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과학을 탐하다

   
박우찬
ǻ
소울
   
14000
2011�� 07��



■ 책 소개
미술과 과학의 연관성을청소년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서술한 책으로,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늘 새로운 시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과학적 사고와 장치를필요로 했던 미술 작품을 통해 그 바탕이 됐던 수학, 해부학,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 광학, 상대성이론, 정신분석 등의 개념에 대해 알아본다.

미술은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만들어낸시대적 산물이며, 과학적 원리를 통한 미술 읽기는 미술 읽기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이다. 과학적 원리를 통한 미술 읽기 방법과 다양한 미술 읽기를위해 쉬어가는 페이지를 각 장마다 넣어 미술과 종교, 경제, 사회, 커뮤니케이션 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이 책을 통해 미술작품 속에 보여지는 과학의 원리를 읽어내는 것은 창의성과 감성을 끌어올림으로써 미래 교육에서 중시하는 창의적 서술ㆍ논술형 교육을 대비하는 데에도도움이 될 것이다. 

■ 저자 박우찬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문화정책을 전공했다.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대구시립미술관건립전담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학예연구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로재직 중이며,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이다. 

주요 기획전시로 <예술의전당 미술관 개관기념전&& <열정의 화가 김흥수전&&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교과서미술전&& <밤의 풍경전&& <마이크로 월드, 헤르만 헤세전&& <거장의 숨결전&& 등이있다.

주요 저서로는『반 고흐, 밤을 탐하다』『사과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겠다』『미술시간에 영어 공부하기』『서양미술사 속에는 서양미술이 있다』『전시 이렇게 만든다』『머리로 보는 그림 가슴으로느끼는 그림』『한국미술사 속에는 한국미술이 있다』『전시연출 이렇게 한다』『미술은 이렇게 세상을 본다』『한 권으로 읽는 청소년서양미술사』『재미있게 읽는 어린이 서양미술사』『달리와 이상한 미술』『피카소의 세계로』『서양미술의 장르』『화가의 눈을 알면 그림이 보인다』 등이있다.

■ 차례
서문

1. 미술, 과학을 원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 
마술이 필요해 

2. 미술, 과학을 만나다 
삼차원으로 변환하라 
원근법이 필요해
현실을 극적으로 재현하라 
왜 지평선의 한 점으로 물체가 수렴되지 않지? 
생명을 불어넣어라 
과학이 필요해 
숨쉴 공기가 필요해 
현실을 이상화하라 
미의 비밀을 풀어라 
쉬어가는 페이지 Ⅰ 미술과 종교ㆍ정치 
3. 미술, 과학을 꿈꾸다 
현실을 만지듯이재현하라 
타는 냄새와 쨍하는 소리가 들리게 하라 
과학적 빛의 탐구가 필요해 
운동을 재현하라 
운동잔상 
카메라옵스큐라 
현실을 사진같이 리얼하게 재현하라 
순간을 리얼하게 재현하라 
광학(光學)이 필요해 
쉬어가는 페이지 Ⅱ 미술과시장 

4. 미술, 과학을 탐하다
미술을 과학화하라 
빛을 분석하라 
스펙트럼과 보색대비 
형태를 환원하라 
형태를 분석하라
추상과 컴포지션 
속도를 분석하라 
시간을 분석하라 
동시성과 사차원 
무의식을 분석하라 
그로테스크
데페이즈망과 데포르마숑 
쉬어가는 페이지 Ⅲ 미술과 커뮤니케이션 

5. 과학, 미술을 결정하다 
미디어가 예술이다 
사진, 예술이 되다
오브제, 예술이 되다 
사이언스, 아트가 되다 
컴퓨터, 아트가 되다 
새로운 기술과 비전이 미래의 미술을 결정한다
쉬어가는 페이지 Ⅳ 미술과 개성 

후기




미술, 과학을 탐하다


서문

기원전 2만 년경,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미술이 탄생한 이후 미술은 간절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박진감 넘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림이나 조각으로 재현하는 일이었다. 미술가들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꿈을 실현하려 노력했지만, 꿈을 이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술의 꿈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랬던가!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젊은 미술가들이 원근법과 해부학이라는 과학을 통해 미술의 꿈을 실현하였다.


