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PC에 꼭 담을 영화 35

   
김용길
ǻ
지상사
   
13500
2011�� 04��



■ 책 소개
영화를 보여주는책!

이성보다 감성이, 마음보다 몸이, 글보다 영상이앞서는 이 시대에 영화는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합예술 분야다. 영화에는 인생과 세상만사가 담겨 있으며, 우리들 역시 영화 주인공을 동경하고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인생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 한 편에도 울고 웃는 것이다. 영화 한 편 보고 막걸리 한잔 걸치며 리뷰쓰기를 즐기는 어느 기자가 영화 이야기 한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저자가 LIFE&TRAVEL에 <광화문 해리슨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3년 넘게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며, 각기주제가 다른 네 개 신(Scene)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느냐고 묻는 대목 <사랑은 소통&&이 제1신,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제 2신, 세상살이와 삶 그 자체를 읊은 <순수, 그 잊혀지지 않는것들&&이 제3신, 그리고 관객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이야기 <액션 불패&&가 제4신이다. 영화 줄거리를 따라가며 이야기를전개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 저자 김용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20년 넘게 뉴스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동아일보 편집부 차장이다. 저널리즘과 뉴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해질녘 광화문 언저리에서 종종눈에 띈다.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탁주 한잔 마시며 리뷰 쓰기를 좋아한다. ‘광화문 해리슨’이란 ID로 블로그 <편집자의 벤치&&를가꾸고 있으며 영화는 하나의 도구다. 온종일 날선 뉴스를 매만지다 해저물녘 광화문 뒷골목을 배회하고 마음에 드는 술집에서 정담을 나누기 좋아하는도시 남자다. 신문편집 이론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 차례
추천의 글
책머리에

1. 사랑은 소통
그녀에게 - 왜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걸어야 할까
비포 선라이즈 - 연애할 때 최고 쾌락은 바로 대화의 기쁨
비포 선셋 - 대화의 코드가 맞아 떨어지는 연인들의기쁨
어웨이 프롬 허 - 아내가 44년 부부관계를 기억하지 못할 때
더 리더 - 함께 책을 읽으며 사랑을 해보셨나요
크레이지하트 - 막장 인생 중년 남자의 가슴이 다시 뛴다
원스 - 그 사람과 당신, 서로 통한 적이 있나요
에브리바디 올라잇 - 레즈비언커플의 상큼한 힘

2. 사람답게 사는것
죽은 시인의 사회 - 카르페 디엠, 오늘을 잡아라
타인의 삶 - 가장 빛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
소피 숄의마지막 날들 - 두려울 때 양심에 따라 사는 것
조용한 혼돈 - 중년 남자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악마는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다가온다
장미의 이름 - 맹목적 신앙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씨 인사이드 - 삶을 붙들듯 ‘삶너머’를 고민할 때
하얀 리본 - 당신 마을은 진정 평화로운가요
세븐 파운즈 - 속죄하기 위해 저를 죽입니다
공자 - 진실로道가 아니거든 누리지 말라
화려한 휴가 - 5.18 광주가 진정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3. 순수, 그 잊혀지지 않는 것들
일 포스티노 -사랑에 빠져야 은유를 배웁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 어디선가 또 다른 내가 나를 부르고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름다워라, 벤자민 버튼의 화양연화
메리 크리스마스 - 전쟁터에 울려 퍼진 위대한 노래
스트레이트 스토리 - 삶이 저물기 전 떠나는시속 8㎞ 여행
타인의 취향 - 당신의 취향과 내 취향이 통했을 때
맘마미아 - ABBA는 내 인생의 생맥주 한 잔
위대한 침묵- 모든 것은 침묵에서 출발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 카네기홀에 선 전설적 할아버지 그룹

4. 액션 불패
히트 - ‘리버럴 수컷’들에게 바치는액션 마초 영화
적벽대전 - 천하대의와 일장춘몽 그 간극
이끼 -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3가지 이유
본 얼티메이텀 -권력 속의 킬러, 내 마음 속의 킬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
테이큰 - 내 딸을 건들면 너는죽는다
대부2 - 낭만적 마피아는 없다




태블릿 PC에 꼭 담을 영화 35


1. 사랑은 소통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 감독 - 사라 폴리 | 출연 - 줄리 크리스티, 고든 핀센트 | 제작국가 - 캐나다 | 개봉 - 2008년 

늙어감의 두려움이여, 삶의 어처구니없음이여

아내가 기억을 잃고 있습니다. 기억을 상실한 아내는 길을 잃고 홀로 헤맵니다. 전직 대학교수 그랜트. 아름다운 아내 피오나와 44년간 동고동락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피오나는 설거지 끝낸 그릇을 냉동실에 넣기도 합니다. 산책 나섰다가 길을 잃어 귀가하지도 못합니다. 식사 중 와인을 따르려다 와인 발음을 못해 위인이라 읊조리다 망연자실합니다.


