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박정진
ǻ
한국학술정보
   
38000
2010�� 05��






& &>size=2>■ 책소개

color=#800080>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선정!

& &>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름에서도 그의 업적과역사성, 천재성 그리고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백남준에 대한 한국문화적, 한국미학적 해석과 읽기를 시도하며, 백남준 읽기를 통해 세계문화를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nbsp&
■ 저자 박정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 졸업,한양대학교 의예과를 수료하고 국문과로 옮겨 졸업한 뒤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양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경향신문사에 입사, 주로 문화부기자로 활동하다가 자리를 옮겨 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을 지내는 등 20여 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 &>
size=2>■차례
제1장 예술인류학적 지평으로 본 백남준 
제2장 백남준 예술을 읽기 위한 정보와 훈련 
제3장비디오아트(video art)와 플럭서스(fluxus) 
제4장 불교인류학과 백남준 
제5장 무교인류학과 백남준 
제6장마고이즘(Magoism)과 백남준 
제7장 백남준: 데콜라주 바다의 플럭서스 섬 
제8장 음(陰)의 철학으로서 음양론 
제9장칭기즈칸과 백남준의 노마드: 태양적 노마드와 태음적 노마드 
제10장 인간, 호모사피엔스란 무엇인가 
제11장 남성과 여성, 존재와생성 
제12장 서양의 페니스(penis)에 대한 동양의 버자이너(vagina)의 역공 
제13장 백남준 연보 
제14장Anthropology of Art for Nam-June Paik Cosmology 
백남준의 주요작품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예술인류학적 지평으로 본 백남준

백남준 예술을 바라보는 것은 모르긴 해도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는 갈릴 것이다. 서구 미술사나 예술사의 시각에 훈련된 사람들은 그를 동양에서 온 꽤나 천재적인 예술가, 서구 미술의 높은 장벽을 용케도 뚫고 나름대로 자기의 영역을 차지한 그런 인물 정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오리엔탈리즘, 예컨대 서구 미술사에 활력을 불어넣은 정도, 어디까지나 주류가 아닌 산소공급자 정도로 여기는 타성과 안이함을 넘어서려고 하면, 예컨대 동서양을 통틀어 인류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보라 치면 자못 심각해진다.


그의 행위미술(performance)이라는 것이 단지 서구 미술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유행한 오브제나 해프닝에 영향을 받은 어릿광대쯤으로 생각하면 이는 아직도 그러한 세계적 예술가를 낳고도 여전히 문화적 사대주의에 찌든, 배알 없는 족속들의 노예근성으로 비하해도 괜찮을 것이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을 차라리 우리의 굿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다. 말하자면 백남준에 의해서 그들의 퍼포먼스야말로 서양의 굿이 되었다. 백남준은 해프닝의 천재였으며 해프닝이야말로 우연(happen)과 만나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해프닝, 즉 우연은 순간의 절대성에 다가가는 도구였으며 그의 천재적 광기를 배출하는 구멍이었다.


퍼포먼스라고 할 때는 단지 미술의 한 장르나 형식에 불과하지만 굿이라고 할 때는 이미 장르 초월의 원시축제와 같은 종교적인 속성을 지닌다. 백남준의 굿에는 영혼의 속박에 저항하는 몸부림과 구원을 갈망하는 신앙의 눈빛이 있다. 굿은 처음부터 어떤 형식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인 칼(도구)과 하늘과 소통하는 소리(북과 방울)와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만다라)이 있다. 백남준의 예술은 처음부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정이었다. 그의 비디오아트에는 도구와 소리와 거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으로서 텔레비전 모니터가 있다. 그래서 그는 비디오아트에 매달렸다. 그는 서구 미술의 아류가 아니라 동아시아 샤머니즘의 전령으로서 독일에 당도했던 것이다.


