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담화 분석

   
김현주
ǻ
한국학술정보
   
18000
2008�� 12��



■ 책 소개
판소리를 사회, 문화,역사를 통해 분석한 책으로 기존의 판소리 어휘 분석을 결속구조나 통사구조에서 만족하는 것을 지나 텍스트 바깥의 사회문화적 제도나 성향과 연맥되는 양상까지도 살폈다. 저자가 기존에 발표한 논문과 새로운 글을 써서 한권의 책으로 엮었으며, 담화분석의 개념, 방법론, 담화의 구성방식 등을다루었다.

■ 저자 김현주(金賢柱)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하였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판소리이본전집』 및『판소리 역주』를 공동 작업하였고,『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예술세계』『구술성과한국서사전통』『고전서사체 담화분석』『고전문학과 전통회화의 상동구조』 등이 있다. 

■ 차례
책머리에 

Ⅰ. 담화 분석과 그 기대 지평 
Ⅱ. 판소리 담화의 구성 방식 
1. 심리적 거리조정 방식 
2. ‘거동보소’의 발화 맥락 

Ⅲ. <춘향전&& 담화의 연행론적 해석 
1. ‘춘향가’의 언술, 구조, 의미
2. ‘춘향전’의 언술, 구조, 의미 

Ⅳ. 판소리 담화의 구술성 및 구술적 전통 
1. 판소리 담화의 구술성과 장르적 의미
2. 판소리 담화의 구술적 전통 


Ⅴ. 판소리 담화와 문화접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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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로써 예술세계를 품다

판소리 담화 분석


Ⅰ. 담화 분석과 그 기대 지평

담화분석은 유의 동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 언어란 것은 정적으로 주어지는 법이 하나도 없다. 하나의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모든 상황이 순간적으로 역동적으로, 총체적으로 작용하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언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전 콘텍스트가 작용하여 생산된 것이다. 콘텍스트가 감안된 언어, 바로 그것이 담화이고 언어를 담화로 보고 분석하는 것이 담화 분석인 것이다.


담화 분석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담화와 언어를 대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어와 담화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의 평면성과 담화의 입체성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의사소통의 국면과 관련하여 언어의 정태성과 담화의 역동성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 언어는 문장 내적 맥락만을 감안하지만 담화는 그뿐만 아니라 탈문장적 외부 맥락까지 감안한다.


담화 분석은 그 실행 방법에 있어 언어학에 크게 의존한다. 특히 분석의 시작 단계에서는 거의 언어학의 분석 단위와 분석 방식을 차용한다. 언어학적 분석은 담화 분석의 틀거리를 제공해 주지만 담화 분석을 완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담화 분석은 언어 분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언어 분석을 통해 얻은 정보를 원심적인 운동으로 확대하여 사용자의 성격을 추정할 수도 있고, 전통적 맥락과 관련성을 고찰할 수도 있으며, 동일 장르나 주변 장르와의 관계를 통해 전체적인 위상을 점검할 수도 있고, 사회문화적 맥락과 연결을 꾀할 수도 있다. 언어 분석의 원심적인 확장은 언어 예술에서 어쨌거나 핵심이 되는 언어와, 언어 상위의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줌으로써 논의의 공소성을 피하고 언어 상위적 논의의 방향을 튼실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담화 종류 중에서 판소리 담화를 다루고자 한다. 판소리에 대해 담화 분석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담화 분석을 통해 판소리의 내밀한 구조를 얼마간 밝힐 수 있고, 판소리 문학 전체의 체계 또는 구성 원리를 조망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 판소리 담화 분석을 통해 판소리가 당대의 사회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판소리를 통해 판소리를 초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판소리는 판소리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판소리 담화의 영역이 광활함을 미루어 볼 때 판소리 담화 분석을 통해 그것을 원심적으로 확대하면 하나의 문화이론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허풍이 센 꿈은 버리는 게 좋겠지만 야무진 꿈은 종종 필요할 때가 있다.