청춘 시절, 피오나는 참 발랄하고 낭만적인 소녀였습니다. "그랜트, 생각해봐요. 우리 둘이 결혼해서 살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렇게 먼저 청혼한 피오나였습니다. 그런 피오나가 치매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무탈하게 한 생애를 겪어낸 노부부에게 배우자 한 사람의 알츠하이머 질병은 두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국면으로 끌고 갑니다.


피오나가 앞장서서 요양원 문을 열고 성큼 들어갑니다. 피오나는 남편에게 받아들일 것은 차분히 받아들이자고 말합니다. 피오나는 치매환자 가족이나 간병인의 고통을 미리 헤아리는 듯합니다. 남편에게 간병의 힘겹고 긴 과정을 맡기고 싶지 않은 모양. 그녀의 결단은 단호합니다.


요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피오나는 그랜트에게 말합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과연 세상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고마워. 나랑 살아줘서. 그때 젊은 제자가 죽은 줄 몰랐어……."


아, 단기 기억은 사라지지만 상처받은 장기 기억은 남아있는 것일까. 수십 년 전 그랜트 교수는 여제자 베로니카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랜트를 피오나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젊은 베로니카는 자살하고 맙니다. 치매증상이 있는 아내가 요양원에 입원하러 가는 날 이 오래된 상처를 되새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44년간 함께 살았는데……

그랜트의 가슴은 쓰라립니다. 피오나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여생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입원한 후 한 달간은 모든 면회가 금지됩니다. 44년간 함께 붙어 있던 그랜트에게 한 달은 너무 낯선 기간이었습니다. 첫 면회가 허용된 날 수선화 한 다발을 들고 찾아온 그랜트는 깜짝 놀랍니다. 한 달 만에 피오나는 딴 사람으로 변해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바짝 붙어 있습니다. 훨씬 병약한 외간 남자 오브리의 간병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브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줍니다. 화들짝 놀란 그랜트에게 오브리를 어린 시절 동네 남자친구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 소개까지 합니다. 매일 면회를 오는 남편 그랜트를 점점 어색해합니다. 이젠 부부 사이에 인사하는 것도 낯설어하는 피오나. 그녀는 휠체어에 태운 오브리를 남편처럼 대하며 다정하게 산책까지 갔다 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피오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랜트에게 던진 말. "당신은 참 끈질기게 찾아오는군요."


그랜트는 허무합니다. 44년간의 부부시절조차 망각해버린 아내를 처연하게 쳐다봅니다. 담당 간호사에게 쓰라린 심정을 토로합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소중한 과거조차 사라지는 걸까요? 이렇게 되고 나니 너무 허무합니다. 마치 나와 피오나 사이에 과연 44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피오나가 내게 벌을 주고 있나 하는 생각도…."


간호사는 담담히 대답합니다. "남편의 생각과 아내의 생각이 너무 다른 경우를 종종 봅니다. 남편은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누군가 꾸준히 참아내며 지탱한 덕분이죠. 피오나의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거죠."


그랜트는 오브리의 아내를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피오나와 오브리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브리의 아내 마리안에게 부탁합니다. "당신 남편 오브리를 요양원에서 데려와주세요." 피오나와 오브리는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알고 너무 슬퍼합니다. 오브리가 요양원을 떠나가자 피오나는 두문불출 거동도 하지 않고 병색이 완연해집니다. 병실에 쓰러져 오브리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벽에 붙이고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습니다. 요양원측은 피오나의 상태가 악화되면 걷잡을 수 없다면서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사랑에서 기억이 빠져나가버리면……

남편은 또다시 결단을 내립니다. 다시 오브리를 데려와 아내 피오나에게 깜짝 선물로 등장시키려 합니다. 이제 아내에게 또 다른 여생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 여깁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란 이름으로 방해하지 않고 바라보기로 합니다. 가만히 지켜봐주는 옛 남편으로 남으려 합니다. 영화는 말미에 기대치 않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피오나는 거짓 연기를 한 것일까요. 치매란 중병은 생각보다 처절합니다. 몸, 마음, 기억, 추억, 감성, 이성, 아픔, 그리움……. 이 중에서 기억이란 고리가 빠져나가 버리면 우리의 인생이 온전할까요. 과거와 추억이 무너져 내립니다. 삶의 기반인 관계가 손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립니다.