미학적 평론에서 인류학적 평론으로

오늘날의 미학은 인류학적 지식을 인용하거나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학이 부분적으로 인류학적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거나 때로는 그것의 편린을 학문의 자료나 증거로 동원한다고 해서 인간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학과 인류학이 처음부터 결합한 어떤 제3의 미학인류학 혹은 인류학적 미학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예술인류학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인간의 일상을 가지고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술이란 시인이나 작가,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작품이라고 하여 발표하는 창작물을 예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술의 개념은 넓어져서 이제 인간의 일상생활도 예술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말하자면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경계의 파괴는 어떤 측면에서는 일상의 예술화와, 반대로 예술의 일상화의 길도 열어주는 셈이 된다.



백남준 예술을 읽기 위한 정보와 훈련

예술이란 무엇인가. 일상과 비교하여서 과연 예술이란 특별한 것인가. 여기서 황금률이라든가, 동서양의 미의식을 예로 드는 것은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그것은 이미 많이 주장되고 규명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정 미의식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이 없는 일상의 대중을 기준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상=예술은 전후 독일에서 일어난 플럭서스(Fluxus) 운동과 매우 상관적인 의미를 갖는다.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는 예술이 아니고 좋은 창조적인 개그에 불과하며 플럭서스 미술가들은 농담꾼들의 집합이었다."고 말했다.


일상과 예술은 원시·구석기 시대부터 서로 교통하고 교감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주로 일상이 예술을 모방한 게 전체적인 흐름이다. 지금에 와서 일상의 예술화와 예술의 일상화가 다시 거론되는 것은 종래의 것과는 다르다. 현대에 들어 그 논의의 한가운데에 오브제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반문화운동은 종래와 달리 전반적으로 예술이 일상을 모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상이 예술을 모방하면서 나름대로 심미적 카타르시스와 엑스타시, 만족과 성취를 느끼던 것과는 반대이다.


일상의 예술화와 예술의 일상화라고 해서 일상이 바로 예술이 되고 예술이 바로 일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일상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예술은 반대로 일상을 아름답게 한다. 일상의 예술화의 한 예로 일상의 오브제가 바로 장소와 시간을 바꾸어 놓으면 그 자체가 바로 새로운 미술이 된다는 것은 혁명적이다. 오브제가 그것의 시공간적 맥락(context)을 바꾸어 놓음에 따라 새로운 미술이 된다는 것은 종래의 일상의 예술화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오브제(objet), 퍼포먼스(performance), 콜라주(collage), 여기에 비디오아트(video-art)를 더하는 것은 반문화, 반미술의 금상첨화이다.


백남준은 처음엔 음악을 전공했다. 그래서 음악의 바탕과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그의 퍼포먼스는 바로 시, 음악, 무용과 같은 음악적 예술의 종합적 표현이다. 그의 첫 전시회의 이름이 <음악의 전시 전자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 Television)>이다. 그야말로 관음(觀音)이다. 여기에는 시간적인 것, 흘러가는 것을 공간에서 잡는 잠재력, 포텐셜(potential)이 있다.



비디오아트(video art)와 플럭서스(fluxus)

비디오아트(video art: 內有神靈)

비디오아트라는 것은 무엇인가. 비디오아트는 우선 텔레비전의 음극관에 의해서 시작된다. 음극관에 자석을 대면 영상에 변화가 생기고 영상이 흐려진다는 것을 처음 이용했다. 이것이 비디오아트의 시작이다. 그런데 영상이 흐려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텔레비전의 경우 영상을 더욱 확실하고 아름답게 보여 주는 것이 과제인데 반해 비디오아트는 그와는 반대의 영상을 흐리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창조적 형상작업에 속한다- 작업에서 시작된다. 영상을 흐리게 하는 작업은 실지로 아방가르드의 반미술 작업의 의미도 함께 가진다. 나중에 이미지 변주(變奏)·변형(變形)을 위한 여러 가지 기술적·프로그램적 장치를 개발한 뒤에 오늘날과 같이 화려하고 판타지한 영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만 원시적인 단계에서는 이미지 흐리기가 비디오아트의 전부였다.