Ⅱ. 판소리 담화의 구성 방식

1. 심리적 거리 조정 방식

미학에서 말하는 심미적 거리는 미적 대상을 관조할 때 일어나는 일종의 무관심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무관심(disinterestedness)이란 현실적 목적에서 벗어난 사심 없음과 가까운 의미로서 미적 대상을 순수하게 관조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심미적 거리라는 말은 은유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미적 대상과 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게 아니라 미적 대상에 대한 관조자의 의식이 삶과 관련된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거리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적 대상을 순수하게 관조하는 경우에도 대상 속에 몰입하는 정도는 차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심미적 거리 또는 심리적 거리는 미적 대상에 대한 심리적 원근으로 보아도 무방하게 된다.


판소리 창자는 각종 인물이 처한 정황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충동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인물의 대화라든가 내적 독백 장면에서 창자는 그 인물의 심리 속으로 빠져 들어가 발화한다. 그런가 하면 판소리 창자는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골격을 형상화해주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나 내적 독백과 같은 주관적인 발화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거기에 최소한 객관적인 위치에 서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설명적 발화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장에서 이상과 같은 공적인 담화만을 하는 게 아니라 가끔 사적인 담화(공적인 담화는 객관적인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한 담화이고, 사적인 담화는 객관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창자가 현장적 맥락에서 하는 주관적인 담화를 말한다.)를 하여 극중 상황에서 이탈된 정서를 맛보게 하기도 한다.

 

판소리는 전형적인 비극과 같이 일정한 서사적 귀결을 향해 모든 요소들이 수렴되는 형태의 예술이 아니다. 판소리는 심리적 거리의 조그마한 움직임이 무수하게 반복되면서 약간 더 큰 움직임이 되고, 그러한 움직임이 또 반복되면서 보다 큰 움직임을 형성하는, 그럼으로써 부분과 전체가 파노라마적인 율동으로 전개되는 예술이다. 거리 조정이라는 기법의 반복이 정서적 성격을 형성하고, 거기에 서사 내외적 테마들이 얹혀 율동적으로 파도치는 것이다. 그것은 판소리가 세계의 영원무궁한 순환과 영속성을 표출하는 예술양식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 판소리는 그러한 동양의 종합적 사유를 극적으로 체현하는 예술양식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2. 거동보소의 발화 맥락

판소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관용어구 중의 하나인 거동보소(이 글에서 거동보소는 호사보소, 치레보소, 맵시보소 등과 같은 어휘군을 대표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보통 등장인물의 행위나 차림새에 대한 묘사의 표지로 사용된다. 그래서 거동보소 다음에는 묘사대상의 행위나 차림새에 대한 상세한 진술이 뒤따르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거동보소를 그것이 사용되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볼 때, 거기에는 문면상의 지시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인 의미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고전소설의 경우 배경적 묘사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묘사는 서술에 비해 무척이나 빈약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 고전소설에 묘사가 미약한 가운데에서도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에는 전대와 당대의 어느 서사체에 비교하더라도 묘사적 표현이 대폭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판소리에 묘사적 표현이 증대되고 있는가? 판소리라는 양식적 특징 때문인가? 아니면 시대적 현실인식 또는 세계관 등과 같은 어떤 정신적인 것들과 관련을 갖고 나타난 것인가? 우리는 이 두 가지 사항 중 어느 쪽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식과 정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의 양식적 담화는 인과적인 논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의 논리를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소리 창자의 일인다역적 성격에 따라 판소리의 서술 상황, 즉 시점은 여타 예술장르에 비해 그 종류도 많거니와 그 굴곡 또는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시점들의 굴곡이 심한 교체에 따른 의미의 구현이 판소리 예술의 커다란 특징인 것이다. 격심한 시점의 변화를 동반하는 거동보소가 주는 즉각적인 의미는 대상인물의 행위를 한번 그려 볼 테니 구경해 보라고 하는 것인데, 거기에는 명령의 기운과 함께 청유의 기운이 내포되어 있다.