사랑으로 쌓아왔던 두 사람 사이에 예기치 않는 망각의 강이 흐릅니다. 전혀 생소한 남남처럼 타인으로 변해버립니다. 늙음은 피할 수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한길을 가려는 두 사람에게 더 많이 다가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노년의 사람을 간직하려면 이 영화 놓치지 마시길.



2. 사람답게 사는 것

조용한 혼돈(Caos Calm0 / Quiet Chaos)

* 감독 - 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 출연 - 난니 모레티, 알레산드로 가스먼 | 제작국가 - 이탈리아 | 개봉 - 2009년

중년 남자가 쉬고 있는 조용한 벤치

사람마다 갑작스런 이별과 마주쳤을 때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탈리아 미디어 기업 중역인 피에트로. 그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을 지켜볼까요. 한 중년남자가 쉬고 있는 조용한 벤치로 안내합니다.


남동생과 휴가 중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인을 얼떨결에 구해준 피에트로는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듣지 못하고 귀가합니다. 머물고 있는 별장으로 돌아오자 싸늘한 아내의 시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쇼크사한 것. 아무 상관없는 여인을 구하고 나니 12년 함께 살아온 아내가 떠나가고 맙니다. 어린 딸 클라우디아는 엄마 곁을 지키지 않았던 아빠를 원망합니다. 참으로 황망합니다. 묵묵히 아내의 장례를 치릅니다. 피에트로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클라우디아, 네가 학교수업을 다 마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한 남자가 딸의 학교 앞에 머물면서, 아등바등 매달리며 살아온 삶에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릅니다.


당신 삶에 잠시 일시정지를 눌러라

초록색 벤치에 앉아 학교 정문을 바라봅니다. 신문을 사서 읽고, 휴대전화로 회사업무를 처리합니다. 커피를 사 마시고 벤치에서 샌드위치 점심을 먹습니다. 다운증후군 어린이가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갑니다. 소년은 피에트로의 자동차 리모컨 경적 소리에 유난히 즐거워합니다. 특수학교로 등교하는 소년을 지나갈 때마다 피에트로는 차 리모콘을 눌러 뿅뿅~ 인사를 합니다. 소년은 늘 반갑게 손을 흔듭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미모의 젊은 여인이 지나갑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눌 만큼 낯이 익어갑니다. 매점식당 주인과는 식사메뉴를 평가해 줄 만큼 친해졌습니다. 근처 3층 건물 꼭대기에서 홀로 사는 할아버지는 파스타를 만들어 식사에 초대까지 합니다. 어찌 된 일인지 피에트로가 벤치에 자리를 잡자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방문자들은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진 학교 앞 피에트로를 위로차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모두들 벤치에 피에트로와 나란히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기실 스스로 고민과 자기 속내를 토로하고 갑니다. 피에트로가 근무하는 회사는 요즘 미국 회사와의 합병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원만한 성격의 피에트로를 사이에 놓고, 서로 갈등하는 회사 중역들이 차례로 찾아와 심경을 고백하고 갑니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덜컥 임신하게 된 덜렁이 처제도 찾아오고, 피에트로가 해변에서 구해준 매력적인 여인도 찾아옵니다. 그녀의 낯빛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합병을 둘러싼 미국 회사의 최고경영자까지 조용히 들러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삽니다.


어느 순간 피레트로의 벤치는 상처를 고백하고 상처를 위로받는 자리가 됩니다. 피에트로는 그들의 어깨를 다독여줍니다. 쏟아내는 말들을 조용히 경청해주는 벤치는 치유의 출발점이 됩니다.


슬픔을 다루지 못하는 현대인의 풍경

슬픔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마음에 상처가 나면 어디에 매달려야 할까? 피에트로는 타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풍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들을 포옹해줍니다.