미술의 꿈은 박진감 넘치는 현실의 재현이라는 한 가지로만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시대마다 미술은 늘 새로운 꿈을 꾸었고, 미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시대마다 새로운 과학적 사고와 장치가 필요했다. 15∼16세기에는 수학과 해부학을 바탕으로 삼차원의 공간과 물체를, 17∼18세기에는 카메라 옵스큐라와 동역학(動力學)을 이용하여 빛과 운동을, 그리고 19세기 중반에는 사진과 광학의 도움을 받아 빛과 순간을,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는 분석과 상대성이론, 정신분석 등을 통해 형태의 구조와 속도, 사차원, 무의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표현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왜 서양미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었던 것일까? 새로운 사회는 항상 새로운 진실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늘 새로운 미술이 등장했던 것이다. 사회적 변화가 거의 없었던 농업국가인 동양에서는 서양과 같은 새로운 현실이 없었기 때문에 리얼리즘, 인상주의, 입체파, 미래주의, 추상미술 같은 다양한 미술이 등장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미술, 과학을 탐하다』에서 말하려는 미술의 꿈과 과학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시대마다 늘 새로운 꿈을 꾸는 미술이, 과학과의 관계를 통해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해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은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이며, 과학적 원리를 통한 미술 읽기는 미술 읽기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이다.



미술, 과학을 만나다

왜 지평선의 한 점으로 물체가 수렴되지 않지?

중세 말기, 플랑드르에서 활동하던 전설적인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의 <베리공의 참으로 호사스런 기도서>이다. 이 그림은 일 년의 12개월을 그린 연작 중 2월에 해당되는 그림이다. 북유럽의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여자들은 집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고 남자들은 숲에서 땔감을 하고 있다. 과거 북유럽에서는 날씨가 추운 2월은 지난 가을 추수한 곡식을 먹으며 따듯한 난롯가에서 불을 쬐는 계절이었다. 날씨가 어지간히 추운 모양이다. 오른편 외출했던 여자가 마치 얼어 죽을 듯한 모습으로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다. 동작이 멈춘 듯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추위에 떤 그녀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랭부르 형제의 이 그림은 15세기 초 북유럽의 생활상이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듯 너무나 생생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삼차원의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똑같이 옮기질 못했다. 박진감 넘치는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기 위해서는 투시 원근법이 필요했다. 주지하다시피 원근법이란 그림 안의 모든 것이 거리에 따라 일정하게 크기가 작아지다가 지평선의 한 점으로 수렴되는 측량법이다. 랭부르 형제의 이 그림에도 원근법이 적용되었지만, 수학적 투시 원근법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터득한 원근법이었다. <베리공의 참으로 호사스런 기도서>는 지평선의 한 점으로 모든 것이 수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부르 형제의 그림은 정말 사실적이다. 단, 과학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유럽에도 과학적인 투시 원근법이 전해졌고, 북유럽의 미술도 생생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표현할 수가 있었다. 16세기 북유럽의 대표작가 브뤼헐(Brueghel, Pieter/1525∼1569)의 <눈 속의 사냥꾼(The Hunters in the Snow-Winter)>이다. 이 그림은 어느 수집가의 주문으로 제작된 달력 연작 중 겨울(1월)로 해질녘 사냥에 나섰던 사냥꾼들이 허기진 개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축 처진 모습으로 보아 생각보다 사냥에 큰 성과가 없었나 보다. 멀리 지평선 위로 보이는 얼음 덮인 산은 을씨년스런 겨울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현실을 이상화하라

르네상스 최고의 천재 다 빈치에게 그림은 최고의 과학이었다. 그는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걸작을 그려냈고 미술의 과학화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는 다 빈치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였다. 그의 대표작 <초원의 성모자(Madonna in the meadow)>이다.