백남준의 초기 해프닝은 일종의 아방가르드의 실험무대이면서 데뷔무대와 같은 것이었고 정작 그의 관심은 상당히 일찍부터 비디오아트에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 과격한 피아노 부수기와 넥타이 자르기, 샴푸로 머리감기와 같은 퍼포먼스는 일종의 시선 끌기 혹은 한국인 특유의 기(氣)싸움에 해당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과격한 행동으로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는 그래서 피아노도 몇 대씩 가지는 한편, 당대 유럽 최고의 기인이며 호랑이 꼬리만 보여 준다는 거물,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 교수, 갤러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시각예술가인 요셉 보이스와 친구 사이가 된다.


그가 한 해프닝 가운데 특히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은 가장 동양적인 제스처로 성공한 것이었다. 도대체 머리를 가지고 글씨를 쓰는 도구로 활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서양인들에게 기상천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선(Zen)은 머릿속으로 하는 것인데 먹물을 잔뜩 뒤집어쓴 머리로 글씨를 쓰면서 선을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역설 중에서도 역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머리카락이라는 오브제가 선과 자리바꿈하는 것이었다. 서예라는 것은 그들에게 생소한 것이었으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머리라는 신체를 이용해서 벌이는 해프닝은 서양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백남준은 물질=정신이라는 유물주의에 충실하였던 아방가르드였다.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면서도 가장 유럽에 충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남준의 등장은 음악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체에 기존의 영역과 개념과 질서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신천지를 전개했다. 이는 인류문명사적으로 보면 문자의 시대에 미술의 역할과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등장 이후 전개되는 이미지의 시대에 미술의 역할이라는 것이 오프라인과 온라인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플럭서스(外有氣化: fluxus)

백남준의 예술세계에서 플럭서스는 빼놓을 수 없다. 아니, 그보다는 플럭서스의 개념은 백남준 예술의 전편에 흐르는, 마치 무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플럭서스는 불협화음과 우연적·즉흥적·돌출적 해프닝으로 구성된다. 플럭서스에는 말하자면 플럭서스=멀티개념(multi-concept)+멀티장르(multi-genre)라는 개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플럭서스는 낯선 행동으로서의 시작법이고 이에 따라 장르의 융합·은유의 거리가 멀수록 아름답고 충격적이다. 플럭서스는 예술의 제 장르, 제 감각기관의 통합을 통해 미술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고 확충하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플럭서스 작가들은 문명의 불을 자연의 물 위에 놓고 본다. 그것은 때로는 햇빛이고 때로는 달빛이다. 불은 문명, 섹스는 달빛, 여인은 먹음직한 음식이다. 모든 예술의 명제는 매체를 통해서 매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것이 물질성을 통해 물질성을 극복하고 승화시키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는 백남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백남준에게 여체와 텔레비전 모니터는 같은 것이었다. 그는 섹스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한 섹스트로니크(1967년)에서 무의식의 리비도인 섹스를 극복하고 글로벌 그루브(1973년)를 통해서 텔레비전 모니터라는 문명의 이기를 극복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총체적 예술세계

백남준의 예술은, 정확하게 미술은 소리를 오브제로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의 음악가(작곡가 혹은 연주가)로서의 면모는 다소 있기는 하지만 그의 미술가에 비하면 클로즈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음악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못 볼 것도 없다. 그의 비디오아트를 보면 결국 음향통(소리통)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미술에는 소리가 없다. 그런데 그의 미술에는 항상 소리가 있다. 그리고 그의 이미지는 항상 동화상 위주이다. 다시 말하면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그의 비디오아트라는 것이다.


백남준 미술은 본래의 정(精) + 이미지(象)를 동(動) + 소리(音) + 이미지(象) + 행위(performance)로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종래의 미술적 전통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미술과 음악, 무용, 연극, 심지어 대본까지를 통합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장르파괴이면서 새로운 장르의 창조라는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통합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인류학과 백남준

백남준에게 불교는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일본에 체류할 때 불교에 심취한 것 같다. 이는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무당의 굿과 가까이 접한 것과 대조적이다. 백남준을 구성하는 데는 물론 가장 밑바탕에 무교가 있지만 그 바로 위에 불교가 있다. 1932년 일본 강점기에 한국의 재벌 가정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전쟁 직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다. 유년기에 일본 선불교의 본산이기도 한 불교성지 가마쿠라에서 살았던 경험은 그의 예술의 정신적인 기반으로 작용한다.