홀로 읊조리기를 하며 고단한 내면의 결을 가다듬습니다. 해외출장가면서 탑승한 항공사 이름을 외워보고, 그동안 자신에 거주했던 모든 집주소를 중얼거립니다. 함께 살았지만 아내 라라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읊조려봅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의 목록, 너무 처참해서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떠올려보면서 학교 앞 벤치 위에서 전개되는 가을 겨울 두 계절을 숙성시킵니다. 그 사이 피에트로는 슬픔을 삭여내고 딸과 함께 본연의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곳곳에 약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방에 무력한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전부 마음의 장애를 품고 있습니다. 건강함을 가장하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세상은 혼돈의 바다. 다만 조용한 혼돈일 뿐입니다. 혼돈은 종식되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혼돈을 껴안고 살아내야만 합니다.


영화는 종교나 절대적인 맹신에 기대지 않고는 상실의 슬픔을 다루는 데 서툰 현대인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표정을 감춘 채 화석화하고 있는 중년 남자들의 황량한 마음을 잘 뽑아냈습니다. 이탈리아 국민배우이자 명감독인 난니 모레티가 주인공 피에트로를 열연합니다. 그의 절제된 연기와 지적인 분위기는 이 영화를 사색적 여운이 풍성한 작품으로 자리 잡게 합니다.



3. 순수, 그 잊혀지지 않는 것들

스트레이트 스토리(The Straight Story)

* 감독 - 데이비드 린치 | 출연 - 리차드 판스워드, 씨씨 스페이식 | 제작국가 - 미국 | 프랑스 | 개봉 - 2001년

삶을 차분하게 마감하는 영화 한편

참 느린 영화입니다.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듯 천천히 펼쳐집니다. 느리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팡파르를 울리며 인생을 화려하게 시작하는 영화는 많습니다. 보란 듯이 무지개 색깔로 다채롭게 펼치는 영화는 부지기수입니다. 여기 삶을 차분하게 마감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일흔세 살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는 미국 아이오와 주 시골 동네 로렌스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마흔 살 말더듬이 딸 로즈가 아버지를 보살펴줍니다. 최근 들어 눈이 더 침침해졌습니다. 의사는 당뇨합병증이 우려된다며 담배를 끊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 센 카우보이답게 시가를 끊지 않습니다. 다리도 불편해 쌍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거동이 가능합니다.


어느 날 10년 넘게 의절하고 살았던 형 라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우애 깊었던 형제는 소소한 오해가 쌓여 10년 전부터 남남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형님은 500km 떨어진 위스콘신 주에 살고 있습니다. 요 며칠 앨빈은 무척 바쁩니다. 수십 년 된 구형 잔디깎이 기계를 용접하고 손봐서 수레와 연결합니다. 수레 안엔 자신의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앨빈은 딸 로즈에게 말합니다. "얘야, 라일 형님을 뵈러 가야겠다. 88년에 마지막으로 봤으니 얼마나 아픈지 인사드리러 가봐야지."


하지만 앨빈은 차가 없습니다. 시력도 좋지 않아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앨빈은 지금 잔디깎이 기계를 트랙터로 개조해 탈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느림보 트랙터를 이용해 머나먼 형님 집을 찾아가겠다는 것. 최고속도 시속 8km로 500여km 머나먼 여행을 떠납니다. 딸과 동네 친구들은 이 무모한 여행을 극구 만류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합니다.


시속 8km, 500km 여행길

삶의 속도는 자꾸만 빨라집니다. 시속 100km도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빨리빨리 이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더디고 느린 것을 싫어합니다. 길이 막히고 지체되는 것을 끔찍하게 여깁니다. 인생 말년 앨빈은 시속 8km를 선택합니다. 시외버스를 탈 수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에 편승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잔디깎이 트랙터를 운전하며 풍찬노숙하는 여행길을 택합니다.


이 희한한 로드무비 앵글도 시속 8km 늦은 속도로 천천히 앨빈의 뒤를 쫓아갑니다. 느린 화면, 느린 대사, 느린 표정, 느린 풍경, 느린 서정이 가득합니다. 오늘 저만큼 가야 한다고 작정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트랙터가 과열로 고장 나 견인되어 집으로 되돌아와도 없는 살림에 다시 중고 잔디깎이를 구입해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옥수수 밭 드넓은 평원이 나타납니다. 시골 아이들과 빨래하는 여인들이 손을 흔들어줍니다. 해가 지면 길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워 먹습니다. 뭇별들이 밤하늘에 촘촘합니다. 어린 시절 형님과 늘 밤하늘을 보며 지냈습니다. 앨빈은 마지막이 될지라도 형님과 밤하늘을 나란히 쳐다보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헛간에서 지냅니다. 앨빈은 시가를 물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쳐다봅니다. 흰 담배 연기가 빗속으로 사라집니다. 화면을 감아 흐르는 애조 띤 배경음악, 한줄기 바이올린 선율이 가슴을 울립니다. 브레이크가 시원찮은 트랙터가 내리막길에서 결국 고장을 일으켜 마음씨 좋은 부부에게 신세를 집니다. 수리하는 며칠 동안 앨빈의 사정을 알게 된 부부는 자신들이 차로 모시겠다고 제안합니다. 앨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래도 이 길을 힘들지만 내 힘으로 마무리 짓고 싶답니다. 내 여행을 내 힘으로 끝내고 싶네요."


