늘과 실 대신 펜치와 납땜으로 조립한 12점의 실험적인 드레스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그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을 작은 사슬로 엮어 제작한 주얼리에도 갑옷을 연상시키는 미학을 고수했다. 같은 해 라반은 자신이 매월 30,500미터에 이르는 로도이드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라반의 비범한 작품으로는 야광 플라스틱으로 만든 납작한 원형 판을 가는 철사 고리에 연결해 만든 비브 목걸이와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을 연상시키는 후프 귀걸이 세트 등이 있다. 플라스틱의 가능성을 고갈시켰다고 여길 만큼 충분히 실험한 후 라반은 삼각형으로 자른 알루미늄과 가죽을 철사를 구부려 만든 고리로 연결하거나, 크롬을 투명한 아크릴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체인메일을 만들었다. 라반은 이것을 반(反) 주얼리라고 부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여성의 성격의 한 면인 광기를 위한 주얼리를 만든다.” 패션가에서 우주시대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주얼리에 유성, 행성, 로켓선 등의 이미지가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커다란 원을 그리는 흰색 후프 귀걸이와 투명 아크릴로 만든 커다란 삼각형을 겹겹이 배치한 귀걸이 등이 유행했다.


권력과 영광(1980년대)

솔직한 모조품

1980년대에는 신용 카드가 보편화되면서 계급의 경계가 사라지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딩이 소비자들의 열망에 부응했다. 옛날처럼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프로그램, 특히 오랫동안 방영되었던 <달라스>나 <다이내스티>에서 영향 받은 거친 매력의 진취적인 스타일이 패션에 나타났다. 조앤 콜린스가 연기한 알렉시스 콜비는 과장되고 풍자적인 성격의 지배적인 여성으로, 성별 전쟁에서 얕잡아 볼 수 없는 화려한 복장을 무기로 활용했다. 그녀의 손 안에서 여성의 매력은 평범한 현실을 매혹적인 환상으로 끌어올리는 본질적인 위력을 찾았다. 콜비의 스타일은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파워 슈트, 커다란 보석을 잘 조합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비춰지는 팜 파탈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주얼리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힘을 드러내는 데 필수적이었고, 모조 보석이나 과장된 요소가 많이 들어갈수록 좋았다. 프랑스의 의류 회사들은 화장품, 가방, 주얼리 등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부수 상품에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더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도시 여성 중에 샤넬 정장을 살 여유는 없어도 짧게 자른 머리 밑으로 로고가 새겨진 귀걸이를 하거나 더블 C 로고가 달린 두꺼운 체인벨트를 차는 것은 가능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은 더 이상 남자가 보석을 사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물건을 구입했다. 직장 생활에 부적절한 펜던트의 유행은 지나가고 목에 착 달라붙는 목걸이가 선호되었다. 또 짧은 세 줄짜리 목걸이가 돌아와 인기를 끌었으며, 새알만큼 큰 진주 등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가짜 보석이 흥행했다.


이브 생 로랑은 보석처럼 세공한 큼지막한 유리 코스튬 주얼리를 모든 컬렉션에 선보였다. 모델들이 양쪽 팔목에 차고 나온 커프 팔찌 중 그가 즐겨 사용하는 빨강, 초록, 진분홍, 다홍색의 조합으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손으로 세팅한 아름다운 팔찌는 특히 유명하다. 고급 주얼리 디자이너들 또한 특이한 색상 조합의 유행을 따랐다. 에메랄드를 밝은 주황색 석류석과 병치하는가 하면 검붉은 루비가 자수정의 짙은 보라색과 충돌했다. 1979년에는 호주 서부에 있는 매장층의 발견으로 구입이 가능해진 핑크 다이아몬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다. 1983년에 샤넬의 디자인 총책임자로 취임한 칼라거펠트는 샤넬 로고를 캣워크 디자인에 눈에 띄는 중심 요소로 사용함으로써 이 시대의 새로운 미학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샤넬의 주얼리는 언제나 크고 화려했다. 금색의 더블 C 로고는 클립 귀걸이, 참 브레이슬렛, 체인 목걸이, 진주 목걸이 등에 나타났고, 금도금한 커다란 몰타 십자가와 술 달린 목걸이에 그리푸아의 빨간색, 파란색 유리가 세팅되었다. 지방시를 비롯한 프랑스의 큰 주얼리 회사들도 뒤따라 장식이 많이 달린 참 브레이슬렛, 모조 진주를 박은 로고 귀걸이, 두꺼운 힙합 체인 등을 제작했으며, 1980년부터 팔로마 피사코는 티파니를 위해 그라피티에서 영감 받은 밝은 색조의 매력적인 주얼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밝은 녹색이나 노란색 파워 슈트에 하이힐을 신고 잔뜩 부풀린 부팡 헤어스타일에 전함을 가라앉힐 만큼 많은 주얼리를 하고 거리를 활보했다.