성모 왼편은 어린 시절의 세례자 성 요한이고, 오른편은 어린 그리스도이다. 라파엘로의 성모는 너무나 청순하고 아름답다. 여기서 15∼16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비밀 하나를 고백하겠다. 사실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아니었다. 물론 라파엘로는 현실의 모델을 참고로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모델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모델을 아름답게 이상화하여 그렸다. 성모만이 아니다. 성 처녀와 아이들 뒤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보라.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풍경이다. 라파엘로는 인물만이 아니라 돌, 꽃, 성까지도 이상화시켜 그린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리고자 한 사실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조화로운,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냥 조화가 아니라 완전한 조화, 완전한 이상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완전한, 이상적인 조화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처음부터 이상화된 사실을 추구하였던 것은 아니다. 초기 르네상스 미술은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미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로마를 고전시기의 아테네로 만들기를 원했던 로마 교황청이 위엄 있는 미술을 추구하기 시작하자 미술은 장엄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변해 갔다.


이미 2천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미술은 라파엘로 같은 이상화된 예술세계를 추구하였다. 그리스인들은 황금분할(golden section)이라고 하는 비례법을 이용하여 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팔등신 미인, 미남들을 만들어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사실적인 미술을 르네상스라고 부르는데, 르네상스란 재생, 부활이란 의미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이 부활시키고자 한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상적인 사실주의였다. 그래서 르네상스 미술은 그리스 미술과 아주 유사하다.


현실을 이상화하려는 경향은 18세기 프랑스에서도 계속되었다. 신고전주의(Neo Classicism)였다. 신고전주의란 새로운 고전주의로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대상을 새롭게 형상화한 미술이었다. 신고전주의는 그리스·로마의 조각을 연구하며 고상하고 아름답고 실감나게 묘사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미술, 과학을 꿈꾸다

과학적 빛의 탐구가 필요해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대가 베르메르(Vermeer, Jan/1632∼1675)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이다. 이 그림은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베르메르의 대표작으로 입을 살짝 벌린 소녀는 마치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려는 듯하다. 눈물 고인 그녀의 영롱하고 촉촉한 눈은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보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놀라운 이 그림의 비밀은 카라바조가 발명한 카이로스큐로(Chiroscuro)라는 명암법에 있었다. 카이로스큐로는 그림에서 물체의 입체감을 강조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17∼18세기의 서양의 박진감 넘치는 사실적인 미술은 전적으로 카라바조가 발명한 카이로스큐로라 불리는 과학적인 명암법 덕분이다.



17세기 카이로스큐로는 인위적으로 강한 랜턴을 비춰 만들어진 빛과 그림자의 과학이었다. 정면에서 빛을 비추면 물체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비스듬한 각도로 강렬하게 빛을 비추어야만 물체 고유의 선명한 결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질감이다. 이 결이 대조가 심할수록 질감의 효과는 커진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이 극단적인 촉감을 강조한 것은 그들에게 그림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림은 사물 그 자체였다. 당시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은 실제 자연 속의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소유의 땅, 집, 가족, 심지어 애인까지도 그림에 담아 소유하고자 했다. 그림이 진짜 사물이 되려면 살아있는 사물과 똑같이 만들어져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17세기 바로크 미술은 극단적인 질감과 촉감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카이로스큐로라는 빛의 과학적인 연구가 있었다.


광학(光學)이 필요해

마네의 새로운 사실주의, 즉 순간적으로 현실을 포착하여 그리는 미술은 모네, 피사로, 드가 등 당시 파리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네는 순간을 그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순간을 그릴 수가 없었다. 순간을 포착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보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실 마네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인간의 눈으로는 ‘순간‘을 관찰하지 못한다. 인간은 순간을 나누어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순간을 그릴 수가 있는가? 그것은 순간의 ‘인상(impression)‘, 즉 순간을 나누어 기억했다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기가 순간을 감광지(減光紙)에 고정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네는 "순간을 재현하겠다!"라고는 했지만 순간을 그리지는 못했다. 보는 대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연속적으로 사물을 본다. 그래서 인간의 눈에는 순간이 보이질 않는다. 진짜 순간을 그린 화가는 인상파의 대가 모네(Monet, Claude/1840∼1926)였다. 모네는 생각했다. 순간을 보려면 물체를 봐서는 안 되고 물체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을 봐야 한다고. 카메라와 같이 빛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모네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발달한 광학(optics) 덕분이었다. 광학은 빛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날, 모네의 모델 수잔 에쉐데가 야외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여인이 든 우산과 흰옷을 비춘다. 너무나 강렬한 햇빛 때문에 우리는 단지 우산과 얼굴, 그리고 옷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눈을 찡그리고 한동안 그녀를 노려본다면 얼굴이 보이겠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순간적으로 그녀를 보면 모네의 그림 같이 보인다. 그날 들판에서 모네가 본 것은 빛이었다. 모네는 순간적인 빛의 상태를 포착하여 표현했다. 이런 그림을 외광파(外光派) 또는 인상파라고 한다. 외광파는 야외의 태양빛 아래서 그림을 그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인상파(印象派)는 빛의 순간적인 상태의 인상을 그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튜브물감의 발명도 인상파의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 휴대가 가능한 튜브물감 덕분에 화가들은 햇빛이 내리쬐는 야외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전에는 스튜디오에서 물감을 직접 만들어서 써야 했기 때문에 화가들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휴대용 튜브물감이 없었다면 야외에서 빛나는 빛을 그릴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인상파도 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술의 발전은 미술 혼자서의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사회 여러 분야와의 발전과 보조를 같이 하며 발전하는 분야이다.