거동보소라는 구절의 발화는 청중을 외부 관찰자 위치로 유도한다. 거동보소 발화 이전에 청중들은 등장인물의 심리 속에 동화되어 인물과 시각을 같이하거나 전지적 서술자와 시각을 공유하거나간에 작품 내적 서술상황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거동보소라는 발화는 시점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그 청유형 종결어미가 주는 친근한 말건넴의 어투로 인해 그것을 발화하는 창자와 더불어 청중을 작품세계를 외부에서 조망하는 관찰자의 위치로 이동하게 만든다. 이때 청중과 창자의 심리적 거리가 축소되는 반면 이들과 작품세계 속의 서술대상 또는 등장인물과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게 된다. 창자와 청중과 서술대상을 관조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예술형태에서는 희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공연예술인 판소리에서는 현장적 친화를 도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판소리의 예술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판소리와 같은 공연예술에서는 특히나 수용자의 현장적 공감이 중요하다. 흔히 창자들이 청중들의 추임새의 정도에 따라 신명을 내기도 하고 신명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현장에서의 공감적 교류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판소리가 현대에 오면서 소리판에서 교감적 관습을 점차 상실한 청중들이 추임새를 제대로 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수가 그 역할을 대신하여 강화했다고 보인다. 청중들의 추임새는 소리판의 현장에서 상호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증거이다. 동일한 시공에서 맞대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창자는 청중들과 교류하고 청중들의 공감을 사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노력들 중의 하나가 바로 거동보소와 같은 발화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축제적 성격이 강한 문화예술양식이다. 축제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동화와 화합을 기초로 하는 것인데, 판소리 공연 현장은 이야기에서 마련되는 화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공연 현장의 모든 참석자들이 계층을 초월하여 추임새와 너름새로 호응하면서 신명을 냄으로써 작품 내외적으로 현장적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장적 화합에 거동보소를 포함하는 말건넴의 어투와 일탈적 여담이 커다란 기여를 하는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Ⅲ. <춘향전> 담화의 연행론적 해석

<춘향전>은 춘향가와 춘향전을 합한 대개념이다. 춘향가는 현장에서 말과 노래로 연창되는 판소리 사설로서의 춘향 이야기이며, 춘향전은 글로 씌어진 판소리 소설로서의 춘향 이야기를 지칭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춘향전>을 연행론적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가능한 한 극복하고자 한다. 연행론은 특별하게 고안된 분석 도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발신자의 발화행위 과정에 배경으로 작용하는 여러 역동적인 힘들을 드러내어, 그것들이 텍스트와 갖는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이 글의 목적은 <춘향전>을 연행론적 시각으로 봄으로써 춘향가와 춘향전의 거리를 좀 더 분명하게 밝히는 데 있다.


춘향가의 언술, 구조, 의미

춘향가의 발화 맥락으로서 세 가지 측면의 발화 맥락을 고려하고자 한다. 하나는 춘향가를 발화하는 데 사용되는 표현 매체의 속성이 갖는 맥락이고, 또 하나는 사회 현실적 상황을 반영하는 맥락이며, 마지막으로 관습적 요소들을 수용하는 맥락이다.


춘향가는 말로 구연되므로 말이 갖는 속성의 지배를 받는다. 춘향가의 말하기 상황과 속성은 일반적인 말하기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얼마간 다르다. 일반적인 말하기의 상황과 속성이 순수한 구술성이라면 춘향가는 특유의 구술성을 지닌다. 그렇지만 춘향가는 말의 속성들인 현장성, 역동성, 자유개방성, 친화성, 상황 의존성, 공동성, 일회성 등의 구술적 맥락 하에서 형식과 내용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춘향가 특유의 구술성은 현대에 올수록 기술성의 의해 침윤당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성은 창자들의 문명화로 인해 기술문학적인 문법의식이나 구성의식의 향상, 사전계획이나 암송의 복합작용에 의해서 춘향가에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 사전계획이나 암송자체가 기술성은 아니나 기술문학적인 의식이 개입해서 계획되고 암송된다면 그것이 기술서의 유입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판소리 사설은 다른 판소리 사설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판소리 사설끼리 충돌하고 접합하면 서로 사설을 주고받으며 공생의 길을 걷는다. 이를테면 춘향가와 심청가가 만나고 나면 양쪽의 몽중가가 엇비슷해지고, 춘향과 심청의 탄식 대목의 수많은 구절의 표현이 유사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심청가와 수궁가가 만나면 어느 쪽의 소상팔경 대목이 원조인 줄은 모르겠으나 양쪽에 엇비슷한 소상팔경 대목이 구비된다. 춘향가와 흥보가가 만나고 나면 흥보가 매품삯을 선불로 받고 흥겨워 부르는 돈타령이 어느새 군로사령이 춘향에게서 은밀하게 건네받은 닷 냥을 가지고 뻐길 때에도 불리는 것이 된다. 판소리 사설끼리의 만남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회적이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 사설의 대목들은 서로 엉켜 있고 중첩되어 있어서 항상 주변에 있고 곁에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접합하는 것이다.