앨빈의 사연을 전해 들은 시골 마을 노인과 술 한 잔을 함께 나눕니다. 두 노인은 둘 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토로합니다. 20대 초반에 겪은 전쟁은 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겨 놓았습니다.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오랜 고통을 공유합니다.


맺힌 것은 풀고 헤어진 인연은 기별해보고 싶다

미국 중부를 가로지르는 가을날의 국토대장정. 피붙이를 찾아가는 6주간의 거북이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일흔다섯 살의 형은 쓰러질 듯 누추한 외딴 오두막에 살고 있습니다.


"라일!" 두 번을 부르니 한참 있다가 형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앨빈?" 문이 열리고 병색이 완연한 라일이 보조기구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나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언젠간 만날 줄 알았다는 듯……. 지팡이에 기댄 앨빈이 다가와 둘은 나란히 앉습니다. 마당에 와있는 잔디깎이 트랙터를 보고 묻습니다. "저걸 타고 아이오와에서 날 보기 위해 왔어?" "그래."


10년 만에 만난 동생의 짧은 대답. 형은 말없이 두 줄기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참으려는 듯 동생 앨빈은 두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봅니다. 이윽고 엔딩 신. 은하수 흐르는 밤하늘이 화면 가득 펼쳐집니다.



4. 액션 불패

대부2(The Godfather : Part Ⅱ)

* 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출연 -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로버트 듀발, 다이앤 키튼 | 제작 국가 - 미국 | 상영시간 - 200분

낭만적 마피아는 없다

구두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 바로 구두 코 앞에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 버티고 있습니다. 바로 시칠리아 섬. 지중해의 요충지라 외부세력의 침략이 잦았습니다. 오래전부터 본토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자 지주들은 자생적 무장조직에 재산권 보호를 요청하고, 무장조직은 돈을 받고 그들의 재산을 지켜줍니다. 마피아(Mafia)는 바로 시칠리아 소규모 사병조직 마피에(mafie)에서 유래됩니다.


시칠리아 출신들이 20세기 초 대거 미국으로 이민 옵니다. 시칠리아계 범죄조직은 미국 금주법 시절 밀주를 제조해 이득을 취했고 밀수업, 도박장, 고리대금업, 매춘업 등을 통해 조직을 확장시켜 갑니다. 20세기 중반엔 중남미 조직과 손잡고 마약 제조 유통까지 손을 댑니다. 암흑 산업을 통해 조성된 자금은 호텔, 레스토랑, 유흥업 진출을 통해 돈세탁되고 정치권에 흘러가기도 합니다.


마피아는 아일랜드 범죄조직, 유대인 갱과 유혈적 생존경쟁을 통해 뉴욕,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의 범죄네트워크를 장악합니다. 마피아는 비제도권에서 서식하며 말초적 소비가 교차하는 곳에 똬리를 틉니다. 본질적으로 한탕주의적 범죄 심리를 깔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욕망의 꼭짓점 근처를 서성거리며 어둠의 돈을 채가는 승냥이 조폭입니다.


마피아 패밀리들은 자위권과 공격을 당했을 때 복수할 권리를 서로 인정해줍니다. 이들은 느슨한 동맹을 맺고 있는데, 패밀리의 보스들이 모인 위원회에서 최고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마피아 패밀리들은 각자의 구역을 지키면서 타 패밀리 구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조직 비밀을 발설하는 배신자는 철저히 응징합니다. 그 밑으로 대리감독-지부장-행동위원이 위치합니다. 하위 행동위원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보스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차단하는 조직 형태입니다.


<대부2> 마피아 영화의 전설로 등극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 <대부> 시리즈에 아낌없이 엄지손가락을 세웁니다. <대부> 시리즈 팬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편은 바로 <대부2>. 1974년에 제작된 <대부2>가 디지털 리마스터링(Digital Re-mastering, 아날로그 옛 필름을 디지털로 보정하여 고화질로 재탄생) 버전으로 최근 재개봉되었습니다. 한국에서 1978년에 개봉되었는데, 32년 만에 다시 극장 스크린에 등장한 것입니다.