백남준이 플럭서스 집단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불교, 특히 선불교의 힘이 컸던 것 같다. 플럭서스 집단의 대부분 멤버들은 상식적으로 동양의 선(禪)에 대해 조예가 있었지만 그들이 선을 체질로 느끼기에는 서구 문화적 전통은 너무 달랐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멤버들이 나름대로 선을 이해하거나 혹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이미 훈련된 선사처럼 퍼포먼스를 해 댔다. 백남준은 일본에서 배운 선 사상을 그대로 예술작업에서 실천하면 되었다. 말하자면 백남준은 자신이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잘 놀면 되는 것이었다. 잘 놀기만 해도 플럭서스 집단에는 새로운 것이 되고 심지어 놀라운 것이 되었다.



무교인류학과 백남준

백남준 하면 선(禪)불교를 떠올리지만 실은 그의 무의식을 생각하면 무교에 비하여 표층구조에 불과한 것이다. 서구인들은 이미 일본에 의해 어느 정도 선(Zen)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특히 독일인들은 그랬다. 그러나 백남준의 무의식적 심층에 자리하고 있는 정수인 무교는 서구인들에게는 그저 미신으로 취급될 것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의 현대를 받치고 있는 자연과학주의와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로 인해 심한 회의와 공황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무교에 대해 덜 배타적이었다. 백남준을 무교적 관점에서 보면 저급한 무속이 아니라 이미 현대에 잘 적응된 세련된 무당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는 선불교적 영향이 깊게 보인다. 그러나 그 영향을 샤머니즘과 비교를 한다면 역시 샤머니즘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하여야 한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현대적 복합매체로 펼친 거대한 굿판이다. 다시 말하면 퍼포먼스 굿이고 비디오 굿이다. 그의 일련의 작품은 불교적 정(靜)과 질서(秩序)보다는 샤머니즘의 동(動)과 혼돈(混沌)에 가깝다. 불교에서 무교로 진행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고이즘(Magoism)과 백남준

백남준의 자서전(自敍傳)-태내기(胎內記)는 그의 마고이즘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다. 여성회귀, 자궁회귀 사상이 없었으면 결코 그러한 작품을 구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백남준 1961년)는 퍼포먼스의 수행문을 남겼다.


여자의 질이나 자궁은 인류의 영속을 보장하는 재생산의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미천한 것으로 매도되었다. 물론 가부장사회는 신불왕(神佛王)을 설정하여, 하늘과 지상의 여자(한 남자에게 소속되지 않는)를 맺는 방법으로 신화와 역사를 구성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들의 그것보다 상위에 두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결코 약화시킬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원시고대의 몸으로 아이 낳기와 개체발생=계통발생을 몸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아이를 직접 몸으로 낳는 존재인 어머니에게 자식의 출계가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생존경쟁이 권력경쟁으로 변질되는 인간사회에서 가부장사회는 불가피하게 전개된다.


한국문화를 한 마디로 말하면 여성성의 문화라고 압축·요약할 수 있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은 아직도 모계적, 모성적 심성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 같은 정황을 한국문화의 시니피앙은 단군이지만 시니피에는 마고할미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마고여신에 대한 신화는 한민족의 가장 오래된 신화인 『부도지(符都誌)』에 전해오고 있다. 태초의 여신인 마고는 마고성에 있었다. 마고의 시간과 공간은 개벽창세기이다. 마고는 시간과 공간의 어머니이다. 마고신화는 지구상의 여러 고등종교의 신화가 기초적인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부계-가부장제의 내용과 달리 모계-모성사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고는 신화시대를, 황궁은 인종이나 민족시대를, 환인은 선사시대를, 환웅은 역사시대를, 단군은 국가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몇몇 상징의 편린들을 갖고 태모신에 대한 시(詩)를 쓴 것이 『부도지』의 이야기이다.