춘향가는 기존의 관습적인 언어양식 내지 선행담화들을 수용한다. 시조, 가사, 무가, 잡가, 민요, 설화, 한시, 한문 관용어구, 장타령, 수수께끼, 속담, 점복사, 문장체 소설의 관용어 등 기존의 전 언어양식 내지 선행담화들은 춘향가의 언어적 바탕 자질이 된다. 또한 춘향가는 상층 취향의 고답적이고 전아한 언어이건, 하층 취향의 발랄하고 비속한 언어이건 가리지 않고 수용한다. 그렇지만 춘향가는 기존의 관습적인 언어 양식이나 선행담화를 있는 그대로 생경하게 표출하지 않고 춘향가 나름의 연행 방식에 의해 그것들을 마디마디 취사선택하거나 적절하게 변형시켜 교직한다.


춘향가는 선행담화에서 부분적인 구절을 따오기도 하지만 선행담화가 지닌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수용하기도 한다. 춘향가가 한 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습적인 이야기 체계가 춘향가에 반영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대로 내려온 보편적인 이야기 체계의 구조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이야기 구조로서 검증받은 것이기에 그 수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춘향가는 기존의 관습적인 이야기 체계의 구조를 수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변형하기도 하고 새롭게 조직하기도 한다.


춘향가는 사건의 긴장관계가 반전되는 설화의 구조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고 있다. 기생과 관장 사이의 긴장관계가 반전되는 것이 춘향가 이야기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그 밖에도 이도령과 방자, 어사또와 농부, 어사또와 신관사또 그리고 기타 인물들의 간의 관계가 전도되고 역전되는 현상이 무수하게 반복된다. 이렇게 사건이나 인물의 긴장관계가 반전되는 구조는 우리의 전통 서사체에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서 그것을 반대에 의한 발전의 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고난과 행운이 반복되는 구조이기도 하며, 또 갈등과 갈등의 해소가 반복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춘향가를 거시적으로 보거나 미시적으로 볼 때, 그와 같은 반대자질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춘향가는 판소리 공연 현장에서 말 또는 노래로 연행되므로 그러한 현장 연행 상황 속에서 의미가 생성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연행되는 춘향가의 사설을 글로 적어놓으면 창본과 다름이 없지만 그 사설이 갖는 궁극적 의미를 캐기 위해서는 말의 역동성과 운율성을 고려해야 하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현장의 제반 요소들을 감안해야 하며, 춘향가의 연행이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배경적 맥락을 두루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글의 내용만을 보고 문학적 사설과 음악적 요소 그리고 연극적 요소들이 합성되면서 거기서 빚어지는 현장적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설의 문학적 내용이 연행 현장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서 유념해야 하며, 음악적 정서가 사설의 문학적 내용을 어떠한 방향에서 보조하고, 또 어떻게 의미를 강화 내지 부각시키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극적 정서는 어떤 점에서 예술적 형상화에 기여하는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점들이 감안될 때, 비로소 춘향가의 진정한 의미가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춘향가의 가장 큰 성격상의 특징은 현장에서 말과 노래로 구술되고 가창되는 현장 연행성을 지닌 예술 양식이라는 점이다. 춘향가는 서정성과 서사성, 그리고 극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문학적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문학적 내용을 말과 노래로 표출함으로써 극적인 성격이 더욱 부각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춘향가의 언술이 내재적으로 지닌 극적인 성격은 극적인 연행 방식에 의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춘향가의 창자는 항상 사건 상황 속에 위치하고자 하며, 그 사건 상황 속의 인물이 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감정이입이나 심리적 동화를 이룰 수는 없을지라도 창자는 극중 인물의 목소리와 언행을 그대로 모방하여 심리적 동화에 근접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창자는 여러 인물들을 두루 모방하기 때문에 일인다역의 배우가 되는 한편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창자는 종종 아니리로 서사적인 요약 설명을 하는데, 이러한 역할이 연극에서의 내레이터의 역할과 유사한 것이다. 창자의 내레이터로서의 역할도 내레이터가 있는 연극의 경우를 상상한다면 그것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춘향가의 창자는 서사적인 요약설명과 더불어 장면에 대한 묘사도 하는 특이한 내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Ⅳ. 판소리 담화의 구술성 및 구술적 전통