미술, 과학을 탐하다

미술을 과학화하라

19세기 중반, 미술은 사진을 바탕으로 완벽한 현실의 재연에 성공한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Burial at Ornans)>이다. 정말로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고 말겠다는 미술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지 않은가? 혹시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예"라고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젠 지금까지 꿈꾸어온 생동감 넘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미술의 꿈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인가?



사실은 이때부터 미술 앞에 새로운 문제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미술의 꿈이란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생동감 넘치게 재현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철저한 현실의 관찰을 통해 성취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미술이 꿈꾸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가 않는 그런 것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미술의 새로운 꿈은 형태의 구조, 빛의 분광, 속도, 사차원, 무의식 같은 것들이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은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눈을 부릅뜨고 신경을 곤두세워 물체를 뚫어져라 관찰하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미술의 꿈은 관찰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들을 파악하려면 분석(analysis)이라는 과학적 도구가 필요했다.


19세기 후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기쁨도 잠시였고, 새로운 꿈에 도전했던 미술은 과학의 도움 없이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시대적인 이유도 있었다.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 19세기 중후반, 과학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미술은 미술의 과학화를 시도했다. 과학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화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저급한 지식 정도의 취급을 받았으니까. 19세기 과학에의 동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였다.


15세기 르네상스인들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후 주변의 모든 것은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재해석되었다. 원근법이란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해석하는 방법이었다. 내 눈과의 거리에 따라, 크기의 대소에 따라 사물의 중요성이 결정되는 것이 원근법의 핵심이다. 이제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인간이 되었다. 이 인간 중심의 사고는 데카르트에 의해 더욱 심화가 되었다. 근대사회를 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René/1596∼1650)였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요소환원주의(reductionism)였는데, 요소환원주의란 내가 알고자 하는 대상이 있으면 가장 작은 요소들(elements)로서 쪼개고 난 후 그것들을 다시 재조합하는 방법이다. 근대의 모든 학문은 데카르트의 철학에 기초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보면 알 수 있다"라는 사고의 배경에는 기계론적인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잘 짜인 기계이고, 그 기계의 구조를 알면 인간이나 자연, 심지어는 정신까지도 모두 해명할 수 있다는 것이 서양 근대과학의 믿음이었다. 서양의 근대과학은 모두 심지어는 예술까지도 데카르트의 요소환원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동시성과 사차원

삼차원은 길이, 폭, 깊이의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 세계이다. 사차원은 여기에 시간(time)을 더한 것이다. 사차원은 시간과 공간의 복합체로써 사차원의 특징은 동시성에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차원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동시성을 표현하는 일에 제일 먼저 도전한 화가는 피카소였다. 피카소가 동시성의 문제에 도전하였던 이유는 완전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에서였다. 피카소가 생각하는 완전한 그림이란 입체의 여섯 면을 한번에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우리는 잘해야 입체의 세 면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도저히 동시에 여섯 면을 볼 수가 없다. 시간의 제약 때문이다. 그러나 피카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앞, 뒤, 왼쪽, 오른쪽, 위, 아래가 한번에 보이는 물체를 그려내기를 원했다. 그것이 피카소가 생각한 완전한 그림이었고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다면 동시성, 사차원의 표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피카소가 창시한 유파를 큐비즘(Cubism)이라고 부른다. 큐비즘의 ‘cub‘는 작은 방(small room)을 의미한다. 큐브(cube)는 육면으로 이루어진 입방체로써 피카소에게 자연의 모든 형태란 육면으로 이루어진 입방체였다.