한국의 산은 참으로 여체를 닮았다. 그 여체의 굴곡과 곡선은 참으로 평화스럽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한국인은 그대로 여성적 심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백남준과 같은 예술가가 태어난 것은 실로 우연이 아니다. 백남준 예술은 종합하면 결국 시대를 앞서 가는 마고(Mago=magi)의 예술이다. 마고(mago)의 예술이야말로 매직(magic)이다.


백남준은 1963년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에서 쇠머리를 걸어 놓았다. 관객들은 소머리를 통과하지 않고는 화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쇠머리는 가장 충격적인 오브제였던 셈이다. 그것에 비하면 텔레비전 작품은 덜 효과적이었다. 소는 희생(犧牲)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희생의 글자에도 소 우(牛) 자가 들어간다. 소는 또한 흔히 어머니로 묘사된다. 소는 또한 10달 동안 임신을 하는 가축으로 이는 여자가 10달 동안 임신하는 것에 비유된다.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몸을 다 내주고 돌아가는 어머니는 그야말로 실질적으로 하느님 어머니(the God Mother, Mago)가 아닌가.


마고사상과 불교, 자연은 차이가 조금 있긴 하지만 반복이었다. 마고이즘에서 보면 백남준 미술은 여성성의 재발견으로 귀결된다. 이는 다분히 여성의 미학이다. 텔레비전의 등장은 문자시대에서 이미지의 시대로 넘어가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성의 가치를 높였다. 비디오아트는 물론 원천적으로 사진을 토대로 한다. 사진은 여성, 아이, 동물들에 친화적이다. 이는 언어에 대해 몸의 우위를 선언하게 한다. 텔레비전 모니터 자체가 이미 어떤 빈 공간이면서 용기이다. 텔레비전 모니터는 여성의 자궁을 연상하게 한다. 비디오아트는 결국 사물을 재생산해낸다. 이는 여성의 재생산을 닮았다.



음(陰)의 철학으로서 음양론

서양철학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죄운동을 하는 것은 크게 영국적인 것이 있고, 프랑스적인 것이 있다. 영국적인 것은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에 의해 크게 집대성되었고, 프랑스적인 것은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들뢰즈의 철학은 리좀(Rhizome)에서 특성을 갖는다. 리좀이란, 즉 뿌리줄기를 말한다. 뿌리줄기는 땅 속에 있다. 그래서 바로 여성-땅과 연결된다. 여성-되기(becoming-woman)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들뢰즈는 여성-되기가 남성적 표준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에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적 음약세계의 음의 위치와는 다른 것이다. 동양에서 음은 생성의 한 축일 뿐만 아니라 양보다도 더 우위의 입장에 있다. 동양에서의 음은 양의 생산공장이다. 음이 성하면 양이 저절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음이 없으면 양이 생성되지 않는다.


들뢰즈의 리좀(Rhizome)은 그러나 음양론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서양문명의 양에서 음으로의 전이 혹은 전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양의 음과 음의 양과 같은 것을 모른다. 들뢰즈는 음을 무엇보다도 양을 기표로 만들기 위한 의미작용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서양철학의 고질적인 병인 존재적 사고의 연장이다. 존재를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존재에 도로 휘말리는 인상이 짙다.



남성과 여성, 존재와 생성

들뢰즈는 서양에서 태어났고, 서양철학적 전통 위에서 서양철학적 반동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그의 뿌리-줄기 혹은 땅-줄기 등으로 번역되는 리좀의 철학이나 여성-되기는 매우 동양적 음의 전통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직도 비대칭과 대칭, 구조와 해체, 존재와 무, 남자와 여자 등에서 전반적으로 동양의 음양의 전통에 미흡한 형편이다.