판소리 담화의 구술성과 장르적 의미

판소리 문학은 말과 글이 공존하는 문예양식이다. 판소리 문학에서 말과 글은 문학적 의미를 표출하는 모든 방식을 결정하는 인자로 작용한다. 말과 글은 무엇을 표출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결정하게 하고, 표출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며, 표출하고 난 다음에도 그 의의를 사뭇 다르게 전달하는, 심대한 차이와 의미를 지닌 표현 수단인 것이다.


판소리 문학에서 구술성과 기술성의 관련 양상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판소리 문학 전체에서 말로 하는 판소리의 영향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마치 우주계의 핵이고, 판소리 소설들은 성좌군을 이루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다. 판소리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술성과 기술성, 그중에서도 특히 구술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심도를 깊게 해야 한다.


판소리 문학 가운데서 소리로 불리는 현장의 판소리를 채록한 것이 바로 창본이다. 따라서 창본의 성격은 판소리 구연 현장의 제반 상황요소를 감안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만 그 실상이 보다 더 잘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판소리 구연 시에 작용하는 상황 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판소리 창자는 창과 아니리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 둘째, 판소리의 연행은 창자와 청중의 만남을 필요로 하며, 양자의 만남은 복잡한 상황을 연출한다. 셋째, 창자에게는 청중의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거나 흥미를 유발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사명이 있다. 넷째, 창자의 이야기나 창은 기억을 전제로 할 때만이 그 성립이 가능하다.


상기와 같은 판소리의 연행적인 상황들에 유념하면서 창본의 언술과 구성상의 특정들을 살펴보자. 창본은 물으시되, 대답하되, 부르는디 등과 같은 대화를 이끄는 바탕글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생략이 아니라 누적 내지 반복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생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창한 구연이라는 똑같은 목적을 지닌다. 또한 확장된 우회적 서술도 많이 발견된다. 창자가 청중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어투는 연행 현장에서의 양자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창본에서의 시점의 주된 양상은 객관적이고 외부적이다. 그것은 고소설이나 판소리 소설이나 판소리 사설이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창본의 시점은 외부 위주이되 내부로 자주 이동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창자는 이야기 서술자로서, 극적 인물로서, 그리고 현장에 현존하는 현재적 인격체로서 겪어야만 하는 부단한 혼동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논리를 세워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전환시킨다든가, 앞으로의 일을 예고해 준다든가, 과감하게 생략할 것임을 언명하는 등 창자는 사건을 조감하는 듯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통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상과 같이 창본을 분석한 결과, 비록 그것이 기술성에 의해 덧입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적인 성격은 구술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판소리가 말을 표현 매체로 하는 문학형식이기 때문이다.



Ⅴ. 판소리 담화와 문화 접변

판소리 담화가 당대의 의미 있고 살아 있는 발언으로서 사회적 정황들과 대화를 통해 형성되었고, 따라서 문학적 발화 구조와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는 서로 교향한다는 입각점을 구축할 때, 접변이라는 용어가 하나의 유용한 개념 틀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서 접변은 문화권과 같은 거대 집단 간의 문화적 접촉을 통한 질적 변동이라기보다는 동일 집단 내의 이질적인 문화 간 접촉에 의한 형성과 변모라는 다분히 한국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설정된다. 조선 후기와 같은 시기의 우리 문화는 한 국가이면서도 지향성이 현격하게 다른 이질 문화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접변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후기 사회의 다양한 힘들이 접변하고 있듯이 판소리 담화도 접변하고 있다.