한번에 육면을 다 보려면 시간을 확장시키든, 공간을 수축시켜야 한다. 시간의 확장과 공간의 수축은 같은 말이다. 시간이 확장되면 공간은 수축된다. 삼차원의 시공간에 제약된 피카소는 큐브를 해체하여 나열하였다. 큐브를 해체하여 펼치자 육면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피카소의 업적이었다. 그의 작품을 봐라. 육면을 한번에 모두 볼 수 있는 그림이 탄생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사차원, 동시성이 표현된 것이다.


입체파가 시점을 이동하며 사물을 분석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원근법의 파괴를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원근법이란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입체파는 시점을 고정시키지 않고 관찰자가 위치를 옮겨다니면서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원근법이 깨져버렸다. 르네상스 미술의 최고 업적이며, 이후 수백 년간을 지켜져 왔던 원근법의 공간은 입체파에 의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다. 원근법의 파괴는 르네상스 이후 계속된 근대사실주의 예술의 종말을 의미한다.



과학, 미술을 결정하다

오브제, 예술이 되다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복제(reproduction)이다. 발명 초기 과도한 노출시간과 불완전한 재현으로 고전을 했지만, 이내 사진은 미술가들보다도 훨씬 많은 이미지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1860년 파리에서 제작된 사진은 1백만 장을 넘어섰고, 미국에서도 수백만 장이 생산되었다. 20세기 초, 하루에도 수십만, 수백만 장씩 쏟아져 나오는 사진과 영상, 기계제품들은 인간을 둘러싼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접하는 것보다 기계로 재생산된 복제물을 접하는 것에 더 익숙해질 정도였다. 복제는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20세기의 복제환경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었다. 시간이 지나자 인간의 주변은 점점 복제물들로 채워졌다. 기계가 만들어낸 생산물은 단순한 기계의 복제품이 아니라 물체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구성하는 현실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인간은 가까이서 만져보기 전까지는 실물과 복제품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20세기 현대미술은 더 이상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다. 대신 기계가 만들어낸 복제물을 그대로 작품에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을 오브제(Object)라 한다. 오브제는 물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브제의 등장은 20세기의 급속히 변화한 기계문명에 기인한다. 기계는 하루에도 수백만 개의 사진이나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20세기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실제 자연을 접하는 것보다 사진이나 기계생산품을 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이제 인간은 복제물들을 보고 생각하고, 기억을 되살리고, 커뮤니케이션하기에 이른다. 이런 환경에서 기계의 생산물이 예술에 스며들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오브제(Object)를 이용한 대표적인 미술기법에는 콜라주(collage), 몽타주(montage)가 있다. 20세기 초, 미술은 주변에 뒹굴어 다니는 신문지, 포장지, 상표, 벽지 조각, 로프 등을 모아 작품에 붙였다. 이런 그림을 콜라주라고 부른다. 당시 그것을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라 불렀는데, 영어로 하자면 paper collected, 즉 ‘종이 모아 붙이기‘였다. 몽타주는 영화에서 주로 쓰는 편집기법으로 보통 합성사진(synthetic image)이라고 부른다. 포토몽타주(photomontage)는 ‘photo(graph) + montage‘로 사진을 몽타주하는 기법이다. 포토몽타주는 사진을 조각조각 붙여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작업으로 요즘은 포토샵을 사용하여 손쉽게 합성할 수 있으나 20세기 초의 화가들은 풀과 칼로 어렵게 포토몽타주를 만들었다.


처음 상표나 벽지, 천조각, 사진 등 주변의 간단한 오브제를 붙이던 콜라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재료와 범위를 더욱 넓혀나갔다. 급기야 박제된 짐승이나 나무조각, 폐타이어까지도 그림에 붙여버렸다. 말이 그림이지 그림의 차원을 벗어나 조각이나 입체가 되었다. 이런 양식을 바탕으로 컴바인아트(Combine Art), 아상블라주(Assemblage), 정크아트(Junk Art) 등이 만들어졌다. 복제는 인간의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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