서양문화는 동양문화와의 비교적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팰러스 문화이다. 남근 위주이다. 그래서 오이디푸스콤플렉스 문화권이다. 그래서 라캉에 의하면 그(the) 여성(女性)은 없다라는 데에 도달한다. 이에 비하면 동양은 버자이너 문화이다. 확실히 음을 우선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음양이라 하고, 양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비록 지구적 가부장사회로의 전환에 동양도 함께 했지만 말이다. 동양은 음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들뢰즈에 앞서 욕망이론을 전개했던 라캉에게 있어 남근(phallus)은 특권을 가진 기표(privileged signifier)였다. 그래서 라캉은 "주체는 결핍(manque)이요, 욕망(desire=욕구 need=요구 demand)은 환유이다."라고 말했다. 주체는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대상은 신기루처럼 잡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대상은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인간은 대상을 향해 가고 또 간다.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이다. 욕망은 기표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가지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이다." 남근 중심의 욕망의 결론은 여성은 없다이다. 남근문화인 서양에서 여성은 자신이 남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to seem)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남근 중심의 욕망은 주체를 결핍이라고 했지만 여성 중심의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비어있음(empty)이다. 다시 말하면 페니스를 가진 남성은 도리어 결핍(거세공포)을 가진 데 반해 페니스를 가지지 않은 여성은 실은 비어있음(남근 없음의 상실이 아니다)이 되어 도리어 페니스를 받아들여 자식을 생산한다. 이때 여성은 매우 생산적이다. 그래서 자연과의 관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당당하다.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기표는 스스로를 관계의 변형의 생산이나 종합이 아니라, 어떤 선행하는 의미의 재현으로서 드러난다." 들뢰즈가 라캉을 극복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라캉은 오르가즘에 머물고 있고, 생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페니스(penis)에 대한 동양의 버자이너(vagina)의 역공

그의 일생은 실은 동양의 버자이너가 서양의 페니스에 대한 역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은 음양의 세계이다. 양음의 세계가 아니다. 음양의 무의식은 의식의 양음의 세계를 이제 거부하고 있다. 그러한 거부는 단순히 반대가 아니라 버자이너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마치 생명을 준 자가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고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평화의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영생이나 왕생, 부활이나 부처로 해결하지 못함을 철저하게 깨닫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서양의 시각예술과 동양의 청각예술의 통합이고 이는 크게는 서양의 시각 중심의 문화와 동양의 청각 중심의 문화가 만나서 서로 교차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시각은 페니스적이고 청각은 버자이너적이다. 시각은 페니스처럼 튀어나간다. 눈빛은 상대를 향하여 쏘는 것이고, 귀는 소리를 담는 것이다. 망막은 사물(이미지)이 들어오자마자 쏘아버린다. 이는 같은 지각과정이지만 시각은 바로 사물을 대상화(객체화)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청각은 버자이너처럼,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고막은 사물을 주체화(혹은 주객합일)하는 특징이 있다.


백남준의 중요한 점 중에 하나는 바로 예술과 기술이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복원하게 해준다. 흔히 예술은 고상한 행위이고 기술은 천한 것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인간에게는 있어왔다. 예술가들은 실은 줄곧 사물과 재료의 특징에 해박한, 익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군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예술과 기술은 분리된 것처럼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이 심화되는 전자기기의 세계에 도달하다 보니까 기술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기술과 예술이 하나가 되면서 "매체는 매체다"라는 선언이 나오게 된다. 기술=시(詩)가 된다. 이는 "오브제는 미술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선언과 그러한 전통의 맥락과 함께 하는 것이 된다. 결국 백남준에겐 "피아노는 음악이다"라는 데에 이른다.


백남준의 예술은 단순히 예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배태한다. 백남준은 기계(機械, 器械, 器界)를 기계(氣系, 氣繫, 奇計)로 만들었으며 예술을 종교로 만들었다. 백남준 이후에 예술은 종교가 되었으며 종교는 예술의 일부로 자리매김 된다. 백남준의 예술, 비디오아트는 현대판 굿이 되어버렸다. 백남준은 2차 대전 후 아노미 상태에 빠진 서양에 상륙하여 한국의 굿판에서 배운 솜씨와 타고난 천재적 문명읽기의 덕분으로 한판 잘 놀고 갔으며 그 부산물로 비디오아트를 남긴 것이다. 그는 실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이다.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디오아트의 어머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사적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기표(記表)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함이 옳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