미래의 수집품(1990-2010)

주제가 있는 주얼리

고급 주얼리는 여전히 고가에 판매되었지만 점점 과도한 장식을 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체인은 더 가늘어졌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석이 사용되었으며, 장식적인 모티프는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나비, 잠자리, 해양 생물 등의 주제가 흔히 사용되었다. 1991년에 불가리는 식물과 동물에서 비롯된 모티프와 진주 등의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한 <내추럴리아> 뉴에이지 컬렉션을 발표하는 동시에 세계야생생물기금의 생물학적 다양성 캠페인을 지원했다. 이 컬렉션에는 루비 눈을 가진 물고기가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의 양식화된 금반지와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은 쉐브론 모티프, 붉은 산호와 옥수, 자수정, 황수정, 분홍색과 녹색 전기석을 18K 금에 박아 만든 여덟 개의 물고기 형상으로 이루어진 뱅글 등이 포함되었다. 기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디자이너 가오루 케이 아키하라는 금방이라도 파괴될 듯한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핑크 다이아몬드와 녹색 석류석을 촘촘히 박아 만든 연꽃모양의 반지 속에는 착용자만이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사파이어 달팽이가 숨어 있었다. 기멜처럼 색색의 작은 보석을 빽빽이 박아 회화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은 2000년대 고급 주얼리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이 기법은 잘 사용하면 부드럽게 퍼지는 듯한 색의 변화로 섬세한 색의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대에는 또한 서양 밖 문화의 민예적인 모티프와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점점 뚜렷이 나타났다. 상아를 흉내 낸 모조품의 인기가 아주 좋았으며, 터키석이 박힌 기도 상자 펜던트 등 티베트의 큼직한 수공예 주얼리가 런던 리버티, 뉴욕의 블루밍데일즈 등의 백화점에서 판매되었고, 현대 디자이너들은 이국적인 주얼리를 흉내 낸 작품을 캣워크에서 선보였다. 노팅힐 또는 그리니치빌리지에 거주하는 높은 안목의 상류 히피, 영성을 추구하는 예술적인 여성들을 위한 주얼리였다. 1970년대 초에 그랬듯이 값비싼 에스닉 주얼리는 윤리적이고 부유한 자들의 일상적인 의상이 되었다.


진짜 주얼리는 전문적인 품평가가 아니면 부를 과시하려는 자들과 연관된 진부한 물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에는 다이아몬드에만 사용되었던 각진 눈물 방울 모양의 브리올렛 컷을 디자이너 마리엘렌 드 타이약이 다양한 원석에 사용하는 등 진짜 보석을 현대적으로 사용하면서 주얼리의 혁명에 불이 붙었다. 한편 파베 세팅은 현존하는 보석세공사 중 가장 명망 높은 조엘 아서 로젠탈(일명 JAR)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장인 정신으로 작업하는 로젠탈은 일 년에 딱 70점만 제작한다. 젬스 드 지방시, 나이절 밀네, 캐서린 프레보스트, 닐 레인 등은 현대적으로 연마 가공한 고가의 보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