판소리 사설 속에는 전아한 상층의 언어와 하층의 비속한 언어가 마구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판소리 문학의 등장인물에 상층민과 하층민이 두루 존재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보다 큰 이유는 상층민이나 하층민이 모두 광범위한 담화 사용 영역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 문학에 나타나는 담화 접변을 일종의 문화 접변이라고 할 때, 그러한 문화 접변의 배경은 무엇인가? 조선 후기의 문화 간 교류를 일으킨 배경에 대해 점검해 보자. 첫째, 최고 권력층이 하층문화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조선조의 최고 권력층이 하층문화에 보인 관심은 조선조 초기 천민출신의 배우가 임금 앞에서 공연했던 소학지희적 전통에까지 소급된다. 소학지희는 나례의 공식 행사로서 임금은 의례적으로 나례에 참가해야 했지만 이에 비해 조선 후기의 왕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하층의 공연문화인 판소리를 어전으로 끌어들였다. 서민문화에 관심을 가진 또 한 사람의 최고 권력자인 대원군이다. 최고 권력층의 이와 같은 하층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판소리 담화 구성에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된다.


둘째, 권력층의 사대부들 또한 하층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현직의 관리들은 하나의 의례처럼 판소리를 향유하는 경향이 있었다. 판소리 감상이 마치 관리로서 갖추어야 하는 교양적 덕목인 것처럼 취급되었던 것이다.


셋째, 몰락 사대부의 대량 발생으로 인한 국가 전반의 문화적 체질의 변화이다. 조선 후기에 일어나 권력 집중과 경제력 집중은 그로부터 탈락한 사대부 계층을 대거 발생시켰다. 권력의 자장권으로부터도 탈락하고, 권력의 부산물이나 선대의 유산을 물려받지도 못하여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대부들은 물질생활의 정도로는 빈궁한 서민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지속되는 궁핍은 그들의 내적 체질을 서서히 변화시켜 기존에 갖고 있던 유교적 관념주의 또는 공리주의로부터 실용주의로의 전환이었다. 몰락 사대부의 궁핍과 문필의 구성력이 기묘하게 합성됨으로써 기존의 여러 문예 양식들에 상당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몰락 사대부들은 권력층의 양반 사대부들과는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판소리 사설의 작사, 윤색, 개작을 통해 담화적 개입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넷째, 아전, 서리, 서얼 등 이른바 중인계층이 보여준 상층문화 지향성이다. 중인층은 상층문화와 하층문화의 접점에 위치하면서 두 문화 사이의 교류를 촉진시킨 주도적인 인자로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된다. 다섯째, 부상 · 부농층과 같은 서민부호들이 보여 준 상층문화 지향적 풍류의식이다. 여섯째, 예인들의 상층문화를 지향하는 의식이 오랜 전통으로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상층문화와 하층문화는 각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가 변화기 시작하였다. 두 차례 대외 전쟁에서의 패배에 따른 지배층의 자신감 상실, 민중층의 반감 확산, 벌열층의 극단보수화와 권력층에서 탈락한 사대부 계층의 대거 몰락이라는 기존 권력 구조의 변화, 농공상업의 질적 발전과 성장에 따른 경제력 구조의 변화, 재편된 경제력 구조에 따른 중간층의 확대 형성과 세분화 등등의 조선 후기 당시의 사회 변화는 국가의 전체 문화 동향을 서서히 바꿔 상하층 문화를 상호 교류하게 하였다. 상층문화는 하향화하고 하층문화는 상향화하면서 기존의 문예 양식들은 변화하거나 없어지고 새로운 문예 양식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양반 사대부 장르인 한시가 민요 취향을 보여 주기도 하고, 민간의 풍속과 민중의 생활상을 그리기도 했다. 시조는 장편화하고 이야기화하기도 했으며, 가사 또한 서민화하고 소설화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시정의 이야기들이 대거 야담으로 정착하기도 했고, 하층의 민요가 잡가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무가는 상층담화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당대의 예술 장르인 회화와 음악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풍속화와 민화의 유행과, 빠른 가락인 삭대엽과 고음으로의 음악적 이행이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는 이렇게 상하층 문화의 기조가 동요하고 기존 문예 양식의 뿌리가 흔들릴 때 발생하고 성장한 문예 양식으로서 그 담화 속에 당대의 문화접변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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