영화 <대부> 시리즈는 모두 3편으로 이뤄집니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보다 셋이 모여 한 세트로 완결됩니다. 온 가족이 시칠리아 지역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9세 소년 비토 콜레오네. 미국으로 혈혈단신 이민 옵니다. 원조 대부 비토가 1910년대 뉴욕거리에서 성장하며 마피아 패밀리를 구축하는 과정이 대부 스토리의 첫 단추입니다. 가정을 이뤄 세 아들(소니, 프레도, 마이클)과 딸(코니)을 키웁니다.


셋째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가 나중에 보스 대권을 물려받습니다. 가족애-배신-보복-암투 속에서 2세대 대부 마이클이 1950년대 조직을 확장해갑니다. 20년 후 노쇠한 마이클이 친형의 아들 빈센트에게 대권을 물려주면서 피비린내 나는 과거로 인해 비탄과 회한에 젖는 장면으로 종결됩니다.


비토 콜레오네는 타고난 카리스마와 의리로 친구들을 거느립니다. 같은 이민자들을 갈취하는 시정잡배를 해치우고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의 대부로 발돋움합니다. 비토는 가난과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고자 거리로 나섭니다.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 애쓰지만, 피의 응징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의 온 가족을 살해한 시칠리아 섬 마피아 돈 치치오를 찾아가 노쇠한 그의 귀에 대고 분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다음 복수의 칼을 꽂습니다.


후계자 마이클 콜레오네는 미국 최대 마피아 조직의 수장입니다. 연방의회 청문회에도 불려나가 범죄혐의를 추궁당할 만큼 거물로 커 나갑니다. 마이클은 아버지보다 냉혹한 보스입니다. 한 번 커지기 시작한 조직은 확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자본의 자기 증식 논리와 동일합니다. 구역을 늘려나가다 혈육의 피마저 보게 됩니다. 적대자와 내통한 둘째 형은 결국 동생에 의해 처단당합니다. 남편에게 드리워진 암흑가 그림자에 전율한 아내는 고의로 아들을 낙태시키며 결국 떠나갑니다.


아버지 비토의 일대기(1910년 이후)와 젊은 대부 마이클의 일대기(1950년대)가 교차 편집되며 영화는 가족과 조직을 동시에 잘 건사해보려는 남자들의 역동적 파노라마를 펼칩니다. 동시에 사내들의 쓰라린 패배와 허무를 통해 최후 승자 없는 게임의 법칙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있어도 마피아 드림은 없다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것이다."(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dont refuse)

너그러운 듯하지만 과단성 있는 비토. 영화 <대부>의 본질적 메시지를 암시하는 그의 명대사입니다. 비토의 이 말은 마피아 세계의 잔혹한 논리를 대변합니다. 마피아 비즈니스의 핵심입니다. 공갈과 협박으로 다가가 거부할 시 죽음밖에 없음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내 아버지는 그에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했지." 마이클도 나중에 이 대사를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영화 <대부> 시리즈는 2대에 걸친 콜레오네 가문의 내러티브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태동과 야만적 팽창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패밀리들은 권력자에게 후원금을 지불하고 조직의 안위를 보장받고자 합니다. 연방의원들의 경쟁 구도 또한 마피아 패밀리 경쟁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끼리끼리 유착관계는 어디를 가도 음습하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엔 치욕과 약육강식의 역사가 건재합니다.


<대부> 시리즈의 감동은 원작자 마리오 푸조의 치밀한 리얼리티 문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최대 자본주의 대국으로 자리잡아가는 미국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단순 갱영화를 넘어선 20세기 전반 미국의 서사시입니다. 마이클은 가족과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냉혹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내 자식 형제 심복을 잃고 맙니다. 정상적인 가족애와 마피아 생존논리는 공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최소한의 힘을 추구합니다. 작은 힘이 생존 투쟁 이전투구를 거쳐 보다 큰 권력으로 돌변합니다. 이젠 힘을 가질수록 스스로 인간성을 잃고 괴물로 변해갑니다. 결국 발버둥 치면 칠수록 외로운 남자의 탄식만 남습니다. <대부> 시리즈는 보고 또 봐도 곱씹게 하는 고전의 품격을 품고 있습니다. 음미하고 또 음미해도 신선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내러티브의 저수지입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